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강의
랜디 포시.제프리 재슬로 지음, 심은우 옮김 / 살림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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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친구와 매운족발을 먹으러 갔다. 우리는 매운족발과 보쌈이 절반씩 나오는 메뉴를 시켜놓고서는 좋다고 건배를 했다. 그런데 몇 점 먹다보니 상추가 없다는 게 무척 안타까운거다. 보통 족발이면 상추쌈은 기본으로 주는데, 이건 매운족발과 보쌍이라 그런지 보쌈을 싸먹을 김치를 주었고 새우젓과 마늘, 쌈장을 준 것이다. 


상추 있으면 더 좋겠네, 보쌈싸먹게.

그러게.

보쌈이라 안준건가?

그런것 같아.

달라고해볼까?


그런뒤에 나는 벨을 눌러 종업원에게 혹시 상추를 좀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종업원은 흔쾌히 알겠다며 상추를 가져다주었고, 그래서 나는 보쌈을 상추에 싸먹을 수도 있게 되었다.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어제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란 책을 읽었는데, 거기에서 랜디 포시가 그런 말을 하거든. 안될거라고 혼자 생각하지말고 무조건 물어보라고. 지금과 같은 경우에 써먹는 거지. 보쌈엔 상추를 안 줄거라고 생각해서 가만 있으면 우린 상추를 먹을 수 없었을테지만 물어보니까 상추를 먹을 수 있잖아.



그랬다. 랜디 포시는 혼자서 안되겠지, 안될거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직접 가서 부딪치고 물어보는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디즈니월드 여행 때, 그와 나는 네 살이었던 딜런과 함께 모노레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딜런은 열차의 앞쪽, 멋있게 생긴 원추형 머리 부분에 운전사와 함께 앉고 싶어 했다. 나의 놀이공원 애호가 아버지도 대단한 스릴을 느낄 것이라며 딜런에게 동의했다.

"하지만 일반 관객들은 거기에 앉지 못한다는구나." 그가 말했다.

"흐음." 내가 나섰다. "사실 말이에요 아버지, 이매지니어를 해보니까, 이런 일에는 요령이 필요하더군요. 한번 보시겠어요?"

그는 물론이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미소 짓고 있는 디즈니 모노레일 안내원에게 다가가 말했다. "실례합니다. 우리 세 명이 첫 번째 칸에 앉을 수 있도록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손님." 안내원이 말했다.  그는 게이트를 열었고, 우리는 운전석 옆에 자리를 잡았다. 내 인생에서 아버지가 이렇게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본 건 그때가 유일했다. 우리가 매직 킹덤을 향해 속력을 내고 있을 때 내가 말했다. "요령이 있다고만 했지, 어려운 요령이라고 말한 적은 없어요."

가끔씩, 당신은 그저 물어보기만 하면 된다. (p.242-243)



모노레일의 운전석 옆에 앉을 수 있었던 것이 랜디 포시가 '물어봤기' 때문이듯, 그는 물어보는 데 익숙한 사람이라 모든 일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는데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책 전반에 걸쳐 그의 말들은 버릴 게 별로 없다(물론 고개를 갸웃했던 부분도 있었지만 어쨌든 넘어가고). 췌장암 선고를 받고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으니 살아있는 동안 사는것처럼 즐겁게 살자는 그의 모토는 당연히 본받을만 하다. 암이란 사실을 알기 전에도 그는 인생을 즐겁게 살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니, 그의 이런 태도가 그가 암을 앓는 환자이면서도 우울증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줬을거라 믿는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자식들에게 전하기 위해 이것저것 생각해보고 시도해내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눈물이 고이기도 한다. 그는 분명 자식들에게 좋은 아버지로 기억되거나 떠올려질 것이라 확신한다. 게다가 그는 동료로서도 친구로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본받을 만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창의적인 생각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시도를 하고,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며 도우려고 하는 그의 자세는 '잘 사는 법'의 롤모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어쩐지 약간 찜찜해진다. 이렇게 좋은 생각, 좋은 자세를 가지고 앞으로 쭉쭉 나아가는 사람인데, 그렇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왜 이 책을 '좋다'고 말할 수 없는걸까. 왜그럴까. 죽음을 앞에 두고 자신의 병을 인정하며 남아있는 삶을 즐기기 위해 노력하는 이사람, 왜 이 사람을 나는 '무조건 좋다'고 말할 수가 없는걸까.  


