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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
서민 지음, 지승호 인터뷰 / 인물과사상사 / 2014년 5월
평점 :
내가 알라딘 활동을 시작할 때 마태우스님은 이미 서재내에서 유명인이었다. 사회적으로 대단한 위치에 놓여있으므로 한껏 어깨에 힘을 주며 거들먹거리는 것이 그 정도 위치의 사람이 보여주게 될 태도라 생각했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개그의 소재로 삼고, 본인이 얼마나 좋은 학교를 나왔으며 얼마나 유식한지와는 별개로 무척이나 쉽고 재미있는 글을 썼다. 꽤 신기한 캐릭터라고 생각하며 호감을 가지게 된건 당연했다. 또 본인의 부끄러운 과거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툭툭 털어놓아 나는 은연중에 그를 많이 안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던가 보다. 사람이 어떻게 다른 한 사람을 다 알 수 있을까. 매일 얼굴을 마주대하는 가족에 대한 것도 다 알 수 없는데, 나는 왜 내가 마태우스님을 거의 안다고 생각했을까. 대체 이 오만은 어디서 근거한 것일까. 나는 이 책을 몇 장 읽지고 않고 굉장히 부끄러워졌다. 나는 그의 아주 단편적인 모습들밖에 알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 책의 리뷰를 쓸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밝혀내기 힘들었던 그의 프라이버시를 이 책으로 인해 드러냈기 때문에, 리뷰를 쓰는 것은 마치 '나는 이제 너의 그 과거를 알아' 하고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이 될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는 안될것 같아 나는 이 책은 다 읽어도 리뷰를 쓸 수 없을거야, 했던거다. 그러나, 어떤 위안 같은 것이 찾아왔다. 인간은 누구나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고, 그것에 예외는 없다는 사실 같은 것. 그간 꾹꾹 참아오며 말해지 못했던 것은, 누가 그것을 욕할까봐 두려워서가 아니라 사실은 본인이 본인에게 스스로 감추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자신의 치욕스런 과거를 숨기며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그 치욕은 누가 나에게 주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그렇게 느끼는거다. 그걸 바깥으로 드러내는 순간 사실 그것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말하지 않기 때문에 비밀이 되고, 숨기기 때문에 큰 일이 된다. 그러나 드러내면, 그것은 더이상 숨길 과거도, 비밀도 아니다. 안타까웠던 것은, 그걸 이 책을 통해 말하기까지 그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했던 부분에 대한거다. 말을 해서 분명 후련해졌겠지만, 이제 이 책을 읽게 될 사람들은 그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다. 그 사실은 약간의 두려움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그러나 입밖으로 낸 이상, 이제 그간의 짐을 털어놓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책에 드러난 그의 고백에 오히려 더 그가 가깝게 느껴졌다. 뭐랄까, 나도 그런 거 있는데, 남들이 몰랐으면 좋겠는 그런 거 있는데, 당신도 있었네요. 우린 어차피 같은 사람들인거에요, 하는 기분. 덕분에 나는 뜻밖의 위로를 받았다.
게다가 의료민영화와 의학상식에 대한 부분은 상당히 도움이 된다. 특히나 얼마전에 엄마와 미혼모 이야기를 하다 서로 큰소리로 다툰적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싸웠다면 엄마를 더 잘 설득시킬 수 있었을거란 생각이 드는거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읽었으면 하는 부분에 밑줄을 그었고, 이 책을 이제 엄마에게 읽어보라고 권할것이다.
남자들은 미혼모를 여자가 방종을 한 결과라고 하는데, 정자를 주는 것은 남자라는 말이죠. 그리고 관계도 대개 남자가 하자고 들이대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미혼모 문제에서 진짜 문제는 남자들이에요. 남자들이 피임을 하지 않기 때문에 미혼모나 낙태 문제가 발생합니다. (p.71)
'미셀 윌리암스' 주연의 《블루 발렌타인》이란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남자와 여자는 만나는 사이었고, 콘돔도 없이 갑작스레 섹스를 하게 됐는데 여자의 안에 사정을 해버린거다. 여자는 당황하고 남자는 대수롭지 않다는듯 미안하다고만 하고 자리를 뜨는데, 그때 여자는 임신을 하게 된다. 물론 그 남자와 결혼을 한 건 아니고. 아, 생각하니까 또 빡치네..이런 개새...
