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끝의 버섯
애나 로웬하웁트 칭 지음, 노고운 옮김 / 현실문화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45년에 히로시마 원자폭탄으로 파괴됐을 때, 폭탄 맞은 풍경속에서 처음 등장한 생물이 송이버섯이었다고 한다. - P24


오래전에 보았던 드라마에서 남자주인공이 시골로 내려가 버섯을 재배하려고 시도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버섯이 자랄 거라고 기대했던 나무들에서는 버섯이 제대로 자라지 않아 남자와 그의 파트너는 절망했었다. 그 때 그 장면을 보면서 버섯은 나무에서 자라지만 재배가 쉽지는 않구나, 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애나 칭은 이 책을 통해 송이버섯을 인간이 재배할 수 없으나, 인간의 참견으로 자랄 수 있다고는 얘기한다. 숲을 교란시켜 소나무에 버섯이 열리는 환경을 만들 수는 있다는 것. 인간의 의지로 재배하는 것은 불가하지만, 인간이 조금 관여하면 송이버섯이 자라게 도울 수는 있다는 것이다. 송이 버섯은 폐허에서도 피어날 수 있지만, 그러나 그 폐허에 소나무가 있어야 한다. 생명력과 전달력이 강한 소나무가 있는 곳에서야 비로소 송이 버섯은 열리는 것이고, 활엽수의 방해를 받아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놓아두지 않기 위해 인간은 숲을 교란하는 것이다. '교란'이라는 단어가 폭력과 부정을 뜻하는 듯 보이지만, 여기서 애나 칭이 언급하는 교란이란 숲의 생을 돕는 걸 뜻한다.


송이버섯과 소나무는 숲에서 그저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 둘은 숲을 만든다. 송이버섯 숲은 풍경을 만들고 변형하는 모임gatherings이다. 이 책의 3부는 교란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교란을 시작점, 즉 행동을 위한 첫 단추로 만든다. 교란은 변형적인 마주침을 위한 가능성을 재배치한다. 풍경의 패치들은 교란에서 등장한다. 그리하여 불안정성은 인간을 넘어서는 사회성에서 일어난다. - P271



송이버섯의 쓰임을 얘기하기 전, 애나 칭은 송이 버섯을 채집하는 사람들에 대해 얘기한다. 정규직도 아니고 백인도 아닌 사람들에 대해서. 그들은 난민이거나 전쟁을 겪었거나 징집을 피해 옮겨왔고, 그렇게 송이버섯을 만났으며, 송이버섯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송이버섯을 취식함으로써가 아니라 판매함으로써. 사회로부터 배제되어 있는듯 옆으로 비켜나서, 또 자본주의랑 결코 가깝지 않은 곳에 있는 것 같은 그들이, 송이버섯을 채집한 뒤에는 자본주의와 만난다.


나와 이야기를 나눈 버섯 채집인 대부분은 삶의 터전에서쫓겨나고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등 끔찍한 일을 경험했다. 생계를 이어갈 다른 방도가 없는 이들에게 상업적 채집은 근근이 살아가는 방식보다 더 나은 방법이다. 하지만 이는 어떤 종류의 경제인가? 송이버섯 채집은 자영업이며, 채집인을 고용하는 회사는 없다.

임금이나 혜택도 없으며, 채집인은 그저 자기가 찾은 버섯을 팔 뿐이다. 버섯이 나지 않는 해도 있는데, 그런 시기에 채집인은 경비손해에 더해 수입도 없다. 상업적 야생 버섯 채집은 사회보장이 제공되지 않는 불안정한 생계의 한 예다. - P27



자,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소나무도 송이버섯도 그리고 인간까지도. 

그들은 모두 어떻게든 서로의 삶에 관여한다. 

그동안 내가 해왔던 생각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나라는 인간은 이 세상에서 혼자 살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다른 인간들이 있어야만 비로소 삶이 더 인간다워진다고 생각했던 거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는 참이지만, 그러나 그것만이 참인 것은 아니다. 인간에게 다른 인간의 끼어듦이 필요하듯이, 인간에게 비인간과의 얽힘도 필요하다. 단순히 송이버섯과 소나무 그리고 인간사이의 일만이 아니다. 수많은 박테리아가 생명이 살아가는데 필요한데, 그렇다면 나라는 인간은 온전히 나라는 인간만으로 탄생과 존재가 가능한가 하면, 그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거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의 몸 속에 있던 수많은 미생물들과 마주친다는 것, 그렇게 밖으로 나온다고 얘기하는 거다.



내가 애나 칭을 만난 건 도나 해러웨의 책이었다.

애나 칭이 우리가 태어나고 또 생을 이어나가기 위해 수많은 비인간 존재가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것은, 결국 도나 해러웨이의 '반려종과 함께 살아가기'와 닿는다. 단순히 반려견이나 반려묘 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다른 생물들. 게다가 이 비인간에는 살아 숨쉬는 존재까지 포함해 그렇지 못한 것들까지 다 소환된다.



직접 성형수술을 해보고 그에 대한 책을 써낸 '임소연'은 자신의 책 《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나》에서, 성형수술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그러니까 한 사람이 '성형수술을 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성형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도 필요하지만, 수술실이 필요하고 수많은 수술도구들이 필요함을 언급한다. 그 도구들은 결국 의사의 몸을 확장해서 수술을 돕는다는 것. 게다가 간호사들은 그 수술실과 도구들을 관리한다. 인간인 의사와 성형수술을 하는 당사자와 또 간호사가 필요하지만 수많은 비인간이 그 수술의 도중과 전과 후에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임소연이 보여준 것은 도나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과 이어진다.



이것이 포스트 휴머니즘이다.

휴머니즘의 인본주의, 결국 인간 중심주의였다면, 포스트 휴머니즘의 영향을 받은 현재의 문화인류학은 인간 중심적 사고를 벗어나, 비인간 존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만이 주체가 아니라 비인간-생물과 도구를 포함한-들과의 연결이 문화를 형성해간다, 공동 행위자라고 보는 것이다.


아, 이 앎이 너무 짜릿하지 않은가.


나는 버섯이 나무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알았으나 송이버섯이 소나무에서 자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자연인들이 숲으로 깊이 들어가 버섯을 채집할 때 그것을 재배할 수 없어서임은 알지 못했다. 애나 칭은 핀란드와 일본, 중국, 미국 을 돌며 버섯 채집인들을 만나는데, 핀란드의 버섯 채집장소에 가서 러시아의 국경과 가깝다는 얘기를 한다. 나는 러시아가 아주 넓은 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내가 비행기 두시간을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를 갔던 걸 떠올려보고 또 핀란드에서도 러시아 국경도 가깝다니, 여기에서 핀란드는 비행기로 열시간 이상을 가야하는데 도대체 러시아란 얼마나 넓은 것인가 갑자기 아득해졌다. 난민들과 전쟁으로부터 피한 사람들이 버섯을 채집하고 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알았다. 사실 아무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이제 자본주의로부터 완전히 언제나 벗어나 있기란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무엇보다,


그동안의 나는 휴머니즘의 영향을 받고 살아온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니 포스트 휴머니즘의 영향권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된 데에는 내가 포스트 휴머니즘을 주장하는 도나 해러웨이, 임소연, 애나 칭을 읽은 경험이 영향을 줬다. 도나 해러웨이의 반려종과 사이보그 언급에서는 당황하고 어려웠지만, 그 후에 임소연을 성형수술로 만나고, 애나 칭까지 버섯으로 만나니, 이제야 비로소 그들이 하는 말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그저 글 한 번 읽는 것으로 금세 이론을 파악할 수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이 모두를 읽어야 비로소 어느 정도 감이 잡히는 것 같았다. 사실, 도나 해러웨이를 집어들었을 때만해도 내가 마주치게 될것이 포스트 휴머니즘일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저 흐름을 따라갔을 뿐이었다. 도나 해러웨이, 임소연, 애나 칭을. 그리고 거기에 포스트 휴머니즘이 있었다.


갑자기, 애나 칭의 책속에서 본 이 문구가 떠오른다.



카오가 물을 가지고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해가 질 무렵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버섯을 따러 가자며 내게 손짓했다. 근처에 버섯이 있었다. 사방이 어두워지고 있는데도 우리는 캠프에서 멀지 않은 바위 언덕을 기어올랐다. 내 눈에는 흙과 가지만 앙상한 소나무밖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양동이와 막대기를 든 카오는 아무것도 없는 땅을 깊이 찌르더니 두툼한 버섯갓을 꺼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하지만 이제 그곳에 버섯이 있었다. - P41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하지만 이제 그곳에 포스트 휴머니즘이 있었다.



