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손에 들 수는 있었지만 책장을 넘기는 일은 이전만큼 쉽지 않았다. 나는 스트레스를 잠으로 해소하려는 경향이 있었고, 평소에도 집에서 책만 집어들면 잠이 쏟아지던 터라, 이 책을 읽는 그 아흐레동안, 나는 책장을 넘기는 대신 잠을 택했다.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것들이 달라져있기를 바랐다. 내 정신도, 마음도. 또한 이 세상도. 


모든 것들이 달라져있진 않았지만, 적어도 잠들기 전의 나보다는 조금 더 안정된 내가 잠에서 깬 후에, 거기, 있었다. 이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으면서, ireaditnow 에 다 읽은 날짜를 기록하면서, 아 무척이나 힘든 독서였다, 라고 생각했다. 이런 때에는 읽지 않는게 더 좋았을것을, 했다. 아흐레나 걸릴 만큼 이 책이 재미없는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이 책을 다시 책장에 꽂아두고 나중에, 책장을 넘기는 일이 더이상 힘들게 느껴지지 않을 때 다시 한 번 보리라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포스트잇을 붙여둔 부분들을 앞에서부터 읽어보았다. 그 부분들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아, 이 책은 지금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더 좋은 책이었어.




우주 비행사가 아니라 영문과 교수였다. 그는 짐작했어야 했다. 그것은 어느 책벌레 아동의 당연한 운명이었지만, 어쩐지 그 운명이 요구했을 게 틀림없는 순수한 지식의 축적에 약간 의기소침해져서 그는 8월 말이 될 때까지 대학에서 떨어져 지냈다. (p.81)



이 책의 주인공 샘슨은 머릿속에 종양이 자라고 있었고, 그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뒤에는 12살 이후의 기억을 모조리 잃게 된다. 그가 기억하는 건 열두살 이전의 자신인데, 서른 여섯의 그의 현재 직업이 교수인 걸 알고 그는 '내가 비행사가 될 줄 알았는데' 라고 생각한다. 그는 결혼을 했고 '애나' 라는 아름다운 아내가 있다. 그러나 당연히, 그는 애나를, 자신의 아내를 기억하지 못한다. 수술이 끝나고 자신이 애나와 함께 살던 집에 돌아와 늘 그랬던것처럼 함께 있지만, 그것은 샘슨에게 불편함을 줄뿐이고,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사랑을 여전히 품고 있는 애나에게도 가슴 아픈 일이다.


열두살 까지의 나는 어땠는가를 떠올려보았다. 나는 그시절 무엇이 되고 싶었던가. 지금도 그렇지만 여전히 그때도 무언가 강력하게 원하는 건 없었다. 그러나 장래희망이란 게 있어야 했고, 그래야 수업시간에도 또 종종 질문해대던 어른들에게도 답할 수 있었다. 열두살 이전, 그러니까 열두살 보다 더 어릴때의 나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말했고, 열두살 무렵 그리고 그 후에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렇게 말했던 나는 기억하되, 내가 진정으로 피아니스트와 선생님이 되고 싶었느냐 묻는다면 그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만약 지금의 내가, 열두살 이후의 기억을 모두 잃었다면, 그 기억을 잃은채로 지금의 내 모습을 보았다면, 그때 나는 어떤 느낌을 갖게 될까? 아, 나는 내가 평범한 회사원이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라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이럴 줄은 몰랐어, 이런 어른일 줄은. 물론 내가 어떤 모습일 거라 추측했냐고 하면, 거기에 대해서도 말문이 막힌다. 그 시절의 나를 떠올려보건데, 나는 대체 어떤 어른이 어울렸을까. 아니, 어떤 직업이 내게 어울렸을까. 


지금, 자신을 기억하지 못해서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없다는 건 내게 다행일까 불행일까. 그보다는 역시 처음의 물음이 더 강력하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사람이 되었는가. 나는 내가 바란 어른이 되었는가. 나는 내가 이렇게 될 줄을 알았을까? 무엇보다, 열두살까지의 기억만을 가진 내가 보는 지금의 나는, 후회하지 않을 모습인가? 실망하지 않을 모습인가?




그는 애나와 떨어져 지내기로 결심한다. 그런 과정에서 자신이 교수였던 그때 자신의 제자였던 '라나'를 만나 친구가 된다.



그는 라나의 선생이었고 그녀는 제자였으니까. 그래도 그가 특별히 그녀를 주목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러니까 수업 후 그녀가 자기 물건들을 챙겨 나갈 때 그 격정적이고 아슬아슬한 모습을 경이로움 같은 감정을 가지고 뒤에서 지켜보지 않았을 리는 만무해 보였다. 아주 최소한, 자신이 학생이었을 때 만났다면 검처럼 깨끗이 그의 마음을 궤뚫었을 여자임에는 틀림없었다. 

라나는 프랭크 외에 그가 사귄 첫 번째 친구였고, 아무튼 그녀가 자신과 어울려 주었으면 했다. 그녀에 대해 애나에게 바로 이야기하지는 않았는데 그들이 다른 대부분의 것을 공유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10년의 세월, 결혼, 침대, 욕실, 레코드들, 접시들, 가구, 전화기, 친구들을 말이다. 그는 자신만의 뭔가를, 그러니까 함께하는 그들의 삶 바깥에 그에게만 속해 있는 작은 땅을 원했다. (p.92)




엊그제 친구를 만났다. 곰탕을 먹고 두루치기를 먹으면서 우리는 내내 술을 마셨다. 그리고 친구에게 나는 내가 도대체 왜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건지 얘기했다. 심리학을 공부중인 친구는 내 얘기를 듣고 내가 왜그런지 얘기해주었다. 그것이 해결방법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안다는 것은 큰 위안이 되었다. 아, 내게 이런 기질이 있는거라면, 그렇다면 나는 이런 나를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다, 하는 기분. 그에 앞서 술잔을 부딪치며 내가 힘들었노라 고백하면서, 심리치료도 생각한다고 했을 때 친구는 내게 말했다. 자기가 있지 않느냐고. 그러나 그것은 그 친구의 '일'의 영역인데, 그걸 내가 '친구'로 만나 그 친구의 '능력'을 내게 보여달라 말하는 것은 어쩐지 공평치 않은 기분이 들어, 그건 네 일이잖아, 그런데 어떻게 나 힘들다고 너를 불러, 라고 말했더니 친구가 내게 말했다.


