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 High Class Book 42 세상을 움직이는 책 34
토머스 모어 지음, 박병진 옮김 / 육문사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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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유토피아.
우리는 흔히 `이상향`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만,
원뜻은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고 합니다.

`이상향`에는 분명 현실과의 괴리가 있기 때문에,
`이상향`이든 `존재하지 않는 곳`이든 얼추 비슷하긴 합니다만,
또 한편으로, `이상향`에는 현실을 딛고 나아가려는 적극적인 무언가가 더 있는 것 같습니다.

500년 전 사람인 토마스 모어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사회는 어떠했을까 하는 호기심에 책을 들었습니다만,
한편의 저작을 둘러싼 배경은 더욱 흥미진진하더라구요.

<유토피아>라는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 고전은,
플라톤이 살았던 까마득한 옛날 이후에 다시금 유토피아 문학의 시작점이 되었던 저작입니다.
새로운 시작 이전에는 중세시대가 있었죠.

대충 감이 오시겠지만,
중세는 신에게 인간이 꽉 잡혀있던 시대였습니다. 종교의 영향력이 막강했죠.
신의 말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삶과 삶 이후까지 신에게 믿고 의지하던 때였으므로,
현실의 고통은 합리화되고, 죽음에 대한 공포도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서,
현실의 고통이나 불만, 갈등 따위가 늘 해결되었으므로 이상향을 꿈꿀 필요가 없었죠.
이상향이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중세가 막을 내리고,
현실의 고통과 불만, 갈등을 한번에 해결해주던 신의 말씀 또한 인간의 이성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됩니다.
갈등은 표면화되죠.

유토피아 문학은, 이런 현실의 갈등으로부터 다시 나오게됩니다.

실제, <유토피아>의 토마스 모어는,
1500년대 즈음 남미 본토를 발견한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기행문 <신세계> 에서 그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신대륙을 발견했다는데, 사실 남미 본토야 오래 전부터 있어왔으니 `새로운 대륙`이란 외지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것이겠죠.

여튼,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발견한 신대륙, 그리고 거기에서 평화롭게 살고있던 원주민의 생활상은,
르네상스 시절 영국사회의 갈등을 발판 삼아 <유토피아>라는 문학으로 거듭나게 되는겁니다.
일종의 풍자문학이 되는 셈이죠.

1부는 라파엘, 모어, 피터 세 사람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화의 주제는 당시 영국사회에 만연했던 도둑에 대한 무차별적인 사형제도에 대한 각자의 해결책이고,
2부는 얘기를 좀 더 나누기로 한 세 사람이 따로이 자리를 잡고, 라파엘의 유토피아 경험담을 듣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유토피아>의 주된 내용이야, 당연히 라파엘(라파엘은 극중 신대륙을 보고 온 여행자로 설정되어있음)이 신대륙에서 보고 온 사회의 모습이겠죠.
생산수단 공유제와 하루 6시간의 노동과 충분한 여가시간, 민주적인 선거제도와 도덕적인 국민들, 신앙의 자유와 공동 집회를 비롯한 사회 곳곳의 모습은 당시 영국사회를 교묘하게 비꼬면서 이상향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각박해지는 현실에서 현실논리와의 싸워 질 수 밖에 없는 것이 공상입니다.
꿈을 꿀 수는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기엔 무모하기 때문에 맥이 빠지는 것이 공상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공상은 소중합니다.
공상은 현실과 타협하지 않으려 할 때 나오고, 보다 나은 미래를 꿈꿀 때 나오기 때문입니다.
공상은 멋들어진 결과는 아닐지라도,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에너지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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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지향 - 한 자유주의자의 시각
복거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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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복거일씨의 <현실과 지향 - 한 자유주의자의 시각> 을 읽었습니다.

1. 보수주의 논객을 기다리며
3. 고등 교육에 시장 원리를 도입하는 길
5. 산업 혁명 뒤의 농촌
6. 민주화의 수급 균형
7. 시장 경제 속의 노동조합
8. 사회적 선택과 개인들의 몫

이렇게 8가지 사안에 대해서 '자유주의적 시각'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무슨무슨주의라는 하나의 성향을 나타내는 단어를 받아들일 때는,
정치와 경제, 두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오해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정치를 X축으로, 경제를 Y축으로 두고,
다양한 무슨무슨주의의 좌표를 결정해보는 것이죠.

[정치]의 범주에서 보면, 전체주의와 개인주의가 최대값과 최소값이 될 것이고,
[경제]의 범주에서 보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최대값과 최소값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X축과 Y축으로 평면을 나누었을 때 생기는 4가지 면은,
전체주의적 자본주의, 전체주의적 사회주의, 개인주의적 자본주의, 개인주의적 사회주의가 될 수 있습니다.

왜 흔히 들어왔던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는 빠져있는데,
민주주의의 경우 객관적이기 보다는 주관적, 이상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뺐습니다.
민주주의는 민(民)이 주인(主)이 되는 것인데, 과연 무엇이 민주주의냐 라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결국 우리는 정치와 경제를 말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의 경우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갖는 이상적인 사회를 표현하기 때문에 뺐습니다.
<제3물결>을 쓴 앨빈 토플러의 표현을 빌리자면, 제2물결 사회가 아닌 제3물결 사회인 셈이죠. 개념 자체가 다른겁니다.
흔히들, 구소련, 북한, 중국, 쿠바와 같은 나라들을 '공산주의'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전제하는 것은, 1. 국가 소유의 경제 2. 소수에 의한 다수의 지배 인데,
그것에 대한 표현이라면 '전체주의적 사회주의'로 충분합니다.
그 국가들이 이상적인 사회가 아닌 바에야, 공산주의라는 표현은 걸맞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자유주의적 시각'을 표방하고 있는 복거일씨의 경우는, X축은 개인주의 쪽에, Y축은 자본주의 쪽에 위치한 '개인주의적 자본주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서론 격인 <1. 보수주의 논객을 기다리며>를 제외하고 보면,
3. 고등 교육에 시장 원리를 도입하는 길
5. 산업 혁명 뒤의 농촌
6. 민주화의 수급 균형
7. 시장 경제 속의 노동조합
8. 사회적 선택과 개인들의 몫

와 같은 주제들은 거의 그런 시각에서 쓰여져있습니다.
(2, 4번은 민감한 문제이므로 다루지 않겠습니다.)

'개인주의적 자본주의'를 좀 더 풀어보자면,
정치적으로는 전체보다 개인을 중요시하고,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를 철저히 옹호합니다.

이 둘은 은근히 맞닿아있기도 한데,
흔히 시장의 실패를 조정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할 때,
전체보다 개인을 중요시하는 정치적 견해는, 정부가 개인이 주체가 되는 시장경제에 간섭하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경제적 견해와 맞물립니다.
정부는 시장의 규칙을 준수하는데에만 주력해달라는 것이죠.

