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균형>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적절한 균형 아시아 문학선 3
로힌턴 미스트리 지음, 손석주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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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도 작가, 로힌턴 미스트리의 장편 소설 <적절한 균형>. 읽지 않았으면 정말 후회했을 좋은 작품을 만났다. 880여 페이지에 이르는 상당한 분량의 소설이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기 때문에 들고 다니면서 읽기에 상당히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 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었다.  

 남편을 잃고 혼자 살아오다 큰 회사에 옷을 만들어 납품하는 일을 맡으면서 재봉사를 거느리게 된 디나, 디나의 관리 하에서 재봉일을 하게 된 이시바와 그의 조카 옴프라카시, 디나의 집에서 하숙을 하게 된 동창생의 아들 마넥. 이 네 사람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지만, 이 소설은 네 사람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그들의 부모님, 형제, 남편, 친구, 동료 등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얽혀 있다. 그래서 처음 읽을 때는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디나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면, 그녀의 어린시절부터 부모님의 이야기, 오빠의 이야기, 남편의 이야기,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들이 쭉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시바와 옴, 마넥의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들이 살아온 삶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이고, 그들이 살고 있는 삶의 현재를 보여주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어느 하나도 헛되이 읽어 내려갈 수가 없다.   

 슬펐다. 놀라웠다. 안타까웠다. 사라졌다고 했지만 사라지지 않은 카스트 제도의 관습, 인간다운 삶이라고 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 살아가는 빈민촌의 모습, 거지들의 세력화, 서구의 문명이 들어오며 파괴되어 가고 있는 전통, 지식인의 집합체라 할 수 있는 대학의 현실, 거짓과 폭력과 보여주기로 일관하는 정치세력, 권리는 없고 강제만이 존재하는 가족 계획 등.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혹은 막연히 알고 있던 인도의 현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그러한 현실은 확실히 알 수 없는 먼 옛날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내기가, 힘들었다.  

 소설의 주인공들이란, 어떤 고난이나 역경을 만나더라도 이겨내기 마련이다. 행복해져야 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이다. 하지만 <적절한 균형>의 인물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삶일지라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고, 자기에게 여유가 없어도 남을 도와줄 줄 알고, 결혼을 하거나 가게를 꾸리거나 독립하는 등의 꿈을 꾸고 있기도 한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행복이란 사치, 잠깐의 행복은 곧 찾아올 불행을 암시할 뿐이다. 잠깐의 행복을 맛보았기에 뒤이은 불행이 너무나 안타깝고 그렇게 아플 수가 없었다. 그래도 너무 신기한 것이, 이 사람들이 그러한 불행에도 '곧' 적응하며 그 생활에서 또 웃음을 찾는다는 것이다(물론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모습이 또 마음을 아프게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한 삶의 방식을 가지게 되지 않았나 싶어서 말이다. 그러니, 가진 자의 편이고, 가지지 못한 자를 절망의 구렁텅이에 몰아넣는 정부가 미울 수밖에 없다.  

 옮긴이의 후기를 읽으니, <적절한 균형>이란 개인과 역사, 개인과 국가와의 관계에서의 균형을 의미한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 거창하게까지는 모르겠다(물론, 개인의 인생에 '법' 혹은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끼어들어 이래라저래라 하거나, 인생의 길을 바꿔놓는 정부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기 이전에, 그냥 '사람'의 이야기로 읽고 싶었다). 표지로 쓰인 다리오 미티디에리의 사진 '장대 위의 소녀'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원숭이 주인이 두 어린 조카를 데리고 부리는 묘기를 연상시킨다. 장대에 두 아이들을 묶고 엄지 손가락 위에 올리는 묘기를 부리는 원숭이 주인은 '살아가기 위해' 그렇게 위험한 일을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비난받게 된다. 삶이란, 원숭이 주인의 모습처럼 위태위태한 것이 아닐까. 부유함과 가난함, 선과 악, 행복과 불행, 진실과 거짓, 저항과 복종. 그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야 덜 불행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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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비>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리틀 비 Young Author Series 2
크리스 클리브 지음, 오수원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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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틀비는 물론, 그녀의 본명이 아니다. 그녀가 살아남기 위해 언니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감추기로 하면서 그녀의 이름은 '리틀비'가 되었다. 그녀는 가끔씩 그 이름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리틀비라는 이름을 버렸을 때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 지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 손가락을 잃은 새라와, 배트맨으로 살아가며 세상의 모든 악을 물리치려고 하는 새라의 아들 찰리를 만나며 사랑을 깨닫고, 소중함을 깨닫고, 결국엔 자신의 이름을 찾는다.  

