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 1 - 상 - 2015년 개역판, 정치경제학비판 자본론 1
카를 마르크스 지음, 김수행 옮김 / 비봉출판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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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내게 매력이 없을 수 있듯, 신성한 고전도 나에게 울림이 없을 수 있다. 그런 책이 한둘일까 마는 태어나 읽은 책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책은 아마도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일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수없이 마주쳤지만 <경제학 철학 수고>를 제외하고는 2차 저작들만 읽었다. 몇번의 실패 경험이 원전에 대한 두려움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긴 호흡으로 언젠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 앉아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짧지만 남은 날을 내다볼 힘을 빌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 아닌 미련이 남아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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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개역판이 나오자마자 품절되고 안타까워하다가 다시 잊었다. 이제서야 2021년 11쇄를 샀다. 겨우 몇 천권도 안되는 서가의 책들 사이에서 자본론 1권은 다른 모든 책을 압도하는 듯하다. 지나친 의미부여가 아니라 그간 혼자 만든 마음의 빚 때문이기도 하다. 1989년에 초판이 나온 후 1991년, 2001년, 2015년에 걸쳐 다듬어진 문장에 뭐라 할 말이 없어진다. <2015년의 개역에 부쳐>을 읽다가 번역의 시간들이 눈앞에 떠올라 울컥했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자본론>을 쓴 마르크스에 비하면...번역에만 매달려도 한 평생이라는 한탄아닌 한탄이 새삼스럽다. 번역은 커녕 일독을 하는대도 일평생이 걸리는 사람도 있다.

​1권 1장 상품을 꼼꼼하게 읽었다. 번역자의 노고와 고민이 우둔한 독자 한명을 구하셨다. 놀랍게도 읽힌다. 그간의 숱한 2차 저작과 인용, 개념 설명, 이론과 적용을 통해 눈동냥을 한 탓도 있겠으나 천천히 읽기를 시작한다. 행여 오독은 재독으로 가리고 난독은 지독으로 이겨내며 눈이 침침할 때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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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에서 노동의 가치를 읽어내고 본래적 사용가치와 구분되는 교환가치가 화폐로 전이되는 과정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서술되어 있다. 문장의 호흡이 조금 길거나 설명과 논리가 건조하지만 충분히 읽을 수 있을만큼 다듬어진 번역이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세월의 두께도 한몫 하겠으나 각자의 재미와 즐거움은 누구에게도 양보할 필요가 없다. 읽고 궁구하다 지칠 때까지.

상품과 상품의 교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노동가치의 문제는 화폐와 상품의 유통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 비판의 연속선상에서 당시 상황을 통해 상품과 화폐의 유통 과정을 상세히 설명한다. 셰익스피어의 대사가 등장하고 고대 철학자들의 날카로운 통찰이 인용되어 경제학이라기보다 마치 사회학에 가깝다. 본질적으로 경제는 인간과 사회의 구조 그리고 그 안에서 작동하는 욕망과 가치의 교환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볼 수밖에 없는 것일까.

화폐의 유통은 지금 현재도 그대로 적용되는 기본적 개념이지만 '퇴장화폐'라는 용어를 보는 순간 슬픔이 밀려왔다. 지불, 유통수단이 아니라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무한한 축적 가능성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상품의 물신적 성격과 화폐의 관계를 면밀히 살핀 다음 이제 화폐가 자본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살핀다.

고전 경제학과 당대 경제학자들의 이론에 문제점을 찾고 논리적 헛점을 지적하는 고단한 작업을 통해 마르크스가 바라본 세계의 변화 과정과 고민의 시간이 엿보이기 시작한다. 근본적인 문제를 살피고 본질을 헤아리면 현실과 미래가 조금 달리 보인다. 누구에게 이익이 돌아가는지 살피라고 했더니, 쿠이보노cuibono만 외치며 아전인수를 시작한 '기득권들'의 전쟁이 시작된 건가. 어느 한 놈도 국민을 팔지 않는 놈이 없다. 도대체 국민은 누구이며 어느 나라 국민인가.

상품과 화폐 그리고 자본의 차이를 분명하고 알기 쉽게 설명하는 자본론이 왜 쉼게 읽히지 않았을까. 배경지식의 부족이나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지 않을까. 흥미있고 재밌는 서술이다. 아재개그로 너스레를 떨기도 하고 비아냥거리기며 기존 이론이나 다른 경제학자들의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비틀어버리기도 한다. 분명한건 상품자본과 산업자본 그리고 이자 낳는 자본의 일반공식과 그 모순을 지적하는 내용이 흥미롭다는 점이다.

자연스럽게 노동력의 구매와 판매가 등장했고 노동과정과 가치증식과정으로 접어들었다. 화폐가 자본으로 전환하는 과정, 노동력이 상품에 결착되는 과정또한 이미 익숙한 내용이지만 생생한 목소리가 분명하게 들린다. "자본은, 오직 생산수단과 생활수단의 소유자가 시장에서 [자기 노동력의 판매자로서] 자유로운 노동자를 발견하는 경우에만 생긴다."라는 문장이 그렇다. 노동과정과 가치 증식과정은 이제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으로 넘어가기 전 단계다.

