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 오후 두 시의 기억 - 북유럽에서 만난 유쾌한 몽상가들
박수영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저자 박수영은 2006년에 스웨덴으로 역사학 공부를 하러 가서 2009년에 논문 발표까지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3년을 스웨덴에서 있었던건데 스웨덴에서도 스톡홀름 대학이 아닌 웁살라 대학에 있었다고 한다. 저자가 밝힌 바에 의하면, 웁살라대학교는 영어로 개설된 과목이 다른 어느 대학보다 많고, 그래서 세계 각지에서 공부하러 오는 학생들도 많다는 거다. 박수영도 공부하러 가서 같은 클래스의 터키, 이란, 미국.. 또 어디더라. 여하튼 글로벌 프렌십을 갖게 되는데, 그 친구들의 나이는 대부분 이십대 초반이었던 반면 그곳에 갈 때 박수영의 나이는 마흔즈음이었다. 이십년이나 나이 차이나는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게다가 그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생각을 교환하고 친구가 된다는 것은.. 이건 어떻게 상상해볼 수 있을까, 하다가 내 대학교 4학년 때를 떠올렸다.


1학년때 학사경고를 받고 그 다음학기에는 간신히 학사경고를 면하고, 그 다음학기에도 F 가 빵빵 터져서 어쨌든 결과적으로 나는 남들이 쉬면서 어쩌다 학교 다니는 4학년 때, 아침부터 밤까지 학교에 매일 있어야 했다. 1학년 그리고 2학년 학생들과 수업을 같이 들어야 했는데, 그게 너무 부끄러워서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맨 뒤에 앉아있곤 했다. 1,2학년 때 학교 툭하면 빠지고 만화방가서 라면 먹고 있고 그랬는데, 4학년 때 그렇게 애긔들하고 수업 들을 때는 빠지니까 참 난처했다. 전 주에 혹시 숙제를 내줬는지 그렇다면 그게 뭔지.. 부끄러워 애긔들한테 물어볼 수가 없는 거다. 그래서 한 번은 수업 끝나자마자 번개같이 뛰어가서 교수님께 제가 지난 주에 결석했는데 과제가 뭐였나요, 물어봤더랬다. 인생이여... 부끄러움으로 점철된 나의 대학생활...


애긔들하고 수업 듣는 건 부끄럽지..라고 생각하다가, 아 그런데 나의 이 경험은 박수영의 것과는 현저히 다르다는 걸 이내 깨닫는다. 박수영은 원래 공부 잘했던 사람이(서울대 철학과 졸업) 어디 더 배워볼까? 하고 슝- 스웨덴으로 날아간거고, 나는 어떻게든 졸업을 해야 해서 그런거고..이건 경우가 달라도 아주 다르지, 달라.. 나도 안다.


나 대학 졸업식때 학사모 쓰고 있을 때 우리 과 애들이 와서 '너가 어떻게 제 때 졸업하냐'고 다들 한마디씩 했다. 너 빽있냐? 아버지가 학교 관련자분이시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내가 노력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학교에서 애긔들하고 수업 들었어.. 그래서 어쨌든 학사경고에 F 를 절친 삼아 학교 다녔던 나는, 조교 언니가 찾아와서 '너 계절학기라도 들어야 하지 않겠니?' 걱정해줬던 나는, 계절 학기 한 번도 없이, 그리고 휴학도 없이, 그렇게 제 때 졸업한 것이다. 물론 졸업당시 학점 평균은 2.0 으로 마감... 아, 힘들었다. 이거 만드느라고.. 이것도 다 막판에 학점이 잘나와서(라고 했지만 3점 넘어본 적 없는 사람) 2.0 됐지, 안그러면 .... 아무튼 딱 4년 다니고 제 때 졸업한 사람이다. 애가 참 망가져서 엉망진창으로 공부도 못하고 학교도 제대로 안다녔지만, 그래도 어떻게 또 제 때 졸업하게끔 지가 그렇게 해... 애가 결국은 참 바른 길로 간다. 참 인간이야. 트루 휴먼..


아무튼, 박수영은 나의 경우와 다르고 그렇게 역사 공부 하러 갔는데, 박수영이 스웨덴 웁살라 대학교로 역사 공부를 하러 갔기 때문에 내가 알게된 사실은, 스웨덴이 복지가 좋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아니, 대학등록금 까지 공짜인것입니다. .. 네? 세상에 그런 일이. 나 대학 다닐 때만 해도 등록금 인상한다고 하면 막 학생들이 시위하고 그랬는데(안그래도 개비싼데..) 스웨덴은 대학까지 등록금이 다 무료이고 이건 외국인 학생한테도 마찬가지라는 거다! 박수영이 다닐 때는 그래서 공짜로 다녔는데, 박수영이 공부를 마칠 때쯤 스웨덴에서 '외국인 학생에게는 유료로 하겠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한다. 그래서 2022년 현재 웁살라대학교에서 공부하려면 외국인 학생에게는 돈을 받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 그리고, 웁살라 대학교에, 젊은이들만 있는게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 수강생들도 있는데, 그들은 꼭 졸업해 학위를 따는게 목적이 아니라, 듣고 싶은 강의가 있으면 그것만 듣는 것도 가능하다는 거다. 세상에.. 내가 바라던 바로 그것이네?


내가 뉴욕대를 가고 싶다고 해도 거기 등록금 너무 비싸고 공부 하려면 거기서 거주해야 하는데 생활비도 너무 비싸고.. 그러니까 아마도 꿀 수 있는 꿈이라는 건 뉴욕대에 가서 강의 하나 들어보고 오기.. 정도가 다가 아닐까, 내심 생각했단 말이다. 그런데 웁살라대학교는 등록금이 공짜이며 게다가 듣고 싶은 강의가 있으면 그냥 들어도 된대. 세상.. 개꿀.. 내가 원하던 바로 그것이며, 듣는 수강생들의 나이나 국적도 다양하니, 내가 거기에 가있다 한들 뭐가 이상하리요? 만세만세만만세!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박수영이 공부하면서 사귄 학생들은 박수영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데, 그러다보면 아시아, 한국, 남한에 대한 역사나 문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제국주의나 민족주의 등에 대한 의견을 묻거나 모르는 점에 대해 외국인 학생들이 물으면 박수영은 자신이 알고 있는 걸 다 답해준다. 그 질문이나 답을 읽노라니, 와 거기가서 공부한 게 박수영이라 다행이다, 싶었다. 나는 역사 1도 몰라서 대답해줄 수 있는게 없는데.. 어휴.. 공부 잘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려면 역시 공부를 잘하는게 답인가.. 어쨌든 나도 배우고 싶어서 웁살라대학교에 가도록 해보겠다! 그나저나, 그렇다면 영어 공부가 먼저겠구나... 영어.. 스웨덴은 영어를 다들 너무 잘한다고 하니, 스웨덴어까지 욕심내지는 말고 일단 영어 완전정복을 꿈꾸자. 


Hal Su It Da!!


웁살라대학교가 그리고 스웨덴이 너무 궁금해져서 스웨덴에 대한 책을 더 읽어보고 싶어졌다. 세상에, 대학 등록금이 공짜이며 누구나 공부하러 갈 수 있다는 거 너무 매력적이지 않은가. 누구나 공부하게 문을 열어둔다면, 공부하게 되는 더 많은 사람이 생기는것이고, 그것이야말로 국가 경쟁력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나 매력적인 스웨덴을 알게된 건 이 책을 읽은 커다란 수확이지만,

그러나 에세이로서의 이 책을 말하자면 불편한 지점들이 있다.

에세이라는 특성 답게 글쓴이의 생각이나 감정이 드러나게 되는데, 간혹 어떤 생각들에 동의하지 못해 불편해지는 거다. 이를테면 처음 만난 그 학교의 학생들-나중까지 친구로 지내는-에 대한 외모 묘사가 좀 거슬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사생활을 이렇게 공개한다고? 거기에서 작가가 이들에게 허락은 받은건가 싶었다. 그들은 알고 있을까? 웁살라대학교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가 한국에 돌아가서 한국어로 자기들 얘기를 하고 있다는 걸? 그 이야기들 속에는 어떤 여학생이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것도 나오고(그래서 저자는 그 사랑을 그만두라 조언한다), 허영심에 가득찬 베트남출신 미국인에 대한 뒷담화도 나온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싫어하는 건 살면서 무수히 일어나는 자연스런 일이지만, 그걸 이렇게 책으로 쓴다고? 독자가 그 사람을 만날 일이 없으니까 괜찮은걸까? 무엇보다 미국에 사는 그 사람은 알고 있을까? 한국인들이 자기 뒷담화 읽고 있는걸? 설마, 이름은 다 가명이겠지? 읽으면서 내내 찜찜한 부분이었다.



자 그러면 미래 설계를 해보자.

몰타가서 어학연수 한 다음에 갈고 닦은 영어 실력으로 웁살라대학교 가서 공부해야지. 그런데 웁살라 대학교에 가면 뭘 한담? 여성학? 스웨덴은 그나마 성평등한 국가라니 여성학 있지 않을까? 후훗.



Hal Su It 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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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09-07 08:4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웁살라! 드림스 컴 트루~! 아니 근데 그나저나 평점이 2.0이요???? *동공지진*

다락방 2022-09-07 09:02   좋아요 5 | URL
4학년때 미친듯이 노력해서 최상으로 나온게 2.8 인가 그랬거든요. 그래서 2점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왜, 내가 부끄러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2-09-07 10:15   좋아요 5 | URL
다부장님 역시 낙하산이었어.... 그 학점으로 기업 들어가고, 부장자리까지 오르다니... 역시..............빡세게 일하고 돈 모아서 해외 가는 척하는 것도 어른들이 시킨 거죠? 사실은 경영 공부하고 오는 거면서......쳇. 이제 대표 취임만 남은 겁니까! ㅋㅋㅋㅋㅋㅋ

베트남도 네덜란드에서도 산다는 거 슬슬 밑밥 까는 거죠? 거기 다 다부장님 기업 있으면서... ㅠㅠ

다락방 2022-09-07 10:25   좋아요 5 | URL
아 역시.. 가난과 사랑은 숨길 수 없다더니 제가 보기엔 부유함도 숨길 수가 없나보네요. 다 티났어요?
제가 편의점 알바하던 대학시절부터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다 얘기했었어요. 나 사실 서민의 삶을 체험하기 위해 알바하는거지, 재벌의 딸이야, 라고.. 아무도 믿어주진 않더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결국은 들통나네요.
그래도 절 미워하지 않으실거죠? 전 서민들의 편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소문 내지는 말아주세요.

잠자냥 2022-09-07 10:39   좋아요 5 | URL
휴... 어쩐지 우리 평범한 사람들은 위가 작아서라기보다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1끼 2메뉴 못 먹거든요... 부장님은 막 스타벅스에서도 2가지 메뉴 사 먹고, 매끼 두 가지 메뉴 먹잖아요. 막 남기고 그러잖아요. 역시.... 재벌2세....

급 멀어지는 느낌이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9-07 10:48   좋아요 5 | URL
뭘 잘못 알고 계신것 같은데, 저 안남기는 편...........

미미 2022-09-07 08: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너무 재밌어요!!ㅋㅋㅋㅋㅋㅋ이 책 빌리길 잘했다.Jal het da?
독일만 공짜가 아니네요?게다가 나이 제한도 없는 것 같으니...허허
영어와 체류비만 어떻게 마련하면! 일단 다락방님 먼저 고고씽!!^^*

다락방 2022-09-07 09:11   좋아요 4 | URL
백자평은 짧고 저 다섯줄 짜리 리뷰 쓰려고 창 열었는데 도대체 이거 무슨 일이에요? 수다 포텐 터져버렸네요. 에휴..
스웨덴 너무 가보고 싶어요, 미미 님! 저 다음 여행지는 스웨덴으로 잠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한 번 가서 보고 와야겠어요. 앞으로 내가 공부할 나라가 어떤지 보자는 심정으로 ㅋㅋㅋ 답사 답사 ㅋㅋㅋㅋ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으쌰으쌰 합니다! 미미 님, 저랑 웁살라 대학교 동기가 됩시다!!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2-09-07 08: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Hal Su It Da!!를 마음에 새기고 시작하는 아침입니다. 만화방에서의 과거마저도 다락방님의 시간이라면 참 귀여웠을 거 같다는 예감이 ㅋㅋㅋㅋㅋㅋ 웁살라 가려면 제일 먼저 뭐 하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9-07 09:36   좋아요 3 | URL
어휴 과거를 돌이켜보면 언제나 후회뿐입니다. 왜그렇게 공부를 안했는지. 아니 대학이란 공간이 얼마나 공부하기 좋은 곳입니까. 도서관에 가면 책이 많고 모르는게 있다면 물어볼 교수님도 계시고. 그렇게 공부하기 최적의 환경인 곳을 4년간 곁에 두고서도 만화방가서 라면이나 먹고 술이나 퍼마시고 인생 왜그렇게 산건지 원.. ㅠㅠ
웁살라 대학교에 가서 제대로 만회하겠어요! 일단 그 전에는 영어공부를!! 아 힘들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2-09-07 08: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Hal Su It Da!!!
ㅋㅋㅋㅋ
아주 고무적인 이야기입니다^^
저는 학교 다닐 때, 유급된 동기오빠가 한 명 있었는데 엄청 부끄러워 하면서 교실에 앉아 있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근데 부끄러운만큼 적극적으로? 공부하더니 결국 1등도 하고~^^
암튼 군대 다녀온 예비역들 그리고 나이 많으셨던 언니들도 몇 분 있었는데 그분들이 다 공부는 이렇게 하는 거야~를 보여줬던 게 아녔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열심히들 하셨었죠. 몇 년 전 그 언니를 한 번 만났었는데 언니는 지금 50 중후반쯤 되셨을텐데...아, 아직도 공부를 하고 시험도 치고...대단하시다고 했더니 ˝할만 해!! 니네들은 더 젊은데 뭐하고 있노???˝ ㅋㅋㅋ
그래서 요즘 생각해보면 공부는 나이 들어 하는 게 맞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노화된 뇌가 좀 문제이긴한데...ㅜㅜ
암튼 몰타 어학연수 그 뒤의 대학공부 그리고 그후엔 작업실에서 글 쓰고 계신 모습 상상해 봅니다. 상상하니 갑자기 제가 막 기분이 좋네요ㅋㅋㅋ

다락방 2022-09-07 11:35   좋아요 2 | URL
공부는 계속 하는게 맞는것 같아요. 공부는 그만두어서는 안되는 것 같아요. 일전에 정희진 선생님 강연 갔을 때 선생님이 그러셨거든요. 사람은 계속 공부해야 한다, 공부하지 않으면 제자리에 있는게 아니라 퇴화하는 거다, 라고요. 저는 선생님의 말씀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공부는 젊어서도 해야하고 나이 들어서도 해야하는것 같아요. 그리고 해도해도 여전히 모르는게, 모르는걸 많다는 걸 알게 되는게 공부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책나무 님, 우리 열심히 책 읽고 생각하고 쓰고 의견을 나눕시다!!

