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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객수 700만을 돌파한 화제의 영화 '타짜'의 한 장면. 조승우가 주인공 '곤' 역할을 맡았다. |
700만명이 봤다는 히트 영화 ‘타짜’의 주인공 김곤은 실제 인물일까? 만화(허영만 화백, 스포츠조선 연재)로도 유명한 ‘타짜 1부-지리산 작두’의 주인공은 정말로 존재하는 사람일까?
충격적인 영화 ‘타짜’의 모델을 찾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물어물어 그가 살고 있다는 지리산 자락 경남 함양을 찾았다. 하지만 그는 인터뷰에 쉽게 응하지 않았다. “만나자니 만나주긴 하겠지만 깊은 이야기는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모델’은 68세의 노인이었다. 이름은 김찬. 노름판에서 그가 사용했던 가명이다. 허영만 화백은 “주인공 김곤은 가공인물이지만, 김씨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스토리를 구성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함양, 진주에서 유명한 ‘주먹’이었다. 그는 건장한 사내 셋과 함께 나타났다. 그 중 한 사람은 “옛날부터 함께 지내온 친구”라고 했고 나머지 둘은 “진주에서 온 동생들”이라 했다. 얼핏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김씨는 손을 심하게 떨고 있었다. 지속적인 과음과 아편 중독의 후유증 때문이었다. 식당에서 만난 그는 찌개와 밥, 맥주와 소주를 주문했다. 하지만 밥은 두 숟가락도 뜨지 않은 채, 맥주에 소주를 섞어 연방 술만 마셨다. 노인은 술잔에 술을 정확히 따르지 못했고, 잔을 제대로 들지도 못했다. 손이 워낙 심하게 떨리기 때문이었다.
“사실 다른 사람 앞에선 밥을 먹기가 좀 부끄러워.”
노인이 손을 덜덜 떨면서 잔에 술을 부었다. 밥상 위로 소주가 어지럽게 흩어졌다. 그가 두 손으로 술잔을 부여잡았다. “다다다닥.” 밥상과 술잔이 부딪치며 소리를 냈다. 노인은 잔을 들지 못했다. 대신 허리를 숙여 자신의 입을 술잔에 갖다 댔다. ‘덜덜덜덜.’ 잔이 흔들리면서 또 다시 술이 흔들렸다.
“사진 찍으면 큰일 난다이.” 두어 모금 술을 마신 뒤 노인이 말했다. 그에게 “조용한 곳으로 옮겨서 이야기 하자”고 했다. 그러자 노인이 어디론가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자리를 옮긴 곳은 시내의 한 주점. 노인은 주인에게 “조용히 할 얘기가 있으니, 가게 비우고 문 닫으라”고 했다. 잔에 술을 콸콸 부으면서 노인이 말했다.
“노름이라 카는 기는 죄다 기박(사기도박)이라. 기박이라 카는 기는 무조건 해선 안되는 기라. 남을 쏙여서 그 돈을 뺏어 묵는 기다. 근데 그기 묘한 쾌감이 있거든. 내는 그 쾌감에 빠져서 인생을 허비한 기라.”
노인과 잔을 맞부딪쳤다. 그가 손에 화투를 쥐었다. “보래이.” 노인이 패를 돌렸다. 5장씩 갖고 승부를 가리는 ‘짓고 땡’이었다. 다른 사람이 알 수 없게 패는 뒤집어져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상대의 패를 훤히 읽고 있었다. “지금 이 기자 손엔 4가 두 장, 1이 두 장 들어 있다. 맞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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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기만화 '티짜'에 등장한 주인공 '곤'의 모습.(왼쪽) 김찬씨가 화투장을 만지며 속임수 시범을 보이고 있다. 그는 얼굴 공개를 꺼렸다.(오른쪽) |
그랬다. 손에 들어온 패는 분명히 1이 두 장, 4가 두 장, 그리고 8이 한 장이었다.
“어? 어떻게 알았죠?” 그에게 물었다. “껄껄.” 그가 웃었다. “어떻게 한 거예요?” 다시 물었다. “그런 건 기술도 아이라.” 그가 또 웃었다. 그런 그에게 다른 기술을 보여달라 했다. 노인이 다시 화투패를 쥐었다. 이번엔 패를 뒤집지 않은 상태였다.
“보래이, 이기 6 맞재?” 노인이 패를 보여줬다. 분명히 6이었다. “자, 이 6을 이 기자한테 준다. 받으레이.” 노인이 방금 보여줬던 6을 건네줬다. “봐라, 6 맞나?” 노인이 다시 물었다. 별 생각 없이 받은 패를 확인했다. 순간,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히 6이었던 화투장이 어느새 10으로 바뀌어 있었다. “어? 이게, 언제 이렇게 됐지?”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노인은 재밌다는 듯 “껄껄” 웃었다.
