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란 무엇인가-부석(浮石)에서 내면으로의 여행

 

 

   어느 시인은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고 노래한 적이 있지만, 나는 늘 그 구절을 읽을 때마다 그 기차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어디로 가는 것이 가장 좋을까, 를 생각한다. 사는 게 힘들고 막막할 때, 그래서 눈물이 터져 나올 때, 나를 태우고 떠난 기차가 닿을 곳으로 어디가 좋을까를 생각해 본다. 지금껏 내가 다녀 온 여러 곳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지워지고, 다시 떠오르기를 수없이 반복하다가 점점 한 곳의 이미지가 선명해진다. 그것이 바로 내륙 깊숙한 소백산 한 자락에 자리 잡고 아름답게 늙어가는 부석사다. 그렇다, 나는 살다가 눈물이 나면 이제 부석사로 가겠다.

 

   부석으로 가는 길에는 삶에 대한 치열한 열정을 보여주는 자연이 있고, 부석사 앞에서 그 절처럼 곱게 늙어가는 아름다운 사람이 살고 있다. 또 부석사 무량수전에 올라서서는 사는 게 막막해도 막막함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듯 기막힌 반전이 펼쳐지고, 마당 한 곳에는 보는 이들을 숙연하게 하는 집념의 증거가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니 누구든 부석사에 닿으면 어느새 눈물은 마르고,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을 되뇌게 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에 스산한 찬바람이 불어온다면 주저 없이 부석사에 다녀오기를……. 

 

   가을, 부석으로 가는 길은 온통 사과 천지다. 어느 곳으로 눈을 돌려봐도 선명한 핏방울 같은 사과를 힘겹게 떠받치고 있는 사과나무들. 나무는 이른 봄부터 지금까지 제 몸으로 빨아들인 물과 빛과 바람을 오직, 제 몸에 달릴 사과를 더 크게, 더 붉게 키우기 위해서만 사용한 것 같다. 지금, 사과나무에서는 사과 말고 다른 군더더기란 찾아볼 수 없다. 왜소한 사과나무는 비틀린 자세로, 축 처진 구부정한 어깨로, 그것이 마치 숙명인 것처럼, 사과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사과나무를 보며 생겨난 엉성한 상념에 사로잡혀 구불구불한 길을 내처 달리다보면 제법 멀찍이 물러나 있던 소백산 자락의 산들이 어느새 성큼 길옆으로 다가와 선다. 딱 어릴 때 친구들과 하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술래가 된 기분이라고 할까. 앞을 보고 달리다가 잠시 고개를 돌려 보면 어느 새 산이 나를 점점 둘러싸고 있다. 이제 더는 빠져 나갈 길이 없다는 듯이 산들은 좁다란 고갯길 하나만 남겨놓고 내가 지나온 길을 덮어버린다. 길은 오직 부석으로 가는 길, 밖에 없다. 그리고 그 길의 끄트머리에 절집, 부석(浮石)이 있다.

 

   우선 여기도 버스 종점 앞은 여느 절집처럼 좀 낡은, 대개는 늙수그레한 가게 주인을 닮아 쇄락한 가게들이 드문드문 들어서 있다. 부석사로 오르는 가게 조금 위쪽 길옆으로는 앞의 가게들만큼이나 오랜 세월을 지켰을 좌판들이 옹색하게 펼쳐져 있다. 산에서 뜯은 산나물과 여기선 흔하디흔한 사과 몇 알을 놓고 할매들은 절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멀뚱멀뚱 쳐다본다. 무뚝뚝하고 투박한 경상도 할매들의 꾸미지 않은 성정(性情) 그대로다.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나는 장사꾼의 사근사근함보다 오히려 그런 할매들의 모습이 더 정겹고 편하다. 아울러 저 할매들의 주름진 얼굴과 거친 손 덕분에 세상의 누구는 먹고, 입고, 공부하고, 또, 어른이 됐을 테니 장성한 자식들의 어머니인, 저 할매들을 보면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에만 헌신하는 사과나무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부석으로 가는 길옆은 붉은 등이 달렸지만, 부석사 입구는 이제 노란 카펫이 깔렸다. 일주문부터 금강문까지 이어진 오르막길은 황금 비단길이다. 이 비단길을 가볍게 밟으면 어느 순간 부석사 깊숙이 빨려 들어간다. 부석사는 산자락 아래 지어진 절이라 건물이 들어설 평평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여러 단의 축대를 쌓아 올렸는데, 부석사로 들어가는 길은 그 축대를 차례차례 올라가야 하는 길이다. 이 길은 가팔라서 온 신경을 걷는데 집중해야 하는 길도 아니고, 평탄해서 방심하고 느긋하게 걸을 수 있는 길도 아니다. 적당히 긴장하면서 사방을 두루 살피면서 걸어야 하는 길이다. 여행이란 바로 이런 상태가 계속되는 것이 아닐까? 적당히 긴장하면서 낯선 상황을 두루 살피는 일! 어쩌면 여행은 호기심과 피곤함이 공존하는 일과라고 말해도 좋을 듯싶다.

