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일본의 요시노 히로시라는 살마이 쓴 「생명은」이라는 제목의 시 한 편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안에 “생명은 그 가운데 결여를 안고, 이것을 타자가 채워주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생명 곧 ‘낱생명’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것이어서 결여를 안고 있는데, 그것을 타자 곧 그 ‘보생명’이 채워준다는 저의 온생명이론을 아주 실감 있게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것들이 같이 가야 한다고 봅니다. - P. 58(장회익)

현상은 보는 위치에 따라 달리 보입니다. 그래서 보는 위치 곧 기준좌표의 전환에 따라 사룸이 어떻게 달라 보이는지를 분명히 구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을 좌표변환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없으면 내게 보이는 것만 옳고 남이 다른 위치에서 달리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 P. 59(장회익)

여기서 중요한 점은 좌표변환이라는 것이 결코 간단한 작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일상생활 속에서 늘 좌표변환을 통해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가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좌표변환을 해보는데도 상대방의 태도가 납득되지 않을 때 상대방이 틀렸다고 판정하고 분쟁이 발생합니다. 여기서 상대성이론이 주는 교훈은 내가 하는 좌표변환 그 자체가 불완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 간단한 물리현상들조차 4차원의 좌표변환을 해야 제대로 이해가 되는데, 복잡한 사회현상들이 단순한 상식차원의 좌표변환만으로 처리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아마도 4차원 못지않은 고차원적 좌표변환이 요구될 것으로 보고 이 점에 대해 서로 간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 P. 60(장회익)

이분법적 양극화현상들인 전통과 혁신, 한반도의 세계, 보수와 진보, 남과 북, 동과 서, 빈 부, 아니든 세대와 젊은 세대 갈등 등이 불가피해 보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포월(匍越)의 전략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탈(脫/post-), 가로지르기(cross-), 사이(inter-), 횡단(trans-)의 전략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와 문화는 학제적(interdisciplinary), 융합적(fusionist), 통섭적(consilient)이라는 말들이 가장 적합한 핵심어가 아닐는지요. - P. 76(정정호)

민주주의도 하나의 통치체제이기 때문에 권력이 민주주의를 통해 창출됐다고 하더라도, 그것 또한 권력이기 때문에 민주주의제도를 통해 견제되고, 민주적으로 통제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권력의 창출과 권력의 견제는 민주주의의 두 개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 118(최장집)

문학론에서도 문맥은 텍스트의 의미결정에 참여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콘텍스트가 텍스트의 의미를 좌우하는 수도 많지요. - P. 211(도정일)

인간의 사상, 생각, 아이디어가 그처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죠. 그들의 ‘생각’이 아니었다면 근대 민주주의, 자유, 인권, 평등은 불가능했거나 한참 더 기다려서야 가능했을 겁니다. 사유와 행동, 지식과 실천을 결합하는 것이 인문학적 실천이고 이런 실천은 지금 이 시대에 절실한 요청이 되고 있습니다. - P. 231(도정일)

하나의 개념은 다른 여러 개념과의 연쇄 속에서만 진실에 가까이 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만으로는 진리의 왜곡이 일어나지요. 통일을 절대화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 P. 261(김우창)

“답은 문제에서 나오기 때문에 문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 P. 293(김우창)

종교의 문제 중 하나는 사람의 마음이나 존재를 열어주는 게 아니라, 어떤 도그마에 갇히게 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에게 종교에 대해서 유보를 가지게 하는 이유의 하나일 것입니다. … 말이나 도그마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거나, 포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가 겸허하게 삶의 사실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필요합니다. - P. 321(김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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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사랑을 언제나 대상의 문제로 환원한다. 한 마디로 대상만 잘 고르면 만사형통이라 여기는 것이다. 사랑에 실패한 건 대상을 잘못 골랐기 때문이고, 아직까지 사랑을 못해 본 건 ‘이상형’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참으로 신기한 인과론이다.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는 판에 나는 몸만 쏙! 들어가면 되는가? 실패한 다음엔 다시 몸만 쏙! 빠져나와 복수극을 펼치면 되고? 이렇게 지독한 이기주의가 또 있을까? 상대를 잘못 만나 인생을 망쳤다면, 그런 상대를 선택한 ‘나’라는 존재는 대체 뭔가? - P. 15

‘불멸의 사랑’은 망상 중의 망상이다. 그건 마치 어린 아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어른이 된 다음에도 계속 끼고 다니는 거나 마찬가지다. - P. 16

