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숲에서 고전을 만나다>를 리뷰해주세요.
지혜의 숲에서 고전을 만나다
모리야 히로시 지음, 지세현 옮김 / 시아출판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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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서오경, 노자, 장자, 채근담, 소학 등..... 우리 문화권의 한 축을 지탱하고 있는 고전들에 대한 우리의 시각은 우리를 지혜롭고 인간답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보물창고라는 생각보다는 먼지가 쌓인 구석에 처박힌 고리타분한 것이라는 면에 먼저 손을 들어주지 않을까 합니다. 시대에 맞게 번역하고 해설된 책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한자라는 벽이 존재하고, 그러한 벽앞에서 느끼는 낯섬과 난해함에 대한 기억이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뇌리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결과이겠지요. 물론 요즈음에는 초등학생들에게 한자교육에 대한 바람이 만만치 않기는 하지만, 그것 또한 어디까지나 이러한 고전들에 대한 관심과 그 가치의 깨달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것만큼을 확실하니, 그러한 시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견고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한 편견에도 불구하고, 반복되어서 그러한 고전에 대한 가치를 일깨우는 책들이 우리 주변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 분명 그 안에는 우리가 사장시킬 수 없는 귀한 지혜와 삶의 지표들이 숨겨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는지..... 

 이 책에서 저자는 고전속에 담긴 문장들을 철저하게 현대의 조직과 사회생활에서의 필요와 유용성에 의해서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물론 현재의 상황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고전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전의 지혜를 통해서 현재의 난관이나 어려움을 헤쳐나가기 위한 조언과 어리석음에 대한 일깨움을 담고 있습니다. 인간관계의 지혜에서 시작하여 사람을 쓸 때, 소박한 일상에서, 여러 상황에 대한 현명한 대처를 위해, 인생을 값지게 살아내기 위해, 또한 세상살이에서 필요한 지혜들에 관한 고전의 가르침에 이르기까지 뒤로 몇발짝 물러서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듯하지만, 바쁘고 요란한 삶속 어디에선가 이미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지혜에 대해서 고전의 가르침을 통해서 일깨우고 있습니다. 고전 자체의 내용 그대로 보다는 그러한 가르침이 현재의 우리의 삶속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보다 현실적인 시각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처음에는 책장을 넘기며 뭔가 빠져 있다는 생각을 하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저자는 일본인인데, 이 분야에서만큼은 아직 우리 학자들이 더 앞설 것이라는 교만함이 앞섰을 수도 있겠고, 고전을 너무 현대적인 삶의 부분에 적용하여 이리저리 해석해 나가는 모양새가 조금은 가볍게 느껴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책의 많은 설명부분에는 리더나 조직, 지도자나 경영 등에 대한 용어가 등장하고, 그러한 말들이 고전의 순수성을 이용하는 것이라는 편견을 느끼게 만드는 구석도 있었던 듯 합니다. 하지만 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그의 글 속에 담긴 하나하나에서 내 삶에서 무시하며 살았던 또는 잃어 버렸던 지혜로운 삶에 대한 조언들이 보물처럼 묻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아마 저자가 노력한 면도 있겠지만, 본디 우리의 삶의 한축을 안보이게 구축하고 있었던 삶의 지표와 가치들이 고전을 통해서 훤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방대한 고전들 속에서 지혜들을 담아 올린 저자의 노고도 생각해야 할 듯 하고, 무엇보다도 내게는 미루어 두었던 고전들에 대한 거둬들인 눈길을 다시금 그것들로 향하게 만들어 준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시간이 더 기대가 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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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세상사, 인간사의 기본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 준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는 새내기들.....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직장인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하늘의 이치는 다하면 돌아오고, 차면 줄어든다 (p3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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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철학, 소소한 일상에게 말을 걸다>를 리뷰해주세요.
