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슘페터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서울대 선정 만화 인문고전 50선 29
손기화 글, 김강섭 그림, 손영운 기획 / 주니어김영사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죠세프 알로이스 슘페터, 한서출판, 이영재 번역, 1979년

# 슘페터에 대해서

1883년, 체코슬로바키아 출신. 영국 상류 사회에서 성장.
1906년,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법률과 경제를 전공.
1908년, 『이론 경제학의 본질과 주요 내용』발표 (순수 경제학의 방법론)
1909년, 체르노비쯔, 그라쯔 대학에서 경제학 강의.
1912년, 『경제 발전의 이론』발표 (정적 발전이론)
1914년, 『학설 및 방법론사의 제 시대』발표 (이론체계 완성)
1918년, 오스트리아 공화국에서 경제정책 담당
1927년, 하버드 대학에서 강의
1939년~43년, 『경제순환론』,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발표, 『경제 분석의 역사』집필
1950년, 사망

# 학문적 성취

- 초학파적 신념
- 이론과 정책과의 엄격한 구별 : 매커니즘과 정책, 이론경제학과 사회경제학
-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 혁신

# 경제사적 위치

- 고전파: 영국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의 발흥 / 마르크스: 영국식 자본주의의 자기 붕괴와 사회주의로의 전화 / 케인즈: 영국식 자본주의의 실패와 관리 자본주의의 특징 / 슘페터: 영국식 자본주의의 쇠퇴와 미국식 자본주의의 발전
- 1940년대 케인즈와의 경합, 1970년대 이후 조명: 포브스 “케인즈가 아닌 슘페터가 세계화 시대의 길잡이”

# 마르크스 학설

- 마르크스의 이론(노동가치설, 잉여가치론, 축적 이론, 자본 집중론, 대중 궁핍화론, 산업 예비군 이론, 공황 이론, 제국주의론)을 비판.
- 경제체제의 유기적 발전론은 인정
- 경제적 실패(공황)와 경제적 성공(독점)

# 자본주의는 잔존할 수 있는가

- 지난 시기의 발전율은 자본주의 경제체제 때문인가 : 기업가의 창조적 파괴(혁신), 독점은 생산량 극대에 가장 유리한 경제 발전의 촉진제
-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이 발전율을 지속시킬 수 있는가 : 케인즈 이론 비판, 경제발전이 기업가의 기능을 무용화 (혁신이 독점을 낳고, 독점이 혁신을 죽인다), 독점화에 따른 중산층의 몰락으로 체제 옹호 계급을 추방, 주주자본주의와 기업가 정신의 상실, 자본주의적 심성(합리화가 비판세력을 형성)
“자본주의는 그 성공에 의해 멸망하고 있다는 자기 역설적인 결론” “합리주의의 반역”

# 사회주의는 작용할 수 있는가

-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와 생산 과정의 사적 관리, 신용 창조
- 사회주의 체제가 논리적으로 모순 없이 기능할 수 있는가 : 가능
-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경제 능률의 비교 : 완전경쟁체제보다 독점경제체제가 우월, 사회주의의 장점(과잉 생산의 억제와 낭비 절감, 실업 배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충돌 해소에 의한 경제 능률의 향상, 조세의 폐지)
- 사회주의 사회에서 동기, 책임 및 관리의 문제 : 경제적 동기로서의 사회적 명성과 도덕적 압박
- 과도기의 문제: 성숙 상태에서의 이행, 미성숙 상태에서의 이행

#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 사회주의 사회에 참된 민주주의가 존재할 수 있는가 : 소련형과 영국형. 민주주의는 자기완결성이 없는 제도적 장치로서 사회주의와 필연적 관계가 없다.

# 사회주의 정당의 역사적 개관

- 종단 : 토머스 모어에서 마르크스까지
- 횡단 : 소련에서 영국까지
- 관리 자본주의 경향 :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인한 점차적인 사회주의화

# 평가

- 마르크스와의 공통점과 차이점: 하부구조와 상부구조, 혁명과 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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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공감 - 김형경 심리 치유 에세이
김형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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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자신을 비롯해 가족, 연인과 배우자, 친구와 직장상사, 등 일반적인 인간관계에 대해, 기대·불안·시기·실망·의심·미움·두려움·자신감·죄책감과 같은 감정에서 의존·중독·피학·가학과 같은 태도에 이르기 까지, 실로 모든 갈등을 설명하고 있는 심리 치유 에세이. 분석의 틀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매우 일정하고 안정적(?)이다.

