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자 룩셈부르크의 사상
토니 클리프 지음, 조효래 옮김 / 책갈피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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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11.14.

인문책시렁 248


《로자 룩셈부르그의 사상과 실천》

 파울 프뢸리히

 최민영 옮김

 석탑

 1984.9.15.



  《로자 룩셈부르그의 사상과 실천》(파울 프뢸리히/최민영 옮김, 석탑, 1984)을 곰곰이 읽습니다. 떠난 로자 룩셈부르그(1871∼1919) 님을 퍽 일찌감치 가까이에서 바라본 바대로 담아낸 드문 책이라고 할 만합니다. 오늘날에도 죽임질(테러)이 벌어지지만, 지난날에는 죽임질이 훨씬 흔했는데,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아갈 길을 새롭게 밝히려고 목소리를 내고 움직인 이들은 자꾸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죽이는 이, 죽이려는 이, 죽임질 심부름을 하는 허수아비는 낄낄거립니다. 이들은 이슬로 사라지는 불꽃을 보면서 손가락질을 합니다. 그러나 이슬은 풀꽃나무하고 숲을 살리는 숨결입니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해가 아침마다 뜨기에 푸른별은 푸르면서 파란하늘빛으로 싱그럽고 따뜻합니다.


  모든 싸움은 우두머리가 일으키고, 허수아비가 총알받이로 쓰러집니다. 모든 싸움은 사랑을 찍어누르려 하고, 언제나 사람을 위아래로 갈라서 서로 다투도록 부추깁니다.


  갈아엎는다는 ‘혁명’이지만, 물결친다는 ‘혁명’이고, 타오른다는 ‘혁명’이지만, 들풀이라는 ‘혁명’이기도 합니다. 어느 쪽으로 보든 ‘혁명’이라고 하는 길은, 서울빛으로는 해낼 수 없습니다. 쟁기질로 갈아엎으면 씨앗을 심거나 보금자리를 지을 노릇입니다. 우글우글 바글바글 물결치는 서울이 아닌, 들꽃으로 물결치는 터전에서 삶을 지을 노릇입니다. 미움이 타오르는 서울에서 아귀다툼을 벌일 노릇이 아닌, 열매가 익도록 떠오르는 해를 품는 터전을 품을 노릇이요, 누구나 스스로 들풀로 어깨동무하는 곳에 비로소 사랑이 깨어납니다.


  곰곰이 보면 숱한 혁명가는 서울(중앙정부)로 모였습니다. 참으로 갈아엎거나 물결치거나 타오르면서 들풀로 자리를 잡으려면, 외려 서울을 떠나 시골에서 살림을 지을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리석은 허수아비나 벼슬아치나 글바치나 감투꾼을 쓸어내는 가장 쉬우면서 빛나는 길은 ‘손수짓기(자급자족)’입니다. 씨앗 한 톨을 손바닥에 얹고서 멧새를 부르고 벌나비를 부르는 곳에 슬기로우면서 사랑스레 새길(혁명)을 연다고 느낍니다. 떠난 이슬을 기립니다.


ㅅㄴㄹ


폴란드의 모국어 사용은 학생들 사이에서마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고 러시아인 교사들은 이 금지령을 강제시행하기 위해 비루하게도 밀고자가 되었다. 이처럼 편협한 탄압책은 학생들의 저항정신을 일깨울 수밖에 업었다 … 로자 집안의 자유주의정신과 폴란드민족의식, 일찌기 싹튼 절대주의에 대한 타오르는 증오와 도전적인 독립정신은 어린 그녀를 학교의 이 저항운동으로 몰아넣었다. 실제로 그녀는 단순히 가장자리에 서 있던 것이 아니라 그 운동의 선두에 있었다. (26쪽)


불타는 듯한 증오로 그녀는 자연경제에 대한 자본의 투쟁을 그려낸다. 이러한 싸움을 거는 사람들(자본가들), 즉 권력에 대한 게걸스런 탐욕을 갖고 있으면서 자신들의 문명과 문화의 가치에 대해 자만하는 자칭 ‘문화의 전파자’들은 타민족들을 억누르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의존하고 있는 고래의 문화와 생산물을 파괴하고 기아와 대량학살을 자행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을 지구상에서 쓸어없애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그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잔인하게 위선적으로 해치우면서, 자본주의의 씨가 발아해서 번창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녀는 이 잔인한 유혈의 과정을 인디아와 알제리를 예로 들면서 묘사한다. (191쪽)


혁명적인 러시아의 이후의 발전에 대한 로자의 예측은 들어맞지 않았다. 그녀는 적군(赤軍)이 계속 유지되고 위대한 10월혁명의 뒤에 ‘사회주의’라는 거짓된 상표가 붙은 관료국가자본주의가 나타날 것이라는 점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예측한 대로 소부르죠아 농민자산계급의 집단적 봉기가 반혁명을 초래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으나 결국 민주주의의 완전한 파괴와 농민자산계급에 대한 제도적인 개혁조치가 있었을 뿐이다. (358쪽)


#RozaliaLuxenburg #PaulFrolich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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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 김만중의 생애와 문학
김병국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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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숲노래 인문책 2022.11.11.