긴 설명과 이론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간단할 수도 있어 보인다. 이렇게 길고 상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고전 경제학과 자본주의가 태동하며 본격적으로 궤도에 진입할 무렵의 다양한 이론들과 차별화된 '노동'에 대한 관점, 그 가치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지난한 과정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지구 반대편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는 손흥민을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축구 종주국-맨체스터와 리버풀 등 노동자들의 유일한 낙이었던 축구에 미친 나라 영국의 150여 년전 이쪽과 저쪽을 살피면서 지금, 여기를 생각한다. 노동절이다. 누군가는 여전히 죽음의 외주화를 정당하게 여기며 누군가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격차를 노력의 차이, 살아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얼만큼 나아진 걸까.

노동은 가변자본이다. 잉여가치율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단 한순간도 멈춘 적이 없다. 시급 인상을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으로 치환하며 을들의 전쟁으로 유도하는 그들보다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사회 경제적 계급 앞에 번번히 고개를....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각자의 관점과 태도가 자기 인생의 목표와 가치를 결정한다. 우리는 어디로 걷고 있을까.

하루 1850년 영국의 공장법은 하루 10시간으로 노동 시간을 규제한다. 그나마 법적 제한이 없는 산업 분야의 노동자들의 삶은 마르크스의 표현대로 단테의 상상한 지옥을 능가한다. 인간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끔찍한 행동을 해왔다. 날은 쉽게 저물고 시간도 생각보다 빨리 흐른다. 우리는 제대로 하고 있을까.

출판 마케팅에 대한 이해가 눈꼽만큼이라도 있었더라면 칼 마르크스는 <제10장 노동일>을 맨 앞에 배치했으리라. 확인해보니 <제15장 기계와 대공업>과 <제25장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을 제외하고 1권 전체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그만큼 중요하고 심각하게 당대 노동현실을 직시했다는 의미다. 스스로 밝히듯 상품과 화폐는 어렵고 딱딱하다. 처음부터 독자를 질리게 하지 않고 현실을 분석한 다음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상품과 화폐부터 차근차근 설명했다면 어땠을까. 혼자서 자본론 1권 전체를 재구성해 보았지만 훨씬 나은 방법이라는 데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제10장을 읽는 동안 왜 그간 자본론을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스스로 부끄러웠다. 진입장벽이 높아 아마도 긴장하고 읽은 제1편에서 번번이 넘어지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11장 잉여가치율과 잉여가치량, 12장 상대적 잉여가치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고전 경제학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당대 경제학자들의 논리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분석과 체계적 설명은 놀랍다. 정교한 구조와 달리 설명과 예시, 문장 구석구석에는 위트와 재치가 숨어 있고 예상 반론에 대한 재반론 근거까지 숨겨 놓았다. 40대에 마르크스가 영국의 현실과 자본주의 구조를 바라보는 관점은 근본적으로 다른 곳에서 출발한다. 하나의 전제가 무너지면 이론 전체가 무너질 수 있는 위험성을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자신감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사람은 늙어도 생각은 낡지 않은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다. 나이는 젊지만 관점이 늙은 사람이 더 많다. 한 인간의 성장과 성숙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무엇을 향해 어디로 걷든 관점과 태도가 현실을 바라보는 각자의 창문이 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며 자본론이 점점 흥미롭게 펼쳐진다. 자본론을 필사하며 읽는 동안 조금 더 천천히 그리고 넓고 깊게 세상을 바라볼 준비가 되어 있는지 나에게 물었다.

먼 옛날, 인간의 협업과 공동체 생활은 개별적으로 약한 존재인 인간의 생존 전략이었다. 농경사회를 거쳐 산업 혁명 이후에 '매뉴팩처'로 일컬어지는 공장은 가내수공업과 길드를 지나 본격적으로 자본주의적 성격을 띤다. 협업은 잉여가치 생산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으며 이는 분업으로 세분화된다. 협업과 분업은 전통적인 인간의 생산활동이었으나 공장제 수공업인 매뉴팩처 단계에서는 인간을 부품으로 전락시킨다. 굳이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1936)를 떠올리지 않아도 중장년층에겐 익숙한 방식이다. 대한민국의 눈부신 성장도 결국, 70년대 산업화의 역군으로 일컬어지는 노동자들에 의해 가능했기 때문이다.

"매뉴팩처 시대에 비로소 독립된 과학으로 등장한 경제학"은 '인간'을 지우기 시작한 게 아닐까. 생산성, 성장률, 통계 등 숫자로 표현되는 인간의 가치는 현재와 미래에도 변함없이 지속되지 않을까. 과거를 돌아보며 오늘을 살피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관점의 문제가 아니라 목표와 가치의 문제라는 사실로 귀결된다. '성장이냐, 분배냐'의 문제로 치킨 게임을 벌일 필요가 있을까. 성장이든 분배든 누가 얼만큼 가져가야 하는 고민보다 '인간'이냐 '자본'이냐의 문제로 환원할 순 없을까.

