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에서 발췌 편집)

- 248번째 작품을 연출하는 김 피디는 1962년 한국 최초의 사극 〈국토만리〉를 시작으로 〈용의 눈물〉, 〈여인천하〉, 〈왕의 여자〉 등을 만들었다. 〈허준〉, 〈상도〉, 〈대장금〉으로 한류 사극을 일으켜 세운 이 피디는 사극 경력 30년에 이른다.

- 시청률 경쟁으로 치면 2001년 〈상도〉(15.4%)와 〈여인천하〉(33.3%) 대결에서 김 피디가, 2003년 〈대장금〉(46.3%)과 〈왕의 여자〉(7.6%)에서 이 피디가 이겨 1승 1패를 주고받았다. 3번째 결전을 앞두고 칼끝을 벼리는 두 연출자를 만났다.

- 그는 이 작품[김재형 피디의 <왕과 나>]에 현대적 감각을 최대한 많이 불어넣었단다. 폐비 윤씨(윤소화) 역의 구혜선, 성종 역의 고주원, 정현왕후 역의 이진 등 신세대 배우들을 대거 기용하고 바이올린과 국악기를 접목한 퓨전음악을 배경음으로 깔았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인물 클로즈업을 반복하는 촬영 방식은 변함없다. “내 사인 같은 것이다. 각 인물 간의 팽팽한 긴장감을 보여주고 시선을 고정하는 효과가 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내시들의 삶을 본격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신선했다는 평이다. 시청자 유제택씨는 “수염이 나서 탈락하고 우아한 자태를 인정받아 은 12냥에 팔리는 등 자세하게 묘사된 내시 선발 과정이 흥미로웠다”고 했다.

- 허준, 이재술, 장금 같은 역사서에서 희미했던 인물에게 구체적인 형상을 불어넣었던 그가 이번에는 역사적으로 생생한 정조대왕의 이미지에 의존하는 위험을 무릅쓴다. 정조는 단지 ‘콤플렉스 없는 그의 첫번째 주인공’일 뿐만 아니라 〈한중록〉(1988)을 시작으로 수없이 많은 사극에서 이미 묘사했던 왕이다. 그러나 이 피디가 20여권의 책에서 읽어낸 정조는 “인간적으로 완벽하면서도 항상 죽음의 위협에 쫓긴 왕이었다”고 했다. “사흘에 한번씩 암살시도를 당하고 매일 잠자리를 옮기는 인간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살아남으려는 노력을 그려내는 것만 해도 충분히 흥미로운 소재가 되리라”는 것이다.

-  “〈허준〉에서는 의술, 〈대장금〉에서는 식문화를 그렸다. 〈서동요〉 때 과학기술을 부각해 보려다 시청률이 떨어져서 그만뒀지만, 이번에는 그림 그리는 관청, 도화서가 주무대다. 반응이 좋으면 다음에는 조선시대 화가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드라마와 전통문화를 한데 땋아내리는 것이 사극의 재미이자 장점이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글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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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령 발령 역사 - 정리해보면, 국가 변란 따위는 없었다.

[1] 1952년 부산정치파동(발췌개헌)
[2] 1960년 4ㆍ19 의거 - 학생 및 시민에게 발포
[3] 1961년 5ㆍ16 쿠데타 - 군사혁명위원회가 장면 정부 인수, 정치활동 금지
[4] 1963년 6ㆍ3 한일회담반대시위 - 4개 사단 투입(휴교령, 언론검열, 집회금지, 무영장 체포 등)
[5] 1972년 10월 유신 - 국가비상사태 선포(국회 해산, 정치활동 금지, 헌법 일부 중지, 비상국무회의)
[6] 1979년 10ㆍ26 - 국가원수 부재사태 이유
[7] 1979년 12ㆍ12 - 최규하 정부 인수, 1980년 5월  서울역 집회 이 후 전국으로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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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법원이 ‘인혁당 재건위 사건’ 희생자와 유족에 대해 1975년 법원 판결 등의 불법성을 인정해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내렸다. 법원 스스로 판결의 불법성을 인정한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8부(재판장 권택수)는 21일 우홍선·송상진·서도원·하재완·이수병·김용원·도예종·여정남씨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34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희생자 8명한테 10억원씩 △배우자 및 부모에게는 6억원 △자녀에게는 3억5천만∼4억원 △형제들에게는 1억5천만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배상액 총액만 245억여원이며, 사형 집행일부터 이날까지 연 5%의 이자를 계산하면 실제 국가가 지급해야 하는 액수는 637억여원에 이른다. 법원은 “시국사건 국가 배상액 중 최고액”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가는 국민 개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할 임무가 있는데도 오히려 국가권력을 이용해 8명을 사회 불순세력으로 몰아 소중한 생명을 빼앗았다”며 “유족들은 30년 남짓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국가 쪽의 ‘손해배상 청구권 시효 소멸’ 주장에 대해서도 “유족들이 법원으로부터 과거의 판단이 오판이었음을 인정받기 전에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국가가 구차하게 책임을 면하려고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8명이 국가권력에 의해 사형당했다”며 중앙정보부 등 수사기관은 물론, 대법원을 포함한 법원 판결의 불법성을 지적했다.