사람들은 힘이 들면 주변의 좋은 사람들에게 기대야 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없기 때문에 돈을 주고 상담사를 만나고, 의사를 만나는거다. 그러나 네게는 좋은 사람이 있다. 그러니 너는 그 사람들을 그냥 만나면 되는거다, 하고.



아, 내게는 어쩌면 이렇게도 좋은 친구가 있는가. 새삼 감사했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나는 그들이 내게 베푸는 한없는 애정과 친절과 관심을 그저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었다. 확실히 그 친구를 만나고난 후의 나는, 그 전의 나에 비해 조금 더 가벼워져 있었다. 다음날 엄마와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친구에 대해 말했다. 엄마는 어떻게 그런 친구를 사귀었냐며 정말 잘 되었다고 했다. 엄마는 외할머니를 만나러 나갔고, 집에는 나 혼자뿐이었던 그 시간. 나는 내 친구들을 떠올렸다. 엊그제 만나 나와 곰탕을 먹었던 친구를, 그전에 만나 내게 스파게티를 사주었던 친구를, 나랑 노가리를 함께 먹는 친구들을, 늘 내 옆에 있진 않지만 부르면 응답해주는 친구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이 모두가 내가 만든 친구들이었다. 내가 원해서, 내가 좋아해서 붙잡고 있는 이들이었다. 나라는 인간을 보고 내게 응답해주는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내 일상의 영역에 가끔씩 끼어드는, 그러나 내 일상 영역의 바깥에 존재하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에게 속해있는 친구들이었다. 이들을 모두 내 스스로 붙잡고 있었다. 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아주 잘하고 있다고,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그는 복도 탁자에 전화를 찾아 어둠 속에서 더듬거렸다. 저편에서 전화가 울릴 때 뉴욕이 세 시간 더 빠르다는 것을 떠올렸고, 그러니 아마 애나는 잠들어 있을 터였다. 그녀를 깨운다는 생각, 심야에 불쑥 끼어드는 친밀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나지막하고 무방비할 터였다. (p.164)




곰탕을 함께 먹은 친구 N 이 나를 만나고 집에 돌아가 새벽에 블로그에 글을 올렸었다. 술을 마신 뒤라 잠을 깼다고, 내 잠을 깨울까봐 문자 대신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남긴다고. 나는 엊그제 그 친구를 만나 네가 깨는 새벽이면 언제든 문자해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우리는 아침과 낮, 깊은 밤에 불쑥 끼어드는 친밀함을 나눠가진 사이었고, 그것이 새벽이라고 금기시되는 건 아니니까. 나는 내가 좋아하는 나의 친구들과 그런 친밀함을 나누고 싶다. 심야에 불쑥 끼어들어 나를 깨워도 괜찮다는 것을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는 충분히 그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내고 싶다. 우리가 서로에게 그러는 것이 '실례'가 되는 일은 아니었으면 한다. 가슴속에 몇몇 친구들에 대한 애정이 끓어오른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특히나, 내가 낮을 살고 있을 때 밤을 보내는 친구가 생각난다. 햇볕을 받으며 일자산을 걸어 내려오는 동안 잘자요, 라고 건넬 수 있는 곳에 있던 친구. 내 안의 충만한 애정을 그가, 그들 모두가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녀에게 시간을 줘요. 당신에게도 시간을 주고. 상황이 어쨌든 간에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오. 하지만 사람들이 얼마나 빨리 기운을 되찾는지 보면 놀랍지요. 확실해요, 지금은 믿기 어렵겠지만, 언젠가 당신들 두 사람 다 깨닫고 그것을 실감할 거요. 눈을 뜨면, 아마 빛이 어떤 식으로인가 당신들을 비출 것이고, 당신들은 일어서서 자신에 대해 '괜찮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녀에게는 더 어려운 일일 거예요."

"아마 그렇겠지요. 하지만 당신이 받고 있는 스트레스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돼요. 당신이 떠나기로 결정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게 당신은 슬픔을 느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누구라도 그럴 거요. 슬프고 혼란스럽고, 그럴 거라고 장담합니다." (p.165)



떠나기로 결정한 사람, 남겨진 사람. 그들은 모두 각자의 슬픔을 가지고 있다. 어느 한 쪽이 더하고 덜한게 아니라, 그 자리에서의 슬픔. 그러나 어떤 이별에 대해서는 기운을 찾는 일이 매우 어려울 수 있다. 기운을 차릴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그 이별을 겪기 전의 기운과 같은 강도의 기운은 아닐 것이다. 어떤 이별에 대해서 우리는 괜찮아졌기 때문에 '괜찮다' 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괜찮아야 하기 때문에 '괜찮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괜찮은 척 하면서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될 수 없다. 그러니 괜찮다는 말이 정말 괜찮은건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우리는 그 감정을 함께 겪으려 노력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공감이고, 공감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소중한 능력이다.



샘슨도 그걸 깨닫는다. 모두에게 똑같은 기억이 있다면, 그렇다면 이 세상이 살기에 더 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것에 대한 의문과 답. 샘슨은 모두에게 똑같은 기억을 심어준다고 해서 방법이 되는게 아님을 깨닫는다. 우린 모두 각자의 기억을 각자의 몫으로 가지고 있고, 그것은 다른 사람의 기억과 같지 않지만, 다른 기억을 가진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 감정에 공감하려고 해야한다는 바로 그 사실을.



