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모든 지식은 권력행사와 맞물려 있다”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권력은 특정한 지식을 만들어내며 권력과 지식은 서로를 직접 포함한다.… 인간은 특별한 규율적 권력 기법이 만들어 낸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 본문 중에서

미셸 푸코(1926~1984)는 현대 프랑스 사상의 흐름을 대변한다. 그는 고등사범학교(ENS)에서 철학을 공부한 후, 여러 대학의 교수직을 거쳐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사상체계의 역사’ 담당 교수로 죽을 때까지 활동했다. 그러나 그는 상아탑 안에만 머물지 않고 재소자, 동성애자, 불법이민자 등 주변부 집단의 인권개선을 위한 사회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푸코의 이러한 실천지향성은 프랑스 전역을 휩쓴 68사태(1968년 파리 대학생의 대학개혁운동으로부터 발원되어 전사회적 민권운동으로까지 확산됨)에 대한 개입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푸코의 사상적 영향력은 세계적인 것이었으며 한국의 지식인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대단했다. 이는 마르크스주의를 위시한 기존 거대담론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분화되는 현대사회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따라서 다양한 영역에서 강력한 현실 설명력을 갖는 푸코가 그 공백을 메우는 이론적 자원으로 주목받게 된 것이다. 1975년 출간된 푸코의 ‘감시와 처벌(Surveiller et punir)’은 그 생생한 증거다.

푸코는 모든 종류의 지식이 권력의 행사와 뗄 수 없이 맞물려 있다고 주장한다. ‘감시와 처벌’은 감옥이라는 제도의 변천사에 대한 실증적 분석을 통해 이를 현미경처럼 보여준다. 그가 감옥에 주목하는 이유는, 근대 인간중심주의의 허실(虛實)을 감옥이 가장 선명하게 폭로하기 때문이다. 이는 ‘이성의 시대’인 18세기에 일어난 형벌제도의 변화가 진정으로 노리는 효과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다. 유럽 전역에 계몽사상이 퍼져나가면서 처벌제도 또한 인도주의적으로 순화되었다. 이는 관행으로 자리잡았던 재소자에 대한 야만적 처우를 근절시키고 인권을 보장하는 조치로 환영 받았다.

하지만 푸코는 이러한 개혁 조치의 이면(裏面)에 주목한다. 푸코에 의하면 처벌의 인도주의적 변화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관대함과는 달리, 실제로는 처벌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즉 인도주의적 개혁의 목표는 불법적 행위를 처벌하고 규제하는 기제(機制)를 공고하게 확립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덜 처벌하는 데 주안점이 있지 않았고 보다 더 효과적으로 처벌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던 것이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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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

‘고객 창조’와 ‘목표에 의한 경영’을 제안
피터 드러커의 ‘경영의 실제’
 
“기업의 존재 이유는 고객이고, 기업의 목적은 시장을 창조하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작년에 작고한 피터 드러커는 30여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과 다방면에 걸친 활동으로 기업 경영현상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을 제공한 ‘경영학의 아버지’이다. 1909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태어난 드러커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신문기자, 은행 분석가, 철학 및 정치학 교수 등 다양한 경력을 갖고 있다. 그의 수많은 저서 중 대표 서적을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각 저서가 하나같이 기업경영에 필수적인 핵심개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의 실제(The Practice of Management)’는 1954년에 출간된 드러커의 초기 저서로 그가 주창한 개념 중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시어스 백화점, 포드 자동차, IBM 등 그가 직접 경험하고 관찰한 기업 사례를 포함해 사업 경영, 경영자 관리, 근로자 관리, 경영 구조 등에 대한 그의 생각이 담겨 있다. 이 책에서 드러커는 고객을 창출하고 그들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기업이 존재하는 목적이며, 기업의 목표는 기업과 구성원을 구속하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되고, 그들에게 공헌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드러커에 따르면 기업의 목적은 시장을 창조하는 것이다. 기업이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구 가운데 어떤 것은 기업이 그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단을 만들기 전에 이미 고객의 잠재적인 욕구로 존재하기도 한다. 또한 기업이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구 가운데 어떤 것은 아직 잠재적 고객에 의해 인식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예컨대 복사기나 컴퓨터가 실제로 등장하기 전에 고객들은 아무도 자신이 그것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기업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고객이다. 왜냐하면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대가를 치를 의향이 있는 고객만이 기업이 갖고 있는 단순한 자원을 재화로 전환시켜 주기 때문이다.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서 기업이 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 활동은 마케팅과 혁신이다. 마케팅은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발견하는 활동이다. 예컨대 마케팅은 고객을 충분히 알고 이해함으로써 제품과 서비스를 적절하게 제공해 그것들이 스스로 팔리도록 만드는 활동이다. 반면에 혁신은 고객이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활동이다. 가장 생산적인 혁신은 단순히 기존의 욕구를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만족을 제공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남다른 제품이나 서비스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윤철 한국항공대학교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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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

미디어를 감각기능의 확장으로 봐
마샬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
 
“의복은 피부의 연장이며, 바퀴는 발의 연장이고, 책은 눈의 연장이며, 전기는 중추신경의 연장이다. 매체는 환경을 바꿈으로써 우리의 지각작용에 독특한 비율을 가져온다. 이런 비율이 변화되면 사람도 변화한다.” - 본문 중에서

1964년 출간된 ‘미디어의 이해: 인간의 확장(Understading Media: The Extensions of Man)’의 저자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1911~1980)은 캐나다 출신으로 영문학자로 출발했지만 매체학으로 방향을 틀면서 1960년대 중반에 북미세계의 가장 중요한 예언자가 되었다. 21세기 벽두가 시작된 지금도 그의 통찰력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어서 매체 평론가 디자드(W. Dizard)는 “맥루한은 멀티미디어(복합매체)를 실현시킨 원동력인 기술, 경제, 그리고 정치력의 융합에 의한 정보 및 지식혁명의 시대를 30년이나 앞서 예견함으로써 오히려 인정받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며, 작가 울프(T. Wolf)는 “맥루한의 주장이 옳다면 맥루한은 뉴턴, 다윈,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파블로프 이래 가장 중요한 사상가이다”라고까지 평한다.

