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봄 미국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미국 진보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가 국내에 번역·출간돼 언론이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국회의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이 되는 등 뜨거운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이 책의 논지는 우리 사회에 제대로 전달되었는가? 2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평가해보자면,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지금 개혁·진보세력의 의제 설정은 여전히 ‘코끼리’ 생각에만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레이코프는 그 책에서 “어떤 사람에게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면 그 사람은 코끼리를 떠올릴 것이다”라며 “상대편의 프레임(생각의 틀)을 단순히 부정하는 것은 단지 그 프레임을 강화할 뿐이다”고 주장했다. 이는 단지 무엇에 반대하는 것만으론 부족할 뿐만 아니라 역효과를 내기 쉽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다.

언젠가 언론인 김중배 선생은 ‘신자유주의’를 잘못된 언어 사용이라고 질타한 바 있다. 보수 언론이건 진보 언론이건 언론이 그 말을 별 생각없이 수입해서 쓴 바람에 ‘신자유주의 타도’라는 구호는 단지 신자유주의 홍보 효과를 낼 뿐이라는 것이다. 어느 세월에 일반 대중에게 ‘자유주의 타도’와 ‘신자유주의 타도’의 차이를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인가?

지금 개혁·진보세력은 아직도 1970·80년대의 저항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하는 관점에서 의제를 독자적으로 생산해내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닥친 것들 중에서 무엇에 저항할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의제를 따라가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겨레, 강준만 칼럼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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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10년'이란 말은 1980년대의 거품경제 붕괴 뒤의 장기불황, 이른바 '헤이세이 불황'에 시달린 일본에서 유행한 말인데, 이를 한국에 수입한 자들은 전혀 다른 용도로 써먹었다. 한국 경제를 망친 것은 바로 그들 자신이었으며, 그 때문에 그들은 1997년 말 외환위기를 맞았고 대선에서 패배했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 잃어버린 자신들의 권력 공백 10년을 적반하장격으로 '잃어버린 한국 경제 10년'으로 분칠해 자신들의 과오를 정적에게 덮어씌우는 농간을 부렸다."

(한겨레, 한승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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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백 년간 인류가 공들여 쌓아올리고, 지난 수십 변 동안 민주화로 힘겹게 쟁취한 의사표현의 기본권을 오늘 한국 사회에서 일개 정권, 일부 검사들, 일부 언론들이 방자하게 흔들어대고 있다. 권력은 짧고 자유는 길다. 왜 이기지도 못할 싸움에 그토록 목을 매는가? 왜 스스로 역사의 조롱거리가 되지 못해 그토록 안달인가?"

(한겨레, 조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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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서는 시를 이렇게 정의한다. ‘시는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글’이라고. 나는 이 케케묵은 사전적인 정의를 대폭 수정하거나 폐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의 내용을 이룬다는 ‘인간의 사상과 감정’이라는 용어는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애매하다. 이 말을 ‘사람의 생각과 느낌’으로 순화시켜 읽어도 마찬가지다. 또한 시 아닌 다른 문학 장르에서는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다루지 않는가, 하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함축과 운율’이 시의 형식적 특성을 드러내는 용어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우리 시는 운율적 결속력이 대단히 미미해서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운율을 따지는 게 난처할 때가 많다. 한 편의 시가 인간의 사상적 체계에 관여하고 거기에 기여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사상을 해설하거나 추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감정을 드러내고 쏟아 붓는 일은 시작법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다. 슬프다거나, 기쁘다거나, 당신이 보고 싶다거나, 풍경이 아름답다거나 하는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우리는 ‘고백’이나 ‘넋두리’ 혹은 ‘하소연’이라고 부른다. 그런 것들이 시의 일부분이 될 수는 있어도 시의 모든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감정을 고백하고 싶으면 일기에 쓰면 된다. 특정한 상대에게 감정을 고백하고 싶으면 편지에 쓰면 그만이다.

시는 감정의 배설물이 아니라 감정의 정화조다. 속에서 터져 나오려는 감정을 억누르고 여과시키는 일이 바로 시인의 몫이다. “시란 개인적인 욕망에서 이루어지는 욕망의 발산 형식이 아니라 개인적인 ‘나’의 욕망을 억제하고, ‘나’의 욕망 가운데 가치 있는 어떤 경험을 선택하고 객관화하는 작업을 통해서 남과 다른 세계를 유형화해 보여주는 의도적 행위이다.”(오규원, <현대시작법>, 문학과지성사)

“내가 내 감정을 말하지 않아도 사물이 대신 이야기해 준다”고 눈에 번쩍 뜨이는 말을 해준 이는 연암이다. 그렇다면 시인은 감정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물이 하는 이야기를 받아 적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시인의 받아 적기는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감정을 언어화하는 이 과정을 ‘묘사’라고 한다. 그러니까 묘사란 감정을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언어로 그려내는 것이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묘사는 관찰에서 시작된다. 관찰하기 위해서는 허리를 낮추거나 무릎을 구부릴 줄 알아야 한다.
혹시 들길을 걷다가 당신은 달개비 꽃잎 속에 코끼리가 한 마리 들어앉아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묘사는 시쓰기의 출발이면서, 또한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세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자가 아니라, 세상을 세밀하게 그리는 자이기 때문이다.

서정시에서 흔히 자아가 대상에 스며드는 것을 ‘동화’ 혹은 ‘감정이입’이라고 하고, 거꾸로 어떤 대상한테 자아를 맡기고 비춰보는 것을 ‘의탁’ ‘투사’ 혹은 ‘투영’이라고 한다. 애처롭고 딱한 감정(惜)을 단순히 토로하는 게 아니라 꽃잎이 낡은 지붕을 덮는 객관화된 풍경과 동일시하는 이 기법은 묘사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묘사는 무엇보다 구체적 형상화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시에서 구체성은 감동의 원천이고, 삶의 생생한 근거이기 때문이다.