 

   그러다 마침내 그 축대 위 맨 마지막 계단을 오르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은 세 번의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이 세 번의 감탄사 중 먼저 첫 번째는 무량수전 앞마당을 볼 때 나온다. 밑에서부터 조금씩 오르막길을 올라와 이제는 가파른 산자락으로 이어지는 오르막길 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올라선 곳에서 뜻밖에 탁 트인 넓은 공간이 나타나는 것에 대한 놀라움에서 나오는 감탄사이다. 점점 좁은 골목을 지나 막다른 골목이라 생각하고 돌아섰는데 갑자기 앞이 뻥 뚫린 광장으로 빠져나왔을 때의 시원함과 안도감이 느껴지는 것처럼 무량수전 앞마당이 바로 그런 느낌이다.

 

   둘째는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에서 나오는 감탄사이다. 앞마당에서 무량수전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건물 구조의 완벽한 비례와 균형감, 소박하지만 군더더기 없이 꼭 필요한 것만을 갖춘 장식, 겉에서 볼 때보다 더 웅장한 내부, 날아갈 듯 부드러운 추녀와 지붕…… 사실, 이 모든 걸 따로따로 살피지 않아도, 미술이나 건축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그냥 척 보면 아름다운 건축물임을 안다. 사실, 미인은 그냥 척 보면 아는 것 아닌가?

 

   무량수전을 보고 있으면 ‘날아갈 듯 부드러운 추녀는 결코 굽은 나무로 지어진 것이 아니다, 한평생 곧은 나무들의 자태라야 가장 부드럽게 앉을 수 있다’, 던 눈 밝은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 곧은 나무라야 부드럽게 앉을 수 있다는 말 앞에 나 자신을 살펴보면 늘 부끄러울 따름이다.

 

   세 번째 감탄사는 무량수전 앞마당에서 바로 걸어올라 온 길로 몸을 돌리거나,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에 기대서면 터져 나온다. 그리 높이 올라온 것 같지 않은데 내가 서 있는 곳 앞에는 내 눈에 걸리는 게 아무 것도 없다. 발을 디딘 곳이 높은 절벽 위인 듯 오직 저 멀리 태백산맥의 산줄기들만이 장쾌하게 뻗어나가고 있을 뿐이다.

 

   이렇듯 부석사 무량수전에는 기막힌 반전이 숨어 있다. 점점 좁고 가파른 길을 올라서야 너른 마당이 나오고, 곧은 나무라야 날아갈 듯 부드러운 집을 만들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야 일망무제의 상쾌함을 맛볼 수 있다. 나 혼자서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다 보니 어쩐지 이 부석사가 눈물의 강을 건너야 웃음의 바다에도 닿을 수 있다는 우리 삶의 한 모습을 묵묵히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다.

 

   부석사 무량수전 한쪽 모퉁이에는 이 절집의 이름이 된 부석(浮石)이라는 돌이 있다. 말 그대로 ‘떠 있는 돌’인데, 기록에 의하면 이 돌 아래로 실을 넣어 당기면 실이 거침없이 돌 아래로 드나든다고 한다. 이 부석은 선묘라는 중국 여자가 변한 것인데, 신라의 승려인 의상대사를 사랑한 선묘가 의상대사의 설법을 전할 곳으로 이곳 부석사를 선택하자 이미 이곳에 있던 사교(邪敎)들을 물리치기 위해서 떠있는 돌로 변한 것이라고 한다.