물론, 이런 경제적 문제들 뿐만 아니라,
매춘, 마약, 선거권, 등과 관련해서도 정부가 인위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논리, 즉 개인의 자율에 맞겨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은 바로 오늘에도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요,
대표적인 경우가 분양원가 공개와 관련한 정부 여당의 입장입니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경제학 카페>라는 책을 써냈던 정부 여당의 한 의원은 '시장친화적 경제정책'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바로 그것이 이런 논리에 입각한 정책입니다.
(여담이지만, 이런 점에서 그 스스로 자신을 지칭하는 '얼치기 경제학도'라는 표현은 그저 대외용 멘트에 불과한 것 같네요.)

높은 분양가라는 [시장의 실패]에 대해서,
분양원가 공개라는 [정부의 개입]은,
선한 의도와는 달리 부작용을 남길 수 있다는 우려였죠.

<경제학 카페> <현실과 지향> 이라는 책을 통해서 비교해 보면,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유시민씨와 복거일씨 두 사람의 견해는 대동소이한 측면이 있습니다.
시장과 정부의 문제에 대해서는 굉장히 비슷하지만, 매춘, 마약과 같은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는 약간 다릅니다.

차이를 명확히 비교하기엔 <경제학 카페>가 조금 모호하게 쓰여져있는데요,
최근에 초판된 <경제학 카페>와는 다르게 <현실과 지향>의 경우 90년에 초판된 책이라서 조금 거친 감이 있지 않나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마냥 삼천포로 빠져보자면,
이런 주장의 원조격은 <자본주의와 자유>라는 책입니다.
경제학계에서 꽤 유명한 밀턴 프리드먼이라는 사람이 쓴 책이죠. (경제학자 하면, 아담 스미스하고 케인즈밖에 모르시는 분들이라면, 마르크스와 밀턴 프리드먼은 꼭 알아두셔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1960년 쯤에 출판되어 출판업계와 심지어 방송을 휩쓸고, 급기야 노벨 경제학상까지 받았던 책 <자본주의와 자유>.
물론,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현실과 지향>을 읽으면서 대충 그러겠거니 예상해 볼 수 있었습니다.
피터 카탈라노라는 외국인이 쓴 서평만 읽었는데, '순간에 취기가 돌게하는 독주'라는 표현이 이해가 가더군요.

1960년이면, 스태그플레이션이라 해서 불황 속에서도 물가가 오르는 기이한 현상을 계기로 J.M.케인즈라는 유명한 사람이 한물 가버린 때인데,
이 때부터 밀턴 프리드먼이 그 자리를 대체하면서, 우리도 익히 알고있는 '新자유주의'를 유행시키게 됩니다.
실제 밀턴 프리드먼이 나온 시카고대학의 후배들이 각 국 정부의 경제담당 부서를 맞게되고,
영국의 대처, 미국의 레이건, 한국은.. 김대중 정부 정도가 이런 경제정책을 시행했었죠. 이쯤되면 대충 감이 잡히시리라 생각합니다.

여튼, <현실과 지향>이라는 책이 대략 이러한 맥락에서 쓰여졌다고 받아들이면 될겁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이런 류의 주장이 주장으로 그치지 않고, 실제 각 국 정부의 경제정책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90년에 복거일씨가 주장했든 주장하지 않았든,
04년 우리나라 역시 '개인주의적 자본주의' 대로 정부의 규제보다 시장의 힘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구요.

이런 점에서 '순간에 취기가 돌게하는 독주'라는 표현은 다시 한번 의미심장합니다.
정말 그럴싸한 주장과 부정적인 현실의 모습의 모순적인 스크랩.
다시 한번 꼼꼼히 따져보는 것이 앞으로 제가 할 일인 것 같군요.

서론 격인 [1. 보수주의 논객을 기다리며]를 제외하고,
[5. 산업 혁명 뒤의 농촌] [7. 시장 경제 속의 노동조합] 은 그동안 고민해왔던 주제이니 만큼 좀 더 쉽게 얘기할 수 있을 것이고,
[3. 고등 교육에 시장 원리를 도입하는 길] [8. 사회적 선택과 개인들의 몫] 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이전 책들을 재차 뒤적여 볼 참입니다.
에구 열심히 좀 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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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감상법 빛깔있는책들 - 즐거운 생활 192
안치운 지음 / 대원사 / 199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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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학 시절 '풍물굿판 기획'이라는 것에 한참 빠져들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한가한 휴학생인 주제에 이것도 하자 저것도 하자, 학과공부를 하면서 활동해야했던 다른 친구들이 꽤나 귀찮았을겁니다.

시간이 지나, 당시 저에게 그만큼의 에너지를 가져다 준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봤지만,
제 감정에 솔직했던 것 밖에는 기억에 남지 않더군요.
문화를 직업으로 삼겠다는 포부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때 제 갈등은 이랬습니다.

학교 축제 기간에 공연을 하는데, 저희 공연 다음이 댄스 동아리 공연이었거든요.
그런데 한달 가까이 준비한 공연을 마친 친구들이, 짐 정리도 안한 채로 댄스 동아리 공연으로 달려가는겁니다.

함께 공연한 친구들을 모습을 보면서 참 허탈하더라구요.

물론,
댄스를 좋아하든 풍물을 좋아하든, 아니 댄스 풍물 모두 좋아하든,
충분히 다양할 수 있지만, 그래도 형식이나마 풍물을 우선으로 꼽는다는 친구들인데, 이 친구들에게 풍물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풍물은 달라져야 한다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2.
축제 얘기를 좀 더 하자면,
축제의 무대에서는 풍물과 댄스 모두 '무대 위의 공연물'로서 작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무대 위의 공연물'을 준비하는 우리는 그만큼 철저하지 못했죠.
그저 관성적으로 늘 하던 고창지역의 판굿을 압축해서 보여준겁니다.

고민도 준비도 없었던 공연의 결과는 어쩌면 당연했습니다.
소리든 음악이든 춤이든, 관객에게 볼거리로 승부해야하는 '무대 위의 공연물'로서는 별로 적합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죠.

풍물을 흔히 김덕수씨의 '사물놀이'로 알려져있는 '무대 위의 공연물'로 만들던,
아니면 생활 속의 무엇으로 만들던 우리의 선택이었지만,
우리는 고민도 선택도 하지 않았던겁니다.

불만이 여기까지 올라오자,
정기공연을 비롯한 활동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겼고,
결국 저는 한해 더 활동을 하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풍물굿'을 고민하고 실험하게 됩니다.

3.
뜬금없이 지난 대학시절을 꺼내는건,
사실, 안치운씨의 <연극 감상법>에 대한 독서후기의 서론이었습니다.

책을 한눈에 읽을 수 있었던건,
책의 분량이 그리 많지 않은 탓도 있지만,
지난 시절 풍물이라는 문화에 대해서 고민한 흔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는 사람도, 함께 하는 사람도 즐기지 못했던 대학의 풍물판과,
연극 비평가 안치운씨가 얘기하는 연극판의 얘기들은 굉장히 흡사했습니다.

