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만순의 기억전쟁 2 박만순의 기억전쟁 2
박만순 지음 / 고두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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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3.11.8.

인문책시렁 320


《박만순의 기억전쟁 2》

 박만순

 고두미

 2022.7.1.



  《박만순의 기억전쟁 2》(박만순, 고두미, 2022)을 읽으면서 한겨레싸움(한국전쟁)을 돌아봅니다. 나라에서 말하는 싸움과 사람들이 마을이며 삶터에서 맞이해야 한 싸움은 다릅니다. 먼먼 옛날부터 돌아볼 노릇입니다. 우두머리(권력자)는 사람들 곁에 선 적이 없고, 사람들 사이에서 산 적도 없습니다. 우두머리는 언제나 사람들을 밟는 자리에 머물렀고, ‘사람들(백성·국민·시민·인민·민중)’이 누구인지부터 모르고 어떻게 사는지마저 등돌렸어요.


  고려이든 조선이든 다르지 않고, 고구려나 백제나 신라도 다르지 않습니다. 총칼수렁(일제강점기)에 벼슬자리를 차지한 이들은 뭘 했을까요? 총칼이 물러간 뒤에 벼슬을 맡은 이들은 뭘 했는가요? 《박만순의 기억전쟁 2》 첫머리에 나오듯, 나라(국가·정부)는 ‘각다귀 나무라기’가 아닌 ‘사람들한테 윽박지르면서 힘(권력)을 틀어쥐는 길’에 설 뿐입니다.


  한겨레가 두 나라로 갈린 채 싸운 나날은, 서로 지키거나 살리는 길이 아닌, 죽이면서 스스로 무너진 수렁입니다. 그러면 이제라도 헤아릴 노릇입니다. 싸울아비(군인)는 왜 그토록 ‘민간인 학살’을 할까요? 2022년부터 불거진 ‘러시아 싸움질’하고, 2023년에 터진 ‘이스라엘 총칼질’은 어떤 민낯이고 속내일까요?


  모든 싸움터에서 우두머리는 뒤에 점잖게 앉아 구경합니다. ‘사람들(백성·국민·시민·인민·민중)’은 허수아비처럼 총칼을 맨몸으로 맞아들여서 푹푹 고꾸라집니다. 앙갚음을 하겠다며 죽이면, 똑같이 앙갚음을 받습니다. 우두머리는 점잖게 팔짱을 낀 채 ‘사람들 스스로 서워 미워하고 손가락질하며 치고받는 수렁’을 지켜봅니다. 우두머리는 그저 사람들한테 총칼을 나눠 주고 어깨띠(계급장)를 붙여 줍니다. 그리고 ‘나라 우두머리’한테 ‘싸움장사’를 하는 숨은 장사꾼이 있어요. 싸움장사꾼은 ‘싸우는 사람들 두 무리’한테 슬그머니 총칼을 내다팔지요.


  그대가 ‘맨몸으로 총 한 자루 받아서 싸움터에 선 작은 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기를 바라요. 총소리만으로도 싸울아비는 귀가 멉니다. 폭탄이 터지면 귀청이 찢어집니다. 싸울아비는 싸움터에서 제넋을 못 차립니다. 눈앞에 뵈는 모두 갈겨서 없애야 스스로 목숨을 건사한다고 여깁니다. 싸움터에 나서야 하는 허수아비인 사람들부터 두려워 벌벌 떠는 채 아무한테나 겨누고 쏘고 거꾸러뜨려요. 싸움(전쟁)이란 이렇습니다. 요새는 날개(드론)를 띄워 아예 마을을 송두리째 박살내기까지 합니다.


  모든 참거짓을 밝히고 드러내려면, 사람들 모두를 허수아비로 돌려세우면서 서로 미워하고 손가락질하도록 내몬 우두머리부터 끌어내릴 노릇입니다. 그들을 끌어내리고서 모든 총칼을 녹여 없앨 때라아야, 민낯이 드러나고, 바야흐로 온누리는 싸움수렁을 잠재울 수 있습니다.


