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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꿀벌의 세계 - 초개체 생태학
위르겐 타우츠 지음, 헬가 R. 하일만 사진, 최재천 감수, 유영미 옮김 / 이치사이언스 / 2009년 5월
평점 :
세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번식을 한 개체군으로 개미들을 꼽는 텔리비젼 프로그램을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인간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고는 하지만, 무서운 번식력으로 세상의 곳곳에 뿌리를 내린 개미들은 어떤 면에서는 사람들보다 세상의 더 많은 부분을 지배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고, 그러한 개미들의 성공을 집단을 이루어 사회생활을 하는 개미들의 특성에서 찾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개미들과 더불어 우리에게 집단생활의 경이로움을 보여주는 개체군으로 꿀벌들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하나의 개체로서의 존재는 보잘것 없어 보이지만 그들이 군락을 이루어 한 사회를 건설하고 유기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그 사회를 유지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이는 집단지능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초개체라는 개념으로 그러한 집단들의 특징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꿀벌이나 개미는 각각 별개의 생명을 지닌 개체이지만, 하나의 집단을 통틀어 보았을때는 언제나 그 집단 군락 전체가 하나의 개체처럼 행동한다는 개념입니다. 실제로 개미나 꿀벌의 사회생활을 살펴보면 전체 군락으로서의 집단이 각각의 개체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을 훨씬 더 복잡하고 경이로운 성취를 이루어내고 있음을 알수 있고, 아마도 그러한 성공적인 초개체로서의 발전 -또는 진화-이 지금이 개미나 꿀벌 왕국을 이룰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이러한 꿀벌의 초개체로서의 특징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기술하고 있을 뿐 아니라, 더 획기적으로 꿀벌군락을 척추동물을 뛰어넘어 포유동물의 특성까지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생각한다면 포유동물과 꿀벌집단을 연결시킬 수 없지만, 저자는 세밀한 관찰과 연구 결과들을 통해 서로 비슷한 점을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습니다. 먼저, 포유동물의 번식률이 극단적으로 낮듯이, 꿀벌집단의 번식률도 매우 낮다는 점, 포유동물의 암컷이 자손을 양육하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젖을 분비하듯이, 암컷인 일벌도 로열젤리(왕유)를 분비한다는 점, 포유동물이 자궁이라는 기관을 통해서 자손에게 최적의 양육환경을 제공하듯이 꿀벌도 벌집이라는 사회적 자궁을 통해서 유충을 안전하게 양육한다는 점, 포유동물의 체온이 섭씨36도이듯이 꿀벌 유충의 체온은 섭씨35도로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점, 그리고 포유동물이 큰 두뇌로 척추동물 중 가장 뛰어난 학습능력과 인지능력을 지니게 된 것처럼 꿀벌의 학습능력과 인지능력이 단순한 척추동물을 뛰어 넘는 정도라는 점 등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표면적 유사점보다 더 중요한 점으로, 환경에 최적으로 적응하기 위해 '어떻게 기능 하는지' 에 대한 공통적인 특성을 들고 있는데, 능동적인 비축경제 활동과 안전한 생활 공간의 조성 및 환경을 능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서 변덕스러운 주변 환경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생활하고 자손을 번식하고 세대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포유동물로 간주될 만한 꿀벌집단에 대한 경이로움이나 초개체로서의 특징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이 책이 보여주는 꿀벌들의 삶 자체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들은 읽는 이로 수많은 호기심을 자아내게 합니다. 개개 꿀벌의 진화를 통한 여왕벌을 중심으로 한 초개체로서 탄생과정, 꽃과 꿀벌간의 공존을 위한 생존전략과 상호작용, 꿀벌 상호간의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춤)와 꽃을 찾아나서는 꿀벌의 시각과 후각의 역할 및 학습능력, 짝짓기와 새로운 개체-일벌, 수벌, 여왕벌-의 탄생과 분봉과정, 벌집의 구조가 담고 있는 다양한 기능적인 의미, 분업화된 다양한 꿀벌들의 직업과 나이에 따른 직업의 변화 및 유연성, 유충의 부화를 위해 정밀하게 유충방이 난방되고 온도에 따른 양육환경의 차이에 의해 나타나는 꿀벌들의 수명이나 학습능력의 차이, 꿀벌이 서로 협동하는 이유에 대한 유전학적인 고찰, 그리고 질병이나 온도변화, 저장꿀의 많고 적음 등 여러 변화에 꿀벌집단이 대응하는 방식 등에 대한 이야기들은 개개의 꿀벌을 넘어서 훨씬 복잡하고 유기적으로 유지되는 꿀벌집단의 삶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가지게 합니다.
초개체로서의 꿀벌집단에 대한 이해는 개인적으로는 무척이나 흥미로왔고, 또한 주변을 살피는 시야를 많이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개개의 꿀벌이 모여서 이룬 집단이 하나의 생명체처럼 유기적으로 작용하며 살아가는 모습에서 우리 개개인이 한 생명체로서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생물학적인 과정을 거치는 모습을 새로운 시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 그리고 그 너머의 우리 주변의 환경들도 결국은 하나의 유기체처럼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나름대로의 균형과 조화을 통해 하나의 지구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개념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새로운 이해도 생겼으니 말입니다..... 꿀벌세계에 대한 여행만으로도 즐거웠던 시간이었고, 그에 덤으로 세상을 좀더 넓게 보고 생각할 만한 지혜 한조각도 얻을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