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강의
야오간밍 지음, 손성하 옮김 / 김영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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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 

 노자의 사상과 <도덕경>에 관심이 있었다면, 아마도 제일 먼저 대하게 되는 구절이 위의 말입니다. 처음이 '도'로 시작되듯이, 노자 사상의 핵심이 '도道'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노자가 말하는 '도'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그에 대한 다양한 책만큼이나 많은 관점이 있을 것입니다. 도덕경이나 노자의 사상에 대해서 깊이있게 대하지 못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노자의 사상과 도교에 대한 이미지가 겹쳐서, '신선'이나 '산신령' 따위의 옛 전설이나 설화속의 이야기가 더 먼저 떠오르는 경우도 있을 것 같고, 결국 '도'라는 개념도 하늘의 뜬구름 잡기식의 허튼 소리나 아무런 소득없는 말장난 또는 말꼬리 잡기 식의 의미로 생각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막연함을 없애고, 나름대로 깨달음(?)에 도달해 보고자, 도덕경을 손에 들고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을 읊조리며 이런 저런 설명을 곁들여 뜻을 파악해 보려고 해도 몇 구절 못가서 막연함과 모호함의 망망대해에서 이리저리 떠도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지 않을는지..... 개인적으로는 지방 박물관에서 했던 백제문화에 대한 강의 중, 부여능산리출토 백제금동대향로(국보 287호)의 뚜껑에 표현된 산과 사람, 여러 악기와 동물 등에 당시 전래된 도교의 영향이 담겨있다는 말을 듣고서, 백제 문화의 세밀하고 뛰어남에 대한 찬탄과 더불어 노자의 사상에 한껏 관심이 갔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고전으로 대하는 도덕경은 결국 시작은 있었지만 끝을 보지 못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일반인들에게 그런 면에서 고전으로서의 <도덕경>을 대하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 책은 그러한 어려움을 일거에 해소해 주는 장점을 지녔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은 이 책의 내용이 전문적인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것이 아닌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바탕으로 씌여졌다는 점에서 어렵지 않게 읽고 이해할 수 있다는 점, 다른 한편으로는 고전으로서의 도덕경의 해석에만 촛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현대인의 생활에 노자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적용해서 해석하고 있다는 면에서 노자가 말하는 내용들을 더 현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점이 아마도 독자로서는 가장 반가운 면이 아닐까 합니다. 실제로 저자는 우리의 식생활, 건강, 성공, 여성의 아름다움, 연애와 결혼, 화목한 가정 생활 및 현대식 이혼에 대한 주제에 노자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우리가 실생활을 하면서 겪는 문제들에 대한 지혜롭고 조화로운 해결책이 무엇이 될 수 있는가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허공에 떠도는 '도'가 아니라 실생활에 적용되는 '도'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또한 '슬쩍 이런 것이지 않겠는가'라고 알려주기도 합니다. 또한 2부에서 언급되는 인간관계에 대한 노자의 지혜는 현대인들이 생활하면서 소홀하거나 잃어버리기 쉬운 스스로에 대한 성찰과 겸손함, 순박한 마음과 귀담아 듣고 침묵을 지키줄 아는 지혜, 마음이 황폐해지는 것에서 벗어나 항상심을 유지하는 것, 선을 추구하고 행함 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강의의 '도'의 상징으로 제시된 '바다'의 이미지를 통해서 말하는 인간관계의 경지에 대한 언급 - 낮은 곳에 처함, 함이 없지만 하지 못하는 것 또한 없음, 도와주고 다투지 않음, 다투지 않고 잘 이김, 연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움으로 억센 것을 이김, 스스로 크다하지 않지만 위대함을 이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현묘함을 지님- 은 우리가 성공과 물질적인 풍요를 추구하며 사는 삶의 자세에 대해서, 그리고 그런 삶에 덕지덕지 붙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들과 경박함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반성하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노자의 사상이 물론 완벽한 것은 아닐 것이고 완벽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좀더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서는 스스로 연구하고 하나하나 삶에 적용해 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고, 노자의 사상이 가지고 있는 한계와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는 시간도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이 나를 비롯한 많은 읽는 이에게 반가움을 주는 이유는 아마도, 문자로 기록되어 대할 수는 있었지만 그 내용을 이해하고 싶어도 노자가 살던 시대와 현대라는 시간만큼이나 깊은 간극을 느꼈던 노자의 사상에 대해서, 우리 일상의 생활과 삶에 비추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게 해 주었다는 사실에 있을 것 같습니다. 더 깊은 이해와 실천을 위한 소중한 한 걸음을 마음 편하게 뗄 수 있게 해주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내게 큰 즐거움을 안겨 주었습니다. 

