터무늬 있는 경성미술여행
정옥 지음 / 메종인디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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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3.1.30.

인문책시렁 264


《터무늬있는 경성미술여행》

 정옥

 메종인디아

 2022.10.27.



  《터무늬있는 경성미술여행》(정옥, 메종인디아, 2022)을 읽었습니다. 72쪽에 나오는 ‘하얀빛’을 ‘한겨레빛’으로 덮어씌우는 보기를 들자면 ‘구본창’이 있어요. 일본에서는 구본창을 깍듯이 높이고, 일본에서 깍듯이 높이는 구본창은 이 나라에서도 힘이 셉니다.


  그런데 ‘하얀빛 = 한겨레빛’이기는 합니다. 다만, ‘하양·흼’이 왜 ‘한겨레’하고 맞물리는가를 제대로 읽고 살펴서 그리는 사람이 드물 뿐이고, ‘하얌 = 한겨레’라는 얼거리를 나라(정부)가 앞장서서 숨기려 할 뿐 아니라, 숱한 바치(전문가)는 이 대목을 모르거나 엉뚱한 길로 빠질 뿐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을 이룬 옛사람을 아울러 ‘한겨레’라 합니다. 고구려 백제 가야 신라 부여 옥저 발해 같은 나라이름이 아닌, 그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 누구나 ‘한겨레’입니다. 피붙이로 여기는 이름이 아닌 ‘한겨레’입니다. 왜 한겨레가 ‘한겨레’이냐 하면 ‘한 = 하늘·해’이거든요. “하늘에서 온 겨레”이기에 ‘한겨레’입니다.


  하늘은 ‘하나이면서 큰 우리(울타리·너와 나)’를 나타내는 낱말입니다. ‘한(하·하나) = 해’이기도 한데, 해는 하나이면서 크고 밝고 하얀빛으로 여깁니다. 해가 뜨고 질 적에는 다른 빛살로 바라보되, 바탕은 “하나 + 큼 + 밝음 + 하양 = 해”인 얼개입니다. 그래서 ‘한겨레·한나라·한누리·한사람’으로 맞물려서 헤아려야 알맞습니다. 우리 이름은 ‘한국’이 아닌 ‘한누리·한뉘’입니다.


  또는 ‘해누리·햇뉘’요 ‘해사람·해님’이라 할 만하지요. 이 땅에서 하얗게(밝고 크며 하나로 아우를 줄 아는 너른 마음이자 사랑인) 사람이기에, 누구나 ‘해님’입니다. 《터무늬있는 경성미술여행》을 읽으면 “야나기 무네요시도 조선의 미를 ‘비애(悲哀)의 미’로 정의함으로써 조선에 대한 나약한 관점을 추가했다고 할 수 있다(71쪽)”고 적는데, 야나기 무네요시 님이 모든 한빛(한겨레 빛)을 낱낱이 읽어내지는 못 했을는지 모르나, 적잖은 한빛을 밝혔고 들려주었고 첫머리를 열었습니다. 비록 야나기 무네요시 님이 더 나아가지 못 하기는 했되, 우리가 스스로 한빛인 해님인 줄 느끼고 살림살이를 사랑하는 실마리를 찾기를 바라는 ‘이야기씨앗’을 심어 주었어요. 이 이야기씨앗을 북돋우고 가꾸면서 숲을 이룰 몫까지 야나기 무네요시 님한테 바라며 아쉬워하기보다는, 우리가 새롭게 가꿀 일이요, 이분이 사납고 매몰찬 총칼나라(군국주의 식민지)에서 씩씩하게 내놓은 목소리는 귀여겨들을 일이라고 여깁니다.


  저는 전남 고흥이란 고장에서 살아가는데, 이 고흥을 돌아보면 ‘나혜석 발자취’도 ‘천경자 삶자취’도 깡그리 없습니다. 벼슬꾼(군수·공무원·지역예술가) 입맛에 안 맞거나 바른소리를 내면 몽땅 짓밟는 나리(양반)투성이입니다. 그러나 고흥 한 곳만 이러지 않아요. 다른 고장도 서울도 매한가지입니다. 밟히고 찢기고 얻어터지면서 고단하거나 지칠 만한데, 나혜석 님이든 천경자 님이든 밟히고 찢기고 얻어터지면서도 으레 붓을 들었어요.