그렇지만 노화된 뇌도 문제고 노안도 문제긴 합니다 ㅠㅠㅠㅠㅠ
저는 언제 몰타에 가고 언제 웁살라 대학교를 가고 언제 작업실을 마련해서 글을 쓰게 될까요... 인생, 어떻게 펼쳐질까요? 아무쪼록 아름답고 화려하고 보람차기를 바랍니다. 후훗.

거리의화가 2022-09-07 09: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Hal Su It Da!가 뭔가 했어요ㅋㅋㅋㅋㅋ
대학생 때 에피소드 재밌었네요^^ㅎㅎㅎ 저는 2년만에 졸업해야해서 여유가 없었어요. 그래서 학교 때 추억이 많이 없어서 아쉽습니다^^; 저도 등록금 공짜인 학교로 고고씽하고 싶습니다! 나이 불문하고 배우려는 의지가 있다면 무료로 배울 수 있는 곳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다락방 2022-09-07 11:38   좋아요 2 | URL
거리의화가 님, 할수있다는 이 명품 칼럼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얼마전에 장안의 화제였던 칼럼이죠.

https://m.hani.co.kr/arti/opinion/column/1056213.html#cb

저는 사람이 참 고집스러워서 공부가 중요하다는 말을 듣는 척도 안하다가 이 나이 되어서 아아 과거의 내가 왜그랬을까 바보 똥꼬 멍충이다 ㅠㅠ 이러고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젊은이들에게 공부가 중요하다, 열심히 해라 전하고 싶어도 그러나 그들의 귀에는 꼰대의 잔소리로 들리겠죠. 인간은 어느 한 때 어리석은 순간을 거쳐가는 것 같아요. 저는 젊은 시절 정말 어리석었습니다. 후회후회... ㅠㅠ

맞아요, 거리의화가 님. 직업이 뭐든, 나이가 어떻든,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에겐 언제나 열려있는 배움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면 좋겠어요. 저도 계속 배우고 공부하겠습니다. 빠샤!!

건수하 2022-09-07 09: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학창시절 이야기도 듣고 재밌네요.
이제 너무 옛날 일이라 학점이 얼마였는지 기억도 안나요 ㅎㅎ

저는 웁살라나 몰타까진 안 가도 괜찮고 모 대학 여성학협동과정.. 이런 거 듣고 싶은데
(소박한 꿈)
마음의 여유가 없네요 휴.. 사람이 대범해야 하는데.

다락방 2022-09-07 11:40   좋아요 3 | URL
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점을 기억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기억하는 이유는 학점이.. 너무 똥망.. 남들이 받지 않는 학점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수하 님이 저같은 학점을 받으셨다면 저처럼 기억하셨을 겁니다. 그러니 학점을 기억못하는 자신을 많이 예뻐해주세요. 으하하하.

저도 얼마전에 지방에 여성학과정 있다는 거 알고 오옷 하고 혹했었는데, 그렇게 공부해도 좋을것 같아요. 다만 저는 직장을 다니면서 그렇게 본격적인 공부를 하기가 망설여지더라고요. 체력 어쩔거냐며.. ㅠㅠ
그런데 정말 간절히 원한다면 저는 이미 대학원을 다닌다거나 여하튼 뭔가를 하고 있겠죠? 흐음. 역시 그만큼의 의지는 없는 것인가..........

바람돌이 2022-09-07 11:2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푸하하~~ 얼레리 꼴레리 학점 2.0... 제가 이겼어요. 저는 졸업 평균학점 2.1
강조하건대 우리과 꼴찌 절대 아니었음. 내 뒤에 사랑하는 친구 1명 더 있었어요. ㅎㅎ
아 근데 좀 안타까운건 전 계절학기도 하고, 결국 제 때 졸업 못해서 1학기 더 했다는.....ㅠ.ㅠ 그럼 다락방님이 이긴건가요????

스웨덴은 대학 학비가 공짜일뿐 아니라 학기초면 책도 사고 준비물도 사라고 학생들한테 생활비도 지급하는걸로 알아요. 그리고 대학들어가기가 워낙에 쉬워서 그냥 나 대학 입학하고 싶어 하면 다 해주는, 대신에 졸업은 진자 빡세게 공부해야 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우리 다락방님은 이제 공부천재로 거듭나셨으니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하고 열심히 응원 응원합니다. 저는 스웨덴 대학 말고 오로라 보러 놀로가고 싶습니다. ^^

얄라알라 2022-09-07 11:31   좋아요 3 | URL
화려한 입담에 넋을 놓게 되는 여기는 다락방님 서재 ㅋㅋ

ㅋㅋ화려한 마무리는 바람돌이님께서 공부천재 다락방님 응원차 스웨덴 ˝놀로가시˝는 미래형으로^^

책읽는나무님 말씀처럼 노화된 뇌가 장애물이긴 하지만, 10대 때의 공부와는 어른 되어 하는 게 차원이 다른 거 같아요. 욕구 솟는 페이퍼였습니다!!!!!

잠자냥 2022-09-07 11:33   좋아요 2 | URL
아니, 바람과 돌이 님 바람이하고 돌이가 1.05씩 받았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9-07 11:43   좋아요 6 | URL
세상에, 바람돌이 님, 공부 잘하셨네요? ㅋㅋㅋㅋㅋㅋㅋ 계절학기까지 들으셨기 때문에 저보다 더 높은 점수로 졸업하실 수 있었던것 아니겠습니까?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니 그런데 평소의 바람돌이 님 생각하면 의외의 점수기는 하네요. 대학때 공부 안하셨네요? 저 첫직장 합격했는데 성적증명서를 나중에 추가로 요구해서 가져다주니까, 면접관이었던 분이 당황하시면서

˝공부를.... 안하셨네요?˝

이러면서 천장을 자꾸 보시더라고요. 이미 합격은 시켜놨는데 이걸 어쩌나.. 하셨던 듯. 그래서 제가 대답했습니다.

˝방황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진짜 인간.. 참 잘 살고 있다 진짜루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스웨덴에 제가 학교 다니면 숙소도 마련해야 할터이니, 그러면 오세요, 바람돌이 님. 오로라 보러! 오로라 보는 건 저의 소원이기도 합니다. 후훗.


얄라알라 님, 우리 계속 공부합시다. 빠샤!! 공부하는 사람들로 늙어갑시다!!


잠자냥 님, 2점을 초과하는 학점은 역시 혼자서는 불가한것이었군요....

책읽는나무 2022-09-07 12:07   좋아요 5 | URL
제 답글 읽다가...왜 이렇게 대댓글이 많지? 하며 읽다가....ㅋㅋㅋ
우리 알라딘 더 오래 하다간...ㅋㅋㅋ
본인의 모든 것이 탈탈탈 다 털리겠어요.ㅋㅋㅋ
그런데 사생활을 듣고 나면 왜 애정이 더 생기는 거죠??? ㅋㅋㅋ
점심 먹으면서 계속 웃겠습니다ㅋㅋ
다들 맛난 점심시간 되시길요~ㅋㅋㅋ

바람돌이 2022-09-07 12:50   좋아요 2 | URL
다락방님의 ˝방황했습니다˝에 박수!!!! 우와 멋짐 터집니다. ^^

공쟝쟝 2022-09-07 15: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 웁살라 대학 뒤메질 옹이 꽂아줘서 푸코가 열심히 강의하던 그 대학인 거 같아요 ㅋㅋㅋㅋㅋㅋ 푸하하하 ㅋㅋㅋㅋ (혼자 푸코이야기해서 죄송합니다…)

다락방 2022-09-08 08:36   좋아요 1 | URL
그 대학 맞아요! 그래서 책 읽다 보면 푸코가 언급됩니다. 작가가 엄청 똑똑한 분이시더라고요...

mini74 2022-09-07 2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희 조카가 1학년 1학기애 좀 논다고 학고맞아서 지도 교수님 전화왔는데 울 언니 …. 보이스피싱인줄 알았대요 ㅎㅎㅎ

다락방 2022-09-08 08:37   좋아요 2 | URL
학사경고는 놀랍게도 아버지 이름으로 오거든요. ㅋㅋㅋ 저희 대학교 소인인데 아버지 이름으로 와서 ㅋㅋ 엄마가 뜯어보지도 않으시고 왜 니네 학교에서 아빠한테 오냐? 이래서 제가 뜯었더니 학사경고가 똭-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별 거아니야 나한테 온거야 이러고 얼버무렸는데 남동생이 그걸 알고는 ˝누나 학고는 좀 심한거 아니냐? 부모님이 힘들게 돈벌어서 200만원이나 등록금 내는건데 그건 진짜 아닌것 같다˝ 이래서... 당시 남동생 중학생이고.. 전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하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mini74 2022-09-08 08:39   좋아요 1 | URL
ㅎㅎ 저희조카는 탑으로 들어갔거든요. 그래서 지도교수님이 혹 집안에 우환이 있냐고 ㅎㅎㅎ 질문도 보이스피싱같았다고 ㅠㅠ4년장학금 날리고 군대갔습니다. 오면 노가다 보내서 메꾼답니다 언니가 ㅎㅎ

다락방 2022-09-08 08:41   좋아요 1 | URL
아니, 탑으로 들어갔다가 학고라니요!!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뭔가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요? 저는 처음 수업 제끼기 시작한게 좀 일이 있었던거긴 하거든요. 교수님한테 연락올만 했네요 진짜 ㅠㅠ

alummii 2022-09-08 0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F밍아웃!! ㅋㅋㅋㅋ 😆다락방님 좀 놀던 분이군요...의외입니다 ㅎㅎㅎ 그래도 제때 졸업은 훈훈한 마무리입니다 👏👏 (참고로 저는 1년더다님 ㅋㅋㅋㅋ;;;)

다락방 2022-09-08 08:39   좋아요 2 | URL
좀 놀던 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뭐 그렇다고 제가 뭐 특별히 기억에 남게 잘 놀거나 한 것도 아니고요 진짜 말그대로 방황이었어요. 만화방에 가거나 술 뽀지게 마시거나 그런것 밖에 없어요. 그러게요. 제때 졸업은 정말 칭찬합니다. 그렇지만 그 당시의 제가 어리석었다고 생각하고 후회는 수시로 해요 ㅠㅠ 그리고 그 때 내가 왜그런걸까에 대해서도 간혹 생각해본답니다.... 인생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감은빛 2022-09-08 16: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학사경고와 F학점. ㅎㅎㅎㅎ 너무나도 익숙한 느낌이 드네요.
1학년 때는 강의실이 아닌 거리에서 시위하느라 학점이 엉망이었고,
군대 다녀와서 복학한 뒤로는 그래도 학점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는데,
국문과 복수전공 하려고 멀리 떨어진 다른 캠퍼스(차로 약 30분 거리)에 혼자 다녔는데,
(국문과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그때 국문과 과목 대다수가 학점이 엉망이었지요.
두 과목 F를 받아 학사경고도 그때 받았구요.

결국 4학년 때 친한 후배가 조교가 된 후 복수전공을 포기하지 않으면 절대 졸업 못 한다고 조언해서
무조건 그 후배가 시키는 대로 해서 어떻게든 졸업을 할 수 있었어요.

그 당시엔 운동하다가 학사경고 받은 것이 아니라,
아는 애들 하나 없는 국문과 수업 받느라 학사경고 받았다는 사실이 무척 부끄러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래도 대학 다니면서 학사경고 한번도 안 받은 것 보다는
한번쯤 받아본 경험을 했다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드네요.
안 받아봤으면 그거 받을 때 어떤 기분인지 평생 모를 거 아니예요? ㅎㅎㅎㅎ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스트
필리스 체슬러 지음, 박경선 옮김 / 바다출판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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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라는 정체성은 완벽한 인간의 다른 말이 아니다. 페미니스트는 여성에 대한 혐오를 멈추고 성별로 일어나는 불평등을 고쳐나가길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래, '사람'이다. 사람이어서 완벽하지 않고 때로는 잘못을 저지르며 실수도 저지른다. 성차별주의자들이 그러는 것처럼, 다른 모든 인간들이 그러는것처럼. '페미니스트라면서 왜 그런 말을 해?' 혹은 '페미니스트라면서 왜 그런 행동을 해?' 라는 물음들에는 '인간이라서' 그러니까 우리는 부조리하고 불완전한 인간이라서, 모순으로 똘똘 뭉친 인간이라서, 라는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페미니스트가 완벽한 인간이라는 것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안다, 알지만, 아는데,


그래도, 자신의 어떤 뜻을 위해서, 그러니까 더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는 취지로, 이편이 결국 더 옳다는 취지로, 그리고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으로, 그동안 옳은 행동을 했다는 자신의 앎으로, 하다못해 내가 사랑했었다는 이유로, 그렇게 숱한 이유들로 '어떤' 강간 피해자들 여성의 편에 서지 않는것, 애써 피해자의 증언을 무시하는 것, 가해자의 편에 서는 것에 대해서는 나는 여전히 이해하려고 해보지만 받아들여지질 않는다. 어떤 대의가 한 여성의 강간피해보다 우선될 수 있다는 것인지, 정말 나는 모르겠고 아무리 애를 써도 야속함의 크기는 작아지질 않는다. 우선순위가 다르다고 내가 나 자신을 설득해보지만, 내 설득에 내가 잘 넘어가지질 않는다. 나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라는 명목으로, 더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강간 피해자 여성의 말을 못들은 척 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있다는 게 너무 가슴이 아프다. 왜 어떤 페미니스트들은 때로는 가해자의 편에 서는걸까. 왜 어떤 여성들은 어떤 남자들을 무조건적으로 추앙할까? 그 남자의 폭행이 드러나도, 왜? 아무리 불완전한게 인간이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라고 자꾸만 아프다. 그래서,


나는 내 남은 삶이 앞으로 대단히 외로울 것이라는 걸 안다. 그리고 단단히 각오하고 있다, 그 외로움에 대해서는.



