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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감상법 빛깔있는책들 - 즐거운 생활 192
안치운 지음 / 대원사 / 199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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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학 시절 '풍물굿판 기획'이라는 것에 한참 빠져들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한가한 휴학생인 주제에 이것도 하자 저것도 하자, 학과공부를 하면서 활동해야했던 다른 친구들이 꽤나 귀찮았을겁니다.

시간이 지나, 당시 저에게 그만큼의 에너지를 가져다 준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봤지만,
제 감정에 솔직했던 것 밖에는 기억에 남지 않더군요.
문화를 직업으로 삼겠다는 포부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때 제 갈등은 이랬습니다.

학교 축제 기간에 공연을 하는데, 저희 공연 다음이 댄스 동아리 공연이었거든요.
그런데 한달 가까이 준비한 공연을 마친 친구들이, 짐 정리도 안한 채로 댄스 동아리 공연으로 달려가는겁니다.

함께 공연한 친구들을 모습을 보면서 참 허탈하더라구요.

물론,
댄스를 좋아하든 풍물을 좋아하든, 아니 댄스 풍물 모두 좋아하든,
충분히 다양할 수 있지만, 그래도 형식이나마 풍물을 우선으로 꼽는다는 친구들인데, 이 친구들에게 풍물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풍물은 달라져야 한다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2.
축제 얘기를 좀 더 하자면,
축제의 무대에서는 풍물과 댄스 모두 '무대 위의 공연물'로서 작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무대 위의 공연물'을 준비하는 우리는 그만큼 철저하지 못했죠.
그저 관성적으로 늘 하던 고창지역의 판굿을 압축해서 보여준겁니다.

고민도 준비도 없었던 공연의 결과는 어쩌면 당연했습니다.
소리든 음악이든 춤이든, 관객에게 볼거리로 승부해야하는 '무대 위의 공연물'로서는 별로 적합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죠.

풍물을 흔히 김덕수씨의 '사물놀이'로 알려져있는 '무대 위의 공연물'로 만들던,
아니면 생활 속의 무엇으로 만들던 우리의 선택이었지만,
우리는 고민도 선택도 하지 않았던겁니다.

불만이 여기까지 올라오자,
정기공연을 비롯한 활동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겼고,
결국 저는 한해 더 활동을 하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풍물굿'을 고민하고 실험하게 됩니다.

3.
뜬금없이 지난 대학시절을 꺼내는건,
사실, 안치운씨의 <연극 감상법>에 대한 독서후기의 서론이었습니다.

책을 한눈에 읽을 수 있었던건,
책의 분량이 그리 많지 않은 탓도 있지만,
지난 시절 풍물이라는 문화에 대해서 고민한 흔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는 사람도, 함께 하는 사람도 즐기지 못했던 대학의 풍물판과,
연극 비평가 안치운씨가 얘기하는 연극판의 얘기들은 굉장히 흡사했습니다.

그리고, 풍물판에 대한 고민이 닿았던 끝자락에 연극이 있기도 했구요.

4.
사실 저는, 작년인가 대학로에서 본 한편의 연극이 전부입니다만,
연극은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인 남자친구를 쫓아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는 한 친구가, 그 때 즈음엔 학교 연극부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었는데,
그 친구와 함께 술잔을 귀울이며 '인생 별거 있냐'며 흰소리를 해댔었습니다.

연극을 즐기지 않았던 제가 연극을 동경했던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연극만큼이나 창조적이고 질펀한 문화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형식으로 따지자면 하나에서부터 끝까지 직접 만들 수 있고,
내용으로 따지더라도 모두 자신의 얘기와 갈등을 풀어낼 수 있는 것이 연극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연극을 너무 몰랐었죠.)

반면 풍물은 얽매이는 것이 많았죠.
형식으로 보자면, 지역의 판굿이 정형화 된 채로 존재했었고, 그 속에는 단연 가락이며 춤이 담겨있었습니다.
내용으로 보더라도, 풍물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락 연주는 늘 표현하기 힘든 무엇으로 따라다녔으니까요.
(풍물도 너무 몰랐습니다.)