  

 나는 선묘라는 아가씨의 마음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정념? 집념? 집착? 신념?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든 간에, 나는 무량수전 뒷마당에서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놀랍고, 무섭고, 대단한 것인가를 다시금 생각한다. 한 사람의 마음은 천 년이 지난 지금도 저 육중한 돌을 공중에 띄우고 있지 않은가? 부석, 앞에 선 나 자신에게 묻는다. 너는 어떤 돌을 공중에 띄우려고 하는가? 어쩌면 영원히 풀리지 않을 이 질문을 담고 나는 절을 천천히 내려선다.

 

   이렇게 쓰고 보니 결국 눈물이 나서 떠나려던 여행은 어딘가로 떠나는 게 아닌 듯 같다. 여행이란 바빠서, 혹은 게을러서 들여다 볼 수 없었던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또, 일상에 치여서 마주하지 못했던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치는 것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여행이 점점 힘들어 진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나는 이 여행을 언제까지나 멈추지 않을 것이다. 생각하는 인간에게 주어진 여행의 특권을 스스로 내려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건 인간다움에 대한 포기일 테니까 말이다.

 

2013.01.08. 느티나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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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이 과제 편지는 얼마만이야? 까마득하네. 저번에 월든, 모임에 안 온 사람은 못 본 지가 한참 됐지? 기말을 앞두고 모였던 모임, 월든(데이빗 소로우, 이레) 읽고 얘기 나눈 것도 좋았는데…… 물론 책을 다 읽어온 사람이 적어서 책 이야기가 조금 피상적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하는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고 생각해. 어쩌면 하고 나면 곧 사라지고 말 이런 얘기들이 무슨 소용이 있나 싶지만, 그래도 그냥 무작정 열심히 달리는 것과 어디로, 어떻게 달리는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열심히 달리는 것은 분명 다르지 않겠어? 지금은 비슷해 보여도 스스로의 의지로 달리는 것이라면 아마 우리는 분명 더 먼 곳에 이르게 될 테니까 말이야. 아무튼 지난 모임은 어설펐지만, 소박해서 더욱 좋은 시간이었다.

 

   지금이 기말시험 전에 꿈꾸던 시간일 텐데, 어때? 행복한 순간을 즐기고 있어? 아니면 막상 꿈꾸던 시간이 되고 보니 예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는 시간이 계속 되고 있는 거야? 만약 그렇게 살고 있는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내가 슬프고도 무서운 이야기하나 해 줄까? 기말고사가 끝난 지금, 시간이 마구 흘러간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 시험 치기 전에 하고 싶었던 그 무엇을 지금 하고 있지 않은 사람은 말야, 아마 대학을 가서도 똑같은 생활을 할 거야. 우리는 대학만 가면 무엇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 두잖아? 근데 그게 막상 대학에 가면 또 쉽지가 않거든. 그건 그냥 신기루일 뿐이고, 늘 스스로에게 하는 거짓말인 셈이지. 지금 이 순간을 자기의 계획대로, 의지대로 즐기지 못하는 사람은 대학에 가서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요즘 대학생들은 시간도 많지 않다고 하더라만- 마찬가지 일거야. 그러니 시험 전에 꿈꾸었던 대로 지금은 아주 짧은 자유와 여유를 만끽하시라. 무엇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고, 네가 무엇을 하기로 했느냐에 따라 네 의지대로 지내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난 천상 잔소리꾼인가 보다.)

