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미초 이야기>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가스미초 이야기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표지를 처음 봤을 때, 왠지 '모범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7,80년대의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기도 했고, 고리타분한 인생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표지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지금은 그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미소만 슬며시 짓게 된다. 아름다운 삶을 살다간,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가슴 한 켠에서 식을 줄 모르고 감동을 자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아사다 지로는, 내게, 소설가라기 보다는, 영화 <철도원>의 원작자로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일련의 단편들은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어느 순간부터 멀리하게 된 작가이기도 했다. 이 책 역시 단순한 단편집인 줄 알고 처음엔 기대감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알고보니 연작 소설이었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알리는 표제작 <가스미초 이야기>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죽음'이란 단어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 슬펐는지도 모른다.  

 사실, 이 책에는 몇 번의 죽음이 등장한다. 친구를 비롯해 할머니, 노신사, 할아버지, 삼촌. 우리의 삶이 죽음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일까.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거나, 아주 어릴 때의 일이거나, 청소년 때의 일이거나, 어른이 되고 난 후의 일이거나, 죽음이란 것은 살아있는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이노의 삶은 몇 번의 죽음을 겪으면서 변화해가고(이노의 학창시절은 '모범적'인 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고, 술과 운전과 여자를 빼고는 말할 것이 전혀 없을 것 같은 방탕함이 가득 차 있지만, 사실 전혀 방탕해 보이지 않는다. 이노 나름의 순수함은 지키고 있고, 이노와 친구들, 혹은 이노와 여자친구들의 모습이 참 아름답고 부러워서일 것이다), 이노 역시 성장해간다. 그러니, 이 소설은 한 편의 성장소설로 읽힐 수도 있다.  

 사라진 '가스미초'는 곧, 사라진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련한 추억, 그들과 함께 나누었던 감정, 대화의 기억, 그들이 남긴 것들을 되새기는 것이 곧, 그들이 살았던 '가스미초'를 떠올리는 것이다. '가스미초'는 할아버지의 자존심이었던 사진관을 통해, 추억 속에서 모습을 갖추게 되고, 할아버지가 한결같은 마음으로 찍은 사진을 통해 구체적인 형상으로 되살아난다. 그것이(사람이든, 장소든 말이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고 해도, 사진 속에서, 사진을 간직한 사람의 마음 속에서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너무나 따뜻했던, 서로를 사랑했던, 가스미초에 살던 사람들. 그들이 함께 살았던 그 곳이 없어져 슬퍼졌다. 그들의 이야기들이 그냥 한구석에서 먼지 쌓인 채 바래져갈 앨범 속 사진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 슬퍼졌다. 가끔씩, 이 뭉클함이 가슴 속에서 잊혀질 때, 쉽게 펼쳐볼 수 있도록 항상 손질해야겠다. 누구나 볼 수 있는 사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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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보트 Young Author Series 1
남 레 지음, 조동섭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작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선택할 때, 가장 먼저 살피게 되는 것이 작가의 프로필이니까. '남 레'라는 작가는 처음 접하는 작가고 특이하게도 베트남에서 태어나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자랐다고 한다. 더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보트>에 실린 첫 번째 단편 '사랑과 명예와 동정과 자존심과 이해와 희생'에서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읊조리고 있다.  

 '사랑과 명예와 동정과 자존심과 이해와 희생'은 에세이를 읽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작가의 모습이 투영된 작품인 듯 했다. 원고를 태워버리는 아버지의 행위는 극적인 느낌을 부각시키는 소설적 장치라 생각되었지만, 그 외의 모든 것들이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이러한 느낌은 작가의 문체에서 기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호흡이 짧고 의미가 명료한, 간결한 문체로 거의 모든 작품이 서술되고 있어 한 편의 일기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한 현재형 어미를 많이 사용해서 현실감을 살리고 있다. 단지, 지나치게 짧고 감정이 절제된 문장은, 서사가 뚝뚝 끊어지는 느낌을 주어서 잘 짜여진 이야기구조를 보여주고 있다고는 느끼지 못했다.   

도달하고 싶은 어느 곳을 찾지만, 그 곳이 어디인지 몰라 방황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는데, <보트>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이 어떤 장소를 의미하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이를 보여준다. 주인공이 가고자 했으나 결국 가지 못했던 '카르테헤나', 주인공의 유년시절 모두가 담긴 학교 '해프리드', 그리고 '히로시마', '테헤란의 전화'까지. 머물 곳을 찾아 방황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단편집에 실린 단편들이 쉬운 내용은 아니다(물론 '일리스 만나기'처럼 신파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진 작품도 있긴 하다). 이국적인 소재와 배경을 가지고 창작된 작품이 많아서(그렇다고 친철히 묘사해주지도 않는다) 더욱 그렇다. 때문에, 시간을 가지고 일독할 자신이 있는 분들께 추천한다.   

 한가지. 걸리는 것은, 역주다. 이 단편집에 실린 주는 모두가 옮긴이의 주인데, 단어마다 괄호를 열어 뜻을 설명하고 역주라고 명시해 두었다. 한두 개 정도면 거슬리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 있겠지만, 책에 실린 두 번째 작품 '카르테헤나'의 경우 지나치게 빈번하게 나와서 끊임없이 몰입을 방해했다.  

