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상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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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토니오 선생, 여러 차례 여러번/ 당신께선 내 돈과 고리에 대하여/ 리알토 안에서 날 꾸짖었지요./ 그래도 난 그걸 묵묵히 떨치며 참았어요/..... /당신은 날 오신자, 무자비한 개라 하고/ 내 유대인 저고리에 가래침을 뱉었는데/ 그 모두가 내 것을 사용하는 대가였죠./ 근데 이젠 내 도움이 필요한 모양이오./ 아, 그래서 당신은 내게 와서 말하기를/ "샤일록, 돈이 좀 필요하오."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침을 내 수염에 쏟아 놨던 당신께서,/ 이 몸을 낯선 개 내차듯이 문지방 너머로/ 발길질한 당신께서 돈을 간청합니다./ 뭐라고 답할까요? 이런 말은 안 될까요?/ "개가 돈이 있나요? 개가 삼천 다카트를/ 꿔 주는 게 가능하단 말입니까?" 아니면/ 몸을 낮게 구부리고 노예 같은 어조로/ 숨소리를 죽이고 겸손하게 속삭이며/ 이렇게 말할까요?/ "선생께선 지난번 수요일 제게 침을 뱉었고/ 어느 날은 저를 발로 찼으며 또 한번은/ 개라고 부르셨죠. 그러한 예우의 대가로/ 이만큼 돈을 빌려 드립니다." 라고요? - 1막 3장 106-130행, 샤일록 

