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 강국 한국의 기회  [04/10/11]
 
한국이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앞서가는 것을 젓가락을 사용하는 우리민족 특유의 셈세한 손놀림에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우리의 손놀림이 섬세함을 요하는 분야에서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손놀림이 또 하나 빛을 발하는 분야가 있는데, 바로 일러스트레이션 분야가 그것이다.

어느 나라나 근래 어린이 책은 일러스트레이션의 예술성과 정교함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 한국의 어린이 책은 이 분야에서 국제출판계가 항시 눈여겨 볼 정도로 앞서있다. 최근 국제도서전에서 외국출판사로부터 판권을 계약한 책들은 거의 대부분 어린이 책이다. 일러스트레이션이야말로 언어가 달라도 쉽게 파고 들고, 객관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사실 국내 출판계의 ‘큰 손’들은 대개 어린이책에 집중하는 출판사들이다.

한국이 2008년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 아동도서전 주빈국(主賓國)으로 선정된 것은 바로 한국 어린이 도서의 이같은 우수성이 평가를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세계 최고 권위의 아동도서 경쟁장인 40년 전통의 볼로냐 도서전은 매년 4월 열리는데, 한국은 올해 ‘팥죽할멈과 호랑이’(웅진닷컴) ‘지하철은 달려온다’(초방)가 이 도서전의 ‘라가치’상 픽션·논픽션부문 우수상을 각각 받았다. 볼로냐 도서전 주빈국 행사 규모는 프랑크푸르트 주빈국행사만큼 크지는 않지만, 우리 문화를 알리는 좋은 기회임에는 틀림없다.

한국이 2005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이어 2008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도 주빈국으로 선정된 것은 전자제품 등 상품만 수출하는 나라라는 경제적 이미지에 문화적 이미지를 더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문제는 또 우리의 ‘준비’인 것 같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행사 준비과정에서 보여준 여러 파행적인 모습을 반복하지 않도록 정부와 출판계가 노력해야 할 것이다.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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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World 窓]2004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사치

매년 10월 둘째주 목요일이면 각 언론사의 문학담당 기자들은 긴장 상태에 돌입합니다. 한국 시각으로 저녁 8시면 어김없이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 관련 1보가 한 줄짜리 문장으로 외신을 타고 날아들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불과 두 시간여 만에 관련 해설기사를 작성해야 하는데 다행히 수상자가 널리 알려진 인물이어서 자료 확보가 용이하면 모를까,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낯선 문인일 때는 당황하게 마련입니다.

엊그제 발표된 금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엘프리데 옐리네크도 우리에게 그리 익숙한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예전과는 달리 인터넷 시대여서 옐리네크는 쉽게 정체를 드러내더군요. 하룻밤을 지새고 나니 속속 날아든 외신들은 그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과 근황들을 자세하게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사실은 그녀가 ‘사회 공포증’을 앓고 있어서 수상식에 참석하지 못할 예정이며, 생계를 꾸리기 위해 근년에는 번역 일에 매달려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녀는 어느 인터뷰에서 “가장 큰 사치는 그저 쓰고 싶은 글만 쓰는 것”이라고 밝혔더군요. 다행히도 옐리네크는 15억원에 이르는 상금을 받게 돼 이제 그 사치를 누릴 수 있게 된 겁니다.

노벨문학상까지 받을 정도로 지명도 높은 작가도 “쓰고 싶은 글만 쓰고 싶다”는 소망을 말할 정도라면 문인의 길이 얼마나 많은 희생과 용기가 필요한 것인지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물론 어떤 글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강자의 편을 드는 것은 문학이 아니다”고 말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해할 만합니다. 아무도 문인들에게 희생과 용기를 주문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본인들이 쓰고 싶어서 쓰는 것이지요. 문학이 시장에서 죽었다고 하소연하는 한국 문인들에게 독자와 타협하지 않는 글쓰기로 일관하다가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한 옐리네크의 사례는 약일까요, 아니면 오히려 독일까요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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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의 출판전망대]'상상+현실=팩션' 의 시대  [04/10/09]
 
지식 '편집' 이 능력이다

이 글을 읽을 정도의 사람이라면 거의 모두가 ‘e-콘텐츠’의 중독자일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거나 회사에 출근하면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켠 다음 무엇인가를 뒤진다. 그때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은 ‘키워드’다. 나는 이런 습관에 감히 ‘검색형 독서’라는 명패를 붙여놓고 이런 습관이 책 문화를 어떻게 바꿔놓을까를 몇 년째 고찰해왔다. ‘원 테마 잡지’도 몇 년째 펴내고 있으며 <21세기 지식키워드 100>이나 <21세기 문화키워드 100> 같은 단행본도 만들어 세상의 반응을 떠보았다.

