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년간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를 해오면서 소위 '벽돌책'이라 불리는 것들도 여러권 읽었다. 마지막에 읽었던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은 그중에서도 절정이었는데, 그 책을 다 읽은 걸 스스로 대견해했다. 이 책까지 읽었으니 세상에 읽지 못할 책이 어딨을까, 다른 책들은 이제 모두 쉽다...라고 생각하면서, 이달의 책인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읽기를 좀 미루고 있었다. 어차피 1월에 다 읽으면 되는거고, 고작, 겨우, 400페이지의 책인데 뭘. 2-3일이면 끝내지 않겠어? 하하하하. 그렇게 나는 뒤로 미루면서 다른 책들을 읽어가는 와중에, 다른 멤버들은 이 책을 시작하더라. 으응, 시작하세요, 난 좀 늦게 가지만 어쨌든 완독할테니까,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런 마음으로 여유 빵빵이었는데, 어제 멤버 1이 자신은 서문만 읽었다고 하고, 며칠전 멤버2는 '제2의 성보다 어렵다'고 하길래, 뭐, 일 얘기고, 나는 일하는 사람인데 뭐, 아하하하하하하하, 그러면 살짝 발을 담갔다가 후루룩 그 김에 다 읽어버릴까? 하고는 어제 이 책을 펼쳤다.


그러니까 내 머릿속에서는,


아, 어렵다 그래서 쫄아서 시작했는데, 책장 빨리 넘어가던데요? 다 읽었어요.


이거 할라 그랬거든?


그런데 나는 이 책의 서문조차도 다 읽지 못했다. 제2의 성보다 어렵다는 멤버의 말을 떠올리며, 와, 그 말이 사실이었어...적극동의하였으며, 그래도 서문은 다 읽었다는 다른 멤버의 말에 서문은 다 읽고 자자 하였지만, 넘겨도 넘겨도 힘들게 넘겨도 서문이 끝나지 않는 것이었다. 하아-


오늘은 여기까지. 그렇게 나는 서문 읽는 것 조차도 포기합니다.

서문이여...




노동은 경제적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할 뿐 아니라 사회적 · 정치적 주체를 탄생시킨다. 다시 말해 임금관계는 소득과 자본을 창출할 뿐 아니라, 규율에 따르는 개인, 통치 가능한 주체, 가치 있는 시민, 책임감 있는 가족 구성원을 낳는다. 실제로 노동이 개인의 삶과 사회의 상象에서 차지하는 구심적 역할을 감안하면, 노동은 다양한 주체성에 대한 탐구에서 중요한 지점을 점할 수밖에 없다. (p.22)



나는 고등학교 때 아르바이트 했던 것부터 지금까지 20년 이상을 일해오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을 하는건데, 물론 그 사이에 이십대 중반에 2개월쯤의 공백기간이 있었다. 잠깐 백수로 지냈던 시간. 한 직장에서 다른 직장으로 옮기기까지 2개월의 텀이 있었던건데, 그 2개월을 나는 '그간 열심히 일했으니 충분히 놀고, 충분히 쉬고 그 다음에 직장을 구하자' 하였지만, 그런 마음은 며칠 가지 않았다. 오전에 집에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라 치면 '너 왜 집에 있니'란 물음에 답하는 것이 너무 짜증이 났다. 그전에 분명 일했고 또 앞으로 일할 것이 분명함에도 나는 그 2개월간 나를 무가치하고 쓸모없게 느꼈다. 새로운 것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자, 라고 생각하였지만 사실 뭘 해야할지도 잘 몰랐고 또 열심히 하지도 않았다. 그 사이에 내가 한 일이라고는 운전면허 1종을 따둔 것이었는데, 이러면서도 스스로가 한심해 견딜 수가 없었다. 놀면서 하는 게 이렇게 없어서야, 원. 막상 내 친구는 나한테 '제대로 쉬지도 못한다'고 지청구를 늘어 놓았지만.


어쨌든 충분히 놀고 싶었지만 노는 것도 뜻대로 안되어 다시 취직을 했고, 그게 지금까지 이르렀다.



모든 직장인들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도 매일매일 수차례 그만두고 싶다. 점잖게 '그만두고 싶다'로 그치는 게 아니라, '씨발 그만두고 말지' 이런 말이 절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일 수도 있고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직장이란, 물론 그렇지 않은 직장도 있겠지만, 계급이 가장 확실히 보여지는 곳이고 상사의 명령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곳이다. 특히나 나처럼 제조업이라면, 임원들이 전부 나이 많은 남자들이라면 더하다. 이 안에서 살아남으면서 위로 올라간다는 것은, 여자로서 쉽지 않은 일이다. 남자들 역시나 일터에서 많은 고충을 겪어야겠지만, 여자는 거기에 몇가지를 더한다고 해도 좋다. 우리 회사에 임원중에 여자가 없는 것만 봐도 증명되는 게 아닌가.



나 역시도 매일 그만두고 싶어하고 어떤 날은 심하게 그만두고 싶어서 사직서를 내기도 했다. 임원은 내 앞에서 내가 제출한 사직서를 찢어버렸고 그래서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관두고자 하면서도 사실 많은 부분 내가 직장인, 회사원이기 때문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도 어느 순간에는 안정적으로 여겨진다. 조직적으로 일하는 거, 일을 분담하는 거, 직급이 올라갈수록 책임감을 느끼는 것도 내가 직장생활을 하기 때문에 겪을 수 있고 알게된 것들이다. 복도에서 다른 팀의 직원들을 만났을 때 반가이 인사를 하노라면, '내가 회사에 다니지 않았으면 다 모르고 살았을 사람들이겠지'라는 생각에 슬몃 웃음도 난다. 정말 그러고 싶진 않지만, 일하는 시간과 일하는 곳에서의 에너지 모두 내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일에 이토록 많은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았고, 일에 이토록 많은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지만, 그러나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내 의지와는 다르게, 나는 일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이 나올테니 이 책이 어려울 리가 없잖아? 쉬워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나 나는 서문의 책장 한 장을 넘기는 것이 너무나 어렵고, 그래도 서문만이라도 읽고 자자 하다가 읽어도 읽어도 서문이 안끝나, 대체 서문이 어디까지야, 하고 뒤로 넘겨보니 60페이지를 넘어가더라. 하아. 그래, 서문만..서문만.. 하였지만 너무 안되어서.. 아 포기다, 하고 서문도 다 읽지 못했다. 어떻게 제2의 성보다 어려울 수 있지, 어떻게?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요?




그렇게 서문의 반을 채 읽지도 못한 채 지쳤다가, '한나 아렌트'를 만난다. 무려 '서문'에서 한나 아렌트가 나와. 네?




여기서 나는 일과 노동의 관계에 주목하게 된다. 이 책의 목적을 고려하여 나는 두 용어를 서로 대체할 수 있는 것처럼 사용할 것이다. 이로서 자주 그러나 변덕스럽게 제기되곤 하는 둘 사이의 차이를 거칠게 다루고자 한다. 이 문제에 관한 중요한 학자로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를 들 수 있을 것이다. (1958) 아렌트는 생물학적 존재로서 삶을 영위하기 위한 활동으로서의 노동labor 과 대상 세계를 창조하는 활동으로서의 일work을 구분함으로써 세 번째 범주의 활동, 즉 행위action의 특이성을 강조했다. 여기서 행위는 공적 영역에서의 정치적 활동을 뜻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더 확장적이며 가치 있는 활동으로 그려지는 것은 노동-보다 정확히는 살아 있는 노동living labor-이다. 여기서 살아 있는 노동은 자본이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활용하는 인간의 집단적이고 창조적인 역량으로 개념화되면서, 비판적 관점과 유토피아의 가능성을 동시에 이끌어 낸다. (p.31)



위의 31페이지 인용문....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나는 모르겠다. 다만, 한나 아렌트를 언급했다는 것만 알겠다. 나는 이 책의 서문을 삼십몇페이지에서 읽다가 던져버린다. 그리고 아아, 모르겠다, 한나 아렌트를 읽고 다시 시도하자, 하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내가 오늘 들고온 책은 무엇?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모르겠다. 내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건지, 잘 가고 있는건지. 1월 도서 너무 어려워서 미쳐버릴 것 같구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제가 이 한나 아렌트를 끝낸 다음에 다시 1월의 도서로 돌아갈게요. 아니 1월 도서는 무슨 제목부터 이렇게 길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주말에 중년의 남자연예인들의 문자대화가 이슈가 되었다. 그런 내용들을 주고받는다는 게 더이상 충격이진 않았다. 어차피 대학생들의 단톡방이 청년이 되면 정준영 승리의 단톡방이 되고, 그들이 고스란히 자라 그런 중년이 되는 것이니까. 그들은 그러니까 자신들이 살던 그대로 어른이 되었을 뿐이다. 어른이란 말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대학생이 청년이 되고 청년이 중년이 되면서 그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대로, 바로 거기에서 멈춰있다.



