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청소년기에 왠지 꼭 읽었어야 할 것 같았던 책. 읽어야 한다는 시기를 놓친 바람에 세계문학전집 류의 책들은 왠지, 언젠간 꼭 마스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콤플렉스를 느끼곤 한다. 모 그런 콤플렉스의 연장선에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었는데... 조금도 재밌지 않았다. 적어도 이 책으로부터는 왜 괴테의 명성이 그토록 높은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직 작품해설은 읽지 않았는데 그다지 읽고 싶단 생각도 안든다. 단, 베르테르가 자살을 하기 이전 괴테는 이곳저곳에 복선을 많이 깔아두었는데, 로테의 남편(이름이... 알베르트였던가?)과 자살에 대한 논쟁은 꽤 읽을만 했다. 그밖에 특별한 것도 없고... 특히나 수사가 너무 많아 읽기 거추장스런 글이었다.(02040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 - 라울 따뷔랭
장 자끄 상뻬 지음, 최영선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어제 출근 길. 지하철 안에서 장자끄 상뻬의 <자전거포 아저씨 라울 따뷔랭>을 읽다.(지금은 '자전거 못 타는 아이 라울 따뷔랭'으로 고침판이 나와 있다.) <좀머 씨 이야기>의 삽화를 그리기도 한 상뻬. 삽화만으로도 한 인물의 캐릭터가 고스란히 살아숨쉬는 듯, 훌륭한 인상을 준다. 그래서 읽게 됐는데, 명확한 메시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느끼기로는 누군가가(대중) 어떤이를 판단하는 기준, 그 기준의 틀거리를 마련해 주는 정보가 '사기'일 때, 그 어떤이의 '명성'이란 게 무슨 가치,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라는 것 같다. 중요한 건 나를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이 아니라, 나 자신의 시선, 내 스스로 평가하는 '나'가 더 중요하다는 것 같다. 작가의 명확한 의도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삽화는 순간순간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지하철 안이었는데... 쿡쿡, 웃었다.(020411)

1분중 0분께서 이 리뷰를 추천하셨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굴 빨개지는 이야기 1
마리 그레이 지음, 최수민 옮김 / 운디네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조금 다른 두 아이.(얼굴이 빨개지는 아이와 재채기를 하는 아이였지 아마..) 그리고 그 둘의 우정. 작가는 우정이란 시공을 초월하는 것이란 메시지를 통해 읽는 이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는데 인색하지 않은 듯... 간결한 스토리.. 귀여운 삽화와 말풍선 안의 문구들이 여전히 유쾌하게 만드는 글.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alt7703 2005-03-26 0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을 잘못 보신듯 하군요
그책은 장자끄 상뻬의 '얼굴 빨개지는 아이'이고 이책은 마리 그레이의 '얼굴 빨개지는 이야기'인데요

찬타 2005-03-28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구구.. 이런 쪽팔리는 일이... 소금님 말씀이 맞네요.. 후다닥 찾아 올리다가 그만..ㅠ.ㅠ. 지적 감사합니다^^

빵곰 2009-02-22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7703님과 같은 말을 하려고 들어왔는데 ^^

찬타 2009-02-23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리를 일으켜서 죄송..ㅠ.ㅠ.
 
바다가 어디야 우리문고 3
유르그 슈비거 지음, 로트라우트 주자나 베르너 그림, 유혜자 옮김 / 우리교육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그 개가 온다>를 읽고 나서 꼭 읽어 봐야지, 싶었던 책.. 철학 동화라 소개되어 읽고 싶었었다. 철학 동화라는 말은 개뿔 같다.. 오히려 엽기호러허무개그 같다고나 할까? 뭔가 있는 척하면서 폼만 가득 잡다가 휘~익 하며 김을 확~ 빼 버리고야 마는... 언저리 뉴우스 같기도 하고.. 나름대로 글쓴이는 우리가 상투적으로 쓰는 말들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면서 스토리를 만들어내거나 읽을 거리를 끄적이는 것도 같지만, 글 속에서 전혀 작자의 의도로 읽히지 않는다. 오히려 한편으로는 말장난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명확하게 와닿지 않는다. 그건 상징이나 은유가 글 속에 많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도 아닌 것 같다. 한마디로 어려워서 파악할 수 없는 것이 아니란 것. 그냥 '나는 이런 기발한 생각도 한다~'라고 뽐내는 글처럼 보인다고나 할까.. 그런게 포스트 모더니즘적 글쓰기라 우긴다면야 모 할말은 없다, 쩝..

