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타임을 위하여 착한 사람 문성현 열린 사회와 그 적들 목마른 계절 외 창비 20세기 한국소설 47
공선옥.김소진 외 지음 / 창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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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공선옥 「씨앗불」, 「목마른 계절」

- 수필집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에서는 쉬이 드러나지 않았던 작가 공선옥을「씨앗불」을 통해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1963년 생인 그녀는, 여고시절 '80년 광주'를 경험했고, 폐허의 광주에서 대학을 다녔습니다. 작가 공선옥의 화두가 오랫동안 80년 광주에 머물러있는 연유를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 저에게 있어서「씨앗불」은 김소진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과 함께 좀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그 동안 세미나 문건, 책, 다큐멘터리, 심지어 드라마를 통해 적지 않이 듣고 접해왔던 80년 광주였지만, 그것은 늘 분석되고 해석된 채이거나 사실의 나열에 그치곤 했기 때문입니다. 「씨앗불」에서 저는, '교훈'에 가려져 있던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습니다.

- 또 한가지는 관점의 차이인데요, 「씨앗불」은 지식인 또는 운동가의 관점이 아닌, 광주 시민의 관점, 80년 광주를 살아냈던 막노동꾼, 중국집요리사, 택시운전사들의 이야기입니다. "어머닌 날 데리러 온다 해놓고 간지 십년째에요. 고아원에서 나와서 총 잡기 전까지 뺑끼통 들고 간판일 따라다녔죠." 군사정권과 언론이 '폭도'로 몰았던, 그래서 KBS를 불태워버렸던, 바다 건너 분쟁지역에서나 보았던 바로 그 차림으로 공수부대에 맞섰던, 죽음의 목전에서 차가운 도청 바닥에 친구, 가족,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새기며 그곳을 떠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이들이었습니다.

- 이야기는 주인공 위준의 몇일간을 걸지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전두환과 함께 12ㆍ12를 일으켰던 노태우가 정권을 잡던 87년, 80년 광주의 기동타격대원들이었던 이들이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며 음식점으로 모이는 것이죠. 하지만, 이제는 정치인으로 시민운동가로 막노동꾼으로 택시운전사로 저마다의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의 모임은 흐지부지되고 맙니다. 이들은 각자에게 맺힌 원혼의 매듭을 풀지 못한 채 서로에게 등을 돌리고 맙니다.

-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가 들어선 오늘날 이들의 매듭을 풀렸을까요? 작가 공선옥의 대답은 연이어 실려 있는 「목마른 계절」,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에 나타나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시간과 공간을 가지고 있는 세 작품이 나란히 놓여있다는 느낌입니다. 「목마른 계절」에서 '아줌마'는 광주를 화두로 소설을 쓰고 있지만 산 입에 풀칠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합니다. 노동쟁의 중인 방직공장에서 발길을 돌린 아줌마는, 얼굴에 기름기가 없다는 이유로 용역회사에서도 퇴짜를 맞게됩니다. 그리고, 아줌마를 만난 '시인'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죠. "이젠 아줌마도 광주에서 벗어나야 해요. 2, 30년대의 신파가 그 보다 낫거든." 글'이라도' 써서 풀어야 하는, 하지만 글'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80년 광주인 것이죠.

- 시대 순으로 봤을 때 가장 나중에 놓일법한,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의 '엄마'는 어떠한가요. "얼마 전부터 내게는 장기적인 생각보다는 단기적인 생각, 단기적이라고 할 것도 없이 당장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 대한 생각만을 하게되는 버릇이 생겼다. 미래? 웃기는 거였다. 미래에 대한 설계? 개나 물어가라, 였다."라고 말하면서도, 엄마는 몹시 아픈 둘째 아이를 만나러 기차를 타고 아동일시보호소를 찾아갑니다. 어쩌면 조금 지쳐있을지도 모를 작가 공선옥의 의지 혹은 다짐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그녀는 옆자리에 앉은 이가 건네는 술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 마시면서도, 보호소의 아픈 아이를 찾아 꼭 광주역에 내리는 것이죠. "같이 살자."며 추근대는 그에게 국밥까지 얻어먹은 후, 그녀는 화장실 좀 다녀온다며 유유히 자신의 목적지로 발길을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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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07-06-11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멋진 리뷰네요~
공선옥의 소설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를 읽고 살펴보다 리뷰를 보게 되었는데, 이런 멋진 서재가 있다니요~ 종종 놀러오겠습니다^^

sb 2007-06-11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쓰다 만 후기에 과한 칭찬이세요. 후 반갑습니다.
 
