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한국출판인회의와 성공회가 독서문화를 바꾸고 독서인구를 늘리기 위해 일반인과 독서교육 전문가·교사 등을 대상으로 인문학 중심의 독서교육을 실시하는 ‘독서대학’을 만든다.
잠정적으로 ‘독서대학 르네21’이라는 이름을 붙여, 준비작업을 계속해온 출판인회의와 성공회 관계자들은 지난 13일에도 만나 내년 3월 개교를 목표로 구체적인 일정을 점검했다.

대학 사무실 및 강의 장소로는 서울 덕수궁 인근 중구 정동 성공회 서울교구 대성당 1층을 중심으로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출판인회의 공간도 활용하기로 했으며, 장차 독립적인 대학공간을 따로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교육과정은 2~3년을 중심으로 하되 주제별, 프로그램별로 다양한 중단기 코스들을 활용한다. 방학이나 휴가를 활용하는 1~2주일의 가족단위 프로그램, ‘세상을 바꾸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여름·겨울 캠프, 지역 독서모임들 네트워킹 등이 이에 포함된다. 이를 위해 양쪽은 이날 김한승 사회선교국장을 비롯한 성공회 관계자 5명과 이정원 회장 등 4명의 출판인회의 관계자로 운영진을 구성하고 교무처와 사무처도 조만간 꾸리기로 했다.

김한승 신부는 “사회가 너무 물질주의적으로 치달으면서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보수든 진보든 성찰과 소통이 절실해졌다”면서 “성찰할 수 있어야 집단간 소통도 가능하다”는 말로 독서대학의 설립취지를 밝혔다. 김 신부는 이를 위해서는 “독서가 제일”이라며 앞으로 독서대학에서는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누구든 참여해서 성공하기 위한 독서가 아닌 성찰과 소통을 가능케 하는 독서, 강의와 청강이라는 딱딱한 방식보다는 토론식 공부, 지역 책읽기 모임이나 여름 독서캠프 등 다양한 방식을 활용한 독서공부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공회와 성공회대학은 노숙자 등 사회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인문학을 가르치는 ‘클레멘트 코스’를 한국에서 처음 실시하기도 했다.

들녘 출판사 발행인인 이정원 출판인회의 회장은 독서대학 설립을 “대중적인 인문학 부흥운동”으로 자리매김하면서 “학력제한 없이 사회인, 노동자, 직장인 등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폭넓게 참여할 수 있는 대안학교로서의 의미도 갖는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교수진을 책 저자와 평론가, 교수 등 관련 전공자들로 짤 것이라고 했다.

운영진의 한 사람인 도서평론가 이권우씨는 17일 교수진은 △우수한 도서를 출판한 저자 △기획단계에서 우수한 도서로 뽑힌 예비 저자 △고전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소장학자 △독서교육에 관한 방법론을 전파할 수 있는 소장학자 중심으로 짜는 게 좋다는 생각을 밝혔다.

이씨는 또 학과구성은 동양고전학과, 서양고전학과, 교양독서학과, 독서교육학과로 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지금까지 정부 차원의 인문학 지원은 대학교수나 비슷한 지위의 사람들에게만 집중되고 있어 학문적 기득권층만 살찌울 뿐 그 연구성과의 출판계 파급효과가 지극히 제한돼 있다는 점은 큰 문제”라면서 교수진을 소장학자, 기획자 중심으로 구성해 그들에게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함으로써 양서 집필과 좋은 강의, 책 판매 촉진 등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원 회장은 “구체적인 모집 학생 수와 교수진 규모 등에 관해서는 이달 말께 다시 만나 의논할 것”이라며 운영비용 문제도 “정부나 기업 후원 없이 성공회와 출판인회의가 공동으로 꾸려갈 것이며, 작으면 작은 대로 내실 있게 시작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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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모름)

어떤 탐구 분야든지 정확한 공식화가 가능한 지식을 산출하면 곧 과학이라고 일컫는다. 과학은 철학에서 시작하여 기술로 끝나고, 또한 과학은 가설의 샘에서 발원하여 성취의 바다로 흘러간다.

