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표 이야기 -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정표.김순규 지음, 이유정 그림 / 파랑새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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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나이는 열하고도 세살.

 이름은 이정표.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코피가 멈추지 않아서 병원 응급실에 갔던 아이, 그리고 뜻밖에 백혈병을 진단받고 2년이 채 안되는 세월을 그 병과 씨름하며 이겨보려고 안간힘을 썼던 아이. 글쓰기를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고, 유희왕 카드 놀이를 좋아하고, 여느 아이들처럼 애완동물을 갖고 싶어하고, 놀이공원에 가거나 가족과 함께 외출하고 외식을 하는 것을 좋아하던 아이. 질병과의 사느냐 죽느냐의 싸움 가운데서도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자신의 아픔 너머의 가족들의 아픔과 노고도 볼 줄 알았고 위로할 줄 알았던 속 깊은 아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그 아이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다만 과거의 기억과 남기고 간 흔적들로만 남아 있을 따름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생사의 갈림길을 오가며 또박또박 써 내려갔던 일기가 이 세상에 흔적으로 남아 이리 한 권의 책으로 내 손에 들려졌습니다.

 아이가 죽기전에 기획되고 준비되었던 이 책은 아이가 세상을 등지고 하나님 나라로 먼저 간 뒤에 이렇게 출판되었습니다. 병을 진단받고 나서 죽기 며칠전까지의 기록이지만, 그리고 투병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질병과의 고단한 싸움을 그린 투병일기라기 보다는  여느 아이들이 자신의 일상을 그린 듯, 투명한 아이의 눈, 순진한 아이의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기록한 일상의 기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기록 안에는 한 아이의 기쁨과 슬픔과 눈물과 웃음, 그리고 그의 어머니와 가족, 친구들의 삶이, 때로는 즐겁게, 그리고 때로는 가슴 아프게 기록되고 있습니니다.

 1년 9개월여의 시간동안 아이는 백혈병을 진단받고, 항암제 치료를 하고, 골수이식을 받고, 그리고 그로 인해서 생기는 합병증 등으로 고생을 합니다. 그리고 아이는 마지막 일기에 다가올 자신에 생일에 대한 기대와 병을 이기고 즐겁게 보낼 날들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 2007년 1월 16일 피자, 치킨, 떡 스파게티, 고구마튀김으로 생일 파티할 때 나도 먹었음 좋겠고 이렇게 힘들게 이겨 내면 다시 먹고 싶은 것도 먹고 신나고 즐겁게 보낼 날이 오리라 믿는다.'

 하지만 1월 11일에 이렇게 일기를 마무리 했던 아이는 자신의 생일이 채 되기도 전인 1월 14일 숨을 거두었습니다. 자신의 희망과 미래를 모두 남겨둔 채 아이는 이제 이 세상의 아이가 아닙니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과 손끝에서 만들어진 이 글들로 인해 아마도 아이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 보다도 더 큰 희망의 씨앗을 이 세상에 뿌린 듯 합니다. 희망을 잃지 않고 산다는 것의 의미, 살아 숨쉬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에 대한 메시지를 이리 자신의 삶의 기록으로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으니 말입니다.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나이 13세, 이름은 이정표.