 "고통이 유별난 거라고 생각하면 그건 틀린 거예요. 고통은 바다와 같아요. 세상의 3분의 2를 뒤덮고 있죠." (p.221)

 리틀비가 어린 나이의 소녀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전부 다 아는 듯한 말을 하는 것은 고난의 연속이었던 몇 년간의 기억 때문이다. 자원을 둘러싼 외부인들과의 다툼에 희생된 가족, 그리고 목격자라는 이유로 쫓겨야했던 언니와 리틀비. 그 날, 해변에서 앤드루와 새라를 만났던 날, 언니의 마지막을 그냥 보고 있어야만 했던 그 날, 리틀비는 아무 것도 몰랐던 순수한 시골 소녀에서 벗어났다. 살아남기 위해서 영어를 배웠고, 살아남기 위해서 '잘' 말하는 법을 배웠다. 살아남기 위해서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고, 살아남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새라와 찰리를 만나 그녀는 상처를 보듬어 주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어쩌면, 피부색이 다르고 자신이 속하지 않은 이 곳 영국에서, 새라와 찰리를 보듬으며 함께, 살아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   

 리틀 비, 이 곳에 타인이란 없어. 이 행복한 사람들, 서로 섞인 이 사람들은 같으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들이고 이 사람들이 바로 너야. 아무도 널 그리워하지 않을 테고 아무도 널 찾지 않을 거야. 그렇다면 이 혼혈의 나라로 걸어들어가서 그 일부가 되지 못할 일이 뭐지? 나는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리틀 비, 그렇게 섞이는 것, 아마 그게 네가 해야 할 일일 거야. (p.345)

 희망은 실현된걸까. 리틀비의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을 때, 현실은 악몽과도 같지만, 리틀비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바가, 리틀비의 입을 통해서 지나치게 직설적으로 언급된 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리틀비>는 좋은 책이다. "나더러 '잘했어'라는 말은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말은 개가 나뭇가지를 물어왔을 때나 하는 말이예요"(p.356)라고 리틀비가 말하는 것처럼, 은연 중에 무시하고 있는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리틀비가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나이지리아에서 영국으로 도망쳤지만 '공식적'으로 나이지리아는 안전한 나라라는 점이나, 영국인으로 태어났거나 국적을 가져야만 가치있고 여기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는 여자 경관의 말이나, 수용소에서 풀려났으나 자살하고 마는 이름모를 여인이나-. 너무나 많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소설이라 사회적인 문제를 넘어, 세계적인 화제거리로도 생각할 요소가 많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제기하고도, 마지막에서는 소설 속의 세계로 환원시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듯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결국은, 소설이 해결해 줄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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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광기
라우라 레스트레포 지음, 유혜경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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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선택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게 되는 것은 '작가'이다. 그 다음이 내용, 그리고 평점 정도가 아닐까. 그런 면에서 이름을 기억하기도 힘든 콜롬비아의 낯선 작가 '라우라 레스트레포'의 작품은 선택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순위에 놓여있다. 거기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실제로 책을 봤다면, 띠지를 벗겼을 때의 표지가 상당히 선정적이라는 점에서 구입하기가 망설여졌을 것이다. 또한 '광기'라는 주제 자체가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에 역시 기대를 갖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내가 이 책에서 가진 단 하나의 기대는 '마르케스'의 추천사 정도였다.   