  글붓이든 그림붓이든, 붓잡이는 벼슬이나 감투나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안 쳐다봅니다. 스스로 붓꾼으로 서는 길에는 온누리를 포근하게 감싸려는 마음을 일으켜 샘물빛으로 솟아나는 사랑으로 흐릅니다. ‘서울그림마실’을 하듯 나라 곳곳에서 저마다 푸른그림마실을 헤아리는 이웃이 하나둘 늘 수 있기를 바라요. 돈이 되는 글이나 그림을 움켜쥐려 하는 모든 허울이나 껍데기를 걷어치우거나 녹여낼 어진 글님하고 그림님을 기다립니다.


ㅅㄴㄹ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미술작품 감상은 매우 오래된 역사를 가지지만, 그것은 문인 취미를 지닌 사람들이나 서화를 소장한 사람들에 국한되었다. (66쪽)


1970년대 중반에 부상하여 현재까지 한국 미술계에서 강력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단색화의 권위도 일제가 한국의 미로 설정한 “백색”에 초점을 두고 일본에서 개최한 전시의 성공을 통해서 획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72쪽)


‘동양화’는 조선총독부가 조선미술전람회를 개최하면서 사용한 용어로서, 우리 미술의 전통성과 고유성을 부정하려는 의도에서 유래한 것이다. (96쪽)


그러고 보면 미술계는 참 우스운 곳이다. 작가가 스스로 자기 작품이 아니라고 해도 그것을 구입한 미술관은 끝까지 진작(眞作)이라고 우기니 말이다. (111쪽)


하지만 가장 확실한 차별화 방법은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114쪽)


일제강점기에만 해당하는 현상이 아니다. 군부독재 시절에 예술의 피안으로 도피하여 관념적 정신성만을 추구한 일군의 작가들이 있었다. 그들은 민주화가 쟁취된 이후에 “침묵도 일종의 저항”이었다며 자신들을 변호한다. (19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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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기 전, 사랑을 계획하다 - 사랑편 웰컴 투 지구별
로버트 슈워츠 지음, 추미란 옮김 / 샨티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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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3.1.26.

인문책시렁 274


《태어나기 전 사랑을 계획하다》

 로버트 슈워츠

 추미란 옮김

 샨티

 2023.1.10.



  《태어나기 전 사랑을 계획하다》(로버트 슈워츠/추미란 옮김, 샨티, 2023)를 읽었습니다. “Your Souls Love”를 옮긴 책입니다. 책에 흐르는 줄거리를 헤아리자면 “우리 넋은 사랑”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사랑은 ‘애정·연애’가 아닙니다. 사랑은 오직 사랑입니다. 사람이 서로 살리는 길을 숲빛으로 여밀 적에 피어나는 기운이 사랑입니다. 사람이 사람답다면 사랑스럽고, 사람이 사랑을 잊다가 잃으면 사람답지 않습니다.


  쉽게 보자면 ‘사람 = 사랑’이요, ‘사랑 = 사람’이니, 꾸밀 까닭도 덜어낼 일도 없습니다. 오롯이 사람이자 사랑일 뿐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글을 안 익혔고, 배움터를 안 다녔고, 책을 안 읽었고, 둘레(사회·정치)에 물들지 않았기에 사랑입니다. 철들지 않거나 철없는 사람들 곁에서 물들기에 아이도 나란히 사랑을 잊은 ‘무늬사람’이나 ‘시늉사람’으로 곤두박질합니다.


  오늘날 배움터에서 펴는 ‘성교육’은 ‘살섞기’일 뿐 ‘사랑’하고 동떨어집니다. 사랑이라면 저절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사랑이기에 손을 맞잡고 함께 일하며 함께 놀아요.


