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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아나키즘, 그 반역의 역사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29
조세현 지음 / 책세상 / 200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 기억 하나

 

'아나키즘' 에 대한 첫번째 기억은, 00년에 상영한 유영식 감독의 영화 <아나키스트>입니다.
장동건, 정준호, 김상중 과 같은 쟁쟁한 배우들이 열연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는 장면이었어요.

장동건 오빠를 보기 위해서 <아나키스트>를 관람한 제게,
아나키즘이란, 곧 '명분 있는 테러' 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이들이 종횡무진하던 무대가 1920년대 상하이 였다던지,
이들이 늘상, 거사 직전에 사진 찍기를 즐겨했다던지, 하는 사실들을 알게 된 것은 나중의 일이었죠.
항일 비밀 결사체 '의열단' 의 활약상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 역시도 그랬습니다.

# 기억 둘

시간이 지나 인트라넷 책마을 시절에, 저는 다시 '아나키즘' 을 접하게 됩니다.
상래가 독서후기를 썼었어요. 얼마간의 글줄을 쓰면서도 무던히 눈치를 봐야했던 그 시절, 상래 녀석은 "요즘에 누가 아나키즘을 신경쓰기나 하나요?" 라며 너스레를 떨었더랬죠.
상래가, 오늘날 아나키즘이 살짝 주목받고 있다고 얘기했던 것 같아요.

그도 그럴 것이, 동구권이 몰락하면서 급진적이었던 사회운동은 함께 주저앉아버렸죠.
"자본주의는 틀렸다. 하지만, 사회주의도 틀렸다." 라는 정신적인 공황기에, 자유주의의 바람은 몹시도 거세었고, 거센 바람을 맞으며 생각했을겁니다.
"대안이란 무엇인가. 대안이 있기는 한 것인가."

우화적으로 얘기했지만, 아나키즘이 살짝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동아시아 아나키즘, 그 반역의 역사>의 저자 조세현씨는, 오늘날 우리가 '아나키즘'을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얘기하고 있어요.

" 동아시아의 아나키스트들이 민족주의의 고양과 국민국가 건설이라는 시대흐름에 맞서 민족과 국가를 넘어서는 동아시아 민중연대를 주장한 것은 매우 인상적이다. 비록 현실 문제에 적절한 대안과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원리원칙을 고집한 것이 운동의 패인이라고 종종 지적되지만, 그래도 그들이 제시한 이상주의적 전망은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듯 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던진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해 우리는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
라구요.

# 주류를 비판하는 아나키즘

마음 급하게, 아나키즘의 던졌다는 본질적인 문제들을 뒤적이기에 앞서, 아나키즘의 역사에 대해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습니다.
아나키즘이래봤자, <아나키스트>를 관람한 것이 고작이었거든요. ^^;

아나키즘 운동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가 전성기였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서유럽의 프루동, 바쿠닌, 크로포트킨, 등의 본류이고, 일본을 통해 동아시아로 건너오면서 한국, 일본, 중국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까지 널리 퍼졌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기니 지명이니 딱딱한 얘기들을 잠깐 치워두면,
아나키즘이 당시 일제치하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한국의 운동세력, 그중 주류였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을 강력히 비판해왔다는 사실이 눈에 띕니다.
아나키즘 운동이란, 당시 사회상을 그리고 있는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이나 <경성 트로이카>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족적이었으니까요.

물론, <아나키스트>에서 다루어진 '의열단'을 비롯해서, 1921년에 한인 유학생들이 조직한 '흑도회', 1924년 중국에서 조직된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흑기연맹', '진우연맹'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 것으로 알려져있으나,
결국 이들은 독자적인 세력화에 실패하고, 민족주의 운동이나 사회주의 운동으로 수렴되면서, 그 내외에서 비판자적인 역할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물론, 끝까지 독자적인 활동을 전개한 사람들도 있다고 알려져있구요.

민족주의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아나키즘의 비판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은,
테러집단 정도로 매도되고 있는 '아나키즘' 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비판 하나 - 민족주의와 아나키즘

민족주의에 반대하는 아나키즘의 정신은 '국제주의' 입니다.
당시 민족주의의 사상적 바탕은 '사회진화론' 이었는데, 태백산맥의 김범우가 그랬던 것 처럼, 교육을 통해 민족의 힘을 키우는 것이 제일 우선이라는 것이었죠.

하지만, 아나키스트들은 민족주의나 국수주의 역시도 하나의 권력을 생산하려는 시도와 같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오히려, 사회 진화의 원동력은 경쟁이 아니라 상호부조라고 생각했죠. 우승열패 약육강식의 사회진화론으로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결국 자기 모순에 빠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민족의 힘을 키워 누르고 일어서는 방식보다는,
가깝게는 한국 일본 중국, 멀게는 국제적인 아나키스트들의 연결망을 통해서 전세를 극복하고자 하였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국제어 에스페란토어 역시, 아나키스들에 의해 보급되었다고 하네요.)

