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과연 과학관련 서적이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신간평가단 책으로 선정될 수 있을까? 지난 세달간의 모양새로 보아하니 이건 그른 것 같다. 8기때 평가단 마치고 이 점에 대해서 논쟁(?)이 오간 것으로 기억하는데..... 으흠 이건 인문/사회 분야 평가단이라고 해야 할 것을..... 그냥 과학은 천덕꾸러기 마냥 덤으로 붙어있는 듯 하다. 그래서 난 이제부터 줄기차게 과학분야 서적만 올려 볼련다..... 누군가 모양새를 맞춰주고 싶은 이는 호응을 해 줄려나.... 괜시리 인문학에 관심 가진답시고 집적거리다가 된통 당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내가 잘 몰라서, 관심이 없어서 들여다보지 않았던 세계를 피상적(?)이나마 들여다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래서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다만, 나도 고집이 있는지라 앞으로 세달간 내 관심서적은 과학분야로 한정하기로 하고..... 누군가에게 외쳐본다..... 인문/사회과학에 내공이 쌓인 분들이시여..... 과학분야 책들도 나름 재미있고 깊이도 있답니다. 처음에는 <인지자본주의>를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당혹감이 그대들에게 엄습할지도 모르겠지만, 세상이 그게 다가 아닌 것을 그대들도 아시지 않나요.....^^ 

 1. 세상이 가둔 천재 페렐만 

 솔직하게 푸앵카레의 추측을 몇번이고 반복해서 읽어도 그 의미가 모호하지만, 푸앵카레의 추측을 해결하기 위한 수학자들의 이야기는 그대로 하나의 장대한 대하소설 같았던 기억입니다. 그리고 그 대하소설을 마무리 지은 인물, 페렐만, 이 기인의 삶자체도 하나의 드라마가 될 듯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만나니 그냥 반갑습니다. 수학을 잘 모르고, 푸앵카레의 추측의 의미를 다 이해하지 못해도, 페렐만이라는 천재적인 인물의 삶 자체를 살짝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는 추억이 될 수 있을 겁니다. 

 

 

 

 

2. 의사들이 해주지 않는 이야기  

 적어도 이 책은 <백혈병은 없다>류의 책은 아닐 것 같습니다. 하지만 비의료인이 쓴 책이라는 점에서 객관적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주관적이 편견에 사로잡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건 읽어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니..... 다만 인간의 건강과 수명 연장에 대한 현대의학의 지대한 공헌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는 없는 일이고, 그러한 과정에서 발생한 바람직하지 못한 의료의 본모습을 적나라하게 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현대의학에 대한 반감보다는 더 나은 의학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합니다.

 

 

 

 3. 극한의 우주 

  많은 것들이 밝혀졌다고는 하지만, 우주는 아직도 미지의 세계일 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지요..... 태양계의 극단적인 지역 50곳을 지구와 비교했다고 하는데, 무척 흥미롭지 않겠습니까? ^^ 

 

 

 

 

 

 4. 물리의 언어로 세상을 읽다  

  수학의 언어로 자연과 우주의 비밀을 풀어낸다.... 우리는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지난 수세기 동안 현대 과학이 한 일입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배울 때, 이해도 다 못하면서 식을 술술 외워서 증명문제를 써 냈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한데, 아마도 위대한 과학자들이 느꼈을 환희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못되겠지요. 수학이 물리의 언어가 되고 과학의 도구에서 여왕이 되는 과정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거리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5. 전자현미경으로 보는 마이크로의 세계 