 

  

이번에 읽을 책은『한티재 하늘1,2』이다. 아직 책을 가져간 사람이 적어서 못 읽었지? 음, 이 책은 정말 나의 ‘추천도서 목록 넘버 원!’이다. 너희들에게 낯선-사실, 나에게도 그리 녹녹하지 않은- 경북 사투리 때문에 처음엔 몰입하기 힘들겠지만, 조금만 노력을 들인다면 금방 빨려들 만한 내용이니까 그때까지 참고 버텨줘. 아마 책의 구성 때문에 줄거리 이해하기가 그렇게 쉽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첫 번째 과제로 등장인물의 인생을 정리해 오렴.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의 삶의 여정을 좇아가 보시라. 혼자서 모든 인물을 다 할 수 없으니 좋아하는 인물 서너 명만 정리해 오면 된다. 또 소설에 읽어보니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의 삶이 짠하지. 그런데 이게 과장이 아니라 이것이야말로 이름 없이 이 땅을 살다간 우리네 조상들의 삶일 거야. 그래서 두 번째 과제는 가만히 이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면 한 없이 마음이 안타까워지는 인물을 생각해 오시라. 왜 특별히 이 인물에게 더 마음이 가는지 그 이유도 가만히 떠올리고 정리해 오시라. 세 번째 과제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역사적인 사건 조사하기. 민초들의 일상적인 삶은 역사적인 사건 때문에 영향을 받기도 하잖아. 그러니까 그런 사건의 배경이라든가, 결과를 중심으로 소설의 배경이 되고 있는 사건을 조사해 오면 된단다.

 

   우리 모임은 12월 31일(월요일) 오후 3시부터 시작할거야. 모이는 곳은 3학년 4반 교실에서…… 그날은 올해 마지막 날이니까 오는 사람에게 내가 간식 쏘겠어. 특별한 일이 없으면 생활나누기(방학 계획, 들어 보려구) 하고 책 읽은 얘기 나누고 과제 발표하고 그러면 아마 4시나 4시 반쯤이 되지 않을까? 그 때쯤 마칠 예정이니까 그 날 자기 일정에 참고해라.

 

   근데 우리 활동집 만들려면,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해야 하겠지? 일단 자기 자료부터 꼼꼼하게 정리해 두는 게 준비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이것만 잘 해두면 자료 모아서 정리하는 것이야 문제도 아니겠지! 그럼 모두의 건투를 빈다.

 

겨울방학에 조금 더 자라려고 애쓰는, 느티나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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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이 화요일, 지난 번 모임하고 벌써 일주일이 훌쩍!(아니 이주일이 지났나?) 이번 동아리 책은 이미 나갔으니 재밌게 읽고 있을 거고……이제 이 숙제글만 받아들면 너희들은 한 동안 이 종이 잡고 끙끙대야 할지도 몰라. 어쩌면 의욕이 넘치는 우리 동아리 친구들인지라 토론대회, 영어심화동아리, 특강 등 이것저것 할 일도 많은데, 이 숙제까지 겹쳐서 좀 짜증이 날지도 모르지. 그래도 이렇게 한 고비 한 고비 넘어가다가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어느새 우린 꽤 높은 곳에 올라와 있을 거야. 느리게 천천히, 그렇지만 꾸준히 함께 가자.

 

   이쯤에서 다시 한 번 우리 모임에서 강조했던 걸 떠올려 볼까? 먼저 듣기 얘기를 했었지. 듣기는 모든 훌륭한 대화의 시작이라고! 또 활동 자료를 정리하는 건 미루면 자료가 쌓이고, 쌓이면 이게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니까, 다시 미루고…… 악순환이 반복되는 거다. 모임이 끝난 다음날까지 틈을 내서 자료를 정리하는 게 즐겁게 동아리 활동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단다. 처음 간절했던(?) 마음으로 지금껏 달려오고 있니? 동아리 활동에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 이것도 자기 발전에 아주 큰 영향을 준단다. 나를 위해 용기를 내서 도전해 보는 것, 그게 무엇이든, Why not? [잔소리를 여기까지!]

 

   이번에 받은 책 ‘연을 쫓는 아이’ 어떻게 읽었나? 두껍다고 부담스러워하던데, 무척 흥미진진하지? 그리고 감동도 있고? 아, 성장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진정한 용기란 무엇일까?…… 놀라운 반전과 흥미로운 사건들을 따라가다 문득 이런 질문들을 던지는 ‘나’를 발견하지는 않았을까? 질문 하나하나를 곱씹어보면 쉬운 질문이 없을 것 같다만, 이 책을 읽은 우리는 정직하게 나에게 질문을 던져야 할 것 같다. 1. 내가 ‘성장’했구나, 아니면 ‘어른’이 되고 있구나, 하고 느낀 적이 있다면 언제 무엇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나? 구체적인 경험을 써 보자. 2. ‘아미르’가 보여 준 ‘용기’처럼 누구에게도 보이기 싫은 상처가 있(었)다면 이번 기회에 정면으로 마주 볼 수 있는 용기를 내 보자.