정신이란 그 자신이 아니면 어떤 존재도 견딜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이의 의식에 들어가서 거기에 깃발을 꽂는 것은 그 의식이 기대고 있는 절대적인 고독의 계율을 어기는 것이었다. 그것은 반드시 떨어져 있어야 하는 자아에 대한 위협이고, 아마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일 것이다. 그렇게 경계를 넘어서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행위였다. (p.321)



견디는 건 스스로 해내야 하는 몫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사랑할 수는 있었다. 거기에는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해받는 것보다 사랑받는 것에는 다른 어떤 의미가 있을까 궁금했다. 다른 사람에게 깊숙이 접촉당한다는 것 외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는 종양 이전에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 생각하며 자신의 옛 인생 이야기를 무슨 비화처럼 혼자 읇조렸다. 옛날에 그가 사랑하던 여인이 있었고 그녀를 품에 안았는데, 그러한 접촉이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자 그는 놀랐을 것이다. 침대 옆의 등불을 켜면서, 그녀에게 아무 표시가 없음을 알았다. 그녀의 이름은 통과할 수 있고 반대편에 똑같은 곳으로 나올 수 있는 하나의 소리였다. 애나, 거울에 비친 이미지, 그 속에서는 붙잡을 게 없는 이중의 메아리였다. 아마도 그는 그녀를 너무나 사랑했기에 그녀가 충분히 가까이 오도록 할 수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녀를 잘 알기 위해서는 그녀가 별개의 사람으로 남아 있어야만 했다. (p.322)



우리가 상실을 견뎌내는 것, 고통을 극복해내는 것, 괜찮아 지는 것에 한걸음 더 가까워지는 것. 그것은 우리가 같은 기억, 같은 경험을 가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우리가 서로 별개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별개의 사람이기 때문에 상대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별개로 존재하며 서로 다른 경험, 다른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손을 뻗고 또 그 손을 잡을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찾을 것이다. 내가 부를 때 당신이 응답하고, 당신이 누군가를 찾아 헤맬 때, 내가 당신이 찾는 그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나가는 길에 샘슨은 마리에타를 지나쳤다. 그녀는 휴게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연속극의 연기를 자신의 끝없는 무언극으로 다시 뱉어 내고 있었다. 그 아시아계 남자는 「세이 유, 세이 미」는 부르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대신 손짓을 곁들여 불안정한 가성으로 크게 「헬로(Hello)」를 노래했다.

"헬로, 당신이 찾는 사람이 나인가요‥‥‥." (p.74)







이 페이퍼의 제목은 이 책의 373 페이지 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 페이지의 정확한 문장은 아래와 같다.

그는 그 순간을, 날씨와 장소와 미리 준비한 말들을 주고받는 것을 종종 그려 보았지만 지금 그 모든 것은 흩어지고, 현재 벌어지는 일의 어찌할 수 없는 유일성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p.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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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4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07 0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 2014-05-04 2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ireaditnow! 쓰시는군요!

다락방 2014-05-07 08:53   좋아요 1 | URL
네, 씁니다! ㅎㅎ

2014-05-05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07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
레이몬드 카버 지음, 안종설 옮김 / 집사재 / 1996년 1월
구판절판


- 278쪽

- 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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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out 2014-05-01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지대. 읽으면서 저런 글귀들만 눈에 들어오고, 찾게되고...

다락방 2014-05-02 08:28   좋아요 0 | URL
저 책을 읽을 당시에는 좋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데, 어제 인터넷에 이 소설의 얘기가 많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찾아 읽어봤는데 이 책을 팔아버리지 않기를 정말 잘했다, 는 생각이 들었어요.

blanca 2014-05-02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이가 폐렴으로 병원에서 많이 아팠을 때 이 구절 생각하며 얼마나 눈물을 흘렸던지...카버가 대단하다는 생각 다시 했었어요. 지금 읽으니 또 마음이 시큰해지네요.

다락방 2014-05-02 13:09   좋아요 0 | URL
사람들이 왜 카버를 칭송하는지 이제야 알것 같아요, 블랑카님. 저는 오래전에 이 단편집을 읽을 때, 그때는 제가 다시 꺼내보게 될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었거든요. 이 단편집의 모든 단편들을 한 편씩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관찰자 2014-05-02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카버의 많은 단편 중에서도 이 단편을 정말로 좋아하는데.
시기가 시기인 만큼
더 많이 아픈 글이네요.

다락방 2014-05-02 13:10   좋아요 0 | URL
네, 관찰자님. 책을 읽는것도 아주 사소한 일이지만, 요즘 같은 때는 이 사소한 일이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기도 해요.

2014-05-04 1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07 0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05 1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07 0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침내 그는 머릿속에서 폭탄이 터질까 봐 날카로운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니콜 크라우스, 《남자, 방으로 들어간다》, pp.252-253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책에서 저 문장을 마주쳤을 때, 아 내가 지금 이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핑- 눈물이 돌 것도 같았다. 최근의 내 머릿속은 폭발 직전이었고, 그래서 그런 내가 무서웠다. 모두가 힘든 것처럼 나도 그랬다. 아침 저녁으로 신문과 뉴스를 보며 줄줄 눈물을 흘렸고, 자기 전에 확인한 트윗의 멘션들을 보고도 울다가 지쳐 잠들었다. 게다가 회사에서도 업무적으로 힘든 일이 생겨 낮동안 시달리고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이런 날들이 이주이상 이어지고 있었고, 결국 엊그제 밤, 인터넷 쇼핑을 하기 위해 컴퓨터에 앉았다가 반복되는 결제 에러 앞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이젠 이 눈물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이것이 처음 눈물을 흘렸던 그때의 슬픔인가, 아니면 엄마가 우울증의 증상이라고 말했던 그 눈물인가. 나는 이제 왜 뉴스를 보지 않고도 눈물을 흘리는가. 결제 에러 나는게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잠이 오질 않았다. 머릿속에 너무나 많은 분노와 걱정과 스트레스가 꽉꽉 들어차있어서 이건 위험해,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내게 우울은, 생리전 증후군으로나 찾아오는 것이었고, 그러나 그것이 생리가 시작된 후 끝난다는 걸 알고 있기에 견딜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런것과 상관없이 찾아온 이 막강한 우울은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었고, 얼마나 더 심해질지 혹은 덜해질지도 알 수 없었다. 무서웠다. 머릿속이, 목구멍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터져버리고 찢어져버릴 것 같았다. 나는 녹초가 되었고, 너덜너덜해졌고, 웃음을 잃었다. 나는 지금 나의 이 극심한 우울을 치료하고 싶었다. 지금의 이 수렁으로부터 빠져나오고 싶었다. 