  미시세계의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책인 듯 합니다. 전자주사현미경으로 살핀 다양한 식물과 곤충, 생체조직 등에는 우리가 거시세계에서 느끼는 아름다움과 닮은 듯 하지만, 그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담고 있겠지요. 보는 것 자체가 즐거운, 그리고 세상의 모습을 달리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하찮은 풀한포기라도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이 세상에서의 본모습인 것은 아닐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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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 피시 - 네 종류 물고기를 통해 파헤친 인간의 이기적 욕망과 환경의 미래
폴 그린버그 지음, 박산호 옮김 / 시공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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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고기야말로 과학자들이 인위적으로 개량할 수 없는, 세상에 남은 유일한 음식이다. 현재 우리가 먹는 물고기는 우리의 까마득한 조상들이 먹던 물고기보다 비타민이 손톱만큼도 첨가되지 않았으며 맛도 똑같다. 물고기를 제외한 세상의 모든 음식은 개량에 개량을 거듭해 더 이상 사람이 먹기에 적합하지 않은 지경까지 개량되고 말았다. -1994년 조셉 미첼의 <Old Mr. Flood> 중에서  

 저자가 책의 처음에 소개한 위의 문장은 아마도 자신이 다룬 물고기들이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방식이 얼마만큼이나 극적으로 변한 것인지를 일깨우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미처 20여년이 되지 않은 1994년에는 물고기가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 사람들에게 무한정 공급될 수 있을 것 같은 훌륭한 음식으로 당연하게 생각되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제는 사료를 주며 인공적으로 양식된 물고기들이 넘치게 된 것이 그 20여년 사이의 일이고, 그물을 던지면 한없이 딸려 올 것 같은 많은 물고기들이 인간의 식탁을 채우기 위한 남획으로 인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는 사실에 아연 실색하게 된 것도 그 짧은 20여년 사이에 발생한 일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저자는 연어, 농어, 대구, 참치, 이 네가지 물고기가 사람들의 식탁에 오르게 되고, 인기를 끌면서 수요가 늘어나는 과정에서 남획되거나 산업화의 과정에서 동반되는 환경파괴로 인해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줄지 않는 수요를 채우기 위해 양식 기술이 개발되어 인공적으로 생산된 양식 물고기들이 자연산 물고기의 빈자리를 상당부분 보충하게 되지만, 양식으로 인한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나타나게 되고, 인공적인 양식으로 인해 생기는 여러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비효율적으로 양식되는 물고기를 대체할 만한 적절한 양식 물고기들이 선택되어 부상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음식으로서의 물고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과 한 생명체로서의 물고기를 존중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과 해결책을 이 책에 담고 있습니다.   

 '물고기를 연구하거나, 잡거나, 어부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물고기를 아주 많이 사랑한다. 하지만 그 나머지 사람들은 물고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행동하는지, 혹은 얼마나 많이 남았는지 굳이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매년 점점 더 많은 양을 먹어치우고 있다. 나는 그런 추세가 변할 거라는 간절한 희망을 품고 있다. 언젠가는 물고기 역시 그 나름의 완벽한 존재로서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종이라는 것을 이해할 때가 올거라는 희망 말이다.' -p269  

 저자는 기본적으로 물고기들이 인간의 식탁을 풍성하게 하는 훌륭한 음식인 것을 인정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음식으로서의 물고기 보다는 이 지구상에 인간과 함께 공존하는 하나의 생명체라는 사실에 더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물고기가 '나름의 완벽한 존재로서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종'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식탁에 올릴 음식으로 무작정 남획하여 심각하게 개체수를 감소시키고, 수요을 채우기 위해 다시 효율적이지 못한 양식을 실행하면서 생태계에 부담을 주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고, 또한 음식으로서의 물고기를 지속적으로 식탁에 올리는 길을 찾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연어, 농어, 대구, 참치가 우리의 식탁에 오르내리면서 지난 수십여년간 겪은 수난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가능한 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물고기 공급량을 늘릴 수 있는 기준이다. 인간은 자연산 물고기 공급량과 점점 더 늘어가는 인간의 수요 사이에 존재하는 커다란 간극을 메우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산업 규모의 사육에 적응할 수 있는 소수의 물고기 종을 과감하게 골라야 한다. 물론 전 세계 인구가 계속 줄지 않고 증가한다면 어떤 해법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인구가 성장한다는 시나리오에서는 오직 하늘의 별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 사실 육지에서 생산되는 식량이 한계에 다다른 상태에서 바다는 어떤 면에서 보면 우리가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는 곳이다. 인간이 세계의 생물량과 태양 에너지를 더 많은 인간으로 전환할 수 있는 유일하게 남은 방법이다. 인간 성장의 미래는 우리가 바다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p279 

