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e - 시즌 2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2
EBS 지식채널ⓔ 엮음 / 북하우스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느끼는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많은 이들에게서 대동소이하게 보이는 사실들도 있겠지만 사람마다 가지는 독특함이라는 특성이 그러한 다양성의 이유가 되겠지요. 노란 표지의 '지식 e'로 짧은 5분 동안의 방송이 허락하지 못했던 반복될 수 있는 여운을 안기며 가슴을 파고 들었던 '지식 e'가 이번에는 빨간 표지를 하고서 자신의 카메라 앵글로 들여다 본 세상에 깃든 희로애락에 대해서 들려 줍니다. '지식 e'가 느끼는 희로애락이란 어떤 빛깔을 지니고 있을지......  괜시리 프로그램의 주는 무게만큼이나 주제가 무겁게 느껴질려고 합니다.

 지식 e의 희(喜, gladness). 성공한 삶이라는 한가지의 가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삶을 피해, 윌든 호숫가의 오두막에서 자발적 가난의 풍요로움을 누린 헨리 데이빗 소로우를 통해 말하는 '단순하게 사는 법'. 자신의 존재감과 상실감의 결여를 채우고자 현대인이 숭배하는 명품의 '이름값'. 인간 관계를 견고하게 연결시켜주는 사회적 신호이자 질병과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힘까지도 지닌 인류의 방탄조끼로서의 웃음에 대한 이야기 '하하 호호 히히 깔깔'. 기쁠 때나 슬플 때 흘리는 눈물을 통해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치유의 효과를 통해 보는 '눈물의 선물'. 효율적인 수면과 적절한 낮잠을 통해 보는 수면의 경제학 '나에게 잠을 허하라'. 눈의 착시현상을 통해 들여다보는 인간의 한계와 이해를 담은 '눈의 착각'. 술 그리고 폭탄주에 얽힌 이야기 '술'. 컴퓨터 자판에서 스페이스바나 지키던 시련속의 엄지가 휴대폰의 문자메시지라는 통로를 통해 엄청난 힘을 가지고 돌아온 이야기 '엄지의 귀환'. 가수 박인희의 노래와 아버지의 실연과 아들의 실연이 얽힌 '유행가'. 보이저 호에 잡힌 작고 푸른 점 지구 - 그안에 지구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니....-의 모습과 보이저 프로젝트 등의 외계인과 접촉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을 담은 '창백한 푸른 점'..... 지식 e가 말하는 기쁨입니다. 웃음이 담겨 있지만 열가지 이야기에 담긴 기쁨이나 웃음의 의미도,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의 뜨거움도  아마 제각각이겠지요.

 지식 e의 로(怒, indignation). 시사저널 사태를 담은 '기자'. 한미 FTA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 그리고 광우병에 대한 '아무도 모른다'. 정치에서 정책을 빼고 인물과 지역에 기반을 주고 감정적인 자극을 덧씌워 정권을 창출하곤 하던 정치권에 대한 야유, '정당'. 제이미 올리버를 통해 정크푸드의 문제점과 학교 급식 개혁의 필요성을 열변하는 '웩, 우엑?'. 강제입원과 까다로운 퇴원 절차 등으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정신병원과 정신병 진단과정에 담긴 불합리성을 고발하는 '제정신으로 정신병원 들어가기'. 모든 이의 짐이 되어버린 치매노인과 현대판 고려장의 염려를 자아내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의 허와 실을 들춰 낸 '치매, 기억을 잃다'. 무어와 부시, 911 테러와 화씨 911 등의 내용을 통해 현실과 픽션의 혼란을 이야기하는 '픽션 vs 논픽션'. 이스라엘의 레바논 카나 폭격을 통해 말하는 이스라엘과 레바논 분쟁, 그 뒤에 가려진 힘없는 사람들의 피해, 그리고 미국의 일방적인 이스라엘 감싸기를 지적하는 '사람들'. 신화화된 가미카제의 이야기 뒤에 숨겨진 한 영혼의 진실한 외침과 끝나지 않은 일본의 군국주의적인 야욕을 말하는 '보내지 못한 편지'. 청계천의 강제철거 후에 옮긴 동대문 운동장에서마저 내몰릴 위기에 처한 힘없는 이들에게 보내는 격려의 인사말 '메리 크리스마스 & 해피 뉴이어'..... 이상의 열가지 에피소드가 '지식 e'가 독자들에게 말하는 자신의 노여움입니다. 공감하는 이야기들이지만, 세상은 여전히 견고하게만 느껴진다고 말한다면 너무 나약한 모습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지식 e의 애(哀, melancholy). 번창하던 탄광촌의 영화를 뒤로 한 채, 이젠 모두에게 잊혀지져 버린 기차역 구절리와 탄광촌의 변신을 말하는 'Happy birthday to you'. 벗들과 할머니, 할아버지, 이웃들의 마음이 함께 오가며 담겨 있던 골목길에 대한 기억을 담은 '그 길'.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려는 성한 사람들을 막고, 자신들도 안전하게 지하철을 타게 해달라고 지하철을 막아선 시각장애인들의 모습을 통해 사회적인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어느 퇴근길'. 어른들과 사회의 이기적인 꿈으로 인해 자신들의 삶을 담보 잡히고 허덕이는 초등생들의 고통의 소리 '대한민국에서 초딩으로서 산다는 것'. 