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의 순간들 더 갤러리 101 1
이진숙 지음 / 돌베개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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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감수성은 인간의 본능에 내재 돼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감수성은 저절로 발현되는 게 아니라 원석에 감춰진 보석처럼 갈고 닦아야 빛이 난다. 예술사, 즉 예술에 대한 역사적 지식과 시대정신을 이해하는 방법이 작품을 이해하는 초석이다.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감각적 행위는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과 삶에 대한 태도를 반영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공동체가 겪는 역사적 경험과 철학이 스며들어 인류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존 버거는 ‘다른 방식으로 보기’를 권했으나 어느 시대에도 기존 방식을 답습하라고 권한 예술가가 있었을까. 때로는 그리스․로마 시대의 고전적 아름다움을 재현하려 노력했고 때로는 보편적 미의 원칙을 거부하며 이성보다는 감성과 비합리적 세계를 추구하기도 했다. 예술은 현실 너머 세계를 지향하는 듯하지만 인간의 문제를 넘어설 수는 없지 않은가.

신의 세계를 갈망했던 중세가 저물고 르네상스가 열렸다. 그림자와 원근법으로 무장하며 인본주의humanism는 지금-여기의 인간을 중심에 놓는다. 신과 귀족을 넘어 신흥 부르주아, 광대까지 제3신분으로 대상이 확대되며 미술은 민중 속으로 걸어들어온다. 그림이 미술관에 박제된 건 근대 이후의 일이지만 보편성을 획득하며 누구나 보고 즐길 수 있는 된 건 이중 혁명 시대의 열매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태동하며 근대사회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를 이중혁명의 시대라고 명명한 건 에릭 홉스봄이다. 그가 지적한 대로 이중 혁명을 거쳐 21세기, 오늘을 사는 우리 삶의 틀은 겨우 200년여 년 동안 확립됐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현대인은 고대와 중세, 근대라는 시간을 통과하며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시대를 미래는 뭐라 부를지 알 수 없으나 미술사의 한 시기가 아니라 사적 발전 과정으로서 오늘이 궁금하다. 아니, 오늘 우리가 지향하는 방향과 목적지가 우려될 뿐이다.

프랑스의 라루스 출판사에서 심혈을 기울여 출간한 ‘라루스 미술사-이해와 인식’ 7권(중세미술~현대미술)이 번역 출간된 지 10년이 넘었다. 서가 한쪽에 꽂혀 있는 이 라루스 백과사전이 내겐 마중물이 됐다. 본격적으로 예술에 관심과 재미를 갖게 된 건 그림 자체가 지닌 미적 요소보다 도상학에 반영된 시대 정신과 인문학적 지식이었다. 물론 화가의 일생, 세속적 욕망, 정치적 목적이 혼재된 배경지식만으로 그림을 이해할 수는 없다. 아름다움에 감응하는 인간의 본능이 필요조건이라면 미술사에 대한 이해와 인문학적 소양은 충분조건에 해당한다.

지금까지 ‘미술 읽어주는 여자’를 자처한 한젬마부터 이주헌의 저작들, 최근의 인기 도슨트의 책까지 미술 대중화에 힘쓴 혹은 상업적 이용에 활용한 사람들의 공과를 논할 생각은 없다. 각자 나름의 자리에서 명암이 엇갈리는 역할을 해왔을 테니까. 그래서 감상이 곁들여진 주관적 그림 해설에 흥미를 잃은 지 오래다. 미학과 철학, 역사 공부가 오히려 도움이 됐다. 그림을 이해하는 비법 같은 건 애초에 없다. 특강 몇 번으로 예술에 다가가기도 힘들다. 그러나 이진숙의 『인간다움의 순간들』(르네상스부터 낭만주의까지)은 화가와 관객과의 거리 조절에 성공했다. 내 말만 들으면 그림을 이해할 수 있다거나 그림을 이렇게 봐야 한다는 가르치지 않는다. 달콤한 감상과 현란한 수식으로 상찬하지도 않고 개인적 소회를 버무려 현실을 위로하지도 않는다. 객관적 사실을 설명하고 그림의 탄생 배경과 시대 상황을 적절하게 묘사할 뿐이다. 글쓴이의 감상은 절제되어 있어 차분하고 지적인 태도가 돋보인다. 그렇게 깊이를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문학과 철학과 역사에 바탕을 둔 적확한 해설이 탁월하다. 호들갑스럽지 않으면서도 애정 어린 텍스트가 그림 앞으로 한발 다가서게 하는 효과를 거둔다.

