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가짜, 대중문화와 센티멘털리즘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01
김혜련 지음 / 책세상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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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 ‘대중’과 ‘대중적인 것’

‘대중’이라는 단어는, 의도에 따라 다양하게 이해될 수 있다. 형식적으로는, 공식적인 지위에 있지 않은 사람들을 모두 지칭(popular)하는 것이지만, 평가적인 관점에서는, 주체적이지 못하고 합리적이지 못한, 수동적이고 종속적인 집단(mass)을 일컫기도 하였다. 흔히 ‘대중적인 것’이라 함은 평가적인 의미를 띠는 경우가 더 많았다.

또한, ‘대중적인 것’이라 함은, 한꺼번에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의 방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은 기술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지만, 역으로 전달되는 정보의 내용, 대중의 취미와 가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중적인 것’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위의 두 가지 지점을 모두 고려해야 할 것이다.

# 문화의 예술화와 예술의 문화화

문화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양식이라면, 예술은 특정한 매체, 기법, 스타일, 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복제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예술의 독점적 영역이 해체되자, 예술과 문화 사이의 경계도 조금씩 허물어졌다. 순수예술은 대중을 만날 수 있게 되었고, 대중문화는 예술적 형식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이 열어준 가능성의 공간에서, 예술과 문화는 각각의 영역을 개척하며 더욱 발전해나가기 보다는, 서로의 영역을 다툼하는 경쟁의 구도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문화는 예술이 가진 매체적 형식과 미적 아우라만을 차용하려하고(문화의 예술화), 예술은 그 스스로 작품의 형식성과는 괴리된 채 감상자의 관심사와 욕구충족에만 매달리는 현상(예술의 문화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이슈가 되었던 인문강좌 붐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실용강좌(문화)와 인문학(예술)의 만남은 분명 가능성의 공간이지만, 대가와 석학의 이름과 작품만 나부끼는 일회성 인문강좌와 외딴섬과 같은 인문대학들의 현실을 직시한다면, 그것을 또 하나의 문화의 예술화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 도식성, 통속성, 관능성

대중예술은 상품이기에 앞서, 제작과정과 소비방식에서 비롯된 구조적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도식성과 통속성, 관능성이 그것이다.

도식성은 익숙한 플롯 형식을 통해 감상자들로 하여금 별다른 노력 없이 유사한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측 가능한 구성과 종지부, 감정이입이 손쉬운 성격 묘사, 현실과 분리되는 별세계의 경험, 사생활에 대한 관음증적 욕망과 같은 것들이다. 대중예술의 도식성은 현실의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단순화하면서 심리적 안정감을 주지만, 진지한 성찰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이 내면화되고 습관화된다면 센티멘털리즘의 핵심인 자기기만이 내면화될 수 있다.

통속성이란, 흔하고 저급한 소재를 통해 사람들을 모두 같은 부류로 만들어, 감상자들로 하여금 동류에 속하는 안도감을 느끼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문화적으로 획일화이며 하향평준화라는 점에서 퇴행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심리적, 신체적, 도덕적인 면에서의 노력과 투자를 최소화하는 것을 통해, 즐거움과 만족감을 극대화하는, 스스로를 속이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끝으로, 관능성이란 성적 판타지를 조성하여 감상자들에게 구체적인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성적 판타지는 상대를 자신의 필요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만 취급한다는 점에서, 도덕적 이기주의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태도가 내면화된다면, 우리는 인격성에 대해 무감각해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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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9
김승옥 지음 / 민음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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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알려진 소설이라, 풍월이라도 도움을 주겠거니 생각 했었다. 하지만, 극중 ‘윤희중‘에게 ‘무진‘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쉽게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사랑 없는 결혼과 정략적 출세로 나타나는 서울에서의 삶과 대비해 ’잃어버린 순수‘를 상징하는 것으로 짐작했지만, 막상 무진에서 그의 행보는 그와 조금 달랐다. 거리낌 없이 놀음판에 끼어들고, 순수를 상징하는 후배 ’박‘에게 일정정도 거리를 두고 대하며, 그가 흠모하는 ’하인숙‘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연민 이상의 느낌을 발견하기 힘들었다. (물론, 앞서 나열한 윤희중의 행보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것들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순수와 선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무진에서 그의 시선이 머무르는 곳이나, 회상으로 드러나는 무진에서의 생활은 설익은 추측을 더욱 강하게 뒷받침하였다. 그의 시선은 무진의 초여름을 이기지 못하고 미쳐버린 술집여자며, 적막한 거리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교미하는 개들에 머무른다. 동기생 ‘조’로 대변되는 무진의 주민들은 허영과 출세욕을 내비치고, 서로를 속물이라 생각하면서도 표리부동 한다. 또한, 징집을 피해 골방에 숨어 지내야 했고, 지인들에게 절박한 편지를 쓰며 무진을 벗어나고자 했던 윤희중의 무진. 그의 무진은 결코 순수하지만은 않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나는 윤희중의 부끄러움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무진을 떠나며 하인숙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였던 것이다. 하인숙에게 약속했던 서울은 바로 몇 일 전 그가 떠나온 곳이었다. 더구나, 하인숙은 골방에 틀어박혀 외로움을 토로하는 윤희중이고, 무진을 벗어나 서울을 동경하는 윤희중이었다. 그저 ‘하인숙’, 그저 ‘윤희중’. 사람의 이름 석 자를 제외하고 그의 부끄러움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나는 찾지 못했다.