철학은 미지의 것 또는 부정확한 것에 대한 가설적 해석이다. 철학이 진리의 세계를 탐구하는 최전선이고 과학이 점령 지대라고 한다면, 우리의 삶은 지식과 기술로 건설된 후방의 안전지대라고 할 수 있다.

철학은 어쩔 줄 몰라 우두커니 서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철학은 승리의 열매를 과학에게 넘겨주고 나서, 거룩한 불만을 간직한 채 아직도 탐구되지 않은 불확실한 지역으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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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모름, 필요한 부분만 발췌함.)

- 과학에 대하여 비판적인 입장에 서 있는 많은 사람들의 가장 큰 취약점은 그들의 비합리주의 또는 반논리주의적 취향이다. 이들은 대체로 세상에는 합리적인 논리만으로는 규명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상식을 자신들의 취향을 지지해주는 강력한 근거로 여긴다.

- 이 세계의 전부가 논리에 의해 규명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이 곧 과학의 기세가 꺾일 이유는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의 작업은 모든 것이 다 논리에 의해 규명될 수 있어야 한다는 무리한 전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 가령, 혜성 렐리가 76년마다 나타는 것으로 관찰되는 것은 논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76년이 아니라 760년 주기로 나타난다 해서 그 자체가 논리적으로 모순이 될 것은 없다. 그것은 그저 그럴 뿐인 것이고, 논리냐 비논리냐를 따질 계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 과학에서 논리의 역할은 관찰할 수 있는 여러 경험적 현상들의 연관 관계를 포착하여 법칙적인 설명을 시도하는 맥락에서 비로소 중요해진다. 과학적인 설명이 논리에 어긋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크게 논리적인 측면과 논리만으로는 접근하지 못할 내용으로 구별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세계를 이해하는 태도에도 과학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서로 구별되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과학의 영역에도 논리만으로는 접근이 안 되는 큰 부분이 있으며, 과학 밖의 영역에도 논리가 지배하는 부분은 무시하지 못할 크기를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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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수학은 예나 지금이나 어렵고 따분한 과목으로 꼽힌다. 부모들이 아이에게 수학 선행학습을 많이 시키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좀더 일찍 가르쳐서 학교에서 배울 때 쉽게 따라가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선행학습이라는 것이 대부분 반복적인 문제풀이 위주의 수업이라는 데 있다.
 
전국수학교사모임 체험교재팀장인 김남준 서울 신묵초 교사는 “초등학교 때는 수학의 기본 개념을 이해하고 흥미를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데 사교육을 통해 주어진 문제를 빠른 시간 안에 푸는 훈련을 반복하다 보니 아이들이 일찌감치 수학에 흥미를 잃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6학년이 되면 한 반 학생의 절반 가량이 수학을 포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이들이 좀더 쉽고 재미있게 수학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 생활 속에서 발견하는 수학=김 교사는 “수학을 배우는 목적은 수학을 통해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라며 “일상생활 속에 숨어 있는 수학을 아이와 함께 찾아보면 수학과 친해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일상 속에서 수 감각을 익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단위를 이용해 어림셈을 해 보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예를 들어, 아이의 팔 길이나 보폭 등을 이용해 거리를 재 보는 것은 수학적 감각을 기르고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데 도움이 된다. 아파트 정문에서 현관까지의 거리가 몇 걸음이고, 미터로 환산하면 대략 얼마인지 알아보는 식이다. 이때 오늘날과 같은 자가 없었던 시절에는 어른 주먹 끝에서 팔꿈치까지의 거리(한 자, 약 30.3㎝) 등 몸을 이용해 길이를 쟀다는 사실을 설명해 주는 것도 좋다.