 

   <연을 쫓는 아이>는 유년시절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평생을 죄책감에 실렸던 한 소년이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속죄하는 과정을 통해 용서의 치유력을 보여주는 가슴 뭉클한 성장 소설이다. 소년 ‘아미르’로부터 시작된 하산의 비극은 아프가니스탄의 상처 많은 역사와 맞물리면서 점점 더 커지고 끝내 그의 아들 ‘소랍’에게까지 고통을 준다. ‘아미르’는 또한 아무에게도(심지어 아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평생 동안 하산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상처는 감추고 외면할수록 점점 더 깊어져 큰 아픔을 주는 법이다. 상처를 아물게 하려면 그것을 꺼내 보이고 아픔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버지의 비밀과 하산의 소식에 망연자실하던 ‘아미르’는 소랍을 만나기 위해 카불로 떠나고, 하산에 대한 죄책감을 하산을 꼭 닮은 ‘소랍’을 통해 풀어낸다. 그렇게 ‘아미르’와 ‘하산’은 ‘아미르’와 ‘소랍’으로 이어지고, 상처 입은 영혼들은 서로를 향한 '용서'와 진심이 담긴 '이해'로 더디지만 조금씩 그 상처를 치유해나간다. 그래서 먹먹하게 이어지는 절망 끝에 피어나는 한 줄기 희망은 더욱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우리 모임은 언제더라? 음,15일이로군. 근데 그 날이 우리 학교 토론대회가 있는 날이잖아? 우리 동아리 친구들이 결승에 올라올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선 내가 토론대회 결승 진행을 맡게 돼서 모임이 어렵겠네. 그래서 모임을 수요일이나 금요일로 옮기는 게 좋을까? 아니면 15일은 건너뛰고 22일에 모임을 할까? 전에도 이 얘기했던 거 같은데, 아닌가? 그 때 어떤 결론이 났지? [이 내용에 대한 결론은 내일 박물관에 가면서 의논해 보자구!] 음, 생활나누기도 해야지? 생활나누기, 주제는 (한 3시간 동안 고민하다가) 올해가 가기 전에 내가 꼭 이루고 싶은 일, 나한테 일어났으면 하는 일,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써 오기. 이런 건 상상하면 즐겁잖아? 맘껏 상상해 오시라, 그러나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도 하시라!

 

11월 6일, 나날이 더 좋은 날, 느티나무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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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학년 O반, 학부모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10월 23일입니다. 개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지난 8월말에 편지를 드린 이후로 딱 두 달이 지났습니다. 그 때만 해도 한창 여름이었던지라 짧은 소매 옷을 입고도 땀을 쏟았었는데, 오늘은 얇은 점퍼를 입고 있어도 쌀쌀하게 느껴집니다. 뒤돌아보면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갑니다. 지난 2월말 이 녀석들과의 첫 만남을 앞두고 설레었던 게 며칠 전 같은데, 이제 보름 후면 이 녀석들이 수능시험을 봅니다.

 

   지난 9월에는 수시 지원 기간이라 조금 바빴습니다. 우리 반에는 수시 지원을 안 한 학생도 있지만, 대체로 3-6번 정도 현재 자신의 내신 성적과 작년도 입시결과를 비교해 보면서 지원을 다 했습니다. 아직 정시를 남겨둔 상태라 조금 욕심을 부리기도 했는데, 결과가 어떨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으니 지금은 그저 차분하게 결과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요즘 조금씩 수시 모집에 대한 결과가 발표되고 있습니다. 필요하시면 지원한 대학교의 홈페이지에 입시일정(합격자 발표일)이 자세히 나와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학생이 수시모집에 지원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 기간에 학교로 오신 학부모님을 만나 뵙고, 인사를 드리고, 진학상담도 하고, 또 학부모님들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통해 제가 잘 모르던 학생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굳어진 제 생각을 교정할 수 있는 이런 기회가 학년 초에 있었더라면 더욱 좋았겠다,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고, 남은 기간만이라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애를 써야하겠습니다.