결국, 나는 이것을 ‘연민‘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부끄러움을 느꼈던 이유는 ’세상의 속물들‘을 매질하는 어떤 숭고한 ’가치’에 반해서가 아니라, 그저 ‘나’에 대한 연민, 더러운 세상 속에서 더럽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 대한 연민이었던 것이다. 이제야 나는, 김훈 선생님의 소설평에 등장하는 수많은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에 가는 길에 선생님의 신작 <공무도하>를 사야겠다.

“그 여자의 <목포의 눈물>은 이미 유행가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나비부인>중의 아리아는 더욱 아니었다. 그것은 이전에는 없었던 어떤 새로운 양식의 노래였다. (중략) 그 양식에는 머리를 풀어헤친 광녀의 냉소가 스며있었고 무엇보다도 시체가 썩어가는듯한 무진의 그 냄새가 스며있었다.” (<무진기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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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코레아니쿠스 - 미학자 진중권의 한국인 낯설게 읽기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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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들의 습속에 대해. 국민성에는 인종주의가 담겨 있고, 정체성에는 이념성이 담겨 있으니까. 습속은 상대적이다.
- 한국에는 근대적 속성과 탈근대적 속성, 전근대적 속성이 뒤섞여 있다.
- 문제는 어느 요소를 선택하고 배치하느냐 하는 점: 존재의 개성화, 정신의 합리화(영상문화에 합리성)

1. 근대적 속성

- 권력의 생체공학: 시간 엄수. 교육과 근로 의무
- 기계화: 졸업식/조회 풍경, 사원들 극기훈련
- 국가화: 너 어느 나라에서 왔니?
- 속도전: 교통, 식당, 술, 엘리베이터: 노동생산성이 노동력의 양적 투입에 의존하던 시절. 이제 내포적 속도가 필요
- 존재미학: 성형: 삶이 예술이 되는 것은 좋으나, 그 재료가 신체일 때는.

2. 전근대성

(감정적)
- 전사: 합리적이기 보다는 감성적
- 정념: 황우석과 브릭, 연속극. 논리적이기 보다는 진정성, 정념 대신 물질적 소유욕. 데카르트의 정념론, 감각에서 벗어나라, 상상을 배격하라.
- 공포와 습관: 창의성은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는 데서 나온다.

(신분)
- 양반화: 명품, 검사들, 유시민 백바지, 수평적 예법: 교양이나 격조 보다는 신분
- 어린이: 차별하는 버릇, 규칙 보다는 왕대접
- 카리스마: 박정희. 자율적 주체의 미완성. 자신의 먹고사는 문제를 정치 지도자의 덕으로 돌리는 봉건적 어법. 원인 파악 이전에 범인 지목.
- 복제: 짝퉁은 상류층에 속하고 싶은 대중적 욕망의 허구적 실현