이제 어렴풋하게 감을 잡은 나는 다음 도나 해러웨이를 조금 더 가뿐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도나 해러웨이에 더 다가가려고 애나 칭을 읽은 게 아닌데, 순수하게 버섯으로 인류를 얘기하는 애나 칭이 궁금했던 것뿐인데, 애나 칭을 만났더니 도나 해러웨이에게 다가갈 자신이 조금 더 생겨났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하지만 이제 그곳에 자신감이 있었다.


짜릿해.





모든 사람이 자본주의에 의존하고있지만 거의 어느 누구도 이전에 ‘정규직‘이라 불리던 직업을 갖고있지 않다는 것은 우리 시대의 아이러니라 할 만하다. - P25

송이버섯은 인간이 교란한 숲에 산다. 쥐, 너구리, 바퀴벌레처럼 송이버섯도 인간이 만든 환경 문제의 일부를 기꺼이 참아주고있다. 하지만 송이버섯은 유해 생물이 아니다. 송이버섯은 귀한 고급 식재료이며, 적어도 일본에서는 높은 가격 때문에 종종 지구상가장 귀한 버섯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송이버섯은 나무에 영양분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척박한 땅에서도 숲이 조성될 수 있도록 돕는다. 송이버섯을 따라가다 보면 환경 교란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우게 된다. 이것이 환경을 더 훼손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지만, 여하간 송이버섯은 협력적 생존의 한가지 방식을 보여준다.
송이버섯은 글로벌정치경제의 균열도 분명히 보여준다. 지난30년간 송이버섯은 북반구 전역의 숲에서 채집되어 신선한 상태로 일본에 배송되면서 글로벌 상품이 되었다. - P26

나는 경제와 생태 중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종속된다고 보는 방식을 거부하지만, 경제와 환경을 잇는 한 가지 중요한 연결 고리를 먼저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 바로 인간과 비인간 모두를 투자 자원으로 삼아 부를 축적한 인간의 역사다. 이 역사를 통해 고무된 투자가들은 사람과 사물 모두를 소외시켰는데, 여기서 소외란 마치 생명의 얽힘 관계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독립할 수 있는능력을 말한다. 사람과 사물은 소외되는 과정을 거치며 이동하는자산이 되었다. 운송을 통해 거리라는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사람과 사물은 자신의 삶의 세계에서 떨어져 나와 다른 삶의 세계에서교환되는 자산이 될 수 있다. - P29

소나무는 곰팡이를 파트너로 삼아, 인간이 만든 화전에서 번창한다. 소나무와 곰팡이는 환한 빈터와 노출된 무기질 토양을 이용하고자 힘을 합친다. 인간과 소나무와 곰팡이는 스스로를 위해, 그리고 다른 생명체를 위해 동시적으로 주거 환경을 만들어나간다. 그것이 다종의 세계다. - P56

존재 방식이란 마주침에서 창발하는 결과다. 인간을 떠올려보면 이 점은 분명해진다. 버섯 채집은 삶의 방식이지만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특성은 아니다. 다른 생물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소나무는 인간이 만들어낸 빈터를 사용하는 데 도움이 될 버섯을 찾는다. 배치는 삶의 방식을 모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방식을 만들어낸다. 배치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면 다음과 같이 질문하게 된다. 어떻게 모임은 때때로 부분들의 합보다 더 큰 사건happenings‘이 되는가? 만약 진보를 뺀 역사가불확정적이고 다각적이라면, 배치가 그것이 지닌 가능성을 보여줄수 있는가? - P57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23-09-27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하지만 이제 그곳에 자신감이 있었다.

우아.... 이 페이퍼 너무 좋아요! 저도 송이버섯 소나무 옆에서 자라는 거 몰랐어요. 제게 익숙한 버섯은 새송이 버섯인데, 그건 거의 하우스에서 재배되겠죠.

이 두꺼운 책을 읽어내셨다니 너무 대단하십니다. 한다면한다의 다선생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도나 해러웨이도 임소연도, 우리의 앎이 뻗어져나갈 때마다 만나는 사람들이라 더 좋고요.

다락방 2023-10-01 22:22   좋아요 1 | URL
이 책은 정말이지 꼭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어요. 회사 동료도 결국 하루를 몽땅 투자해서 이 책을 다 읽었다고 하네요. 어렵지만 좋았다고요. 인간과 비인간, 자본주의와 그 주변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는 것이 참 좋았어요. 뭐랄까 신랄하게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것도 아니거든요. 그보다는 인간과 비인간의 얽힘과 관계성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보자는 것 같았어요.

단발머리 님이야말로 앎이 뻗어나가도록 다양한 독서를 하시는 분 아니신가요. 늘 기다리고 있습니다, 단발머리 님의 앎의 확장에 대한 글을!! 빠샤!!
 
Who Was Harriet Tubman? (Paperback, DGS, Reprint) Who Was (Book) 117
Yona Zeldis McDonough / Penguin Workshop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른 작가들도 이렇게 쉬운 단어들로 쉬운 문장들을 써주면 얼마나 좋을까.

쉽게 읽혀서 좋고 해리엇 터브만의 일생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해리엇이 첫남편에게 우리 도망치자 했는데 이미 자유의 몸이었던 남편은 이를 거절하고 도망치면 우리 뭐 먹고 살아? 걱정하며 오히려,  너 도망치면 신고할거야,  했다. 그 때부터 해리엇은 남편을 두려워했는데, 나중에 탈출에 성공하고 나서 남편 데리러 갔던 거 너무 충격이다. 가족들 다 데리고 탈출하고 이제 남편도 데려오자, 했던건데, 그렇게 남편 데리러 갔더니 이미 다른 여자랑 결혼해서 살고 있던 부분 …


삶에 있어서 어떤 시간들은 daring 하게도 다른 사람들을 노예의 땅으로부터 탈출 시키는 것이 그녀가 한 일이었고, 그러기 위해서 다른 시간들에는 earn 해야 했다. 내가 이 얇은 책 한 권을 읽으면서 모르는 단어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런데 이 책을 통해 찾아보고 외우게 된 단어가 whipping 이라는 것이 마음이 좀 아프다.


  • 명사 (벌로 가하는) 채찍질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햇살과함께 2023-09-11 1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제가 지난번에 해리엇 터브먼 관련 책으로 읽은 번역본의 원서군요!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쉬운 영어책 좋아요.

다락방 2023-09-11 15:09   좋아요 1 | URL
쉬운 영어책은 사랑입니다. 이 얇은 책을 읽고도 성취감을 느꼈어요. 흑흑. 30권 얼른 채워 영어 박사 되겠습니다. 빠샤!!

망고 2023-09-11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whip 단어를 인디아나 존스 게임하면서 알게 되었던거 같습니다ㅋㅋㅋㅋㅋ어릴때라 한글화가 안 되어 있어서 사전 찾아가며 게임을 했었어요ㅋㅋㅋ

다락방 2023-09-11 15:11   좋아요 0 | URL
인디아나 존스 게임이란 것도 있나요? 저는 게임쪽은 정말이지 전혀 모릅니다. ㅎㅎ
마침 저는 어제 최근 개봉한 인디아나 존스 영화를 엄마 아빠와 함께 보았습니다.

해리엇 어릴 때에도 채찍질 당했는데, 아니 어떻게 아이들에게도 채찍질을 하나요. 진짜 인간들도 아니야 ㅠㅠ

망고 2023-09-11 15:37   좋아요 0 | URL
90년대 하던 고전 게임인데ㅋㅋㅋㅋ영화를 토대로 만들어졌어요 그 당시 어렸던 저는 너무 신기하고 재밌어서 사전을 옆에 끼고 열심히열심히 게임을 하다가 엄마한테 혼났다는 새드 엔딩ㅜㅜ
그나저나 역시 다락방님은 효녀^^ 부모님과 함께 영화도 보시고 다정하신 분인 듯 합니다ㅎㅎㅎ

사람한테 채찍질은... 너무 끔찍해요ㅠㅠ 하필 비극적인 상황인데 다락방님은 새로운 단어를 습득하게 되어서 기억엔 오래 남는 효과겠지만 암튼 슬프네요ㅠㅠ

다락방 2023-09-12 13:52   좋아요 0 | URL
사전 끼고 게임하던 어린 망고는 이제 원서를 막 읽을 수 있는 어른 망고가 된 것이로군요! 사전 찾는 건 아이나 어른이나 너무 멋진 것 같아요. 저도 사전 좋아해요. 지금은 꽂아두기만 하고 보진 않지만 말예요. 하하.

채찍은 사람한테든 동물한테든 끔찍한데, 애초에 그 끔찍한 걸 누가 만들 생각을 한걸까요? ㅠㅠ
 
너라는 생활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집의 모든 단편들은 '너'를 관찰하며 쓰여진다. 