난 외로울 것이다. 




인권운동을 하던 알린은 민주사회학생연합의 일원이었다. 그러나 납치를 당하여 남자 두 명에게 잔혹한 강간을 당한 뒤로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헌신이 우선순위가 됐다.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내 다리 사이에 보지가 있는 한 그것은 억압당할 유일한 필요조건이 된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나는 다른 누구와 다를 바 없이 취약했고 그 사실은 내게 충격이었다." - P432

스웨덴 정부가 후원한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스톡홀름에 간 적 있었는데 그곳에서 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만한 페미니스트 철학자인 루스 이리가레(<반사경으로 들여다본 여성이라는 타자Speculum of the Other Woman><하나이지 않은 성This Sex Which Is Not One>의 저자)를 만났다. - P401

결국 나는 일본인 여성 딱 한 명과 함께 그곳(홍등가)으로 갔다. 그곳의 지저분하고 처찬한 광경에 가슴이 무너졌다. 큰 광고판의 성매매 광고에 아동들 사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처에서는 포르노 만화책을 팔고 있었다. 만화책에 묘사된 장면드마다 가학적이었고 아동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 P400

좋은 엄마였던 샤론 머피는 발언 참여를 위해 멀리서 왔는데, 콘퍼런스 장소를 나서면서 곧바로 교도소에 수감됐다. 내가 샤론을 인터뷰한 바에 따르면, 샤론의 시어머니인 작가 마야 안젤루는 며느리와 손자를 보호하지 않고, 폭력을 행사하는 자기 아들을 보호하고 나섰다. 샤론이 더 이상의 폭력을 견딜 수 없어 자기 아들(마야의 손자)을 데리고 관할구역을 빠져나가자 마야는 사람을 고용해 샤론을 뒤쫓아 체포한 뒤 납치 죄목으로 구속했던 것이다. - P355

여기 또 한 가지 알아 두면 좋을 관점이 있다. 동등한 고용권을 얻기 위해서 혹은 불합리한 노동 환경에 항의하기 위해서 15년 동안이나 소송을 진행하고, 그 사이 내부고발자로 낙인찍혀 해고당한 뒤 어디에도 채용되지 못한 페미니스트는, 기자회견에서 일회성으로 그런 여성의 권리를 차지한(나 같은) 사람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여러 해 동안 성희롱 방지법안을 도입하려 애쓰고 이를 위해 로비 활동을 벌이는 페미니스트는 단순히 언론에서 그런 법안 도입을 지지한다는 발언을 한두 번 한 사람과는 다르다.
매 맞는 여성들을 위한 쉼터를 운영하고 50여 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일하며 마치 자신이 수녀라도 되는 듯 가난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사는 페미니스트는 그런 쉼터를 위해 일회성으로 기금 마련을 하는 나 같은 페미니스트와는 다르다. - P337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했을 때, 우리는 낯선 이들에게 배신당했을 때보다 훨씬 더 깊은 상처를 입는다. ‘모두는 한 사람을 위해 존재하고 한 사람은 모두를 위해 존재한다‘고 선언하는 자매들을 찾았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피해자를 믿어 주고 성폭력에 맞서겠다는, 그리하여 전폭적인 지지와 선망을 끄러낸 운동에 참여했다고 상상해 보라. 그런데 당신의 페미니스트 동지들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마치 정치인들처럼 다른 것(낙태를 합법으로 유지할 특정 남성 또는 정당)을 얻기 위해 한 가지 원칙(자신이 강간당했다고 말하는 여성을 믿음)을 희생시킬 사람들임을 깨닫게 됐다고 상상해 보라. - P315

나는 광기가 실제로 존대한다고 믿는다. 조증, 우울증, 조현병, 침습적 회상 같은 증상이 가상이 아니라고 믿는다. 또 그것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징벌 수준으로 병을 진단받고 나긴찍히고 학대당한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나는 우울을 낭만화하거나 그것을 일종의 예술로 보려는 이들에 반대한다. 그리고 이런 증상들은 정치적 혁명이 치유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 P242

"오늘 밤에 클럽 갈래요?"
"말도 안 돼요."
예전에도 우리는 밤의 유흥에 대해 여러 번 이런 대화를 주고받은 적이 있었다. 길고 고된 하루의 긑에 그 화려한 사람들과 어울려 춤을 추고 술을 마신다는 생각 자체가 내게는 공포였다.
하지만 글로리아는 지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 P240

나는 포르노그래피를 여성 대상 폭력을 유발하고 사람들을 그런 폭력에 군감하도록 길들이는 혐오물로 보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이 주장은 그 자리에 있던, 수정헌법 제1조를 지지하던 변호사들을 자극했다. 앤드리아와 매키넌은 그들에게 "포르노그래피를 상대로 십자군 전쟁을 벌인다"며 조롱받았다.
우리는 무엇을 성취했나? 별로 없었다. 섹스를 통해 짓밟히는 여성의 이미지는 한층 더 선정적으로 변했고, 이제는 도처에 널린 만큼 흔해졌다. 이웃집에서 자신들의 섹스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올리고, ISIS 등 무장단체가 여자아이들을 납치해 극도로 가학적인 포르노그래피 장면을 연출했으며, 따르지 않으면 죽이는 시대가 됐다. - P232

1960년대 중반 미국에서 아프리카계, 히스패닉계, 토착 원주민 및 백인 청년 활동가들은 민권, 언론의 자유, 학문의 자유를 쟁취해 나가는 구심점이 됐다. 미국의 청년들은 각종 선언, 콘퍼런스, 토론회에에서 베트남전, 자본주의, 인종차별에도 반기를 들었다. 대부분 남성이었던 지도부는 사회주의 대 공산주의, 전체주의 대 민주사회주의, 그리고 냉전 및 핵무기경쟁의 책임은 소련과 미국 중 어느쪽에 더 있는가를 두고 싸웠다. 하지만 걸핏하면 싸우는 남성 사회주의자들, 블랙 파워, 토착 원주민 및 라틴계 활동가들은 이런 논쟁 속에서 대다수 여성은 배제시켰다. 1965년과 1966년 당시 운동권의 남성 지도자들은 여성이 자신들에게 커피를 타 주고, 문서 복사를 해 주고, 섹스를 해 주는 존재라 생각했다. - P209

앤드리아는 케이트 밀릿과 슐리 파이어스톤처럼 천재였다. 또 그들과 마찬가지로 열정적이었고, 편집증과 자기 파괴의 성향도 있었다. 그를 따르는 이들에게 두려움과 경멸과 오해-그러면서도 동시에 진심 어린 존경과 열정적인 사랑-의 대상이기도 했다. 앤드리는 페미니즘을 설파하기 위해 지옥에서 온 페미니스트 같았고, 여성 성폭력에 반기를 든 기수 같았다. - P204

사실 나는 그를(케이트 밀릿) 사랑했다. 성적으로 사랑한 것이 아니었을 뿐이다. 나는 그의 생각들과 그로 인해 생기는 에너지를 사랑했다. 나는 극히 명석한 두뇌를 가진 여자들에게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이었다. 반짝이는 대화를 위해서라면 그들의 싫은 면도 참곤 했다. - P186

한 달쯤 지날 무렵, <여성과 광기>에 대한 에이드리언 리치의 극찬이 담긴 긴 서평이 <뉴욕 타임스 북 리뷰>표지에 실렸다. 내 세대에 그토록 화려한 칭찬을 받은 페미니즘 작품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판매 부수가 급증했고 담당 편집자는 승리의 냄새를 맡았다. 그렇다. 신문 하나가 그 정도의 결정권과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 이유로 나는 에이드리언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에이드리언, 당신이 어디에 있는, 나는 당신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삶이 변화된 수백만 명의 여성들이 그렇듯이요. 당신이 쓴 서평 덕분에 그들은 내 책을 읽게 됐을 테니까요.
그로부터 20년 뒤 <뉴욕 타임스 북 리뷰>지면에 주디스 루이스 허먼의 <트라우마>를 소개하면서 나는 마음의 빚을 갚았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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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2-09-04 21: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복잡한 마음… 이해합니다.
제가 다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
그 마음 이해합니다.

다락방 2022-09-05 08:23   좋아요 2 | URL
저는 어제 이 책의 책장을 덮고 아 외롭다, 했습니다. 외롭다, 나는 평생 외로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감당해야 한다... 저는 앞으로 계속 외로울 예정입니다. 하아-

건수하 2022-09-04 22:0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었음에도 마야 안젤루의 일화는 잠시 잊고 있었어요. 다시 충격..

저자의 일은 <여자의 적은 여자다>에도 간접적으로 언급이 되어있어 대충은 알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해서 참 용기있다고 생각했어요. 관련자들의 실명을 밝힌 것도요.

다락방님께서 저번에 타협에 대해 하신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타협을 일단 하기로 마음 먹으면 할수 있는 것의 정도를 정하기는 더 어려운 거라… 제가 그렇게 썼던 것에 대해 마음이 좀 무거워지네요. 역시 이론은 쉽고 실천은 어려운 것..

다락방 2022-09-05 08:27   좋아요 4 | URL
저는 필리스 체슬러의 이 책을 읽으면서 역시 나란 인간은 어쩔 수 없다, 나는 안되겠다, 설사 대의를 이루지 못해도 나는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는 쪽에 설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옳은가? 더 나은가? 라고 물으면 그렇다고 바로 대답을 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책을 다 읽고나서는 되게 외롭더라고요. 저는 음.. 숙명적으로 외로움을 끌어안고 살게될 것 같아요. 필리스 체슬러도 외로웠을 것 같아요. 물론, 수시로 기쁘고 행복하지만요.

건수하 2022-09-05 08:56   좋아요 1 | URL
외로운 건.. 그들도 다 외로울 거예요.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반하는 일을 하며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건지 생각하면서도 자기처럼 그러는 건지 모르겠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얼마나 괴롭겠어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자기가 만족하는게 가장 중요하다 생각해요.. 알라딘 서재에 그런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좋고요.

다락방 2022-09-05 09:18   좋아요 2 | URL
맞아요, 수하 님. 다들 외로울 거예요. 인간은 누구나 다 외롭다고 생각해요. 인간이 외로운 존재라는 걸 인지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일 뿐. 다들 개인으로 놓고 보면 자기만의 외로움을 끌어안고 살고 있는데, 그런 가운데 이렇게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같이 무언가를 하고 그러기 때문에 삶은 지속되는 것 같아요.

바람돌이 2022-09-04 22:0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래전에 민주노총 내에서 여성 노조원 성추행문제가 드러났던 적이 있었어요. 왜 없었겠어요. 거기도 사람사는 곳이고, 온갖 인간들이 다 모여 있는 곳인데..... 그런데 그 때 제가 존경하던 많은 선배운동가분들이 조직을 살리기 위해서는 이 문제를 덮고 넘어가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한 여성노조원을 오히려 비난하는 분위기였었죠. 그 때 저 진짜 전교조고 민주노총이고 다 탈퇴하고 싶었어요. 그게 말이 되냐고 말이에요.
우리가 무엇을 하든 어떤 노선을 취하든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선이 저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지키지 않는건 진보/보수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선인거죠.

다락방 2022-09-05 08:46   좋아요 2 | URL
바람돌이 님, 맞습니다. 정말 그래요. 저는 대의 때문에 어떤 여성의 강간 피해를 못본척 못들은척 한다는게 아무리 아무리 애를 써도 이해가 안돼요. 그런데 그렇게 못보고 못들은척 하는게 비단 남자들만은 아니거든요. 필리스 체슬러의 책에서도 이름난 유명한 페미니스트들도 그래요. 평소에 그렇게 연대를 주장하던 페미니스트들이요. 그래서 권력을 가진 자가 성폭력을 저지르는 건 더 쉽겠구나, 그리고 사라지지 않겠구나 생각했어요. 잘못을 저질러도 처벌은 뒤로 미뤄지니까요. 세상이 얼마나 만만할까요. 저는 막 미치겠어요, 바람돌이 님 ㅠㅠ

바람돌이 2022-09-05 08:40   좋아요 1 | URL
그들이 가짜였던게 판명나는거죠. 사실은 대의가 아니라 이익이죠. 금전이든 명예든 자신의 지위든..... 사람 하나가 우주 전체와 같다고 생각해요. 그 한사람을 품지 못하는 대의를 가진 조직??? 그거 뭐에 갇다쓸까요? 그냥 코풀고 팽 버리는게 낫지 않을까요? 세상에는 그래도 이런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이 세상 유지되는거겠죠. 우 너무 우울해하지 말고 힘내요. ^^

다락방 2022-09-05 08:46   좋아요 2 | URL
네, 저도 여기에서 오는 외로움을 숙명으로 끌어안고 단단하게 살아보겠다고 결심했어요!!