이 책은 자기계발서의 느낌이 강하다. 어떻게 해야 인생을 즐겁고 보람있게 살 수 있는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느낀바를 써서 얘기해주려는 자기계발서. 실제로 이 책을 읽는다면 많은 사람들의 그의 태도와 생각에 매혹되어 자신의 삶에 있어서 조언으로 삼을거란 생각이 들었으니까. 실용적인 자기계발서의 느낌인데, 어떻게 이 느낌을 잘 설명할 수 있을까를 곰곰 생각해보다가 찾았다. 정확히 어느 부분에서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이 책이 내게 주는 느낌은 '착하고 예의바른 새누리당 지지자'의 느낌인거다.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지만 나와 함께 가기에는 무리가 있고 불편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거다. 나는 새누리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느낌이 자꾸 나에게 삐걱대는듯 느껴지는 거다. 어디에서 그런걸 느꼈냐, 라고 말하면 어느 부분이라고 콕 짚어 얘기할 수는 없지만, 전체적인 인상이 그렇다는거다. 응, 저기에 저런 사람이 저렇게 최선을 다해 잘 살려고 노력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내가 즐겨 만나며 우정을 나눌 사람과는 좀 거리가 먼 것 같은 느낌. 



책을 다 읽어갈수록 나는 랜디 포시가 기적처럼 살아있기를 바랐다. 그는 6개월정도를 살 수 있을거라 닥터로부터 들었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여전히 잘 살고있다, 로 책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그러나 옮긴이의 말까지 다 읽고나면 이런 문장을 읽게 된다.



*2008년 7월 25일 새벽, 랜디 포시 교수는 많은 이들의 간절한 기원에도 불구하고 버지니아 주에 있는 자택에서 생을 마감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편집자



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책날개에서 그가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님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면서 그의 생존을 바랐던 것이다.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기적을 바랐고, 생을 마감했다는 구절을 읽으며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내가 그를 친구로 삼고 싶어하든 아니든, 그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쪼록 그의 아이들이 자라서 이 책을 읽고 아버지가 자신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이렇게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의 나라는 독자도, 그에 대한 친근감이나 호오와는 별개로 그로부터 어떤 것들을 배웠으니까.



그나저나 족발과 보쌈을 먹으면서 읽은 책을 인용할 수 있는 나란 인간은 역시 좀 멋진 인간인 것이다.





정직함은 도덕적으로만 옳은 것이 아니라 효율적이기도 한 것이다. 모두들 진실을 말하는 세상에 산다면 재확인하느라 허비하는 많은 시간을 줄일 수 있다. (p.223)

장벽에는 다 이유가 있다. 장벽은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절실하게 원하는지 깨달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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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07-03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제목에 반댈세!
'착하고 예의바른 새누리당 지지자 같은 책' 이라고 했어야지요!!!!!


다락방 2014-07-03 13:4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유 제목을 뭘로 해야되나 한참을 고심하다가 결국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4-07-03 16:59   좋아요 0 | URL
저도 '착하고 예의바른 새누리당 지지자 같은 책'에 한표 던집니다~~~

루쉰P 2014-07-03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보쌈과 마지막 강의라 글을 읽는내내 좋았어요 생활 속에 글이 들어오고...글이 있고 생활이 있고 흠
마치 보쌈에 상추를 싸먹는 듯 한 느낌 ㅋ
아무래도 다락방님은 궁극의 경지로 올라가시고 있는 것 같아요
잡문의 마왕은 루쉰 선생이신 데 다락방님 거 읽다보면 그런 느낌 받는 듯 ㅎ

다락방 2014-07-07 16:43   좋아요 0 | URL
궁극의 경지 ㅋㅋㅋㅋㅋㅋㅋㅋ
뭐 제가 궁극의 경지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래도 듣기 좋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가지 확실한건 이 [마지막 강의]에 대한 리뷰에 그 누구도 보쌈과 족발 얘기를 끼워넣진 않을거란 거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버벌 2014-07-04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요 여기요. '착하고 예의바른 새누리당 지지자 같은 책' 한표.
저 말입니다. 잠시 파산 중이어서 알라딘 꽤나 안 들어왔어요. 들어오면 막막 지르게 되니까. ㅠㅠ
락방님 보고 싶었어요~~~~

다락방 2014-07-07 16:44   좋아요 0 | URL
아니, 버벌님은 왜이렇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겁니까! 가끔씩 들여다보면서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글도 쓰고 쫌 그래봐욧!!

