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1월 2주 당첨자 발표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재난영화 전문 감독'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이제까지의 작품이 한 장르에 치중되어 왔다. 충격적인 스펙터클함을 보여주었던 <인디펜던스데이>로부터 시작하여, <고질라>, <투모로우>, <10000BC>까지 모두, 평범한 삶을 살던 사람이 어쩔 수 없는 고난을 겪고 이겨내면서 행복하게 된다는 내용의 재난 영화들이다. 그런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가장 최근작, <2012>가 기대반, 우려반 속에 개봉을 앞두고 있다. 스펙터클의 면에서는 이제까지의 어떤 작품보다도 뛰어나다고 한다. 이미 공개된 LA침몰 장면이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기대감이 상당히 상승된 듯 하다. CG면에서는 그동안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 보여주었던 재난영화를 압축해 놓은 듯 하다고 하니, 스펙터클함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볼거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영웅"보다는 '보통 사람'이 어떻게 재난을 극복하는가가 주된 감동 코드인 재난 영화에서 존 쿠삭은 '비정한' 보통 사람으로 등장한다고 하니 아쉬울 따름이다. 선별된 사람만을 피신시키려는 정부의 정책을 알아채고 자신의 가족을 챙겨 대피하는 소설가 역할을 맡았다는데,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신의 가족에 대한 사랑이 더 크게 표현되는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큰 기대는 버리고, 화산 폭발과 쓰나미에서 결국은 살아날 주인공의 고군분투기를 '가볍게' 즐기러 가자.  

  

 재난 영화를 왠만큼 본 사람들이면 안 울고는 못 배겼다는, 그 영화 <투모로우>의 감독 역시 롤랜드 에머리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빙하가 녹고 해류의 흐름이 바뀌어 지구 전체가 빙하로 덮이게 된다고 주장하는 과학자 잭 홀 박사(데니스 퀘이드)의 말대로 지구에 이상현상이 나타나면서 일어나게 되는 재난을 다루고 있는 영화로, CG도 흠잡을 데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던 감동 코드가 잘 살아있는 영화라 개인적으로는 롤랜드 에머리히의 최고작이라 꼽고 싶다. 아들을 찾아 죽음을 무릅쓰고 길을 떠나는 아버지의 부성애가 이만큼 잘 표현될 수 있을까. 단지 미소가 아름다운 남자배우라고 생각하고 있던 데니스 퀘이드를 다시 보게 된 작품이기도 하다.  

 또 한가지. 재난 영화가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만약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이란 가정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투모로우>는 그 어떤 재난 영화보다도 설득력이 있는데, 우리가 미래의 최대 문제로 꼽고 있는 환경문제로 인한 재난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보는 내내, 언젠가 우리에게도 저런 일이 닥칠 지 몰라.라고 생각하며. 거대한 얼음덩이들을 보며 손에 땀을 쥐었다.  

  

 <인디펜던스 데이>는 과도한 영웅주의와 미국 중심주의로 비판을 받은 영화지만,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을 지금에 이르게 한 작품이고, 70년대 이후 사그라들었던 재난 영화의 부활을 알린 작품이라는 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화이다. 괴 비행물체의 출현과 함께 잿더미가 되어가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외계인에 대항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CG의 향연과 함께 펼쳐진다. 물론, 미국대통령이 지구 전체의 일을 결정하고, 목숨을 건 사람들이 미국인이라는 점에서는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하지만. 지구를 지키기 위해(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인물들의 모습에는 감동할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재난 영화에는 공식처럼 비슷한 서사구조가 반복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것이 재난 영화이기도 하다. 우리 나라에서 시도했던 재난 영화 <해운대> 역시 잠깐의 CG와 감동, 그리고 유머를 뒤섞어 흥행에 성공하지 않았던가. <10000BC>로 처참하게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공식을 깼던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 <2012>에서는 멋진 부활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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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탈케옵스>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토탈 케옵스 - 마르세유 3부작 1부
장 클로드 이쪼 지음, 강주헌 옮김 / 아르테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토탈 케옵스>는 사랑과 복수,라는 거대한 두 줄기의 이야기를 가지고 사건이 진행되는 작품이다. 여러 민족이 한 공간을 공유하는 마르세유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좀더 외롭고 쓸쓸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크게 보면 마르세유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복수를 그린 내용이다. 어린시절부터 이어져온 우정과 사랑, 친구의 죽음과 사랑할 뻔한 여자의 죽음으로 뒤쫓기 시작한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결국은 복수를 달성하게 되고, 진정한 사랑을 찾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이렇게 단순화시키면 왠지 이 소설을 폄하하는 것 같지만(그런 의도는 전혀 없다).  