여러가지 방법들을,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방법이란 방법들을 머릿속으로 다 찾아내보았다. 그 중의 하나가 결혼이었다.


결혼을 할까? 결혼을 하면 괜찮아질까? 이렇게 길게, 이렇게 심하게 정신이 아픈 내가 외로웠다. 외롭고 두렵고 무서웠다. 나는 우울에 침잠할수록 혼자있고 싶어지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란 걸 알게 됐다. 식구들은 내게 텔레비젼을 끄라고 몇 번이나 반복했고, 회사를 관두라고 말하기도 했다. 내 걱정이 되어 아빠는 일하다가도 엄마께 전화해 락방이 텔레비젼 못보게 해, 라고 말씀하셨고 여동생은 수시로 안부를 물어왔다. 그러나 이 모두가 내게는 다 귀찮았다. 아무것도, 무엇도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게 이런 상황에서 도움이 되지 않을거란 사실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이란 걸 하면, 그러면 내가 이렇게 온전히 혼자서 아침부터 밤까지, 잠들기 직전까지 힘들어하는 걸 알아주지 않을까, 그건 그 자체로 위로가 되지 않을까, 나는 의지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 어쩌면 결혼은 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I thought it might fix things." 



모든것들을 바로잡아 줄 수 있을것 같아서 결혼을 선택한 여자가 등장하는 줌파 라히리의 단편 소설도 생각났다. 그러나, 그 다음, 그 다음은?


만약 결혼이란 것으로 내가 지금의 힘든 시기를 극복해냈다 치면, 그러니까 이 우울은 언젠가는 끝날것인데, 그 상태의 내가 낫기 위해 선택한 결혼이라면 그것은 단지 그 순간만 쓸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나는 그 잠깐 동안의 나를 위해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다른이를, 그리고 다른이의 가족을 이용하는 게 아닌가. 그 순간이 지나서도 나는 내가 선택한 상대를 믿고 의지하고 따르며 함께할 수 있을까? 거기엔 자신이 없었다. 결혼은 궁극적인 답이 될 수 없었다. 내겐 그랬다. 물론, 그걸 답으로 선택한다 해도 아주 갈 길이 멀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정신과 상담이었다. 나는 내가 미쳐버리는건 아닐까 걱정됐다. 정말로 걱정됐다. 이렇게 조금이라도 더 버텼다가는 큰일나는 거 아닌가, 나는 무언가 해야하지 않나, 그렇다면 정신이 아프다고 생각되는 만큼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고 약을 먹어야 하는 게 아닐까. 지금의 이 시기를 지나갈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하는 게 아닐까.


그러다 트윗에서 이 책의 첫 줄을 읽게 됐다.


"내가 정신병원에 간 날은 목요일이었다."


아! 이 작가는 지금의 나와 같은 정신 상태였던걸까. 이 소설이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던데, 나도 이렇게 시작하는 자전적 소설을 쓸 수 있게 될 것 같았다. 내가 만약 정신과 상담을 받게된다면, 그렇게 치료가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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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주목하는 젊은 작가 에바 로만의 장편소설. "내가 정신병원에 간 날은 목요일이었다." 에바 로만의 첫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미친 8주간의 기록>은 실제 에바 로만의 자전적 이야기다. 그녀는 이 한 편의 데뷔작으로 독일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안기며 등장했다.

에바 로만은 여느 현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매일 아침 출근하고, 쫓기듯 하루하루를 보내고, 일요일 밤이면 다음날 한 주가 시작된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는 생활을 몇 년 지속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더 이상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삶의 의욕과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심리상태를 겪게 된다. '이렇게 계속 사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된 그녀는 정신과 상담을 받게 되고 급기야 우울증 진단을 받아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작가는 밀라(Mila)라는 주인공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병명은 우울증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과거 부모님과의 관계, 만족스럽지 못한 일,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타인을 위해 살았던 삶, 그로 인한 번아웃 신드롬(burnout syndrome, 한 가지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신체적.정서적인 극도의 피로로 무기력증이나 자기혐오.직무거부 등에 빠지는 증후군)이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시간은 8주. 그 8주 동안 일어난 사건과 만난 사람들, 치료 과정과 그 속에서 발견한 자신의 내면, 황폐해져버린 영혼에 대한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등장한다. 누구나 겪을 법한 이야기이지만 누구도 쉽게 고백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감각적으로 풀어내고 있어 읽는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동시에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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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를 보러갈까, 하는 것도 방법중의 하나였다. 일전에 몇차례 사주를 보았을 때 위로를 받기도 했으니까. 일종의 카운셀러 역할을 한다고 보는바, 이것이 가장 나은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서 묻고 싶었다. 이 시기가 끝날까요? 언제쯤 끝날까요? 시간은 반드시 흐른다는 자명한 이치 아래, 그럼에도 나는 묻고 싶었다. 제 정신이 온전할 수 있을까요? 저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저는 제가 미칠까봐 두려워요. 미치고 싶지 않아요. 괜찮을까요? 나는 진심으로 묻고 싶었고, 매달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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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점'을 소재로 한 심리 치유 에세이. 한때 말랑말랑한 심리학 책들이 유행했다. 삶이 그만큼 팍팍하고 고달팠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역시 바로 그 인생의 고달픔과 답답한 마음들을 달래고 풀어보기 위해 동양철학에 관심을 가졌고, 주역과 사주에 대한 공부를 거쳐 마침내 직접 점을 치게 되는 재미에까지 이르렀다. 

누군가는 힘들고 괴로울 때 종교를 찾고, 철학이나 심리학을 찾고, 혹은 사랑을 찾아 위로나 답을 얻는다지만, 저자는 그것들 대신 다양한 인생들에 대한 관조와 분석을 택했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과 사람을 끊임없이 들여다보면서 비로소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게 되었단다. 잘나가는 직장생활 뒤에 점을 치는 취미(?)를 갖게 된 이중생활의 시작은 그랬다.

