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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7월
평점 :
모든 객관적 사실들이 우리에게 다 똑같은 수준으로, 필수불가결하게 중요한가요? -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22쪽
예쁜 사람보다 귀여운 사람을 좋다. 예쁜 건 꾸밀 수 있으나 귀여움은 사람이나 사람의 본질에 해당하기 때문이라는 편견 때문이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다. 남자든 여자든 후천적 노력으로 멋진 몸을 만들고 메이크업으로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도 있으나 귀여움은 나이브한 상태 혹은 타고난 특성에 가깝다. 귀여움을 연기할 수는 없다. 타고난 아름다움을 폄훼하는 게 아니라 귀여움에 관한 생각일 뿐이다. 잘생긴 남자, 예쁜 여자는 대체로 시간을 견딜 수 없지만 귀여운 사람은 세월을 뛰어넘는다. 어떤 형용사가 빚는 이미지는 개인마다 다르게 갈무리되며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어려워 사회적 언어로 공감하기도 쉽지 않다. 시니피앙에 의해 형성되는 시니피에 또한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으니, ‘예쁘다’와 ‘귀엽다’를 구별하거나 차이를 드러내는 일은 부질 없을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를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물이 끓는 비등점, 곡률이 바뀌는 변곡점을 지나면 부분적으로 각개 약진하던 기술들이 통합되어 혁명적 변화를 이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시너지 효과를 예상하는 건 첨단 과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조차 쉽지 않다. 오히려 무엇을 상상하든 그것을 현실로 만드는 역할에 충실한 과학자보다 가당치 않은 상상력으로 미래를 보여주는 예술가들에 의해 인류는 진보를 거듭해온 것처럼 보인다. 지극히 현실적인 소설가라는 말은 그 자체로 모순이며 모욕일 수 있으나 스스로 ‘당대 인간의 삶과 사회’에 방점을 찍고 있는 장강명의 소설은 그래서 상상적 현실을 가능케 한다. ‘월급사실주의 소설가, 단행본 저술업자’라는 소개가 반가운 이유다.
프로필 사진의 보정이나 인공지능 어플 사용으로 외모를 마사지하는 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여기서 한발 나아가면 각자의 눈에 어플을 활용할 수도 있지 않은가. 세상 그 자체를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장치, 모든 사람을 멋지게 바꿔주는 도구가 있다면 모두가 윈윈 게임이 아닐까. 외모 콤플렉스 따위가 없는 세상도 불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표제작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은 사소하지만 실현 가능한, 매우 현실적인 접근이라서 오히려 신선했다. 미래는 알 수 없고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래도 불안을 숙명으로 안고 사는 현대인에게 그들–예술가 혹은 과학자–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에게 가늠할 수 있는 내일을 예고 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사람들은 ‘객관적 사실’에 무관심한 건 아닐까. 어차피 각자 보고 싶은 걸 보고 믿고 싶은 걸 믿으니까. 팩트 체크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주관적 판단이 객관적 사실을 압도하는 일상이 오히려 불편한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사회 현상에 기인한 소설가의 상상력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내일의 삶과 사회를 고민한다. 단편 「알래스카의 아이히만」은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대한 오마주이자 패러디이며 재해석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넘나드는 문제의식은 종횡무진 시공을 초월하지만 결국 ‘인간과 사회’에 천착한다. 우리는, 아니 ‘나’는 누구이며 여기는 어디인가. 시대정신을 말하는 사람은 정치적이며 밥그릇을 쳐다보는 사람은 근시안이다. 허나, 우리가 사는 세상과 오늘의 현실은 정치적 근시안과 ‘을’들의 전쟁으로 피가 튄다. 자신의 계급 이익과 무관한 맹목적 지지와 비난이 초래하는 결과가 참혹하다.
「사이보그의 글쓰기」와 「데이터 시대의 사랑」은 「아스타틴」의 상상력과 결이 다르다. 지극히 현실에 바탕을 둔 상상과 기대와 욕망에 바탕을 둔 현실은 차이가 크다. 일곱 편의 단편이 한 권으로 묶이면서 이 소설집은 현실적 SF, 아니 작가의 주장대로 ‘STSscience, Technology, Society SF’라고 불러도 좋겠다. 명칭이야 어쨌든 과학 기술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고민하는 문학적 상상력은 충분히 의미가 있고, 다분히 매력적이다. “과학기술은 이제 여러 영역에서 실존적 위기를 일으키고 있고, 나는 문학이 여기에 대응해야 하며, 대응할 수 있다고 믿는다.”라며 장강명은 소설이 나갈 또 하나의 방향을 제시한다.
장강명의 등단작 장편소설『표백』, 르포『당선, 합격, 계급』등 지속적으로 그의 시선이 놓인 자리와 관심사가 사회학적 상상력과 닿아 있다. 문학의 역할과 기능이 모호해진 시대다. 소설보다 재밌는 게 넘치는 세상이다. 문학의 종언을 외치는 대신 문학의 변신과 지평의 확대를 모색하는 작품을 기대하는 건 독자의 권리이자 의무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