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는 학문으로 정착이 가능한 것인가.... 배스낚시도 300페이지가 넘는 책이 나오는 마당에 무엇이 두려우랴-_-

뭐.... 가이낙스의 창립자였던 오카다 토시오가 도쿄대에서 오타쿠학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도 오래된 얘기이고 에반게리온의 대성공이 이끌어낸 오타쿠 문화의 메이저 진입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조차도 오타쿠라는 개념은 여전히 낯설고 소위 스탠다드와는 거리가 있는 개념이다. 그것은 국내에서도 라이센스로 발매되는(아마도 인기작품에 묻혀오는 계약 관계일 것인) 오타쿠 관련 소재 작품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바이다. 그럼에도 근래에 쏟아져 나오는 이 계열 작품들의 라이센스 러시는 일본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이것이 매니악하게나마 제법 트렌드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이 작품, 엄하다. 초형귀 동인지를 그렸던 작가의 전적....

우리나라에 라이센스된 작품들을 중심으로 오타쿠 만화들의 계열들을 대강 정리해보자면 리얼리즘 계열(현시연)과 초현실주의의 영역을 넘나드는 계열(러브얀, 남자는 불끈불끈, 제멋대로 카이조) 정도로 구분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 각각의 장단은 분명히 존재하고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입장에 따라 해당 작품에 대한 평가도 극단적으로 나뉘는 편이다(솔직히 그 바닥 사람이 몇명이라고 의견이 나뉘어봤자겠지만-_-). 우선 <현시연>은 오타쿠 문화 자체를 다루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주변, 혹은 그 중심에 들어가 있는 인물들의 모습을 그려내는데 주력하고 있다(...해서 리얼로봇 계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오타쿠 라이프의 소소함을 그려내는데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는 이 작품을 보고 '나와 너무 똑같잖아!' 라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나빠진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 사람들은 <남자는 불끈불끈>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려나. 하긴 이 작품도 나온지 꽤 됐으니 이미 적정 자극의 수위에 들어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타쿠들의 생활을 완벽한 초현실주의의 영역에서 다루는 이 작품은 오타쿠들의 의식과 욕망을 일체의 가감 없이 그대로-_- 펼쳐보이는 걸로 유명하다.

그러나 나는 이 작품이 싫다-_-

사나이는 개뿔이 사나이.... 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 작가의 또다른 작품이라면 <얼짱 응원단장>이라는 물건이 있는데.... 보면 알겠지만 <남자는 불끈불끈>하고 별 다를 것도 없는 작품이다. 나는 이 작가의 작품들이 싫다. 혐오스럽다. 그것은 자기부정이 아니라 작품이 가지고 있는

센세이셔널리즘의 극단적인 추구

...라는 점에서다. 한마디로 이 작품들은 추잡하다. 근자에 오타쿠 문화라는 것을 소재로 삼는다는 만화들은 근본적으론 자기노출 행위와 다름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양상들을 그대로 드러내보인다는 것이 커밍아웃의 자랑스러움을 갖고 있다기 보다는 그저 절제 없는 노출이 상업적 흐름과 맞물려서 보여지는 자본주의의 뻔한 흐름에 휘둘리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고 보여진다면 과장일까. 그것은 차별화된 문화의 양상이 아니라 뻔하고 별볼일도 없는 주제에 그저 드러내기만 할 뿐인 노출증의 세계다. 거기엔 그저 노출만 있을 뿐이지 그에 대한 문제제기와 고민이 없다. 적어도 오타쿠 문화가 제대로 된 문화로 자리 잡으려면 이런 식으로 드러나면 안된다. 물론 그 위악없는 노출이 좋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앞서 지적한 것처럼 그 노출이란 것이 과연 위악이 없는 것인지는 재차 되물어야 할 문제다. 오타쿠 문화가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버린 지금 이 마당에 와서 그런 노출증은 그저그런 이미지의 판박이 이상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이미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에바처럼 괜시리 목에 힘주고 훈계하는 내용으로 가식을 떨어야 하는가' 소비주의적 양상과 생산적 양상이 극단적으로 맞물려서 정보의 흐름이 일반의 상식을 완전히 뛰어넘는 엄청난 속도를 가지게 된 오타쿠 문화의 속성에 따라 에바의 이미지들은 이미 업계에선 닳고 닳은 또하나의 상업 이미지의 하나로 전락했다. 그런 속도가 에바가 가진 의미와 방법론을 완전히 깔아뭉개버렸지만(가이낙스 또한 그 흐름을 철저히 이용해먹었으니 그들이 에바로 달리 할 말이 있다는 건 공구라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후유증이 근자의 천박한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긴 하지만 제대로 된 담론의 장이 마련되었다는 점에선 긍정적으로 여길 수 있다. 너무 오래 걸렸지만 시작은 여기서부터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시연>을 지지하게 되는 것은 이 작품이 분명한 접점과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갈등, 그리고 그것을 통한 융합의 과정들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다. 이 작품은 혹자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쉽게 만들어진, 그저 그런 오타쿠 소재의 만화가 아니다. 여기엔 진정 제대로 된 커밍아웃이 존재하고 미묘한 감정의 흐름들이 있으며 그저 자극적이고 분출만 해댈뿐인 동인 문화의 재탕인 오타쿠 소재 만화를 뛰어넘는 사려깊은 고심의 흔적이 있다. 이 작품이 '오타쿠 만화'가 아니라서 싫다는 평가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단순히 '오타쿠 만화'라기 보다는 '오타쿠 만화인 동시에 오타쿠에 대한 만화'의 접점을 액자형식을 통해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것은 <제멋대로 카이조>가 실행했고 결국은 폭주해버린 자기회의를 뛰어넘는 긍정적인 힘이라고 보인다. <제멋대로 카이조>는 분명 용감한 작품이었고 의식있는 자기노출이 폭발적인 공격수단이 될 수 있음을, 출판사에서 연재중단을 때려버리는 걸로-_- 결국 상업지가 가진 한계를 드러내보이는 성과로 증명해버렸지만 그것은 말하자면 자폭행위였다. 그에 비하면 <현시연>은 훨씬 능글맞고 어찌보면 소소하지만 하나의 대안을 훌륭하게 도출해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오타쿠 만화의 시작이자 트렌드에 대한 애프터눈의 대답이며 이후 비슷비슷한 컨셉의 아류 이미지들을 양산한 이 작품이 여전히 대안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업계는 이 작품에서 팔릴 수 있는 '소재'들만을 잡아냈다.

