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는 양념.밥상 - 쉽고 편하게 해먹는 자연양념과 제철밥
장영란 지음, 김광화 사진 / 들녘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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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빨갛고 넓은 함지박이 자리잡고 배부른 큰항아리, 작은항아리가 마련된다.

굵은 소금포대도 세워지고 붉은 마른고추랑 숯, 무엇보다 중요한 메주덩이가 누렇게 쌓여있다.

어느 햇살 좋은 봄날, 친정엄마는 이렇게 장담글 준비를 하시곤 했다.

받아놓은 물에 소금물을 만들고 메주를 띄우고 숯과 고추 등을 넣고 하는 과정을 거쳐

항아리엔 어느새 된장이 담기고 간장이 가득 찬다.

그 된장과 간장은 우리 가족이 먹는 밥상에 오르는 반찬들에 양념이 되고 찌개가 되면서

우리 일가족의 건강한 먹거리를 책임져 주었다.

나는 그렇게 엄마가 하시던 일을 내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면 당연히 하게될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장담그기는 주부라해서 누구나 하는 일이 아니더라.

지금까지 시어머니께서 담아놓으신 맛깔스러운 장을 얻어 먹는다.

어머니 살아생전 배울수 있을려나 모르겠다.

 

「숨 쉬는 양념・밥상」엔 우리 먹거리, 그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양념과 밥에 대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요리조리 맛과 모양을 내는 비법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자연이 주는 그대로를 섭취할 수 있는 가장 손이 덜가지만

가장 건강한 밥상 이야기들.

먹거리에 관한 이런 소박하면서도 담백한 이야기가 이렇게나 부러울 수가 있다니!

대도시를 떠나 귀농한 지은이 가족의 농사짓기는 어떤 것을 희생하거나 잃어버린게 아니라

그동안 잊고 살았던 소중한 무엇을 되찾은 것인양 풍족해 보인다.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귀농의 결실을 하나둘 풀어놓는 이야기들이

갖가지 혼합소스에 인공향료와 빛깔에 길들여져 있는 이들에게는 모양도 맛도 보잘 것 없어 누추할까 싶지만

우리몸처럼 정직한 것이 그 무엇일까!

몸은 여지없이 받아들였던 것을 고스란히 되돌려 준다는 것을 충분히 알기에

받아들이길 꺼려하는 것들을 경계하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생기고

몸이 좋아하는 것을 자연스레 찾게 되는 것이리라.

 

지은이 가족의 밥상 당번 이야기를 웃으며 읽고

손수 만드는 양념이야기에서는 마당 없음을 마냥 아쉬워하고

밥의 소중함에서는 ‘그래 기본부터가 중요해’하며 맞짱구를 치며 밥상혁명과도 같은 맺음에 도달한다.

지금 당장 장을 담그려고 서두를 것이 아니라 처한 환경에서 해 볼수 있는 것들로 시작해

어느날 장 담글 마당이 생기면 엄마처럼 지은이처럼 맛깔나게 장도 담아 볼수 있으리라.

밥에도 제철밥이 있다는 말처럼 철에 맞게 나오는 강낭콩, 수수, 차, 조, 율무, 옥수수 같은 갖가지 곡식으로 밥을 짓거나

밥이 싫증날 때면 땅콩, 밤, 잣으로 죽도 끓여 보리라.

수수팥떡, 쑥버무리, 송편으로 이어지는 집에서 찌는 떡이야기를 읽을 즈음엔 사진속 떡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떡을 사먹고 말았다.

빨리 만들고 빨리 먹을수 있는 것들에 익숙해 있는 습관을 하루아침에 고치기가 얼마나 힘이 들지

더군다나 도시의 급한 일과속에서 과연 이런 것들을 얼마만큼 실행에 옮길수 있을지 여전히 미심쩍지만

책을 읽는 동안 만큼은 잘먹고 잘사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나도모르게 반성하는 시간이 되더라.

(그럴려고 그런게 아닌데 자연히 그렇게 되더라)

 

자랑도 아닌데 늘 요리에 젬병이라하며 살았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한 요리는 아닐지언정 건강한 것에 포인트를 맞추고

그 하나만으로 충분히 경쟁력 있다 여기며 관심있게 살 수 있었을텐데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되는대로 먹으며 살아온 듯해

솔직히 부끄럽다.

