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
서민 지음, 지승호 인터뷰 / 인물과사상사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알라딘 활동을 시작할 때 마태우스님은 이미 서재내에서 유명인이었다. 사회적으로 대단한 위치에 놓여있으므로 한껏 어깨에 힘을 주며 거들먹거리는 것이 그 정도 위치의 사람이 보여주게 될 태도라 생각했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개그의 소재로 삼고, 본인이 얼마나 좋은 학교를 나왔으며 얼마나 유식한지와는 별개로 무척이나 쉽고 재미있는 글을 썼다. 꽤 신기한 캐릭터라고 생각하며 호감을 가지게 된건 당연했다. 또 본인의 부끄러운 과거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툭툭 털어놓아 나는 은연중에 그를 많이 안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던가 보다. 사람이 어떻게 다른 한 사람을 다 알 수 있을까. 매일 얼굴을 마주대하는 가족에 대한 것도 다 알 수 없는데, 나는 왜 내가 마태우스님을 거의 안다고 생각했을까. 대체 이 오만은 어디서 근거한 것일까. 나는 이 책을 몇 장 읽지고 않고 굉장히 부끄러워졌다. 나는 그의 아주 단편적인 모습들밖에 알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 책의 리뷰를 쓸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밝혀내기 힘들었던 그의 프라이버시를 이 책으로 인해 드러냈기 때문에, 리뷰를 쓰는 것은 마치 '나는 이제 너의 그 과거를 알아' 하고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이 될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는 안될것 같아 나는 이 책은 다 읽어도 리뷰를 쓸 수 없을거야, 했던거다. 그러나, 어떤 위안 같은 것이 찾아왔다. 인간은 누구나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고, 그것에 예외는 없다는 사실 같은 것. 그간 꾹꾹 참아오며 말해지 못했던 것은, 누가 그것을 욕할까봐 두려워서가 아니라 사실은 본인이 본인에게 스스로 감추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자신의 치욕스런 과거를 숨기며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그 치욕은 누가 나에게 주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그렇게 느끼는거다. 그걸 바깥으로 드러내는 순간 사실 그것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말하지 않기 때문에 비밀이 되고, 숨기기 때문에 큰 일이 된다. 그러나 드러내면, 그것은 더이상 숨길 과거도, 비밀도 아니다. 안타까웠던 것은, 그걸 이 책을 통해 말하기까지 그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했던 부분에 대한거다. 말을 해서 분명 후련해졌겠지만, 이제 이 책을 읽게 될 사람들은 그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다. 그 사실은 약간의 두려움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그러나 입밖으로 낸 이상, 이제 그간의 짐을 털어놓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책에 드러난 그의 고백에 오히려 더 그가 가깝게 느껴졌다. 뭐랄까, 나도 그런 거 있는데, 남들이 몰랐으면 좋겠는 그런 거 있는데, 당신도 있었네요. 우린 어차피 같은 사람들인거에요, 하는 기분. 덕분에 나는 뜻밖의 위로를 받았다.



게다가 의료민영화와 의학상식에 대한 부분은 상당히 도움이 된다. 특히나 얼마전에 엄마와 미혼모 이야기를 하다 서로 큰소리로 다툰적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싸웠다면 엄마를 더 잘 설득시킬 수 있었을거란 생각이 드는거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읽었으면 하는 부분에 밑줄을 그었고, 이 책을 이제 엄마에게 읽어보라고 권할것이다. 



남자들은 미혼모를 여자가 방종을 한 결과라고 하는데, 정자를 주는 것은 남자라는 말이죠. 그리고 관계도 대개 남자가 하자고 들이대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미혼모 문제에서 진짜 문제는 남자들이에요. 남자들이 피임을 하지 않기 때문에 미혼모나 낙태 문제가 발생합니다. (p.71)


'미셀 윌리암스' 주연의 《블루 발렌타인》이란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남자와 여자는 만나는 사이었고, 콘돔도 없이 갑작스레 섹스를 하게 됐는데 여자의 안에 사정을 해버린거다. 여자는 당황하고 남자는 대수롭지 않다는듯 미안하다고만 하고 자리를 뜨는데, 그때 여자는 임신을 하게 된다. 물론 그 남자와 결혼을 한 건 아니고. 아, 생각하니까 또 빡치네..이런 개새...