그의 매체론은 “매체는 메시지다(medium is message)”로서 요약된다. 지금까지 매체가 전달하는 ‘내용’이 메시지라고 믿어 왔는데 ‘매체가 메시지’라는 맥루한의 주장은 우리의 상식을 벗어난다. 맥루한은 모든 기술을 인간 기능(function)의 확장이라고 파악했다. 의복은 피부의 확장, 자동차는 다리의 확장, 컴퓨터는 두뇌의 확장, 전기는 중추신경의 확장으로서. 이런 견지에서 본다면 매체 기술은 감각기능의 확장이다. 책은 눈의 확장, 라디오와 전화는 귀의 확장, 텔레비전과 영화는 눈과 귀의 확장인 셈이다.

책을 시각매체, 라디오를 청각매체, 텔레비전을 시청각 매체로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각장애자와 청각장애자의 경우처럼 시각매체인 책으로만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과 청각매체인 라디오로만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마치 코끼리 인식에 있어서 시각장애자와 청각장애자의 차이를 보면, 시각에 의존하는 청각장애자의 코끼리상은 실제 모습과 비슷하겠지만 시각이 가려진 채 청각과 촉각 등에만 의존하는 시각장애자의 코끼리상은 실제와 멀어진 모습이다. 이것이 ‘매체가 곧 메시지다’라는 의미이다. 

김정탁 성균관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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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

과학의 발전을 단절적인 과정으로 봐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과학혁명’이라는 말은 과학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전문적인 용어다. 시기적으로는 대략 1500년에서 1700년 사이에 해당하는데, 특히 17세기가 그 정점(頂點)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근대과학의 성립 및 그것이 사상, 사회 등에 미친 폭넓은 영향을 일컫는 말이며,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시작으로 뉴턴에서 완성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케플러의 천체 운동법칙, 갈릴레이의 천문학 연구, 로버트 보일의 화학 연구, 하비의 생리학 및 해부학 연구, 뉴턴의 물리학 법칙 등이 모두 과학혁명 시기의 중요한 성취에 속한다. 그밖에 이전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과학 연구기관 및 단체가 속속 설립된 것도 이 시기의 중요한 발전이다.

물론 과학혁명은 위와 같이 역사 속의 특정 시기에 이루어진 과학 발전을 가리키는 전문적인 용어로서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의미의 비약적인 과학 발전을 일컫는 말로도 사용된다. 즉 무언가 엄청나게 큰 변화가 일어났을 때 그것을 ‘혁명적인 변화’라고 일컫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를 지닌다. 토머스 쿤(Thomas Kuhn·1922~1996)이 1962년에 내놓은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는 부분적으로는 전자의 과학혁명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과학 발전이 일반적으로 어떻게 전개되는지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 책은 출간되기 무섭게 열띤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쿤이 과학발전의 객관적 보편성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과학적 지식을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지식으로 당연시하곤 한다. 또한 그러한 지식이 조금씩 쌓이면서 과학이 발전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벽돌을 한 장씩 쌓아 높고 튼튼한 벽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러나 쿤에 따르면 과학은 그런 식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쿤은 과학 발전이 ‘정상과학→이상 현상→위기→혁명→새로운 정상과학’의 식으로 진행된다고 주장했다. 즉 특정이론 A에 의해 과학 지식이 계속하여 발전하다가 그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나타나고, 그 시대 과학자들이 일반적으로 공유하는 패러다임(paradigm)으로는 문제의 현상을 설명할 수 없을 때 정상과학의 위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쿤의 말을 들어보자. 

표정훈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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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

생물을 유전자의 생존기계로 인식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우리 속담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말이 있다. 제 아무리 양육 환경이 좋더라도 출신의 근본은 속일 수 없다는 의미라 하겠다. 그런가 하면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도 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근본은 보잘것없지만 당사자가 자수성가했을 때 흔히 일컫는 말이다. 
 
이처럼 서로 상반되는 두 속담은 지난 수백 년 동안 생물학계에서 치열하게 논의되었던 두 관점, 즉 결정론(determinism)과 환경론(environmentalism)을 각각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다. 결정론이란 생물체의 모양, 습성, 행동 등은 모두 태어나면서 부모로부터 물려받는다는 주장이다. 환경론이란, 물론 그런 천성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태어난 이후 성장할 때의 주변 환경에 의해서 더 많이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이다.

결정론과 환경론의 대립은 사실상 인류 역사의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흑백 인종차별과 히틀러의 순혈주의가 결정론적 주의(主義)에 근거한 것이라면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강조되고 있는 교육평등 주장은 환경론에 뿌리를 두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가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결정론은 20세기 들어서 다시 유전자결정론으로 발전했는데, 이는 부모로부터 전해지는 모든 비밀이 유전자(게놈) 속에 감추어져 있다는 주장이다. 유전자결정론 또는 생물학적 결정론이 생물학계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은 유전학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게 된 20세기 후반기부터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의 대부분 형질이 유전된다”고 주장했지만 유전의 매개물질이 DNA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비로소 유전자결정론이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홍욱희 세민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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