유쾌한 철학, 소소한 일상에게 말을 걸다 - 일상에서 찾는 28가지 개념철학
황상윤 지음 / 지성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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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대답이 'Philosophy'라는 어원에 바탕을 둔 '지혜에의 사랑'이라는 표현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내 그러한 답이 쑥쓰러워지는 이유는 너무도 도식적인 대답이라는, 그리고 그것으로는 철학에 대한 어떤 실질적인 것도 제시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육과정에서 많은 철학에 대한, 또는 철학을 설명하는 책들을 대하지만 이에 대한 적절한 대답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 자체가 우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가 말하듯이 '모른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고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것이 철학이 무엇인지 설명하는데 더 그럴 듯한 철학적인 자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철학의 다양한 모습과 철학이 삶에 적용되는 형태들을 이야기할 수 있기는 하겠지만, 역시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완벽한 설명을 찾는 것은 무모해 보일 뿐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책도 철학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책이니만큼, 그 처음의 시작은 '철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철학 자체에 대한 탐구와 다양한 철학적 주제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이 책의 처음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경험론과 합리론을 통한 세상과 사물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와 참과 거짓 등에 대한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3부에서는 인간이 인간이 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유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고, 4부에서는 도덕과 윤리, 5부는 역사와 유물론, 6부는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습니다. 즉 실제 생활에서 우리가 접하는 정치와 역사와 도덕에 대한 것들을 철학의 눈으로 더듬어 보는 과정인데, 무심코 넘기던 사실들에 대한 질문을 하게 만들고 또한 그것들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책의 제목에서처럼 소소한 일상에서 유쾌한 철학적인 삶을 건져올릴 수가 있을까?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주제들은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사실들이지만, 역시나 읽는 이로서는, 그러한 주제를 철학을 빌려 논하는 것은, 땅에 발붙이고 아웅다웅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철학적인 소양이나 교육의 문제로 돌릴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삶속에서 사람들이 부딪히며 현실적으로 느끼는 것들과는 저만큼 떨어진 곳에서 주절거리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기 때문입니다. 비록 구름위에 올라타서 흥얼거리는 정도는 아니지만, 소소한 일상을 굳이 철학적인 사고의 틀로 해석하려는 모양새가 그러한 일상을 더 복잡스럽게 만든 것은 아닌지.... 물론 이 모든 것을 소양의 탓으로 돌릴 수가 있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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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철학이라는 골치아픈 학문을 조금 더 일상에서 다가설 수 있는 녀석이라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진지함을 원하는 사람... 그 중에서도 진지한 질문, 다른 방식의 질문을 원하고 그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모든 질문에는 정답이 있고, 그 정답만큼의 진실이 있다. 그러나 모든 질문이 동일한 진실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질문에 따라 정답이 달라지고 드러나는 진실의 범위도 달라진다. 따라서 철학은 질문의 내용을 중요시한다.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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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불제 민주주의>를 리뷰해주세요.
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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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법 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항) 대한민국의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고등학교 어디쯤에선가 배우고는 영원히 기억속에 잠겨있을 헌법조문을 들고서, 전 국회의원에 보건복지부 장관, 그리고 인기있는 저술가였던 이가 지식 소매상이란 명함을 새긴 채 돌아왔습니다. 많은 이들이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현재는 모든것이 그 헌법이 말하는 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을 것 같은 2009년 대한민국 한복판으로, '현재의 대한민국은 정말 민주공화국인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들이대며 나타났습니다. 그가 참여했던  참여정부가 힘없이 무너지고, 헌법이 정한 절차에 의해서 뽑힌 새 대통령이 집권 2년차에 접어든 이때에, 난데 없이 우리의 헌법과 민주주의는 아직 값을 치루지 않은 후불제라고 주장하며 말입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는 과거의 그의 모습과 그가 참여했던 정부에 대한 애증과는 별개로, 지금 우리사회가 처한 모습을 보며 미처 생각치 못했던 부분, 여유를 가지고 고려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깨우침을 주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의 고백처럼 전문가가 아닌 다른 사람의 지식을 모아 다시 꾸리는 지식 소매상의 솜씨라고는 하지만, 그래서 그가 하는 이야기에 대단한 독창성이 담긴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지만, 또한 이 책에서 말하는 내용들의 많은 부분이 그동안 그가 겪었던 여러가지 일들에 대한 경험이자 자신의 가치관의 표현이라고 해야 할 것들이지만, 그 틈새로 번뜩이는 그의 생각들은 경제위기의 파고속에 생각을 놓고 살아가는 나같은 이들에게는 분명 많은 깨우침을 주는 것들이라고 고백하게 만듭니다. 