 내가 '치바'(버스라는 뜻의 스페인어:역주)를 타자고 말하자, 루이스는, 아니, '푸토'(스페인어 욕: 역주), 그 버스는 그 길로 안 간다고 말했고, (p52) 

 내가 어릴 때, '메디오'(0.5킬로그램이라는 뜻의 스페인어:역주) 용량의 '론 드 메델린'(콜롬비아의 럼주:역주)을 두 병이나 마시고도 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p58) 

 어머니는 신에게 내 '델린쿠엔시아'(범죄라는 뜻의 스페인어:역주)를 용서해달라고 빌며, (p59) 

 '부에노'(음, 글쎄요라는 뜻의 스페인어:역주). (p61) 

 위에서 언급한 것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굳이 스페인어를 살려서 쓰는 것도 그다지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이렇게 많은 주석이 필요하다면, 하단에 달아놓는 것이 독자의 가독성을 높이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더구나 각각 작은 따옴표로 강조되어 있는데, 원서에서 작가가 강조하고 있는 단어인지, 옮긴이가 '주석을 달았기 때문에' 강조하고 싶은 단어인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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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문>을 읽고 리뷰해주세요.
달의 문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주영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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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시모치 아사미의 작품은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이후 두 번째로 접했다.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는 흥미로운 전개를 보이다 동기가 밝혀지면서 허무해지는 '용두사미'를 확실히 느끼게 해 준 작품이었는데, 우려한 것과 같이 <달의 문> 역시 그런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달의 문>은 처음부터 기대감이 낮아 조금은 덜한 듯 하다. 표지부터가 왠지 성의없이 만든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들어 서점에서 쉽게 손이 갈 타입이 아니고, 이야기를 읽기 시작하자 왠지 종교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초인적'인 인물이 등장했다.  

 일단 이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남다른 치유력을 지니고 캠프를 열어 상처받은 아이들을 치료하는 이시미네란 남자의 존재다. 이 남자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다른 세 명의 인물들이 스승님이라 부르며 경애하는 사람인데, 그가 무고하게 검거되자 비행기를 납치하여 스승을 '해방'시켜 달라는 요구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이륙도 하지 않은 비행기 내에서 한 여자가 시체로 발견되면서 사건이 꼬이기 시작한다.  

 비행기 내의 좁은 화장실에서 시체로 발견된 여자. 이 여자와 관련된 이야기는 본격소설의 탈을 쓰고 있다. 우연히 사건에 휘말리게 된 자마미 섬의 티셔츠를 입은 남자(자마미 군이라고 불리게 되는)와 범인 중 한 명인 마카베의 불꽃 튀는(?) 추리 대결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어떤 트릭으로, 어떤 동기가 있어서,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 까지 밝혀내려는 두 사람의 논쟁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감탄하게 되었다. 그것은 본격 추리소설의 팬인 나의 개인적 취향일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여기까지가 딱 좋았다.  

 제목인 '달의 문'의 비밀이 밝혀지면서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이시미네와 관련된 서사구조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등장인물인 자마미 군도 어처구니 없어 하는 그들의 사연을 누가 이해해줄까? 터무니없는 동기로 일어나는 반전까지 더하면, 책을 읽으면서 쌓아왔던 좋은 느낌이 한순간에 전복되는 기분이다. 반전은,,, 차라리 없는 게 나을 뻔 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시모치 아사미는 인간성에 대한 탐구를 좀더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독자에게 공감을 주지 못하는 소설은, 아무리 추리소설이라 하더라도, 결국엔 외면받는 게 아닐까. 더구나, 개인적으로 마음에는 들었으나, 자마미 군의 캐릭터는 지나치게 우연적이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단순히 비행기에 탑승하고 있던 보통 사람이 왠만한 탐정 뺨치는 추리 능력을 가지고 있다니. 이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에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왠지 이 작가의 작품이 나오면 또 읽을 것 같다.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에서도 그랬고, 이번 작품 <달의 문>에서 그랬지만 흡입력 있게 글을 잘 쓰는 작가다. 거기다 독자에게 아주 상세하게 사건의 트릭을 설명해준다. 그러니, 마지막에 욱-하게 될지라도 읽는 동안의 즐거움을 느끼고 싶어서라도 다시 찾을 것 같다. 다음엔 제발, 좀더 나은 작품이 번역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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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파라다이스>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굿바이 파라다이스
강지영 지음 / 씨네21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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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르 소설, 특히 추리 소설을 즐겨 읽는 나는 한국 작가의 장르 소설은 되도록 멀리하는 편이다. 우리나라에서 발전한 장르 소설이란 판타지 소설, 정도로 알고 있고, 추리 소설은 일본이나 여타 외국 소설에 밀려 확고히 자리잡지 못했다고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사실, 강지영의 <굿바이 파라다이스>를 다 읽고 난 지금, 이 소설이 명백한 '추리 소설'이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추리소설이라고 하기에는 환상적인 부분 혹은 초현실적인 부분(과장이 아니라, 이 소설에서는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사건들이 아주, 평범하게 많이 일어난다.)이 꽤 많이 등장해서 현실감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망하지는 않았다. 한국의 장르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동안 움찔하고, 감탄하고, 헉 소리를 내기도 했으니. 이 작품을 계기로 한국의 스릴러나 추리를 표방한 작품들을 멀리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 소설집에서 한가지 특이한 점은, 평범한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외된 사람들, 고민을 가진 사람들, 삶이 고통인 사람들이 꽤 많이 등장하여 마음을 아프게 했다. 성전환 수술을 한 과거를 숨기고 살아가는 여자, 믿고 사랑했던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자, 사랑하는 여자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뒤틀린 남자, 동성애자임이 들킬까봐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남자, 샴쌍둥이, 성도착자 등이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내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는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기 보다는 제목 그대로, 비현실적인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같았다. 그러니 범죄를 저지르는 그들의 심리에 공감할 수 없었고, 그들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작품의 대부분이 범인의 시점에서(혹은 시점의 교차-거의 대부분이 시점의 교차를 이용해 사건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사건에 대한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요소가 아니었나 싶다. 개인적으로, 독자에게 머리를 쓸 여지를 주지 않는 시점의 선택이라고 본다.) 사건이 서술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가장 긴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안녕, 나디아>의 경우가 그러한데, 한 편의 사이코패스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의 동기도 이해할 수 없고, 그의 행동도 이해할 수 없었다. 감정을 지나치게 흘리고 있었음에도, 감정이 없는 '비정한' 살인 기계를 보는 듯 했다.  