공쟝쟝 2022-09-05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인간 참 외로움 참 진심 다락방….
다락방님 저는 이미 외롭게 사는 중입니다… 트루 외롭… ㅋㅋㅋㅋ 외롭게 살겠다고 큰 마음먹지 않으셔도 되요 ㅋㅋㅋ 이미 외로움을 감당해왔으므로 ㅋㅋㅋㅋ!! 외로움 보다 강한 자! 유! 바로 당쉰 ㅋㅋㅋ!!
근데 이 책 진짜 유명인사들 다 나오네요? 개 흥미진진..😫

다락방 2022-09-05 10:49   좋아요 1 | URL
저도 무릇 인간이란 외로운 동물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살고 있었는데, 이 책 읽고 나니까 뭔가 각오를 다지게 되더라고요. 그래, 나는 앞으로도 평생 외로울 것이다, 그것을 기억하자! 이렇게 말이지요.
유명인사들 다 나오는데 그들의 업적도 대단하지만 삐딱하기도 당연히 있어서 참 여러가지로 복잡하고 그렇습니다. 어휴... 그런데 읽다보니 필리스 체슬러가 저랑 비슷한 성향인 것 같아요. 필리스 체슬러 역시도 남자를 사랑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대리모 반대하고 포르노 반대하더라고요. 체슬러 좋습니다 ㅠㅠ

공쟝쟝 2022-09-05 10:59   좋아요 0 | URL
저도요, 남자 좋지만 남자 좋다고 여자를 죽이면 안되죠…. 저는 사실 네덜란드에서 스윗대디들 넘 많이 봐서 (거기는 여자보다 남자가 더 육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물론 남자들이 잘생기기도… 푸핫ㅋㅋㅋㅋ) 잘 공존하면 참 좋을텐데. 이런 맘이었거든요. 그 나라도 한계가 있겠고 뭐 그렇지만요…. 역시 나라가 잘 살아야하는 건가…. 하하하하!!
무튼 이 책 저도 있어요…!! ㅠㅠㅠ
 
자유죽음 - 살아가면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에 대하여
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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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삶을 사랑한다. 내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것을 사랑한다. 나는 더운 여름날을 사랑하고 빗소리에도 즐거움을 느끼고 커피향에도 행복함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다. 행복을 주는 것들이 많고 무엇보다 내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좋아서 나는 다시 태어나도 인간이고 싶다. 그런 한 편, 죽음이 두렵다. 내가 죽어서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것, 내가 '없음'이 된다는 것, 내가 '있지 않음'이 된다는 것을 상상하면 너무 두렵다. 매일밤 잠들기 전에 그 날의 후회나 기쁨들이 생각나곤 하지만, 아주 자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찾아든다. 내가 언젠가 죽게 된다는 것은 내게 크나큰 두려움이다. 그렇게 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찾아드는 밤이면 가만가만 내 가슴을 쓸어내린다. 괜찮아, 괜찮아, 만약 정말 내게 죽음이 닥친다면, 그래서 정말 죽는다면, 나는 없음이고 내가 죽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해. 두려움 같은 것도 더이상 없어. 내가 없는데 무슨 두려움이야.


그렇다, 죽은 후에는 내가 '없음' 이라는 거, 아무것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다는 것, 아무것도 아닌 무의 상태라는 것은, 내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같이 살아가야겠다는 각오 혹은 두려움을 떨치겠다는 의지로 죽음에 대한 책들을 읽다 겨우 다다른 경지였다. 그나마 나를 다독일 수 있게 된 것은 죽음이 너무 두려운 나머지 죽음에 대한 책들을 부지런히 찾아 읽은 결과였다.


그러다 최근에야 나는 내가 삶에 열심인 태도로 임하는 것, 사소한 자연 현상에도 혹은 인간 관계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내가 삶의 유한함을 언제나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죽음이 나를 지배하는 것처럼 두려워한다고 나는 생각했는데, 나는 그 누구보다 삶은 유한하다는 것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구나. 죽음이 나를 잠식한 게 아니라 인간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너무 잘 인지하고 있던 거였어. 그것이 나를 열심으로 살게 만들고 작은 목표들을 가지고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고 눈 돌리는 곳마나 기쁨과 행복이 있게 했구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움직이고 여행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 틈틈이 웃고 즐거워하고 살아가는 것은 내가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인간의 삶은 단 한 번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어!!


이제 삶의 유한함을 내가 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나는 계속 죽음에 대한 책을 읽는다. 인간에게 죽음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이상, 그것을 내가 좀더 잘 받아들이거나 혹은 좀 더 잘 다룰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간의 죽음에 대한 관심과 독서가 나를 이만큼까지 오게 했다면, 앞으로 더 알고자 하는 것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까. 나는 장 아메리의 [자유죽음]을 읽으면서 내가 확실히 삶의 편 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죽음과 나를 갈라두는 게 아니라 내가 이제 저쪽 편을 볼 수도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확실히 이 편이었어, 저 편을 보려고조차 하지 않았지, 저 편은 이 편의 반대였고 이 편이 선이라면 저 편은 악이었어. 그러나 자유 죽음이라는 단어가('자살'이 아니다) 이 편에만 있고자 하는 내게 아니라고, 여기가 악인 것이 결코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다. 그래, 나는 스스로 죽음을 향해 가는 이들을 향해 이 책에서 장 아메리가 지적한 것처럼 저잣거리의 교훈으로만 대하려고 했었던 거다. 살아야지, 어떻게든 살아야지! 그러나, 어떻게든 살아야만 하는가? 라고 장 아메리가 묻자마자, 나는 갑자기 혼란을 느낀다. 



그러게. '어떻게든'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 선인가?



'장 아메리'는 이 책에서 '에셰크'라는 단어를 소개한다. 그것은 옮긴이의 말을 빌자면, '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이 말은 체스를 둘 때 외통수에 걸린 것을 나타내는 단어. 돌이킬 수 없이 실패하고 만 것을 적시하는 단어' 라고 한다. 내가 나의 실패에,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맞닥뜨렸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고자 하는게 아니라 '이런 식은 아니다, 싫다'고 거부하며 죽음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 악이 아니라고, 그것이 그들의 선택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누구의? 오로지 자기 자신의 선택. 나의 주체는 나이고 나의 선택도 오로지 나여야 한다는 것. 여기에 누가 반박할 수 있을까?



장 아메리는 자신이 읽었던 책들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 학자들에 대해 언급하는데 그중 예로 드는게 '슈니츨러'의 <구스틀 소위> 이다. 소위의 명예를 잃게 되자 자살을 결심하게 되는 내용의 단편 소설을 예로 들면서 책 한 권에서 계속 주장한다. '그의 과거가 정말 치욕적이었을까? 그의 느낌 안에서는 분명 그랬으리라.(p.112)' 라고. 그러니까 타인이 '그정도의 것' 이라든가 '다른 식의 방법'에 대해 얘기한다고 해도, 그것이 그 자신에게 어떤 희망을 줄 수 있느냐 하면, 그가 느낀 절망은 그 자신에게 너무나 강렬했다는 것.


너희에게는 별것 아닌 돌발 사건일 수 있다. 이를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그것은 인생의 결정적 사건이다. 너무나도 결정적인 나머지 나는 나 자신에게 죽음을 선고한다. (p.115)



장 아메리가 구스틀 소위를 데려와 '나에게 결정적 사건이므로 나는 나 자신에게 죽음을 선고한다'고 했을 때, 나는 '조조 모예스'의 소설 [미 비포 유]를 떠올렸다. 미 비포 유 속에서  '윌'은 열정적으로 살아가며 신체활동을 즐기는 남자였다. 오토바이를 타고 운동을 즐기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사람이었고 그렇게 인생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와 침대에서 꼼짝할 수 없는 삶을 살게 된다. 그런 그에게 '클라크'라는 여성이 개인 간호를 맡게 되고,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우정과 사랑이 싹튼다. 윌은 자신의 삶이 사고 이후로 우울하기만 했는데 클라크 덕에 더 밝아졌다는 것을 느끼고 내일 아침 눈을 뜨는 이유도 오로지 클라크 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윌은 '장 아메리'의 표현을 빌자면, '자유죽음'을 택한다. 클라크는 자신의 사랑이,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윌의 마음이, 그리고 그들 사이의 이 감정이 자유 죽음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게 만들 수 있지 않느냐고 하지만, 윌은 말한다. 아니라고, 그건 물론 충분히 좋고 긍정적인 감정이지만, 윌이 생각하는 윌의 인생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클라크가, 클라크의 사랑이 부족하다거나 하찮아서가 아니라, 윌이 생각하는 윌의 인생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그는 그런 삶을 유지하느니 죽음을 택하는 것이다. 그 자신이 그의 주체가 되어서 자유 죽음을 택하는 거다.



"난 그걸로 안 돼요. 이, 내 세상은, 아무리 당신이 있더라도 모자라. 진심으로 말하지만, 클라크, 당신이 오고 나서 내 삶 전체가 좋은 방향으로 달라졌어요. 그렇지만 그건 충분하지 않아요.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에요."

이제는 내가 물러설 차례였다.

"그러니까, 이렇게 되면 괜찮은 삶을 살 수도 있다는 걸 알겠어요. 당신이 곁에 있다면, 어쩌면 썩 괜찮은 삶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건 '내'인생이 아니에요. 당신이 얘기를 나누었던 그 사람들과 나는 달라요. 그건 내가 원하는 삶과 전혀 다르단 말입니다. 비슷한 구석도 없다고요." -<미 비포 유>, 조조 모예스, p.471-472



아무리 윌을 사랑한다고 해도 윌에게 '아니야 네 인생은 충분히 빛난다' 고 말하면서 그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윌이 느끼는 윌 자신의 인생은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았으니까. 그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이 그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자유 죽음을 택하는 윌에게 아무리 클라크라고 해서, 그리고 윌의 가족이라고 해서 '그래도 살아가야지!' 라고 해도 되는걸까? 삶을 사랑했던, 그러니까 무조건 이 편이기만 했던 내가, 내가 삶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윌에게도 네 삶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말해도 되는 걸까?



죽음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에 대해 책을 읽고난 후 걸으면서 오래 생각했다. 

이 책의 저자 장 아메리는 유대인으로 태어나 박해를 받으며 고통의 시간을 견뎌왔지만 마지막엔 자유 죽음을 택했다. 우리는 간혹 고통의 시간을 다 견뎌놓고서도 종국엔 자유 죽음을 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럴 때마다 '왜 그렇게 고통을 다 견뎠으면서도 자살햇을까?' 라고 의문을 갖고 '그것이 그사람을 지배한걸까?' 라고 자연스레 생각하지 않았었나. 나는 장 아메리의 이 책을 읽으면서 나치 치하에서도 견뎌낸 삶은, 그것이야말로 그가 버티어낸 것이며, 그러나 시간이 흘러 자유 죽음을 택한 것은, 그것이야말로 '내가 내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의 의미인 것을 이제는 알겠다. 너네가 죽인다고 내가 죽는 것이 아니야, 니네가 나를 죽이고 싶어해도 내가 죽는 것이 아니야, 내 죽음은, 내가 죽고 싶을 때 내가 결정하는 거야. 그야말로 자유 죽음, 자신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닌가.



'샐리 루니'의 [노멀 피플]에 대해서도 생각났다. 읽으면서 내가 몹시 혼란스러웠던 그리고 스트레스 받았던 부분인데, 주인공 '메리앤'은 남자친구에게 섹스 도중에 자기를 때려달라고 말한다. 그것이 옳다 옳지 못하다와 별개로 다른 사람에게 나를 '때리라'고 말하는 것은 그 사람 내면의 상처인가, 아버지와 오빠로부터 학대를 당해놓고 굳이 자기가 학대 속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하고 아파하기만 햇었는데, 그 행위-나를 때려줘!-야말로 자신이 자기 자신의 주인임을 찾아가는 행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장 아메리의 이 책을 읽다가 들었다. 아빠오 오빠로부터 학대당한 건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고 나에게 어쩔 수 없이 닥쳐온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지금 너에게 나를 때려 달라고 말해서 가해지는 이 폭력은 내가 선택한 것이다, 내가 지금 맞기를 선택했다, 지금 이 순간 내 육체의 주인은 나이다, 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겠는 거다. 물론, 나는 메리앤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때리라고 말함으로써 주체적이 되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궁극적으로 그런 시간도 벗어나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어떤 고통을 부러 당함으로써 내가 지금 이 시간 나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것. 샐리 루니의 책을 읽을 당시에는 제대로 이해되지 않아 가슴 아프기만 했는데, 장 아메리는 나로 하여금 샐리 루니의 글을 뒤늦게 이해하게 해주었다. 



아, 여러분, 책 읽는 거 진짜 너무 좋지 않나요? ㅠㅠ 나는 너무 좋습니다.



나는 여전히 삶을 사랑한다. 여전히 삶의 편 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죽음의 반대지점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다른 사람의 고통 혹은 치욕에 '왜 고작 그거 가지고'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걸 안다면, 결국 죽음을 택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그래도 살아야지!' 라고 말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내가 나 자신의 주체가 되어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은 '죽음은 두려운 것'으로부터 나를 조금 떼어놓는다. 밤에 잠들기 전에 또 죽음이 나에게 닥쳐올 것이고 내가 없음이 된다는 생각 때문에 무서워질라 치면, 이제 내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어차피 없음이 되면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더해, 이제는 '죽음 자체를 내가 선택할 수도 있다' 고 다독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장 아메리가 재차 중요하다고 말해왔던 것, 나는 나 자신에게 속해있다는 것이다. 내가 나 자신에게 속해있다는 것, 나의 주인은 나라는 것. 그것은 나를 단단히 서게 할 것이며, 죽음이란 두려움이 찾아들 때 나를 다독이게 해주기도 할 것이다. 


나는 여전히 삶을 사랑한다. 죽음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내가 죽음을 선택하게 될지, 그것은 아직 나에게 먼 일 같고 내 일 같지도 않다. 그러나 이 편의 맞은 편에 있는 것이 '선이 아닌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나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고 아마 앞으로도 삶을 사랑할 것이고, 나에게 어떤 치욕이 찾아들기를 바라지도 않지만, 선택이 최종적으로 나의 몫임을 인지한다. 그래, 죽음이야말로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장 아메리는 이 책을 통해 자살을 옹호하는 게 아니다. 다만, 자신의 치욕 자신의 고통 그리고 종국엔 자신의 죽음에 대한 결정앞에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의 기준으로 비난하기를 멈춰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내 기준이 나만의 것이듯 그의 선택은 그의 것이니까. 


유진목 시인은 이 책의 추천의 글에서 '단 한 페이지도 넘기지 못하고 덮는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한 호흡으로 단숨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내는 사람 또한 분명히 있을 것이다' 라고 했는데, 내가 바로 그런 사람, 단숨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내는 사람이었다(사실 단숨은 아니었다).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자꾸만 곱씹는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삶의 유한함에 대한 불안함을 가진 나에게 이 책은 작은 다독임이 되어주었다. 밑줄을 아주 많이 그었다.