 그 아이는 이젠 세상에 없지만, 아이는 그의 가족과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과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  당신의 삶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 당신의 삶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은 / 우리의 만남을 통해 열매를 맺고 /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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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자전거 - 장애아 부모들이 들려주는 삶의 지혜와 용기
스탠리 D. 클레인 지음, 킴 스키브 엮음, 이나경 옮김 / 청림출판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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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 이 책의 소개를 보며, 손에 들었을 때 문득 든 생각이 '이 아이들의 부모가 바로 이 세상의 천사들이 아닐까?'하는 생각과 기대였습니다. 그리고 책읽기를 마친 지금은 이 리뷰의 제목에 덧붙인 물음표처럼 너무 단순하게 그들을 생각한 내 자신에 대한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천사의 모습이라고 그들의 삶을 표현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깊은 이해없이 단순하게 그들을 미화하는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그들에게 적절한 -내 자신이 만족할 만한- 말을 찾지를 못하였습니다. 용기있는 사람들, 사람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 삶의 깊이를 배운 이들 등등등.... 여러가지 좋은 말들을 붙들어 보지만 그것들 모두가 그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할 듯 합니다. 그냥 그들에게도 평범한, 한 아이의 엄마요 아빠로 불러주고 그리 대해 줄 수 있는 용기와 이해가 더 필요할 지 모른다는 생각뿐입니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아이가 장애가 없는 내 아이와 차별받지 않고, 그런 장애를 염려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함께 어울려 살수 있을 만한 그런 세상의 엄마 아빠로서의 모습이  간절히 원하는 삶일 듯해서 입니다. 아이들의 키의 크기가 조금 다르고 몸무게가 서로 다르듯이 그들의 아이들의 장애가 차별이나 구별이 아닌, 정상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가진 아이로서 받아들여지고 배려를 받을 수 있는 그런 건강한(?) 사회를 바라며 지금 이 시간에도 그들은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자신들에게 주어진 특별한(?) 삶의 여행을 하고 있을테니까요.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진 '다운 증후군'을 비롯하여 의료인들에게도 생소할 이런 저런 증후군이며,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자녀로 준 부모들이 글모음인 이 책 내용은 책의 한 꼭지에 나온 비유처럼 멋진 이탈리아 여행을 기대하며 떠난 사람이 뜬금없는 '잘 오셨습니다. 여기는 네덜란드입니다'라는 말을 들으며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여행일정을 변경해야 했던 경험과 삶에 대한 기록입니다. 다른 주변 사람들은 다들 멋진 이탈리아의 여행 경험을 자랑스러이 떠들어 대는데, 자신들은 여전히 네덜란드에 남아 이탈리아를 소망했던 사람들, 하지만 네덜란드에도 사람이 살고 있고, 빠르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튤립이 피어있고, 풍차가 있으며, 렘브란트가 있음을 발견한 현명하고 지혜로롭고 용기있는 부모들의 이야기입니다. 좀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다른 사람들처럼 완전히 정상인 아이를 바라고 낳았지만 기쁨이나 축복, 미래에 대한 희망 대신에 장애아를 품에 안아야 하는 고통과 절망을 먼저 맛보았던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비록 장애나 지체가 있지만 생명이 있는 그 곳에 희망도 함께 있다는 깨달음 얻고 자신들이 예정했던 인생의 여정에서 벗어난 길에 들어섰지만 이내 자녀들과 함께 장애와 지체를 가지고 사는 방법을 배우는 자신들의 길을 찾고, 그 길을 통해 정상인들에게는 주어지지 못한 자신들만의 멋진(?) 인생의 여행을 만들어가는 감동스런 과정의 기록들입니다.  그래서 나 같은 정상인 자녀를 둔 사람들에게는 단순하게 감정적인 감동과 감탄을 불러오지만, 아마도 글 속의 부모들과 같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 깊은 위로와 감동을 주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 건강한 니콜라스가 아니라고 해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 집에 조금 특별한 새 식구가 들어왔을 뿐이다.' (p34)

 ' 이 아이가 할 수 없는 유일한 일이 있다면 그건 왼손에 결혼반지를 낄 수 없다는 것뿐입니다.' (p38)

 ' 인생은 살 만한 것이다. 우리가 괜찮으니까, 당신도 그럴 것이다.' (p50)

 책을 읽으며 삶의 진실이 묻어난 많은 부모들의 감동을 주는 고백들 중의 일부입니다. 책 곳곳에 그어진 밑줄들이 그들의 삶의 고단함보다는 감사와 여유와 소망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 글들은 나같은 이에게는 단순한 감동을 선사하지만 장애아를 둔 많은 부모들에게는 위로와 희망이 될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진실로 그들이 위로받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같은 사람들에게 지혜를 주는 내용이 있어 정리하며 글을 마칩니다. -이해를 위한 자세한 내용은 '24. 장애를 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해보세요.' (p165-169)에 있습니다.