그 결론은 이렇다. 지금 책 시장은 철저한 분할과 통합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키워드 100’에 들어있는 키워드들은 모두 한 권의 책으로 다시 태어난다. ‘개론’이니 ‘원론’이니 하는 책들은 어느 틈에 사라지고 하나의 키워드가 제목인 책만 넘쳐난다. 이런 경향은 실용서 영역에서 시작되어 이제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일상화되고 있다.

책의 제목이 ‘파트워크’형 정보로 잘게 쪼개지는 대신 설명하는 방식은 통합적이다. 가령 <한낮의 우울―내면의 어두운 그림자 우울의 모든 것>(민음사)은 과학, 철학, 역사, 정치, 문화적인 모든 지식을 통합해 우울증을 설명한다. 이런 서술이 가능해진 것은 네트워크와 디지털로 대표되는 정보기술혁명 때문이다. 새로운 정보 패러다임에서는 우울증과 같은 하나의 ‘단서’를 실마리 삼아 인터넷에서 자기 멋대로 여행(서핑)하다가 인류가 이미 생산해놓은 ‘충분한 지식’을 활용해 자기 나름의 상상을 통해 한 권의 책으로 생산할 수 있다.

이 책의 지은이 앤드류 솔로몬은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다. 지금은 대학에서 우울증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다. 그처럼 책의 지은이는 ‘정상’이나 ‘중심’을 향해 외길을 파던 ‘계단식 사고’의 소유자가 아니라 거미집처럼 널려있는 지식을 자유롭게 ‘편집’할 줄 아는 ‘거미집 사고’의 소유자들로 바뀌어가고 있다.

정보를 편집할 수 있는 능력(리터러시)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그것은 끝없는 자기 노력을 통해 가능하다. 그런 노력을 하고자하는 사람들이 즐기는 소설이 바로 ‘팩션’이다. 사실적 상상력인 ‘팩트’와 허구적 상상력인 ‘픽션’이 하나로 결합(퓨전)돼 간다는 것은 나도 몇 년 전부터 글을 써왔지만, 팩션이라는 단어와 그 의미에 대해 확실하게 인식한 계기는 김성곤(서울대 영문과) 교수의 최근 글에서였다.

팩션은 지금 소설시장에서 질풍노도와 같다. 댄 브라운의 <다 빈치 코드>(베텔스만코리아)는 이미 70만 부를 넘어섰다. 그의 최근작 <천사와 악마>는 국내에서 출간하자마자 초판 6만 부가 다 나가는 바람에 10만 부를 다시 발행했다. <단테클럽>(매튜 펄, 황금가지), <진주 귀고리 소녀>(트레이시 슈발리에, 강), <4의 규칙>(이안 콜드웰 외, 랜덤하우스중앙), <임프리마투르>(리타 모날디 외, 문학동네) <곤두박질>(마이클 프레인, 열린책들) 등 팩션형 소설들이 연이어 출간되며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이 소설들은 한결같이 한 사건을 실마리로 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소설이 전개되면서는 사건해결에 필요한 수많은 단서가 제시된다. 그 단서를 통해 독자는 마음껏 자기 상상을 하며 사건을 해결해 간다. 물론 그 상상은 “현실과 상상, 의식과 무의식, 과거와 현재, 진실과 허구” 사이의 모든 구분을 허무는 것이며 모든 정보를 통합한다. 이처럼 인터넷에서 시작된 ‘검색’의 습관이 이제 소설시장의 판도마저 바꿔놓고 있는 셈이다.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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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프랑크푸르트에서의 불안 [04/10/08]
 
