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 1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할까요? - 황우석 사태 취재 파일
한학수 지음 / 사회평론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보다도 더 소설같은 그리고 소설보다 더 극적인 반전이 있었던 이야기(?). 국익과 진실, 거짓과 위선, 희망과 절망의 광풍을 동반한 그 이야기가 우리사회를 휩쓸고 지나간 것이 아득한 일인것처럼 느껴지고, 기억넘어 아스라이 묻혀졌다고 생각했는데 1년여의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그 기억이 다시 의식속에 삐져 나오기를 바라지 않을 것 같고, 그 사건을 다시 눈앞에 끄집어 내어 현실속에서 직면해야 한다는게 반가운 것이 아니겠지만, 당시 사건의 고리를 끝까지 놓지않고, 영원히 진실을 은폐하고자 했던 거대한 권력과 편견과 술수에 침몰하지 않고, 우리 사회가 건강할 수 있고, 희망이 있다는 것은 진실이 살아서 그 발언권을 가지고 이야기 할 때라는 사실을 몸소 보여준 당사자인 저자에 의해서 다시 우리 앞에 되살아와서 묻습니다. 우리사회가 아픈만큼 성숙해졌는가고.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할까요? 줄기세포가 하나도 없답니다.'

 지금 눈으로 보는 이 엄기영 앵커의 멘트가 당시보다 더 생생하게 귓전을 울립니다. 당시의 시작부터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던 사건의 개요가 다시 파노라마처럼 살아납니다. 책을 보지 않아도 이미 그 내용의 대부분은 나의 의식속에서 삐져 나옵니다. 우리국민의 희망이었고 자존심이었고, 세계에 대고 이젠 우리민족이 힘껏 날개짓하며 날아오른다고 자랑하며 떠들었던 황우석 신화가 명확하게 종말을 맞이하는 순간이었고, 확정적으로 사망선고를 선언받는 판결문과도 같았던 말. 줄기세포가 하나도 없답니다. 아마도 한개나 두개정도는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마저도 모조리 뭉개버리고, 모든것이 권모와 술수와 눈속임의 결정판이었다는 것에 할말을 잃게 만든 사건의 종말이었습니다. 물론 그뒤로 줄기세포가 오염되었느니, 누가 속였느니 하는 논란이 있긴 하였지만 결국 애석하게도(?) 진실은 이겼고, 그 아픔은 고스란히 다시 이리저리 그 이야기속에 묻혀 일희일비하던 국민들의 가슴에 묻혔습니다.