나와 처음 만난 너, 길고양이에게 신경을 쓰는 너, 나를 또 만나길 원하는 너, 나와 함께 살기를 원하는 너, 오지랖 넓은 너,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너, 혹은 언제나 할 말을 하는 너, 분위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너, 하고자 하는 바를 하려는 너 등등. '나'는 그런 너와 함께 살며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할 때도 있고 불만을 대신 드러내줄 때도 있으며 얹혀사는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한다. 배려하고 존중해줘야 하는, 호의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내'가 있고, 싫지만 알겠다고 말해야 하는 '내'가 있다. 어쩔 수 없이 너를 만날 수밖에 없고 어쩔 수 없이 너를 견뎌내야 하고 어쩔 수 없이 너를 참아내야 하는 내가 드러나는 건, 모두가 '너'를 보며 말한 것이 '나'이기 때문이다. '그런 너'를 말하는 순간 드러나는 건, '너가 그런 사람이다'가 될 수도 있겠으나, 더불어 '그런 너'를 말하는 '이런 나'이기 때문이다.


왜 그걸 견디느냐고 진작에 헤어졌어야 하는데, 그걸 왜 헤어지지 못하냐고, 왜 그런 취급을 당하고도 그 사람 옆에 있냐고, 독자의 입장에 있던 내가 끼어들어 말을 얹으려다가, 그때야 알았다. 아, 책속 화자는 '너'에 대해 말하지만, 나는 책속 화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고있구나, 하는 것을. 그제야 선명해진다. '너'에 대해 말하는 것은 결국 '나'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는 것.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가 그 사람을 말해주는 것처럼,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가 그 사람을 말해준다. 누누이 얘기하지만 어떤 것을 욕으로 쓰느냐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준다. 태어날 때부터 어쩔 수 없었던 나의 성별을 가지고 욕으로 쓰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그걸 흠으로 보고 있다는 깊은 여성혐오가 내재되어 있음이 드러나는 것처럼, 상대를 비하하는 그 모든 지점에는 그렇게 보는 '내가' 있는 거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같이 어울리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보고도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자신의 소설을 빌어 말한 적이 있다. 그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당신에 대해 어떤 것을 말해준다고 말이다. 


“당신이 그런 쓰레기한테 매력을 느낀다는 사실이 당신에 관해 뭔가를 말해준다고."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다시 올리브》, p.265


이 모든 것이 나에 대해 말해주지만 그러나 이것들만이 나에 대해 말해주는 것만은 아니다. 너에 대해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너를 어떻게 보고 너를 좋아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도 나에 대한 것은 드러난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느냐로 내 결핍이 드러나는 것처럼,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으로부터 그리고 결국 누구를 좋아하고 누구와 헤어지고 누구의 옆에 머무르느냐로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보여주는 게 아니라 보여지는 것.



너에 대해 말하는 이 소설에서 말하는 나를 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지만, 그런데, 만약, 그들에게 주어진 환경이 지금과 달랐다면 그때도 '그런 너'를 보는 '이런 내'가 있을까는 완전히 다른 문제가 된다. 그들이 만난 곳이 재개발을 앞둔 곳이 아니었다면? 광장이 생긴다고 해놓고서 개인 소유지가 되는 곳이 아니었다면? 언덕을 올라야만 비로소 나오는 집이 아니었다면? 다시 말해 그들이 청담동에서 만났다면, 대치동에서 학교를 다녔다면, 그래도 '그런 너'를 견디는 '이런 내'가 있을까? 애초에 '그런 너'가 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이런 나'일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너를 좋아하는 것 혹은 지금의 너와 헤어지는 것, 이 모든 것에도 나의 공간적 배경은 그리고 그것이 상징하는 나의 사회적 계급은 결코 나랑은 그리고 너랑도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친구의 사무실이 오픈했을 때 냉장고를 사달라는 말에 당황하고 그리고 그것을 할부로 결제하면서, 그런데 그 친구는 내 친구가 아니라 네 친구잖아, 같은 생각을 하면서, 당장 떠올릴 수 있는 건 '그런 사람하고 왜 함께인거야, 헤어져'이지만, 그런데 애초에 냉장고쯤은 아무렇지 않게 사줄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면, 그때도 그 상황에 불만과 갈등이 또 쌓이게 될까? 너를 말하는 내가 보이는 이 소설은 결국 너라는 계급을 가진 나라는 계급의 사람을 드러냄에 다름 아니다. 가난한 동네에서 돈이 없어 점점 더 외곽의 집을 구해야만 하는, 좋은 집이라서가 아니라 어떻게든 좋은 집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해야만 하는 환경에서 사는 이런 계급 속의 너와 나, 그런 우리. 내가 너를 좋아하고 혹은 싫어하는 지극히 내 주관적이고 내 기준이고 내 감정인듯한 이 행위가 그런데 정녕, 내 고유의 나만의 온전한 선택이랄 수 있을까? 


이 모든 '내' 감정은 결국 내 계급이 끼어들어 하는 일이다.

계급이 달랐다면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완전히 다르게 시작되었을 것이다. 아니, 아예 쓰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3-08-11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에 대해 말하는 것은 나에 대해 말하는 것
확 와닿는 구절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에 대해 말하는건 언제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거 많이 생각해요.그 마음을 딱 짚어주시네요. 그러면서 냉장고를 쉽게 결제할 수 있는 경제력이었다면 아마도 나는 아주 쿨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아침에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글입니다. 좋아요. ^^

다락방 2023-08-11 13:43   좋아요 0 | URL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좋은 사람이 되기가 더 유리하잖아요. 너도 가난하고 나도 가난한데 그와중에 너가 조금 더 가난할 때 혹은 내가 조금 더 가난할 때 여러가지 불만이 어쩔 수 없이 생겨버리는 것 같아요. 애정으로 시작한 관계도 자주 마주치는 빈곤함앞에 무너지기 일쑤이고요. 더 많이 가졌다면 다른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겠죠.

맞습니다, 바람돌이 님. 어떤 사람에 대해 말할 때, 그 사람을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분노하거나 존경하거나 등등 그 모든 것들에 대해 말할 때는 바로 나라는 사람에 대해 드러나는 것이지요.

미미 2023-08-11 1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이 글 너무 좋네요!
저는 이 소설이 말하는 바가 무겁고 복잡하게 다가와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또 한 편의 에세이를 써주셨군요.

다락방 2023-08-11 13:44   좋아요 1 | URL
백자평 쓰려다가 백자평 안에 담기엔 조금 길 것 같아 썼는데 길어져버렸네요. 잘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미미 님. 이게 제가 8월에 완독한 첫 책이네요 ㅠㅠ

단발머리 2023-08-11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오늘 리뷰 좋아요, 다락방님....
저는 딱 설명할 수는 없는데, ‘확률적 운명론‘도 생각나고요. 뭐든지 다 정해진 것 아닌데, 무언가는 정해져 있는 것 같고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그런 것 같고요.
역시나!! 잘 읽고 갑니다^^

다락방 2023-08-11 13:46   좋아요 0 | URL
무언가 정해져있는 게 만약 달랐다면, 그러니까 다른 식으로 정해졌다면 또 많은 다른 이야기들이 생겨나겠죠. 제가 지금보다 더 부잣집에서 태어났다면 아마 제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나 방식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이를테면 회사를 다니는게 아니라 경영자라면 저도 어쩔 수 없이 일주일에 한두번쯤은 골프를 치러 다닌다거나 뭐 그런 식으로 생활방식 같은것들이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그러면 만나는 사람들도 달랐을 것이고 그 때 피어나는 애정이나 혹은 불만 역시도 또 다른 형태이겠죠. 그렇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제가 이렇게 태어나는 걸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지금 이모습이고, 지금 이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이 내 운명인 것일테고 … 쓸수록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하하하하하.

책읽는나무 2023-08-11 1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다른 때보다 짧지만 강력한 한 방이 와 닿네요.
전 아직 이 소설을 읽진 않았지만, 다락방 님의 관점을 기억하며 읽게 될 것 같아요. 안그랬음 제가 좋아하는 작가라, 맞어 맞어! 하며 읽었을 것 같아요. 궁금해서 더 책을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글입니다.^^

다락방 2023-08-11 13:47   좋아요 1 | URL
책나무 님, 읽어보세요. 짧은 이야기들이라 금세 읽을 수 있는데 제가 너무 피곤에 쩔어 있어서 읽는데 오래 걸렸네요. 읽으면서 저는 저에 대한 반성도 했습니다. 마땅히 그러해야 할 것을 내가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았나, 같은 거 말이지요.