Ralph 2014-07-31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사람이짜증도내고, 실망하기도하고, 좌절하기도 하고, 자포자기 하기도 해야하는데.. 사실 그래야 맛인데.. 그야말로 바른생활의 교수님이라, 돌아가신 분이지만, 좀 매력이 없을 수도 있군요.. 그래도..죽음을 앞두고 이토록 바른 생활을 보여준다는 것은.. 새누리당 지지자라도 쉽지 않겠죠.. 아마도 죽음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새누리당 지지자 일듯...

다락방 2014-08-01 08:32   좋아요 0 | URL
매력이 없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제게는'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인물은 아닌 것 같아요. 배울점은 많지만 말예요. 그렇지만 그의 주변인물들에게 그는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매우 매력적인 인물이었을 겁니다. 현재도 계속 그를 생각하며 존경하는 분도 많을 겁니다. 매력은 개개인에게 다른 식으로 작용하니까요.
랄프님 말씀대로, 죽음을 앞두고 이토록 성실하게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거에요. 전...글쎄요 전 그럴 수 있을까요? 어휴. 저는 아마 마지막날까지 생을 붙잡기 위해 발악할 것 같아요. ㅠㅠ

Ralph 2014-08-02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젊은 분들은 심각하기 고민않해도 되지만,, 후반전이 시작된 분들은 고민이 필요할 듯합니다.
 
영국 정원 산책 -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의
오경아 지음, 임종기 사진 / 디자인하우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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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 생애 몇 해쯤은 뚝 떼어내어 세상의 모든 정원을 산책하는 걸로 채워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다운 사람과 초록 풀밭을 거닐고, 화려한 꽃들에 둘러싸이고, 나뭇가지로 드러나는 햇살들을 쳐다보며 눈을 찡그리면서, 사이사이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며, 그렇게 보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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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 곳 에 가 고 싶 다
    from 마지막 키스 2014-09-04 10:14 
    아이러니는 이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이는 정원엔 자연스러움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영국의 풍경식 정원은 '자연스럽게'가 아니라 기존의 정형화된 패턴을 깨고 싶어 탄생시킨 또 다른 스타일이었다. 구불거리는 호수는 수천 명의 인부가 삽으로 땅을 파서 만든 인공 호수이고, 우거진 숲의 조화로움은 인간의 힘이 아니면 결코 나란히 설 수 없는 낙엽수와 상록수가 자연보다 더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만든 조합일 뿐이다. 그래서 이 정원을 두고 훗날 사람들은 '자연스러움'
 
 
heima 2014-06-26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셨군요. 아 나쁘지 않으셨던 것 같아 다행 :) 별 몇 개 주셨을까 맘 약간 졸이며 들어왔어요. 다락방님 마음을 아주 약간 이해했네요 ^^
저는 아침부터 아랫글 때문에/덕분에 장바구니를 채웠다 비웠다 하고 있어요. 트위터 알라딘 MD보다 더 책뽐뿌를 주시는 다락방님 ㅋㅋ

다락방 2014-06-26 11:44   좋아요 0 | URL
저 일단 글은 제쳐두고 사진을 한장한장 넘겨가며 보았거든요. 아..가고 싶더라고요. 나도 가고 싶다 정원에..하고 말이지요. 제가 사진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뭔가 '아쉽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사진을 더 잘 찍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요. 물론 이 책에 실린 사진들 그 자체만으로도 저는 정원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지만 말입니다. 마음이 시끄러울 때 다시 넘기면서 천천히 글도 봐야겠어요. 헤헷 :)

heima 2014-06-26 12:15   좋아요 0 | URL
그쵸. 사진 정말 본인이 작업하면서 찍으셨나? 싶었어요. 요즘같이 휘황찬란하게 멋진 사진책들 사이에서 ㅎㅎ
글은 음.. 사실 마음에 꽂히는 글들은 아니었는데, 하던 일 접고 꿈 찾아 떠났다는게 부럽고 멋있어보이더라구요. 우리나라에도 공원이나 정원이 작더라도 많이많이 있으면 참 좋을텐데..

