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른 것을 보고 심장이 철렁내려앉았더랬다. 그때 기분을 기억한다. 살면서 딱 두 번, 2016년과 2019년에 그랬다. 3년 전(2019년을 기준으로)에 나는 그가범죄를 저질렀을 것이라고 믿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해야하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습실을 뛰쳐나갔다. 속상했다. 우리 오빠는 그럴 사람이 아닌데, 그는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세상은 왜 벌써 욕부터 하는 걸까. 아직 아무런 입장도 밝히지 않았는데 왜 벌써부터 범죄자 취급을 당해야 하는가. 억울했다. 그동안 봐온 우리 오빠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 P15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했던 시절을 추억하는 것만으로 왜 죄책감을 느껴야 하나? 사랑했던 상대를 원망해야 하는 우리가,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조차도 조심스러워해야 하는 우리가 참 안쓰럽다. - P18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고(시작한 지이틀만에 때려치움), 작업실을 구했고, 혼자서도 당황하는 일 없이 촬영을 다닌다. 탄수화물을 제한하는 키토제닉 다이어트를하다가 실패했다. - P28

아무렇지 않게 덕질하는 사람 보면 무섭다. 분명 피해자들이 있는데 성범죄자인데도 어떻게 계속 연민하고 보고 싶다며덕질을 할 수가 있는지. 왜 가해자를 더 안쓰러워하고 계속 생각하는지. 할 거면 일기장에 혼자 하지. 공개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 보면서 아직도 미련 못 버린 사람들은 서로 괜찮다며 두 손으로 하늘 가리고 덕질하는 거겠지. 난 이제 사진도 못 본다. 노래도 차마 못 듣는다. - P30

음. 나는 오세연이지만, 나는 언제나 나일 테지만, 어쨌든지금의 나는 과거에 만난 사람들과 보고 들은 것들과 좋아하고싫어했던 것들이 쌓여 만들어졌다. 분명 바뀌는 것도 있다. 이제더는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인생을 응원하지는다. 그 사람의 노래를 습관처럼 듣지 않는다. 그 사람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보고 싶어서 편지를 쓰지 않는다. 그 사람이 나를 알아주길 바라지 않는다. 그렇지만 남아 있다. 그랬던마음들이. 이건 지워지지 않고 버려지지도 않고 그냥, 그냥 그대로 남아 있다. - P50

조민기는 검찰 조사를 사흘 앞둔3월 9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로써 사건은 가해자의 사망에 따른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가 종결되었다. 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죽음을 택한 것은 잘못을 뉘우치는 행동이 아니다. 그의 죽음은 오히려 최종 형태의가해이자 피해자와 주변 사람들에게는 평생을 떠안고 가야 할상처 자체이다. 고인이 죽기 전에 사실과 다른 소문과 억측이 무분별하게 퍼져나가 힘들어했다는 말도 있다. 어쩌면 그마저도그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업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고통받는다 해서 피해자의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지위를이용하여 그 세계의 왕으로 군림하던 이가 다른 사람에게 주었던 고통은 이제 무엇으로도 상쇄되지 않는다. 그가 세상에 없기때문에. - P52

<재원> 팬들이 자기 우상을 너무 많이 좋아해서 나중에부끄러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끄럽지 않을정도로만 했으면 좋겠다. 그들에게 선행을 바라는아니거든. 어디 가서 봉사하고 지구온난화 문제를 1981담은 가사를 써달라는 것도 아니고. 연예인들은 그냥자기를 좋아했던 팬들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처신만을 잘하고 다녔으면 좋겠다. 자신들이 커다란 사회적파장을 일으킬 수 있음을 인정하고. 그동안 해온 덕질생각하니 너무 돈 아깝고 시간 낭비. 앞으로 안 해야지. - P140

<성혜> 내가 걔를 많이 안 좋아했나 보다. 그런 크나큰 사건을잊고 있었다. 그거는 진짜 용서 받지 못할 일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 자체로 두 번 죄를 지은 거야.
죗값을 치르기 전에 죽어버린다? 그거는 안 되지.
잘못했으면, 진짜 미안하다 하고 반성해야지. 자기한테누가 돌 던질까봐 겁이 나가지고 먼저 죽어버렸잖아.
그럼 남아 있는 사람은 뭔데? 가족들은 어떻게 살라고?
본인이 살아서 죗값을 치러야지. 사람들이 질타를 하든뭘 하든. 근데 그게 부끄러운 일인 줄 알았으면 그렇게저질렀겠나 싶기도 하다. 죽은 것도 딱 걔답다는생각이 들더라. 실컷 저질러놓고 자기는 죽어버리고.
진짜 무책임한 거지. 그거는 나쁜 일을 저지른인간들이 특히 해서는 안 될 일이야. - P202

<세연> 그니까 그 친구 때문에 내가 덜 외로웠을 거 같다는얘기네.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었다는 말이지?