 아르테 출판사의 '느와르'라는 장르를 표방하고 있는 작품답게, <토탈 케옵스>는 어두운 분위기에서 범죄가 연달아 벌어지는데 딱히 한 장르로 묶지 않아도 될 듯하다. 남자 주인공인 파비오 몬탈레는 사건의 중심에서 밀려난 경찰관으로, 한 여자에 정착하지 않고 사랑을 두려워하는 남자다. 인생을 결정지은 우정을 나눈 친구들이 있고, 친구들의 죽음을 파헤치며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복수를 실행해가는 사람이기도 하다. 일을 시작하면 물불 가리지 않고 추진하며, 자신보다 힘센 적에게 얻어맞기도 하는, 부족한 면이 있는 남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토탈 케옵스>를 읽으며 하드보일드 소설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감정은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터질 때는 확실히 터져주고, 냉소적으로 세상을 대하고 있으면서도 진정성을 갈구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했다.  

 덕분에 간결한 문체로 메마른 느낌을 주는 서술방식이 이어진다. 객관적인 묘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지고, 전적으로 주인공인 파비오의 시선에 의존하고 있다. 때문에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고, 살아가고 있는 마르세유에 대한 애정이 곳곳에서 묻어나온다. 마르세유를 의미하는 책의 소제목들(잠을 자지 않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 곳, 징그러운 세상의 하찮고 하찮은 일에 부대껴야 하는 곳 등) 역시 객관적이기 보다는 상당히 주관적이고, 그래서 오히려 인상적이다.  

 <토탈 케옵스>란 단어는 마르세유의 랩 그룹 IAM의 노래 제목에서 따온 신조어라고 한다. '대혼란'이라는 뜻의. 파비오가 뛰어든 사건의 복잡한 구도 속에서 '토탈 케옵스'라는 말이 인용되는데, 사건의 성격을(혹은 마르세유라는 공간의 상징성을) 잘 나타내주는 단어라 생각된다. 랩 그룹 IAM 뿐만 아니라, 챕터별로 여러 곡의 노래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이 소설의 특징이다. 파비오가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어떤 분위기를 표현한다든지 자신의 기분을 표현할 때 노래의 느낌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인공인 파비오의 취향이라든지, 성격을 알려주는 것으로는 손색이 없는 선택이었지만, 그 음악들을 잘 모르는 독자인 나로서는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노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기획 CD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옮긴이의 말로는 드라마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니, 음악을 듣기 위해서라도 한번쯤은 보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2편의 이야기가 더 남았다. 주인공만 같을 뿐이지 내용이 연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다리는 조바심을 느끼지 않아 좋다. 전형적인 것 같지만, 전형적이지 않은 주인공이라 어떤 사건을 들고 나타날지 조금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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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1월1주

 

 사실 포스터가 조금 바뀌어야 하지 않았을까.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으로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김교위(박인환)와 차교사(조재현)다. 김교위는 사형수와 친구가 되고 여러 명의 사형수를 자신의 손으로 보내면서 '사형제도'에 대해 회의를 가지게 된다. 사형수와 장기를 두며 담소를 나누고, 음식을 싸다주는 김교위는 관객에게 감동과 눈물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선(善)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차교사는 사형수는 사람을 죽인 범죄자이므로 처리해야 할 쓰레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교도관이다. 그는 죄수와의 싸움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이불로 죄수의 입을 틀어막고 곤봉을 휘두르는 인물로, '분노'외에는 죄수에게 보여주는 감정이 없으므로 인간적인 면에서 악(惡)을 상징한다.  

하지만 시각을 바꾸어 자신이 맡은 책임의 무게를 그대로 짊어지려는 사람이 누군가라는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누가 선한 사람이고 누가 악한 인물이 될 것인가. 사형수가 자신의 죄를 뉘우쳤다고 해서 그를 선한 사람이라고 판단해도 될 것인지, 과거에 그가 저지른 죄는 용서가 되는 것인지. 도대체 선이 무엇이고 악이 무엇인지,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집행자>를 통해 생각해볼 수 있다.  

 

 <바스터즈:거친 녀석들>은 <집행자>보다는 좀더 명확한 대립구조를 가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이미 평가를 받은 히틀러를 위시한 나치 일당은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죽이고, 그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단지 '위대한 독일인'이 아니라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이는 나치 일당은 분명 '악'이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한스 란다(크로스토프 왈츠)일 것이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누군가를 속이는 비열함도 감수하고,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자신의 손을 더럽히기도 하고, 명예를 거짓으로 꾸며내려고 하기도 한다.  

 이러한 한스 란다와 대립하는 인물이 엘도 레인(브래드 피트)이나, 쇼사나(멜라니 로랑)일 텐데, 엘도 레인은 단지 한스 란다와 반대쪽이라는 이유만으로 '선'을 상징하는 인물이 된다. 한스 란다에게 부모님을 잃은 쇼사나의 복수와 달리, 엘도 레인의 행동은 어찌 보면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정의나 선의 실현이라는 거창한 목표보다 단지 나치가 싫어서, 자신들의 명성에 명성을 더하기 위해, 그들을 죽이고 머릿가죽을 벗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결국, 이런 전쟁에서 선과 악이란 '내가 누구 편인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 <바스터즈:거친 녀석들>은 우리편의 승리라는 통쾌함은 주지만, 선과 악의 겅계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은 잃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저녁의 게임>은, 어느 것이 선이고 어느 것이 악인지 구분하기 모호한 영화가 아니다. 어린시절부터 이어져 온 아버지의 폭행으로 인해 청력을 상실하게 된 딸의 이야기다. 치매 증세가 온 늙은 아버지(정재진)는 자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 딸(하희경)을 보살피는 자상한 아버지가 아니다. 딸을 여자로 보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애쓰고, 자신의 수족처럼 거느리는, 어떤 면을 보아도 좋은 아버지라 할 수 없는 사람이다. 관객은 철저히 딸의 입장에서 아버지를 바라보며 증오하기도 하고,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동정의 여지가 없는 '악한 사람'인 것이다.  