그리고, 풍물판에 대한 고민이 닿았던 끝자락에 연극이 있기도 했구요.

4.
사실 저는, 작년인가 대학로에서 본 한편의 연극이 전부입니다만,
연극은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인 남자친구를 쫓아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는 한 친구가, 그 때 즈음엔 학교 연극부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었는데,
그 친구와 함께 술잔을 귀울이며 '인생 별거 있냐'며 흰소리를 해댔었습니다.

연극을 즐기지 않았던 제가 연극을 동경했던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연극만큼이나 창조적이고 질펀한 문화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형식으로 따지자면 하나에서부터 끝까지 직접 만들 수 있고,
내용으로 따지더라도 모두 자신의 얘기와 갈등을 풀어낼 수 있는 것이 연극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연극을 너무 몰랐었죠.)

반면 풍물은 얽매이는 것이 많았죠.
형식으로 보자면, 지역의 판굿이 정형화 된 채로 존재했었고, 그 속에는 단연 가락이며 춤이 담겨있었습니다.
내용으로 보더라도, 풍물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락 연주는 늘 표현하기 힘든 무엇으로 따라다녔으니까요.
(풍물도 너무 몰랐습니다.)

여튼, 개강이니, 시험이니, 축제니, 취업이니, 연애니,
대학시절의 일상을 함께하는 갈등들을 풍물답게 표현하고 즐기려는데 한계를 느낀 저는,
결국 그 해 끝자락엔, 연극이 더 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면서 실험을 매듭지었던겁니다.

5.
지금은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만,
그때 풀어내지 못한 갈등들이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흔한 풍물판들을 보면서 일말의 아쉬움이 남는겁니다.
이미 정형화 된 판을 멋지게 보여주는 기술들을 늘어나지만,
삶의 냄새가 담긴 그런 판은 왜 그리 보기 힘든지.

사람의 감정이니 갈등이니 정해져있는 것도 아닌데,
예정된 날짜에 하는 '풍물공연'만큼, 왜 하고싶을 때 내키는대로 하는 '풍물판'은 없는지 아쉬움이 남는겁니다.

6.
이런 아쉬움의 한켠으로는, 제 생각이 투정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가 농사가 生業이던 시절을 살고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버스와 지하철, 책상의 컴퓨터와, 공장의 기계들에 익숙한 우리에게, 풍물의 악기란 장농에 넣어두고 수시로 꺼내어 쓸 수 있는 무엇이 분명 아닐겁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연극을 부러워하게 되었습니다.
농사가 생업이던 시절에도, 지금도,
연극은 삶의 표현하는 적절한 수단으로서, 마당에서 무대를 넘나들며 이용되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또 현실이 그리 만만치 않은가 봅니다.

7.
<연극 감상법>의 안치운씨 역시도 저와 비슷한 관점으로 연극을 감상하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배우, 극단, 극장, 연출, 관객, 등 연극 전반에 관한 내용들을 그저 받아들이는 수준에 그치긴 했지만,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 안씨의 관점이 저와 크게 같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연극을 직업으로 삼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신이 주체가 되어 살아간다는 면에서 다른 어떤 직업과 다르다'고 얘기하고 있고,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의 사회적 갈등을 표현하는 것이 연극의 중요한 요소임과 동시에 분리할 수 없는 것임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가 진단하는 바와 같이,
오늘날의 연극이 삶의 갈등을 풀어내려는 몸부림으로 사람들과 호흡하지 못하는 것은,
연극을 어려워하고, 연극이 마치 문화의 상위 그룹이나 되는 것인양 생각하는 오늘날의 풍조가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가 주장하듯,
옛 극장을 회복하여 단절된 극장 문화의 맥을 연결하고, 역사적 현장을 연극 무대로 만들며, 시립 도립 국립 극장 및 도심 속의 극장을 늘리자는 제안이,
연극인의 자성과 관객의 역할을 강조하는 제안이,
얼마만큼의 실효성을 가질지는 의문입니다.

연극의 위기는, 단지 연극만의 위기가 아니라 시대의 위기일테니까요.
문화를 행위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가 상품이 되어 공급하고 소비하는 시대의 위기에서 한 연극인의 바램은 너무나 소박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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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의 경제성장과 발전전략 - 회고적 재평가, 동아시아연구단 총서2
윤진표 편 / 오름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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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의 경제성장과 발전전략> 읽고있습니다.

제목과 개요만 보고 책을 골라버릇 하다보니, 늘 글쓴이는 뒷전이네요.
동아시아연구단이라는 컨소시엄에서 낸 논문집이더군요.

일곱분의 연구원께서 쓴 일곱편의 논문이 실려있는데,
서문에서 연구의 취지와 각 논문의 개요에 대해서 자세하게 적어놓은 편이라, 저는 순서대로 읽는 방식 대신 골라서 읽는 여유를 보이고 있지요.
일곱분의 연구원이 각각 다른 나라와 주제를, 각각 다른 방법으로 연구했다는 점이 다소 흥미롭네요.

첫번째. 박번순님 『동남아 경제의 발전요인과 특성』
두번째. 이요한님 『ASEAN 경제협력의 발전과정: 성과와 한계』
세번째. 윤진표님 『태국의 경제발전과 국가-시장관계의 변화: 회고와 재평가』
네번째. 전제성님 『인도네시아 자본주의 발전의 구조와 모순』
다섯번째. 박승우님 『필리핀의 발전전략과 국가와 사회관 관계의 재평가』
여섯번째. 노영순님 『말레이시아 국가정책과 화인자본』
일곱번째. 이한우님 『사회주의권 쇠퇴 이후 베트남 사회주의 체제의 지속과 변화: 소유제 개혁을 중심으로』

일단, 첫번째 박번순님의 논문의 경우, 다른 논문과는 달리 동남아 국가들의 경제발전에서 나타난 '공통점에 주목' 했다는 점에서 가장 먼저 읽어야 합니다만,
사실, 동남아 국가들의 발전이래봤자, 우리나라의 발전과정과 대동소이(大同小利) 한지라 크게 구미가 당기지는 않았습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전제성님, 노영순님의 논문 또한 나중에 읽기로 했습니다.
두분의 연구원이 다루고 있는 두 나라의 경우,
인도네시아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족벌주의를,
말레이시아는 다민족국가로서의 민족간의 입김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이죠.
우선, 일반화된 결론을 내리는 것이 필요한지라, 특수성이 짙은 국가들은 뒤로 미루기로 했습니다.

이것저것 핑계를 대어 미루다보니,
결국 이틀동안 두편밖에 못읽었는데요.
윤진표님의 논문에 대한 후기를 써볼 요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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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전경제학

동남아의 경제발전을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용어인 것 같습니다.
발전경제학은 성장의 엔진으로서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인데, 쉽게 얘기해서 국가 주도 하에 경제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뜻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고등학교 사회시간에 배운 '국가개발O개년계획' 이거니 생각하시면 될겁니다. 당시엔, 국가가 세운 큰 안목의 경제발전계획에 기업들이 종속되었다고 보는 편이 맞을겁니다.