<성혜> 엄마한테 거짓말하고 삐뚤어질 수도 있을 텐데 항상어디 간다 얘기하고 바쁘게 지내니까 보기 좋았지.
공부도 열심히 하고. 나쁜 짓은 할 시간도 없었던 거같지만. 네가 어느 순간 팬 카페도 그만 봐야 되겠다고했는데, 할 만큼 해봤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라고생각해. 할 만큼 하다 보면 여기서 더는 할 일이없다, 이런 생각이 들거든. 너도 자연스럽게 커가는 과정이었던 거 같아. - P210

덕질을 하다 보면 타인의 세계에 접속하고 싶어진다. 접속해서 오랫동안 탐험할수록 그 세계에 존재하던 것들이 옮겨온다. 그러다 보면 닮고 싶고, 닮아간다. 아마 내가 인지하지 못한 채로 아주 많은 부분에 좋아하는 마음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무작정 동경하던 사람을 따라 하다가 가장 나다운 것을 찾아낸 것 같기도 하다. 유쾌하지 않게 끝맺은 덕질이었지만, 내게 미친 영향 하나하나를 지우고 싶지는 않다. 불가능한일이다. 하지만, 시작점에는 그 사람이 있었을지라도 내 경험의주인은 나라고 우기고 싶다. 그 사람 없이도 무너지지 않고 남아있는 것은 나만의 세계다. 누군가를 또 좋아하게 되면 또다시 그사람의 세계를 조금씩 떼어올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계속 무언가를 좋아하며 살고 싶은 것이리라. 그렇게 만들어진 나의 세계는 계속해서 팽창할 테니까.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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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12-02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서 말하는 오빠가 누구인가 궁금해서 책 정보 찾아보다가.... 으윽, 하필이면 그 오빠가 정준영이군요?
으으윽.......
이 친구 정말 내적 갈등 심했겠어요.

다락방 2022-12-02 15:33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그 오빠가 하필이면 정준영 인 것입니다.. 와 진짜 무너지는 마음이었을 것 같아요 ㅠㅠ
그래도 그때의 마음상태와 생각들을 이렇게 다큐멘터리로 만들다니, 대단해요!

잠자냥 2022-12-02 15:51   좋아요 0 | URL
여기 인용하신 문장들만 읽고는, 그 오빠가 혹시 강지환인가 했습니다만....ㅎㅎ
<성덕> 감독이자 <성덕일기> 저자가 1999년생인걸 보니 정준영 좋아했다는 게 이해가 가네요. ㅎㅎ
대단하네요. 끝까지 자기가 좋아했던 사람의 범죄마저 쉴드치는 사람들도 많던데;;;;

다락방 2022-12-02 15:57   좋아요 1 | URL
정준영 뿐만 아니라 다른 범죄남연예인들에 대해서도 쉴드치고 믿고 기다린다는 팬들이 있더라고요. 저는 그런 마음을.. 잘 모르겠어요. 다른 범죄도 아니고 여성대상 성범죄인데, 그게 어떻게 쉴드가 쳐지는건지 잘 모르겟어요. 그건 좋아한다, 응원한다는 마음과는 별개의 것인것 같아요. ㅠㅠ

바람돌이 2022-12-02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저려면 무너지겠다요. 그런데 그걸 저 어린 나이에 객관화해서 영화를 만들고 책을 쓰는 이 멘탈!!
완전 훌륭하네요. ^^
 

미술사 분야에서 무의식적으로 미술사학자의 정통 관점으로 받아들여진 백인 서구 남성의 관점은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인 근거 또는 엘리트적 입장을 취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순수하게 지적인 차원에서 봐도 그 관점이 부적절하다고 판명되었다. - P22