오늘 저녁엔 지난 어버이날 시어머님이 챙겨주신 된장에 쌀뜨물을 풀어 호박이랑 버섯, 고추 쏭쏭 넣어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정성들여 끓여볼까 싶다.

가짓수 많은 그럴듯해 보이는 밥상이 아닌, 한가지여도 자연재료로 가족을 생각하며 애정을 담아 만든 밥상은

절대 초라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식구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 어떤 양념보다 중요하다. -p.6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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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집 넓게 쓰는 인테리어
조승진 지음 / 인사이트북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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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어느 책에서 '집은 자란다'는 표현을 만났는데 많이 공감하며 읽었더랬다.

매거진이나 TV에도 자기집에 대한 애착을 갖고 가족과 함께 평생 살아갈 집을 계획하는 사람들을 소개하거나

손수 계획을 실행에 옮긴 이야기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가끔 만나곤.

요즘엔 그런 '집'에 대한 개념에 대중의 공감이 큰지 훨씬 자주 소개되는 느낌이다.

개성을 무시한채 누구나 몰개성의 상자에 꾸역꾸역 구겨넣다시피한 아파트와 달리

선호하는 스타일대로, 작은 공간이라도 나만의 집이 있다면 이렇게 저렇게 해서 살아야지 마음먹은대로

한껏 개성을 살려 꾸민 집들은 외형도 제각각이고  안을 들여다보면 어느 하나 같은 모양을 한 집이 없다.

생각이 제각각이니 이렇게 집의 형태도 생각의 가지수 만큼 지어지는게 어쩌면 당연한 일일텐데

우리나라 도시인들은 너무도 당연히 틀에 박힌 아파트에 적응해가며 살아온게 아닌가 싶다.

어쩔수 없는 도시인중 하나인 입장에서 그렇게 틀을 바꾸고 가꾸며 사는 이들을 만나는 재미는

내가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기에,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희망을 갖고 있기에 좀더 진지하게 보게 되고

보면서 대리만족도 느끼고 지금은 안되지만 훗날엔..하는 기대로 잠시 설레기도 한다.

 

작은집 넓게 쓰는 인테리어 』에 등장하는 집들은 주로 아파트이고 그 외에 빌라, 다세대 주택, 단독주택이다.

고객층은 신혼부부, 자녀를 키우는 집, 작업공간을 겸한 집 등 다양한 형태의 집이 등장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아파트이고 그 주 평수는 10평대에서 30평대까지이다.

책을 읽으며 새롭게 접한 개념이 있는데 '홈스타일링'이라는 것이다.

대개 살 만한 공간이 생기면 언뜻 생각하는게 리모델링이다.

처음부터 외관을 계획해 짓지 않는 이상, 기존에 지어진 건물에 들어가 살게 되다보니

외관은 크게 고치지 못한채 내부구조만 조금 변경하고 도배, 장판, 도색, 싱크대교체, 조명..이런 것을 교체하는 선에서

만족하게 되는게 리모델링이다.

요즘은 리모델링 전문회사들이 동네에도 많아 의뢰한 집들은 그 리모델링해 놓은 집 모양도 다들 비슷하게 나온다.

 

그런데 이 책에는 '홈스타일링'이라는 개념이 함께 곁들여져 고객의 개성과 라이프 스타일을 고려해

공간을 분할하고 가구를 구입 및 배치, 공간에 색을 입히는 것까지 전문가의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나 안방은 부부가 사용하고 작은방은 자녀가 사용하거나 서재로 쓰거나 하는 틀에 박힌 용도를 과감히 깨고

공간을 최대한 편리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하는데 주안을 두고 스타일링해 주는 점이 눈에 띄인다.