이 책을 읽다가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상식들을 접하게 되는데, 특히나 콘돔에 대한 것은 대단히 놀라웠다. 무려 우리나라가 콘돔을 가장 잘 만드는 나라라니!! 초박형 콘돔을 우리나라에서 만들다니. 아니 그런데 왜 콘돔 리뷰는 그렇게나 일본 초박형 콘돔에 대한 것이 많은지?????????  <사가미 002>가 최고가 아니라니!!



우리나라의 낙태가 세계적으로 상위권이라고 하는데, 70퍼센트가 기혼 여성이거든요. 남편이 콘돔을 안 썼다는 이야기죠. 여성의 피임은 정말 어려워요. 한 달 중 21일을 호르몬제제를 먹어야 되는데, 우리 호르몬이 아주 정교한 시스템에서 가동되고 있거든요. 외부에서 호르몬을 투여하면 호르몬 체계가 흔들릴 수 있어요. 피임약 먹고 그러다 불임이 되는 거는 그런 이유입니다. 반면 콘돔은 껍질만 쓰면 되는 거니, 얼마나 쉽습니까?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콘돔을 잘 만드는 나라입니다. 콘돔을 쓰면 느낌이 안 좋다고 하는 애들이 있는데, 꼭 잘 하지도 못하는 애들이 그런 이야기를 해요. 설사 느낌이 안 좋다고 하더라도 여자들을 위해서 느낌을 요만큼만 양보하면 되잖아요. (p.71)


거듭 이야기하지만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좋은 콘돔을 만드는 나라거든요. 0.0015밀리미터 정도 되는 최고로 얇은. 사람들이 그걸 쓰다가 빠진 줄 알고, 잊어버린 줄 알고, '어디 갔지?' 하고 찾는데, 끼워져 있는 거죠.(웃음) 그 정도로 느낌이 좋은 콘돔을 만드는 나라에서 콘돔 사용률이 미국의 10대보다도 못하다는 사실이 어이없는 거예요.(p.190)



일전에도 지승호의 다른 인터뷰집을 읽어본 적이 있는데, 인터뷰에 앞서 정말 철저하게 준비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엄청 강하게 든다. 상대의 저서를 다 챙겨보는 것은 물론이고 블로그의 글, 그 글에 대한 댓글까지 싹- 다 읽고 인터뷰에 임하는거다. 와, 어느 책에서 어떤 말을 하고 어느 글에서 어떻게 대응하고 하는 것을 보노라니, 인터뷰도 아무나 하는게 아니구나 싶어지는거다. 그리고 그렇게 사전 조사를 철저하게 했기 때문에 적절한 질문과 또 적절한 추임새를 정말이지 적절한 때에 꺼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서민'도 '지승호'도 알라딘에서 활동을 했던지라, 이 책은 '친알라딘'적이다. ㅎㅎ 알라딘에 대해 자주 언급되고 심지어 다락방에 대한 언급도 두 번이나 나와서!!!!!!!!!!!!!!!!!!!!! (꺅) 매우 좋은 책임에 틀림없지만,



그러나 이 책의 일독을 권하는 것은 리뷰의 처음에 밝혔던 이유로 꺼려진다. 의학적인 상식 부분에서, 또 재미 부분에서 이 책은 큰 만족을 주지만, 한 인간의 프라이버시-비록 그것을 '밝힌'것이라 해도- 를 다른이에게 권할 수 있을까, 를 생각하면 머뭇대게 되는것이다. 그러나 거듭 말해서, 그렇기 때문에 그가 우리랑 다르지 않은 삶을 사는 한 사람의 보통 사람임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독자에게는 위로를 준다. 책의 말미에, 이 책은 서민 본인의 책이다, 라고 했는데, 진심으로 그러기를 바란다. 이 책이 서민 본인의 그간 삶을 정리하고 앞으로 한 발 더 나아가게 되는 계기가 되는, 그런책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앞으로도 그의 행보를 있는 힘껏 응원해주고 싶다. 




마지막으로...꼭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다.

잘생긴 남자는 정말....설거지를 안하나요?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덧. 118쪽의 오타. 