  사랑이 아니기에 고리타분한 웃사내(가부장권력)가 되고, 사랑이 아니기에 갈라치기를 하면서 삿대질을 하고 놈(적)으로 여기지요. 사랑이 아니기에 싸울 뿐 아니라, 총칼을 끝없이 뽑아냅니다.


  잘 봐요. ‘사랑싸움’은 없습니다. 사랑은 싸움을 녹여서 아예 없앱니다. 주먹을 휘두르면서 ‘사랑매’라고 거짓질을 친 늙은이가 수두룩하던 이 나라예요. 때리고 윽박지르는데 어떻게 사랑일까요?


  아이는 사랑을 마음으로 다 알되, 몸으로도 깨달으려고 하루하루 자라납니다. 사랑을 마주하면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철이 들고, 철이 들기에 비로소 어른입니다. 나이가 많거나 짝짓기를 하는 이들은 어른도 아니지만, 아직 사람도 아닙니다. 짝짓기를 하는 이들은 ‘짝짓기몸’일 뿐입니다.


  누구나 몸을 입기 앞서 사랑을 그리면서 이 별을 떠돕니다. 누구나 몸을 입고 나서 참다이 사랑을 빛낼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을 그립니다. 아이를 낳든 안 낳든 사랑으로 일어서려고 숲을 품습니다. 숲을 등지는 곳에는 사랑이 없을 뿐 아니라, ‘무늬사람’하고 ‘시늉사람’만 북새통입니다.


  껍데기를 벗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나비처럼, 사랑을 깨달아 참말로 사람으로 서는 우리 스스로로 빛나기를 바랍니다. ‘애정·연애’가 아닌 ‘사랑’으로 갈 일입니다. 갈라치기가 아닌 어깨동무라는 사랑을 품을 하루입니다.


ㅅㄴㄹ


“자기 사랑이 중요한 것 같은데요, 내가 어떻게 하면 나를 더 사랑할 수 있는지 조언을 들을 수 있을까요?” (97쪽)


아이를 잘 관찰해 보면서 아이가 죽은 아빠나 엄마에 대해서 뭔가 느끼는지, 꿈을 꾸는지, 아니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지 지나가는 말투로 자연스럽게 물어보세요. 아이는 교육 체계의 영향을 아직 덜 받았기 때문에 당신보다 더 직관적일 수 있습니다. (140쪽)


당신이 그 생에 태어난 것은 학대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학대에 대해 ‘싫어’라고 말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였어요. 그런데 그 싫다는 말을 하지 못해서 자신에게 대단히 화를 내며 스스로를 비난했습니다. (177쪽)


태어나기 전 다음 생을 위한 청사진을 짤 때 우리는 종종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배울 필요가 있는 것을 남들에게 가르치는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원래 가장 먼저 배우는 사람은 가르치는 선생 자신이다. (284쪽)


#RobertSchwartz #YourSoulsLove


책은 살짝 아쉽다.

사랑을 그리는 듯하면서

얼핏설핏

사랑 아닌 길로 빠지려 든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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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 기자의 할 일, 저널리즘 에세이
김성호 지음 / 포르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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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3.1.21.

인문책시렁 273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김성호

 포르체

 2023.1.11.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김성호, 포르체, 2023)를 읽으며 ‘글바치’라는 길을 돌아봅니다. 둘레에 흐르는 모습을 보고서 그대로 적는 사람은 ‘기자(記者) = 적는 + 이’입니다. 이야기를 스스로 짓거나 엮는 사람이라면 ‘짓는이(작자·作者)’요, 삶자리에서 보고 느끼고 받아들인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라면 ‘쓰는이(필자·筆者)’입니다. ‘적는이·짓는이·쓰는이’를 가른다면, ‘적는이’는 구경하는 둘레 모습을 담고, ‘짓는이’는 스스로 삶을 지으면서 이야기를 지어서 담고, ‘쓰는이’는 스스로 살아내면서 마주하는 하루를 담습니다.


  적거나 짓거나 쓰는 사람에다가, 이웃말(외국말)을 우리말로 옮기는 사람을 아울러 ‘글바치’라 합니다. 얼핏 보면 그저 글이지만, 글을 바라보거나 마주하거나 다루는 매무새는 저마다 다릅니다.