 

   요즘은 학교가 비교적 조용합니다. 그 많던 ‘병-조퇴’ 학생들도 이제는 수능이 코앞이라 그런지 많이 줄었습니다. 최근에는 자습시간에 집중력도 아주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수능 마무리 전략과 건강관리입니다. 평소에도 자주 강조하는 것이지만, 너무 늦은 시간까지 깨어있지 말고 일찍 잠들고 마무리 공부는 학교에서 할 수 있도록 가정에서 관리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집에서 늦게까지 깨어서 공부하거나 다른 일을 하면 다음날 반드시 학교에서 자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막바지에 이르면 점점 자기의 부족한 점이 눈에 더 많이 띄어서 조급한 마음에 밤에 무리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그 여파가 며칠을 가기도 합니다. 이제는 수능 시험 시간에 맞춰서 낮에 최대한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몸 컨디션을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가능하면 늦게 잠들지 않도록 가정에서 신경 써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평소의 환경을 바꾸려는 유혹에 빠지기 쉬운데 경험상 별로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익숙한 환경에서 마음을 다잡는 것이 훨씬 공부에만 집중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는 건강관리입니다. 감기라도 걸리면 컨디션이 나빠지고, 집중력도 떨어집니다. 얼른 낫기 위해서 약을 먹으면 졸려서 또 제대로 공부하기도 힘듭니다. 그래서 이 소중한 시간을 며칠씩 허비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학교에서도 무리한 일정 없이 평소 하던 대로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울러 남은 시간까지 꾸준히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격려 많이 해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지금까지 해 오던 자습은 11월 3일(토)에 마무리합니다. 11월 7일에야 본인이 어느 학교에서 시험을 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전에 학교에서 수험표를 받고, 오후에는 시험장 학교에 가서 교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8일에는 도시락을 준비해서 8시까지 해당 고사장에 입실해야 합니다. 수능 이후에는 지원한 대학교별로 면접고사가 이뤄지는 한편, 학교 일정에 따라 대학교 탐방 등의 체험활동을 합니다. 수능시험 결과는 11월 28일(예정)에 나옵니다. 이 때 대부분의 대학교에서 수시모집 최종 결과를 발표합니다. 이후 12월 초에 다시 정시모집 지원 상담을 합니다.

 

   부모님께서도 오래 동안 애 많이 쓰셨습니다. 저도 마지막까지 학생들과 함께 이 시기를 견뎌보겠습니다. 늘 따뜻하게 대해 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평안하시길 빕니다.

 

 

2012년 10월 23일, 3-O반 담임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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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목요일 첫 번째 음악실 모임은 어땠나? 역시 사연이 있는 노래는 언제 해도 재밌던데. 우리 모두는 비록 어느 한 순간의 마음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자기 마음을 살짝 보여줄 수 있다는 용기를 가졌다는 게 참 좋아 보였어. 꾸미고 감춰서 ‘착한’ 네 마음이 아니라 날 것 그대로의,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진심이 담긴 네 마음을 엿볼 수 있었던 그 순간을 통해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노래를 잘 부르는 것도, 못 부르는 것도 중요하지 않지. 단지 네가 고른 그 노래를 끝까지 부르는 것만 중요할 뿐이다. 흐지부지, 말장난으로 흐르지 않고 진심을 말해 준 네 이야기와 노래를 부를 때 살짝 떨렸던 너희들 목소리가 아마 오래 기억될 거야. 시간이 한참 지나 이 모임을 추억할 때면 우리의 지난 목요일의 장면도 분명 선명한 기억의 한 장면으로 떠오르겠지?