다락방 2014-06-26 12:45   좋아요 0 | URL
머리말에 보니까 사진은 남편이 찍었다고 하더라고요. 사진작가에 비해 솜씨가 부족하지만 마음에 담는 장면을 찍기 위해 애썼다고 ㅎㅎ
전 공원을 참 좋아하거든요. 공원 데이트도 좋고 :)
이 책에 실린 정원 사진들을 보니 죄다 찾아가서 데이트하고 싶어졌어요. 조카랑 가도 좋을거란 생각도 들고요. 이토록 아름다운 곳은 아름다운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과 함께 천천히 걷는게 좋을것 같아요. 좋아요.. 흣

레와 2014-06-26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랑도 몇일.. 걸읍시다! ^^

다락방 2014-06-26 16:01   좋아요 0 | URL
콜콜!!
중간마다 낮술은 필수죠? ㅋㅋ

푸른기침 2014-06-26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다운 사람'에 방점을 찍고 싶습니다. ^^
소박하지만 멋진 다락방님의 소원이 꼭 이루어지길 응원요.
좋은 하루 보내시고요. ^^

다락방 2014-06-27 12:32   좋아요 0 | URL
푸른기침님은 정다운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

무해한모리군 2014-06-27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일 아침에 눈떠서 산책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다락방 2014-06-27 12:32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말입니다, 휘모리님. 아침 산책은...제겐 넘볼 수 없는 저 너머에 있어요. ㅠㅠ

페크pek0501 2014-06-27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동네 숲 속의 아름다움에 빠져 지냅니다.
다락방 님과 같은 마음... ^^

다락방 2014-06-27 12:33   좋아요 0 | URL
저는 주말이면 집근처 아주 작은 산에 가는데 가면 되게 좋더라고요. 뭐가 좋은지 모르겠는데 그냥 막 좋아요. 특히나 산에서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감사의 마음까지 생긴답니다. 훗.

2014-06-30 0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30 1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 1
데이비드 미첼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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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개별적인 이야기들이 각자 어떻게 진행될는지, 그전(前)의 이야기와 그전의 이야기와 그 전의 이야기와 그 전의 이야기들이 어떻게 연결이 될는지에 대한 기대로 흥분된다. 얼른 다음장을 넘기고 싶어진다. 이제 2권을 시작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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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5 0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25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25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25 0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14-06-25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투를 날리며 오.... 기대기대

다락방 2014-06-25 09:47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 이거 재미있어요! 휘모리님도 재미있게 읽으실 것 같아요. 읽으세요!! >.<
 
세상물정의 사회학 - 세속을 산다는 것에 대하여
노명우 지음 / 사계절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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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쓰기에 적당한 공간은 연구실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집필 작업은 연구실보다는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졌다. 어디를 가든 태블릿 피시와 함께했다. 첫 원고는 도쿄 롯폰기힐스 앞의 스타벅스에서 시작되었지만, 방콕 발 깐짜나부리행 기차와 오스트레일리아의 브리즈번에서 골드코스트로 가는 기차에서 쓴 원고도 있다. 어떤 원고는 사람들이 사랑하고 다투기도 하고 심지어 공부까지 하는 일산 웨스턴돔의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에서, 또 다른 원고는 물건 파는 잡상인도 등장하고 노약자 배려석을 두고 언쟁도 벌어지는 지하철 3호선 안에서 썼다. 그렇게 쓴 원고는 잠이 부족한 직장인들이 자리에 앉자마자 잠들거나 이어폰을 기고 서로에게 무관심한 채 음악도 듣고 다운받은 '미드'도 보고 팟캐스트도 듣는 일산과 강남을 오가는 M7412번 버스에서, 강남역에서 아주대학교까지 가는 3007번 버스속에서 수정되었다. (p.9)