  새뜸(신문)에 글을 싣는 ‘적는이(기자)’는 되도록 이녁 마음이나 뜻이나 생각을 안 밝힙니다. 보고 들은 대로, 또는 구경한 대로, 또는 둘러본 대로 담는 길입니다. ‘짓는이(작자)’는 언제나 이녁 마음이며 뜻이며 생각을 밝힙니다. 보고 듣거나 구경한 모습이 아닌, 스스로 짓는 삶을 담으니 언제나 제 마음하고 뜻이며 생각을 담는 글입니다. ‘쓰는이(필자)’는 스스로 배우거나 갈고닦은 대로(만큼) 글에 삶을 담습니다. 그때그때 그날그날 새삼스레 보고 느껴서 받아들인 하루를 가만히 되새기거나 짚으면서 글을 씁니다. ‘옮긴이(번역자)’는 이웃말을 읽으려면 이웃살림(외국문화)을 널리 헤아릴 노릇이면서, 우리말로 옮기려면 우리말하고 우리살림을 깊이 새길 노릇입니다. 두 말이며 살림을 고르게 추스르는 매무새에 몸짓일 적에 비로소 이웃말을 우리말로 담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글바치는 얼마나 제몫을 할까요? 제대로 적는 일꾼인 적는이일까요? 사랑으로 짓는 일꾼인 짓는이일까요? 슬기롭게 쓰는 일꾼인 쓰는이일까요? 고르게 옮기는 일꾼인 옮긴이일까요?


  네 갈래 글바치 가운데 시골에서 사는 이는 매우 드뭅니다. 작은고장에서 사는 글바치는 조금 있습니다. 큰고장(대도시)하고 서울에서 사는 글바치가 아주 많습니다. 거의 모두 큰고장하고 서울에 깃드는 글바치입니다.


  새뜸에 흐르는 이야기는 거의 큰고장이나 서울 모습입니다. 시골이나 숲이나 들이나 바다나 하늘이나 별 이야기를 새뜸에서 거의 못 보고 못 찾습니다. 흔히 ‘정치·사회·경제·문화·세계’에 ‘스포츠·연예·교육·부동산’에 ‘자동차·종교·주식·영화’를 가르곤 하지만, 하나같이 서울살이에 얽매여요. 사람이 살아가며 이루는 살림을 두루 짚는 길이 아닌, 서울·큰고장에 얽매인 적는이(기자)라면, 이들 적는이가 보거나 듣는 이야기는 한 줌밖에 안 되게 마련입니다. 또한 마을사람하고 나란히 살면서 보거나 듣지 않는 적는이인 터라, ‘출입기자’라는 틀에 매여 스스로 ‘장삿글(광고기사·애드버토리얼)’에 머무릅니다.


  스스로 돈을 들여 사들인 책을 천천히 읽고서 느낌글(서평)을 쓰는 적는이가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요? 보도자료를 안 넣는 펴냄터가 제법 있습니다. 적는이가 미덥지 않을 뿐더러, 몇몇 펴냄터 책만 다루거든요.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를 쓴 김성호 님은 어느 곳에서 적는이로 일하다가 그만두었고, 어느 누리새뜸에 글을 쓴다고 합니다. 책이름처럼 오늘날 적는이는 하나같이 부끄러워할 노릇입니다. 서울을 안 벗어나고, 이웃을 안 만나고, 구경한 모습을 찔끔 담을 뿐이니, 부끄럼을 넘어 창피한 꼴입니다.