  자신의 수염에 침을 뱉고, 개처럼 내차던 사람이 돈을 빌려 달라고 나타난 장면에서 나오는 샤일록의 이 대사에는 그동안 안토니오와 그의 동료들-기독교인들-이 유대인이자 고리대금업자인 자신에게 저지른 만행(?)에 대한 고발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이 대사를 바로 맞받아치는 안토니오의 대사 -난 너를 다시 한 번 그렇게 부르겠다. 다시 한 번 침을 뱉고 차기도 하겠다. 이 돈을 빌려 줄 거라면 친구에게 빌려 주진 마라. 우정이 그 언제 친구에게 불모의 쇠를 주고 새끼 쳐서 받았더냐? 그보다는 차라리 적에게 빌려 줘라, 그가 만약 어기면 더 편한 얼굴로 벌금을 강제할 수 있을 테니-를 보면 샤일록의 말들이 과장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었음이 드러납니다. 그런 갈등의 배경 속에서 샤일록은 안토니오와 '정한 기한에 돈을 되갚지 못할 경우에 벌칙으로 안토니오의 살 일파운드를 도려내겠다'는 계약을 맺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의 눈으로 보면, 상대의 신체에 상해를 가하는 계약의 내용에 문제가 있으므로 이러한 계약 자체가 성립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상해를 가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계약 자체는 이 작품 전체를 통해서 정상적인 것으로 인정됩니다. 결국 안토니오는 배가 파선함으로 인해 계약을 이행하지 못하고, 샤일록은 복수심에 사로잡혀 어떠한 타협안도 거부하고 계약대로 하자고 주장하면서 이야기는 갈등을 향해 치달아 갑니다. 공작과 바사니오 등의 회유와 타협안에도 미동도 않는 샤일록의 굳은 마음은 법정에서 안토니오의 심장에서 가장 가까운 부위로 살 일파운드를 떼어내고자 하고, 안토니오도 체념한 듯 계약을 이행하려는 순간, -많은 사람들이 알듯이- 이야기의 반전은 그러한 계약 내용의 문자적인 헛점을 파고드는 포셔의 명철함 속에서 이루어 집니다. 잠깐만 멈추시오, 다른 게 있소이다 - 계약서는 당신에게 피 한 방울 주지 않소. 명시된 문구는 "살덩이 일 파운드"요. 그러니 계약대로 살덩이 일 파운드 가지시오. 하나 그걸 잘라 낼 때 기독교인 핏물을 한 방울만 흘려도 당신 땅과 재물은 베니스 국법에 의하여 베니스 정부로 몰수될 것이오. 언제 읽어도 이 장면에서의 극적 반전은 안토니오의 환호와 샤일록의 당혹감을 생생하게 느끼게 만듭니다. 법리적으로는 이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피를 흘리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기에 차가운 법의 심장으로 판단한다면 이 판결이 문제가 될 수도 있겠고, 상해를 가하고자 하는 계약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파기하는 것이 더 옳을 듯 하지만, 이 작품에 몰입해 있는 독자나 관객의 입장에서는 복수의 일념으로 굳어진 샤일록의 마음과 문자적으로 적시된 살덩이 일 파운드라는 문구의 견고함을 유연하게 헤집고 그 허점을 파고든 포셔의 판결문에 더욱 큰 공감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법리적으로는 명확하다고 할 수 없겠지만 분명 문학적으로는 유쾌한 반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작품에는 안토니오와 샤일록의 갈등과 포셔의 개입으로 인한 극적 반전이라는 줄거리 외에도, 안토니오와 바사니오의 우정, 포셔가 남편을 고르는 과정, 바사니오와 포셔의 결혼, 반지를 통한 사랑의 재확인, 샤일록의 딸 제시카와 로렌초와의 사랑 등과 같은 이야기들도 나름의 무게를 가지고 이 작품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용면에서는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포셔가 남편을 고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인종차별적인 대사, 안토니오와 바사니오의 동성애에 대한 의심, 앞에서 언급한 포셔가 재판에 개입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 여부와 판결 내용의 법리적인 타당성 등에 대한 논란이 있는 듯 합니다. 또한 작품 자체의 시대적 배경에 대한 논란으로 셰익스피어 시대에는 유대인이 적어도 법적으로는 영국에 존재할 수가 없었다는 주장과 함께 유대인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차별적인 시각을 반영한다는 주장도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작품의 주요한 주인공이 되는 샤일록이 자신과 자신의 동족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차별에 대해 정당하게 가질만한 분노를 안토니오와의 계약을 통해서 분출하고 법이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분노의 이면에 있을 복수를 위해서 살인마저도 개념치 않겠다는 냉철한 마음에는 결코 공감하거나 동의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안토니오와 그의 동료들을 편드는 감정이 가지는 불편함이 남아 있다는 사실도 지적하고 싶습니다. 분명 살인을 감수하고서라도 복수를 행하겠다는 샤일록의 자세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포샤의 판결 뒤에 더해지는 샤일록의 재산 몰수와 기독교로의 개종에 대한 판결과정, 그리고 판결전에 안토니오를 구하기 위해서 샤일록을 회유하는 바사니오 등의 감정섞인 비난 속에는 자신들이 샤일록을 향해 가했던 횡포(?)에 대한 사과나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고, 오히려 자기 입장의 정당성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또 다른 굳어진 마음의 일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남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금궤에는 다음 글이 적혔군요./ "선택하면 다수가 원하는 걸 얻으리라."/ 두 번째 은궤의 약속은 다음과 같군요./ "선택하면 너 자신의 가치만큼 얻으리라."/ 세 번째 둔한 납은 퉁명스레 경고하길/ "선택하면 다 내놓고 위험 감수해야 한다"/.... -p56, 2막 7장, 4-9행, 모로코 왕  

 ..... 그러므로 화려한 금이여,/ 미다스의 굳은 음식, 난 네게 뜻이 없고/ 인간들 사이의 창백한 천한 일꾼/ 네게도 뜻이 없다. 하나 너, 초라한 납이여,/ 무엇을 약속하기보다는 협박하는/ 창백한 네 모습은 웅변보다 더 감동적이다./ 난 이걸 선택한다. 기쁜 결과 있기를! -p77, 3막 2장, 101-107행, 바사니오 

