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화학물질의 해악을 낱낱이 고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1950년대 정도만 해도 여성 과학자는 미국에서조차 대단히 희귀한 존재였다. 또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여성 과학자는 남성 과학자들의 위세의 눌려서 그야말로 얌전히 실험실만 지키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1962년 자그마한 몸매의 한 여성 과학자가 세상을 뒤바꿀 만한 놀라운 일을 저질렀다.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은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라는 책을 발간해 그때까지만 해도 ‘꿈의 화학약품’으로 간주되던 농약과 살충제의 위험성을 낱낱이 고발했던 것이다.

생물학자로서 교육을 받고 한동안 연방정부 산하 기관에서 해양생물학자로 일했던 카슨은 자신이 습득했던 과학적 정보를 유려한 필치로 풀어낼 수 있는, 과학과 문학을 겸비한 보기 드문 재원(才媛)이었다. 하지만 ‘침묵의 봄’의 발간이 타고난 능력만으로 될 수 있었던 일은 물론 아니었다. 책의 내용은 당시 번창일로에 있던 화학회사들과 화학공업계에, 그야말로 메가톤급 핵폭탄이 될 것이 자명했다. 만약 그로 인한 후폭풍을 감당하고자 하는 결연한 용기와 의지가 카슨에게 없었더라면 책 발간은 아예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침묵의 봄’ 발간 이후 4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레이첼 카슨이 존경받는 이유는 바로 그런 ‘용기 있는 고발 정신’ 때문이라고 하겠다. 열성적인 생태주의자이자 자연보호주의자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카슨은 1964년 56세 때 된 암으로 사망하였다.

사실 한 권의 책이 세상을 온통 뒤바꾸는 기폭제가 되는 일은 대단히 드물다. 그런데 ‘침묵의 봄’은 당시만 해도 기적의 화학물질로 칭송되던 각종 살충제, 제초제, 살균제들이 환경오염과 환경훼손의 주범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고발함으로 써 그런 기폭제의 역할을 하였다.

“미 대륙의 한가운데 모든 생물이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평화로운 한 마을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낯선 병이 이 지역을 뒤덮어버리더니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닭들이 이상한 질병에 걸렸다. 소 떼와 양 떼가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 농부들의 가족도 앓아 누웠다. … 낯선 정적이 감돌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내 새들이 모두 사라져버린 것을 알아챘다. 봄이 돌아왔지만 새들의 지저귐은 들을 수 없고 들판과 숲과 습지에는 오직 침묵만이 흘렀다.” 이 책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된다.

카슨은 그런 침묵의 세상이 머지않아 도래할 것이라고 인류에 경고하였다. 그리고 그런 세상을 만드는 원흉으로 살충제와 농약을 비롯한 각종 화학물질의 대량 사용을 적시하였다. 화학물질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화학전을 위해서 개발된 약품들 중 일부가 유해곤충의 박멸에 효과가 탁월하다고 알려지면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화학약품은 소량만 살포해도 효과가 탁월하고 약효가 오랜 기간 지속되며 무엇보다도 제조가 용이해 값이 싸다는 장점 때문에 매년 엄청난 양이 농경지와 자연에 뿌려졌다. 그리고 매년 점점 더 많은 화학약품이 개발되면서 그 독성과 지속성 역시 점점 더 강력해졌다.

자연에 살포된 농약과 살충제가 애초 박멸하고자 했던 해충에만 효과를 나타낸 것은 아니었다. 그것을 살포하는 과정에서 먼저 농부들을 중독시키고(실제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농약중독 사례가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이어서 자연계의 먹이사슬을 통해 ‘느릅나무 잎-지렁이-울새-독수리’의 순서로 화학물질이 축적되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런가 하면 화학물질의 오랜 지속시간으로 말미암아 DDT와 PCB처럼 이미 오래 전에 생산이 중단된 화학약품도 여전히 하천과 호수의 침전물 속에서 검출되고 있다. 심지어 전혀 그런 물질을 접촉해 본 적이 없는 에스키모인의 몸 속에서까지도 발견된다.

카슨의 경고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카슨은 탐욕에 가득 찬 인간은 점점 더 강력한 화학물질을 개발하고 또 그것을 점점 더 많이 사용함으로써 결국은 자연계의 균형이 깨지고 급기야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에 위치하는 새들부터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카슨에게 있어서 ‘침묵의 봄’은 곧 지구의 멸망을 예고하는 서막이다. 