 '대장부는 그 두터움에 처하지 엷음에 처하지 아니하고, 그 실질에 처하지 화려함에 처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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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루덴스 - 놀이하는 인간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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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시대보다 더 행복했던 시대에 인류는 자기 자신을 가르켜 감히 "Homo Sapiens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라고 불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 인류는 합리주의와 순수 낙관론을 숭상했던 18세기 사람들의 주장과는 다르게 그리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게 밝혀졌고, 그리하여 현대인들은 인류를 "Homo Faber (물건을 만들어내는 인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비록 인류를 지칭하는 용어로서 faber(물건을 만들어내는)라는 말이 sapiens(생각하는)라는 말보다 한결 명확하지만, 많은 동물들도 물건을 만들어낸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말 역시 부적절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인간과 동물에게 동시에 적용되면서 생각하기와 만들어내기처럼 중요한 제3의 기능이 있으니, 곧 놀이하기이다. 그리하여 나는 호모 파베를 바로 옆에,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와 같은 수준으로, "Homo Ludens(놀이하는 인간)"를 인류 지칭 용어의 리스트에 등재시키고자 한다. - <들어가는 말>에서 

 서문의 '우리 인류의 문명이 놀이 속에서(in play), 그리고 놀이로서(as play) 생겨나고 발전했다는 확신속에서 이 주제에 대한 탐구를 통해 놀이 개념을 문화의 개념과 통합시키려고 했다'는 저자의 언급에 이 책의 분명한 목적 또는 주제가 드러나 있는 듯 합니다. 호모 사피엔스나 호모 파베르를 통해서 인간이 스스로를 다른 동물들과는 따로이 구분되는 자신의 존재감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처럼, 저자는 놀이라는 인간의 원초적인 행위 속에서 시작된 문화의 싹이 자라서 한 집단의 문화로, 그리고 크게는 한 지역이나 국가의 문화와 문명체계로 발전하여 가는 것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나 호모 파베르보다는 호모 루덴스가 더 인간을 인간답게 표현하고 나타내는 용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저자가 이 책을 쓰던 시기에 비해 호모 루덴스라는 말과 개념이 훨씬 알려지고 수긍을 얻는 용어가 되었지만, 적어도 저자가 이 책을 처음 써낸 1938년에는 어떤 연구들의 성과물이나 여러 사람들과의 토의를 통한 의견의 접근을 본 보편적인 개념이라기 보다는 오로지 저자인 하위징아 자신의 역사적인 접근방법을 바탕으로 한 탐구를 통해서 제시되고 세상에 알려진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경우라면, 결국 저자의 주장에 얼마나 타당성이 있는가, 역사적으로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실례가 존재하는가에 의해서 호모 루덴스라는 새로운 용어의 타당성이 주어지겠지요.  