고객의 요구는 많은데 그 요구대로 다 들어줄 수 없는 공간적 한계를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맞추어 주는 것을 볼 때면

아하~하고 감탄하게 되고 홈스타일링이 창의성을 동반한 매력적인 작업일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전문가로서 공간에 맞는 색감을 선택해 어울리는 가구와 조명 선택을 조언하면서도 고객의 취향을 고려해주는,

그래서 결과적으로 양쪽이 만족할 만한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인테리어가 즐거운 작업이 될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한정된 공간이었던 '작은집'의 답답함을 색감의 통일과 싱크대 상단부의 공간 트임, 가벽을 설치한 공간 분할,

데드 스페이스를 찾아내 최대한 활용하는 것들을 통해 얼마든지 아담하게, 넓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보인다.

특히 Before와 After의 비교사진들은 확연히 그러함을 증명해 준다.

 

요즘 집이 좁다고 답답하다해서 쉽게 넓은 평수로 무리하게 넓혀가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이 책을 접하면 생각이 조금 바뀔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인테리어 총비용과 소요부분을 세밀하게 공개한 점은 무턱대고 작업을 진행하기에 앞서

경비를 계획해서 거기에 맞도록 지출할 수 있게 참고할 수 있을것 같고

스타일링에 사용된 가구구입처, 소품구입처, 인터넷 사이트를 소개해 주어 개인적으로 집을 부분 바꾸고자 할때

도움을 받을수 있겠다.

 

집의 기초부터 시작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는 대다수의 서민들에게 집이라는 공간을

최대한 편안한 쉼터이자 가족이 모이고 지인을 맞이하는 생활 공간으로 재세팅 하는데

생각을 다시 해보게끔 하고 조금의 자본이 있다면 시도해 봄 직한 인테리어들인지라 읽는 재미도 솔솔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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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 국어 교과서 작품의 모든 것 세트 - 전4권 (2017년용) - 중학교 전 학년 교과서 작품 수록 중학 국어 작품 모든 것 (2017년)
꿈을담는틀 편집부 엮음 / 꿈을담는틀(학습)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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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국어 교과서가 무려 16종이다.

16종에 수록된 작품들만 모아도 양에 있어 모두 섭렵할 엄두가 나지 않을듯 싶다.

때로 겹치는 책들이 있다손 치더라도 개인이 일일이 찾아서 읽으려면 분명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다.

그런 필요에서일까?  몇해전 부터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을 선별해 쟝르별로 묶음한 형식의 책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창비의 「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휴머니스트의 「국어 시간에 ( )읽기」로 나오는 책들이 그것이다.

창비의 특징은 국어 교과서 수록 작품을 중학교의 경우 학년별로 나눠 싣고

고등학교 작품은 쟝르별로 통으로 묶어 내놓은 것이고,

휴머니스트 책들은 교과서 수록작품이라기 보다 중학생들이 읽으면 좋을 시, 소설, 수필을 선별해 묶은 특징을 보인다.

 

「국어 교과서 작품의 모든 것」은 꼭 읽어야 할 새 교과서의 작품을 우선순위로 정리해 시, 수필, 소설1, 소설2의 4권으로

묶어 놓았다.

16종에 무수히 많이 수록된 작품을 죄다 책으로 낼 수 없으니 현직에 계신 500분 선생님의 작품 중요도를 평가 반영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작품마다 중요도를 나타내는 ☆이 매겨져 있는 것을 본다.

중요도는 다수의 교과서에 수록됐다고 해서 별수가 많이 매겨지는 것이 아닌

순수하게 선생님들의 관점에서 중요하다 인정되는 작품에 별이 많이 매겨져 있어

별수가 많은 작품은 학교에서 채택한 교과서에 수록되지 않았더래도 꼭 읽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다.  

 

구성을 보면 소설의 경우 소설1은 중1학년, 소설2는 중2~3학년에 수록된 작품으로 구분해 놓았는데

시와 수필의 경우는 3년의 과정이 통틀어 엮어져 있어 특정작품이 중학교 몇학년 과정에 나오는지는 표기해 두지 않아

올해 1학년인 아이가 우선적으로 읽을 작품을 뽑기에는 일일이 목차를 참고해 선별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목차에 나열된 작품명 옆이나 뒤쪽 부록을 끼어서라도 학년을 표기해 주면 좋을듯 싶다.