인문책시렁 249


《서포 김만중의 생애와 문학》

 김병국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1.12.23.



  《서포 김만중의 생애와 문학》(김병국,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1)을 읽으며 ‘서울대 글바치’는 일부러 글을 어렵게 쓰려 한다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그러려니 이런 글결을 흘리면서 ‘김만중 삶자취’를 엿보려 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김만중 삶길을 일군 어머니’가 더없이 돋보이는구나 싶더군요.


  곁님한테 이 책에 흐르는 줄거리를 들려주었더니 ‘벼슬자리에 순이를 안 쓴 나라’가 멀쩡하게 돌아갈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나라는 ‘순이하고 돌이가 거의 똑같이 짝을 이루게 마련’이니, 벼슬순이를 두지 않을 적에는 ‘똑똑하고 일 잘 하는 사람’이 처음부터 토막나는 꼴이거든요.


  조선 500해는 내내 벼슬돌이만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숱한 순이는 조용히 집안에 머물렀어요. 이때에 순이가 집안일만 했다면 나라는 더 빨리 무너지고 더 엉망이었으리라 느껴요. 비록 벼슬길에 나설 수 없는 순이였으나 ‘벼슬길에 나서는 어린돌이’를 똑바로 가르치고 이끈 노릇을 했기에, 이럭저럭 나라가 멀쩡할 만했구나 싶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처음부터 순이돌이가 고르게 집안을 돌보고 마을을 가꾸고 나라를 살피는 어깨동무로 나아간다면, 모든 잘못이나 말썽은 사그라들 만합니다. 돌이만 높여서도 순이만 높여서도 안 될 노릇이에요. 어깨동무하는 길을 갈 노릇입니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크게 해야 할 일이 아닌, 서로 손을 맞잡고 슬기롭게 일을 풀어내는 길로 나아가야 아름집·아름마을·아름나라·아름별을 이룹니다.


  김만중 님이 남긴 《구운몽》이나 《사씨남정기》는 김만중 님 손을 거쳐서 태어났되 혼자 썼다고 하기 어려운, 어머니 손끝하고 눈빛을 듬뿍 머금으며 자라난 아이가 삶을 가만히 밝히려는 이야기꾸러미였다고 봅니다.


ㅅㄴㄹ


그녀(김만중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지혜로워서 한 번만 가르쳐도 문득 깨달으니, 옹주(翁主)께서 늘 ‘아깝다, 그 여자가 된 것이!’” 하고 한탄했다 한다. 그녀는 나이 겨우 열네 살에 김만중의 아버지 익겸에게 시집왔다. (16쪽)


틈이 나면 문득 서책을 펴 보아 스스로를 달래고 나날이 읽기를 더욱 널리 하니 참판공은 아들 없는 근심을 거의 잊었다. 그래서 할아버지 윤신지는 말하기를, 손녀와 더불어 대화를 할 때면 매양 가슴속이 문득 확 트이는 것같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가 만일 남자라면 우리 집안에서 대제학이 나오지 않았겠느냐고 한탄했다 한다. (17쪽)


윤부인은 두 아들 때는 물론이고 그 다음 대의 손아(孫兒)들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유년시절에 관한 한, 단지 자애로운 어머니나 할머니가 아니라 엄격히 글을 가르치는 교사이기도 했던 것이다. (18쪽)


집안이 가난하여 몸소 길쌈하고 수놓아 조석 밥을 대셨으되 태연하여 일찍이 근심 빛이 없으시던 어머니, 《소학(小學)》, 《사략(史略)》, 《당시(唐詩)》를 손수 가르쳐 주시던 어머니, 베틀에서 비단을 미련 없이 끊어내어 《좌씨전(左氏傳)》 한 질(帙)을 사 주시던 어머니. (21쪽)


김만중의 열두 살 때(1648) 기록을 보면 그는 이미 이즈음에 글짓는 재주가 어지간히 성취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는 처음으로 공식적인 학교 시험이랄 수 있는 상시(庠試)를 보게 한다. (4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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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낱말
아거 지음 / KONG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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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10.4.