 <장애 아동을 둔 부모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

 1. 장애 진단을 받은 아이들을 고정관념으로 규정하는 말을 하지 말라.

 2. 절대 동정적인 어투로 말하지 말라.

 3. "더 나빠질 수도 있데요." 이런 말을 삼가라.

 4. 부모의 잘못일 수 있다는 투의 말은 절대로 하지 말라.

 5. 하나님이 이런 상황을 주신 이유를 설명하려 들지 말라.

 6. 성자 취급하며 말하는 것도 경계하라.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부모에게 할 수 있는 말>

 1. 일단, "축하한다!"고 말해주라. 당연히 축하받을 일이다! 부모가 비탄에 빠져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이제 막 부모가 된 사람들이다. 아홉 달의 임신, 진통, 그리고 출산이라는 과정을 거쳐, 새 아이를 품에 안은 부모가 된 것이다. 충분히 축하받아 마땅하다.

 2. 아이와 부모에게 찬사를 보내라. 우리 아들 씬을 안아본 사람들이 "아빠를 꼭 닮았네!"라고 말했을 때 우리는 감동을 받았다.

 3. 행동은 말보다 큰 소리를 낸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구체적인 도움을 실제로 보여라. 언제라도 돕겠다고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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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힘 아버지
왕쉬에량.유천석 외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클릭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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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속의 많은 아버지들처럼 지금 나의 아버지도 이 세상에서는 뵐 수가 없습니다. 나의 첫 아이가 세상에 나오기 몇달전에 돌아가셨으니까 나의 아이가 자라는 만큼, 그리고 아이가 내게 삶의 기쁨을 주는 만큼, 나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멀어지고 희미해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미 내 기억속에 남은 것들 중에 마음속에 새겨지지 않은 것들은 대부분 지워버렸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명절이면 한번씩 찾아가는 아버지의 흔적이 더 현실적인 것이 되어버린 이 시점에서, 이 책을 대하게 된것은 그래도 책을 멀리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쓰는 내게 주어진 하나의 선물이라는, 잊혀진 기억상자를 다시 정리하고 묻혀가는 소중한 의미들을 꺼내어 볼수 있었던 귀중한 축복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하찮게 보이는 것들이라도, 분명 내 마음에 남아있는 나의 아버지는 당신이 살아계시던 그 모습 그대로 내게 내 삶의 뿌리에 대한 깨달음과 삶에 대한 묵묵한 가르침을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한 평생을 농부로 사셨고, 늙어서는 큰아들의 아이들의 유모차를 밀며 도시의 빌딩 숲과 시멘트 건물들 사이에서 묻혀 사셨던 분, 인생의 어느 한 때라도 남들에게 큰 소리 치며 행세하고 살만한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땅과 흙을 일구며 사셨고 술을 벗삼아 사신 분, 평생을 땀을 흘리며 살았지만 가장으로서의 능력에는 항상 물음표 달린 시선을 받으며 외롭게 사셨던 분, 오로지 공부하는 자식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삶의 희망을 느끼셨을 농사꾼, 그리고 일하시다가 손가락 한마디를 잃고 오셔서 통증에 끙끙거리며 밤을 새시던  생생한 기억........  내 기억속에 계시는 나의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책에 나오는 많은 아버지들의 고단한 삶과 많이 닮은 모습이지요. 자식으로서 돌아보면 참으로 가슴 아픈 모습이기도 하구요. 그리고 많은 자식들이 부모님을 돌아보려고 하면 부모가 기다려주시지 않더라는 회한을 내뱉듯 나도 지금 그러고 있습니다. 당신의 그 고단한 삶에 내가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자책만이 내 마음에 남기 때문입니다.