3.1 운동과 4.19 혁명, 한일회담 반대시위와 6월 민주항쟁의 역사를 통해 직접 행동의 마당이 되었던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전태일의 삶과 죽음 그리고 꿈을 생각하게 하는 '하루'. 서식지를 잃고, 애완동물로 팔리고, 식용으로 밀렵되며 멸종되어가는 야생동물들의 암울한 미래를 말하는 '미니는 어디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남루한 일상을 사진기에 담으며 그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품고 사는 작가 최민식의 이야기 '길 위의 인생'.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의 강제동원으로 끌려가 포로감시원이 된 조선 사람들의 삶의 질곡과 애환을 담은 '나의 살던 고향은'. 한국에 와서 정착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은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보통사람'..... 애처럽기도 하고 눈물이 날려고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 우리의 과거와 현실에 담긴 슬픔들입니다. 하지만 슬퍼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

 지식 e의 락(樂, delight). 영국밴드 첨바왐바가 신자유주의와 대처리즘에 시원한 하이킥을 날린 이야기 '이상한 밴드의 이상한 댄스음악'. 즐거운(?) 불협화음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사람의 노력과 열정을 들려주는 '아버지의 아들, 찰스 아이브스'. 행동과 표정으로 모든 것을 말하고 표현했던 찰리 채플린의 이야기 '주도 면밀한 희대의 사기꾼'. 노래하는 기적 스티비 원더의 음악과 삶 'He is wonder'. 쿠바 혁명과 함께 숨어버렸던 쿠바 음악의 살아있음을 보여준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소박한 전설'. 시대를 너무 앞서간 비운의 천재, 빛의 화가 렘브란트의 삶과 작품세계에 대한 '렘브란트의 모델'. 김홍도와 신윤복, 그리고 우리의 풍속화에 대한 '화인열전'. 영원히 태극마크를 달고 42.195Km를 뛰고 결승점에 가슴을 들이댈 것만 같은 봉달이의 이야기 '2등 전문가 이봉주'. 듣는 이의 마음 속에 여백을 남겨 주었듯이 자신의 인생 나머지도 여백으로 남겨 버린 가수 김광석 '서른 즈음에'. 동화 속에 사는 어린이의 현실이 아닌 현실 속에 담겨있는 소재들로 동화를 쓴 영원한 어린이들의 동반자 권정생 선생의 삶과 꿈을 담은 '정생'..... 이 속에 담긴 즐거움은 단순한 것들이 아닌 듯 합니다. 눈물도 있고, 아쉬움도 있고, 가난과 고독과 배신도 함께 담겨 있는데, 그 안에 즐거워서 크게 노래할 만한 이유들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 우리 삶에만 한정시켜 생각한다면 훨씬 간단한 감정일지도 모르지만, '지식 e'의 창을 통해 들여다보는 세상살이의 희로애락은 그러한 단순함을 조금만 뛰어넘어 주위를 살펴보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리고 가끔 내 삶의 기쁨이 주변의 슬픔이 되고, 내 삶의 슬픔이 때론 주위에 기쁨을 선물할 수도 있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희로애락이란 바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이란 것도 바로 그런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러한 것들 중에 힘겨운 것은 나누어지고, 좋은 것들은 함께 나눌만한 넉넉한 사회, 건강한 사회가 바로 우리 이웃, 우리 나라의 모습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 깃든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실렵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의 탄생] 서평단 알림
철학의 탄생 - 현상과 실재, 인식과 진리, 인간과 자연에 던지는 첫 질문과 첫 깨달음의 현장
콘스탄틴 J. 밤바카스 지음, 이재영 옮김 / 알마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날에는 누구나 그리스적인 방식으로 생각한다. 설령 이를 전혀 깨닫지 못한다고 해도. -자클린 드 로미어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에 대해서 처음 대하게 된 것은 아마 고등학교 윤리시간이었다는 기억입니다. 책의 처음 부분에 발음도 어색하기 그지 없었던 인물들에 대한 소개와 그들의 사상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있었던 기억입니다. 당시에는 철학(Philo-sophy)라는 어원의 풀이 즉 '지혜에의 사랑'이라는 설명에서 시작하여 이 책에 소개된 이들의 철학의 핵심을 소개하고 그 뒤로 소피스트들과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으로 이어지는 철학사에 대한 난해하기 그지없는 소개가 있었습니다. '만물의 근원은 불이다', 또는 '물이다', 또는 '수이다' 등의 말을 들으며 당시에는 그 정확한 의미를 몰랐기에 -실제로는 철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더 컸겠지만- 헛웃음을 쳤던 기억도 있습니다. 