그저 그런 줄 알았지만 뒤로 갈수록 실로 제대로 된 폭주 만화로 환골탈태. 처음엔 라이센스로 나온다는 사실이 경이로운 작품이었다.


이 장면은....

돌려 말할 것도 없이 이 작품에 대한 얘기다....

앞서 언급한대로 <제멋대로 카이조>는 이 분류에서 색다른 작품이다. 폭주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거침이 없는 이 작품은 단순히 유희 차원을 뛰어넘는 해체의 경지를 선보인다. 결국엔 작가가 출판사에서 목이 잘리는 걸로 끝이 났지만.... 26권이나 그린 작가를 자르는 출판사도 어지간하지만 그것은 뒤로 갈수록 거침이 없는 쿠메타 코지의 비판과 풍자를 견딜 수 없었던 상업지의 한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무라카미 류와 같은 작가에서부터 모닝무스메와 같은 아이돌 문화까지 아우르는 일본 대중문화 전반과 소위 국민성이라 불리우는 집단 무의식적 부분들, 심지어 자신이 소속된 출판사, 만화업계, 일본의 정치 일선에 이르기까지 <제멋대로 카이조>는 모든 걸 패배자 정서와 막가파 정신으로 씹어버린다. 분명 이것은 대안이 보이지 않는 난감한 독설이긴 하지만 그 의미를 저버릴 순 없다. 적어도 <제멋대로 카이조>는 소위 오타쿠 만화들이 정말로 건드리고 싶지 않았던 부분을 까발려버리는 진지함을 갖추고 있다.

난감하다....


나름대로는....

<소타군의 아키하바라 분투기>는 무척 애매모호한 작품이다. 이것은 <현시연>에서의 발상을 빌려오면서 <남자는 불끈불끈>의 상상력을 집어넣었지만 감정의 흐름을 다루는 작가의 미숙함이 오타쿠 문화에 대한 자극성 있는 노출증과 섞여서 어중간한 물건을 만들어냈다. 이 작품은 일종의 후유증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라이센스 발매 예정이라는 또하나의 오타쿠 관련 작품. 물론 여기서 말하는 NHK는 <카드캡터 사쿠라>의 첫 방영 채널이자 욘사마 열풍으로 무너지는 가세를 세워보려했던 저명한 공영방송 NHK가 아님은 물론이다.... 

 

PS. 

드디어 우리나라에서 자랑스럽게도-_- 본격적인 오타쿠 소재 만화가 등장했다. 한국말을 모르는 일본인조차 그림만 보고서 훌륭한 모에도를 자랑한다고 감탄했던 그 물건!-_- 개인적으론 우리나라에 (자칭 타칭 통합) 재림 예수가 40명이라는 통계 조사를 봤을 때와 비슷한 수준의 어이없음을 불러 일으킨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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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le 2008-05-20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쿠메타 팬으로서. 네기마와 같은 출판사/잡지(강담사 소년매거진)에 들어간 건 절망선생부터입니다. 카이조까지는 계속 소학관 소년선데이에서 작품활동을 했지요 예.

hallonin 2008-05-20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못된 정보를 수정하게끔 한 지적 고맙습니다. 정말 간만에 보고선 뭔가 피식거리게 만든 옛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