 유시민..... 내게는 이 이름은 정치인으로서의 한 사람, 그리고 그 중에서도 김영춘 의원이 말했던 것처럼 '바른 말을 싸가지 없이 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아마도 참여정부의 지리멸렬(?)과 함께, 노대통령과 함께 그러한 이미지의 희생양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속내를 들여다보면서 그런 오해의 조각중의 많은 부분은 떼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어찌보면 참여정부 내내 국민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을 생각하면, 하찮은 범부지만 이 책을 통해서 그는 나와 긍정적인 소통의 길을 하나 닦은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헌법의 당위'와 '권력의 실재'라는 단원으로 나눠진 책은, 전반부에는 우리 헌법이 말하는 기본권들을 통해서, 우리가 지향하고 실현해야 할 가치와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헌법에 의해 실행되는 대의민주주의가 권력을 위임받은 정부와 국회를 통해서 실제로 어떻게 작동되고 운영되는지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관찰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헌법이 말하는 당위와 권력의 실재 사이의 간극을 밝히고, 그 차이의 원인과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을 담고 있습니다.  

 후불제 민주주의. 저자는 우리사회의 현재까지의 모습과 헌법이 말하는 당위사이의 간극을 크게는 후불제 민주주의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각 사회 구성원이 충분한 민주적 역량을 갖춘 상태에서 헌법이 시작된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혁명이나 희생없이 선진 민주국가의 헌법을 단순히 모방하여 선언적으로 작성한 것이기에, 헌법이 말하는 내용을 아직까지 우리사회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며, 이것은 또한 헌법이 당위로 내세우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수많은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는 시행착오, 또는 희생이나 투쟁 등이 뒤따라야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동안 제헌헌법이 제정된 뒤의 4.19, 5.16, 5.18, 6.10 등의 사건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미리 지불하지 않았던 민주주의의 확립을 위한 후불의 과정이었고, 아직도 그러한 과정은 지속되고 있다고 판단하는데, 특히 현정부의 여러 정책들이 헌법에 역행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이유들에 대해서 찬찬히 살피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이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일종의 '후불제 헌법'이었고, 그 헌법속에 규정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도 일종의 '후불제 민주주의'라는 저자의 발상은 많은 면에서 깊이 공감을 하게 만드는 개념입니다. 법체계는 이미 민주주의를 이루었지만, 분명 저자가 말하는 대로 우리 사회 구성원 각각은 그러한 체계에 적합한 옷을 아직 제대로 갖추어 입지 못했다는 그의 생각에 동의할 수 밖에 없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그러한 기발한 용어를 소개했다는 자체보다는, 현재 우리사회가 처한 현실을 많은 이들이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수 있게 한 것만으로도, 우리가 우리 헌법과 민주주의에 아직 치루지 못한 값의 많은 부분 중 적지않은 부분을 덜어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은 정말로 헌법이 말하는 민주공화국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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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헌법을 통해서 우리 사회의 현재 모습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진지한 사색을 담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정치적 행적에 대한 변명들이 함께 담긴 점도 눈에 띈다. 물론 그런 변명이 저자를 오해하고 있었던 부분들에 대한 넉넉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는 측면도 있지만.....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대한민국 국민 모두, 특히 국가로부터 추방당하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 그리고 그들 중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에게 투표했으나 지금쯤 후회하고 있을 이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프롤로그의 '후불제 민주주의'에 대한 설명부분 (p21-5), 마르틴 니묄러의 시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잡아갔을 때......' (p3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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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를 리뷰해주세요.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 2008 촛불의 기록
