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라이온 16
우미노 치카 지음, 서현아 옮김 / 시리얼(학산문화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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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에 콩 나듯이 책이 나오지만 그래도 재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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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좌파생활 - 우리, 좌파 합시다!
우석훈 지음 / 오픈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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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의 고1 때다. 학부모총회가 있다고 해서 부지런히 학교 강당에 도착하니 너무 이른 시간인지 아무도 없었다. 기다리면서 책을 읽으려고 편한 자리를 골라 앉았다. 책을 읽는 동안 주변이 조금씩 웅성거리기 시작하더니 이어 국민의례가 있겠습니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서둘러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총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검은색 옷을 입고 있는 거였다. 총회에 드레스 코드라도 있었나? 당황해서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대박, 총회 온 사람들 옷이 전부 블랙, 나만 빨강” “괘안음. 왼쪽에만 안 앉으면” “왼쪽? ?” “그럼 좌빨이잖아” “, 나 젤 왼쪽줄에 앉았는데?” “ㅋㅋ 완전 좌빨 인증이네우연히 왼쪽에, 우연히 나 홀로 빨간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본의 아니게 완전 좌빨이 되어 버린 그 날, 생각했다. ‘좌빨? 내가? 그래서, 뭐 어쩌라고!’

 


좌파’, ‘우파’. 도대체, 언제부터, 나뉘게 되었을까. 정치가 좌우파로 나뉘게 된 것은 1789년 프랑스 혁명 때였다. 혁명 중 소집된 국민의회에서 의장석을 중심으로 당시 다른 주장을 하는 세력들이 좌우로 앉았는데 이때 온건 개혁세력이 오른쪽에, 급진 개혁세력이 왼쪽에 앉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좌우파는 이념이나 계급에 대한 개념이 아니다. 사회파 내부에 도 좌파와 우파가 있고 부르주아 진영에도 좌파와 우파가 있다. 결국 좌우는 어떤 사안에 대한 태도와 관련된 개념이라는 것이다.

 


붉은 장식선과 커다란 붉은 글씨로 가득한 <슬기로운 좌파 생활>은 제목에 이어 우리, 좌파합시다!’란 부제에까지 좌파를 강조하고 있다. 대놓고 좌파에 대해 이야기하겠다고 공표한 느낌이랄까? 아니나다를까 페미냐?”는 질문에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좌파인데요.”

 


좌파! 그래, 빨갱이다. 평등주의자, 이갈리테리언이다, () 이갈리테리언, ‘모든 사람들은 동등하게 중요하며, 삶에 있어서 같은 권리와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나는 좌파로서, 이갈리테리언으로서, 남녀평등 정도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나의 믿음이다. 좌파에게 남녀평등은 기본이다. - 10

 


이어 저자는 진보, 보수를 말한다. ‘보수가 자본주의를 지키고 좌파가 그 자본주의의 문제를 공격하는 것이 좌파인데, ‘보수에 대한 반대에서 출발한 것이 진보라고. 흔히 좌파는 진보, 우파는 보수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거다. 그런가 싶다가도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나와 같은 독자를 염두한 것인지 진보/보수, 좌파/우파, 이 네 개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고르게 된다고 하지만 선명하게 와닿지 않는다. 사안에 따라 각자 자신이 무엇을 것을 추구하고 가장 우선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깊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고 나면 자신의 성향이 어떤지 실감하겠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정치와 손잡은 언론의 왜곡된 프레임에 갇혀 오랫동안 살아온 영향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일제강점기 시절 총독부에서 하는 일에 거부하는 것이 나라 구하는 방법이라고 여겼던 것처럼, 정부 여당에 반대하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고 믿는 20대가 점점 늘어날 것이다. - 36.


 

한국에서 좌파가 사라지면 은밀한 토건과 음습한 거래에서 진보와 보수가 대동단결하는 지점이 너무 많아진다. - 40.