 이 책을 굳이 다시 손에 잡은 이유는 내 자신에 대한 반성의 의미에서입니다. 민족주의니, 진실에 반하는 국익이니, 전문가 집단안에 생성된 인너써클과 고여서 썩어가는 학문의 자유니 하는 거대담론을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내 자신이 온전히 반성하지 못하였다는 자의식에서입니다. 사건이 시작되었을 때, 나 자신도 전문가는 아니지만 PD수첩의 난자문제에 대한 이의제기와 전문가들을 검증해보겠다는 무대뽀정신-당시에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에 반대측에서 외쳤던 배아파하지 말고, 발걸지 말라, 비전문가가 전문가들의 검증을 부정한다는게 말이 되느냐 -물론 아직도 이부분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처럼 전문가 그룹이 작동하지 못하였을 때는 어쩔 수 없겠지만-는 등의 논리가 곧 나의 의견이 되었고, 당시 PD수첩과 MBC 측에 던져졌던 수많은 돌멩에 중에는 나의 돌멩이도 몇개 섞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건의 마무리 단계에서 어딘가의 게시판에 슬그머니 나의 잘못에 대한 반성을 올리며 부끄러워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대하면서 아직도 나의 반성이 부족하였다는 자의식을 떨쳐 버릴수가 없었습니다. 내 삶이 따르지 않은 입에 발린, 내 양심에 평안을 주는 정도의 가식적인 반성으로 끝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분량은 두툼하지만 소설보다도 더 재미있게 슬슬 넘어가는 이 책을 한페이지 한페이지 넘기며, 나와 우리를 그렇게 광풍에 휩쓸리게 한 사건들을 재구성해 봅니다. 이러한 책읽기가 온전한 반성의 모습은 아니겠지만, 당시의 진실을 말해도 귀막고 돌을 던졌던 모습을 반성하고 저자의 글에 온전히 마음을 쏟고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저자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해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책읽기를 마치며 먼저는 저자와 그의 동료들의 용기와 인내와 투쟁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들로 인해서 우리사회가 아직도 건강한 씨앗들을 품고 있다는 희망을 건져 올렸으니까요. 그리고 객관적이지 못했고, 형평을 유지하지 못하고 같이 휩쓸려 돌멩이를 던져댔던 것에 대한 사과의 말을 전합니다. 당신들이 옳았고 우리가 틀렸다고, 그리고 당신들로 인해 우리가 값진 빚을 당신들에게 졌다고. 이 사건을 통해 내 삶의 시야가 얼마나 편협할 수 있고, 내 상상의 폭이 얼마나 제한되어 있는지, 그리고 깨어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지난한 일인지에 대한 값진 교훈을 얻게 됩니다. 독서를 하되 행간을 읽으라는 말의 의미가 이 사건을 통해 내게 다시금 깊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저자는 아직 황우석교수가 진실한 반성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청와대와 조선일보도 반성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도 마음속에 커다란 배움 하나쯤은 새기게 되었으리라고 믿습니다. 나 같은 범부도 이리저리 반성하고 또 반성을 하는데 말입니다. 우리 사회에 건강한 씨앗 하나를 뿌린 저자와 그의 동료들에게 다시한번 감사하며, 그들이 싹틔우고자 한 곳에서, 아직도 토양이 척박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씨앗들이 자라서 좋은 열매를 맺기를 기원하여 마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의 발단이 되었던 제보자 K와 그 가정에 많은 사람이 누리며 살기 원하는 일상의 안식과 평화가 깃들기를 바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캐시 호숫가 숲속의 생활
존 J. 롤랜즈 지음, 헨리 B. 케인 그림, 홍한별 옮김 / 갈라파고스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내 삶을 조용히 들여다 보면 언제부턴가 우리가 이룬 문명이라는 틀과 시간이라는 정해진 틀안에서 쳇바퀴 돌듯이(?)  하루하루, 한시간 한시간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이젠 그 한시간 단위의 시간 나눔이 사치스러운 이야기가 되어 분단위 때론 초단위로 나누어 시간을 절약하고 분배해서 사용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는듯 합니다. 아이들이 처음시작하는 유치원이나 학교생활도 몇시부터 시작하고, 수업 몇분에 쉬는 시간 몇분 하는 식으로 아이들의 삶을 하루라는 시간의 틀에 끼워 맞추는 과정이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바빠서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는 화폐나 그에 상응하는 교환 수단을 매개로 해서,  그걸 자신의 직업으로 삼는 이들에 의해 해결하고, 그들 삶의 필요한 부분 일부를 내가 하는 일로 책임져주는 그런 식의 생활방식이 더욱 가속화 되어 가고 있는 모습이어서, 이젠 이 틀에서 벗어나면 홀로서기가 어려워 질거라는 두려움마저 드는게 사실입니다.