인문책시렁 238


《어떤, 낱말》

 아거

 KONG

 2019.10.1.



  《어떤, 낱말》(아거, KONG, 2019)을 읽었습니다. 글님 마음에 남은 낱말을 놓고서 삶을 차근차근 되새기는 이야기는 부드럽습니다. 다만, 부드러이 흐르던 글은 곧잘 턱턱 막히곤 합니다. 굳이 안 써도 될 만한 넉글한자(사자성어)를 자꾸자꾸 끼워넣는군요.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은, 그러니까 오롯이 말로 생각을 펴는 사람은 섣불리 넉글한자를 자랑처럼 읊지 않습니다. 이웃하고 말로 생각을 나눌 적에는 예부터 으레 옛말(속담)을 곁들였습니다. 옛말에는 이야기가 흐르면서 삶을 엿보는 슬기로운 눈길이 흐른다면, 넉글한자에는 뭔 소리인지 몰라 뜻풀이를 따로 해야 하면서 똑똑한 티를 내는 우쭐거리는 어깻짓이 흐릅니다.


  이웃님 누구나 말에 마음을 실어서 들려주기를 바랍니다. 이웃님 누구나 겉치레나 겉멋이 아닌 속살림을 가꾸는 속사랑으로 글을 여미기를 바랍니다.


  남한테 보여줄 글이 아닌, 스스로 하루를 되새기는 글을 쓰면 됩니다. 빈틈없는 글쓰기나 훌륭한 글쓰기나 놀라운 글쓰기나 빼어난 글쓰기가 아닌, 오로지 삶을 사랑하는 살림길을 숲빛으로 적시면서 어깨동무하는 글쓰기이면 됩니다.


  정 뭔가 남달리 밝히고 싶은 대목이 있다면, 손수 새말을 짓기를 바라요. ‘사자성어’를 ‘넉글한자’처럼 옮길 수 있고, ‘녹즙’은 ‘풀물’로 옮길 만합니다. 오늘날에는 일본 한자말처럼 ‘작문’을 하는 사람은 거의 사라지고 ‘글쓰기’를 합니다. ‘퍼블리싱’이나 ‘출판’이 아닌 ‘책쓰기·책내기·책짓기’를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은 멋이 아닌 별빛에 풀빛에 흙빛에 바람빛에 구름빛에 꽃빛을 말글에 담게 마련입니다.


ㅅㄴㄹ


좋은 사람은 신기루였다. 절대 도달하지 못할 영역. 그러다 이 사회가 요구하는 좋은 사람이란 기준이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준에 맞추다 보니 오히려 나란 존재를 소외시키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의문이 생겼다. (14쪽)


대의니, 정의니 하는 명분을 내건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구린내가 진동을 한다. (50쪽)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뜀박질로 어린이집에 당도해 아이를 챙겨 급하게 집으로 돌아온다. 해야 할 일투성이다. 밥 먹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밀린 빨래도 돌리고, 아이들 숙제 챙기고, 씻기고, 내일을 위해 또 서둘러 잠자리에 들고, 하루 일과를 돌이켜볼 여유조차 사치인 듯하다. (64쪽)


그런데 틀은 딱 그 안에서만 자유로운, 밖으로 나가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강압 또한 품고 있다. (12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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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서 - 친족 성폭력 생존자들의 기록
장화 외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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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10.4.

인문책시렁 239


《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서》

 장화와 열 사람

 글항아리

 2021.9.3.



  《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서》(장화와 열 사람, 글항아리, 2021)는 책이름 그대로 두 마음이자 두 삶을 걸어온 사람들이 갈무리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책에서 목소리를 낸 열 사람은 열 가지로 다르게 피멍이 맺혔습니다. 피멍을 낸 이들은 한집에서 살아왔습니다. 바깥에서 가싯길을 걷거나 피멍이 맺힌 이를 품을 곳이 보금자리일 텐데, 거꾸로 집이란 곳이 보금자리 구실을 못 했다지요.


  왜 주먹부터 휘두를까요. 왜 아랫도리를 응큼하게 노릴까요. 어릴 적부터 집에서 어버이하고 한또래는 무엇을 보여주거나 들려주는 삶인가요. 집이 헝클어졌다면, 마을하고 배움터는 사람들을 붙잡아 주거나 이끄는 몫을 할 수 없는가요.