부질없는 이야기들을 철학의 시작이라고 다루고 있다는 치기어린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들이었겠지요. 그 뒤로 다시 그들-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을 접하게 된 것은 대학생이 되고 나서 교양과목으로 철학개론을 듣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서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좀더 깊어졌을지 모르겠지만, 강의 방식은 고등학교때 배우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고, 한학기 동안만 들으면 되었던 과목이었던지라, 플라톤에 대해서 진행되던 중에 마무리가 되었던 당시 강의는 고등학교때 배웠던 기억에 별반 다른 특별한 것들을 더하지 못하고 그리 허망하게 끝나버렸습니다. 그 뒤로는 몇몇 개별 철학자들의 저서를 통해서 철학이라는 것의 난해함만을 맛보며 매번 뒷걸음질치던 기억은 다른 많은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 학문의 안쪽으로 들어가면 매번 무언가 멋진 것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대들어 보지만, 매번 미로에 갇힌 듯 헤매다가 퇴각하곤 하지요. 그리고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고, 그러다 보니 철학이나 그 근처의 학문들은 계속 미지의 땅이 되어 가고.....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면서 아무 철학적인 사고나 행위없이 살아가고 있는 듯 할지라도 현재의 우리의 주변 환경을 결정짓고 있는 것들은 다양한 철학적 사고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수긍하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과학의 발견이나 발명을 통해 우리 생활의 다양한 시스템이나 물건들이 만들어지고 이용되듯이, 철학은 사람들의 정신적인 자각과 개혁을 통해서 끊임없이 사회의 구조와 조직, 그리고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또한 여타 다른 학문들의 발전에 기초나 토대로서의 기능도 하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철학에 대한 기억과 자세 때문에 두툼한 이 책을 다시 손에 잡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동안 실패했던 이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조금이나마 넓히고, 철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기초적인 소양을 조금이나마 넓혀 볼 요량이었습니다. 하지만 다 읽고 난 지금의 느낌은 솔직히 대학교때 철학개론 강의를 마치고 책을 한쪽 구석에 밀쳐버리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당혹스러움이 있습니다. 내용의 방대함이 먼저겠지만, 어쨌거나 내용의 많은 부분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리고, 그들에 대한 뭔가 새로운 이해나 깨달음이 더해졌다는 느낌이 없이, 그냥 막막하다는 생각만이 앞서갑니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이란 '기원전 5-6세에 처음 활동을 시작한 그리스 철학자들을 일컫는말로, 생물학적인 연대를 기준으로 하는 구분이 아니라 철학을 처음으로 개척한 이들의 사상을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과 구분'하기 위한 표현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데모크리투스는 소크라테스보다 늦게 태어나서 그와 동시대를 살았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소크라테스 이전과 이후를 나누는 것은 소크라테스를 중심으로 확연해진 철학사상의 단층선에 대한 구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이들은 밀레토스의 탈레스를 시작으로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피타고라스,  크세노파네스,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엠페도클레스, 아낙사고라스, 데모크리토스 이렇게 열사람입니다. 이들의 활동은 '신화적인 관념으로부터 인간의 이성적인 사유로의 발전과정에서 인간 스스로 비판적인 사유를 통해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통찰이 시작'된 기원전 7세기 경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저자에 의하면 그러한 변화는 비슷한 시기에 중국 (공자와 노자), 인도 (붓다 등), 이스라엘 민족 (예언자 예레미아와 에스겔), 페르시아 (차라투스트라?)