  '자식들은 자신이 성공한 후, 나이 들어서 나중에 부모님께 효도하면 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작가 류용의 말퍼럼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해야 할 일이다. 부모님께 최선을 다해 효도하겟다는 마음이 슬그머니 들기 시작한 후면 이미 부모님은 이 세상에 안 계시기가 십상이다'

 "더 늦기 전에 아버지를 만나세요" 라고 씌여진 책의 띠지를 보며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위의 글처럼 세상에 계시지 않은 아버지들을 가진 사람에게는 깊은 상처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으로 잘났던지 잘나지 못했던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아버지라는 존재의 울타리 안에서 세상을 알아가고 인생을 배웠을 것이고, 그런 아버지의 존재는 분명 가장 소중한 인생의 기초일 터인데 그걸 저리 낱낱히 파헤칠려는 "더 늦기 전에 아버지를 만나세요"라고 선전해대는 글이 그리 느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이제는 안 계셔서 아무것도 해드릴 게 없다는 안타까움이 이 책을 읽으며 느낀 모든 것이 아니고, 인생을 살면서 자신의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한 사람에게나 나처럼 회한만 품고 사는 사람에게는 다시금 화해와 감사의 시간, 그리고 당신으로 부터 세상을 배우고 삶을 배우고 나눔과 사랑을 배울 수 있었다는 간절한 고백의 시간이 될 수 있다는데 생각이 이르러서는 내 삶을 촉촉하게 하고 기름지게 하는 부드러운 권면의 목소리로 듣게 됩니다. 

 부모가 되면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난 아직도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건만 그 마음의 깊이를 다 헤아리지 못합니다. 그리고 내 아버지의 엄격했던 모습보다는 온유하고 다정한 모습을 더 선호하기에 아이들에게 그리 대하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아이들의 기억속에 남을 나의 모습은 내가 나의 아버지를 돌아보며 가지는 감사와 가슴이 아프지만 뿌듯한 기억과 같은 그런 삶의 긍정적인 모습으로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고리끼의 글처럼 내 인생이 비록 화려하고 다른이에게 내놓을 만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에게는 가장 위대한 책이 될 수 있기를 -내 아버지의 삶이 내게 그리 비춰졌듯이- 바라며, 나의 아버지가 삶에서 보이셨고 내 가슴에 새겨놓으신 '아버지의 사랑'을 나의 아이들과 나누며 살고 싶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영혼을 감동시키는 가장 위대한 책이다. 그 책을 이해한다면 인생을 이해할 수 있다. -막심 고리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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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훔쳐보는 선생님 일기
문현식 지음, 홍윤표 그림 / 철수와영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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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작년에 큰 아이가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의 긴장감 넘치던 시간들이 문득 생각납니다. '아이가 잘 해나갈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서부터 시작하여 혹시나 왕따 당하는 건 아닌가, 우리가 부모로서 제대로 가르치긴 한 걸까, 선생님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등의 처음 대하는 낯선 일들에 대한 부담스러움과 걱정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학년 초에 아이들 생일파티에 다녀온 아이들 엄마가 다른 엄마들이 초보 학부모라서 그러는데 그렇게 걱정할 것 없다고 태평스러이 이야기하더라는 대화도 기억이 납니다. 이미 큰 아이를 윗학년에 올려보낸 엄마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몰라서 매사에 조심스러워 하는 우리같은 초보 학부모들의 모습이 아무래도 자신들의 과거를 돌아보는 듯한 신기한 생각이 들었을 듯 합니다. 