달자 2023-08-12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희진 선생님이 이 책을 소개할 때 하신 말씀과도 일맥상통하는 리뷰인 것 같아요! 다락방님의 8월의 첫 책 첫 리뷰 잘 읽었습니다 희희

다락방 2023-08-14 08:36   좋아요 1 | URL
정희진 선생님의 이 책에 대한 언급 때문에 이 책을 읽긴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게 좋진않은데?‘ 라는 생각이 들어서 역시 선생님은 나랑 다르시구나 싶었고요. 물론, 다름은 너무나 당연하지만요.
 
법정에 선 페미니스트 - 페미니스트 법 이론
낸시 레빗.로버트 베르칙 지음, 유경민 외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전에 한 남자사람에게 그런 애길 한 적 있다.

페미니즘 내에서도 여성들은 수많은 다른 입장들을 비판하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싸우며 더 나은 길을 찾으려고 하는데, 페미나치다 꼴페미다 하면서 단지 사랑받지 못하는 여성들이라고 생각하는 남성들은 크게 도태될 거라 생각한다고. 너무 안일하게 살고 있다고 말이다. 한쪽은 계속 고민하고 그래서 여러 이론들을 주루룩 내세우며 세상을 보는데, 그런데 그런 여성들에 대해 손가락질만 하다니. '내 기분이 나빠서' 그게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고 그 자리에 멈추는 거, 그건 멈춤이 아니라 뒷걸음질이다. 가만 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계속 들여다보면서 앞으로 가고 있으니까.


이 책, 《법정에 선 페미니스트》는 페미니즘의 수많은 이론들을 법에 적용시켜 어떤 판결이 있었는지 또 사례들을 가지고 나와 보여준다. 오타가 좀 많아서 별 넷 줬다가, 그러나 로 대 웨이드의 그 뒷이야기를 내가 이 책이 아니면 어떻게 알았겠는가 싶어 다시 별을 올렸다.


이 책의 결론 부분에서 '낸시 레빗'과 '로버트 베르칙'은 여성의 교육에 대해 언급한다. 한 소녀를 교육시키는 것은 한 가정을 교육시키는 것과 같고, 그것은 결국 세상을 바꿀 커다란 힘이라고.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세상의 많은 어린 여자들이 교육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여성성 신화》의 베티 프리단도 그 책의 결론 부분에서 교육의 중요성을 얘기했었다. 여자들아, 공부해라. 신부수업 같은 거 말고, 남자들이 대학에서 받는 그런 공부, 그런거 해라! 하고 말이다. 그러니 교육의 중요성은 계속 강조해도 되리라.


상대적으로 남성들에 비해 교육을 덜 받는 어린 여성들의 교육에 대한 중요성이야 더 말해 뭐하겠는가. 맞아, 그래, 이게 답이다. 공부하자!, 공부시키자! 이러다가, 마지막으로 언급된 경제문제에서 나는 뒤통수를 맞는다. 세계의 빈곤에 대해서 듣거나 읽게 되면 그 때는 그 심각성을 인지하다가도 돌아서면 잊곤 한다. 아마도 나는 세계의 빈곤을 언급할 때 들어가는 부류의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이 책에서 또 언급된다. 


경제 발전 


이러한 문제들 아래에는 경제 자원의 문제가 있다. 여성들의 가족과 경제 상황과 관련된 선택을 제한하고 강제 노동, 신체적 학대, 지적 빈곤 등의 수모를 견디도록 하는 것은 여성의 상대적인 경제 자원 부족이다. 그러므로 이제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세계경제 발전을 여성해방의 열쇠로 강조하는 것은 놀랍지 않다.

경제 발전에 대한 강조는 개발도상국에서 "평등한 권리"는 그 자체로 대부분의 여성들의 삶을 개선시킬 가능성이 적다는 인식을 나타낸다. 한 가지 이유는 극빈자들 사이에서 권리에 대한 약속은 물질적 재화에 대한 약속만큼 즉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 나갈 수 없고 나가는 경우 돌팔매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인도 과부에게 균등한 임금의 권리가 어떤 이익을 가져다주는가? 매일 10시간씩 식사를 준비하고 물을 모으는 방글라데시 소녀에게 교육권은 무엇인가? -p.307


마사 누스바움은 어떤 본질적인 활동을 하거나 즐길 수 있는 실질적인 능력을 바탕으로 여성의 복리를 측정하려고 하는 "역량 접근법"으로 불리는 모델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다. 역량 접근법은 현재 유엔 개발 프로그램의 인간 개발 보고서에 의해 정기적으로 채택되고 있다. 누스바움 교수의 최소한의 역량 목록에는 음식과 보금자리를 얻고, 자신의 신체를 통제하며,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일자리를 찾고, 재산을 소유할 수 있는 능력이 포함된다.

목록은 극도의 가난뿐만 아니라 여성 생식기 절단 및 인신매매와 같은 다른 많은 악습으로부터의 보호 역시 제안한다. 이 모델의 국제주의적 관점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결국 서양의 전통에 바탕을 둔 보편적 권리의 개념으로 되돌아간다. 그러한 접근법이 여성의 복지에 대한 개선된 척도에 해당되는지, 아니면 특정한 문화적 관점을 부적절하게 채택하는 것인지 여부는 향후 논쟁의 대상이 될 것이 분명하다. -p.311


책을 읽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것도 그 이유중 하나인 것 같다. 

돌아서면 잊게 되는 것들을 계속 상기하기 위해서.

모르면 함부로 말하기 너무 쉽다. 모르면 욕하기 쉽다. 그러나 알면 그렇지 않다. 알기 위해서, 잊는 일들을 다시 꺼내오기 위해서도 책은 읽어야 하는 것이다.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쪽이 행동에 더 가까워진다고 나는 믿는다.


여러분, 책을 읽자. (사실 여기에서 이 리뷰 읽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말은 필요 없을 것이고, 이런 말이 필요한 사람은 이 글을 볼 리도 없겠지 …)



이번달도 완독했다. 만세! 내가 짱이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은하수 2023-06-28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른 시작해야겠어요
반납일이 목줄을 당기네요!

아... 결국 돈인가요..
사랑도 그렇고 교육도 그렇고 결국 돈으로 귀결되는 ...

다락방 2023-06-28 09:03   좋아요 1 | URL
저 이 책 시작하면서 <긴즈버그의 말> 같이 읽으려고 꺼내두었는데요, 이 책을 다 읽고 덮으면서는 ‘장 지글러‘의 책 중 아무거나 다시 한 권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은하수 님, 화이팅 입니다. 뽜이팅!!

잠자냥 2023-06-28 08: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바로 그런 생각에서 먼 나라의 소녀들*만* 콕 찝어서 후원하는 것입니다. 흠흠!

다락방 2023-06-28 09:02   좋아요 4 | URL
오 잠자냥 님은 고양이 단체에도 후원하시지 않나요? 평소 관심있는 분야에 사람들은 후원하는 것 같거든요.
저도 여성단체들과 아이들을 위한 곳에만 후원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소녀들이여, 우뚝 서자!!

잠자냥 2023-06-28 11:34   좋아요 3 | URL
괭이도 하고 인간 소녀도 하고… 학교 졸업시킨 소녀도 있습니다. 그들은 날 모르지만 괜찮아!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6-28 09:18   좋아요 4 | URL
소녀들아 무럭무럭 자라서 잠자냥 님의 기운을 받고 강인한 여성이 되도록 하자. 빠샤!!

단발머리 2023-06-28 1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고많으셨어요, 다락방님! 완독 축하드립니다.
처음에 제목이 법 이론이라 딱딱할 줄 알았는데(사실 딱딱함), 법의 여러 사례들이 얼마나 우리의 삶과 연관되어 있나 생각하니 법도 놓치면 안 되는 부분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오늘부터 파티!!!

다락방 2023-06-29 08:42   좋아요 1 | URL
저는 마지막 부분에서 소녀의 교육을 말하고 경제문제를 언급하는게 참 좋더라고요. 교육이 답이라는 건 단발머리 님 글 읽고 아 그렇게 나오겠구나 알고는 있었지만, 책 본문을 통해 확인하는 건 또 그대로 짜릿하더라고요. 역시 교육이 답입니다! 저는 경제문제 언급에서 또한번 생각했어요. 나는 이대로 살아도 좋은가, 다른 식의 삶을 살아야하는건 아닌가 생각하게 됐어요. 예의 장 지글러 생각이 나면서 …

어제는 말씀대로 파티했어요! 책 끝내서 파티는 아니고, 아버지 퇴원하셔서 파티했어요. 비록 아버지는 못드시는 음식이 너무 많고 술도 못드시지만 ㅋㅋ 저는 와인 따라놓고 파티했어요! 껄껄.