ㅅㄴㄹ


국가와 사회는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처벌하는 것이 주가 아니라 공포사회를 조성하려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 (7쪽)


백낙용 집안 식구들이 법치주의가 확립된 사회에서 살았다면 평탄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36쪽)


보도연맹 가입자 모두가 좌익 활동을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은 확실하다. (42쪽)


최천수의 입이 딱 벌어졌다. 군사작전을 하듯이 수류탄까지 던져 부역 혐의자들을 싹쓸이할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죽창 하나 들지 않은 민간인 아닌가. (102쪽)


월미도 주민들은 실향민 아닌 실향민 신세가 되었다. 그들은 전쟁 전 북한 주민들도 아니었고, 외국인도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었다. (272쪽)


+


국가와 사회는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처벌하는 것이 주가 아니라 공포사회를 조성하려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

→ 나라는 잘못을 저지른 이를 다스리기보다는 무시무시하게 가두었다

→ 나라무리는 각다귀를 꾸짖기보다는 차디차게 얽어맸다

7


백낙용 집안 식구들이 법치주의가 확립된 사회에서 살았다면 평탄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 옳게 다스리는 나라였다면 백낙웅 집안은 걱정없이 살았다

→ 바르게 선는 나라였다면 백낙웅 집안은 느긋이 살았다

36


우익인사들은 다시 트럭에 실려

→ 오른날개는 다시 짐칸에 실려

→ 오른이는 다시 짐수레에 실려

54


상대적으로 우수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었던 자신의 욕망이 헛된 것임을 깨달았다

→ 더욱 뛰어난 아이를 가르치고 싶던 꿈이 헛된 줄 깨달았다

→ 더 똑똑한 아이를 가르치고 싶던 꿈이 헛되다고 깨달았다

71


최천수의 입이 딱 벌어졌다

→ 최천수는 입이 딱 벌어졌다

102


이제는 92세가 된 그녀는

→ 이제 아흔두 살인 할매는

→ 할매는 이제 아흔둘인데

20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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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회 - 나우주 소설집
나우주 지음 / 북티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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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3.10.31.

인문책시렁 310


《안락사회》

 나우주

 북티크

 2022.8.31.



  《안락사회》(나우주, 북티크, 2022)는 책이름 그대로 ‘아늑터’를 그린다고 할 만하고, ‘아늑한 척하는 터’를 그린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집’이라는 이름일 텐데, 지붕만 겨우 있다고 볼 잠터일 수 있고, 포근포근 즐거운 터전일 수 있고, 짐스럽게 짊어지는 터일 수 있습니다.


  시골이더라도 읍내나 면소재지는 시끄럽고 밤별을 보기 어렵습니다. 시골이더라도 잿집(아파트)에 깃들면 바람소리나 물결소리나 풀소리나 새소리하고 등집니다. 서울이라면 어느 집이어도 둘레에서 흐르는 소리를 못 느낄 만하지만, 마당을 거느리는 조촐한 살림을 꾸린다면, 서울 한복판에서도 푸르게 일렁이는 숨빛을 날마다 이럭저럭 누릴 만합니다.


  아늑하다고 여기기에 잿집에 깃드는가요? 참말로 잿집은 아늑할 수 있을까요? 흙을 등진 잿집은 뭐가 아늑할까요? 풀꽃나무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으르렁거리는 잿더미에는 살림빛이란 없지 않을까요? 그러나 나라지기도 벼슬아치도 잿집을 늘려야 한다고 여기고, 서울은 자꾸 부피를 키우면서 들숲과 멧골을 밀어낼 뿐입니다. 잿고을과 잿고을 사이를 빠르게 이으려고 시골하고 들숲하고 멧골은 또 잡아먹혀요.