  퍽 오래도록 우리나라 새뜸은 사람들 ‘눈귀입’ 구실을 안 하거나 못 했습니다. 새뜸이 ‘새롭게 눈을 뜨는 길을 틔우는 글을 담아서 나누는 길’이라는 구실을 하자면, 적는이부터 서울을 떠나 작은고장하고 시골에서 살아야겠지요. ‘정치’가 아닌 ‘들숲바다’를 다루고, ‘사회’가 아닌 ‘풀꽃나무’를 다루고, ‘경제’가 아닌 ‘살림살이’를 다루고, ‘문화’가 아닌 ‘아이 곁’을 다루고, ‘세계’가 아닌 ‘별과 이웃’을 다루어야지 싶습니다. 장삿길에 빠지지 않으려면 ‘자동차’ 아닌 ‘자전거’를 다루고, ‘부동산’ 아닌 ‘풀벌레’를 다루고, ‘스포츠’ 아닌 ‘놀이’를 다루고, ‘연예’ 아닌 ‘삶이야기’를 다루고, ‘교육’ 아닌 ‘마음읽기’를 다루어야지 싶습니다.


  글바치가 글바치다우려면, 손수 밥옷집 살림을 짓는 즐거운 일꾼으로서 보금자리부터 돌볼 줄 알아야 한다고 여깁니다. 아이 곁에서 배우고, 풀꽃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같이 부르고, 별빛이 흐르는 밤하늘을 헤아리는 눈빛이라면, 적는이·짓는이·쓰는이·옮긴이 어느 자리에 서더라도 어진 글빛을 담으리라 생각합니다.


ㅅㄴㄹ


우리는 너무나 자주 비싼 밥을 먹고 술을 마셨습니다. 때로는 선물과 상품권도 받았습니다. 보도 가치도 없는 행사는 어찌나 잦았는지, 그런 행사가 끝난 뒤에는 언제나 크고 작은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49쪽)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거리로 나서지 않았고, 나가서도 그런 사람들과는 얘기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불편하고 지저분하며 시끄럽고 정돈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진 않았습니다. (90쪽)


기자로 일하며 만난 기자 열 중 아홉은 듣는 데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105쪽)


기사가 나간 뒤 다시 도서관을 찾았습니다. 저를 막아선 그를 찾아 면담을 신청했는데 이전과는 완전히 딴판입니다. 시종일관 저자세로 나오며 다시는 기사를 내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를 합니다. 그러면서 종일 참회 기도를 했다고 말합니다. (191쪽)


사건을 다루며 답답했던 건 제가 진실을 전혀 짐작할 수 없었던 겁니다. (24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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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한 국어학원
변진한 지음 / 깨소금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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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3.1.13.

인문책시렁 262


《여름한 국어학원》

 변진한

 깨소금

 2022.10.24.



  《여름한 국어학원》(변진한, 깨소금, 2022)을 읽었습니다. 배우고 일하고 나누는 하루를 누린 발자국을 차곡차곡 들려줍니다. 배웠기에 들려줄 수 있고, 들려주면서 살림을 가꾸는 일을 찾을 수 있고, 살림을 가꾸면서 어느새 스스럼없이 나누는 마음으로 갈 수 있습니다.


  숱한 사람들이 돈이 잘되는 일감을 거머쥐려 달려들면서 이름값을 높이는 나날인데, 차곡차곡 쌓은 돈은 어디에서 누구한테 이바지할까요? 우리나라 배움터는 어린이나 푸름이한테 “돈이란 무엇인가?”나 “돈을 어떻게 쓰기에 즐겁고 아름다울까?”를 하나도 안 가르치거나 못 가르치지 않는가요?