한홍구 지음, 박재동 그림, 김현진 외 글, 한겨레 사진부 사진, 참여사회연구소 외 / 한겨레출판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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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현정부의 시작과 함께 많은 기대도 함께 부풀어 올랐어야 할 2008년의 시작은, 현정부가 정권인수위 시절부터 온갖 혼란스런 정책들을 내뱉고 불협화음을 연출한 탓에 기대보다는 '또 다시 5년을 견뎌야 하나!'라는 염려와 체념의 싹이 자라기 시작한 시기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자라는 또 다른 싹이 있었으니..... 그런 염려와 체념과는 다른 학생들로부터 시작된 촛불이었습니다. 학교 자율화 조치와 미국 쇠고기 수입 협상타결에 대한 반응으로 처음 촛불을 든 여중고생들의 행동은 아마도 염려와 체념속으로 가라앉아가던 평범한 이들의 마음속에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일깨워준 계기가 된 듯 거침없이 사람들을 거리로 모아들였습니다. 거리에는 어둠을 밝히는 촛불이 켜지고, 사람들은 염려와 체념이 아니라 그동안 자신들이 가슴속에 쌓았던 생각과 말들을 뱉어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정부와 대통령을 향해 그들이 외친 말들이 참의미는 바로 '내가, 우리가 이 나라의 주인이다'라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이었고, 또한 '우리를 인정해 주고, 우리 말에 귀를 기울여 달라'는 너무도 당연한 요구였습니다. 물론 주권자로서의 촛불시위자들의 말은 번번히 외면당했고, 충돌했고, 낙인이 찍혔지만, 열린 광장에서 서로 꿋꿋이 연대하며 진화하여 우리 현대사에 또 다른 의미있는 메시지를 남겼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는 촛불이 밝혀진지 1년여가 돼가는 길목에서 이 책은 2008년의 촛불에 대한 의미있고 좋은 기억들을 문자로 옮긴 기록이고, 또한 그 안에 담긴 의미와 메시지를 찾아서 정리하고자 한 노력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방관자..... 난 여러 의미에서 2008년의 촛불에 대한 방관자였던 듯 합니다. 지리적으로, 시기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인 위치와 생각의 차이 등으로 인해 멀리서 바라만 보던 촛불의 방관자였습니다. 그러한 방관자의 위치에 있다는 것은 촛불시위 안에서 이루어지던 여러 의미있는 생생한 사건과 이야기들보다는 기존 언론매체에 의해 전해지는 각색된 기사들에 의존해야 한다는 말이고, 그만큼 한쪽으로 편향된 판단을 할 개연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인터넷이 있다고는 하지만, 반듯하게 정리된 신문기사나 방송뉴스가 더 그럴 듯하게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었고, 그 말에 더 귀를 기울인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광우병에 대해서는 촛불집회자들의 경우 광우병에 대한 실상의 확인을 뒤로 한채 너무 과민하게 반응한다는 보수 언론과 정부의 주장을 더 신뢰하는 편이었고, 신문과 뉴스에 나오는 폭력시위 장면에 염려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뒤에 편집과 조작이라는 속임수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PD 수첩이 주저앉는 소와 한 여자를 광우병 환자라고 단정적으로 보도한 사실들의 교묘한 왜곡을 지적하는 의견들을 보면서 그런 부정적인 방관자의 위치는 더 강화되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한데, 이 책의 촛불집회 진행과정에 담겨있던 생생한 이야기들은 내가 일방적으로 생각했던 것들을 또 다른 각도에서, 또 다른 의미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촛불의 시작과 진행이 단순한 학교 자율화 반대나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라는 구호에 머물러 있는 현상이 아닌, 자신의 정당한 주권을 주장하는 시민사회와 권력을 틀어쥐고 질주본능을 과시하려고 하던 현정부와의 대결, 정책과 비젼과 가치관의 대결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해야 하는 면이 있고, 그렇다면 내겐 전혀 다른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는 생각 같은 것 말입니다. 물론 아직도 촛불집회에 대한 평가와 의미, 성취와 실패에 대한 것들은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진행형이고, 그 안에서 우리사회의 다양한 가능성과 한계를 찾고자 노력하는 이들의 노력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도 기억속으로 사라져가는 현장의 기록이라는 의미와 함께,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책에는 촛불집회에 대한 다양한 이들의 의미있는 기억, 긍정적인 내용과 미래의 희망과 바람에 대한 기록들이 담겨 있습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라는 제목처럼, 2008년 촛불집회 자체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귀닫은 정부에 대한 시민사회의 항의와  경고,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보인 민주주의의 발전에 대한 가능성 등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이 담겨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과정에 대한 반성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시민사회의 힘을 하나로 이끌어 내지 못한 시민단체나 시민 단체 지도자들의 무능력함에 대한 반성, 변화나 변혁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일방적인 승리의 선언으로 허탈하게 끝나버린 것에 대한 반성 등..... 하지만 거대한 시민사회의 힘을 눈으로 보고 듣고 체험한 사람들, 그리고 그러한 촛불의 계속을 꿈꾸는 책이라고 말하기에는 자신이 생각하던 가치와 의미, 소망과 정당성에 대해서는 과하게 말하고 있지만, 그 뒤에 담긴 이면에 대한 냉철한 반성에는 너무 인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중간의 '촛불과 시민권에 대한 성찰'이라는 차병직 교수의 글마저 없었다면, 내게는 이 책이 마지막 촛불축제의  일방적인 승리 선언만큼이나 허탈한 촛불의 자화자찬으로 여겨질 뻔 하였으니 말입니다.  