 

   시 낭송도 그 전까지는 어떻게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많았는데, 내가 이야기를 꺼내려는 그 때 그 순간에 반짝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약간 쑥스럽고 어색한 상황이었는데도, 모두 자기 역할을 잘 해서 무대를 바라보는 사람이 재미도 있었다. 더구나 낭송자와 진행자의 역할을 번갈아 맡은 경험도 처음에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해 놓고 보니 아주 좋은 결과였던 거 같다. 우리 동아리 회원들은 모두 무대 체질? 아니면, 평소에 토크쇼를 너무 많이 봐서? 아무튼 보는 나는 재미있었는데 너희들에겐 어땠는지 잘 모르겠네.

 

   아무튼 그렇게 나름 재미있는 모임은 지나고 이제는 다음 모임 이야기를 해 봐야겠다. 일단 날짜부터 정해야 하는데, 2주 후라면 10월 4일인데 아무래도 시험이 며칠 남지 않아서 자율학습을 몽땅 빼기가 부담스럽지? 우리 그럼 27일에 바로 모임을 할까? 책은 이미 오래 전에 줬으니 슬슬 읽고 있는 사람도 있을 거 같은데…… 어때? 괜찮을까?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는 이제 막 앞부분을 읽고 있겠지? 어때, 기대했던 대로 재밌는 거야? 아니면 벌써부터 지루해서 실망스러운 건가? 아니면 어려운 개념 때문에 읽는데 고생하고 있나? 음, 보통의 고등학교 2학년 정도면 그리 쉽게 읽을 수 있는 수준의 책은 아니고, 좀 어려운 게 당연할 듯하다. 그러니 몇 쪽 읽고 어렵다고 책 덮지 말고, 영화 한 편씩 나눠져 있으니 어려운 부분은 넘기고, 흥미 있는 영화가 나오는 부분이나 읽기 편한 철학의 개념이 소개되어 있는 곳부터 골라 읽어도 좋다.(그렇게 해서 결국은 다 읽어야겠지?) 작년에 2학년 학생들에게 이 책 중에서 슈렉을 소개한 부분을 읽히고, 영화 앞부분만 조금 봤던 기억이 난다. 애들 좋아하더라. 책을 읽고 보는 영화는 또 다른 느낌이라고 하더라구. 아마 우리의 이번 모임도 분명 그럴 거야.

 

   숙제는 (늘 똑같아서 평소엔 숙제에 넣지도 않았지만) 1)책 읽은 느낌 말하기. 그냥 모임시간에 퍼뜩 생각난 거 말고 책을 다 읽은 후 덮으면서 들었던 생각이나 느낌을 정리해서 말하기로 하자. 2)책을 읽고 난 다음에 보고 싶은 영화 선정하기. 이 책에 소개된 영화중에서 어떤 영화를 보고 싶은지,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써 오렴. 3)내 인생의 영화 소개하기. 내가 본 영화중에서 친구들이 꼭 봤으면 하는 영화를 골라서 추천 이유 함께 쓰기, 이상 세 가지이다.

 

   이번 모임은 여러 가지로 좀 애매한데 같이 영화를 보고 얘기를 나누려면 숙제 발표할 시간이 없을 것이고 생활나누기도 시간을 내기가 어려울 것 같다.(이번에도 아주 멋진 생활나누기 숙제를 준비했었는데, 이건 다음에 써 먹어야겠다.)

 

   우리는 누구나 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 강한 척, 아무 문제가 없는 척하며 살고 있지 않나? 그런데 너희들도 조금씩 느끼겠지만 사실 사는 게 어디 꼭 그렇기만 하나? 물론 정도의 문제겠지만, 항상 괜찮고, 늘 강하고, 전혀 문제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는 거, 그냥 그렇게 사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거 조금씩 느끼고 있을 테지. 단 하나 주의할 점! 나만 불행하고, 아프고, 괴롭다고 착각하지만 않으면, 툭툭 털어낼 수 있는 걸 내 감정에 빠져서 허우적거리지만 않으면 된단다. 그러고 보면 이 잔소리의 결론은 자기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본다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이라고 볼 수 있겠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응시하는데 무척 유용한 수단이 책읽기란다. 그래서 책 읽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믿는다.(잔소리는 고질병!)

 

-9월 24일 아침에, 느티나무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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