이 책에는 33명의 화가를 소개한다. 전부 101명을 기획해서, 라파엘 전파부터 추상미술까지 다룬 『위대한 고독의 순간들』에는 67명까지 소개했다. 이 시리즈를 찬찬히 읽고 나면 어떤 전시를 둘러봐도 기본적인 소양과 미술사에 대한 이해로는 충분해 보인다. 저자는 단순히 그림을 해설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학, 역사, 철학, 사회와 상호작용까지 들여다본다. 상호작용하며 영향을 주고받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 사이 사이의 관계를 매끄럽게 연결하고 중요한 포인트를 짚어주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더구나 책은 현란한 말솜씨와 다른 텍스트의 깊이를 담보해야 하는 일이다.

혹시 주변에서 미술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혹은 예술 전반에 관한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는 난해하고,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부담스럽다. 대개 그림 에세이들은 지나치게 감상에 젖어 있고, 해설서들은 단편적 지식의 나열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진숙의 글은 그림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적절한 깊이와 넓이를 확보하고 있다. 적당한 거리두기는 코로나 시대의 방역지침이 아니라 학문과 예술을 대하는 태도에도 적용해야 마땅하다.

“프랑스혁명은 인간에게 제2의 영혼인 권리를 줌으로써 두 번째로 인간을 창조했다”고 위고는 말한다. 이 말은 지금까지 우리가 탐구해온 ‘인간다움’의 여정이 중요한 한 순간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문학, 미술을 포함한 모든 예술이 열렬히 탐구한 가장 오래되고 본질적인 주제는 ‘인간’이었다. - 4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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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림이 말했다 - 생활인을 위한 공감 백배 인생 미술
우정아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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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 1960년대 벌어졌던 문학의 순수-참여’ 논쟁은 이어령과 김수영 개인의 의견 대립이 아니라 오랫동안 예술가들에게 던져진 숙제였다당대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 현실’ 반영 문제는 누구에게나 고민거리였을 것이다문학은 물론 그림과 음악도 마찬가지다예술은 현실 너머의 숭고한 대상을 표현할 수도 있으나 지금-여기에 발 딛고 서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공감을 얻기 힘들 수도 있다그렇다고 비루한 일상참담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수도 없다예술은 그 자체로 목적이면서 때로는 도구로 활용된다어느 쪽이든 프로파간다다.
  
예술을 보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우선 미술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기원전 3000년 전부터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5천여 년에 걸친 인류 문명사에 얼마나 많은 예술 작품이 있겠는가각 시대별 특징과 유파를 고전주의부터 팝아트까지 일별할 수 있는 지식은 작품 감상을 풍부하게 만든다여기에 당대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이해작가의 생애를 더하면 충분하다
  
존 버거는 다른 방식으로 볼 것을 권유한다미술관이라는 특정 장소에 가야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책과 인터넷으로 눈요기를 즐긴다일상에서 친숙하게 그림과 조각을 접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오늘그림이 말했다』 같은 책이 아니면 설명을 듣기도 쉽지 않다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휘트니 채드윅의 여성미술사회가 아니면 진중권이주헌박홍순 등이 쓴 해설가가 주종을 이룬다각각의 그림에 대한 개별적인 감상다른 관점을 보여주는 책은 거의 없다그림에 대한 간단한 지식미술사의 위치개인의 일상을 함께 소개하는 정도다이런 류의 책들을 끊임없이 소비하는 이유는 언제든 찾아가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일정 기간 동안 기획 전시되는 그림을 보고 나면 또 언제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몇 달 쯤 유럽의 미술관에 처박혀 그림만 보는 생각을 하곤 했다사적인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오늘그림이 말했다를 펼쳤다.
  