언제나 열심히 연구하는 분들은, 우리와 같은 범인들의 머리 속을 말끔하게 정리해주는 능력을 보여주십니다.
필자는 발전경제학의 특징으로,
(1) 개인에 대한 공동체의 우위 (2) 시장에 대한 정부의 우위 (3) 수출산업의 주도, 이렇게 3가지를 꼽고있죠.
아 명쾌하여라.

# 준발전국가 태국?

필자는 위에서 설명한 발전경제학의 개념을 기준으로 태국의 경제 및 사회발전을 고찰하는데,
그의 결론인 즉은, 태국의 국가기구가 저 위의 3가지 역할을 수행하는데 있어 자격미달이었다는겁니다.

사실, 우리도 익히 겪은 97년 금융위기는 태국에서 시작되었죠.
태국에서 동남아로, 동남아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러시아, 브라질로 연쇄적인 금융위기가 일어났었습니다.

90년 중반만 해도 아시아의 호랑이로 인정받던 태국의 경제발전.
이 경제발전을 말아먹은 것이, 능력미달의 국가였다는게 필자의 결론입니다.
발전경제학에서 국가의 역할로 규정해놓은, 통화 외환에 대한 효율적 관리, 시장에 대한 합리적 통제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면박을 주는군요.

# 태국정부만 잘못인가?

물론, 필자가 제가 받아들인 만치 단호한 논조를 취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경제위기의 요인을 내부와 외부에서 찾고자 할 때, 필자는 내부를 취사선택 한 것입니다만,
실제 논문의 대부분을 외재요인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는겁니다.

이 논문을 읽는 독자 조금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 외재적 요인

외재적 요인은 대충 70년대에 미적미적 시작해서, 85년 엔화급등에 탄력받아 급성장하고, 90년대에 최고조에 달했다, 97년에 주르륵 무너지는,
동남아 국가 일반의 공통점을 이해하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태국의 경우,
70년대까지만 해도 주력산업인 농산물을 내다팔아 공산품을 조금씩 사서쓰는 수준이었는데, 80년대에 수출주도의 산업국가로 변모하게됩니다.
농산물 팔아서 공산품 들여오는, 수지타산 안맞는 무역수지의 적자가 큰 압박이 되었겠죠.

그런데, 농산품 팔던 태국기업에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그럼, 돈이 덜 드는 산업부터 시작하는겁니다. 노동집약적인 섬유 의류 산업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외국인의 투자가 시작되는 시점도 바로 여기입니다. 외국인들은, 노동집약산업 보다 진일보한 전기전자 자동차 산업의 생산공장을 태국에 설립하게 됩니다.

이렇게 서서히 공업화되는 태국에 호재가 된 것은,
85년 일본의 엔화급등. 일본의 무역을 통해서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이자, 이제 일본돈까지 비싸게 쳐주고, 주변의 아시아 국가들의 화폐가치 또한 덩달아 오릅니다.

전엔 100원으로 런닝 1개 만들었는데,
화폐가치가 오르니, 100원으로 런닝 3개는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태국 1ㆍ2차 산업에 가격경쟁력이 붙게되면서, 태국 경제가 치솟기 시작합니다.

때맞추어 외국으로 진출하려는 일본의 자동차 업계들이, 대거 동남아에 생산공장을 세우게됩니다. (이때 우리나라 자동차 업계도 진출했죠.)
우리나라 자동차업계에서 생산공정을 하청, 외주하듯이, 외국의 거대한 자동차업계들이 태국에 생산공장을 세우기 시작한겁니다.
물론, 자동차업계 뿐만은 아니구요.

때맞추어, 92년에는 금융이 자유화되면서, 외국의 공장만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돈 자체가 물밀듯이 쏟아지게되죠.

# 대외의존도

이렇게 태국의 과거사를 쭉 읊은 다음,
필자는 문제점을 꼽기 시작합니다.

태국은 한마디로 대외의존도가 굉장히 높다는게 필자의 지적인데요,
산업전체가 외국기업의 하청업체화 되어있고, 금융자유화 이후에는 금융시장 자체도 외국자본이 많아서 국제금융의 변동에 좌지우지 될 가능성이 많다는겁니다.

말은 맞는 말인데, 여기서 당황하는 독자.
이제껏 태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외국의 투자를 주 요인으로 들어놓고,
이제와서 그것이 위기의 주요 원인이라니.

# 금융위기

결론에 이르면, 당혹감은 더 커지게됩니다.
태국경제에 대해서 상당량을 80-90년대의 특징인, 외국기업과 외국자본의 투자의 빛과 그림자에 대해서 언급하고서,
화살은 태국정부로 돌아갑니다.

즉, 태국경제의 특징이 상대적으로 큰 대외의존도라고 설명하고서,
97년 경제위기의 원인은, 대외의존도가 큰 국내경제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태국정부라는겁니다.

자세한 내막이란 이렇습니다.
태국정부는 '통화바스켓제도' 라고 해서, 태국 바트화를 미국의 달러에 고정시켜두었죠.

모든 환율은 對달러 비율로 씌여지잖아요.
달러도 한 나라의 화폐단위일 뿐인데, 기축통화로 사용된다는 것은, 그만큼 안정적이라는겁니다.
이런 안정성을 빌리고자, 태국은 자국의 바트화를 달러에 고정시켜두었죠.
태국돈 25바트 가져오면, 언제든 10달러 주겠다고 한겁니다. 대신, 태국정부는 달러를 많이 모아두었죠. (외환보유고)
25바트 가져와서 바꿔달라면 바꿔줘야하니까요.

그런데, 90년대 초에 달러가치가 급등하게됩니다.
달러에 고정시켜둔 바트화도 급등하게 되는데, 미국경제가 잘된다고 태국경제가 잘되는 것도 아니니, 태국 바트화는 과대평가 되는 시점입니다.

이렇게되면, 바트화 가지고있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쟤들이 정말 달러당 25바트로 돌려줄 능력이 있는걸까 의심하기 시작하죠.

게다가 머리좋은 투기꾼들, 바트화를 대량으로 팔아치우기 시작합니다.
태국의 외환보유고가 심각하게 줄어들기 시작하죠.

가뜩이나 의심가는 상황에서, 외환보유고까지 줄어들게 되니 태국도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는겁니다.
결국, 통화바스켓제도 라는 일종의 고정환율제를 포기하고, 변동환율제를 선택합니다.

바트화는 달러당 56바트까지 뛰었다고 하네요.
1000원짜리가 순식간에 500원짜리가 되어버린 겁니다. 태국국민들 짜증나겠죠.

세계를 요동시킨 외환위기의 시작입니다.

# 타박받는 태국정부

필자는, 달러가치가 상승했을 때, 태국정부가 바트화 환율을 조정했어야 한다고 타박합니다.