  이제는 어떤 하루가 아늑한 살림인지를 찾아나서야 할 노릇입니다. 여름에 왜 시원해야 할까요? 겨울에 왜 따뜻해야 할까요? 멀쩡한 다리로 걷지 않는다면 우리 몸은 어찌 될까요? 멀쩡한 손으로 나르지 않는다면 우리 머리는 어떻게 구를까요?


  겉모습은 으레 허울입니다. 옷차림으로는 마음을 못 밝힙니다. 서로 마음과 마음으로 만나서 어우러지는 길을 스스로 걸어야 느긋하면서 아늑합니다. 아늑터는 남이 아닌 내가 일구는 자리입니다. 아늑집은 엄마아빠가 잘 챙겨야 하는 데가 아닌, 한집을 이루는 모든 사람이 한사랑으로 만나는 마음으로 빛나는 자리입니다.


  이제는 같이 눈뜰 수 있기를 바라요. 사람은 서로서로 사랑을 나누고 펴려는 마음으로 이 별에 태어났습니다. 사람이라면 사랑할 일입니다. 스스로 사랑하면서, 스스로 살림하면서, 스스로 하루를 걸어가기를 바라요.


ㅅㄴㄹ


엄마는 아버지를 피해 내 방으로 도망쳐 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버지에게 반항이란 걸 한답시고 생애 처음 가출을 해버린 것이다. (14쪽)


동네 사람들은 ‘시치미’라는 가면을, 아버지는 ‘망각’이란 가면을, 어쩌면 엄마도 ‘태연함’이란 가면을 쓰고 있는지 몰랐다. (33쪽)


사랑은 오직 처한 환경과 상황 때문에 발생한다. (110쪽)


경기도권의 이름도 없는 4년제 대학생이라는 타이틀도 봉천동만큼이나 여자애들을 김새게 하는 모양이었다. (156쪽)


인철이네 집을 다녀온 후로 나에겐 목적의식 같은 게 생겼다. 동경이 아니라 가져야겠다는, 어떻게든 말이었다. (195쪽)


남자는 아들의 무심한 대답이 아쉬웠지만 어쩌자는 생각도 없었다. 사실 아들의 방에 들어온 게 얼마 만인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239쪽)