에서도 나타나는데, 그리스에서 나타난 사상적 특징은 '인간의 경이감으로 출발'하여 세상의 시초와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사색으로 이어졌고 결국 이러한 특징이 철학과 과학의 합리적인 기초를 세우는 바탕이 되고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만들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분석에 의하면 중국은 정의로운 정치 질서 안에서 인간들이 서로 맺어야 할 올바른 인간관계를 설정하려는 실천적인 고민이 주였고, 인도의 경우는 인생의 심오한 의미에 대한 최초의 질문들을 제기하는 종교적인 고민이 중심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에서 저자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사상이 단순히 유럽의 합리성이라는 기초만을 마련하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아무런 선입견이나 편견없이 자유롭게  세상만물과 정신세계를 탐구했던 그들에게서 오늘날 우리들이 직면하고 있는 철학이나 자연과학의 여러 문제들에 대한 접근법이나 해결책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초현실성이 있지 않나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두가지 기본적인 목적은 '첫째, 현대인들이 유럽사상의 기초가 세워지고 발전되는 과정을 살표'볼 수 있도록, 대부분의 사람들이 철학과 과학의 시작으로 중요시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영향력이 그 바탕에 있음을 알리고, 철학과 과학의 시작이라는 사실에 대한 지평을 넓히는 것이고, '둘째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저작에서 나타나는 자연과학적 차원을 부각'시켜, 오늘날의 과학적인 개념들과의 연관성이나 영향력을 알리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책 내용이나 구성의 많은 부분을 그러한 목적에 맞게 철학적인 영혼이나 신, 로고스 등의 개념과 사상적 특징들에 할애하기도 하지만, 우주기원론이나 우주론, 기상학, 수학, 기하학, 물리학, 생물학, 물질, 생리학, 의학 등의 항목들을 추가하여 각각의 철학자들이 내세운 사상적인 특징들이 현대의 이러한 과학과 어떠한 연관성을 가지고 제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에 대한 꼼꼼한 내용정리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해석의 과도함으로 인해 불편감이 느껴지는 -이현령비현령식으로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부분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엠페도클레스를 언급한 내용들 중에서 '실험', '실제적 응용', '법칙성', '물리학적 법칙들의 보편타당성', '힘', '빛', '화학', 우주기원론' 등에 언급된 내용들을 읽다보면 현대과학이 이룬 다양한 업적들 -빛의 이중성, 원자론이나 분자론, 블랙홀, 빅뱅 등-을 그의 철학속에 이미 구축했다고 말하는 과함을 느끼게 되는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저자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미 구축된 지식을 익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생각들을 구축해 나가야 하는 선입견에 자유로와서, 다양한 부분에 대한 다양한 사색과 주장들을 펼칠 수 있었던  그들의 사상들 속에는 분명 우리가 한쪽을 선택함으로써 잃어 버렸던 다른 여러 가능성들에 대한 실마리들을 얻을 수 있는 보물들이 숨겨져 있는 것은 분명할 듯 합니다. 그것이 옳고 그른 것에 상관없이 그들은 자유로운 철학적 사색을 하였고, 또한 실험이 뒷받침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사색을 바탕으로 가설의 단계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울 수 있는 다양하고 자유분방한 여러 가설들을 앞다퉈 세상에 내놓은 매우 과학적인 태도를 지닌 사람들이기도 하였으니까 말입니다. 아직도 각각의 철학자들에 대한 것들은 혼란스럽고 난해하기만 하지만, 전체적으로 그들 철학자들의 의미를 이렇게나마 간추린 것으로도 이 책을 붙들고 씨름한 이득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시간이 흐르더라도 다시 한번 펼쳐 볼 수 있는 책꽂이에 꽃혀 있을 물리적인 자산과 함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중톈, 중국인을 말하다
이중텐 지음, 박경숙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옛날 텔리비젼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중국사람 행세를 할려면, 그 역할을 하는 사람은 말 끝에 '~했어(다)해'를 붙여서 줄기차게 말을 쏟아내는 것으로 표현해 내곤 했던 기억은 많은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에 덧붙여, 독특한 머리모양과 복장 등이 일반인들이 중국사람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이미지겠지요. 물론 좀더 깊은 인간성이나 문화 등에 대한 이야기로 옮아가면 많은 이견이 생기고, 미묘한 차이들이 생기겠지만, 우리의 중국사람에 대한 형상은 많은 부분에서 서로 닮아 있는 것은 사실일겁니다. 과거의 역사에서 중국과 우리나라는 결코 뗄려야 뗄수 없는 관계를 유지해온 터이라, 많은 것을 서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구요. 역사속에서도 그랬지만, 요즈음은 성장하는 중국의 영향력이 갈수록 중시되는 때인지라, 그들에 대한 관심도 많아지고, 그에 편승한 다양한 시각의 책들이 소개되고 있고, 그만큼 그들에 대한 지식도 깊어지고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여하튼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우리의 처지에서는 중국인이 직접 자신들의 속살을 들여다보면서 말하는 중국인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로울 수 밖에 없는 소재 중의 하나입니다.