 

아이의 국어 공부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별개로 하더라도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 목차만 읽어도 기라성 같은 작가의 명저가 수두룩 들어있어

한편 한편 읽어가는 재미가 남달랐다.

30여 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국어 교과서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내가 중학시절 만났던 작품들도 보이고

단행본으로 자주 접했던 현대작가의 빛나는 작품들도 얼마나 많이 만날수 있는지

세트를 들여놓고 올레~를 외치지 않을수 없었다.

시의 경우 한편 한편 뜸들이며 읽느라 아직도 다읽지 못했고

수필의 경우 이틀새 28편의 작품을 모두 읽었는데

딱 중학교 이 시절에 접하면 좋을, 하나도 허투루 버릴 것이 없는 작품들로 기성세대인 나에게조차도

작가가 간절히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썰물처럼 밀려오는 느낌에 왠지 뿌듯하고

이 나이에도 가슴을 두근대게 하는 그 무엇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럴진대 질풍노도의 시기에 마음과 몸이 따로 움직이는 우리 청소년들이 이 글들을 접할때

얼마나 더 심장을 뛰게 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까!

수필이 가장 두께가 얇았는데 좀 더 많은 작품을 엮어줬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소설, 학년이 오를 때마다 받아든 국어 교과서에서 가장 먼저 찾아 읽던 부분이 소설이었다.

개인적으로 책을 소장하기가 어려웠던 시절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그 몇장 남짓했던 소설은 한창 빠져들려고 하면 끝나버려

결말을 궁금하게 만들곤 했던 기억이 아스라하다.

그럼에도 마른 땡볕에 여우비 내리듯 맛본 그 소설의 단편으로 인해 학창시절 문학적 감성이 메마르지 않을수 있었음을 확신한다.

그때 만났던 소나기, 별, 상록수, 운수 좋은 날,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이들 소설을 교과서에서 만나고 이후 성인이 된 후에 단행본으로 출판된 책들에서 만나 읽었지만

당시의 그 감성으로 읽었던 느낌과는 생소한 다른 느낌을 맞닥뜨릴 뿐이었다.

 

지금은 워낙 많은 책들을 손쉽게 읽을수 있는 풍요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정작 아이들은 책 읽을 시간이 없고 교과서에 수록돼 있다는 것만으로 공부거리로 전락돼 버려

이 소중한 작품들이 전하는 메세지와 아름다움을 전해받지 못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중학생들이 읽기에 적합한 책의 정보를 찾기 어렵거나 한권 한권 소장하기 힘든 이들을 위해

이런 형식일 지언정 차선의 선택으로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거기에 국어 교과에 흥미를 더해 가지게 된다면 그건 덤이고!!

수록 작품을 하나하나 읽는 시간에 내용의 다양성과 완성도를 통해 아이들 국어 교과 수준을 다시보게 된 점도

내 나름의 유익이라 말할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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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클래식 보물창고 17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율희 옮김 / 보물창고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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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클래식 보물창고로 발행되었던 데미안』을 읽는 시간이 참 특별했었다.

학창시절 여러번 읽었던 그 책을 통해 잠시나마 기억의 시간을 과거로 거슬러 갈 수 있었고

그동안 손에 놓고 있었던 고전문학을 오랫만에 손에 들고 고전의 탁월함을 느낀 시간이었다.

이후 고전문학을 힘써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시간에 쫓겨, 또 금세 발행되어 눈길을 사로잡는 책들에 마음을 빼앗겨

어느새 결심이 흐지부지해지고 있는 찰나, 이 시리즈의 또다른 책을 만났다.

 

책을 받아든 첫느낌은 놀라움이다.

책의 두께에 놀라고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한 작품이 단권일줄 알았는데

서명과 달리 작가의 작품이 다수 수록되어 있어서 놀랐다.

F. 스콧 피츠제럴드라는 작가의 유명세에 비해 내가 접한 작품이 한편도 없었다는 사실,

그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위대한 개츠비』외에 그가 평생에 160여 편의 중·단편을 썼는데도

그 많은 작품중 한편도 접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 나를 놀라웁게 만들었다.

 

그의 장편 『위대한 개츠비』를 읽지 않은채 아마도 나는 여기에 실린 11편의 중·단편을그의 작품세계를 엿보게 될 터이다.