'크게 사람을 죽이지나 하지는 않기 때문에' → 크게 사람을 죽이거나 하지는 않기 때문에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와 2014-05-20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지금 당장 읽고 싶어 미치겠네요.
오랜만에 당장 읽고 싶은 책을 만난 것 같습니다. 책이 도착하기도 전에 이렇게 설레다니..
한편으론 어떤 비밀일까 걱정도 되지만 락방님 만큼 저도 서민님을 응원하는 마음이 크니깐 읽어보겠습니다.

^^

다락방 2014-05-20 10:14   좋아요 0 | URL
책이 아주 술술 잘 읽혀요. 어제 퇴근하는 지하철안에서 내리기 싫을 정도로 몰두해 읽었습니다. 여러가지 복합적인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무쪼록 레와님도 즐독!

자작나무 2014-05-20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못생기고 좋은 남자와 잘생기고 나쁜 남자 중에 고르라면 다락방의 선택은...???

다락방 2014-05-20 12:45   좋아요 0 | URL
저는 그동안 늘 못생기고 좋은 남자를 선택해왔습니다.....

아무개 2014-05-20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저는 왠지 이책을 읽고 마태우스님이 더 멀게 느껴지던걸요.(그리 가까운 사이도 아니였지만 ㅡ..ㅡ)
아니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었나. 이렇게 강한 사람이었나 싶은게....

2.저기 어딘가에 그런 내용도 있지요?
'콘돔을 쓰면 느낌이 안나서 싫다 라고 그러는데, 잘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꼭 그런다.
하지만 나는 콘돔을 애용한다' 이런 글이였던거 같은데 책이 없어 확인불가 ^^:::::::

3.네 잘생긴 남자가 설겆이를 좋아하지 않을 꺼란말에 100만원 겁니다.
다락방님도 설겆이 싫어 하잖아요. 뭐 똑같은 이유가 아닐까요 ㅎㅎㅎㅎ

4. 그나저나 마태우스님은 락방님을 너무 싸릉하시는거지 그렇지...

다락방 2014-05-20 13:06   좋아요 0 | URL
2. 저기 위에 제가 인용한 문장이 그 문장입니다. 71 페이지요.

콘돔을 쓰면 느낌이 안 좋다고 하는 애들이 있는데, 꼭 잘 하지도 못하는 애들이 그런 이야기를 해요. 설사 느낌이 안 좋다고 하더라도 여자들을 위해서 느낌을 요만큼만 양보하면 되잖아요. (p.71)


3. 저는 설거지하는 잘생긴 남자를 꼭 만나고 싶습니다!! ㅎㅎ

4. 저도 마태우스님을 사랑합니다. ㅎㅎ

자작나무 2014-05-20 13:05   좋아요 0 | URL
전 설거지를 잘하지만...

다락방 2014-05-20 13:07   좋아요 0 | URL
설거지를 잘하지만...



여자입니까? ㅋㅋ

자작나무 2014-05-20 14:24   좋아요 0 | URL
돈이 없습니다 ㅎㅎㅎㅎ

다락방 2014-05-20 16:27   좋아요 0 | URL
안타깝네요..

마태우스 2014-05-20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다락방님... 저랑 시비돌이님의 그저그런 책을 가지고 이런 신적인 리뷰를 쓸 수 있다는 건 님의 리뷰 능력이 신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뜻일 거에요. 권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리뷰에 쓸 수 있는 분, 그리 많지 않을 거에요. 그게 다 저자에 대한 애정이 작용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거 말고도 제 마음을 대변해주는 구절이 여럿 있어서, 고맙다는 말밖에 드릴 말씀이 없네요. 원래 이런 글은 비밀글로 해야 딱인데, 님이 신이란 걸 잘 모르시는 분들이 계실까봐 그냥 씁니다.

다락방 2014-05-20 13:12   좋아요 0 | URL
마태우스님, 책 정말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마태우스님의 다음책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릴거에요.
신적인 리뷰라뇨, 무슨 그런 어마어마한 말씀을. 신적인 리뷰랑은 완전 거리가 멀고요,
이 책 읽으면서 이생각 저생각 복합적으로 되게 많이 했거든요.
무엇보다 내가 왜 이런 고백에 놀라야 하는가, 였어요.
그건 제가 이 저자를 '잘 알고 있다'는 착각에서 비롯된거였죠. 그래서 엄청 충격이었어요.