 

저자는 한국의 좌파는 현재도 소수에 불과한데 앞으로 더 줄어들어 멸종될 가능성도 높다. 특히 20대 좌파의 심각성을 본문 곳곳에 강조하고 있다. 저자의 우려와 걱정에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론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좌파의 자리가 절대적인 고정석인가? 그저 왼쪽에 앉아서 좌파가 된 것이다. 즉 인간은 누구나 동등하고 평등하기에 남녀를, 세대를 갈라 서로를 향해 맹렬히 비난을 쏟아내는 현실에서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세력이 좌파일텐데, 그렇다면 좌파, 우파는 상대적인 것이다. 즉 어느 시대, 어느 세대에서도 좌파는 존재한다.

 


디바이드 앤 룰’, 영국이 인도를 통치할 때 인도 국민끼리 서로 분리시켜서 자기들끼리 싸우게 했던 대표적 식민지 통치 방식이다. 한국의 군사 정권도 이런 방식을 사용했다. 경상도와 전라도에 차별을 두는 것은 야비한 방식이지만, 독재 시대에는 총독부 시절부터 익숙한 장치들이 한국에서도 사용되었다. - 56

 


게다가 한국의 좌파는 진보와 분리된 길을 걸어갈 거라니 그게 가능하기는 한가? 우리나라의 모든 좌파들이 저자처럼 자신이 좌파라는 걸 밝히지 않고 살아가고 그래서 어떤 정당이나 시민단체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일상 속에서 생활 좌파로만 살아갈 거라고 하는데. 좌파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삶을 현실에 구현하기 위해 정치든 시민단체든 어떤 형식으로든 나서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어떻게 확신하는 거지? 저자가 주장하는 논리적 추론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 않나 싶다. 또한 대선 후보경선 과정에서 민주당의 결선투표를 언급하고 있는데 저자가 과연 민주당의 해당 당규를 확인하기는 했을까? 의문이 든다. 저자가 주장하는 논리적 추론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 않나 싶다.

 


이 새로운 시대에 좌파는 어떻게 태어날까? <자본론>1876,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자본주의 공업 시대가 완전히 자리를 잡으며 그 모순이 첨예화되던 순간에 탄생했다. 한국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는 디지털의 전면화가 유토피아를 열어주는 것만은 아니다. 크고 작은 문제가 계속해서 만들어질 것이다. 어쩌면 다음의 <자본론>은 텍스트로 된 책이 아니라 메타버스 안에서 카피레프트 공동체가 만들어낸 작은 약속의 형태가 될 수도 있다. - 212

 


대학입학 이후 줄곧 좌파로 살았다는 저자는 좌파는 멸종 위기에 처했다는 한국의 좌파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사실 엄혹한 군사정권 아래에선 좌파는 입에 담기도, 가까이해서도 안 되는 단어였지만 21세기에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좌파냐, 우파냐 선을 긋고 구분하기보다 우선 지금 우리 앞에 놓여진 상황, 여건, 사안을 하나하나 곱씹어보는 시간을 가져봐야 한다.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가 과연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 다음 결정하면 된다. 어떤 방식으로든 자리에서 떨치고 일어나서 행동을 하거나 아니면 생활 좌파로 남거나.

 


그럼에도 한국에 좌파들은 여전히 등장한다, 누가 그들을 이끌고 지도할까? 그런 건 없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하자고 해서 하는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 모순, 특히 한국 자본주의 모순 속에서 튀어나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참지만, 참기 싫은 사람들도 등장하기 마련이다. - 297.