  가만히 보면 우리나라 배움터는 ‘사랑’부터 안 가르치고 ‘숲’을 못 가르치며 ‘말’을 안 가르치고 ‘글’을 못 가르칩니다. 이름으로는 ‘사랑·숲’이나 ‘말·글’을 가르치는 시늉이지만, 껍데기만 슥 훑거나 건드리다가 지나가기 일쑤입니다. 사람으로서 살림을 짓는 어진 빛살인 하루일 적에 사랑입니다. 숱한 숨결을 수수하게 품을 줄 아는 풀꽃나무이기에 숲입니다. 마음을 그려서 생각을 씨앗으로 담기에 말입니다. 소리로 터져나오는 생각을 마음에뿐 아니라 눈으로도 보면서 나누려고 그리기에 글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우리말꽃(국어사전)부터 제대로 나온 적이 없습니다. 우리 첫 낱말책은 믿음길(종교)을 퍼뜨리려던 이웃나라에서 엮었고, 이다음은 우리나라를 집어삼키려던 일본 글바치하고 일본바라기(친일파)가 엮었습니다. 이다음으로 우리 손으로 엮으려다가 한겨레싸움(한국전쟁)에 휩쓸렸고, 겨우 숨을 돌린다 싶을 무렵에는 서슬퍼런 총칼(군사독재)이 다시 번득였어요. 총칼을 몰아낸다 싶더니 어느새 이쪽저쪽(좌파·우파) 모두 돈바라기로 휩쓸렸고, 이윽고 누리바다(인터넷세상)로 달리면서, 아직도 우리말꽃(국어사전)은 갈피를 못 잡고 헤매는 판입니다.


  우리가 쓰는 말글이 여태 우리말·우리글답지 않다면, ‘우리말글’이 아닌 ‘국어’라는 일본스런 한자말인 이름으로 뭔가 가르치는 얼거리가 제대로 선 적이 없다고 할 만하겠지요. 쳇바퀴이자 수렁이자 굴레일 테고, 배움수렁(입시지옥)입니다. 즐겁게 펴고 기쁘게 나누며 아름다이 꽃피우는 말글하고 동떨어진 ‘국어’일 텐데, ‘말글 아닌 국어’에 무슨 마음을 어떤 생각으로 심을 수 있을까요?


  이쪽을 보아도 갑갑하고 저쪽을 보아도 답답한 나라이지만, 사랑으로 마주하는 짝꿍이 있고, 두 사람이 새롭게 맺는 사랑으로 만나는 아이가 있습니다. 서둘러 가야 할 길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서둘러 자라야 하지 않거든요. 차근차근 여미어 찬찬히 누리고 나눌 수 있는 마음이라면, 우리가 쓰는 말 한 마디는 별빛처럼 빛나고 햇빛처럼 따스할 만합니다.


ㅅㄴㄹ


남들보다 군대를 늦게 다녀와서 두 해 임용을 준비했지만 떨어졌다.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자신이 없기에, 몇십 대 일이었던 경쟁률을 탓할 수는 없다. 어쩌다 보니 그 시절 시험공부를 밑천 삼아 학원가로 나와 고등학생을 가르치며 12년 넘게 학원 밥을 먹었지만, 공무원으로서의 안정과 사교육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부딪힐 때마다 임용을 일찍 포기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10쪽)


“그건 스무 살의 벚꽃이야. 열아홉의 벚꽃은 열아홉에만 피는 거야. 내년에 올해의 벚꽃을 볼 수는 없어. 단, 엄마께 내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하면 안 돼.” 이런 말을 해도 항의전화 한 번 받은 일은 없는 것으로 보아, 아이들은 벚꽃놀이를 가지 않았거나 엄마에게 나의 말을 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14쪽)


하지만 “뜻하지 않게 일어난 일”일지는 몰라도 정말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이 일어난 일”인지는 확신할 수 없는 것 아닐까. (41쪽)


더는 학원을 운영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출퇴근하는 버스 안에서 〈연애시대〉를 보며 생각했다. 처음 시작할 무렵, 육 년 후 내가 이런 마음일 것을 알았다면 시작할 수 있었을까? (10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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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와 가짜
요시모토 다카아키 지음, 송태욱 옮김 / 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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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3.1.13.

인문책시렁 266


《진짜와 가짜》

 요시모토 타카아키

 송태욱 옮김

 서커스

 2019.6.20.