소설 - 장석주의 소설창작 특강
장석주 지음 / 들녘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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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 그리고 왜 소설이 쓰고싶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글쓰기는, 그저 동호회 회원 노릇을 하기 위해서, 그리고 양적으로만 부풀어가는 책읽기가 미덥지 않아서 보험들 듯 쓰기 시작한 것 뿐이었습니다. 꽤 열심히 글을 써댔던 저였지만, 기본적인 개요 조차도 없이 시작하기 일쑤입니다. 이 엉터리 글쓰기는 종종 기쁨을 선사하기도 했는데, 정처없이 떠돌던 글머리가 우연히도 방향을 잡게되는 경우였습니다. 그럼 글쓰기에 속도가 붙기 마련이죠. 그런데, 정신없이 풀려나가는 실타래 속에서, 스스로도 발견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글쓰기에 대해 흥분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 한편의 독서후기도 말끔하게 써내리지 못하면서 소설이라니요. 어디까지나 욕심에 불과하지만, 욕심이기에 마음껏 부릴 수 있었습니다. 독서후기도 결국은 누군가의 독서후기일 수 밖에 없지만, 소설은 그 자체로 누군가의 소설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이 무척 매혹적이었습니다. "쓰다 보면, 계속 쓰다 보면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대, 그저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막연하게 들떠, 소설쓰기 특강을 찾아 도서관 서가를 서성였습니다.

- 장석주 선생은 오랫동안 소설쓰기에 대한 강좌를 해오신 분이라고 하네요. <소설>에서 그간 여러차례의 강좌를 진행하느라 싸두었던 보따리가 여러 편의 소설과 함께 풀립니다. 그런데, <소설>은 여느 실용서들과 비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것을 기대한다면, 이 책은 여러분들에게 너무나 얇게 느껴질지도 모르겠군요. (예문으로 등장하는 소설들과 한국 소설사의 몇몇 화제들에 대한 소개를 제외하면 실제로도 무척 얇습니다.) 소설이 '규칙'과 거리를 두고 있는 만큼, <소설> 역시 '규칙의 해설' 내지 '성공사례'로부터 멀어져 있습니다. 우스개로, 선생은 고작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군요. "훈련되지 않은 머리는 글쓰기의 장애물이 될 뿐이다." ㅎㅎ

- 소설의 변하지 않는 주제는 다양하기 그지 없는 삶이지요. 수필이나 자서전이 아닌 이상, 소설은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최소한 존재할 법한 타인의 삶을 다루고 있는데, 그것을 통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쫓고있는 것이겠지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것으로 보자면 수필을 따라갈 수 없고, 비용으로 따지자면 온갖 가지의 상담을 당할 수 없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이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실용서가 무던히 팔려나가는 요즘 같아서는, 그 영역이 줄어드는 것은 아닌지, 소설을 읽고싶고 쓰고싶은 욕구도 그저 스스로의 지적 허영을 소비하려는 그것은 아닌지 의심이 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 하지만, 소설이 삶에 대한 고민의 전부가 아니듯, 소설이 그 나름의 역할을 잃은 것도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는 주체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혹은 그것을 숨기고 싶어하는 욕망의 산물이다."라는 선생의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드러내 보여주는 것을 통하든, 숨기는 것을 통하든, 주체의 변덕스런 욕망을 그저 담담히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여전히도, "소설의 본질은 인간성의 탐구와 새로운 인간상의 창조에 있기 때문"입니다.

