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 06.14

 

0. 에듀케이션널 스릴러?

여고괴담은 공포영화라고 하기엔 너무도 현실비판적인 측면이
있다.(물론 난 공포 혹은 호러영화로 이야기 되는 영화들의 주된
특성을 알지 못하지만...) 사실 그 영화가 그리 소름끼친다거나
무서움을 전해 준 것은 아니기에 그것이 공포영화인지, 아니면
현실 비판을 과장을 통해 재현해내고자 했던 것인지, 또 아니면
그러한 현실이 이젠 아무런 감흥도 못 미칠 정도로 내게 혹은
우리에게 체화되어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여고괴담을 입시위주의 교육현실을 비판한 교육영화의 한
부류로 분류하고 싶다. 늙은여우와 미친개로 대변되는 '선생님'
의 세계와 교복을 통해 획일화된 상징성을 갖는 아이들...
물론 학교라는 현장엔 코찌를 하고 '씹할과 썅년/좆나와 미친년'
이란 단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아이들도 있고, 김규리
(작중 이름을 까먹었다~ 크!!)와 같은 대학진학을 포기한, 그래
서 늘 반 평균을 깎아먹는 아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이 공간에서 버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진주'
로 대변되는 조용한/아무에게도 그들의 존재를 들키지 않는 부
류의 아이들처럼, 쥐죽은 듯이 적응하던가 아니면 아예 사라지

는 것일게다. 혹시라도 그들이 그들의 존재를 들키는 날엔 싸이
코 선생의 스트레스 해소용이 되어 버리고 만다.

0. 이 영화는 극단적인가?

이 영화는 물론 누구의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극단'적이라는
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부분의 선생들을 싸이코 혹은
정신이상자로 폭력선생이나 학생들 사이를 이간질 시키는 자,
고3의 비인간화를 조장하는 인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기득
권의 눈으로 이 영화를 본다면, 혹은 경험하지 못한자로써 이
영화를 본다면 분명 극단적이거나 '과장된 현실'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공안에서 인간적이기를 포기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또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자 했던 '문제아'에겐 그것은 분명
한 현실이다.

0. 귀신만이 적응할 수 있는 공간-학교

"9년간 난 나의 존재를 들키지 않았어~/학교의 한 부속품처럼
그냥 자리를 채우고 앉아 있기만 하면 됐지."

결국 귀신임을 들켜버린 진주가 9년전의 친구이자 지금은 그 학
교의 신임교사가 되어 돌아온 은영에게 하는 말이다. 처음에는
그냥 졸업장이 갖고 싶어 학교를 계속 다니고 있다는 진주... 그
러나 9년 동안 계속 학교를 다니고 있는 그녀는 친구가 없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금기이자 사치이므로.
그리고 사귐이란 선생들로부터 허락되지 않은 이단적 행위이므
로~
이 영화에서 귀신 곧, 비인간으로 대표되는 진주는 학교라는 공
간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지/없는
지 조차 알 수 없는 존재.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김규리
와 같은 인물은 이 공간에서 살아남기가 힘들다.

이 영화에는 성적만능 이데올로기와 경쟁 이데올로기 그리고 획
일주의로 대표되는 학교. 아이들에게 학교의 부속품이기를, 감정
없는 인간이기를, 아무런 의미없는, 왔다가 그냥 훌쩍 가버리면
되는 인간이기를, 있는 듯 없는 듯한 인간이기를, 가장 비인간이
되기를 가르치는 공간인 학교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기존의 선생으로 대표되는 늙
은여우. 신임교사 은영에게 "너도 결국 늙은 여우가 될꺼야~"라
고 말하는 진주를 통해 이 영화는 교육의 폐단이 계속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여느 스릴러처럼 이런 일들의 반복을 상
징하듯, 만년 2등만 하다가 자살해버린 한 아이가 진주가 사라
진 자리를 대신하며 영화는 끝난다.

0. 너도 결국 늙은 여우가 될꺼야~


"너도 결국 늙은 여우가 될꺼야"
난 이말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고3을 거친 사람이라면 그 공간
의 소통없음과 숨막힘, 그리고 입시제도에 대한 문제의식을 경
험했을 텐데도, 억압의 상태에서 벗어난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언
제그랬냐는 듯이 그 곳을 잊고, 아주 당연한 "통과의례" 정도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아이들은 죽어가는데....난 이미
늙은 여우가 되어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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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3. 12.