중년의 인기있는 남자 배우들이라면 분명 경제적 여유도 있을 터였다. 경제적 여유가 있다는 것은 시간적 여유도 동시에 가질 수 있음을 뜻한다. 이제는 예전처럼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먹고살 돈이 충분히 있는 상황. 그렇다면 인생을 좀 더 다른 식으로 살아도 좋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중년의 여유를 가진 남성들의 대화가 고작 '성매매'와 '골프' 밖에 없냐는 거다. 그 가득찬 대화창으로 하는 말이라고는 고작 골프와 성매매가 전부라니. 너무 한심하지 않은가. 자신들이 가진 시간과 돈으로 생각할 수있는 게 그것 뿐이란 말인가, 정녕. 너무 한심하다, 너무. 여성을 성적대상화 하는 게 하는 일의 전부야. 여성을 사고 팔고 '떡치는 게' 시간과 돈을 잔뜩 가진 자들이 할 수 있는 전부라니. 여성을 그저 성적 도구로 보는 것도 끔찍하지만, 그 나이에 그것밖에 못하는 것도 너무 한심하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기 발전을 더 하기에 아주 유리한 조건에 놓여있으면서도 어떻게 그래, 어떻게. 그럴거면 공부하고 싶어하고 열심히 살고 싶어하고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싶어하고 시야를 넓히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에게 그 돈을 다 기부해라 진짜.. 머릿속에 골프랑 성매매밖에 없는 삶... 그런 삶은 도대체 스스로에게 어떤 만족을 가져올까. 게다가 가장 친한 친구와 나누는 대화가 그것 뿐이라니. 아니 그게 정말 스스로 괜찮아요? 다른 여자의 나이를 묻고 몸매를 묻고 자빠뜨리자는 의기투합하는 게, 그게 친구와 나누는 대화의 전부인 게, 그게 정말 스스로 만족스러워? 그래?


그런 중년의 남성들에게 매일 일기 쓰는 걸 권합니다.

일기를 쓰세요. 매일. 매일 쓰세요. 짧게라도 일기를 쓰세요.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읽어보세요.

그러고도 그런 삶을 여전히 살게 된다면, 당신이 진정한 한심이.... 가망없는 한심이......






아무튼 나는 한나 아렌트를 읽을 것이고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도 읽을 것이다. 완독해야지.

아니 근데 내가 페이퍼 쓰려고 이 책을 검색하는데


'우리는 왜 이토록'


까지만 쳐도 안나오고


'우리는 왜 그토록'


까지만 쳐도 안나와서 대체 왜 안나와, 왜. 이토록 아니면 그토록인것 같은데, 왜?

하고 어제 내가 독서앱 IReadItNow 에 올린 걸 보니,


'우리는 왜 이렇게'



였어..... 나여........




아무튼 1월의 도서는 매우 어렵습니다, 매우. 여러분 열심히 읽고 글 써요!! 뽜샤!!

나는 완독할 수 있을 것인가. 두구두구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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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1-13 0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어렵다는 다락방님 말씀이 다 이해가 되고(어렵다는 말 제일 먼저 한 사람), 그리고 그 슬픔과 절망에 깊이 공감하지만,
그런데도 이렇게 멋진 페이퍼가 탄생한거에 대해서는 이 책에게 고마워해야할 듯 합니다.
한나 아렌트,를 읽으면 도움이 될까요? 저는 어제밤까지 하염없이 어깨 뒤로 글자를 던지다가 결국 오늘 아침에는 다른 책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42쪽의 위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1-13 09:41   좋아요 0 | URL
한나 아렌트를 읽으면 도움이 된다고는...말씀드리지 못하겠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너무 다른 책으로 도망가고 싶었지 말입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저도 이 책은 글자만 읽는 것으로 그 소임을 다할 것 같아요. 내용파악까지는 무리일듯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저도 어깨 뒤로 글자를 던지는 걸로... 하아-

블랙겟타 2020-01-13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장으로 진입하시면요.. 이젠 베버가 자주나온답니다..(소근소근)

다락방 2020-01-13 10:23   좋아요 0 | URL
뭐..뭐...뭐....뭐라고요?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비연 2020-01-13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문 읽는 중인 저로선, 스타트는 빨랐으나 느림보 궁뱅이인 저로선 정말.. 서러움이.

그나저나 ˝오전에 집에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라 치면 ‘너 왜 집에 있니‘란 물음에 답하는 것이 너무 짜증이 났다. 그전에 분명 일했고 또 앞으로 일할 것이 분명함에도 나는 그 2개월간 나를 무가치하고 쓸모없게 느꼈다.˝ 이거 저도 느꼈던 거에요 ㅋㅋㅋㅋㅋㅋ 정말이지 잠깐 쉬는데도 어찌나 눈치가 보이고 어찌나 힘들던지.

다락방 2020-01-13 11:05   좋아요 0 | URL
비연님, 쇼님과 저와 비연님이... 아직 서문중입니다. 그런데 서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정녕 ㅠㅠ

누구도 뭐라하지 않았는데 스스로를 무가치하게 여겼던 그 짧은 시간이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이 책을 읽으면 그에 대한 답을 알 수 있을까요? 열심히 읽는 게 답인데 열심히 읽을 수 없게끔 어렵네요 ㅠㅠ

moonnight 2020-01-13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책은 다락방님께 맡깁니다ㅎㅎ; 주진모가 해킹되어 돈 요구받았다는 문자가 그런 내용이었나보네요 장동건까지@_@;;; 저는 뭐, 그러려니 합니다. 실망스럽지도 않아요ㅠㅠ;

다락방 2020-01-13 13:19   좋아요 0 | URL
해킹해서 공개한 사람도 한남인듯 합니다. 저 중년의 배우들이 주고받은 여성의 사진들이 얼굴 하나 가리지 않고 그대로 공개되었어요. 하아.. 어찌나 한심한지.

어떤 아이돌은 공개하지 말라고 돈을 줬다고 하는데, 그 사람은 공개되면 어떤 것들이 잇었을까요.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단톡방속에서 자라는 한국의 자랑스런 남자들이네요.

꼬마요정 2020-01-13 1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왜 이렇게 열심히 오래 일하는가.... 이건 분명 세뇌당해서일거에요.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다들 일하냐구요. 우린 모두 매트릭스 안에서 일 하는 게 당연한거고, 노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세뇌당한 게 틀림 없어요. 솔직히 노는 게 훠얼씬 좋은데 말이죠. 일을 줄여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못 하고, 한나 아렌트는 너무 어려운 말로 노동과 일과 제3의 범주를 말하네요.

해킹당했다는 기사만 보고 내용은 아예 안 봤지만 안 봐도 뻔한 거였군요. 요즘 김용의 영웅문 읽다 보니, 저 남자들에게 무공을 연마하라고 하고 싶네요. 마음 수양도 좀 닦고... 아니면 기 수련을 하거나 주짓수를 배우거나 요가를 하거나...세상에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관심이라고는 여자, 여자랑 같이 골프 뭐 이런 건가요... 아니면 ‘제 2의 성‘을 읽던지... 뭐 본능 본능 하는데 성욕도 충분히 참아지는 거니까요. 그러고보니 그것도 세뇌당한 거 같아요. 남자의 성욕은 참을 수 없다. 뭔 멍멍이 소리인지...

음.... 너무 흥분했어요. 잠시 심호흡하고, 벌써 월요일 점심이에요 ㅎㅎㅎ 곧 주말이 올 거에요. 우리 한 주 힘내요!!!

다락방 2020-01-13 13:22   좋아요 1 | URL
꼬마요정님, 제가 아직 서문도 다 읽지 못해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 책의 본문에 들어가면 우리가 너무 열심히 일하도록 세뇌당했다는 내용이 펼쳐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읽으면서 차차 글로 풀어보도록 하지요. 가능하다면 말입니다.

저도 저들이 제2의 성을 읽는다든가 하는 식으로 여가를 보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 지금과는 확실히 삶의 질이 달라질텐데요.
남자배우들하고 골프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성매매를 하는듯 하더군요. 여성의 사진 돌려보며 품평하고요. 너무 한심하죠, 너무. 머릿속에 골프랑 성매매 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보부아르를 읽는것이야말로 저들이 해야할 일인데요..

주말을 기다리며 오늘도 잘 견뎌봅시다, 꼬마요정님!

hnine 2020-01-13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그런 책이군요.
우리는 왜 이렇게 열심히 오래 일하는가. 일 안하고 있는 것이 어떻게 보면 일 하는 것보다 더 어렵기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일 안하면서 마음 편하기란, 쉽지 않더라고요.
living labor, 그러니까 이게 제일 이상적이란 말인거죠? 인용문 읽어보았습니다 ^^

다락방 2020-01-13 13:24   좋아요 0 | URL
페미니즘과 마르크스를 다 다룬다고 하니 엄청 흥미롭고 그래서 제대로 읽고 또 제대로 글을 써보고 싶은데, 서문부터 막혀서 미치겠어요. 이렇게 어려운 책을 과연 완독할 수 있을것인지.. 솔직히 글자만 읽을 것 같습니다 ㅠㅠ
독서근육 붙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가봐요 ㅠㅠㅠ

유부만두 2020-01-15 0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표지는 멋집니다. 펼치기 전입니다.
아렌트, 베버... 책 제목은 알고요;;;

다락방 2020-01-25 12:28   좋아요 0 | URL
아렌트와 베버가 아니어도 이 책은 충분히 어렵네요 ㅠㅠ 진도가 안나가요 ㅠㅠ

공쟝쟝 2020-01-24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이 글 다시 읽고 갑자기 작년 이맘때 캘리번과 마녀 읽으면서 대캘리번- 셰익스피어 뒤적뒤적하시던 락방님 생각나서 내적 미소 짓다가 갑니다..