 저자는 자신의 호모 루덴스라는 개념을 일반적인 인간 문명 또는 문화의 특성으로 주장하기 위해서 놀이에 대한 의미를 정립하는데서 부터 글을 시작하는데, '놀이는 특정 시간과 공간 내에서 벌어지는 자발적인 행동 혹은 몰입행위로서, 자유롭게 받아들여진 규칙을 따르되 그 규칙의 적용은 아주 엄격하며, 놀이 그 자체에 목적이 있고 '일상생활'과는 다른 긴장, 즐거움, 의식을 수반한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의에 입각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발견되는 놀이의 개념이나 놀이에 기원을 둔 모습들을 파악해 냅니다. 여러 언어속에서 발견되는 놀이개념, 놀이의 개념으로 파악하는 경기, 법률과 소송에 담겨있는 놀이의 특성, 전쟁과 놀이의 유사성, 인식의 수단으로서의 놀이, 시와 신화와 철학과 예술에서 발견되는 놀이의 형태 등 우리 문화의 다양한 면들에 숨겨져 있는 놀이의 원형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서양 문명이나 현대 문명에서 발견되는 놀이의 요소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결국 현대에 가까울수록 문화속에 담긴 놀이의 요소가 제거되고 놀이 아님(진지함)의 영역으로 정착되었버린 측면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러한 진지함이 우리가 쉽게 저자가 말하는 놀이개념을 우리의 삶속에서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겠고, 한편으로는 놀이라는 개념을 은연중에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유치함으로 치부해버리는 경솔함이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호모 루덴스라는 개념을 통해서 문화의 한 요소로서의 놀이가 아닌, 문화나 문명 자체가 놀이의 특성을 기본으로 발전한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는 저자는, 그러한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문화형태에서 그 기원으로서의 놀이의 요소들을 찾아내어 고찰하고, 여러 집단안에서 그리고 철학과 시, 예술 등의 영역에서도 그 안에 담긴 놀이의 성격을 구분해 내어 인간 문화의 기원으로서의 놀이의 의미를 여러 면에서 탐구하고 있는데,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의 타당성을 인정하고 나면 , 삶의 여러 부분에서 놀이의 특성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가운데 인류의 문명이 긍정적으로 발전해올 수 있었음을 암시하는 저자의 주장들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짧은 시간 저자의 주장을 요약해서 이해하는 모양새는 차렸지만, 여러 세부 영역에 파고 들어가서 놀이의 특성이나 개념들을 추적하는 저자의 노력을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놓치지 않고 따라갈 수 있기 위해서는 좀더 시간을 내서 진지하게 읽고 안으로 삭이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몇시간의 독서로 모두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다고 학문을 대한다는 경직된 진지함으로 접근하는 것은 저자가 말하는 '놀이 아님'에 해당될 터이니 일상과는 다른 즐거움과 긴장과  의식을 수반하는 진정한 놀이의 정신을 망각하지는 않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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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고 독한 쇼펜하우어의 철학읽기 - 쇼펜하우어의 재발견
랄프 비너 지음, 최흥주 옮김 / 시아출판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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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이 책이 유쾌하게 읽기를 시도하고 있는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대표작입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철학 자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더라도 쇼펜하우어라는 이름과 그의 대표작에 대해서만큼은 낯설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내 자신도 과학의 영향을 받은 실증주의에 대한 대립각으로서 '생의 철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인물로서, 초인과 권력에의 의지를 주창한 니체의 철학사상에 깊은 영향을 끼쳤던 철학자로서, 그러한 영향력의 발자취를 따라가다보면 실존철학에까지 그 흔적을 볼 수 있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는 세상에서의 삶의 가치를 냉소적으로 비웃었던 염세주의자로서 기억되는 '쇼펜하우어' 정도가 그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모두이지만, 그의 이름과 대표작은 아주 오랫동안 잘 알아온 것처럼 거북하거나 불편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듯 합니다. 