 딸 성재는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 오히려 절망한 듯 하다. 벗어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은 채 살아간다. 도피할 곳을 찾지 못해 자신의 생각 속으로 도피하는 그녀는, 나쁜 사람은 벌을 받고 착한 사람은 복을 받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결말과는 전혀 상관없는 인물이다. 그러고보면 <저녁의 게임>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결코 보기 편한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선이 악에게 이기지 못하는 것이 우리가 직시해야 할 오늘날의 슬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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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 2009-11-06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린네님 ㅡ서재를 오늘 처음 알게 되어서 아직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ㅡ 영화소개 책감상들이 재미 있어요.^^ 요즘 갑자기 소설,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참이어서 도움이 많이 됩니다. 저녁의 게임도 급 보고 싶군요.^^

그린네 2009-11-07 00:00   좋아요 0 | URL
하하, 감사합니다^^ 개인적인 느낌만 잔뜩 적은 글이라 진짜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기뻐요!
 
집행자 - The Excution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 <집행자>를 보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어떤 남자가 통화를 하며 <집행자>가 '끝내주게' 재미있다고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도 그럴것이 내게는 그다지 재미있는 작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원래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사형제도와 같은 관심의 초점이 되는 소재를 선택했다고 하면, 내가 '싫어하는 배우'가 나온다 하더라도("무전유죄, 유전무죄"를 외치던 실제 인물을 소재로 만든 영화라고 덮어놓고 봤던 <홀리데이>도 그런 경우다. 정말 싫어하던 최민수란 배우가 정말 싫은 모습으로 나왔기 때문에 보는 내내 괴로웠다는.) 일단은 보고야 만다. 보고나면 영화가 주는 메시지에 경도되어 분노하고, 동의하고, 한동안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나다. 사실, <집행자>는 윤계상의 연기력을 의심하는 내게 그다지 반가운 영화는 아니었지만, '사형제도'라는 소재 하나를 믿고 보러 갔었다.   

 이 영화의 문제는, 나처럼 단순명료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택' 혹은 '판단'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아니, 그것을 영화의 문제라고 하기 보다는 역시, 내 취향의 문제라고 해야겠다. 감독의 시선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 영화의 미덕이라고 꼽는 사람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형수는 여러명의 애꿎은 목숨을 앗아간 살인자이고, 그러므로 사람이 아니라 쓰레기다,라고 생각하는 차교사 종호(조재현)가 등장한다. 사람을 여럿 죽인 사형수와 친구가 되어 내기 장기를 두는 김교위(박인환)도 등장한다. 오랜 감옥생활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선한 눈빛의 사형수가 등장하는가 하면, 감옥에 들어와서도 정신 못차리고 피해자 가족에게 으름장을 놓는 질나쁜 사형수도 등장한다. 그러니,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이분법적인 도식, 그러니까 교도관은 좋은 사람이고 사형수는 나쁜 사람이라는 도식이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영화를 보는 내가 판단해야 한다. 도대체 누가 나쁜 것이고,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하지만 김교위와 사형수의 우정을 보며 사형제도가 불필요하다고 느낀 것도 잠시, '개과천선'이란 말의 뜻을 모르는 사형수를 보니 그래도 필요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를 보고 나서도 혼란스러웠다.   

 사형을 집행하기까지 영화는 사형수가 어떤 사람인지, 교도관이 어떤 사람인지 그들의 캐릭터를 잡아나가는 데 주된 시간을 투자한다. 윤계상이 맡은 재경이란 캐릭터는 신입 교도관이어서 그런지 이렇다할 특징 하나를 보여주지 못하고 여기저기에서 겉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지만, 이질적인 면이 강한 차교사와 김교위는 지나칠 정도로 확고한 캐릭터를 구축했다. 차교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지나치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사형집행이 끝나고 난 후의 영화는 흡사 공포영화 같았다.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다 결말로 가면서 지나치게 감정적이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어쨌든, 감독의 의도는 잘 살린 영화인 것 같고, 내가 예상한 그대로 이야기가 진행되어 신선한 느낌은 덜 했고, 생각할 여지를 너무 많이 남겨서 머리가 아프다.  

 어쨌든, 이 영화의 주인공은 사형수가 아니라, 교도관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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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자 - The Excutioner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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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영화가 끝나고 혼란스러움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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