- 김형경의 글을 통해 제시되는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기본 틀은, 사람의 일생을 유아기· 청년기·장년기·노년기, 네 단계로 분류해, 청년기·장년기에 겪는 감정과 태도의 원인을 유아기로 설명하는 것이라 보여 진다. 이해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자신의 감정과 태도는 ‘네 안의 미성숙한 아기’로 설명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유아기에 본능과 욕구에서 기인하는 원초적인 갈등이 있는데, 이 갈등은 육체적, 사회적으로 성장하는 청년기에 억압되고 내면화되어, 왜곡된 방식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 피치유자는 ‘왜곡된 방식의 감정 표현’을 인지하는 것을 통해서, 미성숙한 채로 내면화된 자신의 유아기적 본능과 욕구를 만날 수 있는데, 치유의 핵심은 어렵게 재회한 이 본능과 욕구를 ‘솔직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김형경은 이 과정을 연금술에 비유하고 있다. 유아기의 연금술이 ‘무의식적인 본능과 부모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청년기·장년기의 연금술은 ‘본능에 대한 의식적인 이해와 자신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 진다. (아래는 간단한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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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아기의 본능과 욕구에서 기인하는 원초적인 갈등

① 성적 욕망 ② 공격성 ③ 분노 ④ 애착 ⑤ 박해불안 ⑥ 양가감정 ⑦ 분리불안 ⑧ 대상항상성 ⑨ 거세불안 ⑩ 전능감

- 시기심: 최고가 아니면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의 표현.
- 미움: 투사적 동일시. 약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전되는 경우가 많다.
- 게으름, 무기력, 비아냥: 억압된 분노의 소극적 표현.
- 자신감: 충분히 사랑 받을 때 형성된다.
- 죄책감: 오이디푸스적인 욕망에 대한 불안감. 초자아를 낮추고, 본능을 키우면, 결과적으로 자아는 강해진다.
- 자살: 죽음은 생존 욕망과 동전의 양면이다.
- 의존: 그가 나에게 얼마나 잘 해주는가가 판단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 중독: 중독 상태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하라.
- 피학: 사랑을 덜 받아 부모의 인정과 지지를 기대. 비전과 확신으로 설득하라.
- 가학: 3~4세 무렵, 부모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아지는데, 이를 부모가 해결해주지 못하면 파괴적 성향을 떠올리게 된다.
- 자기애: 성욕을 억제하는 것은 지나친 자기애. 성욕은 마음과 관계가 깊다. 유아적 전능감에서 비롯. 자기 비하와 동전의 양면.

# 본능에 대한 의식적인 이해와 자기노력

1. 원인은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라. 진정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
2.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관계를 맺어야 한다. 자신, 가족, 사랑, 이별에 대한 환상을 거두라.
- 자신의 부정적인 모습도 사랑하라
-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
- 나의 욕망은 현실적인가.
- 모성애나 평온한 가족은 현대적 개념일 뿐이다.
- 가족은 갈등을 협상하고 해결해야 하는 사회적 공간.
- 싸우는 부부는 건강하다.
- 이별은 관계를 거두는 것일 뿐이다.
- 이별 이후의 슬픔에 대해서 지켜보아 주어야 한다.
3. 치유의 과정을 이해하라. 정상적인 애도 과정(분노, 부정, 타협, 우울, 수용)과 일시적 퇴행 현상(우울함)은 정서의 성장을 낳는다.
4. 편지쓰기, 일기 처럼, 지속적으로 자각을 표현해야 효과가 있다. 일기는 심리적 산소마스크.
5. 분노는 적대감 없이 표현하라.
6. 경제적으로 독립하라.
7. 문제나 갈등을 회피하면, 생을 후미진 곳으로 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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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길 영화의 길
방현석 지음 / 실천문학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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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영화의 차이점은 궁극적으로 매체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은 언어를, 영화는 영상과 음향을 매체로 한다. 이에 따라, 소설이 관념적이고 상징적인 방식으로 심상을 전달한다면, 영화는 감각적이고 도상적인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소설은 복잡하고 추상적인 심리 표현을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반면, 영화는 시각화의 어려움에 따라 일정정도 심리 표현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영화는 이미지의 현실성이 강한 설득력으로 작용하는 반면, 소설은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서) 논리력을 요구한다.