어떻게 생각하면 사주점이 인간에게 운명의 테두리를 더욱 공고히 할 것 같아도, 의외로 저자는 이 책을 "사람은 운명보다 강하다"고 끝맺는다. 정해진 운명은 분명히 있으되, 그러나 아무리 잔혹한 운명일지라도 결국엔 꿋꿋하게 살아남는 존재가 또한 인간이라는 것을 천년의 세월과 동서를 종횡으로 오가며 증명해낸다.

하지만 가장 먼저 사주니 동양철학이니 하는 것들에 대한 터부나 부담부터 떨쳐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자는 책의 첫머리에 독자들에게 말한다. "마음 답답할 때 친한 친구나 선배에게 하소연하는 심정으로, 아니면 용하다는 점집을 찾아가 몇 가지 삶의 옵션에 대해 듣는 심정으로, 그것도 아니면 교회나 절에 주말의 하루를 위탁하는 심정으로 부담 없이 읽어 주었으면 한다. 마음 한편에 괜스레 바람이 부는 날, 그 실속 없는 마음을 달래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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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해결방법은 사실 '나' 자신에게 있다는 걸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깊은밤에 내가 내린 결론은, '내 성격을 바꾸자' 였다. 내 탓이다. 내 성격 탓이다. 내가 지금과 다른 성격이었다면, 업무에 있어서 모든걸 쉽게 생각하고 넘길 수 있었다면, 그렇다면 나는 지금처럼 스트레스 받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렇다면 지금처럼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 앞에 어떤 일이 닥쳐올 때마다, 그것이 사소한 것일수록 더욱더, 완벽하고 완전하게 해내고 싶었다. 하나라도 실수하는 것 같다 싶으면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친구를 만날 때도 연애를 할 때도, 식구들과 있을 때도 무심하고 대범한 나이지만, 왜 업무에 있어서는 이토록이나 찌질한걸까. 나는 나를 바꾸고 싶었다. 상사의 잔소리에도, 흥, 너따위, 너의 잔소리 따위, 하고 넘겨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실수한 게 아니라 병신아, 니가 분노조절장애가 있는거야, 라고 대응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내 머릿속이 지금처럼 요동치지 않을텐데. 이렇게 터질듯 아프지도 않을텐데. 요즘의 나는 자주 어지럽고 아팠다. 성격을 개조해야겠다고 자꾸만 마음먹었지만,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성격이 개조 되지는 않으리란 사실을. 나는 나를 파악할 순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나를 고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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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30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린 독일의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심리학자인 우르술라 누버의 여성 심리학. 저자는 이번 신작에서 한낮에는 당당하지만 밤에는 눈물을 쏟으며 자신이 한 말과 행동, 벌여놓은 일들에 대해 괴로워하는 여성들을 위해, 자기 자신의 모순을 이해하고 억눌렀던 감정을 해방시키는 법을 알려준다. 

이 책은 자기 자신을 미워하면서 타인의 인정과 사랑을 갈구하는 평범한 여성들을 위한 이야기이다. 왜 낮에는 일상생활을 잘 꾸려가는 것처럼 보이던 여성들이 밤만 되면 남몰래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며 베갯잇을 적시는지, 그 원인을 찾아보고 ‘약물’을 투여하지 않은 채로 그녀들의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마음의 작용을 이야기하고, 해독제를 찾아보려 한다.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싶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내가 왜 이러는지 이해가 되질 않아 힘들어하는 여성들에게, 이 책은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마음의 퍼즐을 풀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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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처럼 많은 꿈들을 꾸었다. 그 꿈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출근길에 스맛폰으로 인터넷을 뒤적여 검색해보기도 했다. 어제는 친구 정식이를 만나 내가 꾸었던 그 많은 꿈들에 대해 쉬지 않고 얘기했다.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구하기도 했어, 꿀벌이 나를 쏘았지, 내가 구미호가 된 적도 있어. 정식이는 내게 프로이트 읽기를 권했고, 사실 나는 프로이트를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읽게 되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그래팩 노블이라면, 그렇다면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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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 인간>은 결코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다. 한 남자의 일생을 따라다닌 집착과 신경증, 두려움에 관한 이야기다. 결코 일반적인 그래픽노블의 소재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어두운 이야기가 그래픽노블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실제로 <늑대 인간>은 프로이트와 상담 치료를 받는 동안 이 증례에서 핵심 개념인 <늑대 꿈>을 그려 보여 주었다. 그가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을 느낀 꿈을 이미지화하고 그려 보는 것 자체가 치료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프로이트의 대표적인 치료법인 연상법과 이 이야기가 갖는 탐정 소설과 같은 서사 구조가 이 이야기를 그래픽노블화 하는 데 기반이 되었다. 이 책의 그림을 그린 스와바 하라시모비치는 <늑대 인간>의 분열된 정신 상태, 그가 느낌 두려움, 공포스러운 늑대 꿈을 표현하기 위해 콜라주 기법을 도입했다. 

또한 어두운 분위기를 이어 가기 위해 흑색을 유지했다. 그녀는 페이지에 들어가는 모든 요소를 그림으로 그리고 그 그림을 잘라 이리저리 배치하며 페이지를 구성했다. <늑대 인간>의 조각난 기억들을 맞춰가며 치료를 완성해간다는 의미에서도 콜라주 기법은 완벽하게 이 이야기와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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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업무적으로 또 멘탈이 찢어져 있을때, 그때 찾아온 타부서의 J 과장이 우연찮게 내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나는 그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퇴근길에 엘리베이터 안에서 고맙다고, 정말 고마웠다고 몇 번이나 감사 인사를 했다. 그 작은 일이, 내가 정신과 삼담을 받지 않아도, 사주를 보러 가지 않아도, 성격을 고치지 않아도 괜찮아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아직은 읽은 책들에 대해서는 말을 할 수가 없다(잘 읽지도 못했다). 그러나 터질듯한 머릿속을 치료하고 싶은 마음은 가득해 뭐든 해보고 싶다. 지난 주말에 대전 한밭 수목원에 갔다가 그 높은 아파트단지와 그 한가운데에 수목원이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위로 받고 대전에 터를 잡고 싶다고 생각했다. 분명 도시의 느낌인데 길에 지나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여유롭고 한가로운 도시, 그 느낌을 대전의 한밭수목원이 주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그곳에 터를 잡고 싶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다. 이 사정 저 사정 봐주지 않은채, 그저 뒤돌아 도망치고 싶었다. 그리고 대전의 수목원 근처에 숨고 싶었다. 그러면 뭐든 다 괜찮아질것 같았다. 서서히, 서서히.