“보통 사람은 아무리 봐도 모른다. 내는 (도박을) 그만둔 지도 오래됐고, 지금은 손도 많이 떨려서 잘 못하는 기라. 기술자들이 쏙일려 카모, 보통 사람은 안넘어갈 수가 없는 기라. 기박이라 카이. 무조건 안하는 기 장땡이라.”
그는 자기 같은 사람을 ‘기술자’라고 불렀다. “옛날엔 타짜보다 기술자라고 많이 불렀어.” 타짜란 ‘노름판에서 남을 속이는 기술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표준어이다. 영화에는 짝귀, 아귀라는 ‘최고 기술자’가 등장한다. 노인에게 “짝귀를 아느냐”고 물었다.
노인이 답했다. “전라도에 ‘짤내’라고 있었어. 다리를 절어서 ‘짤내 짤내’ 했는데, 그 사람이 최고라. 얼마나 기술이 좋은지 내가 봐도 모르겠더라꼬. 또 하나가 있었는데, 그기 법자(벙어리의 방언)라. ‘어버버’ 하면서 기술을 부리는데, 그기 또 감쪽 같았어. 지금은 둘 다 가고 없지만….”
“가장 큰 판은 얼마짜리였습니까?” 노인에게 물었다. 그는 스스로를 ‘전국구’라고 표현했다. “함양, 진주, 부산, 광주, 서울 할 것 없이 전국을 온통 돌아다녔어. 여관생활만 20년을 넘게 했거든. 그기 삼육여관인가 그랬는데…. 선배 하나가 오더니 ‘따라와라’ 카더라꼬. 가 보니, 큰 판이 벌어진 기라. 그래 선배한테 한 200만원 정도 빌렸지.”
이야기가 흥미로워졌다. “첫날은 한 70만원쯤 잃어줬어. 그리고 ‘잘 놀았습니다’ 카고 나왔지. 다음날 또 갔어. 그리고선 100만원쯤 또 잃어줬지. 그리곤 ‘이제 나 안할란다’ 카고 나왔어. 그리고선 3~4일 뒤, 100만원을 더 빌려서 다시 갔지. 이번엔 한 40만~50만원 가량 땄어. 그리고 다음날 가서 또 죄다 잃어줬지. 그랬더니 그놈들이 신이 난 기라. ‘젊은 사람이 돈도 많고 예의도 바르네’ 하면서 ‘또 오라’ 카는 기라. 그래 며칠 뒤 또 갔어. 배에서 판이 벌어진 기야. 그 사람들이 미곡상이라, 배에 쌀을 잔뜩 실어 놓은 기라. 내가 배 도착 시간까지 다 계산하고 올라갔어. 그리고선 그 배에 있는 쌀을 사그리 다 따버렸지. 그기 요즘 돈으로 치면 한 4억~5억원 될 끼라.”
영화에는 판돈으로 손목을 거는 장면이 나온다. “속임수를 쓰다 걸리면 정말 손목을 자르기도 했는지” 그에게 물었다. 답은 부정적이었다. “에~이, 그렇게까진 안했어. 그긴 만화가가 상상한 걸 끼라.”
허 화백의 답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큰 것을 걸어야 하는 상황을 그린 거죠. 그러다 보니까 손목을 거는 것으로 묘사한 거예요. 실제로 그렇게까진 하지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노인은 “젊은 시절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우리 집이 원체 가난했었데이. 쌀독에 쌀이 떨어진 적이 많았어. 내가 중학교 때 노름을 배웠거든. 집 나가 노름하면서, 좀 따면 요즘 돈 50만원도 갖다 주고, 100만원도 갖다 주고 했어. 그렇게 식구들을 먹여살린 기라.”
노인은 30대 초반에 노름을 끊었다고 했다. “어느 순간 보니까, 이기 아이다 싶더라꼬. 지은 죄도 너무 많고….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싶어서, 그 후 딱 접어뿌렀어.” 그는 이후 운수업, 건설업에 종사했지만 사업이 잘 되지 않아 거액을 날렸다고 말했다.
노인이 당부하듯 말했다. “사람은 말이데이, 분수에 넘치는 걸 바라면 안된데이. 나 같은 전철을 밟으면 안되는 기라. 그런데 못 배운 놈들은 한번 빠지면 (전철을) 밟게 돼 있어. 절대로 하면 안 되는 긴데….” 노인은 “깊이 반성하고 있다”며 끝내 눈자위를 붉히고 말았다.
함양=이범진 주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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