전기와 수도, 가스 등 공공요금 청구서도 좋은 소재다. 예를 들어, 수도 요금 청구서 뒷면에는 요금 체계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나와 있는데, 아이와 함께 1세제곱미터의 물이 어느 정도의 양이고 요금은 얼마인지 등을 알아보고 단가에 따라 요금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김 교사는 “냉장고에 들어 있는 음료수 병이나 우유갑에 쓰여 있는 단위들이 뭘 의미하는지 살펴보면 분수와 소수, 비율 등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벽지와 욕실의 타일, 골목의 보도블록에서는 무늬꾸미기 단원에 나오는 테셀레이션(같은 모양의 조각들을 서로 겹치거나 틈이 생기지 않게 늘어놓아 평면을 가득 채우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 놀이로 배우는 수학=초등학교 입학 전의 어린아이라면 놀이를 통해 수 개념을 익히는 것이 좋다. 집에서 ‘엄마표 놀이’를 통해 딸에게 수학을 가르친 경험을 〈수학아, 놀자〉라는 책으로 묶어낸 이원영씨는 수학놀이의 장점으로 엄마가 자유롭게 아이의 기호와 성장 단계에 맞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 예를 들어, 승부욕이 강해지는 6~7살 때에는 ‘10 만들기’ 카드놀이를 하면 지루해하지 않고 놀이에 몰두할 수 있으며, 4~5살 이상이 되면 역할놀이를 좋아하는데 이때 가게놀이를 한다면 즐겁게 덧셈·뺄셈을 배울 수 있다. 이씨는 “연산 부분에서는 적당한 연습이 필요한데 지루한 학습지나 문제집을 생각 없이 계속 푸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은 방법”이라며 “같은 연산이라도 물건을 사기 위해, 또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한다면 지루하지 않게 할 수 있고 생각도 더 많이 하게 된다”고 말했다. 비싼 교구를 살 경우 ‘본전 생각’ 때문에 ‘잘 활용해야겠다’는 부담을 느끼기 쉬운데,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소재를 활용해 놀이를 하면 만드는 과정 자체가 교육적일 뿐 아니라 부담도 없어서 일석이조다.

이씨가 제안하는 ‘10 만들기’ 카드놀이는 서양카드 1벌을 숫자가 안 보이게 쌓아둔 뒤, 엄마와 아이가 번갈아 카드를 뒤집어 바닥에 내려놓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카드 2장의 합이 10이 되면 두 장을 가져가는 게임이다. 쌓아둔 카드가 다 없어지면 각자 가져간 카드 숫자의 합으로 승부를 가린다. 또 가게놀이는 집안 물건에 가격을 매긴 뒤 1부터 10까지 숫자가 쓰인 가짜 돈으로 물건을 사고파는 놀이다. 돈을 내고 거스름돈을 돌려받는 과정에서 덧셈·뺄셈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

■ 책으로 배우는 수학=수학은 단지 계산 능력이 좋다고 해서 잘할 수 있는 과목은 아니다. 풀이 과정이 아무리 간단하더라도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면 풀 수 없다. 예를 들어, 곱셈 단원의 문장으로 된 문제의 경우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 채 문장에 나오는 수를 무조건 곱하기만 하면 틀릴 수밖에 없다. 〈초등 공부 독서가 전부다〉의 저자인 강백향 수원 화서초등학교 교사는 “저학년 때는 수학을 잘하던 아이가 학년이 올라가면서 몇 가지 단서를 주고 문제 상황을 해결하는 문제를 만나면 어렵다고 느낀다”며 “수학적 사고에는 논리력과 문제 이해력이 필수”라고 말했다. 논리력과 이해력을 높이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 풍부한 독서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특히 수학그림책과 수학동화 등 수학 관련 책(표 참조)을 꾸준히 읽으면 논리력과 이해력을 키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이야기와 그림을 통해 자연스럽게 수학 개념과 원리를 깨칠 수 있다.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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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28일 서강대 다산관에서 열리는 3회 맑스 코뮤날레에 발표자로 초청된 안드레아스 아른트(58·오른쪽 사진) 독일 베를린자유대 철학부 교수는 헤겔 변증법의 대가로 손꼽힌다. 1992년 이래, 전 세계 진보적인 헤겔(왼쪽 사진) 연구자 500여명이 참여한 국제헤겔연맹 의장을 맡아 왔다. 이 단체는 중도보수 성향의 국제헤겔회의와 함께, 세계 양대 헤겔학회로 꼽힌다.

