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봄기운이 오지 않았는데도 안방은 벌써 후끈하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신드롬이 대단하다. 드라마가 잘 되니까 국방부가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인터넷이나 SNS상에서 ‘~말입니다’ 말투를 쓰는 글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국방부는 병영 언어를 바로잡기 위해 말투 개선 지침을 내놓았다. 그동안 병영 내에서는 어떤 군법이나 규칙에도 ‘다나까’를 쓰라는 내용이 없었음에도 공식적인 높임말로 지정되어 있었다. 억지로 ‘다나까’를 쓰게 되면서 뒤에 ‘~말입니다’라는 어법에 맞지 않는 어미를 남발하는 등 심각한 언어 파괴 현상도 발생했다. 올해부터 군인은 ‘다나까’ 대신에 ‘~요’로 끝내는 해요체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여자들은 ‘~말입니다’를 쓰는 드라마 속 송중기의 매력에 빠져 그 말투를 따라한다. 그런데 군대 밖에서 구시대적 군대식 말투를 남발하는 현상이 좋게 느껴지지 않는다. <태양의 후예>와 <일밤-진짜 사나이> 같은 군인 소재로 한 방송이 나오기 전까지 군대식 말투가 군대라는 집단 내의 특별한 언어였다. 군대를 가본 남자들만이 ‘다나까’와 ‘~말입니다’를 기억했다. 그들은 군복을 벗어 사회에 나가서도 군대에 보고 들은 것들을 잊지 못한다. 남자들만 있는 술자리에 군대 이야기가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 대부분 우리나라 남자들은 군 복무의 향수를 대화의 화제로 삼아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한다. 군 복무한 남자들은 자신의 군 생활을 영웅담처럼 자랑한다. 이를테면 사격 실력이 좋아서 포상 휴가를 많이 받은 군인 시절을 뿌듯하게 여기면서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실제 축구 실력이 형편없으면서도 자신이 ‘군대스리가 메시’로 이름을 날렸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을 직접 확인할 방법이 없다. 청자들은 허풍이 팔 할인 영웅담을 진짜라고 믿는 척한다. 군대에 자부심이 넘치는 사람들은 입대를 앞둔 미필자 남자들에게 자신의 군대 지식을 전수하기도 한다.
대한민국 남자는 군인이 되어야 진정한 남자로 인정받는다. 미필자, 공익근무요원 출신 또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이 여전히 따갑다. 특히 군필자 가산점제 부활 문제를 둘러싸고 병역과 관련해 남녀가 이토록 싸우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군대 자부심이 많고, 여성을 혐오하는 남자의 눈에는 군대에 가지 않은 여성들이 군대식 말투를 쓰는 모습이 괘씸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여성 혐오자들은 여성들의 사소한 행동과 말투에 조롱하고 멸시한다. 여성에 대한 부정적 기류를 형성하여 남성 우월성을 표방한다.
요즘 여성 혐오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먹잇감이 바로 <진짜 사나이-여군특집>이다. 여자 연예인들이 군복을 입고 눈물을 흘리며 땀범벅이 되어 땅을 구르는 장면은 그 자체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아끌 수밖에 없다. 이 특집이 주는 특별한 재미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지금의 4기는 구설수만 많아져 시청자들의 반응이 냉담하다. 새로운 인물로 채워져도 방송 속 캐릭터는 새롭지도 흥미롭지도 않다. 제작진은 리얼리티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연예인들이 생활관에서 방귀를 트고, 트림하면서 서로 친해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공개했다. 이건 제작진의 무리수다. 아무리 가볍게 웃고 넘기는 예능이라고 하지만, 군인으로서의 품위가 손상될 우려가 있다. 또한 먹잇감을 호시탐탐 노리던 여성 혐오자들을 더욱 자극하게 한다. 여성 혐오자들은 이 방송 장면을 보면서 대한민국 여성의 무식함을 마음껏 조롱한다. “여자가 군대 망신 다 시킨다”, “여자들은 뇌가 없어” <진사-여군특집> 관련 기사에 입에 담지 못한 표현으로 여자들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악성 댓글들이 많이 있다. 심지어 여자 연예인의 노 메이크업을 가지고 외모를 비하한 댓글도 있다.

지난 주 일요일 인터넷에서는 김성은의 양심 고백을 놓고 누리꾼들 사이에서 설전이 일어났다. 김성은은 중대장에게 자신의 옆에 앉은 하사가 시험 문제의 답을 알려줬다고 고백한 장면이 문제가 되었다. 이후 답을 알려준 하사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은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의견이 번졌다. 여기에 또 여성 혐오자들이 익명성의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 컴퓨터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리기 시작한다. ‘미친년’, ‘방송에 나오지 말고 그냥 애나 키우라’ 등 온갖 악성 댓글 행렬이 이어진다. 여성 혐오자들은 남성 하사에 대한 동정심을 유발한다. 이렇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남성의 도움을 받고도 뒤통수치는 김치년’ 프레임이 생긴다. 여성 혐오자들은 여성 연예인의 행동 문제만 가지고 대한민국 여성 전체의 문제로 확대한다. 그들의 논리는 늘 한결같다. 기승전‘김치년’. 이러면 남성 하사가 문제의 답을 몰래 알려준 잘못된 행동과 편집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제작진의 실수가 논란의 중심에서 살짝 벗어나게 된다. 결국 김성은과 가만히 있는 대한민국 여자들이 여성 혐오자들이 던진 돌에 맞고 있다.
군대를 소재로 한 예능과 드라마 방송의 등장으로 여성들은 군대 문화를 간접적으로 알아가게 된다. 군대를 바라보는 대중의 관심이 점점 뜨거워지면 여성 혐오자들의 ‘혐오 지수’ 또한 올라갈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여성 혐오를 유발하는 요인이 하나씩 생겨나고 있으며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그런데 우린 여성 혐오의 기운이 언제 어디서 꿈틀대기 시작하는지 잘 모른다. 크게 터지고 나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알아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