 낚시밥 하지요. - 그게 아무짝에도 쓸모없어도 내 복수에 쓸모가 있을 거요. 그는 날 망신시켰고 내가 오십만 정도를 못 벌게 했으며, 내 손실을 비웃고 이득을 조롱했으며, 내 나라를 모욕하고 내 거래에 훼방을 놓았으며, 내 친구들은 냉담하게 적들은 흥분하게 만들었소. 이유가 뭐냐고요? 내가 유대인이란 겁니다. 유대인은 눈이 없어요? 유대인은 손도 기관도 신체도 감각도 감정도 정열도 없냐고요? 기독교인과 같은 음식 먹고 같은 무기로 상처를 입으며, 같은 병에 걸리고 같은 방법으로 치유되며, 여름과 겨울에도 같이 덥고 같이 춥지 않느냐고요? 당신들이 우리를 찌르면 피 안 나요? 간지럼을 태우면 안 웃어요? 독약을 먹이면 안 죽어요? 그런데 당신들이 우리에게 잘못하면 우리가 복수를 안 해요? 우리가  나머지 부분에서 당신들과 같다면 그 점도 닮을 거요. 유대인이 기독교인에게 잘못하면 그는 겸손하게 뭘 하지요? 복수하죠. 기독교인이 유대인에게 잘못하면 그는 기독교인을 본받아 인내하며 뭘 해야 하지요? 그야, 복수해야죠. 당신들이 가르쳐 준 비열한 짓을 난 실행할 겁니다. 그리고 어렵긴 하겠지만 교육받은 것보다 더 잘할 겁니다. -p69, 3막 1장, 52-73행, 샤일록 

 욕설로 계약서의 도장을 지울 수 없다면/ 큰소리 쳐 봤자 네 허파만 상하지./ 젊은이여, 불치의 파멸로 안 떨어지려거든/ 머리나 좀 고치게. 난 법을 기다리네. -p103, 4막 1장 140-143행, 샤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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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 청림출판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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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식에는 두 종류가 있지. 하나는 우리가 어떤 주제에 대해 직접 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관련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것이라네. - p213 