사랑이 둘만의 역학적 배치를 만들어 내는 건 맞다. 또 열정의 차이에 따라 권력관계가 형성되는 것도 맞다. 헌데, 가장 중요한 건 시절인연이다. 말하자면, 대상이 누구냐보다 언제 어디서 만났느냐가 더 결정적이다. 즉, 어떤 특별한 ‘시공간적 배치’ 속에서 사랑이라는 특별한 감정이 생기고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그 관계에 균열이 일어났다면, 즉 누군가 먼저 결별을 선언하게 생겼다는 걸 의미한다. 그리고 그 점에선 가해자, 피해자가 있을 수 없다. 둘 다 그 간극만큼의 번뇌를 감당해야 하는 까닭이다. - P. 52

에로스란 원초적 본능이자 욕망의 흐름 자체이다. 어떻게 절단되느냐에 따라 수많은 변이가 가능하다. 그러므로 절대 남녀 사이의 연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어떤 종류의 관계든, 어떤 활동영역이든 존재의 자유와 충만감이 분출될 수 있다면, 그것은 모두 에로스다. - P. 142

사랑이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다, 즉, 내가 어떻게 관계를 구성하느냐가 사랑의 내용과 형식 모두를 결정한다. 그리고 그것이 내 존재의 궤적을 만든다. 존재의 흐름과 궤적, 그것을 일러 운명이라고 말한다. 내 운명의 주인은? 바로 ‘나’다. 그러므로 시작에서 종결까지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 있다. - P. 145

오스카 와일드의 한 말씀.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그 자신을 속이는 일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남들을 속임으로써 그것의 종말을 고한다. 이게 바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로맨스의 본질이다.” - P. 154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영원히 너만을 사랑할게.” “이 순간을 영원히!” 우리는 을 이런 식의 구호에 포위되어 있다. 물론 말짱 거짓말이다. 사랑은 당연히 변한다. 사랑을 하는 마음과 몸이 변하기 때문이다. 모든 태어난 것은 자라고 병들고 늙고 죽는다. 마찬가지로 사랑 또한 나고 자라고 쇠하고 소멸한다. - P. 246

이탁오의 말 가운데 이런 게 있다. “스승이면서 친구가 아니면 스승이라고 할 수 없다. 친구이면서 스승처럼 배울 게 없다면 역시 친구라 할 수 없다.” - P.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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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하라. 네가 살아 있다면 그 무엇이든 사랑을 하라.” …… “서로의 심장을 꺼내놓고 싸우고 나면 세계는 어떤 식으로든 정리될 테니까. 역사책이란 그런 사람들의 심장에서 뿜어난 피로 쓴 책이야.” - P. 25

이제는 알겠다. 사랑은 여분의 것이다. 인생이 모두 끝나고 난 뒤에도 남아 있는 찌꺼기와 같은 것이다. 자신이 사는 현실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P. 31

사랑에 빠지면 자연의 아름다움이 전에 없이 더 또렷해진다는 건 바로 그때 알았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란 한 사람의 아름다움을 대체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결국 깨닫게 되는 것은 그 어떤 아름다움도 그리운 단 하나의 얼굴에는 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 P. 36

그때까지 내가 살고 있었고, 그게 진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세계가 그처럼 간단하게 무너져 내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건 이 세계가 낮과 밤, 빛과 어둠, 진실과 거짓, 고귀함과 하찮음 등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그때까지 나는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게 부끄러워서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 P. 42

먼저 사랑이 오고, 행복이 오고, 질투심과 분노가 오고, 그리고 뒤늦게 부끄러움은 찾아온다. - P. 48

행복은 자신이 속한 세계 안에 갇혀 있다. 슬픔의 냄새는 그 세계 바깥에서 번져온다. 행복하기만 하다면 삶은 거짓이라고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냄새만은 견딜 수 없었다. - P. 60

“사람이란 자기 인생 행로에서 잊기 어려운 추억을 갖게 마련이지요. 이런 추억은 자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심금을 울려주면서 떠오르는 것이에요.” - P. 234

자신의 운명에 대해 알고 싶다면 지금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간절히 소망하고 무엇을 그토록 두려워하는지 알게 되면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P. 247

사랑이라는 게 우리가 함께 봄의 언덕에 나란히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이라면, 죽음이라는 건 이제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뜻이겠지요. 그런 뜻일 뿐이겠네요. - P.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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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에서 20세기 말까지 사랑에 관한 주된 설명에는 생물학이 빠져 있었다. 신경학이 공중에 성을 쌓아 정신병 환자들을 살게 하면, 정신과 의사들이 집세를 걷는다는 말이 유행처럼 돌았다. 그러나 정작 허공에 떠 있는 이론의 성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정신과 의사들과 심리학자들이었다. - P. 15

사랑을 구성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모른다면 마음의 수수께끼를 풀려는 희망은 물거품이 될 것이다. - P. 32