그는 현실 개념을 파악하는 새로운 형태의 도구로서 헤겔 변증법의 의미를 재정립한 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저서 〈칼 마르크스:그의 이론의 전체연관에 대한 연구〉와 〈변증법과 반성:이성개념의 재구성을 위한 연구〉는 헤겔 변증법 철학과 변증법 일반에 대한 고전적 연구서로 평가받고 있다.

26일 고려대에서 만난 아른트 교수는 ‘복합적 구조들의 역사적 발전’을 기술하는 도구로서 헤겔 변증법을 적극 옹호했다. 그는 또 “‘노동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유시간과 관계하는 법을 잊어버렸다”면서 “자유시간을 쓸 수 있는 방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경수 한신대 학술원 연구교수가 인터뷰를 도왔다.

-헤겔 철학의 현재적 의미는 무엇인가?

=헤겔 이론은 근대의 지반에서 나왔다. 근대를 역사적으로 반성한 것이다. 헤겔 철학의 새로움은 구조에 대한 기술 뿐 아니라 역사적 과정을 항상 같이 사유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새로움은 인권을 새롭게 조명한 것이다. 개인의 자유를 추상적 자유가 아니라 사회 정치적 제도를 통해 확보해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 자유는 빈말이 아니라 구조 즉 시스템으로서 확보해야 한다고 봤다. 헤겔 변증법은 ‘복합적 구조들의 역사적 발전’을 기술하는 데 그 어떤 방법론보다 탁월한 도구이다. 변증법을 통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고 올바르게 보고 기술할 수 있다.

-동일성에 대해 차이의 우위를 강조하는 들뢰즈 등 포스트모더니즘 학자들은 헤겔 변증법을 싫어한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

=들뢰즈는 근대적(모던)이란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모던은 계속 발전되어 나가고 또 항상 현재화되는 개념이다. 현재 흐름 속에서의 발전의 개념인데, 포스트모더니즘 학자들은 모던을 ‘발전이 종결된 하나의 단위’로 오해하고 있다. 변증법은 (포스트모더니즘 학자들이 말하는) ‘차이’를 하나의 연관 속에서 고찰하고 총체성 안에서 고찰한다. 이를 포스트모더니즘 학자들은 간과하고 있다. ‘동일성’에 대해 추상적으로 사고하며 ‘차이’와 대립시키고 있다.

-1990년 이후 한국에서는 데리다, 푸코, 들뢰즈 등 포스트모더니즘 학자들과, 이들과 철학적 영향을 주고 받은 자율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 네그리 등을 대안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이론을 어떻게 보나?

=네그리는 대중의 자발성 이론에 기초해 있다. 하지만 대중 조직화 등 실천 환경에 대한 분석은 충분하지 않다. 세계화의 대안 이론이 될 수 없다. 대중에게 이미 자발성이 있고 제국이 있으며 항상 대항하는 힘이 있다는 생각은 철학적으로 나이브(순진)하다.

-논문 ‘시간의 경제’에서 ‘자유시간’을 누릴 줄 아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어떤 의미인가?

=사회적으로 노동 시간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는 경제에 중요하다. 유한한 존재가 어떻게 행복한 삶을 가질 것인지, 우리가 가진 시간을 자율적으로 규정하고 구성해나가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노동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자유시간과 관계하는 법을 잊어 버렸다. ‘노동형식’이 자유시간 안에 침투해 들어왔다. 자유시간 조차도 노동이나 업적을 위해 쓰이는 휴식이 되었다. 또 여가나 소비 산업을 위해 휘둘리고 있다. 자유시간을 쓸 수 있는 방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 좋으면서 행복한 삶이 뭔지 근본적으로 고찰해야 한다. 생의 다른 대안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거기서 출발해 정치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 출발점은 노동시간의 단축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끊임없이 허구적 욕구를 재생산해 낸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사용가치’에 근거한 요구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다시 한번 미래 생을 꿈꾸고 사회적으로 배워야 하고 정치적 대안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신자유주의와 정보혁명 시대에 유의미한 변혁적 도구는 무엇인가?