관객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소설의 관객이 텍스트를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통해 능동적으로 해석하고 참여할 수 있다면, 영화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감독이 대신함에 따라, 상대적으로 관객을 수동적이고 정태적으로 만드는 경향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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ㄿㄷㅍㅇ 2020-10-07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ㅇesfcklmeeeeeeeeeeeeeeeeeeeeeeeeeeeeeeeeeeeeewfr

wowrd 2020-10-21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렇군요..
 
랍스터를 먹는 시간
방현석 지음 / 창비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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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랍스터를 먹는 시간, 소설과 드라마

이원익 연출, 권민수 극본의 TV문학관 <랍스터를 먹는 시간>은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하고 있는 두 편의 소설 <랍스터를 먹는 시간>(방현석)과 <터널을 벗어나며>(김미라)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묶어서 연출하고 있다.

옴니버스(omnibus)란 본래 ‘많은 사람들이 함께 탈 수 있는 자동차’를 뜻하나, 영화나 연극에서는,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몇 개의 독립된 짧은 이야기를 동시에 보여주는 양식을 지칭한다.
다른 소재, 다른 플롯, 다른 서사구조로 쓰인 개별 작품들의 만남은, 그것만으로도 무척 흥분되는 일이다. 팔레트 위에 색을 만들 때, 더 많은 물감을 섞을수록 색감이 진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별 작품들이 이루어낸 교집합은, 주제를 강조할 뿐만 아니라, 개별 작품들의 구성요소 또한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하지만, 옴니버스 양식이 개별 작품의 나열 혹은 물리적인 결합으로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개별 작품들은 하나 이상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연출 의도에 따라 수많은 조합을 이룰 수 있다. 그 결과, 옴니버스가 만들어 내는 다채로운 색감이, 오히려 기존 작품에 새로운 해석을 부여하는 단초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TV문학관 <랍스터를 먹는 시간>은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난 후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펼쳐지는 전쟁”에 초점을 맞춰 옴니버스를 구성하고 있다. 드라마가 위와 같은 중심축을 설정함에 따라, 원작소설 <랍스터를 먹는 시간>의 인물 및 갈등구조에도 약간의 지반변동이 발생한 것으로 보여 진다.

원작소설 <랍스터를 먹는 시간>은 ‘상처 받은 개인 간의 연대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상처’의 배경은 다양하다. 그것은 전쟁이기도 하고, 노동 현장이며, 가정이기도 하다. 같은 배경 속에서도 상처는 또한 다양하다. 누군가는 전쟁에서 청춘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빼앗겼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을 잃었다. 누군가는 노동 현장 속에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빼앗겼고, 누군가는 인격적인 모욕을 당해야 했다. 이렇듯, 원작소설은 다양한 개인의 상처들을, 몇몇 사회적 공간(전쟁, 노동 현장, 가족) 속에서 재조명하는 방식으로, 상처들이 서로 만나고 위로받도록 하고 있다. 소설의 인물과 사건, 배경의 유기적인 배열과 구성이 이러한 주제의식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TV문학관 <랍스터를 먹는 시간>의 상처는 오로지 전쟁만을 배경으로 하는 것으로 보여 진다. 이것은 전쟁이 남긴 상처를 강조하고 싶었던 연출자의 기획의도를 반영한 것이며, 이에 따라 소설 <랍스터를 먹는 시간>이 가진 구성요소들은 취사선택 내지는 축소되는 경향을 보인다. 아래에서는 이러한 경향을 구성요소별로 살펴보도록 한다.