다락방 2020-01-25 12:29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그런 일이 있었지요!
책 한 권을 읽으면서 당시에 백프로 이해한 게 아니라 하더라도 이렇게 또 비슷한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더 알게 되는 건 분명한 것 같아요. 여기에 3월 도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까지 읽어주면 뽝- 더 단단해지겠죠?
자, 읽읍시다!
 















'로버트 브린자'는 남자 작가이다. 전편인 《얼음에 갇힌 여자》에서 주인공인 '에리카' 형사를 통해 여성 피해자들에게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아, 이 작가는 세상을 두루 보려고 하는구나, 노력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피해자들에게 공감하고 연대하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 남자 형사들로부터 따돌림 당하지만 고집스럽게 제 역할을 해내려는 에리카의 모습을 나는 무척 좋게 봤더랬다. 남자 작가라고 다들 그렇게 여성혐오적인 작품만 쓰란 법은 없지, 어떤 남자들은 성평등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을 수도 있는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남자가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고 로버트 브린자는 성평등의 손을 들어주는 사람, 최소한 그러려고 노력하는 작가라고 나는 판단한 것이다.



지금 읽고 있는 《나이트 스토커》에서는 남자들이 피해자가 된다. 어쩌면 게이일지도 몰라 게이혐오에 촛점을 맞춰 수사중이다. 에리카가 맡은 사건의 시체를 부검하는 법의학자는 '아이작'이라는 남성인데 이 남자 역시 게이다. 에리카와 사이 좋게 지내면서 서로의 고민들을 말하기도 하고 함께 자주 저녁 식사도 한다. 그 날도 아이작은 에리카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고, 에리카는 곱게 차려입고 아이작을 방문했다. 긴 여름 드레스와 맵시 있는 머리, 대롱대롱 매달린 은제 귀걸이(p.137) 차림으로. '맵시 있는 머리'라는게 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에리카가 평소의 출근하는 차림이 아닌, 여느 날과는 다른 '꾸민' 옷차림으로 아이작을 방문한거다. 그런 모습에 아이작은 놀라고 감탄한다.



"이야, 내 앞에 선 이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인은 누구시죠?" (p.137)



자, 아이작의 감탄은 타당하다. 우리가 영화에서 종종 보던 장면은 어떤가. 한껏 꾸민 차림으로 데이트를 하려고 하면 남자들이 항상 그런 여자에게 감탄하지 않는가. 꾸민다는 것은 상대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음을 의미한다. 상대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고, 이 자리에 신경쓰고 나왔다는 걸 티내고 싶고. 그래, 이런 마음이 왜 없겠는가. 그렇게 차려입을 수 있고, 차려입은 만큼 내가 차려입었다는 걸, 신경썼다는 걸 상대로부터 듣고 싶은 마음도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니 아이작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감탄을 한 것이다. 그런데 에리카의 반응은 어떤가.




"내가 평소에는 창녀처럼 입고 다녔다는 말투 같군요." 그녀는 말했다. (p.137)



나는 에리카의 이 반응에 너무 놀랐다.

자, 생각해보자.

내가 오늘 데이트가 있다. 그래서 평소와는 다르게 좀 신경써서 옷을 차려입었다. 머리도 신경 쓰고 옷도 신경쓰고 평소에 하지 않던 귀걸이도 했다. 그렇게 상대와 저녁 식사를 하려고 한거다. 그렇게 차려입었더니 상대는 평소의 내 차림도 아는 터라 내 모습을 보고 우와, 하고 감탄할 수 있다. 우아하고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자, 그러면, 상대가 내게 우아하고 아름답다고 칭찬했을 때 내가 보일 수 있는 반응은 어떤걸까?



일단 칭찬을 들었으니 '고맙다'고 반응할 수 있겠다. 에리카와 아이작은 일터에서 만난 사이이고 그러면서도 사적으로 가끔 사이좋게 식사하는 사이이니 '하하 고마워' 정도로 감사를 표현할 수도 있다. 혹은 위의 에리카의 반응처럼 무심히 넘기려는 듯, 평소에 내가 어땠길래 그래? 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려고 했다면, 나였다면, 그리고 내 주변의 다른 보통의 여자들이었다면,



내가 평소에는 어땠다고 그래?

내가 평소에는 날나리 같았어?

내가 평소에는 양아치 같았다는거야, 지금?

내가 평소에는 천박했어? 어?

내가 평소에는 거지같았니?

내가 평소에는 초라했어?

내가 평소엔 야하게 입고 다녔어?



뭐 이런 식의 반응들이 나올 수 있다. 날나리, 양아치, 거지(딱히 거지를 말할 것 같진 않지만)등등. 또 다른 단어들을 넣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상대에게 '내가 평소에 창녀같았나 보지?' 라는 말은 안할거다. 세상 어느 여자가 자신을 칭찬하는 남자에게 반응하면서 '나 창녀같았나보지? 나 창녀로 생각했나보네' 라는 반응을 보이는가. 어느 여자가 창녀라는 워딩을 입밖에 내는가. 친근한 사람과의 대화에서.


직장에서 만난 사이도, 친구 사이도, 연인 사이라도,

나 창녀같아? 라는 말은 대체 어느 여자가 한단 말인가. 하아.



나는 저 워딩에서 남자 작가의 한계를 느꼈다. 전(前)작에서 소수자의 삶, 여성들이 직장에서 무시당하는 삶, 피해자에게 연대하는 여성을 실컷 보여주려고 노력한 작가였지만, 그러나 그가 남자임은 정말이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저기서 왜 창녀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는가. 우아함의 반대로 여자들은 창녀를 생각하지 않는다. 고상함의 반대, 아름다움의 반대, 지적인 것의 상대어로 여자들은 창녀를 떠올리지 않는다고. 우아하다는 칭찬에 평소에 창녀로 봤냐는 대답은 정말이지, 남자 머리에서만 나올 수 있는 거다. 맹세코 나의 경우 단 한 번도, 나의 평소와 다른 모습을 칭찬하는 상대에게 '왜? 나 평소에 창녀같았어?' 라고 되물은 적이 없다. 우아함의 상대어로 바로 창녀를 들이밀다니. 대체 이게 어디에서 튀어나오는 상식이야, 어디서 튀어나오는 대응이야. 우아함의 상대어로 창녀를 바로 끌어올 수 있는 거, 아무리 주인공이 여자라지만, 그런 여자의 입을 빌어 '창녀'를 언급하다니. 너무 성녀와 창녀 이분법이 머릿속에 박혀있는 거 아닌가.


나는, 우리는, 여자들은,

성녀와 창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우아할 수도 있고 덜 우아할 수도 있고 초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아한 것의 상대어가 창녀같다는 생각은, 우리는, 여자로 살아오면서 하지 않는다.

내가 여성인 친구들을 만나 '와 오늘 옷 되게 잘받는다' 라는 말을 한다거나, '머리 잘랐어? 잘 어울려'라는 말을 한다거나, 뭐 기타등등 어떤 칭찬을 할 때 그 누구도 '나 평소에 창녀같았지'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대체 머릿속이 어떤 구조로 되어있으면 저기서 우아하다는 칭찬에 창녀로 받아치냐. 이건 진짜 남자 작가라서 그런거야.



남자들에게 창녀는 뭘까.

창녀가 뭡니까, 남자들이여.

도대체 남자들은 창녀를 뭐라고 생각하길래 머릿속에서 창녀를 지워내지 못하고 아무때나 구분도 못하고 튀어나와버려.

진짜 .. 하아-

좆같은 새끼들 진짜.



그러니까 아무리 소수자에 대한 연대를 보여주려고 해도, 공평한 시각을 가지려고 노력해도, 이번 책에서는 승진하고 싶어하는 에리카를 보여주는데, 그러니까 야망 있는 에리카. 그럼에도 어쩔 수없이 뿌리박힌 여성혐오가 그 안에 있는 것 같다. 세상 어느 여자가 저기서 저렇게 말하냐고.


"내가 평소에는 창녀처럼 입고 다녔다는 말투 같군요."



대체 저게 무슨 말이야. 심지어 에리카는 전작에서 우리가 창녀의 죽음이든 창녀가 아닌 사람의 죽음이든 평등하고 똑같이 생각해야 한다고 열변했잖아.