(동물적 감각)
- 생리 표출: 트림, 구토, 침. 근대 이성주의 문화는 인간의 동물적 측면 감춰
- 오감: 힐끗거리기, 아나운서의 격앙된 목소리, 마늘냄새, 쩝쩝거리기. 배려보다는 감각의 문제. 근대에는 원거리에서 근거리로 감각이 재구조화, 추상적 능력 발달. 
- 벤다이어그램: 아이 쓰다듬기, 손잡고 다니기 

- 취미: 몰개성 간판, 큰 목소리, 배부르게 먹는 것, 통증에 가까운 매운 맛: 문명화 과정의 산물
- 죄의식과 수치심: 연합군 포로와 일본 포로, 02월드컵과 06월드컵, 남 보기에 부끄럽지 않게: 죄책감은 죄를 짓는 순간, 수치심은 드러나는 순간

3. 미래주의

- 기술적 선진성과 전근대적 일촌 맺기: 싸이월드, 게임
- 유비쿼터스적 감시: 왕따 동영상
- 문자문화와 구술문화: 인터넷 서핑 문화, 인터넷 논객/댓글 논쟁. 컴퓨터가 망으로 연결되면서, 문자문화의 성과에 구술성과 영상성을 결합해야.
- 디지털 통각: 연구직의 확대, 카이스트 삼각 컨소시엄: 미디어와 함께 소통의 패러다임이 변하면서, 과거 농민의 노동자와 처럼, 프로그래밍 하는 자와 당하는 자
- 유령: ~녀, 기획동영상, 황우석, 낸시 랭: 리얼 버츄얼리티
- 아우라와 키치: 교회, 법당, 예배, 대학건물, 사진

* 현상학: 현상을 중요시 하는 철학. 경험을 중요시. 람베르트, 후설, 하이데거, 사르트르. ↔ 본질학(본체학)
* 저곡가 정책: 노동자들의 저임금을 보조하기 위해 정부가 쌀 가격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정책적으로 압력. 이를 보완하기 위해 새마을운동. (비) 추곡수매: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대신, 쌀의 가격을 낮게 유지하는 정책. 쌀만 시행.
* 유기체/무기체: 생활 기능이 있는가/없는가
* 사행성: 요행으로 돈을 취득하려는 놀이
* 시뮬라르크: 원본 같은 복제
* 그로테스크: 이상함, 괴기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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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 감춰진 것들과 좌파의 상상력
최세진 지음 / 메이데이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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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에서 정보통신부장으로 활동했던 최세진 씨가 '노동자의 힘' 기관지에 연재한 문화 칼럼을 모아 책으로 냈습니다.
[체 게바라], [판초 비야], [신채호]의 역사에서부터, [바그너], [쇼스타코비치], [조지 오웰], [존 레논], [피카소], [미야자키 하야오]의 음악, 문학, 미술, 애니메이션을 거쳐, [인터넷], [컴퓨터게임], [SF], [해킹]과 같은 첨단의 문화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영역 만큼만 넓은 좌파의 영역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의미는 둘째 치고, 일단 재미가 있습니다. 책에 소개된 음악, 그림, 애니메이션을 찾아보며 그윽하게 웃을 수 있는 책,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되겠습니다.

"기나긴 혁명은 우리에게 예전보다 많이 '자유롭고, 불순한 상상력'을 요구합니다. 그 '자유롭고, 불순한 상상력' 으로, 감추어진 것들을 꿰뚫어보고 더 나은 세상이 가능하다는 '즐거운 상상력' 으로 바닥부터 전복해 나갈 것을 요구합니다." (최세진)

"우리는 작품을 만들 이야기를 찾아다지는 영화제작자가 아니라, 지금보다 나은 세상, 여러 가지 다른 세상이 공존하는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비디오를 활용하는 사파티스타이다." (릭 로울리)

"당신들은 예술가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미술가는 눈만 가지고 있고, 음악가는 귀만 가지고 있고, 시인은 심장 겹겹이 온통 서정시로 이루어져 있고, 권투선수는 근육덩어리만 가진 얼간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러기는 커녕 예술가는 정치적인 존재임과 동시에 끊임없이 마음을 찢기고, 열정을 느끼고, 행복하게 만드는 모든 일들에 반응하는 존재이다.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무관심할 수 있고, 무수하게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삶에서 벗어나 우아한 냉담의 미덕을 보일 수 있겠나? 전혀! 미술은 집이나 장식하라고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적을 공격하거나 방어하기 위한 전쟁 무기이다." (피카소)