느린 호흡으로 읽다보니 이제 겨우 1권(상) 절반을 살폈다. 큰 흐름과 논리정연한 체계가 조금 보인다. 1800년대를 통찰했던 마르크스의 이야기가 왜 21세기에도 유효할 수밖에 없을까. 그것은 경제학 이론이나 천재의 혜안 때문이 아니라 여전히 대다수 노동자-스스로 아니라고 우기는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없이-들의 고통과 불행이 계속되기 때문이 아닐까. <팩트풀니스>에서 한스 로슬링은 인간의 삶이 얼마나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과거에 비해 말할 수 없이 풍요로워졌음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절대 빈곤과 삶의 질을 1800년대와 비교하는 게 가당치 않다. 그것은 몇몇 천재나 재벌들의 힘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일군 땀의 결실이기 때문이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아동노동 조사위원회 보고서』가 지속적으로 인용된다. 현재 우리 사회의 노동부가 이런 역할을 담당한다. 공장법을 제정하고 노동자들의 실태와 현황을 파악한다. 감독관은 법을 어긴 자본가를 기소한다. 노동자와 인터뷰한 내용을 지속적으로 인용하며 마르크스는 1800년초부터 중반까지 매뉴팩처에서 대공업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리카도와 존 스튜어트 밀, 맬더스(인구론 전체가 파렴치한 표절이라고 평가), J. S. 밀, A. 스미스 등 당대 경제학자들의 공과 과를 정확히 짚어가며 오류를 지적하고 '정치경제학'이 현실을 얼마나 도외시했는지 노동자의 관점에서 비판한다.

제15장 기계와 대공업은 180쪽 분량으로 1권 전체에서 가장 많은 분량이다. 엥겔스가 불어판, 독일어 4판에 추가한 내용이 포함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협업과 분업을 넘어 매뉴팩처가 어떤 방식으로 상대적 잉여가치를 극대화하고 있는지 그 과정을 꼼꼼하게 살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용(아동노동 조사위원회 보고서 등)하며 잉여가치가 어떤 식으로 인간(성인, 아동, 여성 등 가족 구성원 전부)을 착취하는지 설명한다. 소름끼치는 것은 21세기의 김용균은 19세기에 출발했다는 사실이며 그것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채 계속된다는 점이다.

문제없는 제도와 완전한 행복을 이룩한 사회는 없다. 모든 사람이 만족할 만한 경제체제도 인류사회에 실현한 적은 없다. 하지만, 반성 없는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면 나만의 행복은 불가능하다. 타인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는 세상은 가능할까. '자유'와 '민주주의'는 '평등' 앞에서 갈등한다. 누구를 위한, 누구에 의한 미래일까.

게도 상식과 정의와 공정과 자유와 평등의 기준은 제각각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것처럼 노동자를 노동자라 부르지 못하는 노동부 장관을 보며 현대판 홍길동전을 보는 기분이다. 노동의 가치와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그토록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피땀흘려 싸웠으나 우리는 여전히 자본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그건 아마도 언젠가 나도 자본가가 되겠다는 욕망에 교육체계, 사회적 편견이 덧씌워진 결과가 아닐까.

절대적,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과 시간급, 성과급에 대한 분석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기본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팔것이라고는 몸뚱아리 밖에 없다는 한탄이 고급 지식 노동자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착각이 노동 경시 풍조를 만들어 온 게 아닐까. 화이트 칼라든 블루 칼라든 노동력을 제공하고 영여가치를 생산하는 역할은 크게 다르지 않다. 잉여가치가 자본으로 전환되는 과정은 눈물겹다. 이제 그 자본의 축적 과정에 대해 살펴볼 차례다.

아주 더딘 발걸음을 옮기며 길고 긴 호흡으로 찬찬히 살펴보며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현실과의 접점을 찾는다. 얼마나 달라졌을까, 어디까지 왔을까. 우리가 숨쉬고 사는 세상은 150여 년 전과 어떻게 변했을까. 양적 팽창과 물질적 풍요로움을 부정할 수 없으나 자본이 움직이는 시스템과 교묘한 잉여가치의 축적은 더욱 세련된 방법으로 그리고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보이지 않게 우리를 길들인다. 조금 다른 시선이 필요하다. 언제든, 모든 순간에.

자본시장에서 노동력을 팔기 위한 몸부림과 피나는 경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학은 이미 자본의 하수인이 된지 오래다. 학과의 개설과 커리큘럼을 직접 설계하며 신입생 선발부터 입사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노동력의 임도선매는 소름끼친다. 분야가 달라지고 형태와 방법이 바뀌었을 뿐 가만히 살펴보면 마선생님이 고민하던 시절에서 현실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상당한 분량을 할애한 제25장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은 단순하다. 자본이 축적되는 과정에서 노동력의 수요가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가변자본의 비율은 상대적으로 감소한다. 그러니 노동력의 과잉, 산업예비군이 생기고 노동자 간에 경쟁이 치열해진다. 인구의 증가, 감소에 따른 변화가 아니라 자본 축적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다. 여기에 과학 기술의 발달 등 생산수단이 점차 노동력 감소를 촉발한다. 그래서 “가난한 나라에서는 대중들이 편안하게 살아가고, 부유한 나라에서는 대중들이 일반적으로 가난하다.”라는 역설이 가능해진다. 이후 제5절에서는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등 실제 사례를 통해 이를 증명한다. ​

구체적인 자료와 현실을 다룬 부분은 어떤 소설보다 끔찍하다. 읽다가 잠깐씩 숨을 고르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1861)이 정확히 이 시대를 반영한다. 성인 남성 노동자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과 아이들까지 모든 인간의 생존 조건이 소설보다 참혹하고 생각보다 비현실적이다. 21세기를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물질적 번영과 삶의 질을 비교할 수 없다. 그러니 충분히 긍정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받아들이고 현실적 대안 마련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할까.