‘침묵의 봄’은 과학기술의 발달이 현대인의 생활을 보다 풍요롭게, 보다 윤택하게 할 것이라는 장밋빛 기대를 여지없이 깨버렸다. 농약과 살충제를 마구잡이로 사용한 결과 봄이 찾아와도 새소리를 들을 수 없다면 그것을 어찌 봄이라 하겠는가? 그런 환경 속에서라면 우리 생활이 제 아무리 풍요롭다고 해도 어찌 행복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침묵의 봄’은 환경오염의 재앙을 경고하였다. 그리고 이 책의 내용에 귀를 기울였던 사람들은 비록 느리게나마 서서히 세상을 바꾸어 나갔으며 이제 4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세상은 과연 어떻게 변했을까?

과거 40년 전의 상황과 비교할 때 적어도 레이첼 카슨이 우려했던 ‘침묵의 봄’은 현실로 재현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지금도 일부 환경낙관론자들은 카슨의 경고가 너무 과장된 것이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시대에 앞선 그런 경고가 있었기에 ‘침묵의 봄’이 현실화되지 않았을 것이리라.

‘침묵의 봄’이 발간된 이후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치면서 세계적으로 환경오염 방지를 위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만약 21세기가 40년 전 카슨이 살았던 시대보다 환경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낫다고 한다면 여기에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과학기술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카슨의 주장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하겠다. 다행스럽게도 카슨이 고발했던 주장의 상당 부분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화학물질의 독성은 과거보다 크게 낮아졌고 자연계에서 쉽게 분해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화학물질의 경우에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문제다. 인체 호르몬과 유사한 화학구조를 가진 미량의 화학물질이 여전히 자연계에 존재하면서 환경호르몬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 그러한 예라 하겠다.

40여년 전에 발간된 저서에 대하여 현재의 시점에서 평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더욱이 그 저서가 과학기술 분야의 책이라고 한다면 더욱 그렇다. 이 책 또한 오늘날 우리 현실에 꼭 맞는 그런 책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요즈음 사용되는 농약은 더 이상 카슨 시대의 농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책이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중요한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 여성 과학자의 예리한 관찰력, 용기 있는 고발정신, 시대를 앞서가는 탁월한 통찰력이다. 가뜩이나 혼돈스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한국의 젊은이라면 모름지기 한 번쯤은 시대를 앞서 살았던 카슨의 입장이 되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물이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기적이기에 이에 대항해 싸움을 벌일 때조차도 경외감을 잃어서는 안 된다. 자연을 통제하기 위해 농약과 살충제 같은 무기에 의존하는 것은 우리의 지식과 능력 부족을 드러내는 증거이다. 자연의 섭리에 따른다면 그런 야만적인 힘을 사용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겸손함이다. 과학적 자만심이 자리를 잡을 여지는 어디에도 없다.

홍욱희 세민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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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작업의 낭비요소 없애 생산성 높여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
 
“눈에 보이는 물적 자원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노력이 더 크게 낭비되고 있다.” - 프레더릭 테일러
 
1911년 출간된 ‘과학적 관리법’(The Principle of Scientific Management)은 조직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작업의 흐름을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원리를 정립한 경영학 최고의 고전이다. ‘경영학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저자 프레더릭 테일러(Frederick W. Taylor)는 산업혁명 이후 공장생산에서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던 관행을 타파하고, 작업현장을 과학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시간연구’와 ‘동작연구’를 바탕으로 작업에 소요되는 시간을 체계적으로 정립하여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기본원리를 제시하였는데, 이러한 그의 업적은 훗날 노동조합이 활성화하면서 “인간노동을 기계화했다”는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경영에 분업을 통한 전문화를 도입하고 과학적인 작업 방식을 정립한 테일러리즘은 막스 베버의 관료제와 더불어 기업조직과 경영활동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기본원리로 평가받고 있다.

훗날 노동자에게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지만, 사실 과학적 관리법은 노사공동의 번영을 목적으로 고안되었다. 테일러는 능률이 향상되어야 고임금을 실현하면서 동시에 기업 차원에서는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미국과 영국에서는 관세 인하, 경영권 세습 규제, 사회주의식 세제 개혁 등의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지만 정작 기업과 개인의 번영을 위해 필수적인 생산성 향상에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테일러는 노동자의 나태한 태업을 막는 것이 생산성 향상의 지름길이라 보았다. 당시의 노동자는 ‘기계의 생산량이 증가할수록 실업률이 증가할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비능률적인 주먹구구식 방법을 계속 사용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테일러는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생산성 증대와 원가절감을 통해 제품가격을 떨어뜨려야 수요가 늘어나고 새로운 고용이 창출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예컨대 구두를 기계화에 의해 대량 생산하게 되면 평균 5년에 한 켤레 정도 구입하던 소비자가 1년에 두 켤레를 구입할 수 있을 만큼 가격이 낮아지고, 이로 인해 수요가 늘어나면서 신규고용이 발생한다는 논리다. 테일러는 “과도한 노동에 대해 동정하기보다는 왜 낮은 생산성으로 적은 임금을 받고 있는지를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저임금의 원인이 태업에 있다”고 지적했다.

