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07-202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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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서에서 오수까지 어른 군내버스비는

400원입니다

 

운전사가 모르겠지,하고

백 원짜리 동전 세 개하고

십 원짜리 동전 일곱 개만 회수권 함에다 차르륵

슬쩍, 넣은 쭈그렁 할머니가 있습니다

 

그걸 알고 귀때기 새파랗게 젊은 운전사가

있는 욕 없는 욕 다 모아

할머니를 향해 쏟아 붓기 시작합니다

무슨 큰일난 것 같습니다

30원 때문에

 

미리 타고 있는 손님들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운전사의 훈계 준엄합니다 그러면,

전에는 370원이었다고

할머니의 응수도 만만찮습니다

그건 육이오 때 요금이야 할망구야, 하면

육이오 때 나기나 했냐, 소리치고

 

오수에 도착할 때까지

훈계하면, 응수하고

훈계하면, 응수하고

 

됐습니다

오수까지 다 왔으니

운전사도, 할머니도, 나도, 다 왔으니

모두 열심히 살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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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서 :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

오수 :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

 

지난주 내내 그리고, 주말까지 출제하시느라 애 많이 쓰셨습니다.

아직 출제 미완성이신 선생님, 조금만 더 힘내셔서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 열심히 살고 있는 거 같습니다.

그렇지만 건강도 챙기시고,

이번 주는 화살같이 빨리 달리는 봄,

넉넉하게 즐기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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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06-2023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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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데리고 다녀오겠습니다

 

지루한 학교에 바퀴를 달아 투어 버스를 만들자 신나게 달리면서 수업을 받고 쉬는 시간엔 창밖으로 손을 흔들어 주자 시험지따윈 창밖으로 휘휘 휘날려 주자 때로는 일 층 이 층 삼 층 사 층 학교를 줄줄이 떼어 줄줄이 사탕처럼 줄줄이 이어 기차를 만들자 칙칙폭폭 학교 기차를 타고 바다에 닿자 신발을 벗어 던지고 바닷가를 달리자 짐칸에 접어 싣고 온 운동장을 펴서 기구를 만들어 띄워도 좋겠지? 봄과 가을엔 학교에 제트 엔진을 달아 아프리카로 소풍을 다녀오자 목 짧은 기린을 만나면 숨바꼭질을 잘하겠다고 격려해 주고 사슴을 무서워하는 사자를 만나면 초식도 나쁘지 않다고 등을 토닥여 주자 돌아오는 길에는 아프리카 친구들에게 학교 한 칸 내어 주고 가뿐하게 오자 야 너, 수업시간에 집중 안 하고 계속 멍 때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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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글을 읽으니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수업 시간에 혼자서 이런 상상을 하는 학생이 있으면 귀여울 것도 같습니다.

(현실에서 내 수업시간에 저런 학생이 있으면 속이 터지겠지만요.)

 

이 글을 읽고 생각해 보니,

어쩌면 학교를 지루하게 느끼는 건 학교 안에서 많이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아무래도 학생들은 수업시간에는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하니

마음도 지치고 몸도 힘든가 봅니다.

 

그런 아이들이 교사(校舍)밖에서는 표정이 달라지는 거 같아요.

아무 일이 없어도 넉넉하게 움직일 수 있는 곳이면,

강맥원이든, 운동장이든, 목련관이든 어디든 좋을 듯 합니다.

 

이번 주 날씨가 좋다면,

아이들에게 잠깐이라도 산책 자주 다녀오라고 권해 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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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05-2023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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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오면

마른 들판을

파랗게 색칠하는 보리처럼

나도 좀 달라져야지.

 

솜사탕처럼 벙그는

살구꽃같이

나도 좀 꿈에 젖어

부풀어 봐야지.

 

봄비 내린 뒷날

개울을 마구 달리는

힘찬 개울물처럼

나도 좀 앞을 향해 달려 봐야지.

 

, 4월이 오면

좀 산뜻해져야지.

참나무 가지에 새로 돋는 속잎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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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밖 세상은 참 시끄러운데,

그에 따라 마음은 또 어지럽고 복잡한데,

이렇게 맑고 예쁜 글을 읽고 있는 것이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도 이런 글에 눈길이 가는 것은

일상에 지쳐 딱딱한 마음이 말랑말랑해지기를,

생활에 치여 메마른 마음이 찰랑찰랑해지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지나간 3, 어떠셨는지요?

새 학교 오는 길에 적응하시느라,

새로 만난 아이들과 눈맞춤하시느라,

새로 앉은 옆자리 선생님과 함께 일하시느라, 애 많이 쓰셨습니다.

 

4월이라 그다지 달라질 것 없는 날들이겠지만,

그래도 ‘4월에는 더 좋아져야지’, 라고 새마음으로 함께 한 달 살이를 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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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04-2023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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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살아온 나날을 누가

어둠뿐이었다고 말하는가

몸통 군데군데 썩어

흉한 상처 거멓게 드러나고

팔다리 여기저기 잘리고 문드러져

온몸이 일그러지고 뒤틀렸지만

터진 네 살갗 들치고

바람과 노을을 동무해서

어깨와 등과 손끝에

자잘한 꽃들 노랗게 피어나는데

비록 꽃향기 온 들판을 덮거나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지는 못해도

노란 꽃잎 풀 속에 떨어지면

옛얘기보다 더 애달픈

초저녁 풀벌레의 노랫소리가 되겠지.

누가 말하는가 이 노래 듣는 이

오직 하늘과 별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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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봄, 세상은 화려한 꽃천지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수십 년을 같은 자리에서 꽃을 피워 온 우리 학교의 꽃나무들도

올해 또 새로운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지켜보는 이 없어도,

매번 보는 이 달라져도,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해마다 꽃철이면 저마다의 꽃을 피우는

학교 곳곳의 꽃나무들로부터 배웁니다.

 

좋은 봄날, 이번 주는 사진 찍는 이벤트가 있다지요? 인생의 가장 젊은 날,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과 좋은 사진 한 장 남겨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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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03-2023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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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滿)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1942.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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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윤동주

1917.12.30. 만주 북간도 용정 출생

1945.02.16. 큐슈 후쿠오카형무소 사망(27)

 

어쩌다가 윤동주 시를 읽으면

마음이 맑아지다가, 서늘해지다가, 따뜻해지다가, 안타깝다가, 부끄러워지기도 합니다.

시 한 편이 주는 울림이 참 큽니다.

 

윤동주처럼 시를 남긴 사람도 있겠지만,

자신의 삶을 단 한 줄의 글도 남기지 못한 사람이 대다수입니다.

요즘,

윤동주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고난의 시간을 온몸으로 버텨온 사람들을 위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시 묻고 있습니다.

 

--, 참회록을 써야 할 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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