 


때론 한 장의 사진이 모든 걸 말해준다. 5년 전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토론회에서 장애학생 부모들이 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 앞에 무릎을 꿇고 읍소했던 모습이 SNS로 퍼지면서 사회에 특수학교 설립의 필요성을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다행히 해당 특수학교는 2020년에 개교했다) 최근 가장 인상적인 사진은 자신들의 이동권을 보장해달라며 지하철에서 시위를 하는 장애인의 모습이었다. 혼잡한 지하철에서 시위를 한다며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었고 곧 집권당이 될 국민의힘 당대표는 오히려 경찰개입을 주문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들과 함께 연대하겠다는 시민들이 부쩍 늘었다는 보도를 접했다. 만약 이런 상황을 내가 마주했다면 어땠을까. 나의 불편함을 피력할 것인가 우리 사회가 정의롭게 나아갈 수 있도록 움직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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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미래로 흐른다 - 빅뱅부터 현재까지, 인류가 탐구한 지식의 모든 것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이승희 옮김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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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과 출신에 자연과학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과학책을 즐겨 읽지는 않았다. 사회현상과 과학이 교차하는 내용을 다룬 책이나 과학계에서 이슈가 된 몇 권의 책을 읽은 것이 고작이었다. 더 절망적인 건 그중에서도 완독한 책은 겨우 절반 정도에 그친다는 것. 호기심에 집어 들었던 많은 과학책이 읽다가 덮은 상태로 오래오래 이어졌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속에 숨겨진 과학, 물리학의 이야기를 담은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는 조금씩 꾸준히 진도가 나가고 있지만 새해 들어 재도전한 <코스모스>는 초반에 또다시 멈춰버렸다. 아직은 포기한 게 아니니 좌절하기엔 이르지만 어느 정도는 의기소침해질 수 밖에 없다. 그런 가운데 한 권의 책을 집어들었다.


<과학은 미래로 흐른다>의 첫인상은 ‘작고 가볍다’. 한 손에 잡힐만큼 책 사이즈가 작고 본문 페이지가 260여쪽 정도로 분량면에선 부담이 적다. 하지만 [빅뱅에서 현재까지, 인류가 탐구한 지식의 모든 것]이란 부제만 보면 또 마냥 가벼운 책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빅뱅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문명과 과학 발달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을 이 책에 다 담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틀림없이 과학사의 중요한 핵심만을 추려서 담았을테고 그것은 곧 책의 모든 내용이 쉽지 않으리란 걸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일테니까 말이다.


책은 7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성서가 천지 창조를 7일에 걸쳐 설명’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본문의 내용은 ‘빛과 에너지’ ‘우주 속의 지구’ ‘생명에 대한 시산’ ‘호모 사피엔스와 인간 게놈’ ‘역사의 변혁’ ‘인간과 기계’ ‘예술을 위한 시간, 혹은 과학에서 진리로’라는 소주제를 보면 각 챕터의 내용이 개별로 존재하면서도 서로 연관관계 속에 이어지고 있다.


부담없이 가볍게 다가선 책읽기는 몇 장 넘기지 않아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과학상식이라고 하기엔 내용이 깊었다. 이를테면 가장 먼저 수록된 ‘빛과 에너지’에서 단순히 빅뱅을 넘어선다. 태양빛이 식물의 엽록소를 통해 흡수해서 양분과 에너지를 얻는 대목은 학창시절에 배웠지만 그냥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가만 생각해보면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빛이 에너지가 되고, 빛이 전기로 변하는데 단순하게 생각해봐도 신기한, 기적에 가까운 그 과정을 왜 한번도 의문을 품지 않았을까. 뿐만 아니라 물리학에 낭만주의가 등장할 줄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혁명을 다룬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몇 년 전에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을 읽을 때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는 표현을 접했는데 왜 그런지 단순히 사고의 혁신이 전부인가 했는데 본문에 그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반가웠다.