 월드 와이드 웹 (www) -인터넷- 이라는 수단을 통해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현대 정보통신사회의 모습에 대한 섬뜩한 경고를 담고 있는 고전으로 조지 오웰의 '1984'를 꼽는다면 조금은 우스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기술의 발전에 따른 인간 사회에 대한 위협은 그런 식의 시각이지 않을까 합니다. 주변환경이 변하고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근본적인 인간성 자체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감정을 지닌 인간의 이상적인 모습은 그대로 일 것이라는 환상(?)을 유지한 채, 문제가 되는 것은 기술의 발전에 따라 각 개인에게 외부에서 강요되는 억압이나 감시, 통제 등이 더 교묘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의식되지도 않은 채 실행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라는 식의 자세가 대중의 가장 일반적인 반응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 책이 지닌 시각은 신선할 뿐 아니라 우리가 타성적으로 생각하는 것 이상의 섬뜩한 경고음을 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사회시스템 안으로 융화되어 간다는 것은, 인간이 빅브라더에 의해 억압받고 통제받을 수 있는 수단이 늘어나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에 일차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정보전달 매체 또는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인터넷에 의해 인간 자체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하는 내용이 언뜻 동의하기가 어려운 주장일지도 모르지만, 미처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인터넷이 우리의 생활 패턴만이 아니라 사고방식과 삶의 태도까지도 인터넷에 적합한 모습으로 바꾸어가고 있음을 여러 과학적인 연구 사실들을 근거로 지적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저자는 우리에게 무엇이 문제인지를 깨닫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더 많은 정보에 빠져 사는 듯 하지만 실상은 표면만 훓고 마는 얕고 피상적인 지식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리는 현대인의 모습은 어떤 주제에 대해 직접 아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 주제에 관련된 정보를 어디에서 어떻게 찾으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한 시각은 인터넷 세상의 신기루에 취해 사는 호모 사피엔스의 현실 -우리의 현실-과 위기를 조금은 더 현실감 있게 느끼게 하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인터넷이 우리의 뇌구조를 바꾸고 있다'는 주장을 인간 뇌의 가소성에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뇌는 나이가 들면서 굳어져 정해진 경로를 따라 기계처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나이와 관계없이 주어진 환경과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끊임없이 그에 적절한 뉴런간의 연결을 강화하기도 하고, 자극이 감소하는 부분은 연결을 감소시키는 등의 유기적인 변화를 지속하며 주변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계의 발견에 의한 시간 개념의 변화, 지도의 발전에 따른 공간 개념의 변화, 문자의 발견과 인쇄술의 발전에 따른 사고방식의 변화 등의 예를 통해서 기술의 발전이 혁명적 사고방식을 이끌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젖힌 사실을 주목하게 합니다. 우리에 대한 영향력을 논하라고 한다면 그러한 기술에 결코 뒤지지 않을 인터넷도 그 기술의 특성상, 이용하는 사람들이 그 특성에 효율적으로 적응해야 하고, 그러한 과정은 뇌가 그 시스템에 적합한 형식으로 사고하고 반응하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 됩니다. 혹자는 인터넷은 다만 사용하는 사람의 의지에 종속된 일개 기술이며 수단일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인터넷을 통해서 소통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시스템에 묶이게 되면, 결국 사람들은 인터넷이 추구하는 논리에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일례로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검색은 우리가 책을 읽으면서 정독하고 깊이 생각하고 여백을 이용한 정리의 과정을 통해 내면화하는 선형적인 정보 습득 과정과 달리 끊임없이 링크와 하이퍼텍스트, 광고와 다른 정보들의 유혹(?)을 물리치거나 거치는 과정을 통하게 되고, 그러한 과정은 집중력의 약화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정보를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로 흘러가게 되어 많은 양의 정보를 접할 수 있게는 하지만, 깊이있고 창의성이 넘치는 통합으로 이어지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현대인이 열광하는 인터넷은 결국 많은 회사들이 자신의 업무를 아웃소싱하는 식으로 회사의 효율성을 높였듯이, 사람들이 머릿속에 저장하고 기억하면서 응용해야 할 지식을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아웃소싱하게 만들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많은 정보들을 접하지만 그냥 훓어보고 링크와 하이퍼텍스트를 따라 가며 인터넷이 인도하는 대로 아무 생각없이 흘러다닌 결과는 깊이 사색되지 않은 얕고 가벼운 지식들, 그리고 그 지식들마저 뇌의 공간에 기억해서 되새김질하는 것이 아닌 기억의 공간마저 인터넷에 아웃소싱해 버리는 모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한 인터넷 정보사회가 가져온 놀라운 모습이라는 것은 우리의 가장 인간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기억과 사고, 열정과 통찰 등의 모습을 잃고 링크와 링크 사이를 떠도는데 익숙해진 화석화된 뇌를 지닌 '생각하지 않는사람'으로 진화한 호모 사피엔스의 모습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가 인터넷을 보편적으로 사용하면서 우리 사고 속에서 일어나는 풍부한 연관 짓기를 희생하는 위협을 감수하고 있는 것이다. 웹을 그 자체가 네트워크인 것은 사실이지만 온라인 정보의 비트들을 관련지어주는 하이퍼링크들은 우리 뇌의 시냅스와 같지 않다. 웹의 링크는 주소에 불과하고 브라우저를 다른 별도의 정보 페이지로 안내해주는 단순한 소프트웨어 태그일 뿐이다. 이들은 우리의 시냅스와 같은 유기적인 풍부함이나 민감성을 가지지 못했다. 이리 슐만은 뇌의 연결은 "단순히 기억에 대한 접근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은 대부분의 경우 기억을 구성한다"고 적었다. 웹이 만들어낸 연결들은 우리 것이 아니며, 우리가 아무리 많은 시간을 검색과 서핑에 쏟는다 해도 결코 웹의 연결이 우리의 것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기계에 기억을 아웃소싱할 때 우리는 지성이나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 역시 아웃소싱하는 것이다. 윌리엄 제임스는 1892년 기억에 대한 강의를 끝맺으며 "연결은 진정 사고다"라고 했다. 여기에 한마디 더 덧붙인다면 "연결은 진정 자아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p2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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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코믹스 - 버트런드 러셀의 삶을 통해 보는 수학의 원리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 크리스토스 H. 파파디미트리우 지음, 전대호 옮김, 알레코스 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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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 모두 수학을 경험해 보았을 겁니다. 수학이 싫은 사람은 수학을 고역으로 여길 테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마 게임쯤으로 생각하겠죠. 일리있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수학에는 또 다른 면이 있어서 그걸 느끼려면 무한을 생각해야 하죠. 어느 위대한 인물은 무한이 인류의 정신에 가장 큰 영감을 준 관념이라고 했어요. 맞는 말이에요. 무한은 인류의 정신을 가장 강하게 압박해온 관념, 인간의 정신력을 절대 한계까지 몰아붙여온 관념이라는 점! 또 무한은 수학의 내면이 허약하다는 사실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 개념이기도 하죠. -p134, 러셀의 강연 장면 중에서  