이것에 덧붙여, 뭐 여러가지 시장관리 능력에 대해서 덧붙이고 있긴 하지만,
핵심이 금융시장 통제능력입니다.

허허 태국정부 몹시도 억울하겠습니다.
그런데, 왠걸? 97년도에 같은 금융위기를 겪은 우리나라 정부도 몹시 타박받지 않았었습니까.

# 건방지게 말하기

물론, 10년 넘게 경제학만 연구한 경제학자들의 논리를 제가 따라가긴 도무지 역부족입니다만,
적어도 이 논문에서는, 조금 생뚱맞은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상당 부분 언급한 태국경제의 대외의존도는 쑥 빠진 채,
태국정부의 위기관리능력만을 타박하는건 조금 야속해보입니다.

건방진 발언일지 모르겠으나,
필자의 경우 세계화된 경제에서 국가의 능력을 과대평가 하고 있거나,
시각 자체가 국가경제에 갇혀있는건 아닐런지.

# 다시 한번 대외의존도에 대해서

뭐 세계화라는게 그렇습니다.
국가단위에서 이루어지는 분업이 세계단위로 이루어지고,
국가규모의 시장이 세계규모로 커지고,
국가규모의 자본이 세계규모로 커진다는 것을 의미하죠.

대외의존도 운운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겁니다.
세계화 자체가 국가 간의 의존도를 높이는 일인데, 세계화된 국가경제의 문제점으로 대외의존도를 꼽는다는 것은 약주고 병주는 모양새죠.

어차피 모든 생산활동은 사회적으로 이루어지는 것.
대외의존도란 좋은겁니다. 쌀 잘 만드는 국가에서 쌀 만들고, 자동차 잘 만드는 국가에서 자동차 만드는데 얼마나 좋습니까.

진정한 문제는, 의존 자체가 아닙니다.
의존의 주체와 방식이죠.

누가, 무엇을 위해서 의존하는 경제를 만들어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세계화의 빛과 그림자는, 바로 여기에서 기인합니다.
이 부분은 칼럼에서 깊게 얘기해보도록 할께요.

# 낭만이라고는 없는 논문

이 다음엔 박승우님의 논문과 이요한님의 논문을 읽어볼 참입니다.

대학 다닐 적에 숙제를 열심히 안해서 그런지,
논문이란 형식은 굉장히 어색하네요.

하지만, 논문이라는게 형식 자체가 딱딱해서 그렇지,
문제의식 하나는 뚜렷해서 읽기 편하더라구요.

낭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책이라고나 할까요.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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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한편의 논문만 뽑아서 후기를 올렸던 <동남아의 경제성장과 발전전략>의 계속입니다.

저번에도 얼핏 말씀드린 것 같은데,
이 책은 동아시아연구단이라는 컨소시엄에서 낸 논문집이죠.

그런데, 컨소시엄이라는 단체의 성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동아시아연구단은 어떤 계기를 통해서 한시적으로 모여 연구를 진행하는 곳입니다.
그 계기는 단연 동아시아 경제위기구요.

97년 태국에서 시작되어 우리나라, 브라질, 러시아까지 강타했던 금융위기는,
그 이전까지 표준적인 발전모델로 각광받던 아시아 모델에 먹칠을 했습니다.

덕분에, 술자리의 험담에서부터 시작해서 학계의 논문까지,
아시아의 금융위기를 해명(?)하기 위한 무수한 시도들이 이루어졌었죠.
도서관 하나를 채우고도 남을만한 분량이라고 하더군요.

'동아시아연구단'이라 정체성을 밝힌 이 경제학자 + 사회학자 그룹에게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역시도 연구의 시작을 60년대, 즉 동남아 국가들이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경제개발을 시작할 때 즈음인 60년대로 설정했다는 점입니다.

60년대에 시작한 경제를 60년대부터 읊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는데,
실제 동남아(동북아도 마찬가지) 경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해외의 자본에 대해서는 굉장히 비중을 두고있으면서도,
정작 그 뿌리를 쫓지 않는다는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뭐 예를 들면, 80년대 태국의 자동차 산업으로 유입된 자본은 일본의 자동차 산업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 논문들에는 왜 일본의 자동차 산업에서 자본이 나오게 되었고, 그것이 태국으로 흘러들어갔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것입니다.

동아시아연구단이 사건의 소재들을 다루는 비중이란, 기실 그들이 가진 문제의식의 투명한 반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해외자본에 대해서 좀 더 천착했더라면, 논문들이 훨씬 매끄럽게 전개되었을 것 같네요.

오늘은 두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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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승우 교수, 『필리핀의 발전전략과 국가와 사회관 관계의 재평가』

97년 동아시아 경제위기를 따져보는데 있어서, 필리핀의 사례를 분석하는 것은 꽤나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동아시아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대부분이 보였던 반응이,
'국가가 시장에 너무 개입을 한 나머지 시장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이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필리핀은 대부분의 동남아 국가들이 선택했던 '국가 주도의 경제발전'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있던 국가였습니다.
'시장이 제 기능을 발휘하는' 그런 국가였던거죠.

그런 필리핀에서도 경제위기를 피하지 못했다는 점은,
시장만 자유로우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거라던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논리에 찬물을 끼얹는 것인데,
논문의 서두에서는 바로 그런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난감함을 드러냄과 동시에,
어떻게 문제를 풀어갈 것인지에 대해서 밝히고 있습니다.

" 과연 필리핀의 정치경제체제에 구조적 본질적인 한계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와 관계없이 특정의 국면에서 나타난 구체적인 체제 운용의 결함 때문인가. 이와 관련해 우리는 그 원인의 단서를 아무래도 필리핀의 국가체제의 특성, 국가와 경제간 관계, 국가와 계급간 관계에서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

그리고는, 1962년 마카파갈 대통령, 1972년 독재자 마르코스 대통령, 1986년 아키노 대통령, 1992년 라모스 대통령까지,
시기별로 각 정부의 특성을 분석하는 것으로 논문은 이어지고, 박승우 교수는 시기를 꿰뚫는 공통의 한계로서 다음을 결론내리게 됩니다.
필리핀의 정치경제체제는 (1) 약한 국가 (2) 가산제 국가 (3) 이권추구 자본주의 를 특징으로 하는데,
이런 체제 운용 상의 문제점이 필리핀의 자유시장경제를 경제위기로 몰아넣었다는 것입니다.

독자, 대략 난감해지기 시작합니다.

박승우 교수는 '약한 국가', '가산제 국가', '이권추구 자본주의' 라는 개념을 정의하기 위해서만 많은 양의 분량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해서 저자 약력을 들추어봤더니 사회학과 출신이더라구요.)
대략 짚어보면,
'약한 국가'는 미국의 식민지배 때문에 해방 이후에도 필리핀에 정부를 운영할만한 관료집단이 없다는 점을 시사하고있고,
'가산제 국가'는 특정하게 마르코스를 지목한 것인데, 국가기구가 대통령 자신과 그 가족, 그리고 자신의 측근들을 위한 사적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꼽으며,
마지막으로 '이권추구 자본주의'는 기업들이 정상적인 기업활동 보다는 정치인이나 행정관료들과의 연줄 형성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을 뜻하죠.