 '백가강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삼국지>를 강의하여 유명세를 탔고, 그러한 연유로 우리에게까지도 널리 알려진 이중톈 교수가 이 책의 저자입니다. 저자의 그러한 이력이 곧, 중국인 스스로도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던 스스로의 모습을 들여다 보고 표현해 낼  수 있는 남다른 능력을 지녔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게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중톈 교수가 이 책에서 말하는 중국인에 대한 이야기는, 어찌보면 중국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중국인이 지닌 특성이나 독특함을 문화적인 면에서 고찰하고 있다는 이야기지요. 물론 여기서 문화라고 하는 것은 박물관이나 역사책에 기록된 그러한 문화가 아닌, 일상의 삶 속에 배여있는 문화, 그러니까 일상속에서 행해지는 여러가지 일을 중국인의 문화라는 코드를  사용하여 해석해 내고 있다고 해야겠습니다. 저자가 읽어내는 그러한 문화적 코드의 키워드로 사용되는 단어는 바로 음식, 의복, 체면, 인정, 단위, 가정, 결혼과 연애, 우정, 그리고 한담의 9가지 단어입니다. 간단한 단어들이지만 저자는 그 단어와 연관시켜 중국인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일상의 삶속에 담긴 문화적인 특징과 의미에 대해서 깊은 이야기들 -중국인이 아니라면 알수 없을, 그리고 중국인이라면 너무도 익숙해서  깜빡해버릴 사실들-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과의 역사적인 관계라는 측면을 생각해보면 이해되고 예상할 수 있겠지만, 많은 부분에선 우리의 정서와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내용들입니다. 물론 더 광활한 대륙에, 더 다양한 민족과 복잡한 역사의 과정, 그리고 공산당의 집권 이후로 다른 길을 걷게 됨으로 인한 가치관의 영향에 의한 차이점이 큰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일상의 많은 부분에서의 정서와 사고방식이 비슷하게 닮아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누군가 말하길, 중국 문화는 먹는 것에서 나왔고, 서양 문화는 사랑에서 나왔다고 한다'로 시작되는 책의 첫 구절처럼, 먹는 것을 그 무엇보다도 중시하던 중국인들의 문화를 시작으로 하는 다양하고 박식함이 넘치는 이야기들은 의복과 체면, 인정과 가정 등의 중국인들의 삶을 표현해 줄 수 있는 단어들로 옮겨가며 펼쳐집니다. 여러가지 주제들을 저자가 다양한 역사적 기록들을 섭렵하여 설명하며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 사용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현재 중국인들의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과 분석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매번 그러한 주장과 해석의 타당함과 탁월함에 고개들 끄덕이게 하고 ,새롭게 그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게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자의 교수라는 직업에 어울릴 듯한 학구적인(?) 자세로 문제를 다루는 부분들이 있어 읽어내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 물론 이것은 처음 책을 집어들 때 가벼운 읽을 거리를 기대하였고, 저자가 말하는 다양한 것들을 다 알거나 이해하지 못한 무지에서 비롯된 면이 클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하지만 각각의 주제에 대한 저자의  방대한 고찰과 예리한 통찰력을 통해서 우리가 알고 있던 중국인의 모습을 좀더 깊고 합리적인 이해에 도달하게 만든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하여야겠습니다. 예를 들면, 중국인과 사업을 하는 사람이 왜  함께 식사를 하고 술을 마셔야 했는지, 왜 사업상으로 만나는 그들의 말이 신용이 없어보였고, 권모술수를 부리는 듯이 보였는지, 어떻게 뇌물이 그리 쉽게 일을 처리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었는지 등 불합리하게 생각되던 그들의 모습속에 담긴 역사적, 문화적 사실에 대한 지식의 깊이를 더하고 또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많은 숨겨진 '왜? 에 대한 이유'를 알려주고 있으니까요.