이 책을 읽으려고 펼치면서 머리말에서 만난 위 문장들이 천천히 눈앞에 그림처럼 그려졌다. 자신의 생각을 담은 글을 쓰기 위해 여기에서 저기로 이동하는 틈틈이 몰두하는 저자의 모습과(나는 저자의 얼굴을 모르지만), 지구상의 이쪽과 저쪽,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어딘가에서 집필하는 모습들이. 그리고 그 모습들은 꽤 낭만적이고 이상적으로 여겨져서 부럽기까지 했다. 왜 나는 매일 같은 시간 매일 같은 장소에서 매일 같은 일을 하고 있는걸까, 하고. 만약 내가 집필활동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라면, 나 역시 노트북을 들고 포르투갈로, 미국으로, 덴마크로, 스웨덴으로 가서 이국적인 풍경을 배경삼아 글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당연히 해보았다. 그러나 이건 꿈같은 일이다. 포르투갈로, 미국으로, 덴마크로, 스웨덴으로 갈 돈이 어디있담? -_-



머리말에서 만난 이 낭만적인 기분을 느끼는 건 잠시뿐. 이 책을 넘기다보면 자꾸만 뜨끔뜨끔한다. 나라는 인간. 합리적이고 나름 성실하게 한 사람의 역할을 다 하며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얼마나 모순된 인간인지를 노명우가 자꾸 콕콕 찔러주는 것 같았달까. 특히 '유권자'와 '소비자' 부분에 대해서는 더 그러했다. 뜨끔뜨끔..






좋은 삶은 선물 받을 수도 없다. 좋은 삶은 삶의 주인의 오랜 습관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이다. 좋은 삶은 착한 삶과 동일하지 않다. 착하지만 지혜롭지 못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착한 바보'는 타인을 공격하지 않고 모독하지 않는 소박한 방어의 삶을 사는 것이지 좋은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좋은 삶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선한 의지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현실은 선한 의지만을 가진 사람을 겉으로는 칭찬하지만, 그 사람에게 좋은 삶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그런 사람의 현실적 삶은 좋은 삶이라기보다, 빈한한 삶에 가깝다. (p.17)

우리 시대의 '럭셔리 열품'은 여성적 현상만은 아니다. 미국이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디즈니랜드가 있다는 유명한 말처럼, 된장녀는 반지하에 살면서도 골프라는 럭셔리한 취미를 즐기는 남자, 손수 자동차를 몰지만 에쿠스만을 고집하는 남자, 21년산 위스키를 맥주와 섞어 구정물 맛이 나는 폭탄주로 만들어 삼키는 남자를 숨기고 있을 뿐이다. 사치에 관한 한 양성평등은 법률적 양성 평등보다 더 빨리 이뤄졌다. 된장녀를 희생양으로 내세울 경우, 우리는 오히려 남자 여자를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퍼져 있는 '럭셔리 열풍'이라는 마법의 실체를 보지 못하게 된다. (p.36)

명품이라는 훈장은 내가 성공했음을, 내가 돈이 있음을 전하는 메시지다. 자본주의의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난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훈장 따위에 아예 관심도 없다. 하지만 한쪽 발은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다른 한쪽 발은 욕심을 충족시켜 줄 만한 돈ㅇ르 갖고 있지 않다는 현실을 딛고 있는 중산층이 가장 가련하다. 중산층은 럭셔리 유행을 따라 하기에는 돈이 너무나 부족하고, 유행과 거리를 두기에는 자본주의의 훈장이 너무나도 탐이 난다. (p.39)

최소한의 비용으로 상층의 과시적 소비를 따라잡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느라 '면세점 100퍼센트 활용법'과 명품 아웃렛 정보 수집에 두뇌 활동의 대부분을 할애하기 시작하면, 민주주의를 지향하던 유권자는 소비자로 변화한다. 유권자일 때 유효하던 1인 1표제라는 민주주의의 놀라운 평등은, 소비자로 변화하자마자 구석에 처박힌다. 유권자는 정의롭지 못한 방식으로 축적된 부를 단죄하는 수단을 손에 쥐고 있지만, 소비자로 변화한 우리는 자본주의의 승자와 패자로 분리된다.(p.40)