한 세기 전 존 스튜어트밀이 지적한 바와 같이 "평상적인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보인다.
남성에 대한 여성의 복종이 보편적인 관습이기 때문에,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당연한데도 부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이다." 5 입으로는 평등을 말하면서도 남성 대부분은 자신들에게 이익이크기 때문에 이런 ‘자연스러운 질서를 못내 포기하지 못한다.
여성의 경우는 다른 억압된 집단이나 계급집단과 달리 평등의문제가 좀더 복잡하다. 왜냐하면밀이 예리하게 지적했듯 남성은 그럴 자격도 없으면서 여성에게 복종을 원할 뿐 아니라 애정까지 요구하기 때문이다. 결국 여성은 남성중심사회가 내면적으로 요구하는 것들로 인해, 그리고 그 사회가 제공하는 과다한 물질적 재화와 안락 때문에 종종 취약해진다. 중산층 여성이라면단순히 속박당하는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잃을 게 훨씬 더많다. - P35

또하나, 공공장소와 공공기념물과 관련한 여성의 입장에도심오한 변화가 일어났다. 공공성과 여성의 관계는 근대 초기부터 문제가 되어왔다. 리처드 세넷이 저술한 『공인의 몰락The Fallof Public Man을 보면, ‘공공‘이라는 단어가 남녀에 대해 불균형적인 관용구로 쓰이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적인 남성은 추앙받는사람으로, 정치에 적극적이며, 사회에도 관여하고, 이름이 알려져 있고, 존경받는 사람을 말한다. 이와는 반대로, 공적인 여성은 가장 낮은 형태의 매춘부를 뜻한다. 역사적으로 여성은 사회이론이나 재현된 그림 속에서 가정에 국한되어 있고 가내 활동과 연관된 존재로 나타난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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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2-11-30 0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 미술계의 여성혐오도 꿰뚫으시는 겁니까? 기대😀
 

소문을 달고 오는 손님을 조심하세요.
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래요.
소문을 들은 자리에서 화를 내거나 정정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에요.
아, 그래요, 그러네요.
나를 생각하는 사람은 소문을 달고 오지 않아요. 끊어내고 오지.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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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성별 위주로 개발된의약품이 다른 쪽 성별에게 더 위험하다는 사실은성차가 실재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성차에 따른 의약품 효과는 생식 기관이나 기능에 한정되지 않고몸 전체에서 나타난다. - P37

출간을 앞두고 이 책의 핵심내용을 발표하는자리에서 입덧의 생물학적 기제를 설명하자 한 청중이 질문했다. "남편도 입덧한다고 하는데, 이 경우에 입덧의 원인은 사랑인가요?" 대답은 "그것은입덧이 아닙니다."였다. - P72

모든 남성 과학자가 노벨상을 타는 것은 아니듯 여성과학자라고 해서 모두 노벨상을 타야 하는것은 아니다. 2007년 미국 국가 과학상을 수상한핵물리학자 페이 에이젠버그셀러브는 이렇게 말했다. "하버드든 다른 어느 대학이든 이류밖에 안 되는 남자 교수가 많다. 나는 이류밖에 안 되는 여성연구자가 대학 정년직을 받는 것을 봐야만 성차별이 없어졌다고 믿겠다."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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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든, 위우원삼촌이든, 레이웨이든, 사람이 죽을 때마다 그 사람이 있던 세계가 사라진다. 나는 그들 없이 살아야만 한다. 원래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더 애매하고, 차갑고, 무관심을 숨기려 하지 않는 새로운 세계에 내 다리는 얼어붙는다. 따뜻한 외투가 하나씩 벗겨져 알몸이 드러나는 것만 같다.
내 마음은 온기를 원하는데, 그러나 내 영혼은 그렇지 않다. 세월이 흐르면서 내 영혼은 그들과 있음을 느낀다. 그들의 눈으로 매사를 보고, 그들의 귀로 소리를 듣고, 그들의 태도로 영원한 동경을 품는다. 절대 돌아올 수 없는 오랜 세계로 잠겨간다.
내 마음은 그렇게 위로받는다. - P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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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쟁이 2022-10-26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분명 이 책을 읽었습니다만, 왜 이 글귀는 생각나지 않을까요? 그것도 최근에 읽었는데 말입니다.
다락방님이 옮겨 놓으니 좋군요. 좋은데.. 왜 기억이 안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