그런데 오늘은 없었다. ‘생활인을 위한 공감 백배 인생 미술이라는 부제까지 생활밀착형 그림 설명을 기대했으나 현실이 없었다. ‘소재를 고르면서는 때마다의 사회적 이슈와 연결되도록이라는 머리말에 기대가 부풀었으나 그림과 현실의 접점이라는 가장 큰 특징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현재적 관점으로 그림에 대한 이해를 돕는 설명이 가끔 눈에 띄긴 했으나 다른 그림 해설서와 뚜렷이 차별화되는 지점이 없어 안타까웠다적당한 지식과 감상을 보여주는 문안한 책으로 보면 충분하다
  
신문에 연재 특성상 일반적으로 적절한 깊이로 조절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특정한 키워드로 단단하게 묶거나 시대와 유파를 넘어 저자 나름의 관점을 드러낼 수 있는 부분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그림을 보는 전문가의 안목을 빌려 사람들은 흥미를 갖게 되고 미술관을 찾는다풍부한 서사가 곁들여지든일반적인 감상에서 벗어나더라도 독특한 관점이 드러나는 책이 기다려진다순전히 개인적이 취향일 수 있으나 박홍순의 생각의 미술관이 오히려 그림을 재밌게 감상하며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다상상의 힘과 여지를 남겨 주거나 어떤 식으로든 자기 관점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서양 미술에는 수없이 많은 여자가 등장하지만 그들은 딱 세 부류로 나뉜다예쁜 여자나쁜 여자 그리고 어머니다…… 예쁜 여자의 전형은 비너스이고 나쁜 여자의 대표는 이브이며 어머니의 신은 성모마리아다. -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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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마음에 남아 - 매일 그림 같은 순간이 옵니다
김수정 지음 / 아트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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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끔유리벽 안에 사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신경림의 말대로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보이지 않는 투명 비닐막에 싸여 허우적대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을 알아본다그리고 공감의 미소를 보내는 대신 모른 척 외면한다생채기 나기 쉬운 멘탈은 세상살이에 부적합하다예민하고 까탈스런 감정은 손을 댈 때마다 바스러진다타인의 말과 행동은 그대로 불에 덴 것 같은 상처를 남긴다모두 웃는 상황에서도 짜증이 날 때도 있고심각한 상황이 너무 우스꽝스러워 미친 듯 폭소가 터질 때도 있다뺨을 스치는 바람서쪽 하늘에 물든 붉은 노을차창에 부딪치는 물방울소리없이 흐르는 구름의 모양에 발길을 멈춘다배터리를 제거한 핸드폰처럼 때때로 세상이 일시정지 화면으로 보이기도 한다깨어있는 모든 시간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고 가족과 내 방이 너무 낯설어 불편하기도 하다그림은 마음에 남아를 쓴 김수정은 아마도 그런 사람일 것이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라는 상상속의 색을 좋아한다무라카미 류의 소설 제목이지만 내겐 제목만 남아 유토피아처럼 없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색을 쫓는다아주 오래 전 읽었던 그림 읽어주는 여자가 떠오른 건지나치게 내밀한 고백이 불편했기 때문이다최근 각 서점의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는 감성 팔이와는 다르지만 내면의 고백을 듣는 일이 내게는 불편했다외면하고 싶은 저 깊은 곳의 감정이기 때문이며애써 꾹꾹 눌러놓은 내면의 상처 때문이기도 하다이 책은 그림은 마음에 남아’ 깊은 울림을 준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마음이 그림에 남아 어쩔 줄 모르는 저자의 모습이 선명하다
  