정부와 국가 자체를 부정했던 이들에게, 권력의 국적이란 무의미한 것이었죠.

# 비판 둘 - 공산주의와 아나키즘

공산주의에 반대했던 아나키즘의 정신은 '모든 권력에 대한 반대' 였습니다.
이들은 러시아 혁명에서 볼셰비키당이 수행했던 전위당의 역할 역시도 하나의 권력이라 생각했고, 더욱이 당시 스탈린 치하의 공산당이 주도했던 코민테른 - 동구권 국가들의 공산당 회의 - 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후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배경설명이 필요합니다.
이는 <경성 트로이카>를 보면 잘 드러나있는데요, 당시 한국의 공산주의 운동세력은 국내파와 국제파라는 보이지 않는 구분선이 있었죠.
여기서 국제파란, 위에서 언급한 코민테른의 지시를 받는 세력을 뜻하는 것인데, 이들은 당시 혁명을 일구어낸 소련을 선망한 나머지 소련 공산당의 패권적인 태도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되고, 이 때문에 국내파에 의해 '사대주의' 라는 비판을 받게 됩니다.

운동이란 주어진 조건과 주체를 고려해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당시 코민테른, 그리고 코민테른을 주도했던 소련 공산당의 경우, 자신의 세력을 넓히는 데에만 급급했던 것입니다. 일본 제국주의와 별 다를 바가 없었죠.
권력 자체를 부정하고 민중의 자발적인 운동만을 중시했던 아나키스트들과의 접점은 전혀 없었던겁니다.

실제, 1927년 동아시아 아나키스트들의 연합체였던 동방무정부주의연맹에서 발표한 선언문을 보면,
" (1) 불순한 조선민족운동 반대 (2) 모든 정치운동 부정 (3) 사이비 공산전제 배척 (4) 공산당의 애매한 사대주의 사상 청산 " 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 아나키즘이 던지는 질문

어떠세요. 뭔가 만만치 않은 집단 같은가요?
테러를 인정하다니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도,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민중의 자발적인 운동, 국제주의를 주창했던 것을 보면 좀처럼 가닥을 잡기 힘든 집단이라는 생각이 드실겁니다.

이쯤에서 저자인 조세현씨가 짚고있는 논점을 정리해볼께요.

(1) 볼셰비즘에 내재된 권위주의적 일당독재의 출현을 정확하게 예측했다
(2) 모든 변혁운동은 반드시 그 운동 주체가 추진해야 하는데, 그들은 '인민의' 사회주의를 제창했다
(3) 계급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기존 권력의 복잡한 그물망이 완전히 해체되지는 않을 것이며, 가족 종교 국가 등 '전방위적' 인 투쟁이 필요하다

조세현씨는 이점들이, 아나키즘으로 부터 배워야 할 한국운동의 교훈이라고 얘기합니다.

# 학자스럽거나 혹은 나쁘거나

이제 제 얘기를 해야겠군요.
저는 조세현씨가, 운동의 원칙을 언급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어떻게' 라는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지 못하고 있죠.

" 왜 실패했는가?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 라는,
실천하는 운동가의 입장은 아닐겁니다.

광범위한 지지를 끌어냈고 실제 러시아 혁명을 이끌었던 볼셰비키당이 어떻게 몰락의 과정을 겪었는지,
마찬가지로 아나키즘 운동이, 한국 뿐만 아니라 서유럽에서 어떻게 짧은 수명을 마칠 수 밖에 없었는지,
그 과정에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얘기가 없습니다.
그는 아나키즘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이 운동은 이래서 실패했고 이 운동은 저래서 실패했다' 며 논평하는데 그치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학자는 학자대로 운동가는 운동가대로, 나름의 역할이 있는 것이겠지만,
그가 '아나키즘의 역사와 정신' 이라는 부분을 넘어서, 지난 운동에 대한 평가를 시도하려 했다면 좀 더 신중했어야 하지 않은가 생각해봅니다.

# 보태어 - 아나키즘과 자율주의

아나키즘의 면면은, 오늘날의 자율주의에 살아있는 것 같아요.
계급이나 민중의 개념을 포괄하고자 하는 '다중'이라는 개념과 '자율주의'. 구입만 하고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안토니오 네그리의 <제국>에 잘 나타나있다고 들었습니다.

혹 읽어보신 분이 있다면, 함께 얘기해보는 것도 좋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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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선택 룰라
브리 뚜 알비스 지음, 박원복 옮김 / 가산출판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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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브라질은 우리나라와 굉장히 비슷한 역사적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포르투갈에 의해서 오랜 식민지배를 받았고, 60년대 군부독재와 70년대 브라질의 기적이라는 경제호황기를 누렸죠.
80년대 들어 군부독재가 끝나고 들어선 민간정부에서는, 소위 신자유주의 정책을 통해서 많은 폐단을 낳게 되구요.