+


일의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 일을 늦추지 않았다

→ 일을 빨리 했다

9


진작부터 ‘홈워커’가 활성화되어 있다며 나를 필두로 지원자를 더 받기도 했다

→ 진작부터 ‘집일꾼’이 자리잡았다며 나를 앞세워 사람을 더 받기도 했다

→ 진작부터 ‘집지기’가 퍼졌다며 나를 비롯해 일꾼을 더 받기도 했다

19쪽


하나같이 고층이었고 하나같이 인조적이었다

→ 하나같이 높고 하나같이 거짓스럽다

→ 하나같이 높다랗고 하나같이 꾸몄다

43쪽


엄밀히 말해서 고졸이 아니라

→ 깐깐히 말해서 푸른줄 아니라

→ 그러니까 푸른마침이 아니라

57


학력을 위조한 것은 내가 아니라 아빠였다

→ 배움줄은 내가 아니라 아빠가 속였다

→ 배움끈은 내가 아니라 아빠가 거짓이었다

57


이 정도는 벌어 주는 게 적정선 아닐까

→ 이쯤은 벌어 주어야 알맞지 않을까

→ 이만큼은 벌어 주어야 되지 않을까

→ 이렇게는 벌어 주어야 좋지 않을까

61


그런데 프리터가 되고 보니 어느새 느린 삶에 길들여졌다

→ 그런데 나래글꾼이 되고 보니 어느새 느리게 산다

→ 그런데 혼일꾼이 되고 보니 어느새 느리게 살아간다

75쪽


꿈마저 잃은 루저로 살라는 거니

→ 꿈마저 잃은 넋뜨기로 살라니

→ 꿈마저 잃은 바보로 살란 말이니

76


엄마에게로 돌진하는 아줌마

→ 엄마한테 달려드는 아줌마

77


무수한 너를 증오하며 오직 잊기 위해 글을 썼다

→ 숱한 너를 미워하며 오직 잊으려고 글을 쓴다

133


고스톱 치다가 바닥에 먹을 게 없잖냐

→ 꽃그림 치다가 바닥에 먹이가 없잖냐

→ 꽃짝 치다가 바닥에 밥이 없잖냐

153


‘인서울에 실패하면 인생 조진다’를 비로소 실감했다

→ ‘서울길에 미끄러지면 삶 조진다’를 비로소 느꼈다

→ ‘서울바라기 안되면 살림 조진다’를 비로소 알았다

→ ‘서울로 못 가면 한삶 조진다’가 비로소 와닿았다

156


꼴에 싸구려 모텔 싫대서

→ 꼴에 싸구려 마실채 싫대서

234


침대를 배정받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자

→ 자리를 받고 돌봄옷으로 갈아입자

290


사위가 나무들로 빼곡해 왔다

→ 둘레가 나무로 빼곡하다

→ 온통 나무이다

→ 나무숲이다

→ 숲이다

31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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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6
김만중 지음, 설성경 옮김 / 책세상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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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3.10.27.

인문책시렁 242


《구운몽》

 김만중

 설성경 옮김

 책세상

 2003.2.3.첫/2006.1.25.고침



  《구운몽》(김만중/설성경 옮김, 책세상, 2003)을 어린이나 푸름이한테 읽힐 만하려나 싶어 오랜만에 다시 읽었습니다. 그런데 1687년에 나온 이 꾸러미를 제대로 읽기가 어렵겠구나 싶더군요. 오늘 우리가 한글판으로 만나는 《구운몽》은 훈민정음판을 요샛말로 다듬은 판일까요, 한문판을 옮긴 판일까요? ‘요샛말’이란 또 무엇일까요? 지난날 나리(양반)가 익히 쓰던 한문 말씨를 옛글에도 그대로 옮겨야 하나요? 아니면, 지난날 한문을 모르고 ‘우리말’만 쓰던 수수한 사람들 말씨를 되살려서 옮겨야 하나요?


  어느 판으로 되읽을까 하고 한참 헤아리다가 ‘설성경 옮김판’으로 골랐는데, 썩 우리말스럽지 않습니다. 줄거리를 떠나 말결부터 어린이나 푸름이한테 못 읽히겠구나 싶어요.


  이야기책 《구운몽》에 흐르는 밑뜻하고, 어제오늘을 가로지르는 순이살림(여성생활)을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아이를 낳아 살림을 일군 수수한 어머니는 ‘어려운 말’도 ‘잘난 말’도 ‘먹물스러운 말(학문용어)’도 안 썼습니다. 수수한 어머니 곁에서 아이를 나란히 사랑으로 돌본 수수한 아버지도 ‘딱딱한 말’이나 ‘양반님 한문을 흉내낸 말’을 안 썼어요. ‘것’을 아무 데나 쓰지 않는 입말이요, ‘-의’도 함부로 끼워넣지 않는 입말입니다.


  한문을 한글로 옮기든, 이웃말을 한글로 옮기든, 이런 일을 하는 분들은 하나같이 ‘많이 배웠다는 먹물’이되, ‘많이 배웠다’기보다 ‘책만 많이 읽은’ 사람들입니다. 집살림을 오래오래 돌보았거나 아이를 곁에서 보살핀 일을 꾸준히 해온 사람들이 옮기기(번역)를 하지는 않더군요.