그림을 이해하는 거친 두 가지 방식은 머리와 가슴이다미술사에 대한 지식과 회화의 변천사는 미술관에 가기 위한 필요조건이다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진 않다그림을 받아들일 감수성이 없다면 기계적인 학습에 불과하다김수정은 서양화를 전공한 예술가다오랫동안 하얀 캔버스 앞에서 손끝이 갈라질 때까지 물감과 붓을 잡았던 사람이다스스로 그 긴 고통과 환희 순간을 말한 적은 없지만 행간에 스민 그림에 대한 열망이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에피소드로 시작하는 일상적 현대인의 모습능청스러울 만큼 자연스럽게 그에 어울리는 그림을 소개하는 방식은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며 장점이다이주헌이나 이명옥이 보여주지 못했던 일상과 그림의 조화가 빛난다박제된 고전은 힘이 약하다현재성을 획득하지 못한 예술 또한 그들만의 잔치에 불과하다김수정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그림일상의 고통과 피로를 나눌 만한 그림소통과 나눔이 가능한 그림을 말한다그것은 지식으로서의 예술이 아니고 교양으로서의 그림이 아니며 삶 그자체가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저자의 또 하나의 미덕은 독서력이다시와 소설은 물론이고 인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심은 꼼꼼한 밑줄과 인용으로 가슴에서 머리로 그림에 대한 감상을 밀어 올린다간지러운 감성에 기대 대책 없는 위로를 건넸더라면 내겐 오히려 감동 없는 책읽기로 끝났을 듯. ‘혀는 거짓말을 일삼고 몸은 과장을 좋아한다는 천운영의 소설에 그은 밑줄을 보고 깜짝 놀랐다같은 책을 읽고 같은 문장에 밑줄 긋는 사람들의 동질감은 유리벽 안에 살면서 투명비늘을 뒤집어쓰고 다니는 사람과 눈이 마주친 느낌이다
  
40개의 주제에 따라 소개된 그림들은 대체로 19세기이후 근대미술과 현대미술이 주종을 이룬다중세 미술이 더러 등장하기도 하고 한국 작가의 그림도 소개되지만 주로 인상주의에서 상징주의 청기사파까지의 그림을 소개한다미술사의 대체적인 흐름을 확인하는 책은 아니지만 다양성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반면 각 유파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대표작도 더러 포함되어 있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는 작품들과 처음 대하는 화가들의 작품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식상한 그림 소개 책보다는 오히려 감상의 측면에서 신선했다
  
출근길 지하철의 풍경에서 시작해서 한겨울 찬 공기와 씨름해야 하는 상황까지 솔직하게 고백하는 저자의 일상은 공감대가 넓다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이웃의 이야기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환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그림에 대한 깊은 이해가 또 하나의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처럼 적절하게 교차하고 있어 에세이를 좋아하는 사람도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도 만족스럽게 읽을 만한 책이다일상과 그림과 책이 꼴라주 된 저자만의 색깔이 분명하다다음에는 또 어떤 그림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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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 Philosophy + Film
이왕주 지음 / 효형출판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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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자체가 메시지임을 간파한 맥루한의 말은 여전히 모든 예술에 유효하다. , 소리, 움직임, 언어 등 예술의 도구 자체가 우리에게 주는 느낌은 분명히 다르다. 그에 대한 반응 또한 제각각이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발생한 사진과 영화는 예술 고유의 아우라를 벗어던지고 대중과 일상적으로 접속한다. 발터 벤야민의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이 적확하게 짚어낸 것은 근대성의 특징일지 모른다. 동시성과 복제 가능성이 기존 예술과 배치되지만 오늘날의 예술은 규정하기조차 힘들다. 하나의 영역과 테두리를 벗어나려는 노력이 아니라 그 경계 자체가 무의미해진 시대를 살면서 우리가 향유해야 하는 예술은 무엇인가.