저자에 대한 애정이라면, 네, 엄청납니다. 그건 확신하셔도 됩니다. 정말로요.
:)

무스탕 2014-05-20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요, 처음부터 끝까지 두 분 인터뷰 내용만으로 이루어져 있나요?
찾아봤더니 300쪽이 훨씬 넘는 분량이던데 그 긴 시간동안 두 분이 수다를 떠셨다고요? =3=3=3
다락방님 리뷰를 읽다 보니 '서민=기생충' 이라는 무조건반사공식에 뭔가가 더 추가되어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다락방 2014-05-20 16:11   좋아요 0 | URL
네, 무스탕님. 인터뷰 내용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승호님이 물으시고 서민님이 답하시는거죠. 기생충에 대한 것과 사생활에 대한 부분, 의학상식과 의료 민영화 또 글쓰기까지 다양한 질문과 대답이 거기에 있습니다. 재미있어요. 생각할 것도 많고 말입니다.
:)

페크pek0501 2014-05-20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 님과 다락방 님의 빠른 행보를 보고 갑니다. 책을 낸 사람과 리뷰를 쓰는 사람으로서의 행보를.
저는 요즘 책을 사지 않으니(집에 쌓여 있는 책을 읽고 있어요.) 이런 새 소식도 모르고 말이죠.
으음~ 이 책 역시나 마태 님의 유머가 반짝이고 있겠죠. (마태 님, 축하드려요...) 리뷰는 여전히 맛있고...

잘생긴 사람이 설겆이는 모르겠고(저는 이런 걸 안 시켜요. 못 믿어서요. ) 청소는 잘 한답니다.
청소할 때 즐겁게 해요, 우리 남편이요... 남편이 청소기 돌려 줄까? 이런 말 자주 하거든요. (이런 말 해도 되나요?)
잘생긴 편인데, 사실인데... 꺄욱~~~

다락방 2014-05-21 11:04   좋아요 0 | URL
아 페크님. 저도 집에 쌓여 있는 책을 좀 읽어야 할텐데요. 자꾸 사대기만 하니 큰일입니다. 엊그제도 한박스가 도착했고, 내일 또 올거에요. ㅠㅠ 게다가 수시로 중고샵 가면 꼭 몇권씩 사들고 나온답니다. 저는 아마도 '사는' 행위 자체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아요. 어휴..

ㅎㅎ 청소기 잘 돌리는 남편이라니, 좋으네요. 당연히 그래야지요!! 저희 아빠랑 남동생도 청소기 하나는 기가막히게 잘돌립니다. 물론 걸레질도 ㅋㅋ. 게다가 설거지 앞에 두고 제가 또 씩씩대고 있으면 남동생이 자기가 한다 그래요. 제가 너무 설거지하면서 화를 내가지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리고 저희 가족은 유전적으로다가 미모가 좀 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맞다, 이거였다, 이래서였다.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 지금의 터질듯한 긴장감. 이것 때문에 나는 내가 만난 단편들의 김 숨을 장편으로 만나고 싶었던거였다. 왜 읽고 싶었었지? 하며 책장을 넘기다가 다 읽고나서야 아, 이것 때문이었구나, 했다. 이 긴장감을, 김 숨을, 나는 또 찾아 읽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반 일리치와 나눈 대화
데이비드 케일리 외 지음, 권루시안(권국성) 옮김 / 물레 / 2010년 3월
절판


사실 내 인생은 대부분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사람을 만나 친구가 된 결과이다.-71쪽

사람들이 학교에서 배운 과목과 그 과목을 배운 사람을 요구하는 직업에서 이들이 발휘하는 능률 간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 사람의 학교교육에 들어간 돈의 액수와 그 직업에 종사하면서 평생 벌어들이는 수입 간에는 아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지만, 학교에서 습득하기로 되어 있는 역량과 업무 효율 간에는 입증할 만한 고나계가 없다는 말이다.-79-80쪽