 앞의 인용문은 바다의 물고기를 관리하는 방식이 앞으로의 인간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는 자각이 담긴 말입니다. 자신이 언급한 연어, 농어, 대구, 참치가 밟아온 과거를 볼때, 사람들이 순수하게 바다 속에서 건져올린 자연산 물고기만으로는 결코 사람들의 식탁을 풍성하게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사람들에게 적절하게 제공할 수 있는 물고기를 선택해서 기업적인 양식을 통해서 물고기에 대한 수요를 해결하고, 바다 속에서 한 생명으로 살아가는 물고기는 우리의 보호를 받으며 자유롭게 번식할 가치가 있는 야생생물로서 다루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런 인식의 전환이 있을 때, 어업량을 감소시키고, 바다 생태계의 많은 부분을 어업 금지 구역으로 전환하고, 적절히 관리할 수 없는 종은 전 세계적으로 보호하고, 무분별한 양식을 지양하고 먹이사슬의 근본을 지켜 바다를 효과적으로 되살리자는 저자의 제안이 의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음식으로서의 물고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양식을 위해 선택되는 물고기는 효율적으로 자라고, 자연을 파괴하지 않으며, 양식을 허용하는 물고기 종의 숫자를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고, 선택된 물고기는 적응력이 뛰어나고 여러 종을 함께 양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사람들에게 가치있게 받아들여 질 것입니다. 그런 면을 생각한다면 이 책은 그러한 인식의 전환에 다가서기 위한 기초를 다지는 책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고기도 존중받아야 하는 생명체이다'라는 사실을 무조건 부인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식탁에 올라오는 생선구이나 싱싱한 생선회를 보면서 그런 생각까지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들려 준, 물고기들의 과거의 수난과 남획, 개체수의 감소로 인한 위기, 양식에 의한 대량 생산 등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다만 맛깔스런 음식으로서 생선이 눈앞에 아른 거릴 뿐일 것입니다. 또한 건강에 좋은 식단이라며 일주일 또는 한달에 몇번 생선을 식탁에 올리라는 권위있는 기관의 권고문을 대할 때면, 사람들은 생선이 몸에 좋은 음식이라는 생각을 하겠지만 이 세상 사람들 모두의 건강을 위해 공급되어야 하는 물고기가 충분할 것인가 따위의 질문은 결코 생각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바로 그런 우리의 모습에 문제의식을 느껴 저자는 이 책을 썼을 것이고,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밝힌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에 희생되고 있는 물고기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관심있게 들여다 본다면 '자연산 물고기는 그저 우리의 음식이 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만의 개별적인 운명을 추구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만약 우리가 그들을 사냥해서 먹는다면 조심스럽게 잡아서 먹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남은 자연 식품을 먹는 것 자체가 특권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마지막까지 강조하는 저자의 심정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분명 저자의 주장은 환경의 보존이라는 입장에서만이 아니라, 훌륭한 음식으로서의 물고기의 지속적인 공급이라는 측면에서도 숙고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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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자본주의]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인지자본주의 - 현대 세계의 거대한 전환과 사회적 삶의 재구성 아우또노미아총서 27
조정환 지음 / 갈무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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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여기서 오늘날의 제3기 자본주의를 신자유주의나 금융자본주의 혹은 소비자본주의로 정의하기보다 인지자본주의로 정의하는 길을 선택할 것이다. 인지자본주의는 앞서 말한 것처럼 베네치아, 제노바, 네덜란드 등에 의해 표상되는 상업자본주의, 영국과 독일, 그리고 20세기 후반의 미국에 의해 표상되는 산업자본주의에 이어 나타난 제3기의 자본주의다. 그것은 인지노동의 착취를 주요한 특징으로 삼는 자본주의다. 우리는 이 개념을 통해서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다시 사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의 문제설정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개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지자본주의라는 개념을 통해서 우리는, 자본 자신이 아니라 노동이 현대세계의 거대한 전환과 사회적 삶의 재구성을 가져오는 우선적 힘이라는 생각을 표현할 수 있고 그 노동의 역사적 진화와 혁신의 과정을 중심적 문제로 부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32~33, 서장   