태업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천성적으로 게으른 자연적인 태업이다. 또 하나는 조직적 태업으로, 아무리 부지런한 사람이라도 혼자 너무 열심히 일하면 다른 동료로부터 비난을 받게 되므로 하향 평준화식의 태업을 하게 된다. 과학적 관리법에서는 “이러한 조직적인 태업을 막기 위해 임금제도를 수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하루의 임금이 정해진 상태에서는 하루에 해야 할 작업량이 적을수록 유리하다고 생각하게 되고 이로 인해 태업의 악순환 고리가 생기게 된다. 이런 분위기를 일소하기 위해서는 작업량만큼 임금을 지급하는 차별성과급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선철 운반 및 벽돌 쌓기, 자전거 베어링 검사 등의 모든 작업에는 업무 수행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과학적 방법이 필요하다. 과학적 관리법을 적용할 경우 벽돌 운반에 필요한 총 동작을 18번에서 5번으로 줄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작업대에 벽돌을 가지런히 쌓아놓으면 필요한 곳으로 벽돌을 옮기는 작업을 단순화시킬 수 있다. 즉 작업하기 편리한 위치에 벽돌을 내려놓는 판을 마련하는 등 간단한 도구를 고안해 수천 년간 해온 불필요한 동작을 제거함으로써 1인당 1시간에 쌓을 수 있는 벽돌의 개수를 120개에서 350개로 늘릴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오래 일하게 하는 것보다 제한된 시간에 집중적으로 작업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예컨대 자전거용 볼베어링 생산 공장에서 여공들은 전통적으로 하루에 10시간30분씩 작업하고 있었다. 과학적 관리법에서 진행한 시간 연구의 결과 하루 10시간30분의 작업 시간을 10시간, 9시간30분, 9시간, 그리고 8시간30분으로 단축하면서 임금은 동일하게 지불했더니 산출량이 오히려 증가했다. 즉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을 분명히 하고, 볼베어링 제조 공정의 숙련 정도를 과학적으로 측정하여 숙련도에 따라 공정에 투입하는 방식을 조정한 결과 생산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런 사례에서 보듯이 단순히 솔선수범하는 근면한 자세보다 과업의 과학적 관리가 더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일을 과학적으로 측정하고, 적정한 인재에게 적정한 과업을 할당하고, 성과보상을 합리적으로 한다면 모든 사람이 태업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게 된다는 논리다. 결국 종업원이 자율적으로 작업하는 것보다 체계적으로 정립된 과학적 방식을 관리자가 종업원에게 적용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다. 관리자와 종업원이 협력해서 과학적으로 작업에 임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공동의 책임을 지는 것이 과학적 관리법의 근본 철학이다.

“과학적 관리법은 노동자를 꼭두각시로 만든다”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과학적 지식을 갖추게 되면 보다 흥미롭게 과업을 수행하면서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 “과학적 관리법이 노동자의 창의성을 저해한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과업 수행 방식을 혁신하는 창의적인 제안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즉 기존의 방식보다 우수한 새로운 방식을 작업자들이 제안하여 공장 전체에 적용하는 것이 과학적 관리법의 기본 철학이므로 오히려 종업원의 창의성을 높일 수도 있다.

이런 차원에서 21세기에 와서도 과학적 관리법은 여전히 유효하고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 첫째, 과학적 관리법은 노사공영(勞使共榮)의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능률 향상을 통한 노사공영은 현대기업이 추구하는 이상향이기도 하다. 둘째, 과학적 관리법은 현대 지식경영의 효시이다. 관리자는 과학적 관리에 필요한 지식을 창출하고 공유하는 역할을 하고, 노동자는 학습된 지식을 실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지식경영이다. 셋째, 하루의 공정한 작업량을 설정하고 작업량에 따라 차별성과급을 주는 제도는 성과에 따른 연봉제를 추구하고 있는 현대기업이 추구하는 기본방향과 일치한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업조직은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과거의 낡은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과학적 관리법은 낡은 방식을 버리고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조직을 혁신해야 한다는 경영의 기본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모든 고전에서 배우는 교훈의 공통점은 ‘기본에 충실하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과학적 관리법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기본은 아마도 ‘전문화’와 ‘혁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윤철 한국항공대학교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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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과학으로 ‘살아 있는 지구’ 개념 밝혀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Gaia)
 