우리가 여기 앉아 함께 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그것은 당신과 당신 아이들 간의 감정에 내가 첫눈에 깊이 감명 받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는데, 아동기라는 개념이 자리 잡은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이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진지하게 대하기 위해 아동기라는 개념을 당신이 버렸다는 사실은 아이들 편에서 보면 특별한 이점으로 작용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모범이 아니다. 모방의 대상으로 삼을 행동이 아니라 앞 다투어 그렇게 해야 할 행동이다. 이 독특한 불꽃을 우리는 소중히 길러야 한다.-88-89쪽

나는 우리가 도구로 사용하지 않는 것들이 있음을 분명히 해두고자 했다. 나는 주장한다. 전문 언어학자의 생각과는 달리, 서로 진정으로 대화하는 사람들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도구가 일정한 강도 이상으로 성장하면 수단에서 목적으로 변모할 수밖에 없으며 나아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꺾어버리게 되는데, 『공생을 위한 도구』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그렇게 되는지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나는 반생산성이라는 개념을 세우고자 했다. 어떤 도구-예를 들면 운송체제가-가 일정한 강도를 넘어 성장하면, 그 도구가 만들어진 목적으로부터 멀어지는 사람이 그것의 장점으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되는 사람보다 반드시 더 많아진다는 사실 말이다. 통근-즉 필수적인 교통-목적의 경우 교통이 가속화되면 사회의 구성원 대다수에게 날마다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데에 소요되는 시간이 필연적으로 증가한다. 반면 세계 어디든 거의 동시에 오고갈 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 사람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125쪽

나는 기술에 대해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지만 사람들에 대한 희망은 계속 품고 있다. 사람들의 아름다움과 창조성과 놀라운 창의력을 믿고 있다.-126쪽

나는 글을 쓰는 법을 알고 있다. 무엇에 대해 글을 쓰고 싶어 하는지 스스로 알고 있다. 사람들이 나를 읽게 하는 것이다. 그 외의 사람에게는 다가가고 싶지 않다. 지금도 이 태도에는 변함이 없다.-134쪽

물이 비교적 싸게 집 안까지 들어온 것은 사실이다. 1920년에 이르러 미국 가족의 절반이 옥내 화장실과 샤워를 갖추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제 여성이 들통에 물을 담아 들고 거리를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는 식으로 생각했다. 게다가 가족은 전보다 물을 더 많이 쓸 수 있었고 더 깨끗해질 수 있었다. 그렇지만 슈워츠코원 여사가 아주 분명하게 보여준 바와 같이, 그 이후 욕조를 청소하고, 화장실과 욕실을 치우고, 세탁기를 돌리고, 심지어 세탁기 등을 구입하기 위해 밖에 나가 돈을 버는 등 여성이 집안에서 처리해야 하는 노동의 양은 그 이전 사회에서 물과 관련하여 여성에게 기대하거나 부과된 노동의 양보다 훨신 더 많아졌다. 어떤 유형의 활동-공동 급수장에서 몇 시간씩 서서 기다리며 수다를 나누고 굉장한 뒷공론을 주고받는 쪽과, 각기 자기 집 욕실 안에 갇혀 바닥을 청소하는 쪽-을 여성이 선호할지 나로서는 그들의 결정에 맡긴다.
내 논지는 상품을 쓸모 있는 것으로 변환하기 위해 투입해야 하는 종류의 노동을 하나의 경제 활동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노동에 보수가 따를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황당해보여도 그렇게 해야 한다. -174-175쪽

충격이었다! 나로서는 그로부터 3~4년 안에 우리가 친한 친구가 되고 또 그가 만년에 쿠에르나바카에서 나와 함께 상당히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굿맨을 내가 알게 된 위대한 사상가의 한 사람으로, 또 사려 깊고 따뜻한 사람으로 생각한다.-223쪽

(존 홀트에 대해 얘기하며)그는 한 가지 일에 열중하는 멋진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정말 있을까 싶어 가끔씩 찾아가서 만져볼 정도로 멋진 사람이었다!-231쪽