 수학적으로 '무한'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한대를 나타내는 부호 -  -와 함께 뒤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끝없음으로 표현되는 '더 큰 무한' -예를 들면 자연수의 경우 한없이 커지면서 끝없이 이어지는 상태-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알고는 있지만 미처 의식으로 또렷하게 떠올리지 못했던 또 다른 개념의 무한이 있음을 이 책을 보면서 문득 깨닫게 됩니다. 자연수 3과 4사이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지만 실수 3과 4사이에는 역시 무한이 존재한다는 사실, 즉 '더 작은 무한'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 별 것이 아닌 자각이지만, 여태껏 무한의 개념을 대하면서 앞의 개념만을 생각하던 내 자신이 다시 한 번 깨이는 즐거움을 느끼게 됩니다. 아마도 지금까지의 수학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많은 인물들의 시작도 바로 이러한 깨임의 즐거움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들은 이러한 단순한 즐거움에 머물지 않고 희열을 넘어 광기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을 몰고 가고는 하였던 듯 하니, 위대한 성취의 이면에는 평범한 이들이 느끼는 첫자락의 작은 쾌락 이상의 무엇인가가 숨어있다고 하는 것이 진실일 것입니다.  

 만화로 표현된 수학 이야기, 수학의 토대 또는 논리에 대한 이야기. 엄격하게 말하면 이 책은 수학의 역사 -특히 논리적인 토대의 역사-에 대한 책이지, 수학 자체에 대한 책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가끔씩 수학의 본 얼굴이 잠깐씩 보이기는 하지만, 주된 내용은 수학의 확고한 논리적인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수학자들의 투쟁(?)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주의할 점은 현실적인 개연성을 토대로 하기는 했지만, 수학의 역사에서 있었던 사실 자체를 그대로 나타낸 이야기들이 아니라 작가들에 의해서 '수학의 토대를 찾아서'라는 주제에 맞게 어느 정도 각색되어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점을 새기고, 책 속으로의 여행을 떠난다면 이 책을 통해서 정말로 흥미로운 개념들과 인물들을 만나는 즐거운 시간을 마음껏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수학의 토대에 대한 치열한 공방, 무한, 자기언급, 실재와 지도의 관계, 러셀의 역설과 수학적 직관주의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대하기 어려웠던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을 대할 수가 있고, 또 한편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 라이프니츠, 칸토어, 프리게, 러셀, 비트겐슈타인, 힐베르트, 괴델, 푸앙카레, 폰 노이만, 그리고 튜링 등 수학의 역사만이 아니라 인류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 만났던 이들을 수학이라는 창을 통해서 대하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이야기의 전개를 통해서 어려운 공식과 반복되는 계산으로 일그러진 수학이 아닌, 삶의 일부로서 살아 숨쉬는 수학이라는 학문 자체에 대한 이해의 폭을 더 넓힐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있을 것 같습니다. 