여튼, 개강이니, 시험이니, 축제니, 취업이니, 연애니,
대학시절의 일상을 함께하는 갈등들을 풍물답게 표현하고 즐기려는데 한계를 느낀 저는,
결국 그 해 끝자락엔, 연극이 더 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면서 실험을 매듭지었던겁니다.

5.
지금은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만,
그때 풀어내지 못한 갈등들이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흔한 풍물판들을 보면서 일말의 아쉬움이 남는겁니다.
이미 정형화 된 판을 멋지게 보여주는 기술들을 늘어나지만,
삶의 냄새가 담긴 그런 판은 왜 그리 보기 힘든지.

사람의 감정이니 갈등이니 정해져있는 것도 아닌데,
예정된 날짜에 하는 '풍물공연'만큼, 왜 하고싶을 때 내키는대로 하는 '풍물판'은 없는지 아쉬움이 남는겁니다.

6.
이런 아쉬움의 한켠으로는, 제 생각이 투정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가 농사가 生業이던 시절을 살고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버스와 지하철, 책상의 컴퓨터와, 공장의 기계들에 익숙한 우리에게, 풍물의 악기란 장농에 넣어두고 수시로 꺼내어 쓸 수 있는 무엇이 분명 아닐겁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연극을 부러워하게 되었습니다.
농사가 생업이던 시절에도, 지금도,
연극은 삶의 표현하는 적절한 수단으로서, 마당에서 무대를 넘나들며 이용되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또 현실이 그리 만만치 않은가 봅니다.

7.
<연극 감상법>의 안치운씨 역시도 저와 비슷한 관점으로 연극을 감상하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배우, 극단, 극장, 연출, 관객, 등 연극 전반에 관한 내용들을 그저 받아들이는 수준에 그치긴 했지만,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 안씨의 관점이 저와 크게 같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연극을 직업으로 삼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신이 주체가 되어 살아간다는 면에서 다른 어떤 직업과 다르다'고 얘기하고 있고,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의 사회적 갈등을 표현하는 것이 연극의 중요한 요소임과 동시에 분리할 수 없는 것임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가 진단하는 바와 같이,
오늘날의 연극이 삶의 갈등을 풀어내려는 몸부림으로 사람들과 호흡하지 못하는 것은,
연극을 어려워하고, 연극이 마치 문화의 상위 그룹이나 되는 것인양 생각하는 오늘날의 풍조가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가 주장하듯,
옛 극장을 회복하여 단절된 극장 문화의 맥을 연결하고, 역사적 현장을 연극 무대로 만들며, 시립 도립 국립 극장 및 도심 속의 극장을 늘리자는 제안이,
연극인의 자성과 관객의 역할을 강조하는 제안이,
얼마만큼의 실효성을 가질지는 의문입니다.

연극의 위기는, 단지 연극만의 위기가 아니라 시대의 위기일테니까요.
문화를 행위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가 상품이 되어 공급하고 소비하는 시대의 위기에서 한 연극인의 바램은 너무나 소박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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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본 이 거리를 말하라 - 서현의 우리도시기행
서현 지음 / 효형출판 / 1999년 9월
평점 :
절판


1.

제 고향은 전라남도 광양인데, 서울로 이사온 지는 스무해정도가 되었네요.
서울에 살면서도 학창시절에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일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학교 부근이었던 청량리며,
영화를 보기 위해 나섰던 종로,
종로에서 밥을 먹기위해 찾았던 인사동,
학교를 휴학하고 다녔던 회사는 테헤란로에 있었고,
기획사 일을 하면서부터는 동대문과 영등포를 쏘다녔죠.

연극을 볼 때는 대학로를,
가끔은 친구 편의에 따라 신촌까지 멀리 나가기도 했고,
몇해전 생일엔 여의도공원도 한번 다녀왔네요.