우리는 ‘저명한 과학자’라면 당연히 세계 굴지의 대학이나 연구소에 몸담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현대과학이라는 것이 대부분 엄청난 연구비와 잘 훈련된 연구인력을 필요로 하는데 오직 널리 알려진 대학과 연구소만이 그런 자원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사에는 예외도 있는 법.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이 대표적인 인물로, 그의 생활방식은 자신의 ‘가이아 가설’만큼이나 독특하다.

젊은 시절의 러브록은 여느 과학자들과 다름없이 영국과 미국의 여러 대학과 연구실을 전전했다. 하지만 화학과 의학 두 분야에서 모두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그는 극미량의 화학물질을 분석할 수 있는 가스크로마토그래프라는 분석장치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해 과학자로서의 명성과 부(富)를 동시에 얻었다. 과학계에서는 1960년대부터 DDT를 비롯한 유해화학물질이 환경 속에 축적됨으로써 생기는 문제점이 부각되기 시작했는데 만약 러브록의 발명품이 없었더라면 그런 극미량의 유독물질에 대한 연구는 훨씬 지연되었을 것이다.

러브록은 40대 중반부터 영국의 한 시골마을에 자신의 저택 겸 연구실을 마련하고 이후부터 독립적인 과학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그는 특히 환경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는데 1960년대에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잠시 연구하는 동안 ‘지구의 모든 생물이 마치 하나의 초생물체(Superorganism)처럼 함께 행동하면서 지구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자연현상과 물질순환 과정을 주도한다’는 전혀 새로운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획기적인 사고는 1970년대에 ‘가이아 가설’로서 처음 제안되었으며 1979년 발간된 ‘가이아’에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가이아’는 이후 지구과학과 환경과학, 진화생물학 등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러브록은 학문의 경계를 뛰어넘는 과학자, 새로운 사고와 연구 방식을 고집하는 자유분방한 과학자로서 지금도 연구에 분주하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과학 지식은 과거 40억년 전 생물이 지상에 처음 출현한 이후 끊임없이 주위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점진적으로 진화되어 마침내 오늘에 이르렀다고 단정한다. 즉 태양복사열 증가, 화산폭발, 운석의 충돌, 대륙이동 등 여러 지질학적 원인에 의해서 세월의 흐름과 함께 대기와 해양의 조성이 변화하고 또 기후가 바뀌었으며, 생물은 그러한 주위 환경의 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처하면서 점진적으로 적응하는 과정을 밟아왔다는 견해가 그것이다.

그런데 지구에 생명이 처음 출현했던 당시의 원시 대기에는 산소가 전혀 없었던 것에 비해 오늘날의 대기권에는 산소가 21%나 들어 있다. 또 바다는 지구 탄생 이후 그리 오래지 않아서 생겨났는데 바닷물의 염분농도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 만약 하천을 통해서 염분이 지속적으로 공급되었다면 바닷물의 염분농도는 점점 더 높아져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가 하면 지구의 평균기온은 지난 35억년 동안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어 왔음을 밝히고 있는데 그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최근까지도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누구도 합리적인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1970년대 초엽 러브록은 전혀 새로운 제안을 내놓음으로써 새로운 과학의 장을 열었다. 그는 먼저 지난 30억년 동안 대기권의 원소 조성과 해양의 염분농도가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어 왔다는 사실에 주목했는데, 만약 생물의 존재가 지상에 출현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그렇게 될 수 없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탄소, 질소, 인, 황, 규소 등 지구를 구성하는 주요 원소들이 대륙과 해양을 오가며 순환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놀랍게도 그 메커니즘이 전적으로 생물에 의해서 통제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생물들은 기후를 조절하고, 해안선을 변화시키고, 때로는 대륙을 이동시키기도 했던 것이다.

이런 생물체의 엄청난 능력에 착안하여 러브록은 자연스럽게 이 지구가 ‘생물과 무생물의 복합체로 구성된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라고 단정짓기에 이르렀는데, 그는 이러한 지구의 실체를 일컬어 ‘가이아’(Gaia·주 참조)라고 명명하였다.