명절을 앞두고 본가로 향하면서 <과학은 미래로 흐른다>을 가방에 챙겨 넣었다. 명절음식 장만하는 과정은 분주함과 지루함 사이를 수차례 반복하는 것이기에 틈틈이 읽을 생각이었다. 또 명절 전날 불면의 시간에 읽으려고 간이 북스탠드도 챙겼는데 이번 명절에 가장 잘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책에 언급된 과학의 역사를 극히 일부밖에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후 과학서적을 읽을 때 <과학은 미래로 흐른다>는 좋은 마중물 역할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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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필로소피 - 아침을 바꾸는 철학자의 질문
라이언 홀리데이.스티븐 핸슬먼 지음, 장원철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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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이었다. 우연히 접한 계간지에서 서양인문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을 알게 되어 참가하게 되었다. <일리아스> <오뒷세이아>를 시작으로 제목만 알고 있거나 이름만 익숙한 철학자들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렵지 않게 읽은 책도 있었지만 도무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가늠하지 못해 혼동의 도가니 속을 헤맨 책들도 많았다. 햇수는 착착 진행됐지만 그만큼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 철학개념도 쌓여가는 것 같았다. 언제 어느때든 다시 돌아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언제나 생각으로 그쳤다.


 

<데일리 필로소피>가 출간되었을 때 반가웠다. 매일 조금씩, 철학의 주요한 문장, 문구를 만날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저자인 라이언 홀리데이가 <스토아 수업> <에고라는 적>이라는 책을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사상가라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책의 구성은 단순하다. 1년을 3개월씩,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철학자처럼 아침을 시작하는 법, 나를 지키면서도 단단하게 관계 맺기, 지치고 불안한 마음에 용기를 더하는 말들, 매일 저녁 나의 하루를 의미 있게 만드는 질문들) 365일을 날짜별로 철학의 요점이나 명언 등을 선별해서 수록하고 그 아래에 저자가 해당 글에 설명을 더해놓았다. 분량도 하루 한 쪽이어서 읽는데 부담도 없다.


 

작년에 매일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을 읽고 필사했는데 <데일리 필로소피>도 그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데일리 필로소피>만의 독특한 점은 <인생독본>은 톨스토이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선현들의 글을 모아놓았다면 <데일리 필로소피>는 스토아 철학자들의 글, 스토아 학파 사상가들의 정수를 뽑아서 수록해놓았다는 것이다.


 

정념과 감정, 욕망, 욕구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이성을 중시하고 금욕적으로 살면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고 더 나아가 불안이 없는 최고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스토아학파. 그 철학을 평생 일상에서 실천하며 살았던 세네카,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그들이 남긴 말과 글, 철학은 21세기를 살아가는 내게도 깊은 울림으로 남았다.





 

2022년엔 매일 아침 <데일리 필로소피>를 읽고 필사하고 있는데 이 책과의 만남이, 책 속 철학자들이 전하는 질문이 내 삶의 목적을, 방향을 찾아가는데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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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문화탐방기 - 마을의 소년들
지현 지음 / 이프북스(IFBOOKS)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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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 페미니스트. 최근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이 거론되고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만 난 여자임에도 아직 이 페미니스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검색을 해보니 페미니즘을 따르거나 주장하는 사람. 여기서 페미니즘이란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경제·사회 문화적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견해나 사상을 뜻한다.’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견해나 사상이라는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하지. 어떤 이유에서든 차별은 옳지 않은 거니까. 그런데 왜 논란이 되는 걸까.


 

노란색 표지에 재기발랄한 아이들의 그림이 그려진 <소년문화탐방기>, 자그마한 크기와 표지만 보면 만화책이라고 오해할 것 같다. 책의 첫인상만큼 저자의 이력도 독특했다. 페미니스트 가수(이런 유형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로 활동하다가 무대에서 내려와 페미니즘 교육을 하고 있다고 한다. 페미니스트로서의 길을 꾸준히 걷고 있는 저자가 청소년, 그것도 소년들에게 시선을 돌리고 그들을 대상으로 성평등 교육을 하게 되는데 <소년문화탐방기>는 바로 그 기록을 담은 책이다.


 

책은 모두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마을로 들어간 페미니스트’ ‘게임하는 소년들’ ‘미디어 세계를 유영하기’ ‘마을? 공동체?’ ‘같이 놀래각 파트의 제목만 봐도 소년들이 좋아하고 즐기는 문화인데 이것을 페미니즘과 어떻게 연결하는 걸까. 성인지 감수성이 어느때보다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대두된 상황에서 아들 둘을 키우는 나로선 무척이나 궁금했다.