결국, 동남아의 경제위기를 사회학적인 분석으로 접근하고자 했던 박승우 교수의 시도는,
약하고,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며, 이권만을 추구하는 국가를 탓하며,
손쉽게 시장의 손을 들어주고 마는겁니다.

아 허망하여라.
상당 분량의 개념 설명과 시기적 경제정책의 나열을 슬쩍 제껴놓고 보면,
박승우 교수의 논리 전개란 다소 황량하기까지 한겁니다.

결국, 그가 보여줄 수 있는 전망이란 다음과 같습니다.
" 필리핀은 1986년을 전후하여 시민사회의 급격한 성정과 민주화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1990년대 초부터는 분권화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민주화와 분권화의 새로운 경향은 시민사회의 역량으로 '약한국가'의 한계를 보정하고, 시민사회와 국가가 손을 잡고 개혁과 사회발전을 추구하는 새로운 발전전략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하겠다. (중략) 그러나,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후속 연구의 과제로 남겨놓을까 한다. "

박승우 교수의 말씀대로라면,
필리핀 정부가 지적받은 세가지 잘못을 깨우치고 민주화와 분권화를 이루는 것이 순조로운 경제발전의 충분조건이라는건데,

저로선 쉽게 동의하기는 힘들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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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요한 연구원, 『ASEAN 경제협력의 발전과정: 성과와 한계』

이요한 연구원의 논문은, 그가 서론에서 밝히고 있듯이,
" ASEAN 창설 이래 경제위기 이전까지 ASEAN 협력모델 또는 지역협력이 역내 교역 및 투자비중을 증가키시지 못했던 원인을 살펴보고, 동남아 경제위기의 발생을 사전에 방지하지 못한 한계를 밝히고자 " 하는 것입니다.

이요한 연구원의 글은, 제가 앞서 비판했던 두편의 논문들에 비해 다소 낫다고 판단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접근방식이 ASEAN을 비롯해서 동남아를 둘러싼 국제기구들에 대해서 일종의 세력지도를 그려내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세계무역기구(WTO)가 추진하던 세계화 방식은 큰 틀로 국가들을 묶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이름도 라운드(round)였죠. 우리에게 잘 알려져있던 우루과이라운드 또한 국제적인 협정으로 무역의 자유화를 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각양각색의 나라들이 하나의 협정에 동의한다는게 그리 만만하지 않은 법. 요즘은 FTA (Free Trade Area 맞나?) 라고 해서 국가간 협정이 더 인기인 모양입니다.

개별적인 무역협정을 하려면 이왕이면 가까운게 좋겠죠. 그러다보니, 일종의 블럭화가 이루어집니다.
북미대륙에서 한 집단, 유럽에서 한 집단, 아시아에서 한 집단.
(물론, 우리나라에서 이슈가 되고있는 한-칠레 FTA/한-일 FTA 가 보여주듯이, FTA 라는 것이 아무리 개별적인 무역협정이라지만 꼭 국지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NAFTA, EU, ASEAN, APEC, ASEM, 등등 수많은 협정, 회의들은 모두 그런 연유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ASEAN 은 동남아 국가들의 경제협력체로 시작했죠.
그 시작은 1967년이라고 되어있는데, 67년이라는 숫자보다는 그 당시 시대적 배경을 그리는 것이 더 낫습니다.
동남아 국가들이야 이 나라 저 나라의 식민지가 되었던 터, 2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45년 이래로 각각의 진통을 겪고 이제 막 기지개를 켜는 시기이겠거니 생각해봅니다.

논문을 보면, ASEAN 의 시기적 협력모델이라 해서 특혜무역협정(PTA), 산업협력(AIP, AIC, AIJV), 등등 여러가지가 나옵니다만,
지금의 ASEAN 에서 보시듯이 잘 안됐다는게 중요합니다.

경제규모도 비슷하고, 산업구조도 비슷하고, 무역 또한 회원국 전체가 비회원국인 일본이나 미국에 의존적이었죠.
모여서 뭔가 해보려고 했지만, 너무 고만고만했던겁니다. 그 왜 공부모임을 만들어도, 누군가 좀 뛰어난 한명이 있어야 하듯이.

물론, ASEAN 에도 기회가 있었습니다.
90년초 동구권 몰락과 함께 세계질서가 재편되면서, 95년에 베트남이, 97년엔 미얀마, 라오스가 가입을 했고,
때를 맞추어 경제협력이나 공동사업모델도 추진하게됩니다.

뭐 중요한건 또 잘 안됐다는겁니다.
때가 늦었다고 해야하나. 북미대륙엔 NAFTA 가, 유럽대륙엔 EU 가 그들 앞을 가로막고 있었던겁니다. ASEAN 은 갈등했겠죠.
그리고, ASEAN 의 고뇌와 선택이 새로운 기구의 탄생으로 이어집니다.
북미대륙과의 연계가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확한 명칭은 저도 모릅니다.) 으로, 유럽대륙과의 연계는 ASEM(아시아유럽정상회담?) 이 되는거죠.

참 그럴싸한 얘기 보따리입니다만,
중요한건 여기서부터입니다. ASEAN 을 둘러싼 APEC과 ASEM의 이해관계죠.
이쯤되면 연구원의 얘기도 참 재미가 있습니다.

ASEAN의 경우는 자블록의 산업에 그다지 경쟁력이 없기 때문에, ASEM, APEC 회의를 통해서 최대한 선진국들의 기술과 자본을 유치하려고 합니다.
반면, ASEM, APEC의 선진국들은 동상이몽. 모든 면에서 부족할게 없는 그들은, 관세없이 통과 가능한 새로운 시장을 찾을 뿐이구요.
그러다보니, 96년에 출범한 ASEM 은 아직도 사무국 하나 갖추지 못한 정상회담 수준에 머무르고 있고, APEC에서는 강경한 미국과 조심스런 ASEAN 국가들의 실갱이가 계속된다는겁니다.

이 대목에서 이요한 연구원이 그리는 밑그림은 ASEAN과 동북아의 협력입니다.
그런데, 밑그림이라는게 참 쉽지않죠. ASEAN 과 BRICs로 총칭되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과 같은 신흥 국가들, 그리고 한국, 일본까지.
이 국가들의 행보가 어찌될지는 좀 더 두고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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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번순, 『동남아 경제의 발전요인과 특성』

은 지금 읽는 중입니다.
사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은 '자유무역'. 그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오래 된 연인들을 보면 " 너희 어떻게 만나게됐어? " 물어보고 싶잖아요.