"이거 진짜 골때리는 풍경이었어. 근데 이게 진짜 민주주의거덩. 간접민주주의라는 거 투표권 한장이 고무신 하나랑 맞바꿔지는 웃긴 짬뽕인데."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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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임 ] <스타크래프트> <삼국지>의 군사정책, <캐피탈리즘>의 기업정책, <심시티>의 세금정책, <민주주의>의 선거정책, <커맨드 앤 컨커>의 대립구도 | 헤즈볼라의 <스페셜 포스>, 뉴스게임즈의 <9월 12일>, 김재우 <데모 게임>
- [ 바이러스 ] 'No import rice' 바이러스
- [ SF ]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 H.G.웰즈 <타임머신><우주전쟁>, 잭 런던 <강철군화>, 로버트 A. 하인리히 <스타쉽 트루퍼스>, 레이 브래드버리 <화씨 451> <화성연대기>, 필립 K. 딕 <높은 성 위의 사나이>, 어슐러 K. 르 귄 <어둠의 왼손>, 아이작 아시모프 <로봇>, 데즈카 오사무 <우주 소년 아톰>
- [ 해킹 ] 백오피스와 백오리피스, 데프콘대회
- [ 음악 ] 바그너 <발퀴레의 기행>과 히틀러, 쇼스타코비치의 <Jass Suit No 2. Waltz 2> <10월 혁명> <5월 1일> <레닌그라드>와 스탈린, 존 레논 <Power to the people> <Working class hero> <Give piece a chance>와 베트남 전쟁, 첨바왐바 <tubthumping>과 리버풀 부두노동자 파업 <Top of the world> 영국과 세계의 정치적 사건, 피트 시거 <International> <Guantanamera> <Arirang> <We shall overcome>
- [ 시 ] 마야코프스키
- [ 소설 ] 조지 오웰 <동물농장><1984년>과 스페인 혁명
- [ 그림 ] 피카소와 국가보안법, <게르니카>와 스페인 혁명, <평화의 비둘기>와 프랑스 공산당, <한국의 학살>과 한국전쟁
- [ 애니메이션 ] 미야자키 하야오 <미래소년코난>과 공산주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과 전공투
- [ 역사 ] 알베르또 꼬르다와 영국 보드카 회사, 판초 비야와 에밀리아노 사파타, 신채호와 민족대표33인, 김원봉과 의열단 그리고 노덕술, 사전검열과 <비 내리는 호남선> <아침이슬> <물 좀 주소> <행복의 나라> <거짓말이야> <Imagine>&<Revolution>
- [ 통신 ] 바통모_통신연대_진보넷, 카피레프트 운동과 총파업통신지원단, 붉은 악마, 노사모, 안티조선, 인터넷 영리사이트와 검색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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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9-01-13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뒷이야기도 즐거웠구요. ㅎㅎ. 혹 참고가 될지 모르겠네요. 녹취록입니다. 독서에 조금 도움되길 바래요. 복많이 받으시구. 만드시구.요.
http://www.tjcivilacademy.or.kr/zboard/view.php?id=comb&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63

sb 2009-01-13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좋은 소식 감사드립니다.
여울마당 님께도 좋은 독서 되시기를..
 
홀림
성석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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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석제 소설가의 단편 여덟 편을 모은 소설집입니다. 단편을 어떤 기준으로 묶어내는지 모르겠으나, 소재가 돋보이는 몇 편의 작품, 구도가 돋보이는 몇 편의 작품, 그리고 몇 편의 작품으로 되어 있습니다.

- 소재가 돋보이는 작품은 각각, 노름('꽃 피우는 시간'), 술('해방 - 술마시는 시간'), 볼룸댄스('소설 쓰는 인간')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야기꾼' 성석제 소설가의 면모가 돋보이는 순간입니다만, 소재로부터 차용한 밀도에 비해 다소 긴장감이 떨어지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 구도가 돋보이는 작품은, '협죽도 그늘 아래'와 '붐빔과 텅 빔'이었습니다. 이야기를 전개하되, 중간에 이를 중개하는 서술자의 목소리 - 1인칭이든 3인칭이든 - 가 들어가면서, 긴장감과 운율감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 몇 편의 작품은 읽다가 그만 두거나, 읽지 않았습니다.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한 '홀림'과 그 외에 '방', '이무기'가 그렇습니다. 다소 난해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만, 소설을 케이블 티브이 채널 대하듯 하는 태도와 부족한 독해 능력을 탓할 뿐입니다. 아래 간단한 메모를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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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 피우는 시간