"촛불의 권리는 추상적이다. 추상적인 권리는 아름답기는 하지만 손아귀에 쥘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대신 상징적인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권리를 획득하는 데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이 땅에서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시민권은 구체적인 권리다. 구체적 권리는 그 내용의 목록까지 확인이 가능하다. 하지만 헌법과 법률의 범위 내에서만 실현할 수 있는 권리다. 구체적인 권리를 향유하는 데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 촛불집회를 평가하는 전문가들이 애써 외면하고 있는 부분도 바로 책임이다. 촛불집회는 헌법적 자항권의 발동이었는가, 아니면 시민불복종의 행동이었는가, 혹은 그 자체로 모두 정당한 구체적 시민권의 행사였는가. 헌법적 저항권이었다면 목적은 혁명일 수밖에 없고, 혁명의 성공여부에 따라 논공행상되거나 처벌받을 것이다. 정당한 시민권의 발동이었다 하더라도, 의도하지 않게 타인에 끼친 손해는 배상하고 불가피하게 행한 실정법 위반 부분에 대해선 대가를 받아야 한다. 시민 불복종이라고 주장한다면 기꺼이 비폭력 무저항주의의 자세로 부당한 법의 개폐까지 요구하며 자발적으로 체포되어야 옳다. 이런 원칙적 문제까지 면밀히 검토하여 평가해야, 가슴속에 남겨둔 불씨를 언제든 다시 사용할 수 있다./ 이런 몇 가지 문제만 훓어보더라도, 지금까지의 촛불집회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과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의심스럽다......" (p135-6, '촛불과 시민권에 대한 성찰'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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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2008년 촛불집회의 과정을 전반적으로 정리해, 그 의미와 성과를 묻고, 새로운 연대를 고민하고 있다는 점, 촛불의 정신을 망각하지 않고 발전적인 변화를 이루기 위한 고민의 첫걸음을 담았다는 점 등.....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촛불을 외부에서만 바라보던 방관인들, 촛불을 냉소하거나 야유했던 이들, 그리고 무엇보다 촛불 안에 있었지만 그 의미와 결과를 혼돈스러워했을 이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차병직 교수의 '촛불과 시민권에 대한 성찰' 전문 (p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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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이매진>을 리뷰해주세요.