 

페미니즘은 소년들이 경험하던 평범한 일상과 평범한 행동 하나하나를 날카롭게 질문하고 판단하고 바꾸고 버릴 것을 요구했다. 그들은 이런 과정을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했다. - 13.

 


저자는 90년대 공동육아로 출발해서 이후 30여 년간 공동체를 일궈온 마을의 대안학교와 방과후수업에서 만났던 소년들과 나눈 대화와 그들의 반응을 중점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게임에 대해서라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대화를 나누는 아이들은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라면 공유하고 있을 경험, PC방에 대한 느낌이나 경험을 비롯해서 유튜브나 아프리카TV 같은 인터넷 방송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았다. 부분적으로 교사와 부모를 인터뷰한 대목도 눈길을 끌었다.


 

노는 방법을 배우는 아이들과 달리 놀이가 없는 유년을 보내는 아이들은 청소년으로 성장했을 때 여전히 노는 방법을 모른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즐거움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래서 몰입하는 것이 게임, 유튜브, 소셜미디어,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이다. 청소년들과 게임, 유튜브, 덕질 얘기를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미디어 환경이 변하면서 스마트 미디어에 의존하는 청소년들에게는 스마트 미디어가 곧 자신이고 자신이 속한 세계이고 꿈꿀 수 있는 유일한 세계가 된 것이다. 지금이라도 청소년들에게 노는 법을 가르쳐줄 수 있을까? - 42

 


인상적인 것은 갈등 공포증 세대였다. 누군가의 싫은 행동에 대응하는 방식이나 학생들간의 갈등이 다툼으로 확대될 때,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를 돌아보고 고민을 나누는 대목을 보면서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어딜 가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늘 고민하고 생각하지만 막상 일이 터지면 이전의 생각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경험했는데, 그만큼 해결이 쉽지 않다는 걸 드러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중학생이나 고등학교 저학년 소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유튜버가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하거나 자신이 소속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본 주장을 그대로 옮기기 일쑤다. 그것은 폭력과 혐오를 드러낼수록 학교 동료들과 친구집단에서 핵 인싸로 대접받고 남성에게 주어진 젠더 역할을 제대로 수행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또래 집단 안의 경험이 그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때 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훈육이나 질타가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옆에서 동행해줄 동료 시민이다. 온라인 공간이 키워낸 민주시민에게 양육자나 교사, 어른의 권위는 더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184.

 


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놀이이고 그 놀이문화를 마음껏 즐긴 소년들은 이후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소년들의 마음을 묻고 들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소년들에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어른의 존재가 꼭 필요하다고 하는데 나는 어떤가 돌아보게 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둘째가 떠올랐다. 3월이 되면 고등학생이 되는 둘째는 유튜브와 친구와의 게임에 빠져있다. 적당하게 즐기는 수준이 아니라 과하게 몰입하는 것이 걱정인데 책에 등장한 아이들이 게임에 과몰입하지 않으며 게임을 통해 배운다고 해서 의문이 들기도 했다. 저자가 인터뷰했던 마을의 소년들처럼 행동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되는걸까. 일부일까. 대다수에 속할까. 만약 도시의 소년들이라면?


 

아쉬운 점도 있다. 저자는 초반에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을 꺼리고 성교육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학생들과 소통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불만을 토해내는 학생을 향해 필요 없으면 나가!”라고 소리쳤다고 털어놓았는데 솔직히, 좀 충격이었다. ‘페미니즘을 아이들, 소년들에게 교육한다는 게 쉽지 않으리란 건 이미 예상했을 터인데, 그런데? 페미니즘이란 사회에 만연한 권력이 옳지 않고 정의롭지 않음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여겼는데 그 순간 저자의 행동이 그야말로 권위적인 것은 아니었을지. 물론 부끄러웠다고 고백했지만 궁금했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실수를 사과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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