이 작품집의 대표작인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작가의 창의적이고 신선한 발상을 충분히 접할수 있었던 단편이다.

 

이른 살 먹은 노인네의 외모를 갖고 태어난 한 인간이 그에게 주어진 운명인양 시간을 거슬러 일생을 보낸다는 소재는

그 누구도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착상이 아닌가 싶다.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신에 의해 주어진 '시간'이라는 영역을 작가는 역발상으로 솜씨좋게 이야기를 꾸려간다.

태어날 때 지녔던 노인의 육체는 주위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만

시간을 먹고 자란 아이는 어느듯 황금기인 청년이 되어 사랑을 하고

튼튼한 육체에서 비롯되는 인간의 여러 형상(긍정적, 부정적)을 거치고

절정기를 지나 다시 주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유아기가 되어 일생을 마치는 이야기.

신선한 발상을 좇아 이야기가 끝났을때 그리 길지 않은 장수의 부피에서 느껴진 여운이라고 믿기엔 어려울 만치의

큰 여운이 며칠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인생은 늙어가며 그 너머에 기다리는 것은 죽음이기에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고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여기며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그 정반대 형태의 삶의 경우를 이야기 한다.

시들어 늙는 종착역을 향한 하루가 아닌 젊음을 향해 거꾸로 돌아가는 시간을 살 때, 인간의 삶은 다른 형태를 띠지 않을까?

그러나 소설은 말한다.

어떤 형태의 시간이 주어지든 인간에게 있어 잠시뿐인 절정의 삶을 지나면 그 너머엔 역시나 죽음이 기다리고 있고

그렇게 인생은 마감된다고.

역시나 인간은 이런 시간이든 저런 시간이든 그 틀을 벗어날 수 없고 더더욱 죽음을 건너뛸 수 없는 존재임을 재확인 시킨다.

그래서 남겨진 생각은 각자에게 주어진 유한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에 대한 삶의 의미에 매달려야 하고

또한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재삼 일깨어 준다.

 

또한가지는 벤자민 버튼이 젊음을 지나 유아기가 되어 주변의 도움이 필요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 자식이 보이는 경멸의 태도는

젊음을 지나 노인이 되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지경에 있을 때의 정상적 시간체제하의 현실이나 별반 다르지 않아

인간존재에의 씁쓸함을 느끼게 만든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여느 강한 인상을 남기는 장편못지 않은 단편으로

인간의 한평생을 액자들여다 보듯 들여다 보게 만든다.

단편을 읽은 후 동제목의 영화를 보았는데 거꾸로 흐르는 시간의 소재만 같을 뿐

내용의 구성과 등장인물, 사건 등등 거의 모든 부분이 각색되어 원저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어서

책을 읽지 않은 이들은 영화만으로 피츠제럴드를 잘못 이해하게 되지나 않을까 염려되기도 했다.

영화와 원저의 차이와 느낌을 굳이 이야기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각각이 던지는 생각거리는 분명히 다른 느낌이다.

 

외 수록된 다른 10편은 피츠제럴드가 시도한 다양한 작품세계의 작품들인데

솔직히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만큼의 시선을 끌지는 못하는것 같다.

일단 그가 살았던 소위 '재즈 시대'를 공감하지 못하니 각각의 이야기들에 공감대를 이룰수 없고

그 공간적, 시간적 괴리에서 비롯되는 이질감을 좁히기에 역부족이었다고 말할수 밖에 없겠다.

그 가운데 『노동절』이 그나마 이해가 쉬웠고

낙타의 뒷부분』은 당시 미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여성상을 이야기하려는것 같았지만 쉽게 가닥을 잡을수 없었다.

다른 편 또한 마찬가지다.

내용이 매끄럽지 못한 이유중 하나로 번역가에게는 미안하지만 번역의 정연함이 부족했다는 생각도 든다.

 

피츠제럴드라는 작가는 뭐니뭐니해도 장편소설 『위대한 개츠비』로 인정받은 만큼

그의 진가를 또다시 만날수 있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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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기억
전민식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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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속도로 변하는 세상에서 그들은 소의 걸음으로 세상을 살았다. -p.140

여러해 전 국립경주박물관을 갔을때 나는 종과 처음 만났다.