 호흡이 길게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부담스러움을 갖게 하기도 하지만, 인내를 가지고 읽어 낸다면 '강직한 듯 원만하고, 솔직한 듯 속물스러운 중국인'의 본 모습을 만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책이라고 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을 바꾼 어리석은 생각들 - 다른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프리더 라욱스만 지음, 박원영 옮김 / 말글빛냄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유용한 것은 우리 앞에 뻗은 길 위에 놓여 있지 않다. 그것은 잘못된 길처럼 보이는 곳에 놓여 있어 우리가 그것을 찾아내야 한다.

 하나의 진실은 그것을 진실로 여기지 않을 때 바로 '무'와 다름 없다.

 새로운 것은 모나게 보이고, 이미 완성된 것은 둥글게 보인다.

 새로운 것은 새벽의 여명 속에서 자라나기 때문에 늦잠자는 사람은 눈부신 햇살 속에서야 그것을 볼 수 있다.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자는 이미 주어진 생각의 틀과 생각의 설계도를 따르지 않는다.

 새로운 것은 그것을 누가 생각해내기 전에, 누군가 예감하고, 꿈꾸며, 기대하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을 짐작하게 할 만한 몇가지 격언들입니다. 당시에는 사람들에게 어리석게 보였던 생각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 생각에 싹이 트면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인류 역사의 근본적인 변혁이나 사고의 틀의 전환을 가져오는 출발점이 되곤 하였던 어리석은 -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어리석어 보였던- 생각들에 대한 고찰-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에서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 그리고 뉴튼과 아인슈타인 등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과 그것들이 결국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고 움직였는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내용입니다. 처음 책을 잡을 때는 어떤 구체적인 생각들에 대한 저자의 설명과 통찰력 있는 분석을 기대한 -예를 들면 하늘을 날고자 하던 인간의 어리석어 보이는 꿈이 어떤 식으로 발전하여 현실이 되고 세상을 변화시켰는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기대한 - 것이 사실이었는데, 내용은 그보다 훨씬 더 통합적이고 철학적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나 유용성에 대한 공리주의자들에 대한 내용 등 조금 구체적으로 다룬 부분들이 있기는 하나, 개별적이 사례들보다는 철학이라는 모든 분야를 아우르던 어머니격인 고전적인 학문에서 분화하기 시작하여 각각의 전문적인 분야로 발전하여 급기야는 (철학이라는) 어머니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자녀, 자연과학과 그로 인한 세상의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한 철학적 사고가 가미된 고찰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 새로운 생각이 등장하는 것은 누군가가 그것을 바라고 꿈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바람과 꿈이 하나의 생각으로 세상에 등장하게 되면, 그것은 어리석움과 다름아닌 것이어서 배척당하고 무시당하고 때론 잊혀지기 까지 한다. 때가 안된 것일 수도 있고, 아직 싹이 틀만한 밭이 마련되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순간 그러한 어리석은 생각에 대한 증거들이 수집되고 앞서가는 사람들이 받아들여서 기초를 다지게 되면서 어리석음에서 새로움의 싹이 자라게 된다. 한데 그러한 앞서가는 생각이 어리석게 취급되고, 위험시 취급되는 것은 다름아닌 이러한 새로움으로 부정되는 기존의 질서나 진실은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세상을 지탱하던 진실이 무너짐으로 인한 혼돈스러움, 그것을 사람들은 더 두려워 하는 것인지 모른다. 사람들은 여전히 새로운 것의 모남보다는 이미 둥글게 완성된 것에 몸을 의지하고자 한다. 하지만 어리석어 보이던 새로움이 싹을 틔우고 천천히 진실의 자리를 차지해가게 되면 둥근 것에 익숙해져 있던 늦잠자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새로운 햇살아래 있음을 그제서야 깨닫게 된다-지동설과 천동설의 예가 이것의 극명한 예가 되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그 새로움이 둥글게 완성되어가는 어느 곳에선가 다시 평평한 대로가 아닌 잘못된 듯이 보이는 길 어딘가를 헤매며, 새로운 것을 예감하며 꿈꾸며 사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그들의 어리석어 보이는 생각은 다시 하나의 진실이 되기 위한 여행을 시작한다...... 