그러나 이사를 가고 무엇보다 이사를 가기 위해 내가 살 곳을 마련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무력해진다.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한다한들, 그 대출금은 무슨 돈으로 갚는단 말인가. 대전에서 직장을 구해 혼자 살아가는 생활비를 감당하는 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집을 마련하기 위해 받은 대출은 무슨 수로 갚을 것인가. 일단은 내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하면서 버텨가야겠다. 그래서 어제는 정식이랑 저녁을 먹었다. 최근 이주간 평일에는 술을 마시지 못한채 지냈는데, 어제는 와인도 한 잔 마셨다. 하늘공원에서 바람을 맞으며 보는 도시의 야경은 근사했다. 다가오는 연휴에는 한밭수목원을 다시 찾기로 해서 호텔을 예약해 두었다. 오늘은 또다른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평일에 친구를 만나는 것 역시 내게는 무척이나 오랜만의 일이다.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은 세상 그 무엇보다 잔인한 일이지만, 또 그래서 다행일런지도 모른다. 아직은 아침 저녁으로 마음이 많이 아프고 낮에는 그보다 정신이 더 아프지만, 그래서 신문을 펼치고 또 줄줄 눈물을 흘려낼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아픈 날들 속에서도 내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렇게까지 가깝지 않은 사람들에게 또한 먼 사람들에게 조차도 안부를 물으며 살아가고 싶다. 안부가 간절한 날들이다. 나의 안부를 글로 확인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나는 그들에게 이 글로써 나의 안부를 전한다.



나는 여기에서 이러고 있어요, 아프지만 지내고 있습니다. 당신도 그렇겠지요. 당신도 아프지만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겠지요. 우리, 잘 지내봅시다. 잘 지내보도록해요. 그리고 가끔 내게 당신의 안부를 전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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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4-04-30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요. 다락방. (하트)

다락방 2014-05-02 08:29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 2014-04-30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네, 잘 지내봐요.
잘 지내보도록 해요.

다락방 2014-05-02 08:29   좋아요 0 | URL
우리, 잘 지내봅시다!

미녀 2014-04-30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다락방 2014-05-02 08:29   좋아요 0 | URL
♡.♡

2014-04-30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02 0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4-30 1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02 0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본래 이 글은 알라딘 닉네임 '정서'님의 페이퍼에 달았던 댓글입니다. 그런데 그 댓글을 단 페이퍼가 삭제됐어요(4월 28일 17:54 현재는 수정해서 새로 올리신 것 같습니다). 새움출판사 게시판에는 여전히 그 글이 그대로 존재하기에, 거기에서 가져와 댓글을 페이퍼로 옮깁니다. 

단, 새움 이방인의 책 링크는 걸지 않겠습니다. 걸기 싫어요.


새움 게시판 역자 이정서의 글: http://saeumbook.tistory.com/440



밑에는 내가 쓴(썼던) 댓글:


정서님(알라딘 닉네임이 '정서'이니 .'정서님'이라 호칭하겠습니다.).

 

정서님을 비롯하여 새움출판사의 직원들은 댓글들에 대한 엉뚱하고 어이없는 추측을 전혀 접을 생각이 없으신 듯 보입니다. 새움출판사 게시판에서도 새움의 이방인에 대한 반대댓글을 다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타출판사 직원 이라던가 알바라고 싸잡아 말씀하시더니 말이지요. 지금도 '고마해라' 님을 문동의 번역을 맡으신 이기언 교수님이라고 멋대로(그러나 본인은 나름대로 추론하여) 짐작하시네요. 저는 '고마해라'님이 이기언 교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마해라님은 그보다 이 논쟁에 참여한 독자 라고 보여지는데요. 만약 '고마해라'님이 '이기언 교수님'이 아니시라면, 정서님은 지금 큰 무례를 범하고 계시는 겁니다. 두 분 모두에게 말이지요.


아마도 정서님이 그렇게 추측하게 된 많은 계기는 알라딘에서도, 새움 출판사의 게시판에서도, 82쿡 게시판에서도 새움 출판사의 직원들이 모두 닉네임을 가지고 댓글을 달기 때문에 다른 출판사들의 직원(및 알바)들도 그러할 것이다, 에서 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음은 더 위험한 건데요, 말꼬리 잡고 늘어지려는 건 아니고요, 

위 글에서 하신 말씀중 '저것이 정말로 세계적으로 독창적 해석인지 어떤지에 대해서는 그걸 주장하시는 분이 누구냐에 따라 그 발언의 무게가 달라지기 때문' 이라고 하셨는데 말이지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겁니까? 그래서 '고마해라'님이 고마해라 님이었을 때는 댓글을 무시했고 '이기언 교수님' 이 되는 순간 상대해줄 가치가 생기는겁니까? 고마해라님이 정서님의 번역에 문제를 제기한 '독자'이고 그렇게 '댓글러'가 되는 순간, 그 글은 가치가 없는 게 되는겁니까? 왜 '이기언 교수'라고 생각이 드는 순간 거기에 '무게'가 실리는걸까요? 왜 독자의 반박에는 무게가 실리지 않는건가요? 정서님은 이번 논쟁에서 수도없이 '이 책은 눈 밝은 독자들이 읽고 평가해줄 것이다' 라고 하셨는데, 가장 의존하는 건 독자라고 말씀하시면서 정작 독자의 의견-그것이 반박일 때-는 그 글에 무게가 실리지 않는건지요? 