  꿈은 그저 꿈일 뿐일 수 있습니다만,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꿈꾸는 대로 이루고 누리고 마주합니다. 헛꿈을 그리면 헛꿈을 이루고 누리고 마주하지요. 사랑꿈을 그리면 사랑꿈을 이루고 누리고 마주해요. 《구운몽》은 바로 이러한 ‘꿈’을 스스로 마음에 품고 그리고 풀어내어 누리는 삶을 차근차근 보여주었다고 느낍니다. “아홉구름꿈”은 덧없기만 하지 않습니다. 덧없는 길을 그려서 누려 보았기에, 이 삶에서 그릴 꿈을 제대로 바라볼 만해요. 바람을 타는 구름이란 무엇인지, 구름이 꽃바람으로 흐르는 삶이란 무엇인지, 이 땅을 두 발로 구르면서 나아가는 길이란 무엇인지, 마음을 다스리는 생각씨앗 한 톨로 심고 가꾸고 키우게 마련입니다.


ㅅㄴㄹ


“그러나 용궁에서 술을 먹은 것은 주인의 강권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고, 석교에서 선녀와 수작한 것은 길을 비켜 달라고 한 것뿐이고, 제 방에서 망상을 하기는 했으나 즉시 뉘우치고 자책했습니다. 이밖에 다른 죄는 없습니다.” (15쪽)


“세상에 귀신을 미워하는 자는 우매하고 겁 많은 사람이오.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되고 귀신이 변하면 사람이 되는 것인데, 귀신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못난 사람이고, 사람을 피하는 귀신이 있다면 신령하지 못한 귀신일 것이오.” (84쪽)


“신하가 충성을 다함은 직품이 높아지는 것과 상관이 없고, 싸움에 이기고 패함은 군사가 많고 적음에 있지 않으니, 신은 그저 한 무리의 군사를 얻어 조정의 위엄에 의지하여 나아가 도적과 죽을 각오로 힘써 싸워 천은(天恩)의 만분의 일이라도 갚고 싶습니다.” (98쪽)


“부처께서는 제자 두 사람의 심중을 굽어살피시어 세세생생 다시 여자로 태어나지 않도록 전생의 죄를 소멸하고 후세의 복을 주셔서 좋은 땅에 환생하여 기쁨을 길이 누리게 하소서.” (15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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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풍경 - 식물의 사색과 명상으로 만난 마음 공부
김정묘 지음 / 상상+모색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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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3.10.27.

인문책시렁 235


《마음 풍경》

 김정묘

 상상+모색

 2021.10.13.



  《마음 풍경》(김정묘, 상상+모색, 2021)을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글은, 말을 담는 그릇이고, 말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기에, 글을 쓸 적에는 말을 담으려 하면 되고, 말을 할 적에는 마음을 담으려 하면 되어요. 그런데 우리는 아직 ‘글에 말을 담기’나 ‘말에 마음을 담기’가 매우 서툴어요.


  말을 하는 그대로 글을 쓰면 될 뿐이지만, 막상 말하듯이 글을 쓰는 사람은 손에 꼽을 만큼 드물어요. 글을 엄청나게 꾸미려고 합니다. 이러다가 어느새 말까지 꾸미려 들더군요.


  글은 잘 써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말은 잘 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마음을 밝히면 되고, 마음을 쓰면 됩니다. 마음을 써야 글을 착하고 참하며 곱게 쓰게 마련입니다.


  “잘 써야 한다”는 마음이란, 얼굴이 잘생기고 옷도 잘 차려입고 쇳덩이(자동차)도 번듯하게 크고 비싼것으로 갖춰야 한다는 마음으로 기웁니다. 사람을 속마음 아닌 겉모습으로 재거나 따지거나 가리는 굴레에 스스로 갇힙니다.


  키가 크거나 몸매가 늘씬하거나 돈이 많거나 이름이 높아야 훌륭할까요? 잘생긴 사람이어야 엄마아빠이거나 아이일까요? 말을 말답게 하거나 글을 글답게 쓰려면, 먼저 우리 마음자리에서 들보부터 치울 노릇입니다. 들보는 집을 지을 적에만 쓰고, 눈이나 글에서는 치워야지요.