마찬가지로,
시대적 배경은 바야흐로 1970년대. 자국의 자본을 내보내야 했던 국가들과, 자본이 없어 경제개발을 하지 못했던 국가들의 '관계맺기'란 더할 나위 없이 궁금하고 중요한 얘기들인겁니다.

박번순 연구원께서 어떻게 문제를 풀어갈지 조금 기대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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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번순 연구원의 논문. 아 상당히 재밌습니다.

가장 메인(main)이 되는 논문이니 만큼, 주제 자체도 명확하고 여타 논문에 비해 깔끔하게 쓰여졌네요.
얘기의 흐름이 명확하게 보인다고 할까요.

박번순 연구원의 논문은 순서적으로도 제일 처음입니다.
전 마음 가는대로 여기저기 찾아 읽다가 이제서야 박연구원의 논문을 읽었는데, 연구단의 다른 논문들을 관통하는 핵심의 논리는 가장 첫 논문인 박연구원의 논문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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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학설이니 뭐니 하는 사회학의 방법론은 잘 모르겠지만,
'서론 - 동남아 경제의 발전 과정 - 동남아시아의 성장 요인 - 동남아 경제의 성장전략과 파생된 문제점' 의 순서로 전개되는 박연구원의 논리는 아주 표준적이기까지 합니다.
동남아 경제발전사에서 공통된 발전요인을 찾고, 거기서 꼽아두었던 문제점들을 모아서 정리하죠.

박연구원의 꼽는 동남아의 경제발전과정은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중학교-고등학교 거치면서 사회시간에 익히 들어온 내용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수출지향적인 산업구조, 높은 저축률이 기반이 된 높은 투자율, 등등.

(저축율이 투자에 미친 영향을 읽다보면, 어렸을적부터 교육받은 저금통 문화가 생각납니다.
부모님께 받은 용돈을 저금하는 영철이. 훌쩍)

여기에 한가지 추가된다면, 동남아 경제에 일본이 미치는 영향 정도일거구요.

물론, 이 부분은 두번째 목차인 '동남아시아의 성장 요인'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연구원이라는 직책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죠.
박연구원은 여러 도표들을 예시로 전술(前術)한 공통점을 구체화시킵니다. 70년대 동남아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보이고있는 상당한 규모의 수출량, 경상수지의 흑자와 외채, 등등.
한마디로 동남아 국가들은 '모두', 외국에서 돈을 빌려 공장을 짓고 노동자들 고용하고 상품 만들어 열심히 팔았다는거죠.

#
그런데, 여기서 잠깐.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동남아의 경제발전사를 듣고서 동북아 국가 한국의 경제발전사를 떠올릴 수 있다는 사실은,
동남아와 동북아 경제구조가 나름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합니다.

사실, 동남아와 동북아의 경제구조는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많죠.
박연구원 또한, 남과 북의 차이점으로 국가주도경제이나 시장주도경제이냐를,
남과 북의 공통점으로는 빠른 속도의 자본축적, 공업화, 해외시장의 활용을 꼽고 있구요.

그런데, 저는 이 부분에서 박연구원에게 약간의 아쉬움을 느낍니다.
그가 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1970-80년대의 동남아 경제발전과정을 통해서 90년대 후반의 경제위기 원인을 찾는 것이 논문의 목적이라면,
위의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더 부각되어 서술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동아시아의 경제위기라는 것이, 동남아만의 문제가 아니었을 뿐더러,
동남아에서 시작된 경제위기의 여파를 동북아 역시도 전혀 막아낼 여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실제, 동남아의 특징으로 꼽히고 있는 외국인 투자와 높은 금융개방도, 시장자유화의 병행이란,
동남아만의 특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90년 경제위기를 지난 후 동남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에서 완성되어가고 있는 경향이고, 동아시아 뿐 아니라 남미, 러시아를 비롯한 소위 신흥개발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입니다.

굳이 차이를 들자면, '시기적인 차이'가 전부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동남아 국가들이 60년대부터 적극적으로 해외투자를 유치했다면, 동북아 국가인 한국의 경우는 90년대에 걸쳐서야 본격화되었으니까요.

하긴,
동아시아연구단이라는 컨소시엄 자체가,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을 연구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배운 동아시아 성장전략이란 그리 눈에 띄는 내용은 아니었습니다만,
주목할 만한 내용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동아시아 경제에 일본이 미치는 영향이 그것입니다.

책을 읽다가 눈이 휘둥그래지는 도표가 하나 있었으니,
53쪽에 있는 동아시아의 투자 및 무역관계 라는 그림도표입니다.

이 도표에서는,
미국-일본-NICs(동북아 신흥공업국: 한국, 대만)-ASEAN(동남아 신흥공업국: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이렇게 4개의 집단이 가지는 무역구조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요,
연구원의 논문을 직접 들어보이겠습니다.

" 무역과 관련하여 동남아 경제의 1985년 이후 구조는 동아시아 전체의 구도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즉, 일본에 이어 아시아 신흥공업국(NICs)들이 동남아에 본격적인 투자를 하기 시작한 1980년대 말과 90년대 초의 동아시아의 투자 및 무역관계를 나타내주고 있다. 이 시기에 NICs는 일본으로부터는 기술과 자본재를, 미국으로부터는 자본재를 수입하고 있다. 동시에 이 시기에는 NICs의 對ASEAN가 시작되어 자본과 기술이 ASEAN 으로 진출한다. 이와 같은 구조 속에서 NICs와 ASEAN의 생산제품은 미국, 일본, NICs로 수출되는 것이다. 미국과 동남아의 관계가 단지 동남아의 시장으로서 미국의 존재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이 도표가 시사하는 바는,
박연구원이 세번째 목차인 '동남아 경제의 성장전략과 파생된 문제점'에서 꼽고있는 첫번째 문제이기도 합니다.

동남아가 미국과 일본에서 자본재를 수입하고, 그 자본재로 만든 상품을 미국과 일본, NICs로 수출했다는 사실을 두고,
" 와 엄청난 경상수지 흑자네. " 라고 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이 과정은 동아시아 경제가 일본과 미국이라는 큰 기업체의 하청기업 형태로 자리잡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연구원은 '하위구조'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원청기업과 생사를 같이 하기 때문에 하청기업이라고 합니다.
자동차 만드는 원청기업이 타이어/운전대/차체 이렇게 세가지 부품을 하청기업을 통해서 조달한다고 했을 때,
원청기업이 어려워 자동차 안만들면 하청기업은 당장 일감이 없어지는 것이니까요.

원-하청기업의 이런 이해관계를 두고,
원청기업이 하청기업 먹여살린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동남아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 80년대 일본은 자동차 산업을 중심으로 동남아 경제에 대규모로 생산 및 공정기술을 이전하고 자본을 공급하는데,
이 과정을 통해서 동남아에 고용이 창출되고 경제규모가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성장은 어디까지나 일본산업의 이해득실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동남아의 경제활성화를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발전형태를 '안행형태(雁行形態) 발전'이라고 한다는군요.
일본은 선두에 서서 산업을 발전시키고 경쟁력이 저하되면 2선에 있는 국가가, 3선에 있는 국가가 이를 개발시키는 것입니다. 일본-한국, 대만-ASEAN 으로 산업이 이동해갔다고 하네요.