  제가 나고자란 인천에서도, 오늘 살아가는 전남 고흥에서도, 둘레를 보면 노닥술집(유흥주점)이 끔찍하도록 많습니다. 시골 면소재지조차 노닥술집이 있고, 흥청망청입니다. 술 한 모금이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만, 왜 나눔술이 아닌 노닥술이어야 할까요? 왜 숱한 사내하고 벼슬꾼하고 돈바치는 어디에서 돈이 쏟아지기에 노닥술집에서 흥청망청일 수 있을까요?


  사랑으로 살림을 지어 삶을 나누는 길을 본 적도 배운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이들은 돌이순이를 안 가리고서 아랫도리를 괴롭히거나 짓밟는다고 느낍니다. 둘레를 봐요. 돌이만 우글거리는 푸른배움터는 몹시 사납습니다. 순이돌이가 함께 다니는 푸른배움터도 나날이 사납빼기로 물듭니다. 어린배움터마저 참 빠르게 사납게 뒹구는 길입니다.


  옳고그름을 가리기 앞서, ‘삶·살림·사랑’부터 차분히 돌아보고 이야기하며 그릴 수 있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이나 배움터에 밀어넣기 앞서, 왜 배우고 무엇을 가르치는지 짚을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암꽃하고 수꽃이 없으면 씨앗도 열매도 맺을 수 없는 풀꽃나무입니다. 순이하고 돌이가 없으면 사람이란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무엇을 보아야 할까요? 어느 길을 가야 할까요? 10월 1일을 ‘국군날’이라 하면서, 무시무시한 총칼을 희번덕일 뿐 아니라, 칼이랑 몽둥이를 쥐고서 저놈(적군)을 날렵하게 죽이거나 때려눕히는 짓을 ‘무술시범’이랍시고 아이들한테 버젓이 보여주는 나라입니다. 우리나라 ‘영화·연속극’ 가운데 순이돌이가 서로 사랑으로 아끼면서 새롭게 짓는 보금자리를 수수하게 들려준 적은 얼마나 될까요?


  피멍이 맺히는 까닭은 한둘이 아닙니다. 숱한 바보짓이 얼크러지면서 불거집니다. 언제나 오늘이 사랑할 때입니다. ‘살섞기’가 아닌 사랑을 할 때입니다. 그리고 순이 못지않게 돌이도 숱하게 노리개질(성폭력)을 받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싸움터(군대)에 이르기까지, 또 일터(회사)에서마저 숱한 돌이도 노리개질에 시달리는데, 순이 곁에서 돌이도 목소리를 함께 내어 이 썩어빠진 나라와 틀거리를 이제부터 뜯어고칠 수 있기를 빕니다.


ㅅㄴㄹ


다수의 사람이 내 경험을 불편하게 여기는 일은 내가 나를 ‘정상’이 아니라고 여기게 만들었다. (23쪽)


긴 침묵 끝에 내놓은 엄마의 답변은 정말 최악이었다. “그래도 가족인데 어떻게 하겠니?” (34쪽)


나는 아빠가 내가 어려을 때 한 짓을 범죄라고 일갈했다. 아빠는 그저 내가 귀여워서 했던 장난이었다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내 경험은 그저 개인의 문제일까? 사촌 오빠는 내게 왜 그랬을까? 아빠는 나한테 왜 그랬을까? 내 입을 막은 건 무엇이었을까? (46쪽)


처음 나를 강간했던 때 오빠의 나이는 고작 열네 살이었다. (89쪽)


“아빠랑 오빠가 저 성폭행하고 엄마가 아동학대 했어요”라고 말했지만 결국 내가 돌려보내진 곳은 그 가족들이 있는 집이었다. (94쪽)


성매매를 하기까지의 접근 과정이 너무 간단해서 사람들이 성매매에 대해 비난하는 것이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성폭행 가해자들뿐 아니라 방관한 어른들까지 내게는 모두 가해자와 같은 편이나 다름없었다고. (120, 121쪽)


하지만 여전한 의문은, 사회가 왜 이 극악한 범죄자들을 보호하며 피해자인 아이를 그 손에 맡겨놓는 것도 모자라, 아이가 자라서 법에 호소해도 제대로 처단하지 않고 범죄자들이 편안하게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가 하는 점이다. (154쪽)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이 부끄러워할 때까지, 정말로 죄 있는 사람이 응당한 책임을 다할 때까지, 정말 수치스러워해야 할 사람이 치욕에 떨며 고개를 들지 못할 때까지 나의 말하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199쪽)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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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복희
김복희 지음 / 봄날의책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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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9.8.