아마도 그의 작품을 직접 읽는다면 그러한 편안함은 지적 나태에 불과했다는 것이 금방 탄로가 날테지만 말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독설과 냉소와 비판이 가득하다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삶 자체를 부정하는 염세주의자의 철학으로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지향하는 낙관주의 철학으로 읽어내기를 시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생각하는 쇼펜하우어 철학이 담고 있는 '유머와 위트, 풍자와 결합한 예리한 통찰'을 그의 논문과 편지 등에서 발췌한 인용문들의 모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 자신이 해석한 쇼펜하오어 철학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적고, 그 의견을 합당하게 지지해 줄 수 있는 쇼펜하우어의 글을 뒤이어 연결시켜서 소개하는 방식으로 씌여졌으니, 이 책은 엄격하게 말한다면 쇼펜하우어의 철학이라고 하기 보다는 랄프 비너(저자의 이름)의 방식으로 쇼펜하우어의 철학을유쾌하게 읽어내기라고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무능력을 겸손으로 위장한다', '진정한 예술의 원리는 자연이 증명한다', '부패한 언어의 속삭임에 속지 말라', 자연은 철저히 귀족주의적이다', '참된 가치는 죽은 후에 비로소 드러난다' 등 각 단원의 제목들은 그의 철학을 유쾌하게 이해하는데 근간이 되는 저자의 분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그러한 생각들이 쇼펜하우어 철학의 중심이라기보다는 저자가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읽고 이해하면서 그의 철학을 유쾌하게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낸 일종의 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쇼펜하우어 철학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그의 철학에 담긴 유쾌함이나 유머, 풍자 등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실제로 독자의 입장에서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읽는다기보다는 랄프 비너의 쇼펜하우어를 이용한 세상에 대한 풍자 또는 유머 모음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철학이 이런 식으로 찢겨 읽히는 것은 바라지 않은 듯 합니다. 이 책에서도 여러 곳에 자신을 알려고 한다면 자신의 저작 전체를 읽으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책을 통해 익숙한 듯 하지만 결국 제대로 알지 못했던 쇼펜하우어 사상의 일면을 대할 수 있었던 것은 나름대로 즐거움이 되었던 듯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이 말하는 유쾌하게 읽는 것에 앞서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대해서 제대로 읽는 것이 먼저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앞서는 것은, 처음 시작할 때 쇼펜하우어의 철학사상 전체에 대한 조망을 기대했는데 결국 이 책을 통해서 얻은 것은 쇼펜하우어의 철학자체에 대한 좀더 깊이있는 이해보다는 단편적인 해석과 글모음 -그것도 저자의 주관이 강하게 개입된 - 뿐이었다는 아쉬움 때문일 듯 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내게 남는 숙제는, 어렵겠지만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어 보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날이 되면 이 책에 투자한 시간이 더 값어치가 나가게 되지 않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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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가 아니다
잭 린치 지음, 송정은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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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가 아니다'.... 말장난처럼 들리는 제목이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어렴풋이나마 그 의미를 알 듯 합니다. 흐릿하던 그 의미는 책장을 넘기며 저자의 의도를 알게 되는 과정에서 뚜렷하게 머릿속에 정리되는데, 당대에는 평범함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 법한 셰익스피어가 현대에 이르러서는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위대한 문호가 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셰익스피어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가 다양한 영역에서 존경하던 영웅들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해 줍니다. 1616년 4월 25일 홀리 트리니티 교회에 묻힌 셰익스피어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셰익스피어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그 이면에서 깨닫게 되는 한 사람의 문화 영웅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진실은, 우선은 실제 존재했던 인물과 역사속에서 다듬어지고 미화된 영웅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게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간극으로 