# 변덕스러움을 고려하고, 소설을 쓰고싶다는 주체의 욕망을 확인했다면, 선생의 몇가지 도움글들을 갈무리 해둘 필요는 있습니다.
- "원고 매수로 10분이 넘어갈 때 까지 작가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지 독자가 알 수 없다면, (후략)"
- "작품 속의 등장인물의 성격이 불분명하거나, 평면적이거나, 개성적이지 않다면 그 작품은 그 만큼 실패할 가능성이 많다."
- "좋은 문장은 후천적 노력에 의해 이루어 질 수 있지만 문체는 그렇지 않다. 다른 작가의 문체를 모방하거나 흉내내는 작가는 스스로 작가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 앞서 말씀드렸던 것 처럼, 책의 후반부는 신세대 문학,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소설, 대중 소설, 페미니즘 소설과 같은 화제들을 나열하고 있는데요, 제법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화제를 꺼내는 노장 소설가들의 고민이 묻어나는 것 같아 슬며시 웃음이 배어나옵니다. 물론, 화제에 오른 소설들의 목록을 메모하는 것도 잊지 않았구요. (마이리스트로 정리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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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블랙 러시안 리기다소나무 숲에 갔다가 곰팡이꽃 외 창비 20세기 한국소설 50
배수아.김연수 외 지음 / 창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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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 많은 책을 읽어온 것도 아닌데, 제법 가리기까지 했었습니다. 몇편의 대하소설을 제외하고는 당췌 소설을 읽지 않았었죠. 마음먹고 소설을 읽어보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불과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막상 소설을 읽으려고 하니,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가 걱정이었습니다. 급하게 입문서라 생각되는 몇권의 책을 훑었습니다. 따분하기 그지 없는 한국소설사를 띄엄띄엄 훑으며, 소설에 대한 호기심은 조금씩 사그러들고 있었을 때, 도서관 서가에서 창작과 비평사의 '20세기 한국소설' 전집을 발견했습니다. 알라딘에서 주기적으로 보내주는 메일링리스트에서 전집 할인행사를 봤던 기억이 교차되면서 낯설지 않은 이름을 찾았습니다. 서가를 훑는 시선은 40권이 넘어서야 비로소 멈추었습니다.

# 김경욱 「블랙러시안」

- "지국에 불시착하는, 수억만 번째의 첫눈이었다." 이 표현만큼, 이 소설의 매력을 보여주는 문장은 없을 것 같군요. 처음과 마지막 장면은, 비행기 결함으로 화성에 추락한 주인공이 줄어드는 산소통의 눈금을 말없이 바라보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양단의 장면이 품고있는 것은 '은서'를 찾아 거리를 헤매는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 은서를 찾아헤매는 주인공은 급기야 그녀가 활동하던 UFO동호회까지 찾아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은서 대신 만난 다른 회원은 "다른 시간과 공간의 존재를 믿느냐?"라는 알 수 없는 얘기를 남긴 채 사라지고 맙니다. 그리고, 마지막 희망이었던 UFO동호회에서조차 은서를 찾지 못한 주인공은, 결국 어지러움을 느낀 채 쓰러지고 맙니다. 그 위에 화성의 주인공이 겹쳐집니다. 그가 애타게 찾아해메었던 은서는, 화성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는 그에게 나타납니다. 그를 구하러오는 우주선 '블랙 러시안 - 그녀가 즐겨마시던 칵테일'호로 말이지요.

-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의 존재를 한 폭의 그림으로 담아낸 상큼한 소설이었습니다. 소설가 김경욱은 PC통신, 인터넷을 비롯한 영상매체를 소재로 채택해왔다고 하는데요, 아직 현실에 녹아내리지 않은 상상이나 기술이 바꾸어 낼 우리 삶의 모습들을, 소설가 김경욱은 그려보이고 있습니다.

# 배수아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 가장 알쏭달쏭한 작품이었습니다. 남자친구와 함께 떠난 여행길에서의 푸른 사과며, 자동차를 가로막는 검은고양이, 그리고 친구 소영이 구입하려던 은빛가위까지. 작가의 생각을 쫓아가려 무던히 애를 썼지만, 결국은 놓치고 말았습니다.

- 주인공 '나'는, 얼마 전에 읽었던 <백수생활 백서>의 그녀를 무척이나 닮아 있었습니다. 타인을 비롯한 주변 세상 뿐 아니라, 심지어 그녀 자신의 삶에 대해 조차도, '나'의 시각은 무척 건조합니다. 의대생과 결혼한 후 백화점 쇼핑이나 다니며 그녀에게 일상사를 속살거리는 사촌과, 벗어나고 싶어했던 정비공으로 재회하게 되는 김신오의 존재 역시도, 그녀의 무채색을 더욱 바래보이게 할 뿐입니다.