 내가 이 소설집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은 처음 실려 있는 <그녀의 거짓말>이었다. 역시 남자와 여자의 교차 서술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강지영에 대한 고정적인 이미지를 내 머릿속에 심어두었는데, 그것은 '서늘함'이었다. 이후에 쭉 이어지는 작품들에서도 '뜨거움'보다는 '서늘함'을 담고 있다. 삶에 대한 열정보다, 자포자기에서 오는 죽음에의 서늘함, 뜨거운 형제애나 우정, 사랑보다 자신을 중시하는 데서 오는 서늘함. 다들 전형적이고 평면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책 속의 주인공들이지만, 사실은 뜨거움을 가장하고 있는 서늘한 현대인들의 모습 그대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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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잘린 뚱보아빠>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마흔에 잘린 뚱보 아빠
나이절 마쉬 지음, 안시열 옮김 / 반디출판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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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란 예로부터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으로 인식되어 왔다. 현대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높아지면서 남자와 여자가 경제적인 면에서 동등하다는 인식 역시 확대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남자에게 경제적인 책임감이 더 크게 부여된 듯 하다. 이 책은 그러한 전제 하에, 네 명의 아이들이 쑥쑥 자라고 있고, 부인은 경제력이 없는 한 집안의 가장이 써내려간 이야기다.  

 제목에서 그대로 보여주듯, 이 남자는 마흔이 되어 회사 합병으로 인해 졸지에 일자리를 잃게 된 사람이다. 보통의 회사원이 아니라 CEO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었다는 것이 다르긴 하지만, 이 남자에게 먹여살려야 할 어마어마한 식구가 있다는 사실은 다르지 않다. 가을이 되어 슬픈 이야기는 읽고 싶지 않았는데, 표지의 느낌 대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무거운 이야기를 가볍게, 어두운 이야기를 밝게 풀어내는 것이 이 남자의 특기인 듯 하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주어진 기회를 적극 이용해서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이 남자가 가진 특별함 아닐까. 일자리를 잃었다는 좌절감에 술을 마시고,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잃었다는 자괴감에 아내와 아이들에게 화풀이를 하는 보통 드라마의 남자들과는 다른 바로 그것 말이다.  

 살아가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기 위해 살아가는 주객전도의 상황을 아마 모든 남자들, 혹은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겪고 있을 것이다. 내가 원하던 삶이란 이런 것이 아니었어,라든지.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은 누구나 한 번 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일에 시간을 뺏기면서 주위의 사소하고도 소중한 것들에게 눈 한 번 돌리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남자 역시 그러했으나(자신을 이해하는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여쁜 아이들에게서 떨어져있고 싶어 집에 일부러 늦게 들어가기도 하고, 괜한 짜증을 내기도 하면서), '백수'가 되면서 자신의 삶에 자리잡은 사소하고도 소중한 것들에 눈 돌리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아빠가 되었고,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아빠가 되었고, 부인 대신 떨어진 치약을 사러 갈 줄 아는 남편이 되었다.  

  이처럼 소소한 에피소드에서부터 솔직한 심정까지 모두 담겨 있는 것이 바로 이 책, <마흔에 잘린 뚱보 아빠>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무겁지 않은 것이 이 이야기의 장점이다. 내 가정에 닥쳐온 일이라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을 상황인데, 나이절 마쉬는 통통 튀는 유머감각으로 유쾌하게 써냈다. 그 유쾌함 속에 담겨 있는 남자의 인생, 그것이 궁금하다면 주저하지 말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 하나를 뺀 것은- 마흔이라는 나이가 다가오는 것이 무서운, 그냥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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