[유리가면] 때문에 미칠 지경이다.
"남자들은 죽을 때까지 [삼국지]를 여러 차례 읽는다는데, 나는 [유리가면]을 죽을 때까지 세 번은 볼 것 같다"는 누군가는 리뷰를 보고, 또 만화와 관련된 책을 만들면서, 또또 만화, 하면 [유리가면] 정도는 읽어야 한다는 혹자들의 말들에 귀쫑긋하여, 이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았던 만화.
역시나.. 역시나... 주인공을 따라, 그의 연극에 대한 집념과 몰입에 빠져 들다 보면
어느새 나의 삶에 대해서까지 뭔가 더 가치로운 것, 빠져들 무언가를 찾게 만드는 만화다.
하루하루를 대충 넘기는 삶이 아니라, 자신 속에 흐르는 욕망을 쫓아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무언가를 미치도록 소중하게 생각하고 곧 빠져드는 삶이란 얼마나 멋찐가.
이제 겨우 3권을 집어 들었을 뿐인데도, 너무도 매혹적인 만화여서, 내 일상을 되집어 보지 않고는 배겨나지 못하게 만드는 만화여서 정말 미치겠다.
작가는 어찌 이런 만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만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이 책을 만든 작가 또한 이런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 에휴... 다시 살아야겠다는, 제대로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아휴~ 넘 멋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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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ylontea 2004-03-12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유리가면 처음 이세요? 정말 적어도 3번은 읽어야겠지요?
근데... 유리가면이 완결이 안난 만화라 하면 더 화나실까여?
그러니...끝을 기대하지 마시고, 그냥 읽는 순간만 즐기시기 바랍니다.
(갑자기 페이퍼들이 너무 많아 졌군요..)
글구... <아침형 인간> 빌려드릴까요? 5호선에 접선해두 되구... 접선이 잘 될까?
4월17일에 알라딘 번개가 있을 예정입니다.. 그때 오시면 빌려 드려두 되구...
근데... 제 서재에서 말씀 하셨듯이 안보셔두 되요... ^^

찬타 2004-03-12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알라딘 번개! 그런 데는 어찌 참여할 수 있을까요? 가고 싶어요, 가고 싶어요~ 어떤 사람들이 폐인의 길에 들어섰는지, 보고 싶어요~ 알고 싶어요~ 저 꼭 데려가주세요~(후다닥 달력에 체크해 놨음...^^) 실론티님 나 데려가야해요~

2004-03-12 1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 3. 11.

어제는 참 오랜만에 여유로운 생활을 해봤다.
야근을 하려다 머리가 지끈거려 7시쯤 회사를 나서 집으로 향했다.
동네에 있는 비디오와 만화를 함께 대여하는 곳에 가서
[유리가면] 1, 2권과 [스캔들]을 빌렸다.
[디스] 3권도 있으면 빌리려했는데 아저씨는 처음 들어보는 만화라고 했다.
98년에 나온 세 권짜리 만화인데... 여기 없으면 왠지 없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유리가면]을 드디어, 집어 들었다는 생각에,
또 오랜만화 영화 한 편을 맛있게 먹어볼 작정이었으므로
개의치 않았다.

컴퓨터 앞에 앉아 오랜만에 맛본 영화, [스캔들]
[대장금]을 하지 않는 날이면, 집에 가서 할 일이 없는냥
이레저레 낙이 없던 차였는데,
왜 영화를 볼 생각을 못했었는지...
오랜만이어서 더욱, 즐겁게 또 맛있게 영화를 봤다.
"그대를 알고도 사랑하지 않는 것, 사랑한 뒤에 그것을 거두는 것, 이 두 가지는 내게 불가능한 것이오."
시대의 바람둥이 배용준이 하는 이 말이 꽂히고,
전도연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잠시 순정만화를 보듯,
즐거웠다.
거기에 너무도 부드러워 보이는 정사 씬도.. 으흐흐흐

그리고 오늘 아침. 잡아든 [유리가면]
지하철에서 너덜너덜하여 곧 찢어질 듯한 1권을 간신히, 조심조심 넘기며 힘들여 보며 왔다.
또 오랜만에 접하는 주인공의 몰입과 열정.
나도 이럴 수 있었으면 싶은 주인공에 대한 동경이 물씬 솟는다.
이래서 만화는 참 좋다.
지루한 내 일상에 또 하나 새로운 빛을 선사하니까.
계속 읽고 싶은 충동이 일고 있지만,
어쩌냐, 회사에 메인 몸인 것을...
얼는 일을 끝내고 집에 가는 길.. 조심 또 조심 책장을 넘겨야지..