 정보를 획득하고 파지하고 활용한다는 의미에서의 '인지cognition'라는 용어는 아마도 심리학이나 뇌과학, 신경학, 컴퓨터 등을 다루는 과학도들에게 더 익숙한 용어일 것입니다. 자본주의에 인지의 개념을 적용해 인지자본주의를 제3기의 자본주의로 소개하는 이 책의 제목이 유난히 눈을 사로잡은 이유가 그런 익숙함에 의한 것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처음 두툼한 책을 접할 때, '인지자본주의'라는 제목만 보고서는, 비록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처음 수십여 페이지를 읽다가 다시 고이 접었고 인문 서적들보다는 자연과학 서적들이 더 익숙하고 편한 나같은 사람도 무언가 만만하게 대들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대담한 생각을 했던 것도 아마 그런 익숙함에 의한 자신감의 발로가 아니었을는지..... 하지만 그런 자신감은 처음 몇 페이지를 읽어 내려가던 중에 바닥이 나 버렸다는 사실을 먼저 고백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인문학적인 기본 소양이 제대로 갖춰졌을리 없는 자연과학도라고 할 수 있는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읽어내는 것은 애초부터 가망이 없는 일이었다고 손을 드는 것이 솔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과학에서 사용하는 인지의 개념을 이 책에서는 '지각하고 느끼고 이해하고 판단하고 의지하는 등의 활동에 포함되는 정신적 과정을 총칭하는 용어로서, 감각, 지각, 추리, 정서, 지식, 기억, 결정, 소통 등의 개체적 및 간개체적 수준의 정신작용 모두를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깊이의 차원에서는 표면에서 의식되는 것과 더불어 전의식적인 것 (의식되기 이전의 의식적인 것), 하의식적인 것 (의식적인 것의 누적의 산물로서 의식되지 않고도 의식적인 것으로 기능하는 것), 무의식적인 것 (의식되었으나 억압된 의식적인 것)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사용되며, 그런 연유로 지식의 물질화로서의 기계는 하의식적인 것에 해당하여 그 자체로 인지적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인지기계로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인지라는 개념을 물질적인 속성에 까지 확장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것들이 지닌 물질적 속성과 정식적 속성이 독립적인 것이나 인과적인 것이 아닌 평형관계에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지 개념을 바탕으로 저자가 말하는 인지자본주의를 쉽게 이야기 한다면 '신체가 노동하던 시대'에서 '영혼이 노동하는 시대'로의 전이를 이야기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인지노동의 전형은 연구자, 교육자, 프로그래머 등이 수행하는 지식노동이나 정보노동, 예술 노동이나 감정 노동 등이 있습니다.  