 형식적인 면에서, 러셀의 어느 대학 강연 모습과 수학의 토대를 찾기 위해 일생을 불사른 사람들의 이야기, 저자들이 이 책을 구상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서로 얽혀서 진행되는 이 책의 다층적인 구조는 이야기의 흥미로운 진행을 떠나 저자들이 숨겨놓은 나름의 의도가 있을 듯 한데, 옮긴이는 이를 '자기언급'의 개념을 들어 슬쩍 언급하고 넘어 갑니다. 러셀의 역설이나 에우불리데스의 거짓말쟁이 역설의 핵심이 '자기언급'에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저자들이 책을 만드는 과정을 스스로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자기언급'의 형식에는 결국 자신들의 원대한 계획이 러셀과 화이트헤드가 '수학의 원리'라는 책의 집필을 통해 수학의 근본적인 토대에 도달하고자 했지만 이루지 못했던 사실처럼, 시작만 한 채 마무리하지 못하였음을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서 마무리 될 수도 없음을 은연 중에 내비추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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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 음악- 수학 최고의 신비를 찾아
마르쿠스 듀 소토이 지음, 고중숙 옮김 / 승산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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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확실성
모리스 클라인 지음, 심재관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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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의 미학- 통계는 세상을 움직이는 과학이다
최제호 지음 / 동아시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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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만 가설- 베른하르트 리만과 소수의 비밀
존 더비셔 지음, 박병철 옮김 / 승산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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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다 - 박홍규의 셰익스피어 다시 읽기
박홍규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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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대단한 고급 교양물'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다. 문제는 그렇게'만' 취급하는 점에 있다. 적어도 셰익스피어 당시에는 그 작품이 대중물이었고, 지금도 영미권에서는 수많은 영화로 만들어지는 대중물인데,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대중물과 고급물의 차이란 사실 종이 한 장 차이임을 주의해야 한다. 말하자면 대중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고급이 아니라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 여하튼 셰익스피어가 고급이냐 아니냐는 나의 관심거리가 아니다. 나의 관심은 그의 작품이 대영제국이 시작되는 시기에 씌어졌고, 따라서 당연히 그 제국주의를 표상하는 것이므로 그런 관점에서 셰익스피어를 재검토하자는 것이다. -p31 

 삐딱하게 읽는다는 말에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긴 것이 사실이지만, 이 책은 아주 대놓고 셰익스피어와 그의 작품을 몰아붙이는 면이 있어서,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셰익스피어에 대해, 또는 영문학이나 문학에 대한 전공자가 아닌 일반적인 독자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자지 못한 사람인지라 저자가 펴는 논지를 무조건 동의만 할 수도, 그렇다고 딱히 정색을 하며 반박할 능력도 없는 묘한 처지를 느끼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셰익스피어 읽기를 삐딱하게 읽었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나 자신은 저자보다는 주류의 입장에 더 동화된 한 사람일 것 같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1564년에서 1616년의 영국은 엘리자베스 1세와 그 뒤를 이은 제임스 1세가 다스렸던 시기입니다. 통상적으로 '엘리자베스의 시대' 일컫는 시기로, 정치적으로는 봉건주의 국가에서 절대주의 국가로의 이행 시기였고, 국가적으로는 대영제국이 기반을 잡아가면서 제국주의 시대로 접어드는 즈음이었습니다. 저자는 셰익스피어를 바로 이러한 역사적, 정치적 배경하에서 그러한 체제에 순응하며 시대를 읽을 줄 알았던 유능한 대중작가이자 귀족들과 왕실의 비호를 받으면서 자신의 영역을 확보한 어용작가였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평가는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위대한 문호라든가, 대단한 문학 작품을 써냈지만 일생의 많은 부분이 감춰진 미스터리한 작가가 아니라 그 시대의 정신에 맞게 처신하며 대중들과 권력자들의 취향을 고려(?)하여 작품을 썼던 출세주의자이자 기회주의자였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물론 저자가 당시 시대 상황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을 셰익스피어의 삶 자체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셰익스피어 작품에 담긴 위대함 자체를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밝히고 의견을 나누었던 위대한 셰익스피어 이면에 숨겨진 제국주의 시대를 살다간 제국주의자이자 보수주의자였던 셰익스피어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이고, 그런 관점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속에 담긴 제국주의적인 성향을 풀어놓은 것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라고 하겠습니다. 저자가 제국주의라는 관점에서 분석한 작품들은 '리처드 2세'를 비롯한 사극, '베니스의 상인'과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 '오델로', '리어왕', '맥베드',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그리고 '태풍'입니다. 