# 김연수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1954년」

- 이번 단편집에서 유일하게 낯익은 이름이었습니다. 김연수, 군에서 책읽기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청춘의 문장들>의 그였습니다. 동호회 회원들의 극찬에 떠밀려 집어든 것이죠. 정확하지는 않지만, 서문에 씌여져 있던, "유유히 흘러가는 청춘의 시간들이 아까워 문장에 잡아두고자 했다."는 표현이 기억에 남습니다. 수필집에 가두어진 그의 청춘은 꽤나 잔잔히 흘러가고 있었죠.

- 단편집에 실린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1954년> 역시 예의 잔잔한 목소리로 읊어지고 있습니다. 소위, 배 다른 동생인 재식을 바라보는 '나'는, 까닭 없이 재식을 괴롭혔던 어머니와 재식이 집을 나간 후 '제발로 나간 만큼 제 알아서 하라.'던 아버지의 애증(?)에서 한발자국 물러나 있습니다. 하지만, 재식을 찾아간 '나'는 그로부터 자신이야 말로 가장 어렵고 불편한 사람이었음을 듣게되죠.

- 재미있는 것은 독일에서 돌아와 재식과의 재회를 준비하는 '나'의 행보와 나란히, 북한 김정일의 사망 소식이 놓여있다는 것입니다. 배 다른 동생 재식을 그저 '재식'으로 바라보려하는 '나'와 자극적인 북한의 소식에 귀기울이지 않는 '나'가 묘하게 겹쳐집니다.

# 하성란 「곰팡이꽃」

- 가장 재밌는 작품이었습니다. 자신의 후배가 마음에 두었던 여직원과 결혼한 후, 주인공 남자는 옆집 여자의 쓰레기를 뒤지는 일에 몰두합니다. 작가 특유의 독특한 초점과 섬세한 묘사 - 해설에서 인용 - 이 쓰레기를 뒤지는 그의 모습을 더욱 집요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남자는 옆집 쓰레기를 헤집고 분석하여, 옆집 여자의 체구며 취향, 생활패턴까지 알아냅니다. 마침, 여자에게 고백하고자 꽃이며 생크림 케잌을 들고나타나는 또 다른 남자가 등장하며, 그의 행동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구요.

- 남자는 '쓰레기 분석을 이용한 사회학'을 얘기합니다. 또 다른 남자의 어리숙한 모습이 그를 그렇게 간접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쓰레기를 뒤지는 일은 의사소통 행위의 일환이자, 더욱이 탁월하기까지 한 그것이죠.

- 남자를 보며, 대학시절 좋아하던 여학생에게 애써 고백했다가, "오빠, 저 좋아하세요?"라는 대답을 들었던 웃지못할(?)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 친구에게, 말 한마디도 다듬고 또 다듬던 제 모습은, 그저 애써 마련한 만남을 따분해하고 있는 모습으로 비춰졌겠죠? 상대를 잘 알아가는 것은, 많고 적음에 상관 없이 소통의 절반일 뿐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순환되지 않는 절반의 많음은 오히려, 순환을 압박할 뿐이겠지요. 참으로 탁월한 작품이었습니다.

# 조경란 「망원경」

- 망원경의 특징이 너무 유별난 까닭에, 주인공인 '나'가 망원경을 구입하는 순간부터 재미가 덜했습니다. 보고싶은 것과 보기싫은 것 모두를 골고루 비추는 눈과 달리, 망원경은 보고싶은 것 만을 집중적으로 비추니까요. 망원경 렌즈에 비추인 '나'의 주변풍경이란 철거를 앞둔 우체국 직원 '나'의 황량함 내지는 섭섭함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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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의 누 - 동양문학 7
이인직 지음, 권영민 교열해제 / 서울대학교출판부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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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소설, 최초의 근대 소설이라기에 한번 읽어봤습니다. 70여쪽 남짓한 분량인데, 책장을 덮으니 아쉬운 마음이 컸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새롭다' 는 경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 모르기 때문입니다. '새롭지 않은' 소설을 좀 더 읽어두었어야 했는데요.