두비토(Dubito‘나는 의심한다‘라는 뜻의 라틴어다.). 적당한 때가 오면 반드시 자유죽음과 기독교를 더욱 자세히 이야기해야만 하겠다. 여기서 우선 말해두고 싶은 것은 진정 신앙심이 깊은 사람에게 뛰어내려야 할 상황은 생겨나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자유죽음, 즉 ‘자살‘은 이런 맥락에서는 결국 죄악이라고 말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은 위대하다. 주님의 자비는 끝을 모르므로 언젠가는 용서해주실 거다. 그래서 ‘신앙인‘은 죽음을 자신의 가슴으로 끌어당겨, 주님의 사랑으로 품어 안으리라. 그렇다면 모든 게 좋다. 삶과 죽음을 두고 벌이는 논리적인 혼란이라는 우리의 문제는 고작 쓸데없는 망상일 뿐이다. 아니다, 더욱 나쁘다. 이건은 불행이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문명, 혹은 원한다면 시대정신은 신앙과 거리가 멀기만 하다. 그토록 깊은 신앙은 극히 소수의 사람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더욱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 P53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이때 슈니츨러는 겸손하게 뒤로 물러서서, 자신의 등장 인물들로 하여금 말하고 생각하게 한다. 위의 문제들을 놓고 사람들이 별생각 없이 지껄여 대는 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곱씹어보게 만든다. 슈니츨러는 문제에 직접 손을 대지는 않지만, 그게 우리에게 아주 절박한 문제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 P56

있어서 안 되는 것은 실제로 있을 수 없다! 바이닝거는 유대인으로 있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유대인이었다. 가정부는 가수의 관심을 절대 받지 못하는 무명의 인물로 있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가수의 눈에 가정부는 이름 없는, 가난한 처녀일 뿐이었다. 그래서 탈출구는 죽음뿐이었다. 있을 수 없는 것은 실제로도 있어서는 안 되니까. 혐오스러운 유대인으로 살아가고 싶지 않으니까, 유대인이 아닐 수 있는 현실의 길은 죽음이었다. 가정부도 마찬가지다. 가수의 눈길 한번 받을 수 없는 인생을 사느니, 그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부정의 길이 곧 자살이었다. 하지만, 이 길은 길이 아니다. 그 어디로도 이끌지 못하는 길은 길이 아니다. 바이닝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해서 유대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개수대 앞에서 설거지하던 불쌍한 처녀가 죽었다고 가수의 품 안에 안길 수야 없지 않은가. 결국 자유죽음은 ‘무의미‘하다. 이 말은 모든 경우에 남김없이 적용될까? - P61

그러니까 가정부, 첼란, 클라이스트, 하젠클레버(Walter Hasenclever), 헤밍웨이 등은 그들의 어리석은 죽음으로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치명적인 증거를 내놓았다. 즉, 그들에게 있어 인생은 ‘최고로 가치 있는 자산‘이 아니었다. 그뿐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줬다. ‘있어서 안 되는 것은 실제로 있을 수 없다‘는 게 심오한 농담 그 이상이라는 것을! - P63

존재, 곧 ‘있음‘이라고 하는 것은 연구하기 아주 힘든 문법적 구문을 가지고 있다. ‘있음‘이라는 말은 그 모순, 즉 ‘있지 않음‘이라는,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 모를 모순을 그 안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있지 않음‘, 곧 ‘없음‘이라는 말뿐인 불가능성을 강제로 이끌고 오는 사람은 무의미한 사람이 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무의미한 사람일 뿐, 망상과 광기에 사로잡힌 괴상하고 의심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자유죽음을 미친 짓으로만 몰아세우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 P68

여전히 사람들은 누군가 죽으면 그 죽은 사람의 가장 가까운 가족이 "망자는 자신의 ‘평안‘을 찾았습니다!"하고 입에 발린 소리 하는 것을 들어야만 가까스로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다. 이때 죽은 육신, 곧 시체가 평안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완전한 해체로 이끄는 화학 과정이 시작된 시체가 무슨 평안을 느끼겠는가. - P81

학교 교육 덕분에 이제 인간은 죽음이 하나의 생명이 시작될 때부터 이미 들어선 어떤 과정의 종착점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세포들의 자기 재생 능력이 그 사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이것이 바로 죽음이다. - P85

죽음이 아무리 자연적이라 한들 내 죽음은 나에게 최고로 반자연적이다. 이성을 마비시키며 치명적인 위협을 가하는 게 내 죽음을 생각하는 일이다. 그러나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멈출 수 없다. - P87

도대체 왜 무엇이어야만 하는가? 그저 아무것도 아닌 없음으로 돌아가면 왜 안 되는 것인가? - P98

나는 역사와 정치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호감 가는 경우가, 드높은 용기로 성취해낸 정의가, 희망에 매달려서 이뤄졌다고 결코 믿지 않는다. 자신을 없음으로 던지는 행위, 이게 역사를 끌고 온 원동력이었다. - P106

그의 과거가 정말 치욕적이었을까? 그의 느낌 안에서는 분명 그랬으리라. - P112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할 자격이 있다. 너희에게는 별것 아닌 돌발 사건일 수 있다. 이를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그것은 인생의 결정적 사건이다. 너무나도 결정적인 나머지 나는 나 자신에게 죽음을 선고한다.


이것은 자연적인 죽음이다. 이 죽음이 자연적인 이유는 내가 일상 언어가 자연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을 정신적으로 소화할 수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적어도 내가 선택한 죽음은 나에게 있어 자연적이다. - P115

자연 죽음으로서의 자살이라는 게 정확하게 무엇일까? 존재를 강타하며 파괴하는 ‘에셰크(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이 말은 체스를 둘 때 외통수에 걸린 것을 나타내는 단어라고 한다. 돌이킬 수 없이 실패하고 만 것을 적시하는 단어다.)‘에 맞서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하는 게 자살이다. - P119

우울증 환자가 자신의 메말라버린 세계관 때문에 자살을 선택했다고 해서 그 세계관이 잘못된 것이라고는 누구도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적어도 그에게 인정을 해줘야 한다. 그의 선택은 이성적인 것이었다고! 그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그에 맞게 행동한 것일 뿐이라고! "그래도 끝까지 살아야만 해." 저잣거리를 떠도는 세속의 지혜는 이렇게 꾸짖는다. 아니다. 살아야만 하기 때문에 살아야 하는 인생이라는 것은 없다. 어차피 반드시 찾아올 어느 날 더는 살 수가 없어서, 아니 살아서는 안 되기 때문에 그저 꾹 참고 그날을 기다려야만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 P119

주체는 완전한 주권을 가지고 결정을 내린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바사회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선택과 결정은 오로지 당사자 개인의 문제다. 그는 자신의 독자성을 위해 지금껏 단 한 번도 자신의 고유한 것이지 않았던 생명이라는 고유 재산을 파괴한다. 손을 내려 놓는다. - P120

머리 때리는 것을 인간이 맛볼 수 있는 가장 치욕적인 굴욕으로 여기는 게 우연은 아니다(아이의 머리를 절대로 때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 P130

나로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내가 죽음에 이끌리고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의사가 자랑스러워한 구조 활동이라는 게 나에게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 P150

나는 나 자신에게 속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 P175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자기 자신을 가지고 어떻게 살고 어떤 때 죽으며 무엇을 실현해야만 한다고 앞장서서 규정할 권리는 갖고 있지 않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따위의 명령은 주제넘은 월권일 뿐이다. 그래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죽음과 관련해 종교가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은 사회의 요구와 똑같은 특성을 가졌다는 점이다. 사회든 종교든 인간에게 자신의 소유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결정할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사회와 종교는 인간에게 결정의 자유를 포기하도록 요구한다. 칸트도 이 점에 있어서만큼은 실수를 저질렀다. 그는 의무라는 것을 범주적으로 생각해본 끝에 조그만 시골 교회 목사나 위대한 신학자들처럼 자유죽음을 비난했다. 말인즉 자유의지로 결정하지 말고, 신이 부여한 의무 또는 인간이 지켜야 할 의무에 순종하라고 칸트는 타일렀다. 의무? 종교가 인간에게 간섭하며 요구하는 의무라는 것은 사회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 P175

근본적으로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속하는 존재다. 사회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그물망을 뒤집어씌우지 않고 생각해야 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생물학적인 숙명이라는 것과 따로 떼어볼 때, 인간은 본질을 드러낸다. 살아야만 한다는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 P181

우리가 일상생활에서든 학문에서든 현실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에 단호하게 경쟁하는 적수가 자살자다. 그는 자신이 자기 자신에게 속한다는 것을 안다. - P198

자살자는 고집 센 토론자가 아니다. 그는 언제나 ‘예‘하는 말을 하며, ‘아멘‘ 할 따름이다. 자기 자신에게, 자신의 지극한 존엄함에게, 종족 보존을 위해 필요한 풍문으로 자살자를 심판하는 세상에게! 평온한 바다와도 같은 감정으로? 시시각각 좁혀져 오는 사면의 벽들에 머리를 사정없이 부딪치면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 비유라고 하는 것은 겉보기에만 서로 배척할 뿐이다. 다만, 있지도 않은 저 하늘나라에 가지는 않을 게 분명하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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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 치욕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
    from 마지막 키스 2022-08-22 08:30 
    있어서 안 되는 것은 실제로 있을 수 없다! 바이닝거는 유대인으로 있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유대인이었다. 가정부는 가수의 관심을 절대 받지 못하는 무명의 인물로 있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가수의 눈에 가정부는 이름 없는, 가난한 처녀일 뿐이었다. 그래서 탈출구는 죽음뿐이었다. 있을 수 없는 것은 실제로도 있어서는 안 되니까. 혐오스러운 유대인으로 살아가고 싶지 않으니까, 유대인이 아닐 수 있는 현실의 길은 죽음이었다. 가정부도 마찬가지다. 가수의
 
 
공쟝쟝 2022-08-21 1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셰크. 피가되고 뼈가되는 아니 피가있고 뼈가 있고 살이 있다는 게 느껴지는 삶의 의지로 충만한 리뷰네요 ㅋㅋㅋ 이미, (또), 알고 있는 사람 다락방 ㅋㅋㅋㅋ 저는 다락방님이 글에서 어려운 말 안쓰면서 반복해서 곱씹으면서 주문 거는 거 좋아요 ㅋㅋㅋ
죽음에 대해 때때로 심각해지는 게 저잣거리나.. 고준담론은 정말 아닌데요… 너무 중요한 이야긴데… 사실 생각하길 미루죠. 좋은 책일 것 같아요. 그리고 저도 삶의 편입니다. 만약에 태어나는 거 물어보면 안태어날꺼지만요 ㅋ

다락방 2022-08-22 09:12   좋아요 2 | URL
저는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그보다 죽기 싫은게 더 크지만요. 죽기 싫다, 그러나 죽어야 한다면 다시 태어나고 싶다!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내가 다시 태어났다는 것을 인지하게 될까요? 그걸 알 수 있다면 더 잘 살 수 있을텐데 말예요. 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ㅋㅋㅋㅋㅋ

죽음에 대한 책은 가끔 읽게 되더라고요. 제가 죽음을 두려워해서 더 그런것 같아요. 알고 싶고 어쨌든 같이 살아가야 하는 것이라면 아는 쪽이 낫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아요. 제가 글을 쉽게 쓰는건, 제 글을 읽는 사람에게 전달되고 싶은 욕망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어려운 거 쓰면 무슨 말인지 모르잖아요. 소통에의 욕망 같은 것이 아닐까. 하다가 아니면 .. 어려운 말은 내가 몰라서? 뭐, 그렇습니다.

단발머리 2022-08-21 19: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삶의 의지가, 활력과 생동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리뷰네요. 자살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래도 다락방님 리뷰 읽고 나니 한 번은 꼭 읽어봐야 할 책인거 같고요. <미 비포 유>의 ‘윌‘을 언급해주셔서 샘 클라플린 떠올리면서 읽으니 훨씬 더 좋았어요.
저도 죽음으로 ‘내‘가 없어진다는 것에 관심이 많아요. 거기에서 말하는 ‘나‘란 내가 가진 의식을 말할텐데, 사실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오기는 하는데. 그래도 제가 자주 생각하는 부분이기는 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잘 읽고 갑니다. 저는 물어보면 다시 또 태어나고 싶어요 ㅎㅎㅎ

공쟝쟝 2022-08-21 19:42   좋아요 1 | URL
단발님은 바보얏🤣🤣🤣

단발머리 2022-08-21 19:44   좋아요 1 | URL
싸우자! 😡😡😡

다락방 2022-08-22 09:15   좋아요 1 | URL
저자는 자살과 자유죽음을 구분하는 쪽이에요. 저자가 관대한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하는건 자유죽음이고요. 저는 죽음에 대한 책을 가끔 읽어줘야 겠더라고요. 저 자신을 위해서. 어떤 것인지 모르니까 자꾸 두려워하잖아요. 알면 알수록 두려움의 크기는 줄어들겠지, 하고 읽는 쪽인데 두려움의 크기가 줄어든다기 보다는 나를 다독이는 경우의 수가 더 늘어나게 되는것 같아요. 어쨌든 이것도 좋습니다. 저는 그저 죽음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담긴 책이겠거니 했는데 뜻밖에 철학책이며 자신의 주체는 자신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책이어서 좋았어요. 아, 그래서 말인데요 단발머리 님, 다음 원서에 대해 제안을 제가 단톡방에 하겠습니다. ㅎㅎ

mini74 2022-08-21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음도 두렵지만 죽은 후 남게 되는 사랑하는 이들이 슬플까도 두려운데 그건 제 몫의 걱정이 아니겠죠 ㅎㅎ 다락방님이 삶을 사랑하는 이유들이 참 좋네요.

다락방 2022-08-22 09:39   좋아요 1 | URL
맞아요, 미니 님.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죽음에 대한 결정을 하지 말라고 하거나 무조건 살라고 하는 이유는 사실 죽음을 결정한 자 보다 주변 사람들 때문인 것 같아요. 남은 자들의 슬픔이 너무 클까봐서요. 제가 리뷰에도 썼지만 [미 비포 유]에서 윌이 죽음을 결심할 때 사랑하는 사람이 말리려고 하지만 그걸 말리는 것, 죽음을 미루거나 중단시키는 것은 누구를 위한것인가..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좋은 독서였어요.