 <캐시 호숫가 숲속의 생활> 처음 책을 대했을 때, 호수와 숲이라는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몸은 문명화된 시멘트 건물들 틈에 있지만 머릿속에 생각만 해도 마음을 울리는 무언가 매력을 느끼게 하는 이 두 단어로 인해서인지 전혀 다른 삶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매년 이 책을 읽겠다고 한 소개글의 글쓴이를 어필했을 만한 그런 낭만을 내마음에 먼저 그린 탓이었을겝니다.  저자의 말처럼 사람이 정한 시간이 삶을 이끌지 않고,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고, 날씨의 변화와 계절의 변화에 사람이 맞추어 살아가는 여유있는 생활방식에 대한, 그리 살아보지 못한 사람의 비현실적인 환상에 기인하는 그런 기대가 마음속에 일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식의 낭만을 내게 얘기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훨씬 현실적인 호숫가 숲속생활의 생동감있는 모습을, 그 속에서 살면서 필요한 지식들과 함께 담담히 전해주고 있습니다. 1월 두껍게 눈싸인 숲속의 모습을 시작으로,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와 눈싸인 응달을 천천히 몰아내며 봄이 오는 숲속의 모습, 그리고 무성해지는 나무들과 함께 사람을 괴롭히는 모기, 등에의 등쌀이 이어지는 여름, 그리고 가을 다시 겨울로 이어지는 일년 12달의  호숫가와 숲속의 변화에 따른 동물 식물들의 변화와 자신을 비롯한 친구 헹크, 티비시 추장과의 삶을 전해주는데, 그 안에서 살아가면서 만드는 각종도구들에 대한 기록은 특히 흥미를 돋구어 줍니다. 예를 들면 여름에 냉장고를 만드는데, 어디에 냉장고를 만들어 사용했다는 간결한 기록이 아니라 어떤식의 냉장고를 만들었는데 그걸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삽화가 곁들여져 있어서 처음 보는 사람도 지금 당장 만들어보고 싶다면 재료를 갖춰 시작만 하면 이내 끝을 맺을수 있는 정도로 자세합니다.  그래서 이 책속에서 배우는 자연속에서 야영하는 법,  바늘등을 이용해서 나침반을 만드는 법, 음식을 만드는 법, 여행을 떠날때 꾸려야할 짐과 짐 챙기는 법, 무거운 배낭을 메는 법, 산불을 만났을 때 피하는 법, 해시계를 만드는 법 등은 실제 생활을 한 사람만이 기록할 수 있고, 실제로 그 속으로 들어가서 생활하고자 하는 사람이 배워야만 하는 지식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마도 이 책의 서문을 썼던 소개자가 매년 이책을 읽겠노라고 고백한 것은, 이 책속에 들어있는 이런 색다른 매력때문인 듯 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저자의 친구인 헹크가 그린 책속의 삽화가 내용을 이해하는데 지대한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책을 훌륭하게 장식하는 적절한 기품을 지닌 도구가 되어 있습니다. 사진보다고 더 기막힌 작품들입니다.

 호숫가 숲속의 생활이 좋았다는 식으로만 소개하였다면 결국은 저기 파라다이스가 있다는 말처럼 공허하였을 겝니다. 호숫가 숲속에서 몇년동안 살았는데, 그 아름다운 경치며 변화하는 자연이 정말 좋았다고 억지스런(?) 자랑거리를 늘어놓았다면 아마도 책의 매력은 많이 떨어졌을 듯 합니다. 하지만 저자와 그 친구들이 숲속에서 살면서 겪었던 어려움과 두려움이 그대로 배어있고, 그 난관을 티비시 추장같은 현명한 인디언 친구를 통해 자연속에 있는 것들을 이용해서 극복해가는 모습이며, 숲속에서 살다가 자연스럽게 그 자연을 읊는 시인이 되어버린 저자의 꾸밈없는 모습이 읽는이로 하여금 그 생활에 대한 매력을 한껏 고조시키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나에게도 마음 어느구석엔가 자리잡고 있는 나만의 캐쉬호숫가를 그리워하게 하고, 거기를 찾아나설 용기만 조금 있다면 저자처럼 문명과 시간의 제약을 벗어버리고 멋진 삶을 계획할 수 있으리라는 소망을 갖게 됩니다.

 문명과 시간이 비켜선 곳에서도 어려워하지 않고 멋지게 살아낸 저자의 글과 거기에 담긴 마음 그리고 그의 친구의 그림을 통해, 내 마음속에 있는 나의 캐시호숫가 숲속이 내게 훨씬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 1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