이번 논쟁에서 별다섯을 준 알라딘 리뷰중에 '달을 가리킨 손가락을 보고 짖는 꼴'이란 표현을 보았는데요, 제일 처음 로쟈님이 이방인에 대해 쓰신 글을 다시 한 번 잘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정서님. 

그건 정서님이 그토록 부르짖으시던 '번역'에 대한 글이었어요. 다만 정서님이 바라던 것과는 달리 '나는 뱃고동 쪽이다' 라는 글이었죠. 그게 어떻게 정서님과 새움출판사 직원에게는 '상식적이지 못하고 인신공격적인 글'로 읽힐 수 있을까요? 전 제가 잘못읽은걸까, 도대체 여기서 어디 그렇게 읽히는걸까, 네 번이나 로쟈님의 처음 글을 읽었습니다. 


그 뒤의 새움출판사의 대응 때문에 사람들이 손가락을 보고 짖는 겁니다, 정서님. 그 손가락이 그냥 손가락이 아니라서요. 순수하게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니라, 그 손으로 송곳을 움켜쥐고 있어서요. 너무나 날카로운 송곳을 움켜쥐고 있어서 달을 볼 수가 없는겁니다. 그러면서 달을 보라고 계속 말씀하시고, 달을 보고 얘기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 조차 그 의견이 정서님이 바라던 의견과는 다르기에 출판사 알바로 보고 계세요. 


정서님도 언젠가의 글에서 말씀하셨듯이, 문제에 빠져 있으면 당연히 흥분하게 됩니다. 

그 문제의 중심에서 외곽으로 벗어나, 처음 글부터 다시 읽어보세요. 제일 처음, 로쟈님의 글은, '나는 사이렌보다는 뱃고동 쪽이다' 라는 본인의 번역에 대한 의견을 나타낸 글이었습니다. 


노이즈 마케팅은 출판사 책의 띠지에서 온 게 아닙니다, 정서님. 로쟈님의 첫 글을 읽은 후부터 정서님과 출판사분들의 대응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본인(과 출판사)의 번역에 대한 '다른 의견'을 수용하지 못하는 데서 온겁니다, 정서님. 다른 분들은, 정서님이 김화영님의 번역에 대하여 틀렸다고 지적했듯, 그렇게 지적을 하고 계신겁니다. 정서님이 본인의 그것을 의견이라 말씀하신다면, 다른 분들도 의견을 표현하고 계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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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4-28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정서님과 새움출판사가 조금 걱정되기도 합니다. 책 한 권의 판매도 중요하지만, 반대편의 부정적이 감정도 적지 않조. 노이즈 마케팅이 계획된 것인지 아니면 우발적인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이미지 손상도 꽤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탐대실이죠.

그것은 그렇고. 다락방님은 어떻게 이방인을 읽으셨는지 궁금하네요. 제 독후감이 동떨어진 느낌을 받아서요.

다락방 2014-04-28 17:06   좋아요 0 | URL
(비밀댓글이니 닉네임은 밝히지 않겠습니다만, 제 댓글은 공개 댓글로 쓰겠습니다.)

제가 요즘에 글을 쓸만한 감정적 상태가 전혀 아니라서 쓰질 못했는데요. 언젠가 이방인에 대해 얘기해야지, 하고 있습니다. 다만, 저는 이방인을 문동의 것으로 읽었어요. 전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고, 뫼르소가 '태양때문에' 살인을 하게 된 쪽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뫼르소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구매자평에서도 이런 글을 읽은것 같은데요.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그가 태양 때문에 쐈다고 한다면, 그건 태양 때문에 쏜 게 맞는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는 어머니의 장례식과 그 후의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도 자신이 느낀바, 생각한 바 그대로를 말하였고, 여자친구에게도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요.

제가 생각하는 뫼르소는 관계를 더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혹은 자신을 포장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에 다른 것들을 덮어 씌우거나 거짓을 말하지 않아요. 가장 본능에, 자기 자신에 충실했기 때문에, 자신보다 타인을 더 신경쓰는 세상에서 이방인이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재판과정에서 저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태양 때문에 총을 쐈다는 뫼르소의 말을 모두가 그대로 듣고 생각하려고 하기 보다는, 왜, 어머니 장례식 후의 태도가 이 시점에서 더 문제가 되는걸까. 왜 다들 그걸로 뫼르소를 어떤 인간인지 판단하려 할까, 하고 말이지요. 뫼르소는 사실, 사람들이 겉으로 드러내기 꺼려하는, 그래서 가장 깊은 곳에 숨기고자 하는 모든것을 있는 그대로 내뱉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자신들은 숨기고 사는데 그것을 드러내는 사람을 보는 것을 불편해하니까요.



그리고 새움과 이정서에 대해서라면, 저 역시 그간 몇 번이나 글을 쓰고 싶었지만 쓰지 않았던 게 다소 걱정되는 면이 있는게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뭔가 악에 받쳐서 대응하는 모습을 보니 한없이 약해져있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저 역시 그들과 반대되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편 그들의 편에서 얘기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다만, 다른 의견을 수용하지 못하는 점에 대해서는 꼭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마립간 2014-04-28 21:06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은 새움 출판사 직원들에게 뭐하고 하려고 걸어 놓았던 것인데, 그냥 말았습니다. 서로 비판만 키우는 것 같아서요.

뫼르소의 솔직성은 저도 인정합니다. 단지 저는 솔직함이 유아적이라는 것이죠. 새움 출판사 '이방인'으로 따로 독후감을 올릴 예정입니다. 다락방님의 의견을 구했던 것은 이 소설을 다른 방향에서 보려고 해서요.

숲노래 2014-04-28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번역을 번역답게 알뜰히 하는 문화가 퍼지면서
번역가끼리 서로 모여서
저마다 번역한 글을 놓고 토론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요.

인터넷으로 '내 번역이 옳다'고 말하지 말고
번역가가 함께 모여서 토론을 하면 될 텐데요...

다락방 2014-04-29 11:22   좋아요 0 | URL
지금 이 논쟁(이라 부를 수 있다면)의 모습은 딱 이겁니다.