참.. 어제 그런 책도 잠시 봤다.. [위대한 남자들도 자식 때문에 울었다]는. 첫장에 실린 케네디 가의 남자들.. 그중 변변찮은 막내 아들 이야기를 읽었는데, 정치계 비화 같이 읽히는 것이, 꽤 재미있었다.. 흔히 인물을 다룬 책들이 공을 과하게 평가하면서 미화시키기 일쑤인데, 이 책은 오히려 음모론의 시각에서 모든 일들이 엮이고 설키는 식이어서 꽤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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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ylontea 2004-03-11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리가면> 다시 보고 싶네요.. 정말 재미있는 만화인데.. ^^

찬타 2004-03-11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요즘 점심을 싸가지고 다녀서, 점심 먹고 남은 시간에 1권을 마저 봤는데..
아휴~ 일하기가 싫어지는 거 있조.. 계속 읽고 싶은 것이.. 에고고고.. 병나겠어요.. 궁금해서..
 

2004. 3. 10.

이희재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읽었다.
어렸을 적, 책이라고는 백과사전류의 책과 위인전밖에 모르던 내게
언니가 '성장소설'이라며 일독을 권했던 바로 그 책을
십여 년이 지난 지금, 제제와 뽀르뚜까의 모습이 살아 숨쉬는 출판만화로 읽은 것이다.
그때 그시절엔 언니가 사다준 첫 '내' 책을 꺼이꺼이 읽으며
때론 슬퍼하기도 하고 또 때론 가슴뭉클해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한 권을 땠다는 뿌듯함에,
무슨 나무 이름이 이리 어려운가, 잘 외워지지도 않는 책이름을 열심히 되뇌이던 책이었는데,
이번에 인물들이 살아 숨쉬는 만화로, 대화가 중심이된 새로운 형태의 책으로 다시 만나보니
사이사이 이야기 흐름을 놓쳤던 부분들까지도 모두 생생히 와닿았다.
말썽꾸러기에 사고뭉치 제제. 만날 형에게 누나에게 동네 사람들에게 또 친구들에게, 그리고 아버지에게 혼나고 두들겨 맞아가며 아픈 유년 시절을 보낸 제제. 그 속에서도 뽀르뚜까 아저씨와의 새로운 관계를 통해 소중한 사람들이 있어 삶이 그래도 살만함을, 풍부함을 느꼈던 제제의 모습을 다시 드려다 보면서,  어린 시절 뽀르뚜까 아저씨가 내게도 있었으면 했던 나를 만난다.
이제는 내가 누군가의 뽀르뚜까가 되어야 할 차례라고 느끼게 되는 순간, 이미 나도 어른이 되었음에 잠시 아쉬움이 남지만, 그 감동 또한 고스란히 남아 가슴 속 깊이 자리잡는다.
만원 지하철 속에서 눈물을 훔치게 만드는 책. 좋은 작품이 때로는 청소년용 버전으로 각색되고 학습용으로 둔갑하여 제맛을 잃기 십상인데 이희재가 만화버전으로 다시 창조해낸 이 책은 다시 원전을 들여다보고픈 충동을 일으킨다. 좋은 책은 좋은 어른을 만든다. 좋은 어른들이 모여 세상을 좀더 따스하게 바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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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ylontea 2004-03-10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버전이라...
저는 예전에.. 고등학생일때 읽었어요... 책으로... 그때 끝부분을 버스 안에서 읽었는데.. 눈물이 퐁퐁 나서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이 마구 쳐다보던 기억이 나네요.
 

2004. 3. 9

오랜만에 괜찮은 책 두 권을 읽었다.
하나는  담배에 얽힌 사연과 사람살이를 다룬 [디스]라는 만화책이고
또 하나는 웬만한 어른들이라면 청소년기에 모두 뗐을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출판만화 버전, 이희재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이다.
후자는 아직 반 정도밖에 읽지 않았지만, 여전히 가슴뭉클한 감동이 전해 오는, 역시나 역작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에 대해서는 내일 다시 쓰도록 하고.
[디스]. 적어도 한국에서는 금연의 시대를 장식하게 될 요즘이어서 더욱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참, 독특하면서도 신선하고, 발칙하면서도 애잔하다.
담배를 소재로 어떻게 이런 찐한 감동을 전해 줄 수 있을까.
사람살이라는 것, 소외된 사람들의 아픔 속에 들어가 앉은 담배를 구원해 내고야 마는 문홍미의 시선이 느껴지는 걸작이다. 98년에 나왔다는데, 나는 왜 이 만화를 이제야 알게되었을까.
만화가 나올 무렵, 열심히 사재기하고 리뷰 팍팍 올리며 작가에게 힘을 실어줬다면, 이렇게 훌륭한 작가들이 나름의 작가정신을 조금은 더 핏대 세우고, 한 길을 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독자의 게으름을 탓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문홍미에 당분간은 폭 빠져들고야 말 것 같은 불길한 예감.
아~ 좋은 만화는 너무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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