그 외에 박연구원께서 지적하고 있는 동남아 경제의 취약한 기술기반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죠.

#
박연구원의 논문은 동남아의 왜곡된 경제구조들을 짚어내는 것으로 끝납니다.

적절한 비유가 될런지 모르겠지만,
한 집안에서 대학은 맏이 한명만 갔던 개발시대 농촌의 풍경이 생각났습니다.

90년대 경제위기를 지난 발전과정을 토대로 검토하겠다던 박연구원이,
동남아 경제의 왜곡된 구조를 밝히는데 그치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맏이 뒷바라지 한다고 대학 진학도 못하고 부모님 농사일만 도왔던 막내에게,
넌 왜 이리 멍청하냐고 다그치는 것과 같지는 않은지 생각해봤습니다.

막내가 늘 맏이가 입던 옷을 물려입었고, 맏이보다 달걀프라이를 하나 덜 먹었고, 맏이가 교복입고 등교할 때 경운기 몰고 논에 나갔느니 어쨌느니하는 신파적 얘기며,
농촌에 대한 국가의 투자가 부족해서 농촌엔 희망이 없었고, 신동 나서 도시 대학에 진학해야 집안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었던 그 당시의 경제적 구조 때문에, 막내는 맏이의 대학진학을 위해 농사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매끄러운 분석까지는 좋았는데,

어째 마지막은,
그 동생 그래도 대학 졸업하고 넥타이 맨 맏이 덕분에 집안에 TV, 라디오도 들여놓았더라,
미적분도 못하고, 영어도 못읽고, 농사일엔 별로 희망도 없더라..

뭐 이렇게 끝맺는 것 같아서요.

#
아쉬움이 적지 않지지만,
동아시아 신흥공업국 개발상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엔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일본이나 미국경제의 개발상도 볼 생각입니다.
아니, 기회를 만들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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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4-12-05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요건 프린트해서 읽어 봐야겠네요. 퍼가겠습니다. 추천

sb 2004-12-05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족적인 마이리뷰인지라 쑥스럽네요. 감사합니다.
 
그대가 본 이 거리를 말하라 - 서현의 우리도시기행
서현 지음 / 효형출판 / 1999년 9월
평점 :
절판


1.

제 고향은 전라남도 광양인데, 서울로 이사온 지는 스무해정도가 되었네요.
서울에 살면서도 학창시절에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일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학교 부근이었던 청량리며,
영화를 보기 위해 나섰던 종로,
종로에서 밥을 먹기위해 찾았던 인사동,
학교를 휴학하고 다녔던 회사는 테헤란로에 있었고,
기획사 일을 하면서부터는 동대문과 영등포를 쏘다녔죠.

연극을 볼 때는 대학로를,
가끔은 친구 편의에 따라 신촌까지 멀리 나가기도 했고,
몇해전 생일엔 여의도공원도 한번 다녀왔네요.

종로보다는 한적한 강남으로 영화를 보러 갔던 적도 있었고,
한강다리야 아무 생각 없이 수도 없이 건넜구요.

서울 사시는 회원분이라면 모두 익숙한 지명들일겁니다.
저에게 역시 익숙한 지명, 이곳에 대해서 좀 더 듣고싶었어요. 우연히 만나 친해진 친구의 어린시절 얘기처럼 궁금해지는겁니다.

2.

「현건축」소장이며 건축가인 서현씨의 <그대가 본 이 거리를 말하라 - 서현의 우리도시기행> 은 그렇게 읽게되었습니다.
조경학을 전공한 누나의 책장을 염탐하다 슬쩍 꺼내본거죠.

코팅된 종이에 시원스런 활자들, 컬러로 된 사진들.
머리를 좀 식히자 했습니다.

그런데, 뛰어난 만남을 풀어내는 저자의 말쏨씨에,
저는 길거리 약장수에게 사기당한 마냥 머리 속이 더 복잡해집니다.

머리를 식히기에,
'인문적 건축이야기' 라는 저자의 얘기는 너무 흥미진진했습니다.

3.

위에서 제가 쏘다녔던 거리만이 있는건 아닙니다.
제가 몇번이가 스쳐지나갔을 뿐인 서울의 거리들도 몇몇 더 있고, 수원, 전주, 부산, 광주의 거리도 있습니다.

멀게는 조선시대 후기까지 거슬러올라가,
이 거리가 변해온 모습을 그려냅니다.

종로에서는 금난전권이, 세종로에서는 아관파천이, 수원 화성에는 조선임금 정조가 등장합니다.
역사시간에나 줄줄 외웠을법한 얘기들이 다소 지루해질 즈음이면,
건축가 서현씨는 파스텔톤의 삽화로, 선명한 컬러 사진으로 달래줍니다.

4.

만약, 이대로 흥미진진하기만 했다면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끝났을 터.
가볍게 머리를 식히고, 기억에 남은 몇몇 얘기꺼리들은 여자친구와 그 거리를 걸을 때 회상하는 듯한 표정으로 폼나게 던져주면 되는겁니다.

그런데, 이게 만만치가 않습니다.
서현씨는 예의 재치있는 만남으로 덩치 큰 건물과 간판으로 가득한 오늘의 거리를 얘기해주는데요,
이 얘기라는게 그리 만만치가 않습니다.

이 주위무관심쟁이에게, 건축이라는 것이 그저 설계도면이나 그리고 돈 잘버는 직업이 아님을 가르쳐주었고,
보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돌이 제 생각마저도 구분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고,
재개발 사업엔 철거민들의 설움이나 야박한 투기꾼의 논리 외에 더 고민할 부분이 있다는 것도,
마지막으로, 전통의 계승이라는 해묵은 주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충고해주었습니다.

건축으로, 음악으로, 미술로 머리를 식혀보겠다는 생각일랑 멀리 던져버려야 겠습니다.
누릴 수 있는 문화일지언정, 제 편견 만큼이나 가벼운 것은 절대 아닐테니까요.

5.

서현씨는 '시대의 정신을 거리에 아로새기는 것'이 건축가의 몫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도시에 침을 뱉고, 건축가에게 침을 뱉는 것이 거리를 거니는 시민들의 몫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불현듯이 생각난 사람.
저자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연극 감상법>을 써낸 그 연극인.
그 연극인도 연극에 침을 뱉으라고 얘기했었는데.

책을 통해 하소연하는 연극인과 건축가의 얘기는,
40년만에 따라잡았다는 산업자본주의에는 뒤쳐졌지만, 정보화시대에는 뒤쳐지지 말자던 우리시대의 슬로건과 교차됩니다.

적절치 않을 것 같아, 더 긴 얘기는 그만 두도록 하겠습니다.
여튼, 그들은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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