러브록은 40억년의 생물 역사가 보여주듯이 가이아가 대단한 자가조절 능력을 발휘하는 거의 불멸의 존재라고 생각한다. 과거 운석의 낙하로 모든 공룡이 한꺼번에 멸종하는 대재앙이 발생하는 등 지구는 크고 작은 재난을 무수히 많이 겪었지만 전체 생물종이 일시에 사라진다거나 또는 그로 인해서 중요한 물질순환의 과정이 단절된다거나 했던 일은 한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가이아의 생존 능력이 그처럼 강인하다’는 부분을 오해한 일부 시민환경단체들은 가이아 가설과 러브록에 대해 한때 상당한 비난을 퍼붓기도 하였다. 지구의 생존능력이 그토록 강하다면 우리는 환경파괴를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발명품이 현대사회에서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데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듯이 그는 타고난 환경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는 가이아가 몇 가지 환경적 재난에는 대단히 취약하다는 점을 크게 강조한다. 마치 우리 자신의 몸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팔다리의 중요성과 두뇌, 허파, 심장의 중요성이 서로 다른 것처럼 지구를 구성하는 가이아의 각 부분도 그 중요성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러브록은 감기와 폐결핵에 대한 인체의 저항력이 다른 것처럼 환경오염도 그 종류에 따라서 가이아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다.

러브록은 열대우림 지역을 지구에서 가장 소중한 부분으로 간주한다. 열대우림은 방대한 양의 수증기를 발산하고 동시에 구름의 형성을 돕는 여러 종류의 가스와 입자상 물질을 엄청나게 방출하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흰 구름은 그 자체가 태양열을 반사해서 외계로 빠져나가는 에너지의 양을 증가시키고 또 구름에서 비를 내리게 하여 대기권의 온도를 낮추는 데 큰 기여를 한다. 열대우림을 인체에 비교한다면 마치 피부와 허파의 역할을 합친 것과 같다고나 할 수 있을까. 이런 열대우림을 손상시키는 일은 대규모적인 핵전쟁보다도 더 가이아에 끔찍한 일이라고 그는 우려한다.

러브록은 ‘행성 지구가 현재 지구온난화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다’는 기상학자들의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가이아 이론은 이러한 지구온난화의 추세가 열대삼림의 파괴에 덧붙여질 때 전혀 예기치 못한 방향에서 우리 인류를 포함하여 생물권 전체에 엄청난 재난을 초래하게 될 것임을 준엄하게 경고하고 있다.

◈ 주(註) | 가이아’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대지의 여신을 일컫는 말로, 지구의 생물을 마치 어머니처럼 보살피는 여신이다. 제임스 러브록은 그 신화를 과학으로 대체했는데, 지구는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서 그 위에 살고 있는 생물들이 최적의 생존조건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항상 지구의 환경조건을 스스로 바꾸어나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홍욱희 세민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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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개인의 문화적 취향은 계급을 반영”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구별짓기’(La Distintion·1979)는 현대사회의 문화와 계급의 관계를 경험적인 연구와 독특한 이론으로 규명한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1930~2002)의 역작 가운데 하나다. 부르디외는 파리고등사범학교(ENS) 출신의 사회학자로서 프랑스 최고의 지성을 상징하는 콜레주 드 프랑스(College de France)의 교수였다. 저자는 독창적인 사회문화이론가로서 30여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서를 남겼다. 또한 68혁명세대 지식인으로서 말년에는 빈곤, 실업, 파업, 세계화 등 현실 문제에도 자주 개입하는 등 미국의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와 닮은 데가 많은 학자다. 부르디외는 사후에 사르트르와 푸코에 이어 프랑스 지성사에 빛나는 세계적인 석학으로 평가받고 있다.

부르디외는 프랑스 정부의 지원을 받아 1970년대 말 전국민을 상대로 한 전국적인 조사 연구를 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음악, 미술, 의상 스타일, 실내장식, 스포츠, 요리, 영화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프랑스인의 문화적 취향 및 생활양식이 밝혀지게 되었다. 부르디외의 관심은 이 같은 경험적 조사 연구의 결과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부르디외의 이론적 관심사는 사회에서 개인 및 집단의 문화적 취향은 무엇에 의해 어떻게 구성되는지, 또 문화가 사회구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밝히는 것이었다. 부르디외는 이 책에서 특히 문화와 계급 간의 관계에 주목함으로써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등의 문화적 행위가 때론 의식적이면서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한 사람의 계급을 드러내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부르디외에게 있어 개인이 어떠한 문화적 취향을 갖고 어떤 종류의 문화를 소비하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와 계급을 드러내는 실마리가 된다. 이러한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부르디외는 ‘사회공간으로서의 장(場)’ ‘문화자본’ ‘아비투스(habitus)’ 등의 개념을 사용한다.