인문책시렁 233


《노래하는 복희》

 김복희

 봄날의책

 2021.9.3.



  《노래하는 복희》(김복희, 봄날의책, 2021)를 읽었습니다. 어린이노래(동요)를 가만히 생각하면서 글님 어린날하고 오늘날 어떤 발걸음인가 하는 이야기를 엮습니다. 순이로 태어나서 싫었고, 완도라는 시골에서 태어나서 싫었다고 밝히는데, 우리 스스로 순이란 몸이건 돌이란 몸이건 처음부터 싫을 까닭이 없고, 시골이건 서울이건 대수로울 일이 없습니다.


  스스로 입은 몸을 싫어할 적에는 둘레(사회·학교)에 물들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나고자라며 뛰노는 터전을 싫어할 적에도 둘레에 휘둘리기 때문이에요.


  이 나라에서는 순이로 태어나건 돌이로 태어나건 고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저마다 걸어갈 가시밭길이 다를 뿐, 순이도 돌이도 가시밭길을 걸어야 합니다. 시골살이도 서울살이도 둘레(사회·학교·정부)가 바라는 대로 맞추자면 어디에서나 똑같이 고되며 힘들다가 싫어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 나은 몸은 없습니다. 더 나은 고장도 없습니다. 그래서 더 나은 노래도 없고, 더 나은 책도 글도 말도 삶도 살림도 없습니다. 모든 몸은 다릅니다. 순이랑 돌이는 서로 다르기에 서로 가만히 보면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생각을 키워서 천천히 사랑을 어질게 키워 즐겁게 어깨동무하는 길을 스스로 찾을 만합니다. 시골도 서울도 서로 다르기에 서로 물끄러미 보면서 마음으로 만나는 생각을 가꾸어 천천히 살림을 슬기롭게 다스려 상냥하게 손잡는 길을 스스로 찾을 만하지요.


  글님은 아직 순이란 몸을 입었을 텐데, 순이로서 글을 쓰는 하루가 싫을까요? 순이가 아니었으면 글을 안 썼을 테고, 책을 못 냈을 테지요. 이제는 시골인 완도를 떠나 서울이나 서울곁(수도권)에서 살아갈까요? 그런데 시골인 완도에서 태어나면서 온갖 삶을 마주하는 하루를 보내었기에 글을 쓸 수 있을 뿐 아니라, 책을 낼 수 있습니다.


  요새는 미움과 싫음을 바탕으로 여미는 글이나 책이 수두룩합니다. 그만큼 이 나라(정부·사회)가 멍청하고 모진 속내를 드러내는 셈이면서, 미움하고 싫음이란 줄거리는 잘팔리는 줄거리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예부터 안 팔리거나 덜 읽히는 이야기가 있으니, ‘참사랑·참삶·참살림’입니다. 미움과 싫음으로 금을 그으면서 싸우는 줄거리로 여미는 글이 나쁠 까닭은 없되, 스스로 빛을 갉아먹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랑할 까닭이 없으면서, 자를 까닭도 없습니다. ‘자(잣대·틀)’를 바라보지 마요. ‘저(나)’를 바라볼 노릇입니다. 나를 보고 너를 보면서 우리가 일굴 사랑이라는 길을 헤아린다면, 아마 글님은 이다음부터는 구태여 미움과 싫음으로 범벅을 하는 글을 사뿐히 내려놓으리라 봅니다.


ㅅㄴㄹ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그랬듯이 질문을 많이 하면 주의도 받기 쉽다는 것을 체득했다. 그래서 나는 질문을 하지 않게 된 어른은 아니고, 질문을 조금 묵혀두려고 잠깐 입을 벌렸다 입을 다무는 어른이 되었다. (15쪽)


완도에 사는 동안 어린 나는 자고 일어나면 내가 남자아이가 되어 있기를 바랐다. 남자아이가 된다면 무한히 자유로울 수 있을 줄 알았다. 여자라는 것에서, 완도라는 곳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24쪽)


볼 수 있는 마음이 없거나 보려는 마음이 없는 상태가 두렵다. 여름의 파란색과 겨울의 흰색이 기를 쓰고 내게 달려들려고 한대도, 나를 사랑해 주려고 한대도 내 마음이 그것을 보지 않는다면, 보고도 안 보고 마는 상태로 나 자신을 몰아간다면, 그렇게 내 마음이 텅 비어버리면 어떻게 하지. (11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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