아무튼..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든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so what?' 이다.. 그래도 조금쯤 긍정적으로 이 책을 바라보자면, 이 책은 마치 한때 이유도 목적도 맥락도 동기도 없이 '그냥' 신드롬을 만들어 냈던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토막 글들 속에 그냥 시작했다 그냥 끝나버리는 글들이 있어서) 또, 포스트 모더니즘적 판타지 엽기 허무 동화라고나 할까? 작가가 철저하게 계획한 독자와의 게임 같아 보이기도 한다. '뭔갈 교훈적인 이야기, 의미있는 이야기를 할 줄 알았지? 여기서 이렇게 끝나면 허무하지? 이렇게 이야기가 시작되면 너희들은 보통 이야기는 이러저러하게 흘러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빠져 있지 않아? 그렇지만 난 그걸 주지 않을거야.... 철저하게 배신을 때릴 거시지!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상상해본 저자의 의도)하며 건방을 떨며 독자를 우롱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but. 근데 어쩌나.. 책이 재미가 없어서 우롱할 독자가 줄어들겠는 걸..(독자의 반응) 그래도 게중에 '방랑자'나 '돼지와 종이' '곰으로 한세상'은 요리조리 생각해 볼만한 글인 것 같다. 권위에의 오류를 한번 저질러(흐음.. 그는 96년에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받았다.) 요리조리 한번 더 휘리릭 뜯어봤는데, 역시나 그의 글은 아이디어 안에 갇혀 있다는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한 줄의 글을 써 놓고 그 한 줄을 가지고 이야기를 끌어나가려다가 곧 막혀버림을 깨치곤 작중 인물이 나와서 '더 이상 이야기 하기 시러~' 해뻐리고 끝나버리는 허무 황당 스토리 이상은 아니다. 그래서 이 글들의 모음은 잠시의 유희거리나 생각의 단초를 제공해 신선하다거나 즉흥적인 재미를 줄 순 있겠지만, 이야기의 부재로 인해 기억에 남을 법 하진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개가 온다 우리문고 5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지음, 김경연 옮김, 유타 바우어 그림 / 우리교육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오스트리아의 아동청소년문학작가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라는, 꽤 이름 외우기 힘들 법한 사람이 유능하고 지혜롭고 늙수그레한 개를 앞세워 사회적인 문제를 날카롭게 꼬집은 책이란다. 이렇게 책 소개를 먼저 적는 이유는 홈페이지에 올라온 책소개가 꽤 재밌었기 때문인데, 누군가에게 읽고 싶다는 욕망을 불어 넣어준다는 건 역쉬~ 고마운 일이다. 물론 읽고 나서 결과가 만족스럽다는 전제하에서만!

일단 이 책을 읽은 느낌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조쿤!'이다. 한 번 더 생각해서 이야기 한다면 '정말 괜찬타!'는 결론. 읽는 내내 판형이나 글자 크기, 글줄의 길이나 여백이 꽤 읽기 편한 형태인 같단 생각을 했다. 손이 좀 작은 편이어서 그런지 보통 책을 읽을 때의 그... 손 절임도 없고... 게다가 책 자체가 거의 대화체여서 걸어 다니면서 읽는 데도 큰 불편함이 없었다. 아쉽지 않을 만큼의 페이지 수도 좋고... (이러다 내용 얘기도 할 수 있을까... 쩝~! 이제 본격적으로 책 야그를 이제 시작해 봐야겠다.)

'동물을 통해 사회적인 문제를 날카롭게 꼬집는다.'는 책소개와는 무관하게 나는 넓은 세상을 향해 길을 떠났던 그 개가 역시 '집이 최고야~'하면서 다시 돌아온다는 이야기구나, 하면서 그냥 단순하게 책장을 덮었다. 마치 주인공 개가 한 편의 로드 무비를 찍고 돌아와 '집 떠나면 고생이여~' 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나 할까... (워낙 구차니즘에 물든 성향 탓에...)

그러면서 집으로 다시 돌아온 그 개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봤다. 마치 파랑새는 ‘지금, 여기에’ 있다는 해묵은 이야기처럼, 그 개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돌아와 ‘넓은 세상? 그거 별거 아냐~, 작은 마을의 허름한 집이나 큰 도시의 빌딩 숲이나 쎔쎔이야~’라고 말하고 있는게 아닐까.(물론 그 단순소박한 깨달음도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난 뒤에야 알게 된다는 설정 자체가 아이러니한 것이긴 하지만.)

근데 한 번 더 머리 굴려 생각해 보니... 모랄까... 이 책은 읽는 사람(애들?)한테 일종의 선택을 요구하는 것 같기도 하다. 처음엔 작가가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어떤 일을 해도, 사회라는 곳은 말이지.. 냉험해.. 규칙을 어기면 사회는 너희들을 편히 살도록 그냥 놔두지 않아.. 기냥 아웃이쥐~'라고 위협하는 것처럼 들렸는데.. 이크.. 그 개가 그 넓은 세상을 누비며 잃은 것만큼 얻은 것도 많다는 생각에 이르고야 말았다..

그러니까 그냥 쓱~ 보기엔 그 개 나름대로는 좋은 일이란 것들을 많이 해 놓고도 경찰에 쫓기는 아주 질나쁜 도망자 신세가 됐지만, 이에 비례해서 일을 저지르는 순간마다 그 개는 물론 만나는 이들까지 행복하게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그뿐인가?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진정한 친구까지 생기고...

그렇다면 이 책은 사회 문제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책이라기 보다는 '사회는 이래, 근데 넌 어떻게 살래?'하며 아이들에게 선택을 요구하는 일종의 성장소설이란 게 아닐까?
'사회엔 제약이 많아. 그렇지만 어떻게 살아갈지는 니 선택에 달려있어.' '이렇게 살면 안정되고 편안하지만 지루하게 살게 되는데 어때, 이렇게 살아 볼래? 싫어? 아님 좀 위험하고 잃는 것도 많지만 나름대로 만족하면서 살 수도 있어.. 어때 그렇게 살아 볼래?'라는 듯이...

어느 한쪽의 삶이 우월하거나 올바르다고 말하지 않고, 세상이란 데가 다 그렇지 모, 하는 식의 냉소에 찬 회의도 느껴지지 않고... 그 속에서 작은 즐거움을 만들어 가는 그 개의 이야기... 어떤 삶도 강요하지 않아서, 그리고 적어도 그 개가 행복해 보여서 좋았다. 사회 문제를 아무리 유쾌, 상쾌, 통쾌하게 비판해 낸다 해도 어떤 이의 행복한 삶을 엿보는 것보다는 즐거움이 덜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