"오늘까지는 앤드리아 더글러스-브라운의 죽음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신문과 인터넷 사이트, 텔레비전 뉴스에 앤드리아 사진이 도배됐고, 국가적 양심의 문제로까지 번졌죠. 그렇습니다, 앤드리아가 특권을 누렸던 건 사실입니다. 반면 타티아나 이바노바, 미르카 브라토바, 카톨리나 토도로바와 아이비 노리스는 어떤가요? 그들이 스스로 원해서 그런 험한 삶을 살았을까요? 아닐겁니다. 상황이 달랐다면, 그들도 앤드리아처럼 윤택한 삶을 살았을지도 몰라요. 내가 구태여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이 나라에서 매일같이 행해지는 대로 이들을 계급화하지는 말자고요. 이 다섯 사람 모두 끔찍하게 살해됐어요.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겁에 질려 죽어 갔습니다. 이들은 모두 평등하고, 똑같은 피해자이며, 공정한 시선으로 주목을 받아야 합니다." (p.355)




머릿속에 졸라 창녀창녀창녀창녀 있는건가봐. 하아. 재미있게 읽다가 아, 이것이 바로 남자 작가의 한계로구나, 생각했다. 남자란 어쩔 수가 없어. 머릿속에서 창녀를 지워낼 수 없는건가봐. 우아함에 바로 창녀로 받아치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나도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말, 내 여자친구들로부터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말. 그 말을 '로버트 루인자'가 에리카의 입을 통해 한다. 정말이지, 실망 대실망이다. 하아.



우아함의 상대어는 창녀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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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0-01-09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서재의 달인 등극 축하드리며 새해복많이 받으셔요^^

다락방 2020-01-10 09:1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카스피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0-01-09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0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0 1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0 1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0 1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0 1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대리모 같은 소리
레나트 클라인 지음, 이민경 옮김 / 봄알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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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책 읽기를 거듭할수록 나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에 내가 더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고 느낀다. 어쨌든 가야할 방향은 그곳이구나, 궁극적으로는 거기에 닿아야 여성의 권리를 위한 것이 되는 거라는 생각을 한다.


페미니즘에 대해 알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도덕 코르셋'을 벗어야 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이성애부부의 의뢰인 여성, 난자 공여자, 생모에 이르기까지 세 여성 모두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침해와 해를 입히고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하는 대리모를 없애자는 '레나트 클라인'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있다. 그러나 그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많은 여성들이 '불쌍한 게이남성들에게 안된다는 말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대리모 반대 보다는 규제 쪽의 손을 들어준다.



나는 2014년 대리모 우호 회담의 티타임에서 대리모로 인해 여성과 아동에게 발생하는 위험에 대해서 어떤 여성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내게 동의했지만 착석 종이 울릴 때쯤 곧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가엾은 게이 남성들이 아이를 그토록 원하는데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다른 이들의 감정을 해치는 데 대한 긴장감과 겁, 특히 이 경우 우리 사회에 너무나 만연한 동성애 혐오로 보일 수 있다는 이 두려움은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팽배하다. 겁은 많은 사회 정의 쟁점들과 결부된 근본적인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든다. 용감하게 '안 된다'고 말하지 못하게 만든다. (p.116)



무언가를 강하게 원하는 사람에게 그것이 부적절한 것이라면 안된다고 말하는 일은 필요하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이 게이에게 향한 것일 경우, '게이 혐오'로 비춰질까 우려되어 차마 안된다는 말을 하지도 못한다. 레나트 클라인은 동성애 혐오로 보일 수 있다는 이유로 겁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안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대리모가 해외나 국내 어디에서 이루어지든, 이것이 얼마나 잘 혹은 잘못 진행되는, 확실한 것은 대리모라는 행위를 통해서 우리가 하는 일은 아이를 어른의 재산으로 상정해서 사고판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절박하게 원한다는 것이 그것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조 프레이저, 대리모 연구 조사 보고서, 2016, p.3)



대리모를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시종일관 강한 어조로 얘기해주는 것이 나는 무척 좋았다. 자연스레 안드레아 드워킨과 캐서린 맥키넌 생각도 났다(이 책에서도 몇 번 드워킨을 언급한다). 여성의 몸을, 정신을, 다시말해 여성의 인권 자체를 침해하려는 시도에 대해 안된다는 말을 할 때는 그것이 착할 필요도 없고 부드러울 필요도 없다. 나는 안드레아 드워킨과 캐서린 맥키넌이 강한 어조로 포르노를 반대했듯, 레나트 클라인이 강한 어조로 대리모를 반대한다고 말해주는 것이 고마웠다. 결국 여성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지도록 하는 것은 이런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의 강한 목소리가 아닌가 싶다.




대리모라는 부적절한 이름으로 칭해지는 이 여성은 자신의 몸으로 아홉달 동안 아이를 품고 낳는다. 상업적 대리모에서 생모는 의뢰인 부부보다 항상 더 낮은 사호경제적 계층에 위치하고 또한 대게 더 ‘낮은‘ 인종적 위계상에 위치한다. 인종과 계급 문제가 한데 얽힌 것이다. 우리는 (흰 피부의) 최고경영자가 (어두운 피부를 가진)청소부의 아이를 낳아주는 경우를 아직 보지 못했다.- P20

‘선택‘은 내가 (그럴 힘만 있다면) 기꺼이 금지하고 싶은 단어다. 나는 선택이란 말은 두 가지 좋은 것 가운데서만 쓸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예로는 ˝초콜릿 케이크와 레몬 타르트중에 뭐 먹을래?˝가 있다. 이렇게 쓸 때에만 양 선택지의 결과가 모두 끔찍한 상황에서 선택이라는 단어를 즉시 제거할 수 있다. 코카인에 심하게 중독된 상태에서 돈이 절실하고 집이 없으며 지지를 구할 만한 곳도 막막한 가운데 성매매를 계속하기로 ‘선택하는‘것은 ‘선택‘이 아니다. 이는 가장 어렵고 불운한 결정이다. 마찬가지로, 남편을 포함한 당신의 가족이 불임이라는 이유로 당신을 비난하고 따돌리는 가운데 여성을 대리모로 착취하기를 ‘선택하는‘것은 ‘선택‘이 아니다. 이 역시 가장 어렵고 불운한 결정이다.- P31

우리는 이런 결정을 내린 여성들을 절대로 비난해서는 안 된다. 다만 여성이 결정을 내리는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를 ‘선택‘이라고 부르는 행위를 그만두어야 한다. 이 결정 이후 일어나는 일들로 대부분의 여성은 심각한 해를 입게 되지만, 그것으로 탐욕적인 성착취 및 재생산 산업은 반드시 제 배를 채운다.- P32

미토콘드리아 DNA는 오직 모체로부터만 유전된다. 매들린 비크먼이 말했다시피, ˝당신이 받는 미토콘드리아는 모체로부터만 올 수 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자면 당신은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와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대리모에 대입했을 때 이 때의 ‘어머니‘는 난자 ‘공여자‘이고 ‘모체‘는 이 세포를 발달시키는 생모다. 정자 공여자들은 착각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당신의 중요성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몸을 부정하고 유전자만 찾아대는 이들을 한 번 더 입다물게 할 증거는 인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리모 연구자 실라 사라바난에 따르면, 고대 인도 아유르베다 문화에서 ˝출산과 수유는 어머니에서 아이로 핏줄을 이어주는 행위로서, 아이들은 이에 빚을 지고 있는 자신의 삶 내내 어머니를 보살피고 존경을 표해야 한다˝(pers.com. June 2017).- P37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낳으려는 이들이 ‘절박하게‘ 가정을 이루고 싶어하며 아이를 향한 그들의 갈망이 ‘자연적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가슴 아픈‘ 현실에 대해서만 끝도 없이 이야기되는 것이다. 사실 많은 이가 용인하고 때로 지지하는 것은 아이를 선불 상품으로 상정한 작본일 뿐이고 이를 가질 자격은 그만큼 부유한 이들에게만 주어진다. 그리고 이 문제에서 신생아는 말이 없다. 이들의 삶은 제왕절개를 거쳐 ‘인큐베이터‘와 같은 포궁에서 꺼내지고 난 뒤부터 시작되는 빈 서판과도 같다. 이를 어린이로 그리고 어른으로 길러낼 이들은 의뢰인 부부다.
부끄럽게도 이는 성인 혹은 모부 중신적 관점으로, 신생아의 기본 인권을 무시한다. 대리모는 단순히 순진한 신자유주의적 환상일뿐 아니라 누군가의 배아를 임신하는 문제를 ‘일‘로 바라보는 것이다.- P49

대리모가 해외나 국내 어디에서 이루어지든, 이것이 얼마나 잘 혹은 잘못 진행되는, 확실한 것은 대리모라는 행위를 통해서 우리가 하는 일은 아이를 어른의 재산으로 상정해서 사고판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절박하게 원한다는 것이 그것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조 프레이저, 대리모 연구 조사 보고서, 2016, p.3)- P52

˝내가 나를 위해서 이걸 선택하겠는가? 당신이 이 세상에 나온 이유가 그저 부끄러움을 모르는 수표 덩어리라면 분명 당신도 모욕적이라 느낄 것이다.˝ (대리모를 통해 출생한 ‘제시카 컨‘, 뉴욕포스트)- P55