미미 2023-06-28 1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하려던 말을 단발머리님이
다 하셨네요ㅎㅎ 다락방님 이번 책도 넘 좋았습니다!! 저도 오타 때문에 몇번 당황했지만 그것들을 상쇄할만한 지점들이 더 많았죠.
역사이래 교육받지 못했던 여성들로 인한 전지구적 손해가
어마어마했을거예요. 책을 읽자!
공부를 하자! 아자아자!!

다락방 2023-06-29 08:44   좋아요 2 | URL
네, 미미 님. 뒤에 후기 보면 번역 부분에서도 그렇고 공동저자 모두가 굉장히 애를 써서 책 한 권으로 만들어낸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타는 수시로 툭툭 튀어나오더라고요.
미미님 말씀처럼, 오래전부터 남성에게 허락된 교육만큼 여성에게도 똑같이 허락됐더라면 세상은 지금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아 너무 억울하고 원통하네요 ㅠㅠ

미미님, 공부합시다. 지금처럼 우리는 계속계속 공부합시다. 직접적인 지원도 좋지만,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어른 여성도 나름의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합니다. 공부합시다. 아자!!

독서괭 2023-06-29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아서면 잊게 되는 것들을 계속 상기하기 위해서. -> 정말 공감합니다!!
이 책, 너무 비싸서 사진 않고(그렇게 두껍지는 않던데 왜 이렇게 비싼 걸까요?;;) 빌려왔습니다.
로 대 웨이드 판결 뒷이야기 궁금한데 그 궁금함을 동력으로 읽어보려고 다락방님이 언급하신 글 일부러 안 읽었고요ㅋㅋ
다락방님 짱짱짱!!

다락방 2023-06-29 14:25   좋아요 1 | URL
아마도 역자가 여럿이라 책이 비싼게 아닐까 싶지만 사실 왜 비싼지 저도 잘 모르겠고요. 책이 너무 비싸서 같이읽기 도서로 선정하기 좀 망설여지더라고요. 벽돌책도 아닌데 ㅠㅠ
독서괭 님도 빌려오셨군요. 독서괭 님의 독서를 응원합니다!! 그리고 로 대 웨이드 진짜 너무 대충격 ㅠㅠ
마음 다잡으세요. 하아-

독서괭님 짱짱짱!!!!!
 
페미니즘, 한계에서 시작하다
우에노 지즈코.스즈키 스즈미 지음, 조승미 옮김 / 문학수첩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고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하던 차, 도서관에 갔는데 눈에 띄어 빌려왔다. 그러나 읽지도 못했는데 반납기한이 되었고, 반납하러 들른 도서관에서 아무데나 펼쳤는데, 거기엔 이 편지 대화의 참여자중 한 명인 '스즈키 스즈미'의 일화가 나와 있었다. 본인이 10대 시절 브루세라로 일한 경험에 대한 것이었다. 브루세라는 '여고생이 교복이나 속옷을 팔고 성인 남성이 사는 행위(p.18)'를 말하는데, 그런 일이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걸로 돈을 번 당사자가 바로 이 책에서 말을 하고 있는 거라니. 나는 재대출을 해 기어코 이 책을 다시가져왔다.


이 편지대담의 한 명인 '스즈키 스즈미'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작가인데, 10대에는 브루세라, 20대에는 AV 배우, 30 대에는 유흥업에 종사한 경험이 있다. 대학에서 석사까지 마쳤고 기자로도 활동했다는 작가의 이력을 보고, 아 어렵게 살아 성매매를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도 가고 전문직도 갖게 되었구나, 라고 마음대로 추측했다. 그러나 읽을수록 이 작가의 정체성은 놀라운 것이었다. 우선 그녀는 전혀 가난과는 거리가 먼 집에서 태어났고 부모님은 지식인들이었다. 엄마는 아동문학 교수이기도 했는데, 엄마는 성을 판매하는 여성들을 혐오하면서 그러나 누구보다 꾸밈에는 열성적이었다고 한다. 거기에서 오는 엄마의 자부심이 있었는데 -나는 지적이고 이렇게나 남성에게 어필할만큼 매력적이지만 그러나 성을 팔지는 않아- 그런 엄마의 모순을 직면하는 것이 스즈키 스즈미에게는 도대체 이해불가였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인것 같았다. 그러면서 내심 '이래도 계속 나를 사랑할텐가' 하는 마음이 그녀로 하여금 엄마가 가장 경멸하는 여성, 성을 파는 여성이 되게한 것이다.

이런 심리를 가질 수 있고 그게 바로 스즈키 스즈미 라는 것을 알겠지만, 내가 가질 순 없는 사고방식 이었다. 가장 사랑받고 싶은 상대에게 사랑을 확인받고 싶고 또 반항하고 싶은 마음으로 성산업으로 들어간다? 누군가는 어딘가에서 그렇게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내게는 다소 충격이었다. 사랑을 확인하고 싶거나 반항하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본능이겠으나 그것이 자기파괴로 이어지는 건, 글쎄 나로서는 선택하지 않을 방법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건, 스즈키 스즈미에게 성산업에 들어가는것이 자기 파괴라는 인식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내가 그것을 굳이 자기파괴라고인식하는 사람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남자들이 성산업에 돈을쓰네? 좋았어, 그 돈 내가 벌어주게쒀! 이런 마인드가 그녀에게 있었던 거다.

그러나 십대에 자신이 벗었던 팬티를 뒤집어쓰고 자위를 하는 아저씨를 본 이상 그녀가 남자에게 어떤 환상이나 로맨틱한 감정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은 뻔한 일이다. 그녀는 그 때 그 아저씨를 목격하고 남자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환멸을 느끼며 그들이 어떤 식으로든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것에 절망을 느낀다. 그녀는 경제활동이 가능하다고 하니 성산업으로 돈을 벌었지만, 그러나 그 일들을 해오면서 결코 인간으로 보이지 않아야 할 모습들을 그들로부터 마주치게 됐고, 남자라는 성별에 대해 어떤 기대도 품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우에노 지즈코에게 연신 묻는다.

"어떻게 남자들에게 절망하지 않을 수 있는가?"

저번 편지 첫머리에 우에노 님이 "밤일을 하면서 치러야 할 수업료 중 하나는 남자를 모멸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지적하신 부분이 있는데, 이번 연재에서도 그렇고 여태까지 제가 집필 활동을 해오는 중에도 점점 더 강하게 의식한 문제였습니다. 제 성격이나 밤일의 특성보다는 성장 배경과 관련된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브루세라 가게에서 매직미러 너머로 목격한 한심스러운 남성상이 언제나 제 남성관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제 마음속 어딘가에는 줄곧 ‘저런 동물하고는 서로 이해할 수도 없고 평등해지고 싶지도 않아‘라고 경멸하는 마음이 있습니다.-p.303
저는 지금도 남자, 하면 AV의 섹스 설정이나 여자가 남자의 성기를빨고 남자가 사정하는 장면이 떠오르면서, 과연 남자가 제가 진지하게 마주할 수 있는 존재일지 반쯤 진심을담아서 생각합니다. -p.361

1년동안 우에노 지즈코와 스즈키 스즈미의 오고 가는 편지들을 통해 스즈키 스즈미의 어린 시절과 그리고 지금에 이른 인생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그러면서 그녀 안에 있었던 엄마에 대한 미움과원망 혹은 그리움들을, 또 그녀 안의 약함 혐오를 우에노 지즈코는 지적한다. 스즈키 스즈미도 충분히 오래 생각해오고 나름의 생각의 틀을 잡고 있었다면, 우에노 지즈코는 훨씬 더 오랜 시간 이 세상을 살고 사람을 만나오고 또 공부하며 가졌던 연륜과 경험으로 그녀에게 어떤 것이 잘못된 것인지 그리고 어떤 것이 그녀의 장점인지에 대해 얘기해주는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밑줄 그은 부분들은 대부분 그러므로 우에노 지즈코의 것이었다.

우에노 지즈코의 책을 여러권 읽으면서도 딱히 좋다고 말하게 될 어떤 지점을 찾지는 못했는데, 그런데 그녀의 책을 읽을 때마다 매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게 된다. 역시 이렇게나 이름을 알리게 된 여성학자는 괜히 된 게 아니구나 싶은 거다. 일례로 매력 자본에 대해 반박하는 것이라든가.