 "하나의 단어, 하나의 관찰, 하나의 꿈, 혹은 부수적인 것으로 보이는 하나의 질문 등의 추상적 생각들이 갑작스럽게, 혹은 몇 십 년이나 몇 백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의 결정이나 사건, 세계를 뒤흔드는 발견이 되고, 마침내는 사람들이 하나의 구체적인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 무엇이 되는 것이다. 사고하는 사람은 구체적으로 파악 가능한 이념을 받아들여 그것의 씨를 뿌린다. 그러나 그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것은 바로 이 세상의 사람들이다." 저자의 이 말을 통해서 이야기 하자면 이 책은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이 세상의 사람들에게 그 열매를 맺는 단초가 된 하나의 생각을 받아들여 씨를 뿌린, 사고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나면 '나는 새롭고 익숙하지 않으며, 단지 관념적으로만 인식할 수 있는 것들을 어떤 식으로 다루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뜻하는 바를 조금은 이해할 수가 있게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내 '눈에 보이는 것, 쓸모있는 것,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에만 매달'리는 내 영혼은 '새로운 사고를 가진 사상가나 예술가, 발명가나 선각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시하는' 그런 부류의 열매만을 따먹고 마는 존재라는 자괴감(?)이 드는 것은, 여전히 이 책의 많은 부분이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고, 이해를 위해서는 한두번 더 정독할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솔직한 고백때문이리라는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세상을 바꾼 어리석은 생각들의 근저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철학적인 사고..... 1부 '한발 앞서 생각하는 사람의 길'에서부터 2부 '효용성의 지배', 3부 '정신에서 나오는 새로운 것'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철학이라는 안경-물론 이것도 다양한 부류로 나뉘겠지만-을 착용하고 시대를 앞서갔던 어리석은 생각들과 실용성과 효용성으로 대변되는 현대 물질문명과 가치관의 변화, 그리고 정신이라는 지극히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는 듯 하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철학자는 아직 파악되지 않는 정신을 받아들이고 그 씨를 뿌릴 뿐이다. 그러니 세상이 그것의 유용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차이의 존중 - 문명의 충돌을 넘어서
조너선 색스 지음, 임재서 옮김 / 말글빛냄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새무얼 헌팅턴의 책 '문명의 충돌'이 번역되었을 때, 그의 주장에 대해서 동조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세상사를 보는 그의 시각이 너무 인위적이고 단순하다며 비판을 가해 대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기억을 새롭게 더듬어 보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현재도 진행중인 아프간 인질사태나 이라크 전쟁, 911 사태등을 보고 들으며 어떤 생각을 할까? 라는 생뚱맞은 생각을 하기 합니다.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 자본주의와 이슬람 문명의 충돌이라는 큰 틀이 세계에 얼마나 큰 위협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생생한 외침을 들려준 사건들인데, 많은 사람들이 원인에 대해서는 많이 이야기 하지만 그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에 대해서는 귀기울일만한 의견들을 내 놓지 못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이러한 단견도 결국은 이 분야에 대한 내 지식이 짦아서 일 겁니다, 아마도.....