종로보다는 한적한 강남으로 영화를 보러 갔던 적도 있었고,
한강다리야 아무 생각 없이 수도 없이 건넜구요.

서울 사시는 회원분이라면 모두 익숙한 지명들일겁니다.
저에게 역시 익숙한 지명, 이곳에 대해서 좀 더 듣고싶었어요. 우연히 만나 친해진 친구의 어린시절 얘기처럼 궁금해지는겁니다.

2.

「현건축」소장이며 건축가인 서현씨의 <그대가 본 이 거리를 말하라 - 서현의 우리도시기행> 은 그렇게 읽게되었습니다.
조경학을 전공한 누나의 책장을 염탐하다 슬쩍 꺼내본거죠.

코팅된 종이에 시원스런 활자들, 컬러로 된 사진들.
머리를 좀 식히자 했습니다.

그런데, 뛰어난 만남을 풀어내는 저자의 말쏨씨에,
저는 길거리 약장수에게 사기당한 마냥 머리 속이 더 복잡해집니다.

머리를 식히기에,
'인문적 건축이야기' 라는 저자의 얘기는 너무 흥미진진했습니다.

3.

위에서 제가 쏘다녔던 거리만이 있는건 아닙니다.
제가 몇번이가 스쳐지나갔을 뿐인 서울의 거리들도 몇몇 더 있고, 수원, 전주, 부산, 광주의 거리도 있습니다.

멀게는 조선시대 후기까지 거슬러올라가,
이 거리가 변해온 모습을 그려냅니다.

종로에서는 금난전권이, 세종로에서는 아관파천이, 수원 화성에는 조선임금 정조가 등장합니다.
역사시간에나 줄줄 외웠을법한 얘기들이 다소 지루해질 즈음이면,
건축가 서현씨는 파스텔톤의 삽화로, 선명한 컬러 사진으로 달래줍니다.

4.

만약, 이대로 흥미진진하기만 했다면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끝났을 터.
가볍게 머리를 식히고, 기억에 남은 몇몇 얘기꺼리들은 여자친구와 그 거리를 걸을 때 회상하는 듯한 표정으로 폼나게 던져주면 되는겁니다.

그런데, 이게 만만치가 않습니다.
서현씨는 예의 재치있는 만남으로 덩치 큰 건물과 간판으로 가득한 오늘의 거리를 얘기해주는데요,
이 얘기라는게 그리 만만치가 않습니다.

이 주위무관심쟁이에게, 건축이라는 것이 그저 설계도면이나 그리고 돈 잘버는 직업이 아님을 가르쳐주었고,
보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돌이 제 생각마저도 구분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고,
재개발 사업엔 철거민들의 설움이나 야박한 투기꾼의 논리 외에 더 고민할 부분이 있다는 것도,
마지막으로, 전통의 계승이라는 해묵은 주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충고해주었습니다.

건축으로, 음악으로, 미술로 머리를 식혀보겠다는 생각일랑 멀리 던져버려야 겠습니다.
누릴 수 있는 문화일지언정, 제 편견 만큼이나 가벼운 것은 절대 아닐테니까요.

5.

서현씨는 '시대의 정신을 거리에 아로새기는 것'이 건축가의 몫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도시에 침을 뱉고, 건축가에게 침을 뱉는 것이 거리를 거니는 시민들의 몫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불현듯이 생각난 사람.
저자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연극 감상법>을 써낸 그 연극인.
그 연극인도 연극에 침을 뱉으라고 얘기했었는데.

책을 통해 하소연하는 연극인과 건축가의 얘기는,
40년만에 따라잡았다는 산업자본주의에는 뒤쳐졌지만, 정보화시대에는 뒤쳐지지 말자던 우리시대의 슬로건과 교차됩니다.

적절치 않을 것 같아, 더 긴 얘기는 그만 두도록 하겠습니다.
여튼, 그들은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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