솔직히 저는 ‘에로스 자본‘ 개념에 비판적입니다. 에로스 자본은 사회학자 캐서린 하킴의 개념인데, 이 개념은 ‘문화 자본‘, ‘사

‘회관계 자본‘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와서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학적으로 보면 틀렸어요. 자본이란 건 원래 이익을 만들어 냅니다. 꼭 경제 자본이 아니어도, 가령 문화 자본(학력이나 자격)이나 사회관계 자본(연줄)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자본이더라도 획득하여 축적할 수 있는 데 반해 에로스 자본은 노력으로 획득하는 게아니고, 또 축적할 수 있기는커녕 나이를 먹으면서 줄어들 뿐입니다(노력에 의해 에로스 자본을 획득할 수 있다고 보는 이도 있지만, 이 노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게다가 일방적으로 가치를 평가합니다. 평가 기준이 오직 평가자에게만 달렸죠. 그러니까, 자본의 소유자가 그 자본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재화를 우리는 자본이라 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사적 소유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에로스 자본의 귀속처(즉 여성)가 에로스 자본을 소유하는 소유 주체인지 아닌지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그런 걸 자본이라고 이해해 봤자 혼동만 초래할 뿐 비유 이상의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이 개념이 나타내는 바는 젊고 예쁜 여성이 득을 본다고 믿는 통속적인 지식을 그저 학술적 언어로 둔갑시킨 것일 따름이죠. 자본이라고 칩시다. 그럼 젊음과 아름다움은 정말 경제가치를 낳는 것일까요? 외모의 가치가 사회학적 탐구 대상이 되고 나서부터 미인은 경제적으로 유리하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습니다. 미인 대회 우승자는 유리한 취업 기회, 결혼 기회가 많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에로스 자본'에는 좀 더 노골적인 함의가 있습니다. 대가가 따라오는 성의 시장이란 게 이미 성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의 시장에 참가하게 된 여성이 에로스 자본을 소유한 자본가일까요? 웃기지 좀 말라고 하고 싶군요.

예전에도 지금도 변함없이 성의 시장에는 거대한 경제자본이 움직이고 있고, 여기에서 여성들은 '에로스 상품'일 따름입니다. 알선없자 없이 프리랜서로 독립적으로 일하는 성노동자Sex Worker라면 어떨까요? 자영압자라면, 자신의 에로스 자본을 소유했고 동시에 노동자니까, 자기 결정으로 자본을 처분할 수 있습니까? 예컨대 학력이나 IT 기술과 같은 문화 자본과 마찬가지로 시장에 자신을 유리하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스즈미 씨가 편지에서 적었듯 "강제로 부여되고 그다음에는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간 것", "의지하고 상관없이 갖고 있는 것"을 자본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p. 32~33



우에노 지즈코는 중요한  언급을 몇 번이나 하는데, 


-언제고 그만둘 수 있는 자리에서 성산업을 선택하는 것이 그 사람의 자유일 수 있지만, 그 사람이성산업에 있는 여성들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

-타인에 의해 결정되는 나의 에로스 자본은 결코 자본이 되지 못한다는 것

-성매매가 여성에게 경제행위인 곳에서는 권력은 남성에게 있다는 것

-성매매 에 대한 지불은 생식에대한 책임을 지지않는 값을 포함한다는것


등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스즈키 스즈미의 논문 <AV 여배우의 사회학> 도 읽어보고 싶은데 국내에 번역되어 나와있진 않은 것 같다. 스즈키 스즈미는 자신의 자유로 그 직업을 선택했다고 하는데, 그 직업을 선택해도 되겠느냐는 다른 사람들의 물음에는 이렇게 답한다고 한다.


"AV 배우를 하다가 은퇴할 수는 있어도 ‘AV 배우 출신‘이란 딱지로부터는 은퇴가 안 된다" -p.79


참 이상한 것은, AV 배우 출신에겐 딱지가 붙는데 그걸 구매하고 관람하는 수많은 남자들에게는 왜 아무런 딱지도 붙지 않는가이다. 

하여간, 이세상이 진짜 똥이다. 특히, 여성들에게.

지난달에는 《겐다이시소代思想》지에 실릴 대담에서 저와 비슷한 세대인 사회학자 기도 리에씨와 우리 세대의 페미니즘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대담에서 저는 "어떤 측면에서 보면 내가 강제로 부여받았는데 나중에는 나한테서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느끼는 내 여성으로서의 상품 가치, 즉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가 갖게 된 상품가치, 이 가치와 더불어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또 여성으로서의 상품 가치가 내게서 떨어져 나간 뒤에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이야기했습니다. 기도씨는 "우리는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 우리의 페미니즘을 사용할 수있다"고 답했고 그러면서 둘이서 한껏 고양됐어요. 상품 가치를 강제하거나 강요하는 사회의 근원적인 부분을 논했다기보다는, 제가 성 상품화 현장에서 느낀 관점에서 이런 사회 현실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상품 가치가 있는 몸을 가졌다가 이제 상품 가치가 있는 몸이 아닐 제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남을지그런 이야기도 했고요. (스즈키 스즈미) - P22

솔직히 저는 ‘에로스 자본‘ 개념에 비판적입니다. 에로스 자본은 사회학자 캐서린 하킴의 개념인데, 이 개념은 ‘문화 자본‘, ‘사
‘회관계 자본‘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와서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학적으로 보면 틀렸어요. 자본이란 건 원래 이익을 만들어 냅니다. 꼭 경제 자본이 아니어도, 가령 문화 자본(학력이나 자격)이나 사회관계 자본(연줄)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자본이더라도 획득하여 축적할 수 있는 데 반해 에로스 자본은 노력으로 획득하는 게아니고, 또 축적할 수 있기는커녕 나이를 먹으면서 줄어들 뿐입니다(노력에 의해 에로스 자본을 획득할 수 있다고 보는 이도 있지만, 이 노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게다가 일방적으로 가치를 평가합니다. 평가 기준이 오직 평가자에게만 달렸죠. 그러니까, 자본의 소유자가 그 자본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재화를 우리는 자본이라 하지 않습니다. - P32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사적 소유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에로스 자본의 귀속처(즉 여성)가 에로스 자본을 소유하는 소유 주체인지 아닌지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그런 걸 자본이라고 이해해 봤자 혼동만 초래할 뿐 비유 이상의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이 개념이 나타내는 바는 젊고 예쁜 여성이 득을 본다고 믿는 통속적인 지식을 그저 학술적 언어로 둔갑시킨 것일 따름이죠. 자본이라고 칩시다. 그럼 젊음과 아름다움은 정말 경제가치를 낳는 것일까요? 외모의 가치가 사회학적 탐구 대상이 되고 나서부터 미인은 경제적으로 유리하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습니다. 미인 대회 우승자는 유리한 취업 기회, 결혼 기회가 많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에로스 자본‘에는 좀 더 노골적인 함의가 있습니다. 대가가 따라오는 성의 시장이란 게 이미 성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의 시장에 참가하게 된 여성이 에로스 자본을 소유한 자본가일까요? 웃기지 좀 말라고 하고 싶군요. - P32

예전에도 지금도 변함없이 성의 시장에는 거대한 경제자본이 움직이고 있고, 여기에서 여성들은 ‘에로스 상품‘일 따름입니다. 알선없자 없이 프리랜서로 독립적으로 일하는 성노동자Sex Worker라면 어떨까요? 자영압자라면, 자신의 에로스 자본을 소유했고 동시에 노동자니까, 자기 결정으로 자본을 처분할 수 있습니까? 예컨대 학력이나 IT 기술과 같은 문화 자본과 마찬가지로 시장에 자신을 유리하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스즈미 씨가 편지에서 적었듯 "강제로 부여되고 그다음에는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간 것", "의지하고 상관없이 갖고 있는 것"을 자본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우에노 지즈코) - P33

스즈미 씨가 경험을 돌아보며 단기간 밤일로 파격적으로 돈을 벌 수 있었다고 쓴 적이 있는데, 아마도 그다음에 평생 따라다닐 대가를 생각하면 저는 이 거래가 딱히 공정하지도 않다고 봅니다. 밤일은 생각 이상으로 오랫동안 여성의 이후 인생에 영향을 미치니까요. - P34

결혼 못 하는 개그맨의 상징인 그(개그맨 오카무라)가 심야 라디오 방송 <올나잇 니폰>에서 입을 잘못 놀렸는데요. "코로나로 인해 유흥업소를못 가서 괴롭다"는 청취자의 고민을 듣고 "코로나가 진정되면 미인들이 단기간에 돈을 벌기 위해 석 달 기간 한정으로 유흥업소에 많이 올 것이다"라고 말해버렸죠. 이에 항의해 그의 퇴출을 요구하는 서명 운동이 벌어진 건 알고 계실 겁니다.
개그맨이 직관적으로 한 말은 종종 핵심을 찌릅니다. 유흥업에 대해 이리 쉽게 이해하도록 해주는 말도 없을 겁니다. 이 발언을 통해 우리는 유흥업이 여성이 단기간에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인 동시에, 여성들에게 다른 선택 사항이 있다면 거기서 빠져나갈 업종이라는 점, 여성이 환영하지 않는 직종이라는 점을 알 수있습니다. 또 고객 남성들이 이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는 점도 깨달을 수 있죠. 그런데 개그맨이 말했듯 미인이 석 달간 유흥업소에서 일했다고 칩시다. - P35