세련된 국제 수준의 표준화된 간판과 실내 인테리어 그리고 포장지까지 화려해졌지만,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은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다. 패밀리 레스토랑 체인의 합리화된 외양과는 달리, 그 체인망이 제공하는 일자리는 고작해야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일 뿐이다. 합리화의 끝에서 만나는 어이없는 비합리성은 합리화된 대학도 피해갈 수 없다. 강의 평가로 강의를 예측 가능한 것으로 만들면, 높은 강의 평가 점수를 받기 위해 강의는 오히려 하향 평준화된다. 대학 경쟁력을 높인다고 영어강의 비중을 대학 평가의 지표로 사용하면, 대학들은 앞다투어 영어강의 비율을 확대한다. 하지만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이 아무도 없는 강의실을 채우고 있는 것은 학문 탐구라는 진지한 목적이 아니라 영어로 강의를 한다는, 영어로 강의를 듣는다는 만족감 뿐이다. (p.50-51)

공감은 동정이라는 따듯한 감정으로 냉혹한 현실을 잠시나마 가릴 수 있다는 낭만적인 태도와도 거리를 둔다. 동정의 다리 위에선 이따금 불우이웃돕기 모금이나 자선바자회가 열리지만, 공감의 다리 위에선 복지라는 제도의 나무가 자란다. 공감이 복지를 감정으로 표현한 것이라면, 복지는 공감에 제도의 옷을 입힌 것이다. (p.127-128)

개인적 성공은 소유한 승용차의 크기와 은행 잔고로 측정될 수 있겠지만, 사회의 성공 여부는 공감이 제도화된 복지의 크기와 넓이로 가늠할 수 있다. 하늘이 혹은 계급이 선택한 소수의 사람만 성공하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을 동정의 시선으로 볼 수 있는 특권을 독점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사회가 홀로 성공하는 게 더 좋다. 복지국가는 성공한 소수의 개인보다는 성공한 사회가 공공선에 가깝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성공의 단위는 하늘이 돕는 개인뿐이라는 오래된 사유의 관습과 이별할 때, 우리는 비로소 복지국가와 만날 수 있다. 그 나라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자기계발서가 그 나라로 가는 방법을 알려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자기계발서는 읽을 만큼 읽었다. 이젠 그 책을 덮고 한번 물어보자. 이건희의 성공은 자기계발서 덕택인지, 아니면 이건희의 아버지가 이병철 이었기 때문인지. (p.128)

강제에 의해 억지로 해야 하는 행위를 하며 신바람이 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누구나 억지로 하는 일은 하는 시늉마 내지, 자신이 하는 활동에 대한 애착도 긍지도 몰입도 없다. 하지만 자신이 원해서 행하는 일을 할 때 사람은 돌변한다.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을 할 때 동작이 굼떴던 사람도 빠르게 움직일 수 있으며, 의자에 오래 앉아 있지 못하던 사람도 하룻밤쯤은 거뜬히 지새울 수 있다. 그 에너지의 원천은 바로 자발성이다. (p.153)

먹고살기 위해 취직으로 시작한 임금노동을 사표를 내던지며 그만둘 수 있다면 그보다 짜릿한 순간이 어디 있으랴. 그래서 나 홀로 탈출을 기도하는 임금노동자는 매일매일 마음속으로는 사표를 쓰지만, 의지할 곳은 복권뿐이다. 복권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는 김대리 앞에는 전문가처럼 보이지만 사실 임금노동자에 불과한 대학교수도, 월급쟁이 의사도, 마트의 비정규직 종업원도 서 있을 수 있다. 복권을 사는 사람의 소박한 소원은 당첨이 되어 마음속으로 수백 번 쓰고 또 썼던 그 사표를 마침내 내던지는 순간이 도래하는 것이다. 복권의 유일한 효용가치는 이런 백일몽을 꿀 수 있는 권리이다. 퇴근길 혼잡한 지하철에서 혼자 웃고 있는 사람의 머릿속에선 복권 당첨이라는 짜릿한 백일몽이 상영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꿈은 꿈일 뿐이다. 해결책은 꿈이 아니라 현실 속에 있다고 깨달은 사람은 더 이상 복권 따위에 기대를 걸지 않는다. 세상에는 여전히 복권을 사는 사람과 더이상 복권에 기대하지 않고 연대라는 죽어 버린 단어에 귀 기울이는 두 종류의 임금노동자가 있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p.193)