=마르크스는 국가가 자본주의를 규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본론〉의 ‘1일 노동시간’장을 보면, 마르크스는 국가가 잔혹한 아동 노동에 대해 일정한 제한을 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단계에서 국가가 자본주의 잔혹성을 누그러뜨리는 기능도 한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국제적 비판적 운동도 중요하다. 고삐풀린 신자유주의 움직임을 제어해줄 수 있다. 유럽연합 등 모든 기관을 이런 식의 비판 운동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 유럽의 경우 노조간 연대 조직이 유럽노동헌장을 제정하려고 한다. 이런 움직임은 유럽의 최소 노동조건을 만드는 운동의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계급지배 철폐만을 외칠 게 아니라 구체적인 경제적 대안을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 상품 생산과 분배, 소비를 어떻게 규정하고 계획적 생산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제시해야 한다. (* 이 대목에서 인터뷰어에게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경제적 대안'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사회민주주의와는 어떻게 다른지 물어봤더라면 좋았을텐데요.)

-독일 등의 마르크스주의 연구 동향은?

=최근 미국과 영국에서 변증법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에서 마르크스 변증법 이해를 다루는 문헌들이 많이 나오고 있으며 토론도 활발하다. 이런 미국 쪽 움직임이 오히려 유럽 쪽에 영향을 주고 있다. 내가 맡은 대학 강좌를 보면, 최근 몇해 마르크스 철학이나 정치경제학 과목 수강 학생들이 점점 늘고 있다. 1989년 현실 사회주의 붕괴는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는 더 이상 정치적 의심을 받지 않으면서 위축되지 않고 마르크스 사상을 있는 그대로 과학적으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도그마(독단)에 빠질 가능성을 줄이는 긍정적 계기가 됐다.

글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 학자인 들뢰즈는 “내가 무엇보다도 싫어하는 것은 헤겔주의와 변증법이야”라고 공공연히 밝혔다.

들뢰즈를 포함해 포스트모더니즘 학자들은 헤겔을 포함한 서구 형이상학을 이성 중심의 철학으로 파악했다. 이성 대 비이성 등의 이항 대립구조 속에서 사유하면서 부차적인 것을 무시해 버렸다는 게 그들의 관점이다. 서구 형이상학이 지배와 피지배의 폭력적 위계질서를 내적 기제로 하고 있다는 비판도 여기에서 나온다. 들뢰즈는 ‘차이(다름)’를 버리는 것은 개별자 자신의 고유성을 버리는 것이라면서 ‘동일성(같음)’에 대한 ‘차이’의 우위를 강조한다.

이런 비판에 대해 헤겔주의자들은 이성에는 억압적 기능 뿐 아니라 해방적 기능도 있으며,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유 또한 반성으로서의 이성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하며 이성에 대한 새로운 신뢰가 필요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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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1987년 민주화 이전에도 사람들은 잘 살았다. 밥 먹고 돈 벌고 놀고 여행하는 데 큰 불편 없었다. 민주화 이후의 시대 이른바 ‘친북 좌파’가 나라를 망쳐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3공, 5공 시대를 그렇게 기억한다. 그게 ‘자유’였을까? 그 시절 경찰서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고 더욱이 감방 같은 곳은 선량한 사람들과는 무관한 범죄자의 세계로만 여긴 사람들,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한눈팔지 않고 산 사람들은 그때 자유로웠을까?

‘자본주의적 자유주의 가치의 선전원’이었던 아이제이아 벌린(1909~1997)의 관점에 서면 그들은 자유인이었다. 벌린은 타인 또는 외부의 간섭, 강제, 방해를 받지 않는 것을 자유라 규정했다. ‘소극적 자유’다. 그것은 권리청원, 찰스1세의 처형, 공화정 수립으로 이어진 17세기 영국혁명을 거부했던 토머스 홉스와 18세기 미국혁명을 부정했던 제러미 벤담이 일찍이 역설했던 자유론과 일치한다. 왕당파와 절대주의 지지자들의 자유론이다. 이들에 따르면 선한 왕이 지배했던 고대왕국의 신민이 21세기 민주국가 시민보다 훨씬 더 자유로웠을 수 있다.