- 결국, 교열을 맡은 권영민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형식적인 면과 내용적인 면 모두에서 차별이 되더군요. 우선, 형식적인 면을 보자면, 말하는 이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줄어든다는 점인데요, 대화체나 '~하더라' 라는 방식의 서술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형식은 내용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주인공의 주체적 태도로 표현됩니다.

- 신소설의 새로움이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것이 평론가들의 설명입니다. 조선에 대한 식민지배를 합리화하고자 했던 일본의 이데올로기라는 것이죠. 일본의 생산양식과 문화에 대한 강조는 곧 조선의 그것에 대한 비하였습니다. 따라서, 신소설 주인공들의 주체적 태도란, 기존 조선사회의 가치들을 부정하는 것으로 표현되구요. 아예 노골적으로 일본이나 미국의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 참고로 저자 이인직은 적지 않은 나이에 일본에서 유학하고, 조선에 돌아와 송병준 이용구의 도움으로 신문사를 운영했다고 합니다. 이 신문사들의 논조를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인데, <혈의 누> 역시 이 신문에 연재되었던 소설입니다. 친일의 이데올로기 내지 계몽의 수단으로 활용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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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행복한 카시페로 마음이 자라는 나무 9
그라시엘라 몬테스 지음, 이종균 그림, 배상희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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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남미의 여성작가, 그라시엘라 몬테스의 동화입니다. 젖이 열개 밖에 없는 어미에게서 열한번째 막내로 태어난 개, '카시페로'의 인생역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개의 삶을 굳이 '인생역정'이라고 표현한 것은, 좁은 의미에서는 '사람에 의해' 씌여졌기 때문에며, 넓은 의미에서는 '카시페로의 시각에서' 씌여졌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닌 동물의 생각을 마치 사람의 그것처럼 묘사하는 '의인화'는, 어디까지나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작업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 "개라면 되도록 빨리 일자리를 얻는게 좋다."라는 넋두리로 시작된 카시페로의 인생역정이란, 애완견, 서커스단원, 장난감 모델, 실험대상, 때로는 방랑자로서 펼쳐집니다. 하지만, 카시페로의 이름을 제 멋대로 바꾸고 불편하기 그지 없는 귀싸개며 인조꼬리를 달아주는 애완견 분양자, 관객들의 만족을 위해서 단원의 안전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는 서커스 단장, 그럴싸한 장난감을 만들기 위해 억지 행동을 강제하는 장난감 제조업자, 영원한 아름다움을 절대 가치로 삼는 연구원들이야 말로, 이 소설의 주인공일 것입니다. 아이들과의 대화 보다는 아이들을 위한 대화에 열중하는 어른들, 이윤을 위해 노동자를 소외시키는 자본가들, 삶의 기쁨과 가치를 '젊음'이라는 외양에서 찾으려는 사람들이죠. 심지어 "드럼통은 꼭대기까지 맛있는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라는 카시페로의 재치있는 표현 역시도, 음식쓰레기를 버렸을 보이지 않는 '사람'을 감추고 있습니다.

- 우리의 카시페로가 (안정이 아닌) 안식을 찾게 되는 이는 바로, 머리없는 인간입니다. 카시페로에게 '토토'나 '로드', '트룩스'와 같은 이름이 아닌 '귀돌이 신사, 배고픈 카시페로 공작'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그는, 하필이면 겉옷을 머리께 까지 잔뜩 올려입은, '머리없는' 인간이었습니다. 열이면 아홉이 해로운 생각을 할 뿐인 인간들에게, 카시페로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내 힘껏 되는대로 배고픔을 해결해야 한다."며 피카로(picaro, 악한)로서의 그것을 가르치고 싶을지 모르겠지만, 글쎄요.

- 그렇습니다. 결혼을 하는 순간, 아이를 갖는 순간, 중년의 나이에 이르는 순간, 너무 많은 순간이 내 인생을 조여온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지 않기로, 아이 만은 절대 갖지 않기로, 중년의 나이에 이르기 전에 꿈을 찾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하지만, 카시페로가 가르쳐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 또한 '뒤집어진 집착'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죠. 배우자를 구속하지 않는다면, 작아보이는 아이의 세계를 존중할 수 있다면, 죽음 역시 하나의 행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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