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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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유명환 전 외교부장관의 딸은 공공연한 대한민국의 ‘음서제(蔭敍制)’를 공론화했다. 아버지가 기업을 이루고 그 아들이 물려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외교부의 특별채용에 분노하는 이유는 개인기업과 국가기관이라는 차이 뿐일까?

사람들이 말하는 상식의 범위와 한계는 문화적 토대와 사회, 역사적 배경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고대 철학자들로부터 최근의 사회학자에 이르기까지 보편 타당한 윤리학에 관한 기준과 개념은 논쟁의 중심에 놓여있다. 특히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사람을 평가하며 정책을 수립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말할 나위도 없이 커다란 논란에 휩싸인다. 정치적 성향, 종교, 지역과 문화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도덕’이란 무엇인가?

칸트는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는 지극히 단순 명료한 입장에서 도덕적 입장을 밝힌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현대사회의 복잡성은 수많은 정치적 논쟁을 불러왔다. 자유주의자들과 공리주의자들의 기나긴 대립은 우리 사회의 보수와 진보의 싸움처럼 지루하다. ‘도덕’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는 사람과 세계를 해석하는 기준의 차이로 드러나기 때문에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마이클 샌델은 『왜 도덕인가why marality』를 통해 이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렸던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도덕적 가치’를 중시하지 않는다. 신산스런 역사를 돌아보면 철저하게 생존경쟁에 올인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의 자화상이 처연하다. 그래서 ‘도덕’보다 ‘생존’이 앞섰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보다 살아남았다는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 공동체의 가치는 생소한 용어이며 ‘가족’이라는 이기적 울타리 안에 매몰되기 십상이다. 근대국가가 출발하며 사람들에게 심어준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 만큼이나 ‘가족’ 단위의 공동체는 강고하기만 하다. 나와 우리를 넘어서지 못하고 나와 가족 안에서 매몰되는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은 가장의 가족 살해와 자살이라는 끔찍한 신문기사를 양산한다.

1부에서는 경제적 도덕, 사회적 도덕, 교육과 도덕, 종교와 도덕, 정치적 도덕 등에 대한 미국 사회의 현안들을 점검한다. 복권과 도박에서부터 낙태, 동성애, 존엄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도덕적 주제를 다룬다. 2부에서는 정치 이론들을 검토한다. 이 이론들은 물론 미국인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정치적, 종교적 가치는 물론 공동체와 시민의 덕목에 대해 살펴본다. 3부에서는 미국 정치사의 주요 논쟁을 보여준다.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에 이어 세 번째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한국적 가치체계에 대한 부재와 우리 사회의 부끄러움이다. 선진국과 후진국, 문명국과 원시사회를 가르는 기준은 자유와 평등, 인권의식, 정의와 윤리, 복지정책, 정치제도 등 다양한 기준이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공동체적 가치는 무엇인가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정치적 성향과 정책의 차이는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와 강원도의 차이도 아니고 보수와 진보의 차이여서도 안 된다. 합의된 공동체의 가치가 마련되어야 하며 지향점을 향해 수많은 논쟁을 통해 정의의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공정사회’는 주둥이로 부르짖는 공허한 외침이어서는 안 되며 모두가 공감하는 사회적 합의와 가치가 되어야 한다. 제도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어기는 사람은 공직사회에 발을 부치지 못해야 하며 그렇게 사는 것이 부끄러운 짓임을 알게 해야 한다. 개인적인 잣대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의로운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긴, 전 재산 29만원으로 아직도 살아있는 전직대통령 재임시절 국정지표가 ‘정의사회 구현’이었던 대한민국이다.

미국의 현실과 우리의 현실이 다른 것은 분명하다. 그들의 역사와 문화가 우리와 다르듯 정의와 도덕의 기준과 개념도 다르다. 이 책은 오래된 논쟁의 한 페이지들을 넘겨 볼 수 있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비록 미국의 이야기지만 보편적 가치를 통해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정한 법 집행, 교육의 시장논리, 사생활 보호, 정치인의 거짓말 등 우리 사회에서도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들이지만 바라보는 관점과 받아들이는 태도는 많이 다르다.

이 책은 결국 3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간이 자신의 목적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 인 자유가 실현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모두를 위한 경제정책, 시장중심주의의 위험성, 개인주의를 넘어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실천적 지식인으로 살아야한다. 나와 무관한 정치인들의 이야기나 내가 어쩔 수 없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먼저 찾아보아야 한다. 무엇이 정의이고 도덕인가라는 질문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어려운 이론이나 정치적 신념이 아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해관계를 넘어선 우리 사회의 가치 지향점에 관한 논의로 나아갈 것을 요구하는 듯한 책이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내가 하고 있는 일과 내가 읽고 있는 책이 나를 말해준다. 즉, 우리사회의 베스트셀러가 가장 좋은 책은 아니지만 지금 우리들의 관심사와 우리들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정치와 권력의 이름으로 부당거래가 공공연한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들의 생각과 미래를 고민하는 계기가 된다면 이 책은 나름의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101114-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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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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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관료 - 김남주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군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시절에 그는 서기관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칸가 어딘가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서
우리나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근면하고 정직하게!
성실하고 공정하게!