˝그렇다. 나는 화가 났고, 사기를 당한 기분이다. 이는 수치이며 끔찍한 경험이다. 우리 모두에게 엄청나게 더러운 짓이다. 자신을 정확히 어딘가로 보내버리기 위해 만들었다는 걸 알면 어떤 기분일 것 같나? 당신들은 아이들이 스스로 의견을 갖게 되리라는 걸 알아야 한다.˝ (대리모를 통해 출생한 ‘브라이언‘)- P55

‘선택‘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자. 사회 전체가 자신의 안녕을 해쳐서라도 타인을 우선시하는 여성을 대우한다면 이것을 ‘선택‘, 자유 의지, ‘행위자성‘이라 부를 수 있을까?- P70

모든 종류의 경제적, 사회적 차별로 인해 고통받는, 권리가 박탈되고 문맹인 수많은 여성의 어깨에 얹힌 빈곤이 덜어져야 하지만 이는 대리모나 성매매와 같이 여성의 신체를 팔거나 대여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아기의 인신매매 혹은 판매가 소수의 여성과 그 가족을 빈곤으로부터 끌어낼 윤리적인 방법이 되어서도 안 된다.- P74

대리모가 윤리적일 수 있다는 주장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임신 내내 관여하는 우생학의 존재다.
영국 맨체스터의 프리메이사 헬스 사에서 발명한 IONA테스트 혹은 스위스 게노마 사가 개발한 트랜퀼리티 같은 비침습적 산전 검사(NIPTs)의 활용이 늘어나면서부터, 모든 임신부는 다운증후군이나 다른 염색체 이상뿐 아니라 태아 성 감별 검사도 함께 받았다. 산전 검사는 임신 10주까지 가능하다. 유전자 이상이 감지되었을 때 진행되는 유일한 ‘해법‘은 임신중단인데, 국제 메타 분석이 경고하기로 이 중 92.2퍼센트가 여아를 대상으로 ‘선택‘된다(Achtelik 2015, p.58)
심지어 대리모가 되는 데 동의한 여성들은 이 문제에서 ‘선택‘을 더 적게 한다. 아이 구입자들은 ‘완벽한‘ 아이를 원하고, 이미 정자와 ‘공여된‘혹은 구입된 난자들은 유전자 결함을 진단받는다(허용된 곳에서는 성별도). - P84

그리고 정자와 난자가 결합되어 수정란이 만들어지면 배아로부터 세포 하나를 떼어내 착상 전 유전자 진단(PGD)을 시행해 ‘품질 검사‘를 실시한다. ‘결함 없는‘ 배아만 대리모의 포궁으로 주입될 수 있다. 산전 검사나 초음파는 몇 번이고 계속되고 임신중단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나면 임신부는 이에 따라아먄 한다. 계약이 이를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를 강압이라고 부른다. 대리모를 윤리적이라고 부를 여지를 박탈하기 위함이다.- P85

대리모를 통해서 태어난 이들이 자신의 연원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는지가 연구된 바 없다.- P105

어떤 부유한 개인들이 어째서 다른 가난한 이들-그리고 오로지 여성들-에게 사랑이나 돈을 이유로 아이를 기르고 낳도록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믿느냐는 것이다. - P115

나는 2014년 대리모 우호 회담의 티타임에서 대리모로 인해 여성과 아동에게 발생하는 위험에 대해서 어떤 여성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내게 동의했지만 착석 종이 울릴 때쯤 곧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가엾은 게이 남성들이 아이를 그토록 원하는데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다른 이들의 감정을 해치는 데 대한 긴장감과 겁, 특히 이 경우 우리 사회에 너무나 만연한 동성애 혐오로 보일 수 있다는 이 두려움은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팽배하다. 겁은 많은 사회 정의 쟁점들과 결부된 근본적인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든다. 용감하게 ‘안 된다‘고 말하지 못하게 만든다.- P116

대리모 폐지를 위한 국제협약이라는 아이디어는 정말이지 신나는 발전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전 세계 페미니스트 개인과 집단이 대리모라는 폭력으로부터 여성과 아이의 인권과 존엄을 지키고자 함께 움직이리라는 데 엄청난 희망을 갖는다.- P120

대리모였던 알레한드라 무뇨스와 퍼트리샤 포스터는 다음과 같이 물었다.


˝번식자 여성이라는 계급이 있는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여자아이에게 최선인가? 이는 여자아이의 자존감에 얼마큼 해로운가? 만약 해롭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인가? (…) 재생산을 산업화하는 사회를 원하는가? 자본주의라는 물레방아는 정말로 모든 것을 가루 낼 수 있는 것인가? 무엇을 팔고 혹은 살 수 있는지에 어떤 제한이란 것이 과연 존재는 하는가?˝- P139

대리모는 아이를 사랑 혹은 돈을 이유로 그를 기른 생모로부터 떼어놓는 행위이며 어떤 ‘동의‘나 ‘선택‘을 들먹인다 해도 이것은 여성의 신체완전성에 대한 침해다.- P155

우리는 법적 분쟁이나 의료 비용을 치르는 과정에서 아기 구입자들이 항상 대리모보다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P168

(로마에서 열린 국제)회의 때 읽은 결의안에서 서명인들은 다음을 지적했다.


˝우리는 ‘삶이라는 경이로운 선물‘과 개인의 자유라는 수사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자 한다. 대리모는 사실상 희생과 유기를 만들어내며 어머니와 아이를 비인간화한다. 모부가 되고자 하는 열망은 여성의 신체에 통제를 가하고 그 결과로서 아이의 생명을 사적 재산으로 만드는 개인의 ‘소비자‘로서의 권리로 이어질 수 없다.-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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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1-08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가 불쌍하기에 다른 누군가의 희생과 눈물, 그들 몸의 일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말도 안 되는 주장이 가능하군요.
더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 뿐이에요 ㅠㅠ

다락방 2020-01-08 16:25   좋아요 0 | URL
‘내가 강하게 원하기 때문에‘, ‘저사람이 원하기 때문에‘로 여성의 몸을 침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는 게 너무 끔찍하죠. 그러면서 그것이 대리모 여성들의 ‘선택‘이었다고 말해요. ‘선택‘이란 단어는 여기에서 저자가 지적했듯이 이럴 때 쓰는 용어가 아닌데 말예요. 이 ‘선택‘이란 단어 때문에 [페이드 포]도 생각났어요. 우리의 처지가 어려워 어쩔 수 없이 결정하게 된 것에 과연 ‘선택‘이란 단어가 적합한것일까요?

역시나 좋은 독서였습니다, 단발머리님.

Jeanne_Hebuterne 2020-01-12 0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를 원하는 게이 남성들은 가엽고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여자들은 가엽지 않다는 말인지, 제발 돈으로 이것저것 다 사재기 좀 그만 했음 좋겠어요.

다락방 2020-01-13 09:20   좋아요 0 | URL
‘게이 혐오‘란 말을 듣기 싫어서 그러는 것도 큰 것 같아요. 혐오자 낙인 찍히기 싫어 여성의 몸을 팔아대는 꼴이죠. 아 정말 너무 끔찍합니다 ㅠㅠ
 
















나는 언제나 인간에게 관심이 많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상대가 하는 얘기에 눈을 맞추고 귀를 기울이는 일은, 내가 스스로 원해서 하는 일이다. 아,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 혼자 분석하는 것도 참 좋아하는데, 대체로 그게 잘 맞는다. 내가 아주 관심있게 상대를 알려고 하고 들여다보려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을 좋아한다. 세상을 더럽히고 망치고 악을 칠하려는 것이 인간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런 인간으로부터 세상을 구원하고 선을 덧칠하려는 것도 인간이라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인간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것은 어쩌면 불완전한, 불안정한 마음이란 것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마음이 불완전하고 불안정하다는 것쯤이야 알고 있지만, 그렇다면 마음이란 무엇인가, 그토록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마음이란 무엇인가, 자꾸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이고은' 의 『마음 실험실』을 읽고자한것은 바로 그때문이다. 마음을 더 잘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마음을 더 잘안다면 인간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되지 않을까, 싶었던 것. 마음을 알고 싶고 인간을 알고 싶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나'를 알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나를 알고 싶었다. 다른 인간들을 알고 불완전한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나는 나를 지금보다 좀 더 잘 알게 되지 않을까.



이고은은 이 책에서 감각, 삶, 시간, 사랑에 대해 얘기한다. 감각과 삶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에서라면야 그저 책장을 넘기는 게 전부라고 해도 좋을만큼 익히 아는 이야기였지만, 시간과 사랑에 대해 얘기하는 3,4부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두 눈 부릅뜨고 읽어가며 북마크를 엄청나게 붙였다. 그렇다면 그것이 내가 모르는 신비한 이야기들로 가득했는가, 앎으로 가득했는가, 라고 물으면 '아니오'다. 아니. 이미 내가 다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내가 다 알고 있는 것들이 거기에 다시 이론적으로 설명되어 있을 뿐이었고, 그것을 연구와 실험을 근거로 얘기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묘하게도 위로가 되었다. 사실 이 책에 나온 실험들은 굳이 실험을 해야할까 싶을 정도로 내가 익히 아는 것들인데, 그렇다면 나는 그것을 어떻게 알았냐? 내 삶이 주는 경험에서 알기도 했고, 소설이 다 알려주기도 했다. 누군가가 이렇게 실험해서 아는 것들을 소설을 읽으면 다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렇다고 이 실험이 무의미하다는 게 아니다. 이 실험은 행해져야 했다. 그리고 이렇게 실험 결과로써 나타나야 했다. 그리고 우리가 무언가를 알고자 하는 데에는 여러 방법을 사용해볼 필요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퍼하는 이유를 우리는 소설이 알려줘서 알기도 하지만, 이렇게 이별에 관한 실험을 통해서 알기도 한다.