 저자는 인지자본주의라는 용어를 통해서 현대 자본주의의 얼굴을 밝히고자 한 것만이 아니라, 이러한 개념 정립을 통해서 기존의 자본주의를 다시금 고쳐 생각하고 그 안에서 자본이 아닌 노동이 현대사회의 전환과 재구성을 위한 힘이 될 수 있음을 밝히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노동의 '인지화가 가져오는 실제적인 변화들, 그 결과들, 그리고 의미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인지자본주의의 막바지에 이른 모습을 들여다보고 '인지혁명'-축적을 위한 인지의 전용이 아니라 삶의 혁신과 행복을 위한 인지혁명-을 통한 문제 해결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부를 구매력과 동일시하고, 쾌락을 소유와 동일시하며, 노동과 소득 사이에 엄격한 상관관계를 설정하고, 광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지금까지의 경제주의적 인지양식을 해체하고 부와 쾌, 그리고 행복에 대한 질적으로 다른 인지양식을 창출해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인지적 혁신의 힘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에 기초한 물리적인 정치적 행동이 따라야 만이 저자가 말하는 인지혁명이 온전히 달성되고 유지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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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meral 2011-08-31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는 웹진 <자율평론>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정연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drheaven 님이 작성하신 <인지자본주의>에 대한 서평글을 오는 9월 초 발행 예정인 <자율평론> 36호 게재할 수 있을지 문의를 드립니다.

<자율평론>은 2002년부터 지금까지 총 35호의 웹진을 발행한 계간 정치철학 웹진이며,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자유로이 접근할 수 있는 copyleft 웹진입니다. 그간 <자율평론>에 게재되었던 모든 원고들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aam.net/xe/autonomous_review

<자율평론>은 인문학 강좌 공간인 다중지성의 정원, 독립 출판 활동을 하는 갈무리 출판사, 세미나 공간 다중지성 연구정원의 마디 단위로, 위 공간들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지적 활동들의 성과들을 모아내고, 우리들의 생각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매체가 아니기 때문에 원고료를 드리기는 어렵지만, 게재를 허락해 주신다면 웹진이 발행되는 대로 PDF 파일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모쪼록 긍정적인 검토를 부탁드리며, 더 궁금하신 사항이 있으시다면 아래 연락처로 언제든지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자율평론> 편집위원회 김정연 드림
daziwon@waam.net / 02-325-2102
 
블랙스완에 대비하라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김현구 옮김, 남상구 감수 / 동녘사이언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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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 스완은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파급 효과가 큰 사건이다. 비록 사람들이 예상하지는 못했어도 나중에 그 사건이 불가피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p9

  음! 솔직히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대부분의 독자들은 상당한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자의 이전 저서인 <블랙 스완>을 성의껏 읽은 독자들이라면 그렇지 않겠지만, <블랙 스완>을 직접 읽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끊임없이 인구에 회자되던 '블랙 스완'이라는 용어에 관심이 생겨 이 책을 들게 된 독자-나같은 독자-라면 이 책의 구성이나 내용이 무척이나 당혹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블랙 스완이라는 말이 '과거의 경험을 통해서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파급효과가 큰 희귀한 사건'을 일컫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이 책의 원서가 독립적인 책이 아니라 THE BLACK SWAN: The Impact of the Highly Improbable [2nd edition]의 후기 <On Robustness and Fragility>라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이 책이 상정하는 독자의 수준은 <블랙스완>을 성실히 읽고 그 내용에 대해 나름대로의 비판적 시각이나 문제 의식을 가진 정도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또 한편으로의 당혹감은 책의 후기를 멀쩡하게 한 권의 책으로 펴내서 <블랙 스완>의 저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두 번째 메시지라고 당당하게 선전해 대는 출판사의 빼짱(?)에서 느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럴듯한 미끼에 낚인 물고기의 기분이 이렇지 않을는지......-_- 