  한자말 ‘풍경’은 안 나쁩니다만, 글을 쓰려는 분들은 이 한자말을, 이 일본스런 한자말을 도무지 못 놓습니다. 일본은 이웃나라일 뿐입니다. 나쁜나라도 좋은나라도 아닙니다. 다만, ‘풍경’을 비롯한 숱한 한자말은 이웃나라 아닌 총칼나라 일본이 우리나라로 쳐들어와서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이고 밟고 괴롭히고 등골을 뽑으면서 퍼뜨린 말씨입니다.


  그들은 왜 총칼로 억누르면서 ‘어떤 말씨’를 심으려 했을까요? 우리는 마음만 밝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얼굴만 꾸밀 수 없습니다. 사랑을 품고 살림을 짓고 생각을 할 때라야만 비로소 마음을 밝게 가꾸면서 말빛이 싱그러이 살아납니다.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으리으리한 쇳덩이(자동차)를 몰거나 까만 하늬옷(양복)을 차려입나요? 예수님이나 부처님 돌(동상)을 세울 적에 금을 입히면 빛날까요? 돈이 남아돈다고 여기는 이들이 이웃하고 나누지 않고서 뽐내거나 자랑하거나 우쭐거리는 바보짓을 왜 우리가 흉내내거나 따라해야 하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으리으리한 쇳덩이나 하늬옷만 바보짓이지 않아요. 섣부른 일본 한자말이나 영어를 아무렇게나 글이나 말에 섞는 버릇도 바보짓입니다. 마음을 다스리려면, 마음을 어떤 소리에 얹어서 담아내느냐를 살필 노릇입니다. 아무 말에나 마음을 담지 않아요. 숲을 푸르게 이루는 풀꽃나무한테서 배우고 익힌 수수한 숲말에 마음을 담기를 바라요. 아이를 사랑으로 낳아서 돌본 수수한 어버이가 아이 곁에서 조곤조곤 자장노래를 부르면서 물려주는 쉬운 살림말에 마음을 담는다면, 누구나 글님이요 말님이며 이야기님입니다.


ㅅㄴㄹ


언제부터인가 새소리처럼 귀가 반짝 뜨이며, 봄비 소리가 꽃소식보다 반갑게 들린다. 옛사람을 흉내내며 한밤중에 깨어 속삭이듯 지나가는 봄비 발걸음 소리를 듣는다. (24쪽)


‘꽃이란, 짓는 숨결을 나타내는 커다란 이름’이라고 《우리말 동시 사전》을 펴낸 최종규 작가는 정의한다. ‘짓는 숨결’이라는 말이 낯설다. 하지만 꽃처럼 아름답다. (85쪽)


강아지풀이나 바지랭이처럼 잡초가 되어 눈에 띄는 족족 화단에서 뽑혀 나가는 잡초들이 분류상 대부분 ‘볏과’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도 잘 믿기지 않아 식물도감을 끼고 앉아 풀이름을 확인해 본 적도 있었다. (101쪽)


나물 캐던 처녀 시절을 보낸 아줌마들은 산책로든 관광지든 쑥이나 취 같은 산나물 있는 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18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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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화가 필 무렵 - 윤정모 역사동화 미네르바의 올빼미 28
윤정모 지음,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그림 / 푸른나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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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3.10.6.

인문책시렁 296


《봉선화가 필 무렵》

 윤정모

 푸른나무

 2008.9.1.



  《봉선화가 필 무렵》(윤정모, 푸른나무, 2008)은 꽃이 필 무렵에 꺾여버린 꽃이 어떻게 흙으로 돌아가서 다시 싹을 틔우고 나무로 자라서 늦꽃으로 피어나는가 하는 줄거리를 들려줍니다. 꽃을 지켜보는 분은 다 알 텐데, 이른꽃은 맑고 늦꽃은 짙습니다. 일찍 피는 꽃은 밝고, 늦게 피는 꽃은 환합니다.