급진주의와 온건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관점의 차이다. 기본 구조와 시스템은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자본가와 노동자, 정부의 역할이 비교할 수 없을만큼 정교하고 복잡해졌으며 국가마다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신자유주의가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흉터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여전히 노동자를 근로자로 명명해야 하는 현실 인식은 유럽식 사민주의나 변형된 자본주의의 제도 개선에 큰 걸림돌이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고 세상을 이해하는 관점의 변화는 끊임없는 공부와 자기 혁신에서 비롯된다. 우리의 독서 현실, 토론 문화, 타협과 똘레랑스의 정신은 어디까지 왔을까.

긴 호흡으로 달려온 자본론 1권은 이른바 시초축적, 즉 자본의 근원을 캐묻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신학에서 원죄의 구실과 같은 정치경제학에서 시초축적은 땀흘릴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출현하게 되었을까. 당연하게도 그 반대에는 임금노동자가 존재한다.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없으면 일하지 않고 먹고 사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자본주의제체를 창조하는 과정은 노동자를 자기가 소유하던 노동조건으로부터 분리하는 과정―한편으로는 사회적 생활수단과 생산수단을 자본으로 전환시키며, 다른 한편으로는 직접적 생산자를 임금노동자로 전환시키는 과정―이외의 어떤 다른 것일 수가 없다. 따라서 이른바 시초축적은 생산자와 생산수단 사이의 역사적 분리과정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에 비밀이 숨어 있다. 무소유는 법정 스님의 가르침이 아니라 시초축적의 출발이다. 생산수단과 생활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누구나 노동자가 된다. 지적 능력이든 육체적 노동이든 무언가를 노동시장에 내다 팔아야 한다. 형태와 방법이 고상하다고 해서 본질적인 관계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을 팔며 산다.

그 행위를 거부하는 일이 얼마나 힘겨우며 부질없는 짓인 줄 알기 때문에 모두 '건물주'를 향한 열망을 불태우는 걸까. 가장 편리하고 단순한 방법으로 유한계급이 되는 방법일 테니 연예인, 공무원, 정치인, 운동선수, 예술가, 종교인 할 것없이 모두 부동산과 건물에 쏟는 정성은 자본가가 토지와 생산수단을 소유하려는 욕망과 다름없다. 자본주의 시스템을 온몸으로 체감한 인간의 생존 전략이며 그칠 줄 모르는 당연한 욕망이다. 그러나, 그건 정의롭고 상식적인 세상과 거리가 멀다. 우리가 생각하는 공정과 합리의 정신은 열심히 일한 사람이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이라고 믿지만

태어나는 순간부터 삶의 조건이 다른 사람들이 촘촘한 자본의 그물망을 뚫고 희망과 행복의 길을 안내하는 네비게이션은 자꾸만 출시가 늦어진다. 아니, 어쩌면 만들지 못하는 건가. 수많은 경제전문가, 사회학자, 정치인이 나서지만 현실은 우리의 바람과 멀어진다. 어찌보면 이유는 단순하다. 자본가가 아니어도 제 잇속만 차리는 소수에게 집중된 권력과 자본 때문이다. 이해충돌 방지법, 김영란법이 그들만의 리그, 침묵의 카르텔을 깰 수 있을까. 무엇을 위해, 어디를 향해 우리는 나아가는 걸까.

농민들로부터 토지를 빼앗고, 길드를 해체하고 가내 수공업이 사라진 자리에 매뉴팩처와 대공장이 들어서며 세상을 바꾸는 동안 그 달콤한 열매는 누가 다 가져갔을까. 자본주의적 차지 농업가가와 산업자본가의 탄생 과정은 자본주의적 축적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근대적 식민이론으로 마무리되는 1권은 서유럽에서 미국으로 그 시선을 돌린다. 지역적 특색과 국가별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른 형태로 자본주의는 변화해왔다. 우리가 사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자본주의는 안녕하신지 모르겠다. 아주 오래된 옛날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마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영국의 자본주의 탄생과 현실을 넘어 우리가 걸어온 흔적들이 보인다. 자본론은 경제학 이론서가 아니라 당대 정치사회의 일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역사이며 인간의 탐욕과 현실의 삶을 조망하는 돋보기와 망원경 역할을 동시에 하는 책이다. 이제 2권으로.

자본주의적 생산방식과 축적 방식, 또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는 개인 자신의 노동에 토대를 두는 사적 소유의 철폐, 다시 말해 노동자로부터 노동조건을 빼앗는 것을 기본조건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 10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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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전쟁 - 소비시장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김영준 지음 / 스마트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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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이 정한 규칙을 따를 수 없소.”

그럼, 인연을 끊어요.”

