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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힘 불온의 건강함
이윤택 <나는 차라리 황야이고 싶다>


절망이 두려운 인간들아
절망의 힘을 몰라
봄날 개나리꽃을 희망이라고 찬양하는 인간들아
불온의 건강함을 모르는 인간들아
불온한 생각이 일 없는 세상이 되었다고
향수병에 젖은 인간들아
절망의 힘이 무너지고
불온한 시가 쓰여지지 않는 세상이 온다면
난 국사범이 될지니
내 얼굴 내 가죽 화살 꿰어 꽃물 들이고
광화문 신호대 빨간 불로 걸려
나른한 봄기운을 뚫고
내 수겁을 수거하러 올 초개 같은 청춘을
기다릴 것이다.

* 국사범: 정치범
* 수겁: ??
* 초개: 지푸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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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7-04-26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끼고 갑니다.  보관해두었네요. 위악, 절망, 불온.... ...세상은 점점 제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아닐런지... ....

sb 2007-04-26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도 덜컥 마이리스트를 만들고 말았답니다.
 

만파식적(萬波息笛) - 남편에게

김승희

더불어 살면서도
아닌 것같이,
외따로 살면서도
더불음 같이,
그렇게 사는 것이 가능할까?

간격을 지키면서
외롭지 않게,
외롭지 않으면서
방해받지 않고,
그렇게 사는 것이 아름답지 않은가?

두 개의 대나무가 묶이어 있다
서로간의 기댐이 없기에
이음과 이음 사이엔
투명한 빈자리가 생기지,
그 빈자리에서만
불멸의 금빛 음악이 태어난다

그 음악이 없다면
결혼이란 악천후,
영원한 원생동물들처럼
서로의 돌기를 뻗쳐
자기의 근심으로
서로 목을 조르는 것

더불어 살면서도
아닌 것같이
우리 사이엔 투명한 빈자리가 놓이고
풍금의 내부처럼 그 사이로는
바람이 흐르고
별들이 나부껴,

그대여, 저 신비로운 대나무피리의
전설을 들은 적이 있는가?
외따로 살면서도
더불음 같이
죽순처럼 광명한 아이는 자라고
악보를 모르는 오선지 위로는
자비처럼 서러운 음악이 흘러라

* 원생동물: 단세포로 된 가장 하등한 원시적인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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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랑
<영랑시선> (정음사, 1949)


자네 소리하게 내 북을 잡지
진양조 중머리 중중머리
엇머리 잦아지다 휘몰아 보아

이렇게 숨결이 꼭 맞어사만 이룬 일이란
인생에 흔치 않아 어려운 일 시원한 일

소리를 떠나서야 북은 오직 가죽일 뿐
헛 때리면 만갑(萬甲)이도 숨을 고쳐 쉴밖에

장단을 친다는 말이 모자라오
연창(演唱)을 살리는 반주쯤은 지나고
북은 오히려 컨덕터―요

떠받는 명고(名鼓)인디 잔가락을 온통 잊으오
떡 궁! 동중정(動中靜)이요 소란 속에 고요 있어
인생이 가을같이 익어가오

자네 소리하게 내 북을 치치

* 만갑: 조선 시대의 이름난 명창 송만갑(1865-1939)을 뜻함.
* 연창: 창을 펼치다.
* 컨덕터: 관현악단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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