 이라크에서의 김선일이라는 우리 청년의 죽음, 그리고 두명이 풀려나긴 했지만 두명이 희생되고 여전히 진행중인 아프간에서의 우리 인질 사태를 생각한다면, 굳이 거창한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라는 개념을 뒤적여보지 않더라도 그 의미만큼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결국 그 의미가 살이 찢기고 피가 튀기는 삶과 생존, 그리고 죽음과 투쟁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 책은 그러한 갈등과 긴장의 현장에 희망의 씨앗 하나를 뿌리는 저자의 노력이라고 해도 될 듯 합니다. 누구나 문명의 충돌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그 원인을 지적하고, 해결책을 조금 고민하고 있는 그 지점에서 저자는 '차이의 존중'이라는 개념을 통해 모두에게 이득이 되고 풍요로울 수 있는 평화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문명의 충돌을 넘어설 수 있는 바탕이 되는 것으로 삼는 것은 아마도 종교인 듯 합니다. 저자는 요즈음 많은 비난을 받는 세계화라는 개념에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물론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 대해서도 방향은 옳다고 말합니다. 즉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만큼 인류를 빈곤에서 벗어나 풍요로 이끈 제도는 이제껏 없었다고 단언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세계화도 인류가 더 풍요로울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 합니다. 다만 문제라면 양극화, 즉 부유한 국가와 가난한 국가, 같은 나라 안에서도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에 부의 쏠림 현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고, 거기에 대해서는 저자도 분명한 이의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이야기들은 현재 세계를 지탱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인정한 상태에서 파생되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자신의 종교-유대교-를 통해서 새로이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한 노력이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각자 나름대로 세상에 공헌하는 바가 있는 것이고, 또 그렇게 공헌하는 바는 하나같이 소중한 것이다..... 우리의 태고적 본능은 차이를 위협을 느낀다. .....이상한 이야기지만, 교환(거래)를 통해서 차이는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 된다는 대단히 심오한 정신적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은 시장이다. 차이가 전쟁으로 이어질 때는 쌍방 모두가 패배한다. 거꾸로 차이가 서로의 삶을 풍요롭게 할 때는 양쪽 모두 승리하는 것이다'

 이것이 차이를 존중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에 대한 저자의 통찰력있는 표현입니다. 나와 같지 않음을 인정하지 않고 틀리다거나 교정하라고 강요한 데서 온 많은 역사적 오류와 아픔들에 대한 예는 역사책 곳곳에 널려 있는데, '너도 옳고 나도 옳다'는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충분히 비극적이지 않을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었겠지요. 그리고 인류의 풍요를 위해 내달리는 자본주의가 지금 내뿜는 문제는 인간적응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술 및 문화적인 현상들의 변화이고, 결국 사람들에게 그것을 극복할 안정감이나 정체성을 붙들어줄 대안은 니체가 죽었다고 했던 신의 영역 즉 종교안에 남아있습니다. 결국 현대로 들어서면서 종교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중요시하는 정치나 경제가 '무엇'이나 '어떻게'에 대한 대답을 줄 수 있지만 '왜'는 알려주지 못하지만, 오직 종교만이 그 대답을 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의 종교안에서 제시하는 개념들, 통제, 자선, 창조성, 협동, 보존, 화해 등이 자신과 다른 모든 이들에게 확대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뜻임을, 즉 종교가 추구하는 지향점임을 강조하며 저자는 그것들을 통해서 세계화의 문제점과 문명간의 충돌을 해소시키고 서로 어깨를 마주하고 나설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종교안에 이미 하나님의 차이에 대한 존중이 있었고, 이러한 개념에 대한 열린 마음을 통해선 현재 세계를 전율로 몰아넣고 있는 서구자본주의와 이슬람의 충돌이라는 위험도 화해와 평화의 노래로 바꿀 수 있으리라는 주장이겠지요.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내용들에는 너무 종교적이고, 학구적인, 또한 현실보다는 이상에 치우친 면이 있음을 짦은 나의 소견으로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들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는 지혜로은 하나의 길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어떻게 메꿀수 있을까?하는 물음은 여전히 남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