  어린꽃도 할매꽃도 모두 꽃입니다. 아기꽃도 할배꽃도 나란히 꽃이에요. 꽃은 모두 꽃일 뿐, 꽃이 아닌 꽃이 없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그러니까 나라가 서서 임금님이 있고 나리가 있고 벼슬아치가 있고 글바치가 있던 무렵에, 수수하게 살림을 지으면서 글을 모르더라도 말로 모든 살림을 가르치고 물려주면서 아이를 사랑하던 사람들을 ‘들풀’이나 ‘들꽃’으로 가리키곤 했습니다.


  들풀은 들풀이고, 들꽃은 들꽃입니다. 들풀하고 들꽃은 ‘민(民)’도 ‘백성’도 ‘민초·민중’도 ‘인민·시민·국민’도 아닙니다. ‘임금·나리·벼슬아치·글바치’는 예나 이제나 ‘들풀·들꽃’이라는 이름을 좀처럼 안 쓰려 하거나 꺼리거나 내칩니다. 왜 그러겠어요? 그들은 풀도 꽃도 아니고 나무도 아니거든요. 그들은 풀꽃나무가 아니라서 들숲바다를 무서워하거나 싫어하거나 미워해서 억누르거나 밟으려고만 하거든요.


  어느 풀도 다른 풀을 미워하거나 밟지 않습니다. 어느 나무도 다른 나무를 싫어하거나 괴롭히지 않습니다. 들숲을 이룬 터전에서 모든 풀꽃나무는 푸르게 어우러져 우거집니다. 이리하여 들숲빛이 바다로 퍼지고, 바다는 바닷방울을 하늘로 띄워서 구름을 일으키고는 빗방울로 온누리를 적셔요.


  《봉선화가 필 무렵》은 조그맣고 수수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임금과 나리가 들풀을 얼마나 어떻게 짓밟아 왔는가를 들려줍니다. 벼슬아치하고 글바치가 들꽃을 얼마나 등지면서 모르는 척했는지를 들려줍니다. 그렇다고 그들 ‘웃분’을 나무란들 이 나라가 바뀔 턱은 없습니다. 그들 ‘웃분’도 아기를 낳을 텐데, 아기를 낳았으면 젖어미를 두거나 돌봄이를 부리지 말고, 그들 스스로 아기한테 젖을 물리고 집안일을 하고 말을 물려주고 살림을 지어서 보금자리를 숲으로 바꾸면 될 뿐입니다.


  사랑을 본 적도 없기에 사랑이 아닌 총칼을 앞세웁니다. 사랑을 본 적이 없더라도 스스로 사랑을 배우고 맞이해서 바꾸려 하지 않기에, 사랑이 아닌 허수아비에 끄나풀에 종이 되어 뒹굽니다.


  꽃이 필 무렵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시겠습니까? 철마다 다 다른 풀꽃나무가 다 다르게 꽃을 피우는데 하나도 안 보는 서울(도시)에 스스로 갇혀서 앓는지요? 언제나 다르게 눈부신 들꽃을 품으면서 오늘 하루를 노래하겠습니까?


ㅅㄴㄹ


경아는 무척 실망스러웠다.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어야 하는데, 어쩌면 할머니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까닭 없이 배신감마저 들었다. (23쪽)


“그대들, 정말 잘 왔다. 오는 동안 고생이 많았겠지만 황국신민은 그런 것을 고생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렇다! 그대들은 국가를 위해 몸 바치러 온 정신대다. 모쪼록 병사들을 잘 위안해 주기를 바란다.” (89쪽)


“제군들은 내일 아침에 출격한다. 여기서 몸을 푼 뒤 저녁 여섯 시까지 부대로 돌아오라.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진수성찬이 제군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상!” (106쪽)


주옥은 순이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순이야, 네가 산 까닭은 네 목숨이 소중해서이지, 저런 쓰레기 같은 군표 때문이 아니야.” (126쪽)


순이는 군표에 불을 붙였다. 힘든 피란길에도 한사코 들고 왔던 군표가 그렇게 사라져 갔다. (16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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