5천 4백만 명이 하루 1달러 미만의 돈으로 살고, 15%가 넘는 실업율.
3%의 인구가 차지하는 토지가 전체 면적의 60%를 차지하는 반면, 최빈층 40%는 1%만 소유하고 있는 나라.
가장 높은 수준의 세금과 불평등한 세금구조, 2천5백억 달러에 이르는 천문학적 규모의 외채더미가 브라질을 상징합니다.

복지국가를 상징하는 벨기에와 빈부격차를 상징하는 인도의 합성어인 '벨런지아'라는 별칭이 나타내듯이,
경제규모 세계 12위 이면서, 세계최고의 빈부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이 공존하는 나라.

브라질입니다.

2.

2002년이었습니다.
신문 사회면이나 국제면을 뒤적거리다가 발견했던 기사가, 브라질에서 좌파정권이 집권했다는 대선 기사였습니다.

그 주인공은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그냥 '룰라'입니다.
18세에 수도공으로 시작해서, 브라질 금속노조 위원장으로, 그리고 3차례의 낙선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겁니다.

그의 당선이 이렇게 이슈가 되었던 것은,
단지 좌파정권이라는 사실 외에도, 선거가 유례없이 많은 국민들의 참여와 지지 속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인데요,
위와 같은 사회적 갈등 속에서, 뭔가 달라질거라는 기대감이 많은 국민들의 참여와 지지를 이끌어냈겠죠.

국제사회도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 같습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조중동 메이저급 신문들은 그저 '좌파'라는 단어를 부각시켜 이미지 만들기에 여념을 없었을텐데, 그건 그렇다 치고,
민주노동당을 비롯해서 노동계 인사들이 줄줄이 성명을 발표하고 그 중 몇몇은 브라질로 건너가기도 했던 사실이 기억에 남습니다.

2002년이면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 선거가 그 즈음이었을테니,
우리나라의 진보정당이라는 민주노동당의 입장에서는, 그리고 노동계 인사들의 입장에서는,
룰라, 그리고 그가 속한 노동자당(PT)의 집권이 반가웠을만도 합니다.
자신들이 그리고있는 미래가 될테니까요.

3.

그런데, 막상 브라질의 분위기는 그들이 기대하는 그것과는 사뭇 다른 모양입니다.

저자인 브리뚜 알비스씨의 논조는,
엄하게 말해서, 룰라가 좌파적인 성향을 계속 유지했다면 당선될 수 없었을 것이다 라는 것이거든요.

이 자유주의 경제학자의 논평에서 볼 수 있듯이,
실제, 룰라는 89년, 94년, 98년 3차례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한 경험을 가지고 있고,
여러차례의 낙선을 거치면서 그의 정치 경제적인 입장을 상당부분 절충하는 과정을 거치게됩니다.
미국에 대한 태도, IMF, IBRD와 같은 세계금융권에 대한 태도와 같은 정책기조나 대외발언도 많이 물러졌구요.

극좌파에서 중도좌파로 우향우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급기야 그의 선거 캠페인은 '평화와 사랑'이었을 정도로 두리뭉실해집니다.
( 두리뭉실하다고 표현한 것은, '평화와 사랑'이 언뜻 보기에 말은 좋지만,
굉장히 구체적이고 이해타산적인 현실 정치영역에서, 평화니 사랑이니 하는 단어들은 불분명한 정책기조를 뜻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

대선 당시 룰라 후보의 경제정책 참모 기도 만테씨는 "우리는 70∼80년대가 아닌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다." 면서,
노동당과 룰라 정부의 변화가 무죄임을, 나름의 융통성임을 얘기하지만,
룰라가 집권에 자신을 맞추었다는 느낌이 드는건 왜인지요.

뭐 자신의 신념을 유지한 채로 집권을 이루어내든, 집권에 맞게 타협을 하든,
그건 룰라의 자유고, 브라질 유권자의 자유일겠지만,
좌파정당의 정치 경제적 미래를 짚어볼 욕심을 가졌던 독자에게는,
브라질 노동당과 룰라가 적절한 예시가 될 수 없다는 실망감을 안겨주었습니다.

4.

이제 집권 1년반을 넘어가는 룰라 대통령은,
집권 당시 굉장히 긴장했던 우파로부터는 '쟤가 왜 저러지?'하는 의혹의 시선을,
좌파와 극빈층으로부터는 실망과 배신이라는 힐책을 받으면서,
굉장히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좀 더 두고 볼 일이지만,
캐나다, 브라질까지 묶었던 NAFTA에 이어 남미 전체까지 미주대륙 전체를 2005년까지 묶어내겠다는 미국의 FTAA 의 추진의지를 옅보자면,
간판 유지가 언제까지 가능할지 두고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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