"네 번역은 틀렸지. 내가 다 뜯어고쳤어. 이제 내건 정답이야."
그러자 여기저기서 "아니, 네 것도 틀렸어." 라고 말하는거죠. 그러자 "너네들은 상식없이 나를 모함하고 있어!" 라고 대응하는 거죠. '내 번역은 옳다, 이것이 정답이다' 라는 자기 확신이 도를 넘어서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아무개 2014-04-29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너무 오래된 판본의 이방인을 읽은 터라
저는 지금 딱히 이 논쟁에 할말이 없네요.
아무래도 새움 출판사 본으로 다시 읽어 보긴 해야할듯 하네요.
킁........


다락방 2014-04-29 11:00   좋아요 0 | URL
전 새움출판사 이방인은 표지도 보기 싫어졌어요. -_-
전 문동으로 읽었고 이제 다른 출판사 것으로 다시 읽어보려고요.

자작나무 2014-04-29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에 의해 창조된 인물이 태양 때문에 총을 쐈다고 말한다면, 작품 안에서 그것은 진실이겠지요.
평자들은 때때로 소설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데 소설에서 있었던 일을 현실의 기준으로 설명하고자 하면 대개는 실패합니다.
근데 뫼르소가 총을 쏜 이유는 까뮈도 설명하지 못할 거예요. 만일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타당한 이유를 댈 수 있었다면 이 작품의 문학적 생명력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되죠...
근데 요즘 무슨 일이 있나요? 전 내일부터 뉴욕에 좀 다녀올까 해요.

다락방 2014-04-29 11:00   좋아요 0 | URL
오, 자작나무님. 진짜 내일부터 뉴욕가세요? 진짜요? 진짜?

자작나무 2014-04-29 11:40   좋아요 0 | URL
네. 뉴욕의 최신 요리 트렌드를 파악하려구요.

다락방 2014-04-29 11:44   좋아요 0 | URL
아..진짜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뻥이에요 진짜에요? ㅠㅠ
진짜라면 나도 데꾸가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센트럴파크가 나를 기다릴텐데...아직 엠파이어 스테이트에서 야경을 보지도 못했는데 ㅠㅠㅠㅠㅠㅠㅠㅠ

자작나무 2014-04-29 11:58   좋아요 0 | URL
내일 저녁 6시까지 공항으로 오세요 7시반 비행기예요
요즘에 맨해든은 식상해서 브룩흘린이랑 브롱스 위주로 다니고 있어요
락방님이 같이 가신다면 제 단골인 Peter Luger Steakhouse와 Fette Sau BBQ로 안내하죠

다락방 2014-04-29 12:01   좋아요 0 | URL
내일 갔다가 언제 오는 일정입니까?

자작나무 2014-04-29 12:20   좋아요 0 | URL
5월 7일에 와요

다락방 2014-04-29 12:45   좋아요 0 | URL
부럽습니다. 전 뉴욕에서 살고싶은 사람인데 ㅠㅠ

자작나무 2014-04-29 13:57   좋아요 0 | URL
뉴욕의 어떤 점이 좋으세요?

다락방 2014-04-29 14:07   좋아요 0 | URL
어떤점이 좋은지 모르겠어요. 그냥 좋아요. 센트럴 파크도 좋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도 좋고. 그냥 좋아요. ㅠㅠ

마립간 2014-04-29 14:14   좋아요 0 | URL
다락방 님, 몇 년 전에 업무차 (뉴저지에 숙박하면서) 뉴욕에 10일 정도 머르는 적이 있었는데, 저는 ... 뉴욕 좋은 것 잘 모르겠던데요.

다락방 2014-04-29 14:21   좋아요 0 | URL
ㅎㅎ 마립간님 저도 이십대 후반에 열흘정도 있었는데요. 가기전에도 물론 좋아서 갔고 가니까 더 좋아지더라고요. 횡단보도도 좋고 지저분한 맨하튼 거리도 좋고. 전 그냥 다 좋더라고요. 뉴욕에서 몇 년 살아보고 싶어요.

아무개 2014-04-29 15:50   좋아요 0 | URL
역시 다락방님의 페이퍼의 백미는
이 산으로 가는 댓글들이 아닐까 싶네요. ㅎㅎㅎ
그나저나 다락방님 자작나무님이 부러워서 뒤로 넘어 가는 소리가 들리는듯 합니다~

다락방 2014-04-29 16:05   좋아요 0 | URL
네 부러워서 쓰러져요. 안그래도 요즘 다 버리고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ㅠㅠ

자작나무 2014-04-30 08:39   좋아요 0 | URL
이 새움 이방인 논란 포스팅의 결론은 <다락방은 뉴욕을 사랑해> 입니다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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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애가 자신의
장래에 대해서
말하는 거야.

그런데 말이지,
미래를 꿈꾸는 건
자유지만
지금 일도 제대로
했으면 좋겠어.


미래의 자신이 진짜고,
지금은 임시라고 생각하는 거네.-34쪽

평상시에는
대충 건너는
횡단보도지만,
아이가 있어서
신호를 지켰다.-43쪽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 하고
여러 가지 모습을 동경하지만
어쩌면 다른 누군가가
나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물론 그런 일은
당연히 없겠지만.-63쪽

좋은 사람 따위보다
미인인 편이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올바른 생각이 아닌가?
눈에 보이지 않는
'되고 싶은 자신' 따위보다
지금은 미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91쪽

향초를 욕조에
띄워보았지만
안정이 되는지
안정이 되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114쪽

나카다 매니저에게는
여자로서
선택받지 못했지만
점장은
내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봐주었다.
어느 쪽이
좋으냐고
묻는다면

역시 나카다 매니저의
애인 쪽이 좋지~-119-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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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2014-04-19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도 마스다미리책을 보는군요.

다락방 2014-04-21 08:20   좋아요 0 | URL
주말 잘 보내셨습니까, 자작나무님!

자작나무 2014-04-21 12:42   좋아요 0 | URL
이번 주말엔 내내 일했어요. 락방 님은 뭐하셨나요?

다락방 2014-04-21 12:44   좋아요 0 | URL
저야 일자산에 다녀왔죠. 토요일에도, 일요일에도.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