먼저 ‘사회공간으로서의 장’이란 서로 얼마나 닮아 있는가 혹은 이질적인가에 따라 개개인이 서로 구별되는 공간이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란 말처럼 상류층은 상류층끼리, 중산층은 중산층끼리 서로 구별된다. 특히 이러한 장에선 개개인이 정치, 경제, 문화와 같은 다양한 자본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사실상 서열이 매겨진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곧 사회공간으로서의 장으로, 그 안에서 권력이나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사회적 서열을 결정한다.

‘문화자본’은 부르디외가 말하는 여러 자본 가운데 하나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문화자본이란 가정환경, 가정교육과 같이 어려서부터 내면적으로 형성되기도 하고 클래식을 향유하고 문화·예술 소장품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처럼 오랫동안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때 형성되기도 한다. 또 학력과 같이 사회에서 제도적으로 인정해주는 문화자본도 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우수한 학업성적을 얻는다는 것은 훌륭한 문화자본을 획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학력은 문화자본의 대표적인 형태라 할 수 있다. 부르디외는 과거의 귀족과 하층민, 오늘날의 상류층과 하류층의 관계처럼 계급·계층 간에 불평등한 관계가 유지되는 것은 단지 경제력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아이가 클래식 음악을 즐기기 어려운 것과 같이 이들 사이엔 문화자본 또한 불평등하게 배분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독특한 관점을 보여준다.

개인의 취향과 문화소비 경향이 각기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단순히 그 사람의 재능이나 기호가 다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출신계급(계층), 교육 등과 같은 사회문화적 환경이 이 같은 차이를 만드는 데 더 큰 영향을 끼친다.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란 개념을 통해 이러한 문화적 불평등을 설명한다. ‘아비투스’란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특정한 취향을 갖거나 행동을 하게끔 만드는 기제이다. 이는 무의식적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때론 의식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아비투스가 의식적으로 나타날 때는 자신을 남과 차별화시키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 된다. 예를 들어 대중가요보다는 클래식 음악을, 또는 축구보다는 골프를 선호하는 것은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났기 때문일 수도 있다. 부유한 가정환경이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기호를 갖도록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자신이 속한 계급(계층)의 사회적, 문화적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다. 즉 축구보다 골프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은근히 자신이 상류층에 속한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의도적 전략은 그것을 행하는 사람에게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에 아주 자연스러운 듯이 보인다.

또 다른 예로 하층계급이 기름진 음식과 튼튼하고 실용적인 옷을 좋아하는 반면에, 상류층은 채소와 생선류의 식단과 고급 브랜드의 패션을 즐기는 것이 결코 개인적 차원의 취향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신을 남과 구별지으려는 계급(계층)적 차원의 구별이 있다. 축구와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부르디외는 계급(계층)에 따라 이토록 취향이 달라지는 것을 두고 하층계급의 ‘필수적 취향’과 상류층의 ‘사치스럽고 자유분방한 취향’이란 말로 구분한다.

사람들은 계급적 위치(상류층이냐 하류층이냐) 및 성향(진보적이냐 보수적이냐), 취향이 비슷할수록 사이가 더 가까워지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취향의 차이가 출신, 직업, 정치 성향의 차이로 나타날 수도 있다. 샴페인을 마시며 승마와 사냥, 골프를 즐기는 우익성향의 기업체 경영주와 맥주를 마시며 축구를 즐기는 좌익성향의 노동자가 친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또 선호하는 음료, 스포츠, 정치성향 등은 각각의 계급(계층)의 사회적 위치와 상응한다. 이를 두고 문화와 계급이 상동구조(相同構造)를 이루고 있다 본다.

그러나 문화적 취향 혹은 문화 소비행태가 반드시 사회계급과 기계적이고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닌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 귀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승마, 펜싱, 테니스, 골프는 오늘날 더 이상 상류층만이 즐기는 배타적인 문화행위라고 할 수 없다. 고상한 취미나 스포츠가 중산층에 의해 채택될 때 상류층은 이를 버림으로써 이러한 고상한 취미는 더 이상 상류층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된다. 역으로 하류층의 문화적 취향이 상류층에 전파될 수도 있다. 청바지는 과거 미국의 하류층 노동자들이 즐겨 입었지만 이제 명품 청바지의 경우 일부 상류층만 구입할 수 있는 아이템이 되었다.