  《진짜와 가짜》(요시모토 타카아키/송태욱 옮김, 서커스, 2019)를 읽었습니다. 책이름을 “진짜와 가짜”로 옮겼습니다만, 일본책 이름을 짚으면 “참과 거짓”이나 “참거짓”으로 옮기는 길이 옳았으리라 봅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외마디 한자말 ‘진짜(眞-)·가짜(假-)’가 퍼졌는데요, 중국을 섬기던 예전 글바치하고 우두머리부터 일본에 들러붙은 글바치하고 우두머리는 ‘진가(眞假)’나 ‘진위(眞僞)’처럼 한자로 쓰기를 즐겼어요. 이들 글바치하고 우두머리로서는 사람들이 널리 쓰는 삶말인 ‘참·거짓’을 죽어도 안 쓰려 했습니다. 그들로서는 ‘누구나 쉽게 헤아리고 알아듣고 나누면서 생각을 북돋우는 말을 담는 글’을 꺼렸거든요. 누구나 나누는 말글이 아닌, 힘꾼·이름꾼·돈꾼이 거머쥘 말글이어야 한다고 여겼어요.


  오늘날 숱한 책(인문책)을 펴면 말글이 참 까다롭거나 어렵거나 고리타분하거나 골때립니다. 무늬는 한글이지만, 속은 한말(우리말)이 아니에요. 생각해 봐요. 겉으로 보기에 한글로 적으면 누구나 읽을 수 있을까요? 겉으로만 한글이라면 ‘참(진실)’이 아닌 ‘거짓(사실)’입니다. 쉬운말을 안 쓰는 사람은 모두 거짓꾼(거짓말쟁이)입니다. 쉬운말을 등지는 사람은 눈가림이나 눈속임을 하는 셈입니다.


  아기를 낳은 어버이가 아기한테 어렵게 말하지 않아요. 아이를 돌보는 어른은 아이한테 어렵게 들씌우지 않습니다. 아이가 못 알아듣도록 말을 하면서 외우도록 시킬 적에는 아이를 길들여서 노리개나 허수아비로 삼는 셈입니다. 아이가 바로 알아듣도록 쉽게 말할 줄 알아야 비로소 어른입니다. 누구나 쉽게 깨닫고 나누면서 누리도록 말을 하고 글을 쓸 적에 비로소 글님(작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겉글(눈가림글·눈속임글·거짓글)을 쓰는 이들은 참(진실)을 등지려 합니다. 참글을 쓰는 이들은 가리거나 감추거나 숨길 까닭이 없습니다. 겉글을 쓰는 이들은 뒤로 꿍꿍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둘레를 보면 겉글·거짓글로 눈을 가리거나 속이는 이들이 내놓는 책이 수두룩합니다. 참글을 널리 알리면서 읽는 사람이 뜻밖에 매우 적습니다.


  앞으로는 우리부터 먼저 바꿀 수 있을까요? ‘참 = 속 = 넋 = 진실’입니다. ‘거짓 = 겉 = 눈가림/눈속임 = 사실’입니다. 한자말 ‘사실’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읽는 길입니다. 한자말 ‘진실’은 속으로 빛나는 숨결을 읽는 길입니다. 이제는 진짜(진실)하고 가짜(사실)를 넘어, 참·거짓을 헤아리는 이웃을 만나고 싶습니다.


ㅅㄴㄹ


현대는 문명이나 과학이 점점 발달하기만 해서 인간의 어리석음을 더욱 잘 알 수 있는 시대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어리석음은 노골적이 되었습니다. 원인을 밝히자면 그것은 정신이 망가졌기 때문일 겁니다. (26쪽)


문학을 읽으면 감성이 풍부해진다고만 말하면 그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풍부해지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문학에는 문학 고유의 독이 있기 때문에 분명히 독도 퍼집니다. 그 점은 잊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35쪽)


그렇다면 왜 지금 세대의 작가는 대가가 될 수 없는 걸까요? 그것은 생활인으로서의 인간적인 성숙과 문학적인 감각의 성숙 속도가 일치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126쪽)


전업주부가 되면 손해를 본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일은 절대 없습니다. 만약 전업주부만큼의 시간을 만들 수 없다면 적어도 아이에게 중요한 시간, 즉 유아기와 사춘기만은 차분히 마주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178쪽)


지금의 일본은 도덕적으로도 좋지 않기 때문에 품격이나 애국심이나 무사도 정신이라는 것을 부활시키자는 생각이 붐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225쪽)


#吉本隆明 #

真贋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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