내가 그때를 처음 종과 만났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나라 범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그때 처음 소개받았기 때문이다.

사찰여행을 통해 여러번 종과 맞닥뜨린 때에도 정작 그 큰 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없었다.

박물관에서 알게된 종제작 과정은 소설의 초반부에 자세히 설명되어 나온다.

그 자세함이 어쩌면 소설의 가독성을 떨어뜨릴지도 모르지만 종제작과정은 상반된 주인공 둘의 성격과

두사람이 종을 대하는 철학을 독자에게 심어주기에 유효한 방편으로 저자는 구태여 제작과정을 충실히 서술한다.

 

종은 흙에서 시작해서 흙으로 완성된다고 믿으며 기록과 계산, 통계에 의해 소리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규철과 달리

한위는 종을 완성시키기 위한 금속의 배합은 과학보다 신들림에 있다고 믿는다.

종을 대하는 철학이 상반된 두 주인공은 운명과도 같이 한 여인을 사랑하고 비운은 자식에까지 끼치려 든다.

아버지대에 얽힌 운명에 몸서리치며 어떻게든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동주와 해원의 상처는

결말에 이르러 아버지들이 걸어간 선택으로, 그리고 그들을 고스란히 삼킨 종이 들려주는 울림을 통해 씻음받았기를 바래본다.

 

흙이, 쇠가 종을 완성한다지만 종의 본질은 소리로 입증되는 것임에 수긍했던 그들,

일생을 종만들기에서 시작해 종이 만들어 내는 완벽한 소리를 듣고자 했던 그들,

듣지는 못하지만 종국에 불을 빌려 소리가 돼버린 그들을 우린 단순히 광인이라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휙휙 모든 소리를 전자기계로 만들어 내는 세상에서 종소리 따위가 뭐라고. 종의 울림에 자신의 인생을 다 바치는 인간은 이 세상에서 한위와 규철밖에 없을 것 같았다. -p.139

성덕대왕신종이 내는 소리를 들었다. 역시나 전자기계음으로 재생되는 소리를.

국립경주박물관 마당에서 그 종을 마주했을 때에도 세계에 내노라하는 종의 음각만을 살필 뿐 종이 머금고 있을 소리는 상상해 보지 못했다.

사실 범인의 귀에는 산사에서 울리는 그 종소리가 그 소리인게다.

그러기에 유명한 종이 소리를 울린다해도 특별함을 전해받지 못하는게 당연지사가 아닐까.

이미 숱한 소음에 노출돼 버린 현대인을 상대로 음악도 아닌 생뚱맞게 '종소리'라는 소설의 소재는

독자들에게 과연 어떤 반향을 일으킬수 있을지 개인적으로도 주목된다.

 

규철과 한위가 사랑한 여인 정화의 죽음을 두고 살인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책은 끝까지 가독성을 유지한다.

범종이 어떤 과정으로 제작되는지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는 가운데 초반부를 읽으면 과정을 이해할까 싶은 생각에 회의가 들다가도

한편으로는 어차피 소설이기에 그 부분은 그리 크게 작용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싶으다.

하지만 보다 소상히 알게 된다면 종 하나에 기울이는 장인들의 열정에 공감을 하게 되고 이에 더해

종소리에 미치는 주인공의 삶이 단지 소설에만 존재하는 허구적 인물로 그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리를 얻고자 소리가 돼버린 사람들의 이야기,

그러나 불이 기억하는건 이들이 여기까지 오며 겪었던 숱한 오열의 시간과

기억이라 불리는 삶의 쳇바퀴일 것이다.

열정 너머의 삶을 살아낸 이들은 불을 만나고서야 비로소 생전의 집착을 손아귀째 놓을수 있었을테니

그 종소리는 들리는 이들에게 욕심과 집착을 버리라는 울림으로 지금 이순간 울리고 있지나 않을까 상상을 보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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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동저자의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를 읽었는데

전작과 전혀 다른 주제와 글체와 느낌의 책이라 앞으로 어떤 류의 글을 써갈지 작가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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