 

그렇게 결심한 후 그가 선택한 삶의 길을 함부로 평가할 수 있을까. 에릭슨이 말한 결정적 시기는 생애주기마다 반복된다. 영화 나비효과를 비롯해서 타임 패러독스, 시간을 달리는 소녀, 하루, 슬라이딩 도어즈, 롤라 런처럼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선 아쉬움이 남는 법. 선택은 잔인하고 결과는 현재와 미래를 만든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합리적이지 않다.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의 기준에 따라 선택할 수도 없고 손익계산서를 놓고 따질 수도 없다.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버튼을 누른다.

 

모든 선택은 부조리하다. 자영업을 선택한 사람들의 결정은 어떤가. 선택지가 없었던 사람부터 놀이로 시작한 사람까지 상황과 맥락은 제각각이다. 업종, 입지, 시기, 투자금액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누가 성공했든, 또 누가 문을 닫았든 결과에 따라 사람들은 그 이유를 합리화하기 시작한다. 인지부조화가 발생하지 않도록, 귀인이론에 따라 그럴듯한 혹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나열하기 시작한다. 창업에 관한 행정 절차와 세법 등 객관적 규정을 제외하면 단 한 군데의 영업장도 동일한 조건은 없다.

 

대왕 카스테라, 벌꿀 아이스크림부터 코인노래방, 인형 뽑기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자영업의 메커니즘을 한 권의 책으로 배우려는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다. 사람들은 흔히 누군가에게 세상 사는 게 그렇게 만만해보여?’라는 말을 내뱉지만 사실 그 말은 자기반성이다. 살아보니 이렇더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누가 똑같은 생각과 감정과 능력과 배경으로 똑같은 삶을 살 수 있는가. 아무도 없다. 그건 먼저 살아본 사람들의 오만이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로 자식을, 제자를, 후배를, 가족을, 친구를, 어린 사람을 함부로 가르치려 들지 말라.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다닌 기억이 선하다. 김영준의 골목의 전쟁은 전통 시장과 대형마트 사이에 놓인 자영업자에 관한 오해와 진실을 다루고 있다. 나는 이 책에서 오해를 풀지도 진실을 찾지도 못했다. 김형준은 상품 가격의 결정과정, 자영업의 성패, 유행의 함정, 상권의 성장과 쇠퇴에 대해 나름의 시각으로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골목의 자영업을 분석한다. 현실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눈에 보이는 현상에서 본질적 원인을 읽어내는 안목은 개인의 능력이다. 사적 경험과 통계 수치, 이론적 근거가 더해지면 믿음이 된다.

 

이 책의 장점은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혹은 선택의 여지없는 자영업이라는 이슈다. 익숙한 소재 선택, 알려진 사실에 대한 분석, 간과하기 쉬운 오해를 쉽게 풀어낸다. 간결하고 쉬운 문장으로 설명하고 근거와 이론으로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착각하거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의지는 없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판세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실패하지 않기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위한 생존전략에는 분명 도움을 준다.

 

쉽게 말하자면 알아둬서 나쁠 건 없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가독성 있는 문장과 모든 사람이 일상에서 접하는 자영업은 누군가의 생업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미래일 수도 있으며 누군가의 고통일 수도 있다. 사회학의 관점으로 경제의 흐름으로 트렌드와 라이프사이클의 변화로 자영업에 접근하는 책도 있겠지만 이 책은 그 모든 것을 현실적인 문제로 녹여버린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하지만 경제학 박사가 떼돈을 벌 수 없듯이 이 책을 읽고 자영업에 뛰어들 수는 없다. 실수와 착각을 줄이고 오해와 편견을 없애는 역할로 받아들이는 정도면 충분하다. 안타까운 건 김형준의 분석과 조언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변화 가능성과 미래는 전혀 예측 불가능한 영역이라는 데 있다. 행동경제학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자영업을 시작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마치 유기체처럼 살아 움직이는 시장 경제를 읽어내기는 어렵다.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불공정한 계약과 갑질 논란,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 재벌 3~4세의 떡볶이와 순대까지 체인점까지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할 구조적 문제만 해결해도 자영업자들의 숨통이 조금은 트일 수 있다. 치열한 경쟁과 임대료 문제가 관건이지만 자영업자는 창업의 문제일 뿐 아니라 내 가족, 친구, 이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실용적 목적으로 읽힐 수 있는 책이지만 우리 사회의 단면을 이해하는 잣대가 될 수도 있다. 눈앞에 현실을 외면하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늘어놓는 경제 비판서는 아니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을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임에는 분명하다. 골목에 전쟁대신 평화가 찾아오길, 무엇보다 우리 삶이 전쟁이 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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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어떻게 돈이 되었는가 - 마르크스 경제학으로 본 자본주의 사회의 시간 싸움
류동민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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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이미 흘러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며 현재는 머물지 아니하므로 시간은 실재하지 않는다.”(폴 리쾨르시간과 이야기 1문학과지성사, 1993)는 회의론자의 추론은 타당한가경제학의 눈으로 바라본 시간은 물리적심리적 양상을 모두 반영한다일하며 느끼는 시간과 사생활의 시간은 층위가 다르다
  