인한 씁쓸함보다는 우리에게 영웅이 있다는 것과 그러한 영웅의 이미지는 역사와 우리 모두가 만들어낸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즐기는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는 사람들은 그의 작품이 어떤 식으로 편집되고 개정되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셰익스피어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그가 쓴 작품뿐만 아니라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몇 년, 몇십 년, 몇 세기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이야기는 매우 유능한 극작가가 인간을 꿰뚫어보는 신 같은 존재로 바뀌는 긴 여정을 살펴보는 것이다....." 저자의 이 말을 달리 생각해 보면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고 바라보는 셰익스피어와 그의 작품들은 그가 혼자서 일군 것들이 아니라는 것, 그가 지금의 성취를 위한 모든 것을 완결하지 않았다는 것, 그보다는 그의 후대의 많은 이들의 노력이 훨씬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결과물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의 원래 작품들이 등장인물에 대한 탁월한 성격묘사를 통해 관객들이 등장인물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는 것, 언어와 심상을 교묘하게 다루고, 배우들이 쉽게 말하고 외울 수 있는 말들을 사용했고, 왕족이든 보통사람이든 학자든 문맹자든 관계없이 모두가 다가갈 수 있는 매력을 지녔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형편없는 줄거리와 시간과 장소와 행동의 3일치 법칙에 대한 무시, 말장난이 심하다거나 예의에 대한 부적절한 개념, 희극과 비극을 구별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섞어놓았다거나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지적이나 비난을 받았던 '좋은 시인이고 극작가이기는 하지만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던 셰익스피어가 타고난 천재로 변신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시대와 사람들과 환경의 절묘한 조합의 과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종교 갈등과 정권의 변천 과정에서 셰익스피어가 살아나고 개신교의 박해 속에 연극이 유해한 오락거리로 전락한 이유로 다시 부흥하기 시작한 연극계가 새로운 희곡이 없어서 더 많이 그의 작품을 올리게 되고, 반복되는 공연과 스타의 탄생, 인기의 상승과 함께 그의 작품에 대한 여러 사람의 연구와 내용의 개정,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미적 관념 등에 맞지 않는 내용을 개선하는 과정을 넘어서 제멋대로 고치고, 길들이고, 위조하는 과정을 거쳐서 탄생한 셰익스피어는 드디어 모두가 원하고 숭배하는 셰익스피어가 됩니다. 즉 1616년 관속에 누웠던 셰익스피어와 그의 많은 작품들은 원래의 모습을 상당부분 잃어버렸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영웅으로서 완벽하게 변신하게 되었고, 그러한 사실은 앞으로도 위대한 셰익스피어는 사람들의 바람과 성원속에 여전히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시대를 관통하는 영웅으로 지속될 것이라는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은 셰익스피어나 그의 작품내용에 대한 직접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그의 사후에 일어났던 그의 작품을 다루고 공연하고 이용했던 역사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셰익스피어는 살아생전의 셰익스피어가 아닌 그가 죽은 이후로 다양한 형태로 변행되고 만들어진 셰익스피이며, 미래의 셰익스피어는 또 다른 모습을 지닐 것이라는 암시를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가끔씩 그의 작품에 대한 원작자가 누구라는 식의 논란은 의미가 없어지고 -실제로 저자는 오늘날의 셰익스피어 실존했던 셰익스피어가 아니라고 인정하고, 그의 작품 역시 수많은 개작과 교정, 삭제와 첨가의 과정을 거쳤다고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현재의 셰익스피어는 역사의 무대로 사라지게 하지 않고 지속적인 생명력을 지닐 수 있게 그를 불러내곤하던 우리가 만든, 그리고 우리가 원하던 셰익스피어라는 사실이 더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또한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들이 변질과 조작의 씁쓸한 의미보다는 위대한 작품과 작가에 대한 우리 각자의 의미와 역할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그리고 그러한 작품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에게 셰익스피어와 같은 대단한 영웅이 없다는 것에 대한 의미심장한 이유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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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노 다케시의 위험한 일본학>을 리뷰해주세요.