 "칠면조 한 마리가 있습니다. 푸줏간 주인이 1000일 동안 매일 맛있는 먹이를 주고 정성껏 돌봐주자 자기를 끔찍이 사랑한다고 착각하죠. 그러나 추구감사절을 앞두고 1001일이 되는 날 주인에게 목이 날아가는 순간 '아차, 속았다' 싶지만 이미 늦은 거죠." 저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교수가 <블랙 스완>의 요지를 우화로 표현한 것입니다. 저자는 '현대 사회가 인터넷과 지구화라는 두 가지 요소로 인해 리스크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커졌고, 여러 변수 간 상호 의존성과 복잡성이 커지면서 블랙 스완처럼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졌'으므로 '특정 변수의 극단값에 대응하려면 역사 경험이나 자료 분석만 믿고 순진하게 행동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면서 이러한 블랙 스완의 시대에 살기 위한 4가지 방책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과거 역사나 자료를 통한 모델보다는 경험을 믿어야 한다는 것. 둘째, '무엇을 하라'고 하기보다는 '하지 말라'는 부정적 조언을 명료하게 던지는 것이 낫다는 것. 셋째, 지나친 전문화는 위험하다는 점을 명심하고 과도한  낙관도 경계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넷째, 이기려고 애쓰기보다는 실수를 피하는 게 결과적으로 이익이다는 것.... 저자가 말한는 방책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상반되는 내용들로 보이지만, 2008년 금융 위기의 해결책을 '세계를 지배하는 것으로 착각하고서 주어진 자료의 평범한 왕국에서 찾으려고 한다'는 저자의 신랄한 시각에서 본다면 충분히 합당한 의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저자는 극단의 왕국-희박한 사건이 실제로 발생하고 영향력을 발휘하는-에서 생각하고 있고, 그의 반대편에서 위기를 진화하려고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의 왕국-극단의 사건의 발생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 책의 주된 역할은 바로 본 책인 <블랙 스완>의 내용에 대한 보충 설명을 담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저자가 말하는 내용의 대부분은 <블랙 스완>에서 다루었던 내용 중에서 자신이 덧붙여 설명하기를 원하는 것들이고, 독자들은 이에 대한 선행 지식이 없이는 온전히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한계를 느끼게도 됩니다. 물론 단편적으로 읽는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도움이 될만한 내용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1장의 자연이 가르쳐주는 블랙 스완에 대처하는 방법이나 2장의 바벨 전략에 대한 설명, 8장의 블랙 스완에 강인한 사회를 위한 10가지 원칙 등은 블랙 스완에 대한 기본 개념만을 이해하고 있어도 유용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 책은 독자들이 먼저 <블랙 스완>을 제대로 읽어야만 잘 이해하고 더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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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어떤 국가를 원하는가? 내가 바라는 국가는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수립하는 국가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는 국가이다. 국민을 국민이기 이전에 인간으로 존중하는 국가이다. 부당한 특권과 반칙을 용납하거나 방관하지 않으며 선량한 시민 한 사람이라도 절망 속에 내버려두지 않는 국가이다. 나는 그런 국가에서 살고 싶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나는, 소로가 말한 것처럼 "먼저 인간이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시민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런 국가를 만들 수 있고, 또 그런 나라에서 살 합당한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p284, 맺음말 '훌륭한 국가를 생각한다' 중에서  

 국가, 그리고 국민. 단적으로 정의를 내리려고 할수록 난해한 문제가 되어버리겠지만, 한편으로는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의 자격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이들이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뭐라고 선명하게 표현하지 못할지라도, 어떤 국가에 소속된다는 것이 우리의 정체성의 일부를 차지하고, 우리가 필요할 때 의지할 곳이 있으며, 국민인 우리들의 보호와 안전을 책임지고,  그 국가는 우리에게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부여한다는 것 등의 생각 말입니다. 하지만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우리의 피상적이던 일상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듯이, 이 책의 제목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물음도 그렇듯 막연한 생각의 틀 속에서 국가를 생각하던 평범한 우리들에게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 사실입니다. 좀더 진지하게 들여다 보고 싶은 열망과 함께 말입니다. 