  "작가는 기자 특유의 취재력과 문학적인 상상력을 동원해 소설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애절한 멜로드라마로 전락할 위험에 빠지지 않고 고고함을 유지하면서도 읽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작가의 감각이 탁월하다. 문학적 유머감각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나는 마르케스만큼의 안목을 지니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당연하겠지만, 이 글에서 문학적 유머감각을 제대로 만끽하지 못했다. 하지만 읽는 즐거움은 발견했다. 이 글은 특이하게도, 대화와 서술을 구분해주는 그 어떤 표지도 쓰이지 않는다. 따옴표도, 문단을 나누어 문장을 구분해주지도 않기 때문에 처음 읽을 때엔 괴롭다. 어디까지가 대화이고 어디까지가 서술인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챕터가 온전한 한 문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서술자가 번갈아가며 달라지기 때문에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잡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 이야기의 흐름을 잡아내게 되자, 읽는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누가 이야기를 하는지 파악하고, 실제로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느낌까지 받게 되었다.  

 처음부터 광기에 사로잡힌 여인으로 등장하는 아우구스티나가 왜 그렇게 되었는가,라는 의문에서 시작하는 <광기>는 아우구스티나의 남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확실히 말하자면 동거 중인 남자) 아길라르, 아우구스티나의 옛 남자친구이자 큰오빠의 친구인 미다스, 아우구스티나의 이모이자 그들의 가정을 파괴한 장본인인 소피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물론 아우구스티나가 가끔씩 원래의 정신으로 돌아올 때 들려주는 과거의 이야기도 있다). 그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아우구스티나가 광기에 사로잡히게 된 이유를 알아내려 하고. 그 이유가 '과거'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길라르가 아우구스티나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일기를 발견하여 엮어가는 과거,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아우구스티나가 방황하던 시절을 함께 했던 미다스의 과거, 아우구스티나의 가족을 뿔뿔이 흩어지게 했던 소피의 과거가 모두 합해져 '아우구스티나가 광기에 사로잡힌 이유'를 알게 되는 것이다.  

 읽기가 쉬운 작품은 아니었지만,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었다고 생각된다. 마르케스를 위시하여 중남미 작가들의 작품은 문화적 이질감에서 오는 낯설음은 존재하지만, 충분히 몽환적이고 그래서 매력적이다. '라우라 레스트레포'의 이름도 다른 작품을 위해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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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탈케옵스>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토탈 케옵스 - 마르세유 3부작 1부
장 클로드 이쪼 지음, 강주헌 옮김 / 아르테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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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탈 케옵스>는 사랑과 복수,라는 거대한 두 줄기의 이야기를 가지고 사건이 진행되는 작품이다. 여러 민족이 한 공간을 공유하는 마르세유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좀더 외롭고 쓸쓸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크게 보면 마르세유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복수를 그린 내용이다. 어린시절부터 이어져온 우정과 사랑, 친구의 죽음과 사랑할 뻔한 여자의 죽음으로 뒤쫓기 시작한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결국은 복수를 달성하게 되고, 진정한 사랑을 찾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이렇게 단순화시키면 왠지 이 소설을 폄하하는 것 같지만(그런 의도는 전혀 없다).  

 아르테 출판사의 '느와르'라는 장르를 표방하고 있는 작품답게, <토탈 케옵스>는 어두운 분위기에서 범죄가 연달아 벌어지는데 딱히 한 장르로 묶지 않아도 될 듯하다. 남자 주인공인 파비오 몬탈레는 사건의 중심에서 밀려난 경찰관으로, 한 여자에 정착하지 않고 사랑을 두려워하는 남자다. 인생을 결정지은 우정을 나눈 친구들이 있고, 친구들의 죽음을 파헤치며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복수를 실행해가는 사람이기도 하다. 일을 시작하면 물불 가리지 않고 추진하며, 자신보다 힘센 적에게 얻어맞기도 하는, 부족한 면이 있는 남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토탈 케옵스>를 읽으며 하드보일드 소설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감정은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터질 때는 확실히 터져주고, 냉소적으로 세상을 대하고 있으면서도 진정성을 갈구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했다.  