시로써 말할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묘사 한 줄 없이 자기 뱃속에 든 것을 줄줄이 쏟아 놓기만 하는 시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얼마나 말을 하고 싶었으면 시라는 형식을 빌려 일방적인 고백을 할까 싶기도 하지만, 시의 옷을 입고 이리저리 시달리는 그 언어는 또 얼마나 몸이 아플 것인가. 말을 하고 싶어도 참을 줄 알고, 노래를 시켜도 한 번쯤은 뒤로 뺄 줄 아는 자가 시인일진대, 어두운 노래방에서 혼자만 마이크를 잡고 있는 시인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한겨레, 안도현 시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임의로 발췌 편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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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아주 아름다운 결혼식을 보았다.
음악회를 겸한 결혼식이었다. 초대객은 양가 가족을 합해서 100명을 넘지 않았다. 먼저 모스틀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단의 연주가 시작됐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중 ‘서곡’이 첫 곡이었다. 이어 소프라노 강혜정·이아경씨가 노래를 불렀고,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21번 <엘비라 마디간> 중 2악장을 연주했다.

결혼식은 그 다음에 이루어졌다. 신랑과 신부는 상기되어 있었다. 두 사람 다 50대로서, 일찍 혼자된 뒤 오랜만에 새 짝을 만나 하는 결혼이라 감회가 남달리 큰 듯이 보였다. 신랑에겐 전부인과 낳은 20대의 남매가 있었고, 신부에게도 일찍 얻은 19살짜리 딸이 하나 있었다. 이제 한 가족이 된 꽃다운 세 젊은이가 신랑·신부 입장을 앞장서서 인도했다. 세 젊은이는 오랫동안 함께 자라온 것처럼 다정해 보였다.

결혼식이 끝나고 연주회가 계속됐다.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 작품 20의 연주가 끝나고서야 자리를 옮겨 피로연이 벌어졌다. 100여명의 하객들이 포도주를 곁들여 식사를 했다. 사이사이 하객들의 덕담이 이어졌다.

수가 적은데다 평소 신랑·신부와 워낙 가깝게 지낸 지인들이라서 하객들은 모두 금방 한통속으로 친해졌다. 식사 뒤엔 팝페라 가수가 초대돼 노래를 불렀고, 양가 직계가족들이 앞에 나와 인사말을 했다. 신랑은 혼자 남매를 키우던 때가 생각났는지 딸을 소개할 땐 목이 메었다. 가족들도 눈가를 닦았고 하객들 몇몇도 눈시울을 붉혔다. 딸에게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고백까지 이어졌다. 정말 사랑과 성찰이 넘치는 따뜻하고 감동적인 결혼식이었다. 연주회까지 포함해서 그때까지 거의 세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자리를 뜨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른 결혼식 장면이 떠올랐다. 수천명의 사람들에게 거의 살포하다시피 하는 금빛 찬란한 청첩장들과 돈봉투를 들고 접수대 앞에 늘어선 사람들과 끝 간 데 없이 줄지어 세워놓은 화환들. 번쩍번쩍하는 조명과 속된 나팔소리. 신랑에게 만세를 부르게 하거나 야한 농담과 함께 팔굽혀펴기를 시키거나 부모 앞에서 깊은 키스를 주문하는 얼빠진 사회자와 그 친구들. 접수만 끝나면 식장 안에 발도 들여놓지 않고 연회장으로 내달아 접시 가득 산더미처럼 음식부터 날라다 먹는 사람도 부지기수이고, 뒤에 몰려 서서 주례사를 들을 수 없을 만큼 큰 소리로 잡담하는 이들도 부지기수이고, 접수대에서 태연자약 돈봉투를 열어 지폐를 헤아리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많은 이들은 청첩장을 차라리 ‘고지서’라고 부른다. 요즘은 아예 동창회에서 동창생 전원에게 결혼식을 일괄해 문자로 공지한다. 당연히 혼주는 하객들 수를 예측조차 할 수가 없다.

한마디로 난장이나 다름없다. 혼주는 자신의 사회적 영향력이나 지위를 과시하는 데 혈안이고 하객들은 혼주와 눈도장이나 찍으면 그만이다. ‘센 자리’의 혼주에겐 축의금을 빙자한 ‘뇌물 공여’가 다반사라는 것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러니 무슨 축하할 마음이 생겨날 것인가. 혼주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허장성세하려고 하객 아르바이트를 산다는 소문도 있다.

나라고 이런 관행을 비켜간 것은 아니다. 두 아이를 결혼시키면서 좀더 고요하고 품격 있는 결혼식을 상상해 보았지만 상대가 있으니 내 뜻대로만 하자고 할 수가 없었다. 관행이 잘못됐다는 걸 아는 사람도 관행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관행의 구조화가 너무도 단단히 진행돼 온 것이다. 낯선 사람끼리 수백 수천 명씩 모여 앉아 게걸스럽게 밥 먹고 공허히 헤어지는, 문화라곤 손톱만큼도 깃들 여지가 없는 이 따위 야만적인 혼례 관행은 언제 생겨난 것일까. 관혼상제의 관행은 예법의 기본이고 문화의 척도이다. 이런 야만적인 관행이 어디 혼례뿐이겠는가.

(한겨레, 박범신 작가·명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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