 저자는 크게 네 가지 국가론을 중심으로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첫번째 물음을 헤쳐 갑니다. 첫째는 홉스의 리바이어던에서 표현되었던 국가의 형태로, 국가를 사회계약에 근거하여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부여받은 주체로 생각하는 '국가주의 국가론'입니다. 둘째는 로크에서 애덤 스미스를 거쳐 소로에까지 이르는 사상으로, 국가를 공공재 공급자로서 국한하여 시장경제와 대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생각한 '자유주의 국가론', 셋째는 국가란 단지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억압하고 착취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마르크스주의 국가관', 그리고 넷째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선과 정의를 펼치는 국가를 이상국가로 상정했던 것과 같은 '목적론적 국가관'입니다. 여기까지는 익히 알려진 국가관에 대한 정리하고 할 수 있겠고, 중요한 것은 이러한 네 가지 국가론에 바탕을 두고 저자가 자신의 생각- 독자들에게 국가라는 주제와 연관시켜서 현실 정치인으로서 하고 싶었을 이야기- 을 펼쳐 나가고 있다는 사실일 듯 합니다. 그리고 그런 주장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순수한 학문적인 내용을 담은 책이라기 보다는 현실 정치인인 저자가 자신이 처한 현실 정치를 고민하고 그 안에서 이끌어 낸 논지를 펼치고자 한 지극히 정치적인 의도를 담은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뒤에 네 가지 국가론을 펼쳐 설명한 저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연이어 던지며 국가와 정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펼쳐갑니다. '누가 다스려야 하는가?', '애국심은 고귀한 감정인가?', '어떻게 국가를, 국가의 기본 질서를, 국가권력의 기능과 작동방식을 바꿀 것인가?', '진보와 보수는 어떻게 다르며, 진보정치란 국가를 어떻게 바꾸려고 하는 것인가?', '진보 정치가 국가로 하여금 실현하게 하려는 선은 어떤 것인가?', '정치인이 지켜야 할 윤리 또는 도덕법은 무엇인가?' ...... 순수하게 접근하더라도 관심이 가는 주제들이지만,  저자가 현실 정치인임을 주지한다면, 앞의 네가지 국가론을 바탕으로 물음을 하나씩 더해가면서 국가와 정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저자의 의도는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저자는 자신이 처한 현재의 정치적 상황에서 이 책이 말하는 지향점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 아니 역으로 현실정치에서 자신이 지향하는 곳을 이 책을 통해서 미래의 유권자들에게 설명하고 이해시키려 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을 것 같습니다. 첫머리의 인용문에서와 같이 현실의 때를 깨끗이 표백한 이상을 담은 멋진 문장으로 치장-물론 마음 속의 진심이 담긴 표현이기는 하겠지만 정치적으로는 심하게 왜곡되기가 쉬운 감성적인 표현이기에 하는 말입니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생각을 이리 대담하게 세상에 드러내어 놓고 평가를 기다린다는 점은 우리가 이전에 대하지 못했던 현실 정치인-김대중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의 모습인 듯 합니다.  

 정치를 '국가를 운영하거나 국가 운영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활동'으로, 진보정치를 '국가로 하여금 선을 행하게 하는 정치'로 규정하는 저자의 생각은 처음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현재 우리 정치세력의 판도 안에서 진보세력의 연합의 필요와 당위에 이르고 있습니다. 아마도 국가에 대한 고찰을 담은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독자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자신이 정치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이러한 진보연합이 담고 있는 의미를 전하고 그 당위와 필요에 대한 이해의 공감대를 넓히는 것이었을 듯 싶습니다. 그런 면을 들춰내서 생각한다면, 이 책이 독자에게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멋진 물음을 던지기는 했지만, 결국은 현실 정치인이 현 정치판도에서 진보 세력이 다시 집권할 수 있는 길에 대한  돌파구를 설파하는 방편으로 이용하고자 했다는 면에서 현실 정치의 연장선상에 있는 고상한(?)  정치 팜플릿의 한계를 벗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을 밀실이 아닌 열린 공간으로 들고 나와서 공론화시키려고 하였다는 점에서는 의미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겠고, 결국 저자의 주장에 얼마만큼 공감하는지, 또는 유권자로서 저자의 정치행보를 얼마나 지지하고 있는지가 이 책이 가지는 한계와 저자가 전달하고자 했던 진보연합에 대한 다양한 반응으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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