이고은이 들려준 이별에 관한 실험 중에는 '자이가르닉 효과'라는 게 있다. 한그룹에는 과제를 마치게 하고 한그룹에게는 과제를 미처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끝맺게 했더니 시간이 흐른 후에 과제를 미처 마치지 못한 그룹이 그 과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더 상세하게 기억했다는 것. 이를 통해 우리는 헤어진 사람 때문에 슬픈 이유는 완료하지 못한 관계 때문에 기억에 남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는 거다.



자이가르닉 효과를 이별에 대입하면, 완료하지 못한 관계로 인해 헤어진 그 사람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자꾸 머릿속을 맴도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 마음은 연인과 헤어지는 사건을 마치 진행되던 프로젝트가 중간에 파투 난 것과 같은 강도로 받아들인다. 과제를 수행하다가 중지되거나 노래를 부르다가 만 것처럼 미완성된 숙제로 인식하는 것이다. 게다가 삶이 예상치 못한 쪽으로 전환되면 그 방향으로 마음을 돌리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린 연애가 갑자기 끝나버리자 마음이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겨워하는 것이다. (p.160)



위의 구절은 나를 오래 생각하게 했다. 정말 그런가. 내가 정말 그것을 미완성된 숙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토록 오래 고통스러워하는것인가.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릴적부터 숙제를 매우 잘해가는 학생이었다. 집에 가면 일단 숙제부터 해야 했다. 국민학교 내내 방학숙제 조차도 밀려서 하거나 개학을 앞두고 부랴부랴 한 적이 없다. 나는 항상 미리미리 해두었고, 드라마에서 종종 나오는 장면인 '밀린 일기 몰아쓰기' 같은 것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나는 해야 할 것을 미뤄두지 않는 사람이었다. 숙제는 해야 했고, 시간에 맞춰 등교하고 출근해야 하는 사람. 그러니 '이런 성격'의 나에게 '미처 해해내지 못한 숙제'처럼, 이별은 느껴졌던 걸까. 그런가. 그렇다면 나는 이 숙제를 앞으로 영영 끝내지 못할것인가.



상실에 대해서는 이고은이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준다. 과외가 끊기고 돈이 없어 허덕이는데, 과외학생의 아버지가 퇴직금이라며 30만원을 보내준거다. 너무 감사하고 고마워서 그 돈을 찾아 봉투에 넣고 책에 꽂았는데, 그날 학교를 갔다가 그 돈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그 때의 상실감은 그 돈을 얻게 되었을 때의 기쁨보다 더 컸다고. 얻는 것과 잃는 것은 등치될 수 없는 크기라는 얘기를 한다.



얻는 것의 반대말은 정말 잃는 것일까. '얻다'와 '잃다', 이둘의 강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등치되지 않는다. 동일한 척도 상의 양수와 음수 개념이 아닌 것 같다. 기쁨보다는 슬픔이, 안도보다는 불안이 훨신 세게 느껴지고, 이해보다는 오해가, 사랑보다는 원망이 훨씬 더 깊게 느껴지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무엇인가를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더 크게 와 닿는다. 긴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 그때를 떠올리면 속이 쓰리다. (p.160)



나는 위의 문장에서 '줄리언 반스'가 말한 상실을 떠올렸다. 정확히 이런 말을 줄리언 반스가 자신의 책에서 한 적이 있다.





전에는 함께였던 적이 없는 두 사람을 하나가 되게 해보라. 어떤 때는 최초로 수소 기구와 열기구를 견인줄로 함께 묶었던 것과 비슷한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추락한 다음 불에 타는 것과, 불에 탄 다음 추락하는 것, 당신은 둘 중 어느쪽이 낫겠는가? 그러나 어떤 때는 일이 잘 돌아가서 새로운 뭔가가 이루어지고, 그렇게 세상은 변한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머지않아 이런저런 이유로 그들 중 하나가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사라진 빈자리는 애초에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의 총합보다 크다. 이는 수학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정적으로는 가능하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p.109)








내가 좋아하는 마음의 상태에 대해 이 책의 3,4부에 몽땅 나와있다. 기다림, 이별, 짝사랑, 질투, 사랑 까지.




질투에 대해서라면 내가 몹시 괴로워한 적이 있다. 평소 무심한 사람이라고 나는 나를 정의했었지만, 나 역시 어떤 확신을 갖고 싶을 때가 있었고 그것이 몹시 필요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질투는, 그렇게 되지 못했을 때, 확신이 흐트러짐을 느꼈을 때 발생한다. 상대의 관심이 오롯하게 나에게만 집중되지 않는다 느꼈을 때, 질투는 발생한다. 왜 당신은 나만 보는 게 아니라 곁눈질을 하는가. 나는 그 사랑을 잃을지도 모르겠다는 가능성이 싹트는 걸 느꼈고, 그것이 몹시 괴로웠다. 너무 힘들어서 땅으로 꺼져버리고만 싶었다. 나를 좀 어떻게 해달라고, 이 괴로운 감정에서 나를 좀 꺼내달라고 상대의 어깨를 붙잡고 애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이고은은 이 책에서 질투라는 마음의 상태에 대해서도 얘기해준다.



질투심에 관한 여러 연구 결과에 미루어 짐작해보면, 질투심은 위협을 느낄 때 유발되는 마음이다. 질투는 내 파트너가 나를 떠나버리거나 현재 유지되고 있는 관계가 망가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오는 마음이다. 우리에게 질투의 마음이 발달한 건 관계의 위기를 예민하고 날카롭게 알아차리고 이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는 경고 신호를 보내기 위해서다. 나와 내 파트너의 유대를 지키기 위한 마음인 것이다. (p.218)



질투는 존재감에 위기를 느낄 때 생기는 정서다. 그 사람에게서 돌연 가벼워질지도 모르는 내 존재감, 그 불안이 고통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관계에서 질투심을 느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큰 상처다.
돌아보면 내 마음을 그토록 힘들게 했던 건 그 사람이 관심보였던 어떤 대상이 아니었다. 그 대상이 받는 혜택이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도 아니다. 나를 아프게 했던 건 오직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던 그 사람의 마음, 나를 불안에 빠뜨리는 것조차 인식 못했던 그 사람의 무지함이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온전히 사랑받고 싶었을 뿐이다. (p.219)



내가 질투한 그 순간, 나는 온전히 사랑받지 못한다고 여겼다. 그에 비해 상대는 나에게 좀처럼 질투란 감정을 보이지 않았는데, 바꿔말하면 나는 그로 하여금 온전히 사랑받는다는 확신을 주었기 때문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나도 알고 상대도 아는 것. 나는 이고은이 말한 질투에 대해 읽다가, 이승우가 말한 질투를 생각한다. 이승우의 책을 읽다가도 나는, 내 안에 있었던 그 어마어마한 크기의 질투에 대해, 그 질투로 인한 고통에 대해 떠올릴 수밖에 없었으니까.





질투하는 사람은 결코 실체를 보지 못한다. 그는 자세히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왜냐하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실은 다른 것, 엉뚱한 것을 보고 있다(왜냐하면 현미경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없는 것, 들여다보면 안 되는 것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지나치게 배율이 높은 자기 내부의 현미경을 통해 영석이 본 것은 선희가 아니었다. 그러나 영석은 자기가 보고 있는 사람이 선희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심지어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른다. 질투하는 사람이 질투하는 대상은 실체가 아니라 그, 또는 그녀가 상상하고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그러나 허상이기 때문에 꿈쩍하지 않고, 자기가 만들었기 때문에 외부존재의 조종을 받지 않는다. 허상은 견고하다. 그는 불안이 현실화된 것에 좌절하고, 어쩔 줄 몰라서 소리 지르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운다. (사랑의 생애, 이승우, p.232)




이승우는 질투를 열등감에 다름 아니라 말한다. 나는 이승우가 말하는 질투에 공감했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이 갖고 있기에 생기는 열등감, 그리고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눈을 돌리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고 '내가' 느꼈다면, 그것이 열등감에서 비롯한 질투로 이어지는 것일테니까. 그렇다면 '나는 가지지 못했는데 저 사람은 가졌구나' 라는 느낌이, 애초에 왜 생겼을까. 비교하지 않아도 좋았을 것을 왜 비교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나의 상대가 나만 온전히 보는 게 아니라는 걸 내가 알았기 때문이다. 상대의 사랑이 내게 온전히 오지 않았다. 어? 이 사람의 사랑에 나는 확신을 못하겠네? 왜? 저사람 때문에. 저 사람은 뭐가 있지? 왜 저기에 있고 이 사람의 관심을 받지?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기다림'에 관한 것이었다. 이고은은 마시멜로 실험과 그 후속실험에 대해 얘기하며(삶의 실험실 中),