류동민의 시간은 어떻게 돈이 되었는가?(착각하지 말자 시간은 어떻게 돈이 되는가?가 아니라 시간은 어떻게 돈이 되는가이다.)를 본 순간 류비세프의 일생을 들여다본 시간을 지배한 사나이가 떠올랐다. 1916년부터 1972년까지 매일 자신의 삶을 시간으로 기록한 사람의 이야기다시간을 체계적으로 관리했다는 측면에서 선구적인 자기 계발자에 해당한다하지만 그는 의무적인 일을 맡지 않는다시간에 쫓기는 일은 맡지 않는다피로를 느끼면 바로 일을 중단하고 휴식한다열 시간 정도 충분히 잠을 잔다힘든 일과 즐거운 일을 적당히 섞어 한다는 원칙대로 살았다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한 최초의 근대인이다시간을 지배한 사나이가 아니라 시간을 해부한 사나이다
  
현대사회에서 시간은 돈이다프라이스리스의 시간인 여가도 기회비용으로 환산해 본 사람은 자본주의 경제학을 온몸으로 체감한 사람이다경제학자 류동민은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로 처음 만났다. ‘모든 혁명은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말과 함께 시작된 저자의 인문학적 감수성에 충분히 공감했던 책이다그런데 이번에는 기름기를 빼듯핵심을 전달하고 요약된 정보를 제공하듯 서술하고 있어 아쉽다. 200여페이지라는 얄팍한 책으로 태어나 부담을 줄이고 각 챕터의 분량이 짧아 읽기 편해졌다는 느낌보다 천천히 편안하게 저자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재미가 사라졌다물론 시간이라는 주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다루고 있다는 장점을 위해서였겠지만
  
처음 류동민의 책을 선택한 이유는 마르크스 전공자였기 때문이다자유한국당이나 보수진영에서는 여전히 이름만 들어도 딸꾹질을 한다김수행 교수로 대표되는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은 스스로 결정한다가정환경학교교육전공과 직업주변 분위기에 따라 사고와 행동이 결정되지만 읽고 쓰고 경험하면서 인간은 변한다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해서만이 아니다차이웨이의 말대로 머리를 써야 할 때 감정을 쓰지 마라’ 합리적 사고 논리적 판단은 생각보다 부단한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다자연과학의 실험과 결과에 대한 해석조차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지만사회과학적 사고의 토대는 뜨거운 가슴보다 차가운 머리가 우선이다억압된 감정을 표출하고 분노의 언어를 토해내면 속은 후련하지만 변화 가능성은 적다
  
자본주의적 삶 속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추적하라는 류동민의 프롤로그가 사실 이 책을 읽는 목적에 해당한다주체와 객체개별과 보편화폐와 물신시간의 밀도시간의 착취잉여의 시간 등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학적 관점으로 해석 가능한 시간의 온도와 밀도를 면밀히 살펴보는 동안 나의 시간을 돌아보았다분초 단위를 쪼개고 쪼개던 순간들이 떠올랐지만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프라이스리스의 시간이지만 잉여의 시간과 허구의 시간으로 살기로 했다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하루는 스물 네 시간이다그리고 언젠가 죽는다는 절대 평등
  
이 조건 안에서 우리는 남은 시간을 쓴다같은 시간을 각자 다른 방식으로모든 사람이 노동의 자율성과 노동의 최소화를 고민한다저자의 말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화된 시간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돈(화폐)이다돈은 그 자체로 시간이면서 일(노동)이 된다일을 한다는 것은 시간을 쓰는 것이며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돈을 번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어떻게 쓸 것인가이전에 시간은 자본주의적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으로 손색이 없다카스테라 한 조각을 뭉쳐 입에 넣어도 물리적인 양은 동일하지만 맛은 다르다이 책은 얇고 짧지만 그 깊이와 내용에 목이 막힐 수 있으니 유의 할 것사족이지만 표지디자인과 본문 디자인은 막힌 목을 풀어줄만한 우유가 아니라 건조기 바람처럼 서걱인다편안하고 부드럽게 포장한다고 내용이 달라지진 않지만 캐릭터일러스트요약정리 어떤 방법이든 조금 더 쉽고 간명한 요소가 곁들여졌다면 싶은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다같은 메뉴라도 음식점의 분위기와 주변에 놓인 요리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을 내기 때문이다
  