그레이스 2022-08-21 2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궁금했어요
덕분에 내용을 조금 알고 가네요
미 비포 유 읽고도 생각이 많았어요

다락방 2022-08-22 09:41   좋아요 1 | URL
네, 미 비포 유는 뜻밖에 진지하게 생각할 거리를 던주져는 책이었어요. 로맨스인줄 알고 읽었다가 정말 생각이 많아졌고 그리고 이렇게 지금도 계속 생각나네요. 저는 윌이 죽지 않기를 바랐지만, 그건 윌이 아닌 나의 생각이라는 것을 자꾸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이 책 덕분에 미 비포 유를 또 생각하게 됐어요.

바람돌이 2022-08-21 2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 중의 한분이 독립운동가이자 작가인 김학철선생님이거든요. 그 분이 85세를 일기로 타계할 때 마지막 20일간을 곡기를 끊으면서 자신의 죽음을 조용히 준비하고 흐트러짐없이 죽음을 맞았다고 들었어요. 죽음조차도 그분답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어쩌면 이 책에서 말하는 자유죽음의 한 형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네요.
저 역시 삶을 너무 너무 사랑하지만 죽음은 어쨌든 인간으로서의 나의 기본적인 존엄을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을 항상 해요. 어찌 될지는 모르지만.....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다는 것은 삶을 그만큼 사랑한다는 것을 다락방님 글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어서 좋네요. ^^

다락방 2022-08-22 09:43   좋아요 2 | URL
바람돌이 님께서 언급하신 김학철선생님 이야말로 자유죽음을 선택하신 걸로 보여지네요. 내 죽음은 내가 선택하고 내가 준비한다는 태도랄까요. 내가 내 삶을 살았으니 죽음을 선택하는 것도 내가 하겠다는 것은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인것 같아요.

죽음이 두려워서 저는 자꾸 죽음에 대한 책을 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잘 살아보고 싶어서요.

책읽는나무 2022-08-21 23: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내가 없음‘의 무의 세계로 들어선다는 생각을 하면 어릴 때만큼의 공포감은 좀 덜해졌지만, 요즘은 그런 생각들을 하면 그냥 서글퍼지게 되는 것 같아요.
경험이 있어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없어진다는 건 나의 고통은 영원히 사라질 것 같아 좀 속 시원해질 것 같은데, 남겨진 나의 가족들과 나를 가깝게 기억하고 있는 이들의 슬픔과 고통이 눈에 밟혀 그게 서글프고 짠하게 느껴져...없어지고 싶지 않다는 미련이 남네요.
자유 죽음 제목이 참 의미심장 합니다.
저는 미련 때문에 아마도 죽음을 선택하게 되진 않을 것 같긴한데 말입니다. 죽음을 바라보게 되는 또 다른 관점은 될 듯 하네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이런 내용의 리뷰도 넘 좋네요.
무거울 수 있는 주제도 다락방님만의 간결한 사유들이 전해져 오네요. 잘 읽고 갑니다^^

다락방 2022-08-22 09:46   좋아요 3 | URL
맞아요 책나무 님! 내가 ‘없음‘의 상태가 된다는 것, 그렇게 되면 나는 두려움도 안타까움도 아쉬움도 느껠 수 없다, 그러니 지금의 두려움은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라고 하다가도 금세 철학적이 되어서, ‘그렇다면 없음이 될건데 나는 지금 왜 있지?‘ 라는 생각으로 이어지더라고요. 우리는 결국 ‘없음‘이 될건데 지금 왜 있는걸까요, 책나무 님? 제가 [자유죽음]을 읽으면서 이거 철학책이로구나, 했는데,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철학적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도 현재 상태로는 제가 죽음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저는 삶을 최대한 붙잡으려고 할 것 같아요. 그러나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살아가는데 분명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책을 읽는 건 너무 좋아요!! >.<

잠자냥 2022-08-22 12: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음 생에도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다부장님은 이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 음료를 주문해서 마시고,
다음 생은 당연히 그 무엇으로도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 잠자냥은 이 책을 나른하게 누워서 읽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
아무튼 결론은 뜨거운 책이었습니다-

다락방 2022-08-22 13:51   좋아요 4 | URL
네 이 책은 저에게 좋은 책이었어요.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은 그런 책입니다. 읽기를 잘한 책이에요. 특히 나는 나 자신에 속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얘기를 반복해주는게 좋았어요!!

잠자냥 2022-08-22 14:12   좋아요 3 | URL
기대 이상으로 울림이 큰 책이었습니다.
저는 특히 사회나 종교가 한 개인을 자기의 소유물로 간주하는 것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작가의 그 ‘포효!‘가 인상 깊었습니다. 작가의 삶도 그 자체로 이 세상에 지지않겠다던 으르렁거림 같았고요...

다락방 2022-08-22 14:16   좋아요 4 | URL
네 잠자냥 님, 저도 종교에 대해 얘기하는 게 진짜 좋더라고요. 사회나 종교나 한 개인을 억압하는 건 같다고 하면서 재차 주장하잖아요.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속한다고요. 그래서 이 작가나 이 책이 비난을 들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잠자냥 2022-09-07 16: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부장님! 이 <자유죽음>으로 3만원 벌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9-07 17:22   좋아요 3 | URL
네. 봤습니다. 알라딘도 제가 불쌍했나 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mini74 2022-09-08 09: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축하드립니다 ~ 추석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

thkang1001 2022-09-08 09: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하고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9-08 0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축하드려요
다락방님!

책읽는나무 2022-09-10 08: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축하드립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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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이해하기 위해 나 자신에게 쉼없이 말을 건다. 그건 자주 아니 거의 대부분, 질문의 형태로 일어난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어디를 가고 싶은가, 왜 이걸 하려고 하는가, 어떤 것을 선택하겠는가 등등. 마찬가지로 나는 상대를 이해하고 싶을 때 상대에게 질문한다. 자, 이런 경우 너라면 어떡할거야? 너는 왜 그런 선택을 한거야? 너는 무엇을 좋아해 그리고 무엇을 싫어해? 왜 거기 가있어? 제삼자에게는 닿지 못할 질문들을 나에게 던진다. 저 사람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저 선택을 하는 데에는 어떤 마음이 작동했을까,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은 어떤 것이었을까. 질문을 던지는 것은 답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고 그것은 하나씩 둘씩 아는 것을 쌓아나간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던 행동들이 배경을 아는 순간 이해되기도 한다. 아는 것은 질문으로부터 나온다.


소설가 진 리스는 유명한 연애 소설 《제인 에어》를 읽다가 다락방에 갇혀 있던 로체스터 부인에게도 숨겨진 이야기가 있을거라고 생각해 그 부인의 입장에서 소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를 써냈다. 나는 진 리스가 제인 에어를 읽고 재미있다거나 혹은 분노한다거나 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모든 이야기에는 항상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버사 부인의 입장이 되어 소설을 썼다는 이 이야기를 정말 좋아한다. 그것은 질문이었으니까. 왜 버사 부인이 다락방에 갇혔을까, 왜 로체스터는 그녀를 방에 가두었을까, 그녀가 다락방에 갇히기 전에 그녀에겐 어떤 삶이 있었나. 이것은 질문이었다. 소설 속 등장인물에 대한 그리고 어쩌면 우리 현실에 다른 식의 모습으로 존재할지도 모를 어떤 사람에 대한 질문. 


당신은 왜?


내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과 상대에게 던지는 질문 그리고 진 리스가 로체스터에게 혹은 버사 부인에게 혹은 샬럿 브런테에게 던진 질문을 알고자 함이고 이해하고자 함이다. 나를 당신을 그리고 다른 사람을. 그것은 세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니, 그것이야말로 세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어떻게? 세상을 구성하는 나를, 당신을, 그리고 다른 이들의 삶을 알고자 함으로써.



아인슈타인과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와 슈바르츠실트를 비롯한 천재 학자들은 그 질문을 수학을 통해, 물리학과 천체학 생물학을 통해 그리고 양자역학을 통해 질문을 한다. 그 질문을 하기 까지 그들에겐 일단 의문이 있었다. 저기 너머엔 뭐가 있을까, 이것은 어떤 작용을 할까, 저기까지 가면 그 다음엔 뭐가 있을까. 그들은 이것보다 더한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을 했고 그렇게 연구를 하고 질문을 하고 답을 내림으로써 어제는 몰랐던 이론을 발표해내기도 하고 어제는 풀지 못했던 문제를 풀어내기도 한다. 그것은 알고자 함이었고 이해하고자 함이었다. 무엇을? 세상을. 그들에게는 그 이면을 보고자 하는 열의가 있었고 숨겨진 것들이 있다는 것에 대한 알아차림이 있었다. 이 책을 시작하고 읽는 내내 나는 이 책에 등장했던 '심연' 이라는 단어와 '내면'이라는 단어에 집중했는데, 그들이 생각하는 그들 자신만의 우주 그리고 세상에 대한 예리한 지각 등은 자신의 심연과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동시에 세상을 확장시킨다. 그것이 언제나 긍정적 효과를 내는 것도 아니고 인간을 더 살기 좋게 만드는 데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어떤 것들을 만들어냄으로써 세상이 돌아가는 일을 이해하고자 한다. 다른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물질에 관한 것들 그 물질을 구성하는 것들 그것들이 일어나는 화학작용, 그리고 그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 하지 못할 수많은 공식들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을 구성하는 요소이고, 그것들을 알고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이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세상은 그런 것이었다.



십대에 벌써 논문을 발표하기도 하고 이십대에 대학 교수가 되기도 하는 천재들의 삶을 읽는 내내 너무나 당연하게 천재들의 삶이 나와 다름을 인식했지만, 그러나 책장을 덮고 생각하게 된 건,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능력으로 세상을 이해하고자 애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나대로 진 리스는 진 리스대로 아인슈타인과 하이젠베르크는 그들대로. 천재들이 던지는 질문이라는 것은 내가 던지는 질문과 달랐고 또 진 리스가 던지는 질문과도 달랐지만, 그러나 그들의 질문이 더 수준 높은 것이고 더 세상에 도움이 되는 질문이었을까, 라고 한다면 나는 그렇지않다고 대답할테다. 이 세상을 존재하게 하는 데에는 그 모두가 다 필요할 테니까. 결국 우리는 나름의 질문으로 세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게 아닐까. 천재들과 나의 질문은 그저 다를 뿐.



천재들의 생각과 삶을 엿보는 것은 즐거웠고 문장도 아름다웠고 또다시 나를 들여다보게 된 것도 이 독서의 수확인데, 뜻밖에 양자역학에 대한 관심까지 챙긴다. 덤으로, 나는 어쩐지 양자역학 쪽의 손을 들어주는 젊은이인것 같고 아인슈타인은 천재 꼰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 뭔가. 하하하하하. 그러면서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아인슈타인에게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다. 뽀개봐, 양자역학을 뽀개봐!!!


자, 이제 양자역학을 공부할 시간인가. 후훗.



독일어로 ‘블라우조이레‘, 즉 청산靑酸이라 불리는 액체 상태의 시안화물은 휘발성이 매우 강하다. 섭씨 26도에서 끓으며 연한 아몬드향을 내는데, 인류의 40퍼센트는 해당 유전자가 없어서 이 냄새를 맡지 못한다. 이 진화적 변이 대문에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마이다네크, 마우트하우젠 강제 수용소에서 치클론B에 살해당한 유대인 중 상당수는 가스실을 채우는 시안화물의 냄새를 낌새조차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일부는 자신들의 절멸을 계획한 자들이 자살용 캡슐을 깨물며 들이마신 것과 같은 향기를 맡으며 죽었다. - P16

슈바르츠실트가 쓴 풀이법은 간단했다. 그는 회전하지 않고 전하가 없는 완벽한 구형의 이상적 항성을 가정한 다음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을 대입하여 질량이 어떻게 (마치 침대에 내려놓은 포탄이 매트리스를 휘게 하는 것과 비슷하게) 공간의 형태를 바꾸는지 계산했다.
그의 수치가 어찌나 정확했던지 오늘날까지도 항성의 경로, 행성의 궤도, 중력이 큰 천체 근처를 지나는 광선의 휨 등을 추적하는 데 그의 공식이 쓰인다. - P47

일반적인 항성의 경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공간은 아인슈타인의 예측대로 완만하게 휘어졌으며 항성 본체는 마치 해먹에 누운 두 아이처럼 함몰부 중앙에 떠 있었다. 문제는 거성이 연료를 다 써버려 붕기하기 시작할 때처럼 너무 큰 질량이 매우 작은 면적에 집중될 때 일어났다. 슈바르츠실트의 계산에 따르면 그런 경우에는 시공간이 단지 휘어지는 것이 아니라 찢어진다. 항성이 짜부라들어 밀도가 계속 커지다보면 중력이 너무 세지는 바람에 공간이 무한히 휘어져 스스로를 감싸고 만다. 그 결과는 우주의 나머지 부분과 영영 단절되어 빠져나갈 수 없는 심연이다.
사람들은 이를 슈바르츠실트 특이점이라고 불렀다. - P48

슈바르츠실트는 어찌나 소심했던지 오랜 교제 기간 동안 그녀를 단 한 번 만졌는데 그것조차 실수였다. 그녀가 소형 자작 망원경 렌즈를 들여다보며 북극성에 초점을 맞추도록 도와주다가 얼떨결에 가슴에 손을 얹은 것이 전부였다. 두 사람은 1909년 결혼하여 딸 아가타, 아들 마르틴과 알프레트를 낳았다. 딸은 고전을 공부하여 그리스 철학 전문가가 되었고 큰아들은 프린스턴대학교 천체물리학과 교수가 되었으나, 부정맥과 영구 동공산대瞳孔散大(검은색 눈동자가 크게 확대되는 상태-옮긴이)를 타고난 작은 아들은 평생 여러 차례 신경 쇠약을 겪다가 유대인 박해가 시작된 뒤 독일을 탈출하지 못하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P60