 이 책을 대하며 그 때 이책을 대했다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그런 걱정들을 모두 잠재워줄 수 있는 것은 실생활에서 부딪힌 경험에 의한 것이겠지만,  그런 경험이 부족한 학부모들에게 눈에 안보이는 많은 믿는 구석들을 만들어 줄 수 있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초등학생들을 위한 일기에 관한 책들이 아이들의 일기를 보여주고 선생님들의 짧은 평가를 달아 놓은 것들이거나 아니면 글씨기나 일기에 대한 이론적인 면에서 설명한 일기를 어떻게 쓰도록 지도할 것인가하는 식의 서적들이었는데, 이 책은 그나마 선생님의 생각이나 느낌, 그리고 학생이 일기를 쓴 배경에 대한 의견이 상당히 솔직하고 자세히 적혀 있어서 아이들의 세계를 대하는 선생님들의 마음과 생각을 단편적으로나마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이럴 땐 이런 생각과 느낌을 갖게 되는구나 하는 이해와 공감들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일기쓰기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대한 부모의 이해를 키우는데 한 걸음 진보한 기획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아이들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학교 생활과 거기에 대한 선생님으로서의 고민과 느낌과 생각들을 함께 보고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음으로 해서 무한하게 자랄 수 있는 아이들의 가능성과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아이들을 인도하고 지도한다는 것의 의미도 다시금 돌아볼 수 있게 될 듯 하니까요. 하지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이 책의 내용이 학교생활과 학생들 지도과정에서 생기는 어려움이나 단상들에 대한 선생님의 자유로운 주제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닌 학생들의 일기를 예문을 삼듯이 앞세우고 그 내용에 대한 선생님의 답글 형식을 취함으로 인해서 너무 교육적인 면으로 흐른, 중간중간 진솔한 감정이나 느낌이 표현되어 있기도 하지만 저자 자신이 스스로를 너무 선생님으로서의 역할에 한정시켜서 아이들의 글에 대답한 형식이 되어버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다음에는 좀더 선생님들 자신의 이야기를 쓴 글들을 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사적인 것들을 공적인 곳에 들이대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매일 또는 매주 아이들 일기를 보아주시는 선생님들 중에는 꼬박꼬박 자신의 일기장도 곱게 메꾸어 가시는 분들이 꼭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고, 교육현장에서의 기쁨과 슬픔의 기록들, 나름대로 고민하며 그것들에 대한 해결책이나 길을 구하는 기록들이, 선생님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을 위해서도  더욱 다양하게 나와야 하리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책 말미에 있는 일기 쓰기의 중요성과 일기 쓰기가 잘 안되는 이유, 올바른 지도 방향에 대한 글들은 나오같은 학부모들이 깊이 새겨 읽고 소화시켜서 우리 아이들에게 내어놓는다면 참 좋은 지도자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순전하고 때묻지 않은 아이들의 마음을 읽게 해주고, 세상에 아직 물들지 않은 눈처럼 희고 계곡물 처럼 맑고 고운 생명의 속삭임을 듣게 해주고, 교만하지 않은 겸손하고 낮은 곳에 처할 줄 아는 마음과 착하고 슬기로운 아이들이 세상을 보게 해준, 그리고 그러한 보배로운 아이들을 정말로 진솔하게 사랑하고 보살피고 있는 저자와 우리 대한민국의 모든 초등학교 선생님들께 감사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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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아빠가 잠시 잊고 있었단다 - 늘 바쁜 아빠가 가슴으로 쓰는 편지