유족들은 선고 직후 서울중앙지법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가가 항소를 포기하기 바라며, 배상금 일부는 고인들을 추모하는 사단법인을 만들어 통일·인권운동 등을 도울 예정”이라고 말했다. 홍만표 법무부 홍보관리관은 “항소 여부는 서울고검과 국정원이 협의하고 법무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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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숙주 편도 간단히 기록해둡니다.

# 신숙주

(1)
- 23세 과거급제
- 수양대군의 명나라 사은사 행렬에 비서관으로 합류
- 계유정난 2등 공신
- 양위
- 명나라 사은사
- 단종복위운동과 사육신 처형
- 노산군 처형 제의
- 성종 대까지 조정 요직 근무
- <훈민정음> <해동제국기> <병장설> <오례의> <경국대전> <동국통감> <세종실록> 편찬에 직간접적으로 참여.

(2)
- 16세기 사림 집권 이후 사육신 복권.

(3)
- <보한재집> 신숙주 시집
- <연려실기술>
- <단종애사>: 정순왕후와 신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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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역사기행> 종영 이후에 새로 시작한 프로그램인데, 몇몇 새로운 시도가 돋보입니다.

우선, 기존 역사 프로그램에서 주로 다루어오던 사건 위주의 접근 방식 대신, 인물 위주의 접근 방식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미 종영한 KBS <인물현대사>가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다루며 50회 정도 방영했었지만, <한국사 전>은 인물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개인의 시각으로 여전히 역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접근 방법을 달리한 것이지요. 하지만, 느낌은 아주 새롭습니다.

진행도 두 명의 아나운서가 동시에 진행합니다. 소재를 두 가지 이상의 관점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죠. 기존의 주류적인 해석에 대한 자극이기도 하구요, 거대한 사회의 흐름 속에서 자칫 초라해지거나 왜곡될 수 있는 개인의 선택과 삶에 대한 당연한 배려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알려졌든 알려지지 않았든, 누구나 역사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며 살아왔고 살아가는 것이겠죠.

이제 겨우 8회 방영했을 뿐이지만, 평소 관심있었던 인물들이 여럿 다루어져 은근히 쾌재를 부르고 있습니다. 지난 번 리진에 이어, 오늘은 홍종우 편과 신숙주 편을 시청했습니다. 간단히 기록으로 남겨둡니다.

# 홍종우

(1)
- 몰락한 양반 출신.
- 일본에 건너가 아사히 신문사 식자공으로 일함. 틈틈히 견문을 넓혀 대중 강연회에 나설 정도.
- 자비로 프랑스로 유학을 떠남.
- 화가였던 레가미를 비롯해서 프랑스 고관들과 교류(까페 뒤 마고). 기메박물관에서 근무. 소설가 로니와 함께 <춘향전><심청전> 등을 번역해 펴냄.
- 유학 3년 만에 일본으로 돌아와 김옥균 만남.
- 상해에서 김옥균 암살. 하루 만에 체포. 본국으로 송환.
- 대한제국 수립에 기여. 여러차례 요직을 차지함.
- 그 이상 정치적 행보 없이, 대한제국과 운명을 같이 함.

(2)
- 갑신정변 이후 일본으로 망명한 김옥균은, 일본 황실에서는 도외시했던 반면, 진보적 인사로서 대중적 지지를 받음. 김옥균은 일본 우익의 원조격인 도야마 미츠루(낭인 그룹 겐요사를 조직)의 후원을 받으며, 삼화주의를 주창.
- 김옥균의 삼화주의가 호응을 얻자, 조선정부는 여러 차례 자객을 보내 김옥균을 암살하려 함.
- 서재필 윤치호 등 해외망명 급진개화파 인사들은 홍종우를 의심.
- 상해 동화여관에서 암살당한 후 본국으로 송환되어 능지처참을 당함.
- 일본에서는 김옥균의 암살을 대서특필하며 정치적으로 이용. 2천명 이상의 인사들이 김의 장례식 치르며 모금 운동 전개. 일본에서 반조선 감정 유발.

(3)
- 왕권을 중심으로 한 자주적인 근대화를 계획. 급진개화파의 외세 의존적인 문명개화론에는 반대.
- 1897년 대한제국 수립에 기여. 11차례 이상 상소문 건의. 정부 요직 근무.
- 김옥균 살해라는 낙인 때문에 정치적 입지 넓히지 못함.

(4)
- 도쿄경제대학 도서관
- 상해 동화여관
- 종로 북촌: 개화당 근거지
- 일본 진전사: 김옥균 망명지
- 프랑스 기메박물관: 한국관
- 레가미 <정치적 암살자>: 홍의 유학생활
- 황현 <매천야록>: 홍의 어린 시절
- <르 몽드 일뤼스트리에>: 홍의 교류
- <중동전기> <윤치호 일기> <상해신문>: 김옥균 암살
- 중앙박물관: 홍의 상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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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나무 2007-08-24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최근에 우연히 봤는데.. 참 재밌드라고~~
역시 고민하면 안 될 게 없다 생각했지..
혹시 EBS의 지식채널에서 자극을 받은 걸까 ㅋㅋ(뜬금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