'콜드 팩트'와 마주했을 때 발생할 고통을 회피하려는 사람들이 모르고 있고, 고통을 치유해 준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침묵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당신의 고통은 당신 탓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세상에서 느끼는 고통에 당신은 책임이 없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당신 마음 속의 고통을 끝없이 만들어 내는 어떤 존재가 있다. 그 어떤 존재를 우리는 '콜드 팩트'라 부를 수 있다. 그렇기에 상처받은 삶은 상처받은 사회를 치유하지 않은 채 치유될 수 없다. 이 명확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혹은 마치 상처받은사회가 치유되지 않아도 개인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다고 주장하거나, 우리가 좋은 사회 속에 살고 있지 않아도 개인이 좋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 권유는 성공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긍정성으로 뒤범벅된 자기계발서만킁이나 거짓말에 가깝다.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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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06-23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참 괜찮지요?
글을 쉽게 알아 먹게 잘 써주고
또 꽤나 여러번 뜨끔뜨금하게 만들어주니 말이에요.





다락방 2014-06-23 13:46   좋아요 0 | URL
제가 밑줄을 그어놓질 못해 여기에 옮기질 못했는데, '보수는 사람을 향해 거짓말을 하고 진보는 사물을 향해 말한다'는 구절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미 보수인 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강경히 유지하고 있고, 진보의 손을 들어주고 싶은 자들은 '우리편은 무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뭔가 머리가 띵-해지는 구절이었어요.

아무개 2014-06-23 14:10   좋아요 0 | URL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도 좋은 글이 참 많아요.
제목만으로도 읽어보고 싶은 생각 안드십니까? ^^:::

저는 첫 부분에 '상식'적인 사람이 아니라'양식'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 이야기 있었던게 제일 기억에 많이 남네요.
생각지도 못했거든요. 내가 믿고 있는 상식이 언제나 옳은것은 아니라는걸...
여러모로 내 생각을 깨주는 부분이 많아서 좋더라구요.

단발머리 2014-06-24 10:06   좋아요 0 | URL
저는 위의 책을 어서 읽고 싶은데, 아무개님이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도 좋은 글이 많다고 하시니, 저는요, 무척이나 바쁘답니당~~~ *^^*

단발머리 2014-06-24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은 바로 읽어야겠는데, 머리를 팡팡! 내려치는 좋은 구절이 많아 줄을 치다보면 읽는 게 오래 걸릴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저는 특히 요 대목...

<'면세점 100퍼센트 활용법'과 명품 아웃렛 정보 수집에 두뇌 활동의 대부분을 할애하기 시작하면, 민주주의를 지향하던 유권자는 소비자로 변화한다.>

...이 눈에 들어 오네요. 합리적 소비자로 살기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사실 눈먼 소비자가 되는 건데요.
대단하네요, 이 책이요. 노명우라는 사람도요.

다락방님 페이퍼가 아니었다면, 이 책은 제목만 아는 책이 되었을텐데, 다락방님이 많이 인용해 주셨지만, 저도 직접 읽어보고 싶어요. 추천 감사해요~~~~~

다락방 2014-06-24 11:55   좋아요 0 | URL
저도 소비자와 유권자 부분에서 뜨끔했어요, 단발머리님.
저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정말 그렇더라고요. 게다가 중산층이 럭셔리풍을 좇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것도 사실인 것 같고요. 제 자신이 모순적이란 걸 들여다보게되서, 허황된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서 참 씁쓸한 독서였습니다.

네, 단발머리님도 읽어보세요.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도 살짝 끌리지만 전 음...중고알림등록 해놔야겠네요. ㅋㅋㅋㅋㅋ

dreamout 2014-06-24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를 읽으시면 아마도 폭풍공감하실껄요~ ㅎㅎㅎ

다락방 2014-06-24 14:10   좋아요 0 | URL
폭풍공감...이란 말씀이십니까??? 이런 ㅋㅋㅋㅋㅋㅋ 읽어야겠군요!
 
정사
파트리스 쉐로 감독, 케리 폭스 외 출연 / JC인더스트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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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런식으로 자꾸 만나는 건 좋지 않아요. 당신에 대해 궁금해지고 알고 싶어지니까요. 점점 더 헤어지기 힘들고 갖고 싶어지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여전히, 또 만나고 싶어요. 가지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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