윌리엄 란드 리빙스턴 원작, 코하세 코헤이 글, 후쿠다 이와오 그림, 이홍렬 옮김 / 깊은책속옹달샘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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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과 살갑게(?) 지내는 아빠인지라 특히 둘째 아이는 무척이나 아빠를 괴롭게(?) 하곤 합니다. 틈만 생기면 '아빠 게임해요.' ' 다이아몬드 게임 한 판만요.' '오늘은 저랑 축구하러 가실거죠?' '목마 태워 주-세-요' '피터팬 책 읽어 주세요' ' 말타고 싶은데 한번만 태워 주세요' 등등등..... 끝없는 요구를 하고, 조금이라도 소홀할라치면 휙 돌아서서 뾰로통해져서는 시위를 하곤 합니다. '밥을 안먹을거야'는 기본이고, 심할 때는 훌쩍이며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으니 '짐을 싸서 집을 나갈거야'라고 투정을 부리기도 합니다. 그러면 어떤 부모들은 버릇 고친다고 정말 짐을 싸들려서 문밖으로 내 보낸다고도 하지만.... 아직까지 거기서 아이를 억지로 이기지는 않았습니다. 그에 반해 이제 초등 2년이 되는 큰 아이는 어려서부터 동생덕에 다 큰 아이 취급을 받아서인지 분위기가 아닐 듯 하면 이내 자기의 의견을 접고 아빠의 말에 따르곤 합니다. 아빠에게 안기는 것도 동생이 안 보이거나 아빠가 정말 기분이 괜찮아 보일 때만, 또는 아빠가 정말로 안된다고 하지 못할 약점을 잡혔을 때만 당당히(?) 요구합니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어도 부모가 안된다고 하면 이내 '그럴께요' 하고, 매번 동생과 물건이나 먹는 것으로 다투다가도 시끄러워질 듯 하면 알아서 먼저 양보를 해 버리곤 합니다. 그런 아이를 보면 아버지로서의 나의 관점은 항상 '이제 우리 첫째가 다 컸네' 하는 식이었습니다. 아이의 마음속을 다 헤아리지도 못했고, 헤아려 볼려고 노력도 하지 않은 게으른 아빠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두에 이리 나의 아이들과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문득 이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이 생각들을 통해 아이들 앞에서 아빠로서 정말로 중요한 무언가를 나도 잃고 있었다는 반성 때문입니다. 부모로서 내가 작은 아이의 요구들을 때로는 괴롭게 생각하고 큰 아이의 어른스러움을 당연하게 생각하곤 하는데, 아이들의 입장에서 반복되는 부모의 요구나 간섭, 또는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 어찌 받아들여질까 하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었습니다. 이거해라 저거해라 하는 것이 아이들 입장에서는 참 괴롭고 힘든 일이겠다는 생각도 들고, 좋은 것을 골라 먹이고 입히는 것이 아이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세상살이가 바쁘다는 핑계와 다른 사람들과 어쩔수 없이 해야하는 경쟁관계 안에서 생각하게 됨으로 인해서, 아이에게도 사랑과 소망이 담긴 그런 관계맺음 보다는 공부를 하는 것이나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하는 것, 영어공부를 잘 하는 것 등으로 먼저  칭찬하고 관심을 보였던 모습을 뒤돌아보면 못내 부끄러움이 고개를 숙이게도 만듭니다. 아이와 나의 관계는 그런 것이 기초가 된것이 아닌데, 살다보니 그렇게 되어버린 모습속에서 아이에게 가르친 것도 그런 형식적이고 눈에 나타나는 성과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을 가르친 것 밖에 안 되었다는 반성도 들구요. 그러고 보니 내 아이들에게 단지 그들이 나의 아들이고 딸이라는 사실자체만으로도 기쁘다는 고백을 하고, 그런 순수한 마음으로 그들을 대한 것이 언제적인지 생각나지 않습니다. 내가 어렸을 적에 나의 부모들에게 바랐던 그 소박한 꿈들의 꾸러미를 아득하게나마 간직하고 있는데, 그게 어른이 된 지금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마음의 다락방 한 구석에 그리 처박혀 있습니다. 그걸 다시 한번 관심을 가지고 풀어보았다면, 지금 이 순간이 이렇게 많이 부끄럽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속에서 장난감을 치우지 않는다고, 놀이터에서 놀다가 옷을 더럽혔다고, 인사하는 태도가 공손하지 못하다고 사사건건 아이에게 잔소리하고 호통치고, 매번 비꼬는 듯한 아버지의 모습은 바로 나도 모르는 아버지로서의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나름대로는 아이를 잘 이해한다고 하였지만, 결국은 나의 아이들의 눈높이로 고개 숙이지 못하고, 나의 눈높이로 그들을 대하고, 그들에게 요구하고, 또한 훈육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이 책속에서 잠든 아이를 보며 아빠가 기도했던 고백도 고스란히 나의 것임을 고백합니다. 다만 좀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세상을 둘러보고, 아이들의 생각과 생활을 조용히 들여다 보는 반성의 시간이 많이 부족했음을, 그래서 그들이 잠시 나의 천사들이었음을 잊고 살았다는 고백을 덧붙입니다.

 '아이들아!  아빠가 미안해!  너희들이 나의 천사였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거든....'

 나의 천사들 앞에 선 나는 누구일까요? 

 이제까지는 아니지만 앞으로는 이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아이들을 내려다 보지 않고 무릎을 꿇고 똑같은 눈높이에서 대화를 하고 웃고 우는, 사랑스런 두 천사를 가진, 자랑스런 이름,  아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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