기타노 다케시의 위험한 일본학
기타노 다케시 지음, 김영희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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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오늘에 대해 가감없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저돌적인 공격과 비판을 가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을 꿈꾸는 나라를 향해 감히 너 못났다고, 넌 너무 잘못했고, 넌 지금 불행할 수 밖에 없는 듯 하다고 꾸짖는 내용을 읽으며 드는 생각입니다. '일본학'이라는 그럴듯한 제목에 '위험한'이라는 주의를 환기시키는 꾸밈말로 사람의 눈길을 끌고 있고, 번득이는 재치와 직설적으로 풀어내는 자신들의 치부(?)에 대한 솔직함이 담겨 있기에 흥미롭기는 하지만, 한권의 책으로 발간되기에는 왠지 전체적으로 깊이있는 고민이나 통찰력은 부족하다는 느낌, 그냥 거창한 제목의 책보다는 스포츠 신문이나 지하철 가판신문대를 장식하는 일요신문 등의 한 페이지를 크게 채우고 있는 것이 더 나아보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또한 저자가 이 책으로 일본의 많은 사람들의 속을 시원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수도 없는 욕을 얻어 먹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면도 있습니다. 그의 주장이 그만큼 주관적인 면이 강하고,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싫으면 그냥 싫다고 내뱉어 버리는 듯한 글의 내용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이 책을 들면서 고려해야 할 사항 한두 가지를 든다면, 우선 저자는 작가나 학자가 아닌 영화감독, 개그맨 등으로 이름을 날린 대중예술인이라는 점과 이 책의 출판사가 주로 영화나 예술에 관련된 분야를 생각하게 하는 '씨네 21(주)'라는 사실입니다. 즉, 우리가 생각하는 학문적인 일본학, 역사적인 일본학을 기대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경제적인 풍요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삶속에 또아리를 튼 불행의 이유들를  정치와 가정과 사회의 모순, 또는 부족함에서 찾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제대로 된 행동이나 리더십을 보이지 못하고 나약하게 퇴보하고 있는 모습,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가 사라지고 아이가 먼저가 되고 어머니의 힘이 절대적이 되면서 생긴 불행, 사회적으로는 미래의 비젼에 투자하고 도전하는 것이 아닌 현실에서의 안주와 평준화의 추구로 다양한 차이가 사라짐으로 인해서 생기는 불행의 그림자들..... 저자의 주관이 상당히 강하게 작용한 주장들이기는 하지만 타당성마저 없다고 할 수 없을 듯 합니다. 각 분야에서 불행의 원흉으로 지목한 각각의 주제는 읽는 이로 하여금 지금까지 생각하고 느끼던 일본에 대해서 확 뒤집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들이기도 하니까요.... 

 그렇다면 이것을 '위험한 일본학'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주류의 생각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에서나 사회를 희화화하고 있다는 면에서 그리고 안전성을 헤치는 생각이라는 점에서 일본인 자신들에게는 저자의 생각들이 위험해 보일 것 같습니다. 물론 제멋대로이거나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대중예술인의 객기정도로 넘겨버리는 사람들도 많겠지요. 하지만 그 안에서 자신들의 감춰진 약점 또는 부끄러움이 드러나는곤 한다는 면에서 위험하다고도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한 지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더 나은 모습을 가질수도 있겠지만, 무시하거나 반박하려고만 하는 사회라면 더더구나 위험불순한 생각으로 몰아가겠지요. 하지만, 일본밖에 있는 이웃나라 사람, 그리고 일제라는 폭력앞에 침략을 당했던 나라의 후손으로서 이책을 보면서 위험함을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른면에서 입니다. 저자는 교과서 문제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웃나라 -특히 중국과 한국-들을 지적하면서 외교를 끊어버려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 합니다. 또한 이웃나라의 그런 모습이 돈을 뜯어가기 위한 비굴한 술수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부분도 있습니다. 또 한가지 옛정치가들의 위엄을 찬양하면서, 이토 히로부미의 길게 기른 수염에서 관록과 무게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런 부분에 이르러서는 상당한 불쾌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자의 생각이 잊을만하면 반복되는 일본 정치인들의 망발과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기저에는 비슷한 생각들이 흐르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대한 반성보다는 합리화와 향수 비슷한 것을 결국 저자도 지니고 있고, 또한 많은 평범한 일본인들도 지니고 있고, 그것이 곧 그들의 속마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이 책은 많이 위험한 책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도 그들 안에는 반성하는 이들이 있다는 우리안의 순진한 생각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확 뒤집어 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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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일본에 대한 내부인 -제한적이긴 하지만-의 비판적 시각을 느낄 수 있다는 점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일본에 관심이 있는데....'하면서 소일거리로 읽을 책을 찾는 사람.... 바쁜 사람들은 패스하시길.....^^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중국과 한국이 역사 교과서 같은 문제로 항의를 해오면 외교를 끊어 버립니다. 러시아가 북방 영토를 반환하지 않으려 하면, 대사와 기업을 전부 철수시키는 겁니다.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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