벌린이 1958년 옥스퍼드대 사회정치이론 강좌교수 취임강연에서 그런 자유론을 설파한 지 40년이 지난 1998년 케임브리지대학 근대사 왕립석좌교수가 된 ??틴 스키너는 취임강연에서 벌린의 자유론에 도전했다. 그가 지지하는 17세기 영국혁명 때의 공화정 의회파 저술가들은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했다. 우선 “부당한 간섭 없이 권리와 자유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자유에 대한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자유인이 아니어도 특정한 권리와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예컨대 옛 로마나 미국 노예들도 드물지만 좋은 주인 만나면 즐거운 놀이와 휴식, 맛난 음식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 주인의 기분이나 생각이 바뀌어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질지 몰랐다. 그들이 누린 자유가 이처럼 전적으로 타인의 자의적 의지, 선의에 달려 있는 것이라면 아무리 자유를 누리고 있다 한들 그들은 자유인이 아니라 노예다. 따라서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는 “권리와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역량이 타인의 의지에 종속되지 않아야 한다.” ‘적극적 자유’다.

대통령을 직접 뽑을 권리도, 복수의 사람들을 한꺼번에 마음대로 만날 수도, 책을 마음대로 읽을 수도 없었으며, 머리카락과 치마 길이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고, 정부를 비판하는 말을 뱉는 순간 감옥에 갈 각오를 해야 했던 빅 브러더의 세계, ‘유신’ 독재 이후 군사정권에 고개 쳐들지 않은 대가로 얻은 자유가 진짜 자유였을까. 스키너에 따르면 왕이나 빅 브러더는 그들이 신민을 구속하든 말든 그 존재 자체가 자유를 자유일 수 없게 만든다. 그러면 정치적, 절차적 민주화가 크게 진전됐다는 지금 사람들은 자유로울까?

벌린이나 홉스의 자유론에 따르면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병실을 나올 수 없는 것은 자유를 누릴 힘이 없어서지 자유가 없어서가 아니다. 그런 논리라면 지금의 신자유주의시대에 극빈자나 사회적 낙오자, 소수자에게도 얼마든지 자유는 있다. 다만 그걸 누릴 힘이 없을 뿐이다. 정말 그들에게 자유가 있을까? 무한경쟁의 우승열패식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강자는 권력을 독점하고 약자는 가속적으로 더 약해질 수밖에 없으며 그런 처지에서 평등한 기회는 보장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선 소수 강자, 상위 20%만이 자유롭다.

18세기 공리주의 등장 이후 ‘적극적 자유’론은 쇠퇴했고 자유가 아니라 국가보호 아래 안전과 행복 추구가 최선이라던 왕당파 홉스와 벤담의 소극적 자유론이 세상을 지배했다. 이 때문에 “자유에 대한 좀더 넓고 좀더 깊이 있고 무엇보다도 좀더 민주주의적인 생각이 대부분 시야에서 사라졌다”는 게 스키너의 생각이다. 〈퀜틴 스키너의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푸른역사 펴냄)는 바로 이 ‘시야에서 사라진’ 적극적 자유론, 공화주의적 또는 신로마적, 민주주의적 자유론을 되살리자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좌파이념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간섭의 부재라는 의미의 개인의 사적 자유를 옹호”한 벌린의 자유론, 냉전시대 서방진영의 ‘정전’이자 ‘무기’가 됐던 그 자유론을 넘어서서, 공화주의와 시민적 자유론마저 불온시했던 이 땅에선 친숙하지 않은 스피노자, 루소, 헤겔, 마르크스, 자코뱅, 좌파들의 자유론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그 출발점이 영국 역사상 자유론을 둘러싸고 가장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던 17세기 영국혁명 당시, 홉스와 벤담의 자유주의가 판치기 ‘이전의 자유’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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