나중에 그 미인은 이력서에 생긴 공백을 어떻게 설명할까요? 실업 중이었다며 침묵할까요? 제가 말하고 싶은 바는 간단합니다. 성노동Sex Work 은 여성에게 경제행위입니다. 대가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여성들은 결코 성노동을 하지 않을 겁니다. 여기에는 아무런 수수께끼가 없습니다. 한편 남성 고객들은 대가를 지불하는 소비자입니다. 그들은 대체 뭘 사고 있는 것인가? 자기들이 사고 있는 것이 돈을 대가로 해서 얻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속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남성들이 그 찝찝함을 상대 여성에게 전가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때남자들의 가장 강력한 변명이 되어주는 게 바로 여성의 자기결정 입니다. (우에노 지즈코)
- P36

스즈미 씨는 사회학자니까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의 잠재 능력에 관한 이론을 알겠지요? 한 개인의 잠재 능력은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자원이 얼마나 적고 많은지뿐만 아니라 기회 집합의 크기로 결정된다고 보는 이론입니다. 즉 선택할 수 있는 게 많으냐적으냐 하는 거죠. 선택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 유흥업에 종사하는 여성과 그것 말고도 선택할 게 있어서 언제든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는 여성은 잠재 능력에서 차이가 납니다. 높은 잠재능력을 가진 여성들이 성 산업에 종사하는 자신의 직업을 자기선택이라 하고 자기 일에 자긍심을 갖고 있다면서 전문가주의를 거론하면,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여성들이 성노동자 전체를 대변하지는 않지요. - P38

서른 살이 지나서 스즈미 씨는 "더 젊고 현명한 여성들에 대해 이야기하겠다"며 세대론을 썼지요. 스즈미 씨는 제게 건네는첫 번째 편지에서 "여성들이 강하게 원하는 바는 피해자란 이름을 확실히 부여받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라고 썼는데요, 피해자란 이름을 부여받는 게 아니라 피해자라고 밝히고 나왔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겁니다. 그리고 자주 오해를 하는데, 피해자라고 밝히는 것은 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강함의 증거입니다. 스즈미 씨도 "피해자임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라고 쓴 바로 그것 말입니다. 미투 운동에서 이토 시오리伊藤詩씨가 "나는 성폭력 피해자다"라고처음 밝혔을 때 얼마나 용기가 필요했을지는 상상만으로도 충분하겠지요. - P39

‘피해자라고 불리고 싶지 않다‘, ‘약자인 걸 참을 수 없다’는그런 마음을 저는 ‘약함 혐오‘ Weakness Phobia ‘라고 부릅니다. 엘리트 여성이 자주 빠지는 사고방식이죠. ‘약함 혐오‘는 약함에 대한 혐오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동성애 혐오자가 자기 내면에 동성애에 대한 자각이 있어서 동성애를 한층 더 검열하고 배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약함에 대한 혐오는 약함에 대한 자각이 있기에 더 격렬하게 약함을 검열하고 배제합니다. 위안부를 지탄하는 일본의 우익여성들도 똑같은 사고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여자가 피해자인 측면을 용납할 수 없다", "나는 저 사람들과 같지 않다", "나는 약하지 않아"라고 하지요. 이런 여성만큼 남성에게 편리한 존재는 없습니다. (우에노 지즈코) - P40

젊은 시절 저는 몸과 정신을 시궁창에 버리는 것과 같은 섹스를 많이 했습니다. 대가는 발생하지 않지만 자신도 상대도 존중하지 않는 섹스를 했지요. 그런 섹스에 대한 후회 때문에 저런 발언을 한 것입니다. 섹스는 몸에 오는 부담이 높고, 성가시고 귀찮은 일종의 인간 상호 행위입니다. 그리고 생식 행위이기도 하죠. 성노동자한테 지불하는 대가에는 임신시키고 도망갈 요금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 남자도 있습니다. 생식이 맺을 열매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보상금을 이야기한 겁니다. 그렇게 성가시고 귀찮은 것에는 그에 걸맞은 인간관계의 절차라는 게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런 절차를 돈의 힘으로 건너뛰고서 자신의 욕망만 만족시키는 것이 남자들에게는 성 산업이란 겁니다. "그래서 당신들이 시궁창인겁니다"라고 얼마나 말하고 싶은지 몰라요. 아니, 여기서 확실히말해두겠습니다. 돈, 권력, 폭력으로 여자를 자기 뜻대로 하려는 남자는 ‘시궁창‘이라 불려도 별수 없다고 말이죠. (우에노 지즈코) - P39

(이렇게 말하는 게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스즈미 씨 세대는 남녀고용기회균등법이 생긴 이후 신자유주의를 내면화하고, 1990년대성의 상품화가 거세게 밀려오는 가운데 사춘기를 보낸 결과 냉소적이 된 게 아닐까요? 그리고 정치적 냉소주의가 무력하듯, 냉소주의는 결국 아무것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 P41

성 산업을 경험해 보니, 어린 시절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더 많은 면에서 두루 대가를 치르라고 요구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낙인찍힌 과거가 언제까지나 저를 따라다니는 것만 해도 상상한 것 이상이라서, 요새 젊은 여성들이 저한테 "AV에 출연할지말지 망설이고 있다"고 상담해 오면 저는 "AV 배우를 하다가 은퇴할 수는 있어도 ‘AV 배우 출신‘이란 딱지로부터는 은퇴가 안 된다"
고 줄곧 답합니다. 이렇게 답하는 이유는 제가 열아홉살 때 살고싶었던 인생과 그 후 스물다섯 살, 서른살, 서른다섯 살, 그리고 지금까지 각각의 시점에 제가 살고 싶었던 인생이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전에 리스크로 봤던 것 이상의 일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 P79

결혼이 당연한 관습으로 남아 있기에, 결혼한 사람한데 ‘왜 결혼했냐?‘고 묻지 않고 결혼 바깥에 있는 사람들한테만
‘왜 결혼 안 해?‘라고 계속 물을 수 있는 겁니다. 제 시각으로 보면,
결혼하는 데는 큰 결단이 필요하니 결혼하지 않는 건 결단을 내리지 못한 상태를 미룬 결과일따름인데, 결혼을 결단한 사람들한테 그걸 선택한 이유를 묻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 P121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사실이 있습니다. 여성한테 성이 경제행위일 수 있는 사회는 압도적으로 남녀의 권력이 불균등하다는 점, 즉 젠더의 비대칭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사회를 ‘가부장제 사회‘라고 합니다. - P152

신체가 관념을 따르도록 하다가 극한에 달하면 어떻게 될까요? 저는 히라쓰카 라이초의 동반 자살 미수 사건을 떠올립니다.
히라쓰카 라이초는 나쓰메 소세키의 제자 모리타 쇼헤이와 함께 눈 쌓인 시오바라 온천 근처 산을 방황하다가 자살 미수로 그친 스캔들을 일으켰습니다. 이 추문 때문에 히라쓰카 라이초는 일본여자대학 졸업 명부에서 이름이 삭제되기도 했죠(나중에 다시 기재됐습니다만). 나쓰메소세키는 훗날 소설 《산시로四郞)[1908]에서 히라쓰카 라이초를 모델로 삼은 교만하고 천박한 미녀
‘미네코‘를 등장시켰는데, 이는 제자 모리타 쇼헤이가 일방적으로 전한 정보에 기초해 그려낸 것으로 공평하지 않습니다. - P183

이 동반 자살 미수 사건은 사실 연애 때문에 죽으려던 사건도아니었습니다. 히라쓰카 라이초는 스물두 살에 동반 자살을 하러가기 전에 유서를 남겼습니다.
"나는 내 생애의 체계를 관찰한다. 내 이유에 의해 죽는다. 타인이 해를 입혀서가 아니다."
여자가 이런 글을 쓰면 남자는 견딜 수가 없죠. 이 문장에서는 남자에 대한 단 한 줌의 애정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 두 사람,
히라쓰카 라이초, 모리타 쇼헤이는 성관계를 하지 않았을 거란 이야기도 있습니다. 히라쓰카 라이초가 쓴 자서전에 따르면, ‘처녀를 버린‘ 대상은 그 후 그 자신이 먼저 유혹한 선종 승려였다고 하니까요.
아마도 히라쓰카 라이초는 일본 근대 페미니스트 가운데 가장 관념적인(즉 머리가 비대한) 형이상학적 여성이었겠지요. 히라쓰카는 오직 자신의 깨달음이나 천재성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 P184