‘구별짓기’는 현대인의 취향과 소비문화 현상에 대해 개념적 기초를 제공하는 이론서다. 일상생활에서의 문화 소비행위는 그 사람의 계층 혹은 계급을 나타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상류층은 자신을 사회적으로 구별짓기 위해 비싼 외제 승용차를 타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기며 유명 브랜드의 비싼 옷을 입는다. 또 골프나 승마를 즐기며 해외휴양지에서 휴가를 보내는 문화생활을 즐긴다. 이런 문화생활은 개인적 취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상류층의 과시적이고 차별적 의도가 담긴 상징적인 행위일 수 있다. 부르디외의 문화이론은 이처럼 문화 속에 담긴 계급(계층)의 상징적인 행위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부르디외의 고찰은 현대인의 소비문화에 대한 마케팅 분석 및 전략 수립의 이론적 근거로도 이용되고 있다.

현택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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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동양 = 야만’ 서구의 지배논리 분석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비교문학자인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는 1978년 출간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에서 동양을 다룬 서구의 문학, 문화, 사상, 역사에 내재한 오리엔탈리즘, 곧 동양에 대한 왜곡된 관점을 비판하였다. 1935년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이집트의 영·미계열 학교와 하버드대 등 미국의 아이비리그에서 학위를 마친 그는 아랍 출신(동양)과 미국 학자(서양)로서의 내적 긴장을 소지한 이른바 경계인이었다. 그가 1967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이 났을 때 유럽과 미국의 언론이 아랍 사회를 반서구적·위협적 존재로 접근하는 방식에 주목하고 연구에 착수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오리엔탈리즘이란 본래 산스크리트어, 아랍어, 페르시아어 등 동양의 언어와 문학을 연구하는 ‘오리엔탈리스트’의 연구업적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오리엔탈리즘이 지난 2세기의 정치적 현실 속에서 형성되었음을 간파한 사이드는 동양을 다루기 위해 기획된 체제와 이슬람에 대한 편견, 동양과 서양 간의 이분법적 사고방식과 유색인과 여성에 대한 정복을 정당화하는 이념 등을 예리하게 비판하였다. 20세기 최고의 인문서로 평가되는 ‘오리엔탈리즘’은 3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 지성계에 새 물줄기를 열었고 지금도 여러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유럽이 세계를 이해함에 있어, 친숙한 ‘우리 서양’과 낯선 ‘그들의 동양’으로 이분했다고 파악하였다. 가장 큰 대비는 ‘서구=문명’과 ‘동양=야만’이었다. 낙후한 동양인은 비합리적이고 타락한 어린애로,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어른인 서양인에 비해 열등하다고 간주되었다. 유럽은 근대 서구인의 동질적 시선으로 동양을 파노라마처럼 바라보고 열등한 타자(他者)로 정형화한 것이다. 서양을 가치의 중심에 두고 동양을 ‘불완전한 동양’으로 여긴, 동과 서라는 인위적 경계와 구분은 힘센 서양이 서양을 위해 서양과의 관계에 따라 동양을 규정하는 ‘정치적으로 옳지 않은’(politically incorrect) 사고방식의 소산이었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에서 몇 가지 주요한 사항을 주장하였다. 첫째, 오리엔탈리즘은 유럽의 정치적 목적, 즉 유럽의 비서구 세계에 대한 정복과 지배를 정당화했다는 것이다. “유럽 도서관에 있는 한 서가의 책이 인도와 아랍에 존재하는 모든 문학을 합친 것보다 더 훌륭하다”고 말하는 오만한 발언처럼 서양인은 동양 사회와 문화를 저평가하여 서구의 개입을 당연시하였다. 비합리적이거나 순진무구한 동양인은 이 잔인한 물질세계를 통치하거나 변화를 추진할 능력이 없고 따라서 아버지와 같은 서구의 도움으로만 진보와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여겼다.

둘째, 오리엔탈리즘은 서구가 자기 이미지를 구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동양을 부정적으로 인식하여 상대적으로 우월한 서구의 정체성을 확인하였다. 본디 정체성의 구성은 반대쪽 타자의 창출과 관련되는 법이기 때문에 서양이 우수하면 동양은 열등하고 동양이 후진적이고 비합리적이면 서양은 진보적이고 합리적이 되었다. 동양인이 나약한 여성과 미숙한 어린애라면 서구인은 그들을 돌보는 강한 가부장적 성인 남성이었다. 이는 백색 피부의 우수한 인종이 열등한 유색인을 가르쳐서 문명세계로 이끈다는 제국주의의 논리로 작동했다.