 

가장 대중적인, 그래서 예술이라는 이름조차 어색한 영화도 마찬가지다. 몇 년 전인가 기억조차 희미한 어느 날 새벽 독립영화관에서 영화를 한 편 보았다. 마지막 엔딩이 올라갈 때 알았다. ‘페이크 다큐멘타리먼트(fake documentary)’라는 사실을. 그때 충격은 영화의 내용과 무관하게 소름끼치는 경험이었다. 그것이 사실인가 허구인가의 문제에서 자유로워야 하는 영화조차 속임수를 쓸 때가 있다. 관객의 뒤통수를 내리치는 방법이 기막히지만 소설은 그렇지 아니한가.

삶의 가장 진지한 성찰로서의 철학과 영화의 만남이 어색하지는 않다. 영화는 모든 갈래와 만날 수 있고 모든 학문과 접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형식이 아니라 내용의 정교함과 필연성이 문제가 되겠다. 이왕주는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를 통해 철학의 외부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통해 철학을 해석한다. 아니 영화에 나타난 철학적 질문에 해석을 시도한다. 말하자면 철학이 영화를 캐스팅한 것이 아니라 영화가 철학을 캐스팅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영화 <피아노>사랑은 소유하지 않는 것이라는 명제를 낳고 그 명제는 에리히 프롬을 호출한다. 지구에 인구 수만큼 다양한 형태의 사랑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진부하다. 이왕주는 영화를 해설하는 대신 그 사랑의 방식을 통해 인간을 설명한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에서 두 종류의 인간을 구분한다. 하나는 존재지향의 인간이고 다른 하나는 소유지향의 인간이다. 존재지향의 사람들은 단지 어떤 것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놀라움, 기쁨, 행복을 느낀다. 그들은 길가에 피어난 한 송이 꽃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느낀다. 그러나 소유지향적인 사람들은 단순히 어떤 것이 있다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것이 내 것이라야 한다. 내가 소유하고 지배하고 군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럴 수 없는 것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피어 있는 꽃이 아름다우냐 아름답지 않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 110

 

어떤 영화를 보았느냐, 재미있었느냐는 질문처럼 난감한 것이 없을 때가 있다. 재미는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그리고 그 재미는 사람마다 다르다. 아주 오래 전 베를린 천사의 시를 후배커플에게 추천했다가 두고두고 욕을 먹은 적이 있다. 책이든 영화든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추천을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어떤 면에서 좋은가. 아니 나쁜가. 추천할 만한가 그렇지 않은가. 6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여전히 읽을 만하다.

 

매체의 특성상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신제품 때문에 지나간 영화는 재미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트루먼 쇼>, <굿 윌 헌팅>, <중경삼림>, <뷰티플 마인드>, <메멘토>, <일 포스티노>, <오아시스> 등 시간과 무관하게 다시 보고 싶은 영화들을 다시 읽는 재미가 무엇보다 컸다. 8개의 주제로 29편의 영화를 소개하며 각각의 영화와 철학자를 엮고 있는 이 책은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영화에 대한 소개서로 영화를 본 사람에게는 다시보기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우연하게도 몇 편의 영화를 서너 편을 제외하고 모두 본 영화였지만 잊었던 장면, 전혀 기억도 나지 않는 대사를 읽으면서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과거는 없고 오직 기억만이 있으며, 미래는 없고 다만 기대가 있을 따름이다. 존재하는 시간은 현재, 이 순간뿐이다. 우리가 사랑하고 미워하고 존경하고 질투하고 선택하고 거부하는 모든 것들이 이 현재의 지평 위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라는 것이다. 즉 삶의 시간은 오직 하나, 현재가 있을 뿐이며, 기억(과거)하고 기대(미래)하는 일들도 모두 이 시간의 지평 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현재형 사건들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 132

 

<중경삼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한 대목이다. 기억과 기대 그리고 현존재에 대해 한 참이나 눈길이 머무는 문장이었다. ‘삶의 시간은 오직 하나, 현재 있을 뿐이라는 작가의 통찰에 고개를 끄덕이며 밑줄을 그었다. 추억은 사람마다 다르게 적힌다. 같은 시간과 공간을 살지만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판단하며 기억한다. 그것이 사랑이든 삶이든.