(하이젠베르크)그는 오줌 얼룩을 만지려고 손을 뻗었으나 반점들이 기다란 숫자 사슬이 되어 그의 주위에처 춤추며 그의 목에 점점 빡빡하게 죄어드는 바람에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이런 악몽은 에로틱한 꿈에 비하면 차라리 반가운 위로였다. 기력이 떨어질수록 음몽淫夢이 점점 강렬해져 그는 청소년기처럼 시트에 얼룩을 남겼다. 그는 로젠탈 부인이 시트를 갈지 못하게 하려고 애썼지만 그녀는 하루도 빠짐없이 그의 방을 구석구석 청소했다. 그가 느낀 수치심은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자위만은 참았다. 몸의 모든 정력을 연구에 쏟을 수 있도록 간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 P135

아인슈타인이 보기에 이것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었다. 상대성의 아버지 아인슈타인은 시각적 표현의 달인이었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그의 개념은 모두 자신을 극단적인 물리적 상황에 놓는 상상력에서 탄생했다. 이런 까닭에 그는 하이젠베르크가 요구하는 제약을 받아들이기가 꺼림칙했다. 더 멀리 보겠다고 두 눈알을 후벼낸 격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하이젠베르크의 사고방식을 따라가 궁극적 결과에 도달하면 어둠이 물리학의 영혼에 스며들 것임을 직감했다. 하이젠베르크가 승리하면 마치 우연이 물질의 심장부에 깃들어 가장 기본적인 성분들과 떼려야 뗄 수 없이 묶인 듯 물리적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의 기본적 성격이 영영 모호하게 남을 터였다. - P143

하이젠베르크가 고비게 어떤 아원자 현상이든 절대적으로 확실하게 기술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했다. 이전에는 모든 결과에 대해 원인이 있었지만 이젠 확률의 스펙트럼이 존재할 뿐이었다. 만물의 가장 깊은 바닥에서 물리학이 발견한 것은 슈뢰딩거와 아인슈타인이 꿈꾸었듯 세계의 끈을 당기는 합리적 신이 지배하는 단단하고 확고한 실재가 아니라 우연을 가지고 노는 천수千手 여신의 변덕에서 탄생한 놀랍고도 희한한 세상이었다. - P219

유럽 전역에서 날아온 늙은 대가와 젊은 신예들이 당시 가장 저명한 학술 회합이던 제5차 솔베이회의에 참석했다. 이토록 많은 천재가 한 지붕 아래 모인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폴 디랙, 볼프강 파울리, 막스 플랑크, 마리 퀴리를 비롯한 열일곱 명은 노벨상을 받았거나 훗날 받게 되며, 노벨상을 두 번 받은 퀴리가 헨드릭 로런츠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더불어 회의위원회를 감독했다.
회의 주제는 ‘전자와 광자‘였지만 모든 참석자가 알았다시피 회의의 진짜 목적은 물리학을 떠받치는 구조 전체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던 양자역할을 분석하는 것이었다. - P221

하이젠베르크가 설명했다. "우리 시대의 과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슨 객관적ㅇ고 초연한 관찰자로서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벌어지는 게임의 행위자로서의 우리가 자연과 맺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과학은 이제 실재를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대면할 수 없습니다. 세계를 분석하고 설명하고 분류하는 방법은 스스로의 한계를 맞딱드렸습니다. 이것은 개입이 탐구 대상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에서 비롯합니다. 과학이 세상에 비추는 빛은 우리가 바라보는 실재의 모습을 바꿀 뿐 아니라 그 기본적 구성 요소의 행동까지도 바꿉니다." 과학적 방법과 과학의 대상은 더는 분리될 수 없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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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2-08-19 15: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우! 멋진 리뷰에요!! 다락방님은 ‘질문‘을 시작점으로 두셨군요. 진 리스처럼 작품 속 천재들이 ‘왜?‘라는 의문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눈부신 과학 발전의 빛나는 이런 순간들은 존재하지 않았을 거 같아요. 질문과 끈기가 천재의 특징 같고요.

그런데 아직도 진 리스의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를 안 읽은 저는 도대체, 누구일까요? @@

다락방 2022-08-19 15:39   좋아요 1 | URL
이 책 속의 천재들이 질문을 던지는 지점 혹은 의문을 갖게 되는 지점이 제가 가진 것과는 달랐지만, 질문이라면 진 리스도 던진 것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그래서 이과적 천재가 수두룩 나오는 이 책을 읽다가 그만 상대적을 문과에는 진 리스가 있다! 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하하. 문과에 가면 진 리스도 있고 다락방도 있고!! ㅋㅋㅋㅋㅋ

저는 진 리스가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를 썼다는 사실이 진짜 너무 짜릿해요! >.<

공쟝쟝 2022-08-19 15: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놔 인용문에 또 오줌!? 얼룩?ㅋㅋㅋㅋ)
아인슈타인 천재 꼰대 만들고, 천재들의 질문을 자신에 대한 질문과 같은 반열에 올려 놓으신 이해 쏙쏙 리뷰 잘 읽었습니다 ㅋㅋㅋㅋ

다락방 2022-08-19 15:37   좋아요 2 | URL
안그래도 리뷰 등록해놓고 ‘음.. 나 너무 나랑 천재 동급으로 해놨나‘ 싶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뭐 다를 거 없잖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 어떡하죠...사람이 이모양으로 생겨서 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2-08-19 15:39   좋아요 1 | URL
이미 다락방님은 인생은 예측불허!로 예측 불가한 아원자들의 운동에 대한 대처법으로서의 인생론을 만든채 살아가고 계셨으므로 인생천재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8-20 10:26   좋아요 1 | URL
아 진짜 리뷰 쓴거 개후회중 ㅠㅠ

공쟝쟝 2022-08-20 11:29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후회라니 ㅋㅋㅋㅋ 고런 것도 하시는 분이십니까? ㅋㅋㅋ

책읽는나무 2022-08-19 19: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까 낮에 단발님 리뷰 읽고 🤪🤪 되설라무네 댓글도 못달았는데 지금은 댓글 후닥닥 달고 싶네요.
책을 궁금하게 만드셔서요.
왜??? 라는 질문으로....ㅋㅋㅋ
근데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가 그런 내용이었나요? 제목은 정말 많이 들어봤는데 아직 읽진 못해서...또 한 권 궁금하게 만드셨어요^^

다락방 2022-08-20 10:25   좋아요 2 | URL
책나무 님, 제인 에어를 읽으셨다면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가 바로 다음 수순 입니다. 저는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도 좋지만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를 쓴 그 스토리가 너무 좋아요. 진 리스는 최고입니다!! >.<

그레이스 2022-08-20 14: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가 궁금해지네요.
저도 양자역학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이럴때 빨리 읽어야하는데... 어제보다 오늘 그 관심이 흐려지네요,,, 다른 급한 일에 쫒기고 있어서 ,,, 이 기분 꼭꼭 묶어둘수는 없을까요?^^

다락방 2022-08-21 17:27   좋아요 1 | URL
우와 그레이스 님도 엄청 멋진 리뷰를 써내셨더라고요. 저는 이 리뷰 쓴걸 엄청 후회하고 있습니다. 너무 부끄러워서..
그나저나 양자역학 궁금해져서 또 책을 사야되겠어요. ㅋㅋㅋㅋㅋ

그레이스 2022-08-21 17:57   좋아요 0 | URL
부끄러우시다뇨, 전혀 아니예요.
다락방님만의 매력이 넘치는 글인걸요.
양자역학 좋은 책 있으면 공유해주세요.^^
 
그의 제안, 당신의 선택은?
Ugly Love (Paperback)
Colleen Hoover / Atria Books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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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에서 작가가 보이는 걸 싫어한다. 

인물을 만들고 이야기를 전하면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잘 전달하기 위해 가끔 작가가 끼어들 때가 있다. 그럴 때 어떤 느낌을 강제하는 느낌을 갖게 되어서 나는 영 별로인데, 콜린 후버가 이 책에서 내가 싫어하는 그걸 했다. 작가는 끼어들어서 우리의 남자 주인공 마일스가 얼마나 괜찮은 남자인지를 보여주려고 한다. 비록 섹스파트너를 찾고 그녀에게 결코 사랑은 주려 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그녀를 상처입히지만, 그러나 그는 불쌍한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고 배려 있고 잘생기고 자신이 맡은 바 일도 잘하고 섹스 천재이고.. 내가 마일스란 이 책의 남자 주인공한테 그 자체로 반하게 되는게 아니라 작가가 '반할만하지?'를 묻는 것 같아서, 나는 반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혹은 소설은, 작가가 드러나지 않는 쪽이다. 그저 이야기속 인물들만이 거기 있는 소설, 그래서 나로 하여금 내가 그 시간을 보내고 내가 그 인물들에 이입하고 내가 사랑하고 내가 슬프게 하는 소설. 

콜린 후버는 이번에 처음 만난 작가이고 전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인데 나는 콜린 후버를 좋아할 순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는지는 잘 알겠다. 작위적인 설정이나 인물에 대한 매력을 드러내기 위한 끼어들기를 제외하면, 이 책 한 권만으로 평가해보건데, 작가는 희망을 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 고통에 대한 극복과 삶에 대한 희망. 인생은 완전히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치명적으로 힘든 일도 일어나지만, 그러나 우리가 사랑을 하게 된다면 그 고통이 없어지지는 않아도 잠시잠깐의 순간들로 존재하게 되기도 한다는 것. 그런 메세지라면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사실은, 이 책이 별로라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별을 넷 준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데. 나도 읽다가 결국 눈물이 핑돌았다. 번역본에서는 냉소했는데.



'테이트'는 대학원에 진학하고 일자리를 얻기 위해 오빠가 사는 집에 잠시 얹혀 살기로 한다. 그러다가 오빠의 앞집에서 오빠의 친구 '마일스'를 알게 되고 그에게 끌리게 된다. 마일스 역시 마찬가지, 그녀에게 강하게 끌리고 그녀랑 키스 한 번 해봤더니 와 완전 좋아 너무 좋아 짱좋아 계속 하고 싶다.. 이렇게 되어서 테이트에게 나 너랑 섹스하는 사이 되고 싶어 오케? 하게 되고 테이트 역시 오케이 한다. 대신 마일스는 조건을 내건다. 내 과거를 캐지말고 내 미래를 궁금해하지 말라는 거다. 즉, 우리는 연인이 되는게 아니라 단순히 섹스만 하는 사이가 되자는 것. 테이트는 자신의 감정을 꾹꾹 눌러가며 그와의 섹스를 유지한다. 상처받기도 하고 모멸감에 젖기도 하고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져가면서도 그러나 이 관계를 쫑내지 못한다. 


이 지점에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원서에서는 fucked 라고 표현되고 번역본에서는 강간이라고 표현됐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같이 읽는 친구들과 여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것은,


1. 너무너무 극도의 쾌락을 주는 미친 섹스머신과 헤어지고 싶지 않다

2. 테이트는 그러나 자신을 보는 그의 눈빛에서 그에게도 나를 사랑하는 감정이 있고 우리의 관계는 변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라는 두 가지 이유였다. 나 역시 이 두 이유에 동의하고 공감하는바, 그렇다면, 어떤 섹스는, 그러니까 어떤 섹스가 주는 극도의 쾌락은, 저기 저 먼 곳 어딘가 저기 무지개 너머에 존재하는 극도의 쾌락은 내 자존감이 짓밟힌 것도 무시하게 하는 그 엄청난 것인가? 나는 친구에게 물었다.


"나는 내 인생에 가장 극도의 쾌락을 줬던 섹스를 떠올려봐도, 만약 그 섹스 상대가 나를 이렇게 대한다면 헤어질거야" 라고.


친구도 역시 그러겠다고 하지만, 이내 이런 물음이 꼬리를 물었다.


"그건 마일스의 섹스만큼은 아니기 때문일까?" 그러니까, "우리의 극도의 쾌락은 사실 별 거 아닌거였던 걸까?", 그러니까, "우리가 최상의 쾌락이라 여겼던, 엄청난 섹스라 생각했던 그것보다 더 이상의 것이 사실은 아주 많이 있는걸까?" .... 그것은,


나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것조차 용납하게 하는 그 어떤것인가?



사실 테이트에겐 2번이 더 컸다고 생각한다. 아마 그럴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게 눈에 뻔히 보이는데 나에게 미래를 기대하지 말라고, 내가 너를 사랑할거라고 기대하지 말라고 하는 남자때문에 속이 상하고, 그런데 아무리 봐도 나를 좋아하고.. 그러니 기대를 갖고 기다리려던 거겠지. 그러나 사람이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도 없고, 번번이 상처받으면서도 버틸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게 테이트는 그에게 이별을 말한다. 나를 사랑하면서 나를 그리워하면서 그러면서도 뒷걸음질치는 너따위!! 하고 세이 굿바이 하는 것이다. 굿바이 하는 순간까지도 그를 향한 기대를 품고서...



그런 한편 마일스에겐 상처가 있었다. 누나 마음 속에 삼천원 쯤은 있는 거잖아요...

커다란 상처였고 그것은 극복 불가해보였으며 그 상처가 지배하는 불행한 삶이 마일스의 삶이었다. 마일스는 다시는 삶에 사랑을 허락하지 않으려고 했고 그런데 테이트를 만났고, 나같은 놈에게 이 사랑이 허락되어서는 안된다고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과 밀어내기 와 기타등등으로 내적 갈등 오지게 겪으면서 섹스에 졸라 충실한다. 아, 남자여.. 



어쨌든 이 야한 소설에서 자고 자고 또 자고 계속 자고 여기저기서 자고 막 그러는 소설에서 사실 하고자 하는 말은, 위에도 썼지만, 이거다.



"The pain will never go away, Miles. Ever. But if you let yourself love her, you'll only feel it sometimes, instead of allowing it to consume your entire life." -p.302


고통은 결코 사라지지 않아, 마일스. 영원히. 그렇지만 네가 그녀를 사랑하도록 자신을 허락한다면, 그건 가끔만 느끼게 될거야, 네 삶 전체를 그것이 소모하게 두는 대신에 말이지.