마시멜로를 그대로 올려둔 조건에서는 평균 6분 정도를 기다렸지만, 덮개로 덮어두자 11분 넘게 기다렸다. 재미있는 생각을 하라고 지시받는 아이들은 평균 13분 정도를 기다렸고, 기다리느 다음에 받을 두 개의 마시멜로를 생각하라고 지시받은 아이들은 4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마시멜로를 먹어버렸다. 이는 15분이라는 긴 시간을 참게 한 인내심이 타고난 능력이라기보다, 주위를 분산시키기 위해 다른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아느냐, 모르느냐' 또는 '터득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의미였다. (p.63)



라고 한다. 기다리는 동안 다른 것에 집중하면 그 기다림을 좀 더 유연하게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터득했느냐' ,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



이 후속실험을 하게된 계기는 처음 마시멜로 실험을 할 때 아이들이 보여준 행동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가장 오래 기다린 아이는 눈을 가리거나 머리를 팔에 대고 엎드려 있었다. 어떤 아이는 식탁에서 등을 돌렸다. 또 노래를 부르거나, 손장난을 치거나, 식탁 미틍로 기어들어가거나, 잠을 청하는 아이도 있었다. (p.62)



이고은은, 기다림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주의를 전환시켰을 때 기다림의 시간도 단축됐고, 왜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는 때보다 이유를 정확히 알 때 기다림을 짧게 느꼈다. 그래서 두 경우가 함께 효과를 발휘한 조건(주의 전환/기다림 이유 알고)에 놓인 참가자들이 기다리는 시간을 가장 짧게 느낀 것이다. 이 실험을 통해 알게 된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주의를 전환하는 쪽보다 기다리는 이유를 아는 쪽이 더 오래 기다렸다는 점이다. 다른 조건들이 동일한 상태에서 비교했을 때 주의 전환을 했느냐, 안했느냐보다 기다리는 이유를 제공했느냐, 아니냐에 따른 시간 차이가 더 컸다. 내가 기다려야 하는 이유를 아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더 오랜 시간을 흔쾌히 기다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마음의 시간은 아주 작은 요건 하나만 있어도 큰 변화가 생긴다. (p.180)



우리 삶이 기다림의 연속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기다림의 연속을 고통스럽다고만 여기며 살지 않는다. 기다리는 목적이 분명하고, 언젠가 이 기다림은 끝나고야 만다는 믿음이 있으면 마음의 시간은 짧아지기도 한다. 우리 마음은 그렇게 움직이기도 한다. (p.184)



나는 삶의 목표가 구체적인 쪽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편이 우리가 행동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유리하다.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있으려면 목표는 구체적이어야 한다. 구체적인 목표를 알아야 방향을 정할 수 있다. 내가 가는 목표, 내가 가는 방향을 잘 알고 있다면, 나는 기다림 역시도 잘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기다린지 안다면, 그 기다림은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나 스스로 기다림에만 나를 쏟아 넣는 게 아니라, 기다리는 동안 주의를 전환할 다른 것이 있다면, 그 기다림의 시간이 무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다. 유의미한 것들로 채워나가면서, 그 유의미한 것들로 나를 좀 더 단단하게 만들면서, 내 기다림 자체를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소설로 나에게 필요한 모든 걸 얻는다고 생각한다. 소설이 내게 주는 게 무척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소설로 그걸 얻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소설로 그게 잘 얻어지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실험을 통하여 마음에 대해 알려주는 책을 읽는 것도 매우 좋은 방법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기다림에 대해, 질투에 대해, 사랑에 대해 어떻게든 각자 다른 방법으로 알 수 있게 될테니까. 나는 소설이 주는 이야기나 문장을 통해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매만지는 편인데, 어떤 이들에게는 이고은의 이 책이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같다. 이고은은 쓸모없는 마음, 필요없는 마음의 상태라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책의 뒷표지에 보면'다정한 인지심리학자 이고은' 이라고 적혀있는데, 정말이지 다정하다, 이고은은. 마음에 대해서라면, 다정한 사람의 글을 읽는 쪽이 아무래도 낫지 않을까. 다정하지 않은 사람 쪽보다는.





타이레놀은 상실을 경험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마음을 일시적으로 줄여주는 효과를 낸다. 주위를 둘러보면 신체적으로 별 문제가 없는데도 진통제를 자주 먹느 ㄴ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런 편이다. 가방엔 항상 두통약이 들어 있다. 혹시 정신적 고통, 즉 마음 고생을 감당하려고 몸이 미리 진통제를 원하는 건 아닐까. 진심으로 약효가 잘 발휘해주길 바란다. 누군가가 던지는 비수를 맞아도 좀 덜 아프거나 빨리 나으려고 미리 연고칠을 해두는 것이니 말이다.- P36

신체적 고통을 떠올릴 때 가장 활성화된 영역은 우리 몸의 감각을 인식하는 데 관여하는 체성감각피질somatosensory cortex 이었다. 반면에 정신적 고통을 떠올릴 경우에는 분위기와 정서 또는 다른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관여하는 배내측 전전두엽피질dorsomedial prefrontal cortex이 더 활성화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신적 고통을 떠올리면 그때의 감정이나 분위기도 쉽게 떠올린다. 마치 그때의 상황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눈물을 흘리거나 화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신체적 고통에 대해서는 그때의 고통을 고스란히 떠올리지 못하거나 이미 잊은 경우가 많다.- P37

우리 뇌는 복잡한 사고, 새로운 시스템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힘을 들어야 하고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일은 피할 수 있다면 최대한 피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우리가 가진 회고절정기의 경험과 사고방식으로 앞으로의 긴 세월을 살게 된다는 뜻이다. 이런 특성을 대변이라도 하듯 사람들은 35세 전후를 기점으로 더 이상 새로운 장르의 음악에 감동받지 못한다고 한다. 순간 마음에 드는 음악을 들어도 그때뿐이고 반복해 들어보려 애쓰지 않고 기억도 잘 못하게 된다. 점점 게을러지는 뇌는 새로운 음악이 요구하는 새로운 정보와 감성, 새로운 사고 패턴을 밀어내기 바쁘다. 더 먹기엔 배가 부르다는 듯 우리 마음은 새로운 음악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마음의 노화는 새로운 음악을 들을 만한 감성이 무뎌지는 것과 같은 의미인지도 모른다.- P49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이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운이 좋은 사람들을 살펴보면 유사한 특성이 있는데, 매사에 신중하고 들뜨지 않는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대하는 태도가 비슷하다. 세상일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편이다. 나쁜 일이 생겨도 시비를 가리지 않는다. 나쁜 일을 겪으면 지금 당장은 기분이 나쁘지만, 해결하겠다는 자세로 이내 돌아선다. 이미 벌어진 일인데 어쩌겠냐는 생각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대안을 찾는 것이 이들의 기본적인 태도다. 역술가들에 의하면 이런 사람들은 점을 쳐보면 대체로 좋은 운수가 나온다고 한다.- P89

반면 매사에 운이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어떤가? 고집이 말도 못하게 세다. 귀를 닫고 마음을 닫고 있어서다. 나쁜 상황을 변화시키려는 생각은 없이 주로 남 탓을 한다. 자신의 성장 배경이, 부모가, 환경이 나빴다고 말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성찰할 힘이 있을 리 만무하다. 어떤 점괘가 나와도 나쁘게 해석 하기에 당연히 운이 좋을 수가 없다. 점괘는 우리의 마음을 거울처럼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P89

얻는 것의 반대말은 정말 잃는 것일까. ‘얻다‘와 ‘잃다‘, 이둘의 강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등치되지 않는다. 동일한 척도 상의 양수와 음수 개념이 아닌 것 같다. 기쁨보다는 슬픔이, 안도보다는 불안이 훨신 세게 느껴지고, 이해보다는 오해가, 사랑보다는 원망이 훨씬 더 깊게 느껴지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무엇인가를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더 크게 와 닿는다. 긴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 그때를 떠올리면 속이 쓰리다.- P160

좋았고 행복했던 순간들만 기억하며 살면 좋을 텐데 우리 마음은 그보다 아팠던 순간을 잊지 못하도록 만들어졌다. 실수나 아픔을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생존에 필요한 강력한 안전장치다. 뇌는 잃는다는 것을 직접적인 위협으로 인식한다. 즉ㅇ, 인간이 가진 소유 효과나 손실 혐오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가진 마음 자체가 아니라 이런 상황을 너무 과민하게 받아들이거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 하지 않을 때 생긴다.
인간의 욕심 많고 이기적인 본성이 소유 효과나 손실 혐오의 마음으로 드러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은 나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이 자신의 삶과 생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이유 있는 마음이기도 하다.- P170