 

버리고 행복하라는 비노바 바베의 말이나 유위有爲는 무위無爲를 누르지 못하고, 억지스러움은 자연스러움 앞에서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노자의 말이나 지나가는 모든 것 앞에 고개 숙이게 하는 말이다. 우리가 영화에서 읽어내는 것은 영원한 사랑이나 삶의 비극성이 아니라 현재 나의 모습이 아닐까. 스크린에 투영되는 것은 멋진 배우의 얼굴이 아니라 어두운 극장에 외롭게 앉아 화면을 응시하는 우리들의 얼굴이 아닐까. 철학은 영화를 캐스팅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모든 영화에 철학은 까메오로 출연한다.

 

사랑은 중간에서 만나는 것이다.’ 감독 파스칼 바일 리가 영화 <좋은 걸 어떡해>에서 새롭게 보여준 사랑의 정의이다. 평범해 보이는 이 정의야말로 사랑에 대한 간곡한 진실을 더 많이 담고 있지 않은가. - 354

 

12022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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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힘 - 매혹적인 스토리텔링의 조건
이창용 외 지음 / 황금물고기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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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프로그램, 동영상 그리고 종이책

EBS의 지식채널은 짧은 동영상만으로도 한 시간짜리 프로그램 못지 않은 감동과 정서적 충격, 지적 자극을 주기에 충분했‘었’다. 적어도 광우병관련 영상 때문에 경영진으로부터 보복 인사 조치를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기륭전자3년’을 마지막으로 지식채널을 떠난 김진혁PD가 곧 지식채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시대를 비판하고 각성을 촉구하는 언론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할 때 남은 자들은 낮은 자세로 복지부동하거나 심한 자기 검열에 시달린다. 세월이 하 수상하니 누구를 탓하랴, 다만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게 될 뿐.

책으로도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EBS의 프로그램들은 자주 책으로도 독자들과 만나게 된다. 방송 시간을 놓친 시청자들이라면 다시 보기 동영상을 통해 보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 아닌가. 왜 종이로 된 책으로 내용을 살펴보고 싶은 것일까. 그것은 방송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깊이와 구체적인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 때문이 아닐까. 다큐 프라임 ‘이야기의 힘’이 책으로 출간되었다.

책은 책 나름의 원칙과 방법으로 독자와 만난다.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표지 디자인으로 책과 첫 대면을 하지만 기획에서 편집, 교정, 교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숨어 있다. 이것은 물론 책의 ‘꼴’에 대한 부분이다. 책의 ‘속’은 작가가 책임지지만 책의 꼴은 편집자의 몫이다. 그에 앞서 ‘출판기획’이 선행되는 경우도 있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 모든 과정을 생각하지 않고 마지막 결과물과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그 결과물에는 가끔 ‘옥의티’가 있을 수 있다. 사극의 배경 하늘에 비행기가 지나가면 분위기가 확 깨는 것처럼. 그러나 그것이 반복될 때 그 책의 속(내용)은 아무리 좋은 것이어도 꼴(형식) 때문에 완전히 실망하게 될 때가 있다. 다음 몇 문장을 살펴보자.

◆ 경복궁은 말이야, 원래 1939년에 태조 이성계가 만들었어요. 1939년, 참 까마득…… 하지? - 35쪽
◆ 최고의 로맨스로 이야기되어지는 이 이야기는 잔잔하면서도 깊이 각인되는 기억을 선물해주었다. - 57쪽
◆ 백호 :(난처해하며) 아니, 그게 아니라…… 범인을 놓쳐가지고…….
남자 : (화를 내며) 됐어요! (아이를 안고 돌아서며) 자, 가자. 많이 놀랐지? - 76쪽
◆ 인간은 자신의 삶을 방향을 찾는 데 좀 더 적극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 106쪽


1392년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는 한양으로 천도하여 1395년에 경복궁을 창건했다. 1939년?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치명적인 실수다. 두 번째 문장에서 ‘이야기가되어지는 이 이야기’가 무슨 말인가. ‘최고의 로맨스로 인정받은’, ‘최고의 로맨스로 평가받는’ 정도면 어색하지 않은 문장이 되었을 것이다. 세 번째, 대화 상황의 ‘백호’는 범인이다. 이 대사는 분명히 경찰인 ‘대찬’이다. 마지막 문장은 ‘인간은 자신의 삶의 방향을’로 고쳐도 어색하지만 ‘삶을 방향을’을 그대로 둘 수도 없다. 꼬인 문장을 풀어야 한다.