노동자에게 있어 착취당하는 것보다 더 비참한 상태는 착취해 줄 상대를 찾지 못할 때뿐이다.”라는 조앤 로빈슨의 시니컬한 지적이 노동의 시간이 아니라 착취 대상을 물색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더 큰 문제가 되는 상황이다곳곳에 인용한 책들에 군침만 삼켰다곁에 두고 참고 문헌을 참고할 만하다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처럼 경제학을 인문학이나 생활에 적용시킨 책을 더 잘 쓸 수 있는 저자의 다음 책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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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경제의 역사 즐거운 지식 (비룡소 청소년) 3
니콜라우스 피퍼 지음, 알요샤 블라우 그림, 유혜자 옮김 / 비룡소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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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스타들이 일주일 동안 단 돈 만원으로 생활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만원의 행복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단순히 돈의 소중함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보자는 의도였을 것이다. 비싼 음식을 먹자면 한 끼조차 해결할 수 없는 만원은 일주일을 버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하지만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없기 때문에 적은 돈으로 선택한 즐거움과 만족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많은 돈이 있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경제학자 부크홀츠는 경제학이란 최선의 선택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학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경제학이란 우리의 삶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돕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경제학은 선택의 학문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겪는 선택의 갈등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장 큰 만족을 얻거나 피해를 최소화하거나 가장 덜 힘든 것을 선택하려는 이기적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 단순히 일정한 금액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물건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만이 아니라 우리는 거의 모든 순간에 본능적으로 경제학적 선택을 하고 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경제 문제는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해졌다. 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움직이는 대부분의 원인이 경제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를 단순히 의 문제로만 환원할 수는 없다. 돈이 사람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 모든 행위를 경제학적 이론이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더라도 경제학을 단순하게 돈을 많이 버는 방법에 관한 학문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넓은 의미에서 경제학은 인류가 먹고 살아온 과정에 관한 진지한 탐구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인류가 걸어온 삶의 과정과 역사를 명쾌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되기도 하는 것이 경제학이다. 그런 의미에서 리오 휴버먼의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는 우리가 몰랐던 경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게 해준다. 이 책은 경제학에 관한 이론서도 개념서도 아니다. 경제의 흐름과 발전과정을 어떤 관점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인류의 삶은 전혀 다르게 해석된다. 리오 휴버먼은 자본주의의 탄생 이전과 이후의 사회, 역사적 맥락을 상세히 설명하며 경제사와 경제 사상사의 중간쯤을 더듬고 있다. 당대의 사회적 상황을 통해 필연적으로 자본주의가 등장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를 간접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입법부가 고용주와 노동자들 사이의 불화를 조정하려 할 때마다 입법부의 조언자 역할을 맡는 쪽은 언제나 고용주들이다.’는 애덤 스미스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대가 변했어도 그 관계는 지속되고 있으며 우리는 대부분 고용주가 아니라 노동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지만 고용주와 노동자 어느 쪽이 되든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을 이해하고 그 변화과정과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어보는 눈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이보다 조금 쉽고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니콜라우스 피퍼의 청소년을 위한 경제의 역사는 고대와 중세의 경제부터 자본주의의 성립과 발전 그리고 세계 경제의 미래로 나누어져 있다. 본격적으로 경제학을 공부하기 전에 혹은 일반인들 입장에서 품을 수 있는 호기심을 질문형식으로 바꿔 각 장을 삼고 그에 답하는 형식으로 구성했기 때문에 분량이나 난이도면에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철저하게 자본의 노예가 된 것 같은 현대인들의 삶에서 돈의 의미를 다시 묻고 있는 김찬호의 돈의 인문학은 더욱 값지게 읽힌다. 한진수의 17살 경제학 플러스등의 책이 주장하는 것처럼 사유재산권이 보장되므로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를 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고 하며 기업은 좋은 상품을 개발하려 한다.’는 논리가 아니라 인문학은 당장의 상황을 바꾸어주는 데 큰 힘이 되지는 못하지만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과 거기에 임하는 태도를 바꾸는 데는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은 돈과 인문학이라는 어색한 만남이 왜 필요한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인문학적 관점에서는 가격이 아니라 가치가 중요하고 소유가 아니라 관계가 중요하다. 저자는 돈의 노예가 아니라 돈의 주인이 될 것을 주장한다. 아이들의 꿈과 미래, 남녀관계, 일상생활 등 어느 것 하나도 돈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돈의 무한한 욕망으로부터 한발 비껴서 그것을 바라볼 때 우리의 삶은 자유로워 질 수 있다. 지금은 그러한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지 돌아보자.  

 

이에 비해 스티븐 레빗과 스티븐 더브너의 괴짜 경제학은 가장 현실적이고 유용한 경제학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선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이 책은 경제학 용어나 개념을 이해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경제학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얼마나 밀접한 학문인가를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책이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우리는 전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사람들은 미래와 행복을 꿈꾸며 산다. 이런 세상이 모순된 모습으로 비춰진다면 우리가 세상을 경제의 잣대가 아니라 도덕의 잣대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스티븐 레빗과 저널리스트 스티븐 더브너의 만남은 이런 모순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이 책은 단순히 경제학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경제학적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잠자리의 눈처럼 넓고 다양한 관점을 제공한다.

 

신문 경제면을 이해하기 위한 경제지식이나 데이터와 통계에 의존하는 경제학도 존재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을 움직이는 경제의 힘과 그것이 걸어온 과정을 보여줄 수는 역사적 관점이다. 현 경제체제에 적응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라 비판적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삶의 태도를 갖기 위해서도 경제학은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안목을 제공한다 

 

120528-05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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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체험판)
장하준.정승일.이종태 지음 / 부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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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프렌차이즈 업체와 자영업자 사이의 계약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인테리어 변경 기간과 비용 등 일방적이고 노골적인 업체의 배불리기 수법이 불공정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과연 몰라서 지금까지 관여하지 않았을까.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대로 모든 것은 시장에 맡겨두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절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선거 이틀 전에야 손을 대는 정부의 태도를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상식과 자주 부딪친다. 사람들은 저마다 선택과 판단의 기준이 다르다. 선악의 가치 판단 기준도 다를 뿐 아니라 태도와 방법은 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그래서 서로 알고 있는 상식도 다르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상대의 실수를 논쟁의 중심으로 끌어들이거나 너도 마찬가지라는 물타기 전법을 쓰는 정치인은 어떤가. 권리만 주장하고 자신의 이익만 앞세우는 태도는 금방 벽에 부딪친다. 자신에게 불리한 일이 생기면 뒤에서 욕하고 없는 사실을 만들고 소문으로 승부를 내기도 한다. 입으로 죄은 죄는 입으로 돌려받게 된다.