인간의 사고 능력은 신피질에서 생성된다. 그러나 이 능력 때문에 보다 신비스러운 다른 정신 활동들이 쉽게 망각된다. 실제로 인식은 대단히 분명한 현상이라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내 존재는 생각이다>처럼 인식이 전부라는 오류를 낳기도 한다. - P. 52

감성의 재료를 언어로 번역하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변형 과정을 요구한다. 그래서 강렬한 느낌을 언어적 표현으로 구속하는 일에는 긴장과 무리가 뒤따른다. - P. 54

우리 사회는 감정의 중요성을 경시한다. 신피질과 굳게 결탁한 우리 문화는 직관보다는 분석을, 감정보다는 논리를 조장한다. 지식은 부를 낳을 수 있다. - P. 57

감정을 반복적으로 침전시키는 가장 일반적인 요소는 인식이다. 사람들은 특정한 사건이 지나간 후에도 그것을 다시 생각하고 그 경험을 환기시키면서 자신의 감정을 다시 자극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실제로 그 사건이 재발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 P. 69

진화의 과정에서 출현한 포유동물은 새로운 종류의 뉴런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다시 말해 사랑을 정신적으로 친밀하게 수용할 줄 아는 생물이었다. - P. 75

두 사람이 한 방에 있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목적도 없이 몇 시간을 함께 보내보라. 그러면 두 사람 사이에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인류가 시작되기 오래전부터 작용했던 힘들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이다. - P. 95

단기적 격리는 항의라는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반면, 장기적인 격리는 절망이라는 생리적 상태를 유발한다. - P. 112

실연 당한 연인이 작성하는 비탄의 편지는 새끼 쥐의 찍찍거림과 동일하다. 그것은 주파수만 조금 낮을 뿐 같은 노래이다. - P. 113

애착 형성이 한 개인을 어떻게 조각하는가를 이해하려면, 기억이라는 것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기억은 뇌가 경험을 통해 구조적인 변화를 겪는 과정이다. 기억은 일직선으로 진행하지 않으며, 인간의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 P. 143

새로운 스캐닝 기술이 개발되어, 인지와 상상이 동일한 뇌 부위를 활성화시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우리의 뇌는 경험으로 기록된 것과 마음속에서 지어낸 환상을 확실히 구별하지 못하는 것 같다. - P. 151

기억에 관한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보면, 직관이 이해를 월등히 앞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 눈에는 결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태양이 강렬한 빛으로 우리의 삶을 비추고 있다. 반복적인 경험에 직면했을 때 우리의 뇌는 무의식적으로 그 기초에 놓인 규칙들을 추출한다. - P.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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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현상적인 사랑들보다는 훨씬 원대한 어떤 것이다. 단테가 말하지 않았던가? 사랑은 태양과 모든 별들을 움직인다고……. - P. 10

사랑에 빠지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서 빠져나와 타인을 향한 여정을 떠나야 한다. 그 대상이 나를 중심으로 내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대상이 만든 궤도를 탄다. - P. 13

사실 진실한 사랑의 본질은 아픔과 고뇌에 있고, 그 크기가 클수록 진실의 크기도 더 클 가능성이 많다. 사랑에 빠진 여자는 남자에게서 아무런 고통 없는 무관심을 받느니 차라리 고통 받기를 원한다. - P. 14

“사랑은 한 영혼이 다른 영혼을 향해 나아가는 구심력이며, 그 힘은 지속적인 흐름 속에서 유지되면서 가공할 힘을 분출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 대상과 하나가 되면서 그 존재를 인전하는 것이다.” - P. 18

잘못된 경험의 결과로, 스탕달은 사랑은 이루어지는 것이며 결론이 나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 두 가지 속성이야말로 사이비 연애의 특징이다. - P. 35

온전한 사랑이란 일단 태어나면 소멸되지 않는다. 거짓말 같지만 이것이 진실이다. - P. 37

내 생각에 온전한 사랑이라면, 환경과 거리상의 장애가 충분한 애정을 공급하는 걸 방해하여 애정의 굵은 선이 가는 선으로 바뀔지는 모르지만, 말라비틀어진 상태에서도 감정의 동맥은 사랑을 끊임없이 담아 심장으로 옮기는 법이다. 그게 제대로 된 사랑의 운명이다. 결코 죽지 않는, 적어도 감정의 본질만은 손상되지 않는 바로 그런 사랑. - P. 38

플라톤이 여기서 말하는 미는 아름다움이라는 의미보다는 절대라는 의미에 더 가깝다. 플라톤은 모든 사랑에는 하나가 되려는 욕망이 내재하고, 이때 사랑은 보다 절대적인 대상, 즉 자신보다 우월한 대상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말한다. - P. 40