# 인물

인물 구성 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건석’과 ‘건찬’에게서 나타난다.
우선, 극중 건석의 역할이 다소 약화되었다. 등장인물로서의 비중은 큰 변화가 없지만, 사건을 전개하고 갈등을 드러내는 적극적인 역할은 줄어들었다. 원작소설의 건석은, “개인의 욕망 때문에 형의 삶을 외면했던 과거”를 가진 인물이다. 베트남에서 건석의 일상은, 끊임없이 형과의 기억, 즉 자신의 상처를 불러낸다. ‘兄’의 기일이 쓰여진 달력, 아버지와 형이 함께 나온 바랜 흑백사진이 배치되었고, 베트남의 욕조는 동네 뒷산과 시골집을, 베트남 노동자들에게 보낼 전보는 D중공업에서 온 전보를 상기시킨다. 그리고, ‘보 반 러이’에게 전해들은 베트남 전쟁의 참상과 그의 연인이었던 ‘이니’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건석이 노동조합 소식지를 통해 읽은 D중공업의 파업투쟁과 현장에서 죽어간 형에 대한 기억으로 이어지게 된다. 각기 다른 배경과 다른 원인의 상처를 가진 두 사람이 조우하며 연대의 단초를 마련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드라마에서 건석의 상처는 뚜렷하지 않다. 어린 시절 건찬과의 기억이 종종 오버랩 되긴 하지만 극중 효과가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하는데, 이것은 극중 건찬(우옌 카이 호앙)의 존재가 희미하기 때문이다. D중공업에서 보내진 전보와 파업 현장을 통해서 드러났던 건찬의 사건들은 드라마에서는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다.
원작소설에서 건석과 보 반 러이의 상처를 이어주는 건찬의 역할이 사라진 결과, 건석은 김 부장이나 보 반 러이와 같은 참전 세대의 상처를 매개하고 수긍하는 역할로 다소 축소되었고, 이것은 ‘베트남 전쟁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긴 상처‘를 강조하고자 했던 연출의도가 반영된 결과라고 보여 진다.

# 사건

사건 구성 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D중공업의 파업에서 나타난다.
원작소설에서, 베트남 노동자들에게 보낼 전보문안의 번역을 망설이는 건석은, 건찬이 일하는 공장으로부터 받은 전보를 기억해낸다.

건석: “니가 뭔데 우리 엄마를 괴롭혀!”
건찬: “난 이 공장이 좋다. 넌 내 이름이 뭔지 아니? 여기서는 모두 내 이름을 부르지. 최건찬. 물론 나에게는 먼저 우옌 카이 호앙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째보, 베트콩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되뇌었다. 우옌 카이 호항. 하지만 최건찬인가 우옌 카이 호앙인가 하는 건 중요치 않아. 난 내 이름을 비겁하게 만들며 살아가지 않아.”


‘전보 사건’은 그간 감추어져 있었던 건찬의 캐릭터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건이기도 하고, 건석과 건찬 사이의 갈등이, 탄생배경을 둘러싼 가족 간의 갈등에서 노동권을 둘러싼 사회적인 갈등으로 옮아가는 사건이며, 결국, 전보에 반발해 사직서를 제출하는 보 반 러이가 건찬을 통해 건석과 만나게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렇게 만난 건석과 보 반 러이는, 각각 D중공업 노조의 파업투쟁과 혁명군대의 대부대작전이라는 사건을 나란히 전개하며, 형 건찬과 연인 이니를 불러낸다. 개인의 공간에서 시작된 상처가 사회적 공간으로 옮아가고, 또 다시 개인의 공간으로 돌아가지만, 이제 더 이상 사회와 개인의 구분이 무관한 ‘연대감’에 이르는 것이다.
반면, 드라마에서는 위의 두 가지 사건이 배제되어 있어, 후반부에 이를수록 건석 보다는 보 반 러이가 사건과 갈등을 주요하게 전개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여 진다.