진중권의 이매진 - 영화와 테크놀로지에 대한 인문학적 상상
진중권 지음 / 씨네21북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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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저자가 소개한 40여편 -정확하게는 37편-의 영화 중, 실제 진지하게 끝까지 보았던 영화들을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내가 <슈렉>이라는 영화를 아이들과 함께 보았을 때, 저자가 말한 쿨미디어의 하이퍼리얼리티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이나 해 보았을까?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움직임이 자연스럽다는데서, 그리고 장화신은 고양이를 보며 '쟤가 왜 여기 나오나?' 하는 정도의 물음표를 달았다는 데서, 저자가 말하고 있는 이야기의 도입부를 붙들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책에서 말한 것만큼 거창하게 생각하지는 못했고 그냥 아이들과 즐겁게 보며 그럴 듯 하다고 한바탕 웃어주었던 단순한 기억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DVD로 <폴라 익스프레스>를 보았을 때도, 왠지 주인공 소년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에게서 느껴지던 차가움과 어색함에 대한 기억은 있지만, 이 영화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이행하는 과도기의 특성을 지닌 '섬뜩함의 계곡'에 빠져 있었던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습니다. <매트릭스>의 기막힌 장면들 속에서도, 건물들 사이를 누비는 <스파이더 맨>의 우아한 모습을 보면서도, 케이블 TV에서 수도 없이 반복되는 <터미네이터>의 놀라운 장면들 속에서도, 그 영화만이 주는 독특함에 대한 느낌이 있었지만, 저자가 말하는 주제들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해보지는 못했던 듯 합니다.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영화 이야기들이 곳곳에 나오는 생소한 용어들과 함께 괜히 영화를 어렵게 뜯어보는 현학적인 글쓰기일 뿐이라는 오해를 사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 책에 대한 변명일수도, 소개일수도 있는 프롤로그에서마저 그 생소한  용어들이 튀어나오며 나의 지식과 상상력의 빈곤을 자극하니, 그러한 오해와 편견은 첫인상 효과처럼 그리 시작 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디지털 기술이 시네마의 내용과 형식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지, 또 과학과 인문학의 담론이 어떻게 영화적 상상력으로 변용되는지 살펴보자는 막연한 생각으로 시작한' <씨네21>에 실렸던 글들이 이 책의 시작이었다는 저자의 글을 차분히 읽었다면, 분명 이 책을 대하며 '괜히 영화를 어렵게 본다'는 오해를 조금은 줄일 수 있었을테지만, 처음에는 그런 차분함보다는 명성있는 이의 뭔가 그럴듯한 체계잡힌 영화에 대한 해설이나 분석 -물론 저자는 프롤로그에 이것은 영화 비평이 아닌 인문학적인 상상을 담은 담론의 성격을 가진 글들이라고 밝히기는 하였지만 처음에는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을 기대했으니, 제대로된 스토리에 대한 설명도 없이 이런 저런 지엽적인 것들로 한편의 영화를 뜯어 분해해 버리는 글들이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고 해야겠습니다. 저자가 말한대로 더도말고 덜도 말고 디지털 기술과 인문학적인 담론이 영화와 만나 어떻게 표현되고 변화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읽는다면, 저자의 글쓰기 방식에 대한 이해의 폭을 조금더 넓혀 줄 수는 있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글자체가 지닌 난해함에 대한 감정까지 쉽게 풀릴 수 있는 것은 아닐 듯 합니다. 그만큼 저자가 말하는 주제들이 일상적인 소통의 범위를 넘어선, 과도한 테크놀러지와 인문학적인 용어와 개념들을 말하고 있는 것일 수도, 그것이 아니라면 독자의 한사람으로서 나의 지식과 소양 부족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내가 영화들을 보면서 느꼈던 미묘한 감정이나 느낌에 대해서 저자는 훨씬 구체적인 용어와 사례들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고, 그런 부분들이 내 앎의 영역의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에 난해하다고 투덜대면서도 굳이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낸 이유와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내 스스로에게 이런 식으로 영화를 뜯어볼 의향이 있냐고 묻는다면, 아직까지는 난 그냥 단순한 관객의 한사람으로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웃고 울며 자연스러운 감정을 표출하고 싶다는 대답을 하겠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인문학적인 지식과 상상력이 가미된 디지털 기술의 변신에 대한 명확한 이해- 책을 읽으며 순간순간 지적 사치와 호기심이 충족되는 만족감을 주었던 -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내 느낌과 감정속에 묻혀서 알듯 모를 듯 모습을 숨길지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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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영화만이 아니라 우리 주위의 많은 것들을 좀더 세밀하게 관찰한다면 얼마나 색다르고 깊이 있는 곳에 이를 수 있는지에 대한 자각을 준 것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영화를 좋아하는, 하지만 그냥 즐기고 말았던 사람들, 또는 영화 뿐 아니라 실제 삶속에 담긴 다른 의미들을 추구하는 사람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모든 이는 같은 영화를 보면서 각자 다른 영화를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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