 제국주의자 셰익스피어. 또는 출세주의자, 기회주의자, 어용작가 등의 표현이 나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귀에 익숙한 표현도, 썩 듣기 좋은 의미도 아닐 뿐더러, 한편으로는 너무 과격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저자 자신이 부분을 너무 침소 봉대한다는 생각도 들 수 있겠고, 자신이 설정한 틀안에서만 셰익스피어를 파악하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다고만 하는 것에 대해서 이리 조금을 삐딱한 시선을 작정하고 들이대서 읽어보는 것도 셰익스피어의 진정한 모습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 우리가 대하는 위대한 셰익스피어는 400여년 전에 실존했던 극작가 셰익스피어가 아닌, 이런 저런 연구와 토론과 각색을 통해서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셰익스피어임을 인정한다면, 저자와 같은 독자적인 셰익스피어 독법도 결국은 '그의 위대함을 손상하기보다는 그의 위대함을 더 공고하게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여하튼 이 책의 '셰익스피어는 제국자의자'라는 논점에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음을 떠나, 대부분의 사람이 '위대하다'고 치켜세우기에 바쁜 셰익스피어와 그의 작품을 독자적인 관점에서 읽어내려고 한 저자의 노력에는 큰 박수를 보내도 아깝지 않을 것 같습니다.   

 모든 인물들은 자기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셰익스피어 투의 가식이 많고 부자연스러운 언어로 말하고 있다..... 대사의 처음부터 과장이 엿보인다..... 저자는 그가 묘사하고 있는 사건을 만들어 냈을 뿐만 아니라 그의 극중 인물에 대해 무관심하기까지 하다. 그는 무대만을 의식하여 극중인물을 만들어냈고, 극중인물들에게 관중의 관심을 끌 말만 시키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건이나 인물의 행동 또는 고통을 믿지 않는다. - p23, 톨스토이의 <셰익스피어와 드라마> 중에서 

 그의 많은 희곡은 동화에서 볼 수 있을 만큼의 신뢰성도 없다. 생계의 수단을 제외한 어떤 경우에도 그가 자기 희곡을 진지하게 간주했다는 증거는 없다..... 셰익스피어의 연극 작품이 기술적으로 완벽하고 미묘한 심리적 관찰로 가득 차 있으며, 일관성 있는 철학에 심오한 사상가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p24, 오웰의 <코끼리를 쏘다> 중에서 

 내가 상상하는 셰익스피어는 시골의 중산 평민계층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가난으로 인해 대학교육도 못 받고 지내다 18세라는 나이로 당시 신분 상승 방법의 하나인 돈 많은 집에 장가를 들었다가, 연기와 글쓰기에 재주가 있어 그것으로 열심히 노력해 출세한 젊은이, 그리고 당대 지배계급인 귀족들에게 잘 보여 당대 최고 인기 작가에까지 올랐다가 만년에 낙향하다 살다가 죽은 사람이다. / 말하자면 그는 지금도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은 출세주의자이자 기회주의자였다..... / ..... 나는 그의 예술이 지금까지도 수많은 해석을 낳은 이유의 근본은 그의 기회주의가 낳은 애매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즉 피비린내 나는 경쟁사회에서 그는 인기를 끌기 위해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작품을 써야 했다. 그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의 작가라는 점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는 언제나 진보적인 목소리도 그의 희곡에 담아냈다. 그것도 아주 적당하게 말이다. / 그런데 그의 보수주의의 본질이 제국주의인 점은 모두가 제국주의자였던 당시는 물론, 지금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 점이 밝혀져야 한다..... - p4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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