 덕분에 간결한 문체로 메마른 느낌을 주는 서술방식이 이어진다. 객관적인 묘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지고, 전적으로 주인공인 파비오의 시선에 의존하고 있다. 때문에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고, 살아가고 있는 마르세유에 대한 애정이 곳곳에서 묻어나온다. 마르세유를 의미하는 책의 소제목들(잠을 자지 않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 곳, 징그러운 세상의 하찮고 하찮은 일에 부대껴야 하는 곳 등) 역시 객관적이기 보다는 상당히 주관적이고, 그래서 오히려 인상적이다.  

 <토탈 케옵스>란 단어는 마르세유의 랩 그룹 IAM의 노래 제목에서 따온 신조어라고 한다. '대혼란'이라는 뜻의. 파비오가 뛰어든 사건의 복잡한 구도 속에서 '토탈 케옵스'라는 말이 인용되는데, 사건의 성격을(혹은 마르세유라는 공간의 상징성을) 잘 나타내주는 단어라 생각된다. 랩 그룹 IAM 뿐만 아니라, 챕터별로 여러 곡의 노래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이 소설의 특징이다. 파비오가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어떤 분위기를 표현한다든지 자신의 기분을 표현할 때 노래의 느낌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인공인 파비오의 취향이라든지, 성격을 알려주는 것으로는 손색이 없는 선택이었지만, 그 음악들을 잘 모르는 독자인 나로서는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노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기획 CD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옮긴이의 말로는 드라마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니, 음악을 듣기 위해서라도 한번쯤은 보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2편의 이야기가 더 남았다. 주인공만 같을 뿐이지 내용이 연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다리는 조바심을 느끼지 않아 좋다. 전형적인 것 같지만, 전형적이지 않은 주인공이라 어떤 사건을 들고 나타날지 조금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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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되고 싶었던 버스 운전사>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신이 되고 싶었던 버스 운전사
에트가 케렛 지음, 이만식 옮김 / 부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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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짧은(2~3페이지 분량의) 단편들이 가득 들어있는 책, <신이 되고 싶었던 버스 운전사>.   

 작가인 '에트가 케렛'에 대한 소개는 책 날개 외에도 옮긴이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옮긴이는 작가와 친구라고 밝히고 있는데, 그로 인해,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 단편집이 뛰어나다는 얘기인지 친구로서 그렇게 생각한다는 얘긴지 애매모호해졌다). 나는 프로필에서 칭찬하고 있는 작가의 영화를 본 적이 없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으니 선입견 없이 글을 읽을 수 있었다.  

 처음엔 '좋은 생각'과 같은 소소한 이야기를 담은 잡지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분량이 짧다보니 소설이라기 보다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서술한 수필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이 단편집이 주는 매력이었다. 소설적인 장치가 거의 없는 것.  

 표제작 <신이 되고 싶었던 버스 운전사>만 하더라도, 그가 자신의 원칙을 깨고 에디를 태웠을 때, 영화 '슬라이딩 도어즈'처럼 인생이 바뀔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야 하는데(이것이 우리가 적어도 기대하는 '극적인' 전개가 아니겠는가) 사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실망스럽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고. 이러한 전개가 단편집 전반을 흐른다.  

 가장 크게 웃었던(그러면서도 슬펐던) 작품이 '공중 곡예사 산티니'이다. 공중 곡예사가 되고 싶어하는 아리엘은 곡예사가 되기 위해 시험(?)을 치르게 되는데, 몇 가지 관문을 통과하고는 유연성 테스트를 거친다. 일반적으로 '주인공' 위주로 생각하는 나, 혹은 일반 독자들은 거뜬히 통과하여 성공적인 인생의 길을 걷게 되리라 예상하지만, 역시, 이 책은 그 예상을 보기좋게 뒤엎고 만다.   

 '나무와 유리가 함께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아리엘은 그만 뼈가 탈골되고 만다. 엄청난 소리가 들린다고 할 때, 난 습격을 받았다든지 하는 '액션'을 떠올렸는데 아리엘의 뼈가 탈골되는 소리였던 것이다. 이렇듯 극적 사건보다는 현실성 있는 결말로 처리하면서 허를 찌르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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