- 1인칭 시점의 서술자가 도박사 피스톨 송 선생의 강연을 그대로 옮겨 적는 구조로 되어 있는데, 서술자의 호흡이 개입되면서 긴장감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 철칙: 걸면 안 되는 것을 걸지 말라.
두번째 철칙: 기다려라. 기다리고 기다려라, 운이 돌아올 때까지. 노름은 확률의 게임이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
세번째 철칙: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는 사람이 이긴다.
네번째 철칙: 목표를 정하되 과욕하지 마라.
다섯번째 철칙: 너무 오래 하지 마라.
여섯번째 철칙: 술과 여자를 조심하라.
일곱번째 철칙: 노름에는 왕도가 없다.
여덟번째 철칙: 언제든 튈 준비를 하라.
아홉번째 철칙: 노름은 자기 책임이다."


# 해방 - 술 마시는 인간

- 3인칭 전지적 시점의 서술자가 한 술자리에서 오고가는 전 알코올 중독자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적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동석한 여자가 "왜 울었을까?"를 주기적으로 질문하면서 긴장감을 유지하지만, 다소 억척스럽다는 느낌이 드는 부분입니다.

"나는 그런 거 안 믿어. 술의 종, 로봇, 아니 신도가 돼 있는데 어떻게 주인이신 신의 허락도 없이 주인을 이용해서 제 맘대로 죽어."

"알코올 중독에도 등급이 있고 격의 차이가 있어. 술 처먹어서 가정과 사회 생활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하는 걸 알코올 남용이라 하고, 술을 끊었을 때 심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도 금단 현상이 나타나서 다시 술을 마시게 되는 경우는 알코올 의존이라고 한다네. 그게 등급이지. 격의 차이? 그거야 술에 취했을 때 곱게 미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지."
 

# 소설 쓰는 인간

"우리 국력이 조금 더 발전했다면 우리의 지르박이 자이브를 제치고 정식 종목이 됐을 거고 그러면 볼 것도 없이 박인수의 후배들이 메달을 몽땅 따올 건데."

"볼룸 댄스는 알고 보면 예절 그 자체다. 테크닉보다 예절을 더 중요시한다. 진짜 춤을 추는 사람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사다. 제대로 된 선생은 제자에게 먼저 예절부터 가르친다. 그 다음이 스텝이다."

"나는 한번도 내 입으로 춤추다 만난 여자에게 용돈을 달라고 해본 적이 없다. 춤이 좋아 춤을 추러 춤방에 갔다가 춤으로 만난 여자들에게는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그러니까 여자들이 알아서 돈을 갖다주더라. 용돈이 아니라 집 몇 채를 사고도 남을 뭉텅이 돈을 갖다주었다."

"한창때 내 하루 일과는 이랬다. 나는 하루도 새벽 운동을 빠뜨리지 않았다. 내가 회원권을 가지고 출입하는 헬스 클럽에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등 가계의 유력 인사들이 많이 왔다.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배달된 조간 신문을 샅샅이 읽어, 언제 어떤 사람을 만나도 대화에 막힘이 없도록 열심히 공부했다. (후략)"


# 협죽도 그늘 아래

- 소설이지만, 한 편의 장시처럼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한 여자가 앉아 있다. 가시리로 가는 길목, 협죽도 그늘 아래."로 시작해서, 배경이 되는 설명(한국전쟁과 부부의 이별, 민간인 학살, 등)을 조금씩, 그것도 점층적으로 전해줍니다.

# 붐빔과 텅 빔

- 역시, 구도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동생이 형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빌어, 다른 듯 같은 길을 걷는 동생과 형의 일대기를 그립니다. 그리고, 그 안에 농촌의 교육현실과 이농현상, 소비재 산업과 중동 건설산업의 부흥, 춤바람과 같은 60~80년대 시대상이 녹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겁나지 않는데요. 형님이 제가 갈 길을 언제나 먼저 가주셨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형님이십니다,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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