셋째,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을 거짓으로 기술하였다. ‘동양은 동양이고 서양은 서양이니, 그 둘은 영원히 만날 수 없네’라는 영국 시인 키플링의 시가 시사하듯 서구는 열등한 동양을 창조하여 본질적인 것으로, 영구불변의 것으로 박제하였다. 동양인은 본래 부정적이며 늘 그렇기 때문에 둘의 간격은 좁혀질 수 없었다. 수동적인 동양은 과학과 상업 분야 등 인류 진화의 주류에서도 고립된 변화의 무풍지대였다. 광대한 비서구세계를 단일한 ‘불변의 동양’으로 왜곡한 오리엔탈리즘은 영화, TV, 사진, 그림, 광고, 문학, 학술서적, 신문과 잡지 등을 매개로 반복적으로 재현되었다

‘오리엔탈리즘’에서 지적한 ‘발전한 서양과 낙후한 동양’이라는 식의 대비는 서구가 비서구 세계를 인식하는 고정불변의 공식이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이라크전(戰)에 대한 미국의 입장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일견 이라크인을 판단력과 자기운명을 결정할 능력이 없는 어린애로 여기고, 영원히 어른이 못되는 ‘피터 팬’을 대신해 무지몽매한 지도자 후세인을 심판해주는 정의의 ‘샘 아저씨’를 자처한 셈이기 때문이다. 이라크의 테러와 무질서, 전근대성도 질서와 안정, 선진문명을 소지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하는 상투적 표현이다. ‘미국이 미숙한 이라크인을 훈육하여 성숙한 어른으로 만든다’는 명제는 ‘우수한 인종인 서구인이 미개한 동양인을 지배하여 문명세계로 인도한다’는 19세기 서구 제국주의의 논리와 흡사하다. 오늘날의 대제국 미국이 가르쳐서 ‘어른’으로 키우려는 나라들이 아프가니스탄, 이란, 라이베리아, 북한 등 모두 비서구 국가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제국주의를 지지한 동양에 대한 서구의 차별적 인식, 곧 오리엔탈리즘의 유산이자 계속이다. 여기에 도전한 이가 에드워드 사이드이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을 쓴 목적이 서구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 받는 아랍과 제3세계를 방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한 이 책의 출간 이후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비판과 비서구 문화의 상대적 진리에 주목하는 다양한 연구와 활동이 이어졌다. 특히 오리엔탈리즘이 제국주의의 정당화에 이용되었다고 밝힌 사이드의 통찰은 포스트콜로니얼(탈식민주의) 연구의 이론적 기반을 이루었다. ‘오리엔탈리즘’은 비서구인의 연구 활동, 하층민의 경험을 담은 역사서술, 페미니스트와 다른 마이너리티(소수자)의 담론에도 반영되었다.

식민지가 모두 사라진 오늘날에도 지구상의 절반을 ‘저주받은 자들’로 여기는 서구의 편견은 잔존한다. 무슬림은 여전히 잔인한 테러리스트로 인식되고, 인도는 늘 역동성이 부족한 신비한 나라이며, 일본은 가라테와 동일시된다. 사실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비판은 많지만 그것을 전복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사이드의 말처럼 되돌릴 수 없는 경계를 만들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어떤 사회가 다른 사회보다 우수하다고 믿는 건 누가 누구보다 행복하다는 주장처럼 어리석다. 글로벌화와 사람들의 교류와 이동이 활발해진 오늘날, 서양의 지배적 위치를 탈중심화하고 비서구 세계를 응시하며 오리엔탈리즘을 경계할 필요성은 그래서 한층 유효하다.

“…오리엔탈리즘은 유럽인의 경험 속에 자리하는 동양의 특별한 위치에 근거한, 동양과 타협하는 한 방식이다. 동양은 유럽에 인접할 뿐 아니라 유럽의 가장 크고 풍요하며 오래된 식민지였던 곳이고 유럽 문명과 언어의 근원이자 그 문화적 경쟁자이며, 유럽의 가장 짙고 가장 빈번히 재발하는 타자(他者)의 이미지들 중 하나이다. 나아가 동양은 유럽이 그 대조적 이미지, 사상, 성격, 경험으로 스스로를 정의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본문 중에서)

이옥순 연세대 연구교수·인도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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