# 배경

원작소설에서 건석의 기억에 따라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던 배경 구성은, 드라마에서는 베트남에 좀 더 비중을 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베트남 전쟁이 남긴 상처’를 중심으로 하는 주제의 설정에 따라 소설 내 사건을 취사선택한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원작소설에서는 한국과 베트남이라는 두 개의 공간, 그리고 각각에서 다시 일터와 가정, 사회로 나뉘어 지는 공간 구획이 필수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출생국가를 제외하면 아무런 기억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 건찬과 보 반 러이가, 한국과 베트남이라는 공간적 한계를 뛰어넘어 서로 마주할 수 있는 것은, 한국과 베트남 모두에 일터라는 배경이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일터와 베트남의 일터가 수평으로 만나는 지점에서 기억의 연대가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드라마에서는 베트남 전쟁을 중심으로 사건을 선택하였고, 자연스럽게 전쟁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한국 내 배경들은 배제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공백은 또 하나의 단편 <터널을 벗어나며>의 70년대 한국을 통해서 메워지고 있다. 물론, 드라마는 한국이나 베트남이라는 ‘지리적’ 공간배경 보다는 참전세대의 ‘사회적’ 공간배경에 더 집중하였다고 할 수 있지만, 극중 ‘삼촌‘의 자살사건이 베트남이 아닌 한국에서 일어났다는 점을 볼 때, 한국이라는 공간배경은 필수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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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가짜, 대중문화와 센티멘털리즘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01
김혜련 지음 / 책세상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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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과 ‘대중적인 것’

‘대중’이라는 단어는, 의도에 따라 다양하게 이해될 수 있다. 형식적으로는, 공식적인 지위에 있지 않은 사람들을 모두 지칭(popular)하는 것이지만, 평가적인 관점에서는, 주체적이지 못하고 합리적이지 못한, 수동적이고 종속적인 집단(mass)을 일컫기도 하였다. 흔히 ‘대중적인 것’이라 함은 평가적인 의미를 띠는 경우가 더 많았다.

또한, ‘대중적인 것’이라 함은, 한꺼번에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의 방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은 기술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지만, 역으로 전달되는 정보의 내용, 대중의 취미와 가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중적인 것’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위의 두 가지 지점을 모두 고려해야 할 것이다.

# 문화의 예술화와 예술의 문화화

문화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양식이라면, 예술은 특정한 매체, 기법, 스타일, 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복제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예술의 독점적 영역이 해체되자, 예술과 문화 사이의 경계도 조금씩 허물어졌다. 순수예술은 대중을 만날 수 있게 되었고, 대중문화는 예술적 형식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이 열어준 가능성의 공간에서, 예술과 문화는 각각의 영역을 개척하며 더욱 발전해나가기 보다는, 서로의 영역을 다툼하는 경쟁의 구도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문화는 예술이 가진 매체적 형식과 미적 아우라만을 차용하려하고(문화의 예술화), 예술은 그 스스로 작품의 형식성과는 괴리된 채 감상자의 관심사와 욕구충족에만 매달리는 현상(예술의 문화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이슈가 되었던 인문강좌 붐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실용강좌(문화)와 인문학(예술)의 만남은 분명 가능성의 공간이지만, 대가와 석학의 이름과 작품만 나부끼는 일회성 인문강좌와 외딴섬과 같은 인문대학들의 현실을 직시한다면, 그것을 또 하나의 문화의 예술화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 도식성, 통속성, 관능성

대중예술은 상품이기에 앞서, 제작과정과 소비방식에서 비롯된 구조적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도식성과 통속성, 관능성이 그것이다.

도식성은 익숙한 플롯 형식을 통해 감상자들로 하여금 별다른 노력 없이 유사한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측 가능한 구성과 종지부, 감정이입이 손쉬운 성격 묘사, 현실과 분리되는 별세계의 경험, 사생활에 대한 관음증적 욕망과 같은 것들이다. 대중예술의 도식성은 현실의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단순화하면서 심리적 안정감을 주지만, 진지한 성찰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이 내면화되고 습관화된다면 센티멘털리즘의 핵심인 자기기만이 내면화될 수 있다.

통속성이란, 흔하고 저급한 소재를 통해 사람들을 모두 같은 부류로 만들어, 감상자들로 하여금 동류에 속하는 안도감을 느끼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문화적으로 획일화이며 하향평준화라는 점에서 퇴행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심리적, 신체적, 도덕적인 면에서의 노력과 투자를 최소화하는 것을 통해, 즐거움과 만족감을 극대화하는, 스스로를 속이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끝으로, 관능성이란 성적 판타지를 조성하여 감상자들에게 구체적인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성적 판타지는 상대를 자신의 필요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만 취급한다는 점에서, 도덕적 이기주의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태도가 내면화된다면, 우리는 인격성에 대해 무감각해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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