본능이란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본능이며, 그렇기 때문에 절대니 완성이니 하는 개념도 적용되지 않는다. - P. 42

일단 이렇게 애정이 시작되면 내 안에는 자신의 개성을 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절박함과 그 사람을 내게 흡수하고 싶은 다급함이 생긴다. 신비한 집착! 만약 누군가가 나의 개인적 영역을 그렇게 침범한다면 우리는 견딜 수 없을 텐데, 유독 사랑의 경우에만 우리는 그런 월권을 허용한다. 아니 허용할 뿐만 아니라 간절히 소망한다. - P. 42

나는 사랑이 아주 고귀한 행동인 동시에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낮은 행위라고 생각한다. 온전한 사랑을 하려면, 사랑한다는 것에는 정신의 가장 낮은 상태 혹은 일종의 백치 같은 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때로는 정신적인 것을 축소시키고 육체적인 것, 심지어 동물적 본능까지 작용해야 한다. 사랑의 어떤 성격이 높은 정신성과 관련이 있어 일상과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그 반대 성격에서 그런 본능이 작용하지 않고는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
  즉, 성적 본능이 없는 사랑은 없다. 성적 본능은 하나의 메커니즘며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오토마티즘(automatism 英)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사랑에 빠짐은 본능의 메커니즘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 P. 48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사랑하는 사람 역시 무엇을 하다가도 결국 돌아가게 되는 그런 존재가 된다. 모든 세상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그것을 대체해버리기 때문이다. - P. 53

사랑은 한 사람을 크게 변화시킨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모습은 마술, 신들림, 몽유로 비유되어 왔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사랑은 결국 마술에 걸린 것과 같다. - P. 53

사랑에 빠진 여자는 자주 절망감에 빠지는데 왜냐하면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가 총체적으로 자기 마음속에 들어오지는 않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반대로 민감한 남자라면 사랑하는 여자가 자신에게 모든 것을 기대고 있지 않다고 판단할 때 수치감을 느낀다. - P. 60

사랑은 한순간에 이루어지지만 그 과정은 은밀하고 조용하며 지속적이다. - P. 61

회의주의자란 풍부하고 다양하며 완벽한 삶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이다. 회의주의자를 아무것도 믿지 않는 것으로 해석하는 태도는 잘못된 것이다. 회의주의자는 교리주의자의 반대에 있는 사람으로, 교리주의자가 한 가자 도그마를 신봉한다면 회의주의자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다. - P. 101

마치 천문학자가 태양을 바라보듯이 먼 곳에서 그것을 바라볼 수 있을 때에 사랑은 정확하게 논의될 수 있다. 사랑을 안다고 해서 사랑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사랑을 아는 것도 아니다. 무엇을 보기 위해서는 그것에서 떨어져 나와야 한다. 떨어짐은 그 대상을 지식이라는 범주 안에서 생생한 어떤 것으로 변형시킨다. - P. 117

사랑이란 본능에 가깝기보다는 작품을 창조하는 행위와 유사하다. 즉 사랑은 창작하는 행위이다. 야생의 인간들은 그 사실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지만, 오히려 일찍이 문명을 이루었던 중국이나 인도인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 P. 125

인간이 살면서 겪어야 하는 수많은 상황 중에, 내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경우는 사랑을 겪을 때다. 사랑하는 여자를 선택할 때 남자는 자신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이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자가 남자를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원하는 인간성의 유형이 이때만큼 잘 드러나는 때가 없다. 사랑은 어느 날 지하실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유령과도 같다. 객관적으로 볼 때 그 선택이 우리의 상식에 어긋나는 경우는 무수히 많다. - P. 136

성적 욕망은 사랑을 유도하지만 그 결정은 사랑 자체에서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들의 경우 진정한 성적 본능은 오직 사랑하는 여자를 통해서만 느껴지고 채워진다. - P. 141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 남자는 그 여자의 얼굴과 몸매 같은 굵은 선만 보는 반면, 사랑하는 남자에게 그 굵은 선들은 이미 지워진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그 여자의 눈빛이나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만나는 모양 혹은 목소리의 음조 같은 것들이다. - P. 142

결국, 사랑은 사랑에 빠진 이에게 너무나 특별한 한 인간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간은 얼굴과 목소리와 표정과 태도에서 자신의 진정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P. 144

남자들을 평가하는 기준은 그들이 만든 어떤 결과물이지만, 여자들을 평가하는 기준은 과정 자체에 있습니다. 결국 남자의 우수함은 행위(doing 英)에, 여자의 우수함은 존재(being 英)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지요. - P.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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