가독성을 해치고 책의 질을 완벽하게 떨어뜨리는 몇 개의 문장에 표시하며 책을 읽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을 쓰고 만들어 본 경험 때문이 아니라 ‘펴낸이’와 ‘기획’은 있으되 ‘편집’은 없는 이 책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는 2011년 11월 청소년권장도서로 선정했다. 입맛이 쓰다. 좋은 책의 절반은 편집자가 만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좋은 작가만큼 출판사도 꼼꼼하게 따져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야기, 소설 그리고 스토리텔링(story+tell+ing)

시간은 인관관계를 공간은 상황과 조건을 만든다. 여기에 사건이 결합되는 전통적 서사구조를 이야기라고 한다. 이야기는 문학이고 역사이며 인간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하루 종일 뒷담화를 쫓아다니는 사람이나 입만 열면 무수한 소문에 상상력을 보태 전하는 사람처럼 미성숙한 인간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야기는 인간의 본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최근에 다양한 매체의 발달과 더불어 ‘스토리텔링’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다 보니 전통적인 서사와 소설 그리고 스토리텔링 사이의 구분이 모호해졌을 뿐이다.

이야기란 ‘어느 순간 삶의 균형을 잃은 주인공이 그 균형을 회복하고자 부단히 노력하지만 그것은 대단히 어렵다.’를 다루는 것이다. 멜로, 액션, 스릴러 등 모든 장르의 영화와 아야기의 뼈대는 바로 이것이었다. - 5쪽

로버트 맥기는 “이야기란 어떤 사건에 의해 삶의 균형이 무너진 주인공이 그 균형을 회복하고자 여러 적대적인 것들과 맞서면서 자신의 욕망을 추구해 나가는 것이다.”라고 정의했다고 한다. 이제 그의 책을 읽을 차례가 된 것 같다. 드라마와 영화를 기본으로 재미있는 이야기의 기본 골격을 떠올려 보자. 균형을 잃어버리고 적들과 맞서면서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과정이라면 그것은 ‘이야기’의 기본 골격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이 아닌가. 그래서 사람들은 경험해 보지 못한 이야기, 다른 사람의 인생에 열광하는 것일까. 한정된 범위에서 조금씩 움직이고 오로지 안정과 편리를 추구하는 현실 욕망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 모든 인간의 욕망은 아닌가.

탄탄한 구조, 개성 있는 등장인물, 반전의 묘미, 비극을 이용한 공감대, 아이러니의 활용 등 재미있는 이야기가 갖추어야 할 요건들은 만화든 영화든 드라마든 소설이든 마찬가지다. 이 책은 이러한 이야기의 기본 조건을 알기 쉽게 설명할 뿐만 아니라 직접 이야기를 만들어 볼 수 있도록 단계와 방법을 제시한다. 스토리텔링 시대를 분석하고 성공사례를 제시함으로써 마케팅과 비즈니스에 이르기까지 점차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PD와 작가가 한 팀이 되어 아이디어를 내고 전체 구성과 구체적인 내용을 재미있게 제시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었을 과정이 짐작된다. 시청자들을 위해 알기 쉽게 구성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다. 다만 매체를 뛰어넘어 시청자가 아닌 독자와 만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충분한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이야기 혹은 스토리텔링? 어디에 초점을 맞춘 것인지, 그것이 우리들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인지 조금 더 명쾌하고 깊이 있게 전달할 준비가 되었다면 ‘왕과 왕비’ 예문같은 진부한 소설의 이론을 제시하지는 않았으리라. 
 

20111116-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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