몸이 내 뜻대로 되지 않고, 또 내가 가장 먼저 만나는 타자가바로 내 몸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된 건 장애인들과 만나고부터였습니다. 남이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존재인데, 장애인은 남을 만나기 이전에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타자로서의 내 몸을 만나야 합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누구든 후천적 장애인이 되는 것과 비슷하죠. 저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정신도 몸도 부서지는 것이라 느끼게 됐습니다. 거칠게 함부로 다루면 몸도 마음도 망가집니다. 그런데 부서진 것은 부서진 것으로서 다뤄야 합니다. 돌이켜 보면, 아무리 함부로 대해도 나도 남도 부서질 리 없다고 여기던 시절엔 참 오만했어요. (우에노 지즈코) - P187

젠더gender란 개념은 프랑스어 장르genre에서 유래했습니다. 젠더는 프랑스어에서 여성명사와 남성명사를 분류하는 문법 용어이고 영어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언젠가 제가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했을 때 한 프랑스인 페미니스트가 심포지엄 연단에 있던 세계적인 여성사 연구자 조앤 스콧‘ Joan Wallach Scott 한테 짓궂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젠더‘란 개념은 원래 영어에 없는데, 그게 영어권 페미니스트들과 무슨 관련이 있죠?"
그 자리에 있던 탈식민주의 페미니스트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Chakravorty Spivak 이 아무런 망설임 없이 바로 답했습니다.
"누가 만든 개념이든, 쓸 수 있는 건 뭐든 다 쓰면 됩니다." (우에노 지즈코) - P298

스피박은 영어권에서 연구자로 활약하면서도 인도 국적을 버리지 않은 식민지 출신 지식인입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교양 대부분을 영어권의 지식체계로 채웠다 하더라도, 그걸 역으로 이용해 무기로 삼고 적과 싸우겠다고 한 여성입니다. 스피박의 과감한 답변을 듣고 저는 경탄했습니다. 스피박도 페미니스트이고, 스콧도페미니스트이고, 심술 맞은 물음을 던진 프랑스인 여성도 모두 페미니스트입니다.
지금까지 반세기 동안 저는 이렇게 자극을 주는 분야에서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논쟁이 벌어지는 곳에서 스스로 단련하면서
‘나는 여성들한테 빚을 지고 있다…..‘ 이렇게 생각해 왔죠. 이런마음 때문에 앞으로도 죽 ‘나는 페미니스트‘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을 겁니다. (우에노 지즈코) - P299

저번 편지 첫머리에 우에노 님이 "밤일을 하면서 치러야 할 수업료 중 하나는 남자를 모멸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지적하신 부분이 있는데, 이번 연재에서도 그렇고 여태까지 제가 집필 활동을 해오는 중에도 점점 더 강하게 의식한 문제였습니다. 제 성격이나 밤일의 특성보다는 성장 배경과 관련된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브루세라 가게에서 매직미러 너머로 목격한 한심스러운 남성상이 언제나 제 남성관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제 마음속 어딘가에는 줄곧 ‘저런 동물하고는 서로 이해할 수도 없고 평등해지고 싶지도 않아‘라고 경멸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스즈키 스즈미) - P303

저는 10대 때부터 죽 ‘성매매를 하지 말아야 할 이유‘에 대한답을 찾고자 애써왔는데, 최근에는 이런 생각이 그 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성매매를 혐오하고 그에 대해거부감을 갖거나, 혹은 부모가 딸한테 매춘을 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는 단지 몸 파는 일이 천박하다거나 위험하다거나 자존심이 더럽혀지기 때문이라기보다, 성매매로 인해 타자를 존중하는 마음이어딘가에서 뒤틀리는 것에 대한 위기감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스즈키 스즈미) - P304

그런데 왜 매번 피해자인 여성 쪽이 성폭력 문제를 해결해야하는지 이해가 안 되네요. 남자들 문제는 남자들이 해결해야 하지 않습니까? 왜 남성들은 남자에 대한 여성들의 신뢰를 실추시키는 성추행범에게 화내지 않습니까? 왜 남성들은 성추행범을 박멸하자고 운동을 시작하지 않나요? 그러기는커녕, 성추행을 고발한 여자들이 부당한 짓이라도 했다는 듯, 왜 치한들한테 면죄부를 안겨주는 주장만 늘어놓습니까? 성희롱 가해 남성에 대해 가장 먼저 분노해야 할 사람들은 성희롱 가해를 저지르지 않는 남성들입니다. 그런데도 왜 남성들은 성희롱 가해 남성에 대해 분노하지 않고그런 남성을 감싸주는 겁니까? 유흥업소에 가고 성매매를 하는 남자들은 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습니까? …………정말 남자들은 수수께끼입니다. (우에노 지즈코) - P350

아마도 남자들이 할 말은 정해져 있겠죠. ‘원래 그렇다’고, 정말 그런가요? ‘남자는 원래 그렇다‘는 말 속에는 ‘그런 남자가 나일 수도 있다‘고 공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 공감과 이해를 갖추고 있다면, 남자들 안에 있는 가해성에 부딪혀 봐도 좋을 겁니다. 여자들은 공감과 이해를 바탕으로 여성운동을 해왔습니다. 만약 여성운동에 필적할 만한 남성운동이 없다면, 그 이유는 남자들이 자신들의 가해성에 대해 아무런 자각을 못 했든지 아니면 이러한 가해성으로 이득을 얻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우에노 지즈코)
- P351

사람은 몇 살이 돼도 새로 발견하는 게 있군요. 스즈미 씨가 50대, 60대에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며 기대합니다. 그때 저는 이미 이 세상에 없을 텐데, 그게 유감이네요. (우에노 지즈코) - P364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미 2023-06-26 1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이 책 읽는동안 힘드셨겠네요.ㅠㅜ 엄마의 사랑을 갈구해서든 뭐든 엄마(부모)가 지향하는 것과 반대를 추구하는건 최재천 교수님도 자연스럽다라고 했는데 이건 좀...머리가 복잡해집니다. 그나저나 우에노 지즈코의 다른 책들을 읽어보고 싶네요!

다락방 2023-06-26 11:03   좋아요 1 | URL
네 저는 정말 너무 쇼킹했어요. 사랑을 갈구하는 것 만으로 스즈키 스즈미가 그런 선택을 한 건 아닐 것이고 다른 것들도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왜 이런식으로 나아가야 했나 싶고요, 그렇지만 그런 산업이 활성화 된 곳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삶이 아니었나 싶어요. 왜 십대 소녀에게 입었던 팬티를 파는 일이 허락된 곳인걸까요? 왜 돈벌이로 그걸 선택할 수 있게 만들어둔걸까요? 우리 몇 달 전에 [레이디 크레딧] 읽었잖아요. 그 때 성매매 당사자 여성이 그런 말을 했었어요. 아이가 아프거나 해서 돈이 필요해지면 성매매를 다시 할까 생각하게 된다고, 그 일을 해봤으니 선택지에 올리게 된다고. 그 때 ‘선택지에도 없게끔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을 판매하는 모든 업종이 말입니다.

이 책을 읽은 건 힘들었지만 좋은 경험이었어요. 그런 한편, 스즈키 스즈미의 입장에서 남자에게 절망하지 않을 도리는 없다는 공감도 되고 말이지요. 후..

유수 2023-06-29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은 스즈키 스즈미에게 했는데 우에노 지즈코의 답장에서 매번 무릎꿇었어요. 냉소를 왜 냉소로 남겨두면 안되는가.. 답을 (힘을) 많이 주는 책이었습니다.

다락방 2023-06-29 09:49   좋아요 0 | URL
저도 우에노 지즈코의 답변들에 무릎 꿇었습니다. 와, 역시 연륜과 경력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우에노 지즈코 답장 읽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라고요. 그거네, 그거야, 그거구나 하고요. 유수 님 덕분에 읽은 책입니다. 이 책 읽다가 우에노 지즈코의 <전쟁과 성폭력의 비교사>도 장바구니에 넣어뒀어요. 이 사람이 하는 말을 계속 들어보자, 이렇게 되더라고요.

유수 2023-06-29 09:52   좋아요 0 | URL
저도 저도!! 다음책 우에노 지즈코 책이에요. 한권 빌리고 한권 책장에서 발굴하고 ㅋㅋ <전쟁과 성폭력의 비교사>는 다락방님 페이퍼를 기다릴게요. 다락방님 이렇게 진솔한 페이퍼 보니까 나도 뭐라도 쓰고 싶드아…! 다락방님페이퍼의 힘은 진짜 신기합니다!

다락방 2023-06-29 09:53   좋아요 1 | URL
아이참, 별말씀을! ㅋㅋㅋㅋㅋ(마구 좋아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