6일 개막한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한국관. 180평 규모의 전시관 한쪽 면에 우리나라 대표시인 10명(한용운 김수영 정지용 김소월 김영랑 이상 이상화 서정주 박목월 윤동주)의 대형 얼굴사진이 죽 늘어섰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내년 이 도서전의 한국 주빈국 행사를 앞두고 홍보를 위해 마련한 ‘한국의 명시전’이다. 영어로 번역된 한국시 가운데 대표시 10편을 고르고, 감수성이 묻어나는 시인의 흑백 사진을 연보와 함께 보여주는 인상적인 전시회다.

그런데 시인들의 연보를 읽어가던 중 잘못된 곳이 여러군데 눈에 띄었다. 이상은 본명이 ‘김해경’인데 ‘Kim Hae-young’으로 써 놓았고, 요즘으로 치면 단과대학인 ‘경성고등공업학교’에서 공부한 학력을 ‘studied architecture at high school(고등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이라고 적어 놓았다. 서정주의 대표시 ‘화사(花蛇)’도 그냥 ‘The Snake(뱀)’로 옮겼다. 김소월 작품이 모두 250여편(실제는 154편)이라거나, 한용운이 어릴 적부터 승려(17세 출가, 26세 법을 받음)라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내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행사는 좁게는 독일, 나아가 유럽 전역에 한국을 알릴 소중한 기회이다. 전력투구를 하면 주빈국 행사를 치른 4년 뒤인 94년 오에 겐자부로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일본처럼 ‘값진 수확’을 거둘지도 모른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문화에 대한 자긍심은 물론, 그것을 준비하고 홍보하는데도 빈틈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서로 생각과 손발이 맞지않아 여전히 갈등을 빚고 있는 도서전 조직위원회와 출판계, 아직 한 푼도 확보하지 못한 민간지원금, 여기에 이런 ‘실수’까지. 주빈국 행사를 일년 앞두고 찾은 프랑크푸르트에서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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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레터] ‘번역의 힘’ [04/10/08]
 
올해도 노벨 문학상을 향한 한국인의 소망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매년 그렇듯이 ‘혹시나’ 하면서 힐끗거렸던 시선을 거두며 ‘역시나’라는 탄식을 삼킬 수밖에 없었지만, 하도 오랫동안 되풀이해 온 탓인지 무덤덤하기만 하다는 분들이 많더군요.

그러다가 이웃 일본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 오에 겐자부로라는 2명의 수상자를 냈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되면, 은근히 ‘질투는 나의 힘’이라며 어금니에 힘을 줍니다. 또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번역해서 노벨문학상 수상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미국인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라는 인물을 떠올리게 됩니다. 때마침 사이덴스티커가 쓴 자서전 ‘나는 어떻게 번역가가 되었는가?’(씨앗을 뿌리는 사람)가 최근 나와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이 책은 미국의 가난한 산골마을 출신 소년이 전쟁 도중 해병대 통역요원이 돼 일본어를 접한 뒤 일본 문화에 심취해 전후에 외교관으로 도쿄에 부임하고, 일본 문학을 영어권에 전파하는 대변인이 된 과정을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사이덴스티커는 ‘설국’을 번역하면서 원작자를 찾아가 “선생님 이 부분은 좀 난해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작가는 성실하게 열심히 작품을 읽은 후 “그렇군요”라고만 대답했다는 겁니다. “더 이상 묻지 않는 것이 현명했다”는 겁니다. 또한 그는 ‘기차가 지방 경계를 통과하는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그곳은 설국이었다. 기차의 창문 밖으로 밤의 밑바닥이 하얗게 펼쳐져 있다’는 그 유명한 소설의 첫 문장을 처음 번역할 때 ‘밤의 밑바닥’을 빼먹은 실수를 저질렀다가 개정판을 내면서 고쳤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가와바타는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 “이 상의 절반은 번역자의 것”이라며 역자에게 최대의 찬사로 보답했습니다. 한국 작가들에게도 이 같은 찬사를 받을, ‘한국 문학의 히딩크’가 하루 빨리 나타나기를 고대합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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