그들은 댈러스에 호수가 있어야 할지 없어야 할지를 두고 70년 동안 벌여온 논의 기록을 내게 보냈다. 댈러스는 역사가 130년도 되지 않았는데 이 문제를 놓고 70년 동안 논의를 계속한 것이다. 재정적으로 가능한가? 경제에 보탬이 되겠는가? 환경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겠는가? 이런 여러 관점 하나하나에 대해 그들은 70년 동안 이해득실을 따지고 있었다. 한 가지에 대해서는 다들 확신하고 있었다. 호수가 아름다울 거라는 점이었다. -271쪽

그렇기에 나는 살아 있자고, 그리고 누리자고-정말로 누리자고- 모든 고통과 모든 불행과 함께 이 순간 허락돼 있는 살아 있음을 의식적으로, 의례적으로, 공개적으로 즐기자고 말한다. 내가 볼 때는 이것이 절망이나 종교성-저 사악한 종류의 종교성-에 대한 해독제인 것 같다.-31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반 일리치와 나눈 대화
데이비드 케일리 외 지음, 권루시안(권국성) 옮김 / 물레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미국이 제3세계에 자원봉사자를 보내는 것이 결국은 해를 가져온다는 것, 학교라는 교육 기관 역시 도구로서 인간에게 해를 가져온다는 것, 의료 기술의 발전 역시 해를 가져온다는 것, 성별을 인정하지 않으니 성차별이 생겨난다는 것 등등, 그의 주장들은 그 주장에 대한 근거를 읽지 않는다면 처음엔 대체 그게 무슨 소리람, 싶어진다. 그러나 그가 조목조목 하는 말들을 천천히 읽으면 아, 그렇겠구나, 싶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말들이 내게 무척이나 어려워서 잘 이해했다는 생각이 들질 않는다. 만약 내가 잘 이해했다면 그의 주장과 근거를 인용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거나 설득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을 이해시킬 수 있을 것이다. 입 밖으로 낼 수 없는건 내 스스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이고, 그러므로 나는 매우 안타까운 것이다.


이 책은 분명 읽을만한 가치가 있긴 하지만, 지금의 내가 읽기엔 온전히 이해되기 어려울 정도의 내용들로 가득차있고, 그렇다고 십 년이 지난후에 읽어도 내가 이해할 수 있을지 역시 자신이 없다. 이 책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한 해설서가 나왔으면 싶어지는 것이다. <이반 일리치 입문서>같은게 필요한 것이다. 흑흑.



그나저나 지구 이편에 나라는 인간이 있듯이 지구 저쪽 편에는 '열한 개의 언어를 익히고, 신학과 역사학과 화학 분야의 학위를 갖고 있는' 이반 일리치가 존재했구나. 그 간극은 물리적 거리보다 더 멀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무개 2014-05-19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나중에 저한테 파셔요. 도전!!!

교육, 의료 기술발전, 성별의 차이 이런것들 뿐만아니라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은
모두 다 장단점을 갖고 있지 않을까요? 라고..소심하게 써봅니다^^

다락방 2014-05-19 09:33   좋아요 0 | URL
제가 밑줄 그은 부분들이 있지만 그냥 드릴게요. 팔기는 무슨.. ㅎㅎ
아 머리에 쥐나는 독서였네요. 이제 김 숨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는데 어찌나 팔랑팔랑 잘도 넘어가는지. ㅠㅠ

2014-05-19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19 16: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19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 없는 사회'를 추천합니다.

다락방 2014-05-20 08:12   좋아요 0 | URL
학교없는 사회는 다 품절이나 절판이네요. 그래도 박홍규의 '이반 일리히'를 선물 받았습니다. 움화화핫. 언제 읽게될진 모르겠지만요. -0-
 
이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6
알베르 카뮈 지음, 이기언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6월
장바구니담기


개가 피부병에 걸린 이후로 살라마노 영감은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연고를 발라주었다. 하지만 영감 말에 따르면, 진짜 병은 늙은 것이었고, 늙은 건 치유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53쪽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4-05-16 1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4-05-18 16:33   좋아요 0 | URL
우리는 매일매일 늙어가고 있죠 ㅠㅠ

blanca 2014-05-19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말 너무 슬프다...우울해져요....

다락방 2014-05-19 16:12   좋아요 0 | URL
네, 정말 슬프더라고요. 가뜩이나 늙어가는 게 전 무서운데 말입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