주의를 전환시켰을 때 기다림의 시간도 단축됐고, 왜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는 때보다 이유를 정확히 알 때 기다림을 짧게 느꼈다. 그래서 두 경우가 함께 효과를 발휘한 조건(주의 전환/기다림 이유 알고)에 놓인 참가자들이 기다리는 시간을 가장 짧게 느낀 것이다. 이 실험을 통해 알게 된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주의를 전환하는 쪽보다 기다리는 이유를 아는 쪽이 더 오래 기다렸다는 점이다. 다른 조건들이 동일한 상태에서 비교했을 때 주의 전환을 했느냐, 안했느냐보다 기다리는 이유를 제공했느냐, 아니냐에 따른 시간 차이가 더 컸다. 내가 기다려야 하는 이유를 아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더 오랜 시간을 흔쾌히 기다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마음의 시간은 아주 작은 요건 하나만 있어도 큰 변화가 생긴다.- P180

우리 삶이 기다림의 연속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기다림의 연속을 고통스럽다고만 여기며 살지 않는다. 기다리는 목적이 분명하고, 언젠가 이 기다림은 끝나고야 만다는 믿음이 있으면 마음의 시간은 짧아지기도 한다. 우리 마음은 그렇게 움직이기도 한다.- P184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은 사실 놀랍도록 자기중심적인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다는 마음에도 그 중심에는 ‘나 자신‘이 있다. 사랑으로 인한 갈등과 아픔도 마찬가지다. 사랑할 때 나를 아프고 힘들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의 변심도 아니고, 그 사람과의 다툼도 아니다. 나를 괴롭히는 건 그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기대하는 내 마음일 때가 많다. 상대방이 내 기대에 어긋나는 순간부터 갈등은 시작된다.- P192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이 길수록 확신하는 비율도 덩달아 커졌다. 연인이 함께한 시간이 오래될수록 스스로 상대를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연구는 연인이 사귄 시간의 길이와 상대에 대한 정확한 예측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밝혔다.
더 오랜 시간 함께했다고 해서 상대를 정확하게 안다는 것은 착각이다. 상대가 나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사실은 그저 오해일지 모른다. 같이 사랑했어도 같은 사랑을 한 건 아니다.- P196

인간은 자신이 놓인 상황이나 상태에 따라 외부 자극을 다르게 지각한다. 예컨대 경쟁 상황에 놓였을 때 마음은 상대의 얼굴을 훨씬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인상으로 기억해버린다. 또 두려워하는 대상은 실제 거리보다 더 가까이 있다고 인식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진심으로 잘생겼다고 생각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결코 인정받기 어렵다거나, 내 아이가 아무래도 천재인 것 같은데 누구도 귀 기울여주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 원리다. 인간의 지각은 필연적으로 주관적이다. - P202

생각해보면 이별은 사건이라기보다는 사고다. 시간이 흘러 사고가 수습될수록 길이 덜 힘들어진다. 나는 연구 결과를 열심히 분석해보다가, 일주일 이내에 이별을 겪은 몇몇 학생들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필 강의실에 오는 길이 이리 멀고도 험난해서. 물론 다른 사람들처럼 시간이 지나면 차츰 완만하고 가까워지겠지만.- P203

연애는 기대만큼 짜릿하지 않을 수 있다. 대신 이별도 예상만큼 아프지 않을 수 있다. 이 원리는 나뿐 아니라 상대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인생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대형 사건들을 저평가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그때는 죽을 만큼 좋았거나 죽을 것처럼 아팠지만 어느덧 이불킥을 하게 되는 시간이 예상보다 빨리 올 수 있음을 안다면, 내 마음을 갉아 먹는 걱정과 근심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P205

자이가르닉 효과를 이별에 대입하면, 완료하지 못한 관계로 인해 헤어진 그 사람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자꾸 머릿속을 맴도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 마음은 연인과 헤어지는 사건을 마치 진행되던 프로젝트가 중간에 파투 난 것과 같은 강도로 받아들인다. 과제를 수행하다가 중지되거나 노래를 부르다가 만 것처럼 미완성된 숙제로 인식하는 것이다. 게다가 삶이 예상치 못한 쪽으로 전환되면 그 방향으로 마음을 돌리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린 연애가 갑자기 끝나버리자 마음이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겨워하는 것이다.- P207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자이가르닉 효과를 극대화 하거나 극적으로 해결해버리는 놀라운 자극이 있는데, 바로 돈이다.
과제를 완료하지 못했더라도 보상으로 지급하기로 했던 돈을 지급하면 중단한 과제 내용을 기억하지 못했다. 오히려 과제를 완료했지만 돈이 지급되는 시기를 늦추었더니 수행한 과제를 놀랍도록 명확하게 기억했다.
혹시 이별에 대한 마음이 남달리 괴롭다고 느끼거나 아픔이 오래간다 싶으면 애인에게 선물을 사주느라 긁었던 카드 할부금이 남았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할부금을 모두 해결하고 나면 어느새 마음도 괜찮아져있을 테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기를. 우리 마음 기능이 그렇듯 마음은 늘 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P208

질투심에 관한 여러 연구 결과에 미루어 짐작해보면, 질투심은 위협을 느낄 때 유발되는 마음이다. 질투는 내 파트너가 나를 떠나버리거나 현재 유지되고 있는 관계가 망가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오는 마음이다. 우리에게 질투의 마음이 발달한 건 관계의 위기를 예민하고 날카롭게 알아차리고 이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는 경고 신호를 보내기 위해서다. 나와 내 파트너의 유대를 지키기 위한 마음인 것이다.- P218

질투는 존재감에 위기를 느낄 때 생기는 정서다. 그 사람에게서 돌연 가벼워질지도 모르는 내 존재감, 그 불안이 고통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관계에서 질투심을 느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큰 상처다.
돌아보면 내 마음을 그토록 힘들게 했던 건 그 사람이 관심보였던 어떤 대상이 아니었다. 그 대상이 받는 혜택이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도 아니다. 나를 아프게 했던 건 오직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던 그 사람의 마음, 나를 불안에 빠뜨리는 것조차 인식 못했던 그 사람의 무지함이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온전히 사랑받고 싶었을 뿐이다.- P219

질투심을 느끼던 내 마음을 내가 더 잘 이해했더라면 그때 그 사람과의 관계가 달라졌을까. 우리 마음의 기능은 이상한 것도 아니고 저급한 건 더욱 아닌데 돌이켜보면 안타까운 순간이 정말 많다. 사람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이렇게 알아가는 마음들이 차츰 늘어간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P220

맥락적 차원에서 바라보면 불륜은 실패한 관계가 초래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사랑받고,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은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이다. 사람은 한 인간으로서 관심과 인정을 끊임없이 갈망한다. 불행히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이것을 받지 못하면 결핍된 욕구를 채워줄 다른 사람을 또는 다른 사랑을 자연스럽게 찾게 된다.- P229

어떤 ‘사건‘을 개인 탓으로만 돌리기보다 그 일이 벌어진 이유를 반 발짝 떨어져 객관적인 눈으로 살펴보는 일은, 사건의 본질로 들어가는 길목을 열어주는 일이 될것이다.- P231

그 사람을 알고 난 이후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알고 싶어서 답답하다가 알 길이 있어도 불안했다. 단 한 번이라도 그 사람이 나를 생각해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기억해주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마음이란 게 생기는 거지 붙잡는다고 오는 건 아니어서 진심으로 막막했다.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는 나를 흔든 적이 없는데 나는 삶 전체가 휘청거렸다.-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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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20-01-07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민학교 내내 방학숙제 조차도 밀려서 하거나 개학을 앞두고 부랴부랴 한 적이 없다.
나는 항상 미리미리 해두었고, 드라마에서 종종 나오는 장면인 ‘밀린 일기 몰아쓰기‘ 같은 것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대단하십니다.
저는 국민학생 6년 내내 ‘밀린 일기 몰아쓰기‘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습니다.

다락방 2020-01-08 08:23   좋아요 0 | URL
저는 일기 밀려서 쓰려면 그게 더 스트레스 일것 같은데 말입니다. ㅎㅎ
저는 그 때의 습관 탓인지 지금까지도 엄청 일기를 써요. 이렇게 알라딘에 글 쓰고 네이버에도 일기 쓰고 종이 다이어리에도 일기를 씁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심술 2020-01-08 14:24   좋아요 0 | URL
오, 아주 좋고 바람직한 습관입니다. 부럽습니다.
 
블렌드 동백꽃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0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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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좋아하는 여동생에게 ‘홀빈‘으로 선물했는데,
‘깔끔하고 적당히 쌉쌀하며 밝은 산미‘ 라고 감상을 얘기해줬다. 더불어 ‘알라딘 블렌드 좋다‘ 라고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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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20-01-07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장이 예뻐서 더 맛나여 ㅋ

다락방 2020-01-08 08:24   좋아요 0 | URL
저는 커피맛을 잘 구분을 못하거든요. 그래서 딱히 취향이랄 게 없어요. 아메리카노를 좋아하고 신맛은 별로 안좋아하고. 딱 이정도의 취향인데 여동생은 니카라과를 좋아하고 부터 시작해서 커피맛을 구분하고 그래서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지난달부터 알라딘 커피 쿠폰 활용해서 여동생에게 커피를 사주고 있습니다.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