 

그러나 정치에는 상식도 이념도 국민도 없다. 오로지 후보자의 당선만 있을 뿐이다. 선거가 생활을 바꾸고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미래가 달라진다는 말은 글자 그대로 이론으로만 사람들의 머릿속을 채운다.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강고하다. 자신의 계급에 맞지 않는 투표 행위를 어떻게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숱한 철학자와 사상가들 그리고 사회학자들이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현실적 모순을 지적하지만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 성향은 고스란히 선거에 반영되고 현실 정치와 경제에 반영되며 우리들의 삶을 좌지우지 한다. 부모의 영향, 학교 교육, 개인적 성향, 집단의 이익, 인간 관계, 지역적 특성에 따라 생각의 좌표는 조금씩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래도 여전히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어떻게 해야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사회는 어떻게 변해야 하며 어떤 경제적 모델을 꿈꾸는가. 지금 우리들의 삶은 어떠하며 미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이 모든 고민의 바탕에는 자본의 욕망이 꿈틀거린다. 이기적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의 본성이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며 어떤 미래를 만들어가야 하는가. 끝없는 질문의 끝자락에서 쾌도난마 한국경제를 만난 것이 2005년이다. 7년 만에 그 후속편에 해당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읽으면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았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실망과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분노 그리고 두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복지논쟁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고 서울 시장을 갈아치웠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2011년에 나온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2008년의 금융위기와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선언하는 듯 했지만 대한민국의 경제권력과 진보적 비판세력은 실질적인 주도권 싸움에 열을 올리며 이념 대립에만 골몰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현대사회의 아니 대한민국의 문제는 경제다.

 

2006국가의 역할, 2007나쁜 사마리안인들을 잇달아 내 놓은 세계적인 경제학자 캠브리지 대학의 장하준은 좌파로 규정되며 그의 책은 국방부 금서로 지정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을 벌어지기도 했다. 반면에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쪽에서 박정희 시대의 국가 통제 자본주의와 재벌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 때문에 욕을 먹기도 했다. 완전히 자유로울 수 는 없겠지만 경제가 이념으로 해결 가능한가. 아니면 미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경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복지 논쟁은 좌우의 이념 대립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가. 곧바로 우리 삶에 직결되는 이 문제들을 우리는 외면하면서 살아갈 수 없고 정치인들에게만 맡겨둘 수도 없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의 필독서로 손색이 없다.

 

이종태 기자의 사회로 장하준과 정승일 두 사람이 대담을 나누고 정리한 책이다. 전작인 쾌도난마 한국경제의 형식을 그대로 빌려왔다. 우리가 자유주의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로 시작되는 이 책은 노무현 정부의 실패, 진보의 착각에서부터 현정부의 문제점까지 신랄하게 비판의 칼날을 들이민다. 10, 20년을 내다보고 99%가 나서야 할 상황이라는 말은 뼈아픈 우리의 현실을 말해준다. 최근까지 이어지는 금융위기의 원인과 전망, 끝없이 되살아나는 박정희식 경제 체제의 장단점, 재벌 개혁에 대한 오해와 진실, FTA의 실체와 문제점을 살펴보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미래의 화두인 복지에 대한 관점과 의미 그리고 실천방법을 조명하는 것으로 책은 마무리된다.

 

그러나 두 경제학자의 이야기를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는 결국 실천의 문제로 남는다. 19대 총선이 치러지는 날이지만 선거 결과가 우리들 삶을 변화시키는 출발점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는 것 같다. 국민은 자신의 수준의 맞는 정부를 갖는다는 말이 뼈아픈 현실을 겪으면서도 실감나지 않는 모양이다. 경제를 발전시켰듯이 복지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장하준과 정승일의 이야기는 사실일까. 정체제도로서의 민주주의와 경제체제로서의 자본주의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 소수가 아닌 다수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그 소수는 다수와 함께 행복해질 마음이 있는 것일까. 사람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잘못된 프레임에 갇혀 함부로 쏟아내는 말들이 얼마나 우리의 미래를 위협하는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책을 읽으며 생각하고 현실을 관찰하고 조금씩이라도 행동이 변해야 산다. 그것이 우리의 미래가 희망으로 반짝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11표인 정치적 민주주의와 11표인 경제적 자본주의의 관계는 늘 팽팽한 긴장과 대립 속에 있는 만큼 우리는 진정한 민주주의는 반드시 통제된 시장, 통제된 자본주의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국민을 위해 시장을, 특히 금융 시장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면 금융 위기를 막을 수 없으며, 심각한 빈부 격차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가 이러한 과제에 실패한다면 민주주의는 껍데기로 전락해 형식만 남게 되고, 국민의 삶은 실질적으로 시장과 자본주의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는 진보적 자유주의였음을 자부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 치하에서 절실하게 체험했던 바이다. - 422

 

12041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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