이 책을 읽다가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상식들을 접하게 되는데, 특히나 콘돔에 대한 것은 대단히 놀라웠다. 무려 우리나라가 콘돔을 가장 잘 만드는 나라라니!! 초박형 콘돔을 우리나라에서 만들다니. 아니 그런데 왜 콘돔 리뷰는 그렇게나 일본 초박형 콘돔에 대한 것이 많은지????????? <사가미 002>가 최고가 아니라니!!
우리나라의 낙태가 세계적으로 상위권이라고 하는데, 70퍼센트가 기혼 여성이거든요. 남편이 콘돔을 안 썼다는 이야기죠. 여성의 피임은 정말 어려워요. 한 달 중 21일을 호르몬제제를 먹어야 되는데, 우리 호르몬이 아주 정교한 시스템에서 가동되고 있거든요. 외부에서 호르몬을 투여하면 호르몬 체계가 흔들릴 수 있어요. 피임약 먹고 그러다 불임이 되는 거는 그런 이유입니다. 반면 콘돔은 껍질만 쓰면 되는 거니, 얼마나 쉽습니까?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콘돔을 잘 만드는 나라입니다. 콘돔을 쓰면 느낌이 안 좋다고 하는 애들이 있는데, 꼭 잘 하지도 못하는 애들이 그런 이야기를 해요. 설사 느낌이 안 좋다고 하더라도 여자들을 위해서 느낌을 요만큼만 양보하면 되잖아요. (p.71)
거듭 이야기하지만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좋은 콘돔을 만드는 나라거든요. 0.0015밀리미터 정도 되는 최고로 얇은. 사람들이 그걸 쓰다가 빠진 줄 알고, 잊어버린 줄 알고, '어디 갔지?' 하고 찾는데, 끼워져 있는 거죠.(웃음) 그 정도로 느낌이 좋은 콘돔을 만드는 나라에서 콘돔 사용률이 미국의 10대보다도 못하다는 사실이 어이없는 거예요.(p.190)
일전에도 지승호의 다른 인터뷰집을 읽어본 적이 있는데, 인터뷰에 앞서 정말 철저하게 준비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엄청 강하게 든다. 상대의 저서를 다 챙겨보는 것은 물론이고 블로그의 글, 그 글에 대한 댓글까지 싹- 다 읽고 인터뷰에 임하는거다. 와, 어느 책에서 어떤 말을 하고 어느 글에서 어떻게 대응하고 하는 것을 보노라니, 인터뷰도 아무나 하는게 아니구나 싶어지는거다. 그리고 그렇게 사전 조사를 철저하게 했기 때문에 적절한 질문과 또 적절한 추임새를 정말이지 적절한 때에 꺼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서민'도 '지승호'도 알라딘에서 활동을 했던지라, 이 책은 '친알라딘'적이다. ㅎㅎ 알라딘에 대해 자주 언급되고 심지어 다락방에 대한 언급도 두 번이나 나와서!!!!!!!!!!!!!!!!!!!!! (꺅) 매우 좋은 책임에 틀림없지만,
그러나 이 책의 일독을 권하는 것은 리뷰의 처음에 밝혔던 이유로 꺼려진다. 의학적인 상식 부분에서, 또 재미 부분에서 이 책은 큰 만족을 주지만, 한 인간의 프라이버시-비록 그것을 '밝힌'것이라 해도- 를 다른이에게 권할 수 있을까, 를 생각하면 머뭇대게 되는것이다. 그러나 거듭 말해서, 그렇기 때문에 그가 우리랑 다르지 않은 삶을 사는 한 사람의 보통 사람임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독자에게는 위로를 준다. 책의 말미에, 이 책은 서민 본인의 책이다, 라고 했는데, 진심으로 그러기를 바란다. 이 책이 서민 본인의 그간 삶을 정리하고 앞으로 한 발 더 나아가게 되는 계기가 되는, 그런책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앞으로도 그의 행보를 있는 힘껏 응원해주고 싶다.
마지막으로...꼭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다.
잘생긴 남자는 정말....설거지를 안하나요?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덧. 118쪽의 오타.
'크게 사람을 죽이지나 하지는 않기 때문에' → 크게 사람을 죽이거나 하지는 않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