고통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선택으로 그것이 삶을 지배하는 대신, 가끔만 찾아들게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그것을 허락할 수 있다. 이래서, 콜린 후버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것 같다. 이런 당연한 말을 해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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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8-18 15: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내용만으로 볼 때 전형적인 로맨스 소설! 이런 소설에서 말하는 극도의 쾌락을 주는 섹스가 과연 현실에 존재할까는 의문입니다. 뭐 1년에 한번쯤 한다면 열과 성을 다해서 하고 장렬히 나가떨어질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매일 일에 치이고 생활에 치이는 보통 사람이 저 로맨스소설 남주인공처럼 하면 복상사라는 말이 현실이 될걸요. ㅎㅎ
그러니까 나의 자존감이 짓밟히는걸 감내할만한 섹스는 없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저의 생각! 어떤 여자나 남자가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자신의 다른 약점이나 약함을 감추기 위한 방패정도가 아닐까 뭐 그렇다고요. ㅎㅎ

다락방 2022-08-18 15:15   좋아요 3 | URL
책속 남자가 25세 밖에 안됐어요. 여자는 23세 구요. 그러니 눈만 마주치면 자는 그 열정과 젊음..은 있을 것이고, 하고 또 해도 또 늘 새롭기도 할것이지만, 저 역시 나를 함부로 대하는 걸 용납할만한 섹스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이 남자도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것이다 라는 기대와 희망이 테이트로 하여금 좀 더, 좀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기다리게 만든 것 같아요.
사랑을 인정한 덕분에 그리고 받아들인 덕분에 마일스도 이제 건강하게 사랑하게 됩니다. 로맨스 소설은 대부분 이렇게 해피엔딩이죠. 후훗.

독서괭 2022-08-18 15: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누신 대화의 흐름이 넘 공감가네요 ㅋㅋ 우리가 이만큼 좋은 섹스를 모르는 게 아닐까?? ㅋㅋ 육체의 힘이랄까.. 하지만 저도 인격적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관계는 지속을 못 할 것 같습니다. 내쪽도 그쪽에 원하는 게 딱 몸 뿐이라면 상관 없겠지만.. “희망” 때문이라는 2번 해석이 더 설득력 있는 듯요!

다락방 2022-08-18 15:27   좋아요 4 | URL
네, 맞아요 독서괭 님. 마일스도 그녀가 희망을 갖고 있다는 걸, 그래서 자신의 변화를 기다리는 걸 눈치채고 알아요. 그래서 자꾸 말합니다. 나한테 희망을 갖는건 아니지? 내가 변할거라 생각해 지속하는 건 아니지? 하고요. 희망, 그것은 참 힘이 세네요, 독서괭 님. 그러나 그녀의 희망은 헛된것은 아니었어요.

잠자냥 2022-08-18 15: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니, 그런 댓글 와중에 또 언제 이런 훌륭한 글을 썼습니까? 이 글에서도 절절히 노스탤지어가 느껴지네요. ㅋㅋㅋㅋ 저도 다부장님처럼 소설에서 작가가 보이는 걸 참 싫어하는데요, 다부장님이 쓰실 그 위대한 웹소설에서는 작가가 개입하는 거 용서할게요. 오히려 더 좋을 거 같아요. ㅋㅋㅋㅋㅋ (아니, 여기다 이런 댓글 달지마 잠자냥아! 쟝쟝 방으로 가! ㅋㅋㅋㅋ)

공쟝쟝 2022-08-18 15:51   좋아요 3 | URL
아니 여기서 왜 또 내 방이 나와? 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제 방으로 오십쇼 ㅋㅋㅋ 덩기덕쿵더러러 ㅋㅋㅋㅋ

다락방 2022-08-18 15:59   좋아요 4 | URL
저 이 소설 읽으면서 잠자냥 님 생각했거든요. 잠자냥 님도 작가가 보이는 걸 싫어하시는 것 같아서요. 이 책을 잠자냥 님은 안좋아하실 것 같다, 생각했어요. 느낌 아니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전 뭔 글만 쓰면 길든 짧든 노스탤지어 어떡하죠? 큰일이네, 큰일이야.. 이것이 바로 연륜과 경력에서 오는것인가..... (먼 산)

잠자냥 2022-08-18 16:02   좋아요 2 | URL
부장님 목소리 언제 들어본 적 있는데(유튜브에 뭔가 읽어주는 거) 노스탤지어와 아주 잘 어울리는 목소리였습니다. 어여 쓰세요....... 웹소설 오디오북차트 1위 따 놓은 당상

다락방 2022-08-18 16:04   좋아요 2 | URL
노스탤지어랑 잘 어울리는 목소리라고요? 흐음..
전 제 목소리가 그냥 섹시하다고만 생각했는데................
=3=3=3=3=3

공쟝쟝 2022-08-18 17:35   좋아요 1 | URL
좋은 목소리와 예쁜 말투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러분 과거 흘리고 다녔었던 다부장은 의외의 예쁜 목소리와 상냥하고 조곤조곤한 말투를 가지고 있습니댜. 오디오북 가즈아!

다락방 2022-08-18 17:44   좋아요 1 | URL
아, 내 매력 그만 폭로해요. 가만 있어도 매력 터져서 미치는데 그렇게 더하면 어떡하란 말이야. 지금도 인기가 부담스러워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더 늘어나게 하지 말아줘요. 부탁할게요. 어휴.. 피곤해.....

공쟝쟝 2022-08-18 18:04   좋아요 0 | URL
그럼 그 매력은 나만 알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3만보의 범접 불가 매력이라 ㅋㅋㅋ 아무나 쉽게 접근 못함 ㅋㅋㅋ 최소 국토대장정 마니아 바람돌이님 정도만 빼고 ㅋㅋㅋ

건수하 2022-08-18 19:55   좋아요 1 | URL
멀지 않은 곳에 또 이런 댓글이 달리고 있었군요 ㅋㅋ

미미 2022-08-18 16: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리뷰 읽고 찾아보니 노트북과 그레이 사이라는 문구가 있네요? 최상의 섹스에 과연 사랑이 배제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됩니다. 콜린 후버 저도 읽어보고싶어요!! ^^*

다락방 2022-08-18 16:04   좋아요 3 | URL
우오오옷 미미님이 읽게 되신다면 어떤 리뷰를 써내실지 너무 궁금합니다. 한 권쯤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콜린 후버 책이 전 세계에서 흥행이더라고요. 우리 책 읽는 사람들은 그렇다면, 대체 왜그렇게 인기인가 보자, 하고 읽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비록 한 권 읽고 더는 안읽을지라도... 하하

그런데 저는 원서 두 권 더 있고 번역본 한 권 더 있어요, 콜린 후버. 좀 더 읽어보려고요. 원서가 비교적 다른 원서들보다 쉬운 편이었어요.

공쟝쟝 2022-08-18 17: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태그까지 읽다가 빵빵 터졌어요. 아무리 최고의 섹스머신여도 대화가 안통하는 똥 멍충이가 나를 지 수준(?)취급한다면 저는 짜게 식을 거 같아요. 아닌가 안식나? 암튼 ㅋㅋㅋ 한참 집중할 땐 몰라도(?) 일단 식어지면(?) 사후 해석을 아주 똥 같이 만들어주면서 말로 비난해줄 테다. 그 고추 따위 지성이 빈약해서 다시는 아무 데나 못 세우 게 ㅋㅋㅋ 마음의 상처를 아주 물리적 상처로 재생시켜주겠어!!! 흥!!!(이렇게 쓰고 나니 너무 격렬한데? ㅋㅋㅋㅋ 내 대외적 이미지를 생각...하려했지만 오늘치 제 페이퍼 댓글로 다 덩기덕 쿵더러러해서 상관 없어졌다.)
근데 1번이 가능하긴 한지 궁금하긴 하네요. 이 쓸데없는 지적(?)호기심..
근데 나는 그래요. 섹스 머신 이런 게 아니고... 내가 나쁜 섹스를 했다는 것보다 더 견딜 수 없게 하는 건... 사실, 사랑 받지 못했다는 거? 근데 이젠 상관 없어요. 상관없어져야 하고요. 이에 대해서는 언젠가 길고긴 페이퍼를 쓸 수 있다면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락방 2022-08-19 14:37   좋아요 2 | URL
책 속의 마일스는 전혀 똥멍충이가 아니고 초고속 승진까지 하는 똑똑이 남에 배려남에 핸섬남에.. 뭐 그런 남자이긴 합니다. 그러니 여주인공이 속절없이 빠져든거겠지요. 여자가 했던 말들 다 기억해서 여자를 기쁘게 해주는 남자이기도 하고요. 사랑하는 여자한테 최선을 다하는 남자이긴 합니다만,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마!‘라고 하면서 나를 자신의 연인으로 공식화하지는 않죠.

경우가 다르긴 하지만, 저 역시나 극도의 쾌락을 주는 남자가 똥멍충이라면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칠 것 같습니다. 온갖 정이 다 떨어져서 토할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제게는 그런 편견도 있습니다. 똥멍충이가 극도의 쾌락을 주는 섹스 머신일 리는 없다, 고요. 섹스 머신으로서 상대에게 극도의 쾌락을 주기 위해서는 생각이란 걸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하면 얘는 더 좋아하지, 이렇게 하면 얘가 더 잘 느끼지, 라는 생각과 배려요. 그런게 없이 어떻게 극도의 쾌락이 제게 오겠습니까? 그러니 똥멍충이는 섹스를 잘할 수 없다,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 물론 역의 경우, 그러니까 똑똑한 남자가 섹스를 못할 수는 있다는 것은 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못할 수 있지요. 여러가지 경우의 수로. 뭐 사이즈나 기술이나 체력이나 기타등등.

그럼 이만.

건수하 2022-08-18 19: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번에 댓글 달았던 그 책 맞군요 (확인하고 옴)
저는 그때 하자고 하면 해보겠다고 댓글을 달았는데 ㅋㅋㅋ

25살.. 6년 전이면 19살.. 뭘 그리 큰 상처를 받았길래... @_@
얘들아, 인생은 길다 (뭐래...)

단발머리 2022-08-19 15:03   좋아요 2 | URL
수하님, 안녕?
걔네들 사건사고 많았어요. 고딩엄빠부터 시작해야혀 ㅋㅋㅋ 궁금하죠? 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2-08-18 20:40   좋아요 0 | URL
찾아봤더니 (다행히도) 절판이네요 우후후후

단발머리 2022-08-18 20:52   좋아요 1 | URL
Ugly Love는 절판 안 됐다고 그래요 ㅋㅋㅋㅋㅋ 참고하세요 ㅋㅋㅋㅋ

건수하 2022-08-18 21:26   좋아요 0 | URL
저는 ‘어글리 러브’만 취급할 생각이었 ㅎㅎ <임신중지> 아직 시작 못했어요 ㅠㅠ

단발머리 2022-08-18 21:29   좋아요 1 | URL
임신중지로 가셔야겠네요. 어글리 러브가 피임과 어마어마한 연관성이 있지만요. 허허허.

다락방 2022-08-19 14:34   좋아요 0 | URL
수하 님, 큰 상처입니다.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큰 상처였어요. 그래서 그 지점에서 작가가 좀 심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왜이렇게 사랑으로부터 달아나려 하는가 하고 짜증이 나는데, 과거를 알고 나면 ‘이래서 이랬구나‘ 하게 되는거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건 잘하지만 그게 너무 심한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저는 읽으면서 여러차례 했습니다.

어글리 러브 보다는 ugly love 가 더 좋습니다. 저도 이제 임신중지로 갑니다. 슝-

단발머리 2022-08-18 20: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번, 2번의 경우를 얼마나 설득력있게 썼느냐가 이 소설의 성공을 가늠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1번의 경우에 있어서는, 작가가 아주 잘 썼다고 생각하고요. 우아, 진짜? 하는 물음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요. 2번의 경우는 결말로서 해결이 되니까 또 그 나름대로 잘 썼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목도 표지도 컨셉을 잘 잡았다고 생각하고요. 다만, 그 놈의 과거는 제발.... 좀 극복하자... 이런 맘이 들더라고요. 과거로 돌아갈 때마다 짜증이 밀려오고는 했습니다. 뒷부분에서는 현재도 짜증나고요.

그럼 지금까지 ‘같이 읽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락방 2022-08-19 14:32   좋아요 1 | URL
저도 1,2번을 놓고 보면 아주 잘 썼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1번에 대해서는 좀 뻥이 심하다..는 생각은 해요. 스물다섯의 남자가 게다가 6년간 노섹스였던 남자가 이렇게나 섹스머신일 일인가.. 이것은 구라가 심하다.. 라고 말이지요. ㅋㅋㅋㅋㅋ
저는 마일스의 과거가 극복할 수 있는 과거는 아닐 것 같거든요. 너무 커요. 심각하게 큽니다. 그런데 그게 얼마나 심각하게 큰지를 보여주기 위해 그 과거의 사연을 지나치게 꾸몄다는 생각을 해요. 너무 아름답게 포장했달까요. 그 지점에서 역시나 또 작가가 보입니다. 과거 이야기 읽는게 그래서 너무 싫었어요. 너무 과해요. ㅠㅠ

아무튼 덕분에 다 읽었습니다. 저의 여덜번째 원서 완독입니다. 우리가 어느 틈에 여기까지 왔어요. 만세!!

2022-08-19 0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8-19 14: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이 2022-08-20 17: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좀 달리 생각해요 락방님, 이건 바로 위 댓글 읽고 하는 말인데요 저런 상황을 만일 겪었다고 한다면 6년 아니라 20년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20년은 좀 심한가? 어쨌거나 읽는 동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통스러워서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던데요. 좀 오버긴 한데 과거의 마일스였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지각생도 완독했습니다.

다락방 2022-08-21 17:30   좋아요 1 | URL
비타 님, 저도 저 상처가 결코 잊혀지지 않을 상처라고 생각해요. 사실 저는 다시 사랑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굳이 다짐을 하지 않아도 어려울 거라고요. 저 상처는 당사자를 침몰 시킬 것 같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사랑하고 다시 아이를 낳는 삶을 살게 되는 마일스와 레이첼을 보는게 좋았고요. 저는 비타 님과 제가 달리 생각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요?

다만, 저는 6년간 섹스하지 않았던 남자가 섹스 머신으로 컴백한다는 설정이 너무 과하다...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고작 스물다섯의 나자가 말입니다. 이 책에는 제가 생각할 때는 과한 설정이 많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이끄는대로 충실히 울어버렸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