시 읽는 즐거움을 모르면 혀의 한 부분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다. 짧은 인생에서 맛보아야 할 수많은 즐거움 중에 시 읽기를 놓친다면 정말 아쉬운 일이다. 힘들고 지친 저녁 무렵 잠시 쉬어가라고 나무 밑에 놓여 있는 의자이며, 서걱이는 모래 바람이 지나갈 때 입안을 헹굴 수 있는 시원한 물 한 모금이며, 길을 잃고 어둠 속을 헤맬 때 멀리 보이는 희미한 등불 같은 것이 한 편의 시가 아닌가. 메마른 영혼을 적셔주고 꽉 막힌 사고의 틈을 열어주기도 하며 생각지 못한 깨달음을 얻기도 하는 시를 읽는 일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소설과 다른 시가 가진 모양과 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온몸으로 다가서서 마음을 열어야 한다. 언어가 보여주는 진경은 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에 비해 철학은 고통스럽고 진지한 사유의 결과로 느껴진다. 평범한 사람은 머리가 아프다고 손을 내젓지만 철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세계를 해석하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철학의 대중화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 왔고 지금도 그러한 노력은 계속된다. 하지만 일상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철학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우선 철학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예술에게 손을 내미는 일이다. 심미적 감식안을 가지고 있는 철학자들이 많아서가 아니라 보편적이고 감각적인 예술과 만나는 일은 대중과 조우하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예술적 직관과 철학적 사유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놓여 있고 그들이 만나는 자리가 바로 대중과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은 아닐까.

오랜만에 김남주의 ‘어떤 관료’를 읽으며 예전과 다른 느낌을 받았다. 대학생의 입장에서 세상에 대한 날선 비판과 기성세대에 대한 통쾌한 비난으로 읽었다면 이제는 경험적 깨달음과 성찰의 시선으로 이 시를 보게 된다. ‘관료’가 아니라도 어느 조직에서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면 이 시를 제대로 감상했다고 보기 어렵다. 자신의 주인에게 복종하는 ‘개’와 같은 사람들을 비난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과연 충성과 봉사의 대상이 누구이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조차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가. 아니 오히려 그것을 신념으로 내세우며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사람의 용기가 더 무서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에서 강신주는 ‘어떤 관료’를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연결시킨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섬뜩한 말로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는 근면과 정직과 성실과 공정함을 돌아본다. 아이히만은 바로 이런 덕목을 충실하게 지켜온 ‘어떤 관료’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우슈비츠의 원혼에게 진 빚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 자리에 김남주의 시에 등장하는 ‘어떤 관료’나 혹은 우리 주변에 유사한 태도를 가진 사람이나 마찬가지였을 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이러한 깨달음과 철학적 관점이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기 때문에 이 책은 보기 드문 인문학이 된다.

『철학, 삶을 만나다』로 강신주와 첫 만남은 강렬했다.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통해 자아와 현실 세계와의 관계망을 성찰했다면 이제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으로 우리 시의 아름다움과 현대 철학의 만남을 지켜 볼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히 시 읽기의 즐거움도 아니고 현대 철학의 쟁점 소개도 아니다. 시를 도구로 철학을 보여주려는 책도 아니고 철학을 동원해 시를 해석하려는 책도 아니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저자는 시와 철학의 진지한 만남을 이야기한다. 한 줄의 시 속에 철학적 사유가 담겨 있고 단 한 편의 시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고 인간을 성찰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즉 재미있고 진지한 시 읽기가 곧 철학을 하는 것이며 철학하기는 곧 시 읽기와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개념과 이론을 토대로 예술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시를 읽고 그와 유사한 철학자나 개념을 소개하고 그것이 어떤 관계로 놓일 수 있는지 살펴보는 구조이다. 전체 21명의 시인과 21명의 철학자가 만나는 장면마다 ‘정-반-합’의 관계처럼 3개의 글들이 모여 각각의 완성된 글이 된다.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이 글은 실제 강의를 진행하면서 자료를 모으고 시를 고르는 과정이 즐거움으로 가득했으리라 짐작된다. 한 권의 책에 너무 많은 철학자와 시인들이 소개되고 철학적 개념들이 소개되기 때문에 번잡스런 요약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더 읽어볼 책들’이 그런 단점을 보완한다. 책은 책을 소개한다. 이 책을 통해 지금까지 만났던 많은 철학자들의 개념들이 다시 정리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새로 도전하고 싶은 책과 철학자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이 기쁘다. 씨줄과 날줄처럼 연결된 책의 네트워크! 오늘도 그물을 따라 어슬렁거릴 여유가 허락된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사랑이란 ‘하나’의 지배가 균열되었을 때 ‘둘’이 생각되는 장소이다. (……) 사랑이란 그 자체가 비-관계, 탈-결합의 요소 속에 존재하는 이 역설적 둘의 실재성이다. 사랑이란 그런 둘에의 ‘접근’이다. 만남의 사건으로부터 기원하는 사랑은 무한한 또는 완성될 수 없는 경험의 피륙을 짠다.
- 바디우의 <철학을 위한 선언> 중에서


101103-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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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물어봐도 되나요? - 십대가 알고 싶은 사랑과 성의 심리학 사계절 지식소설 2
이남석 지음 / 사계절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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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자극적인 제목의 책을 만날 때면 호기심보다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왕창세일’이나 ‘점포정리’같은 식상함으로 다가올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책들이 쏟아지고 사라진다. 책은 나름의 운명을 지닌다지만 저절로 읽혀지기를 바라고 앉아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그래도 ‘한 권으로 끝내는~’ 자극적인 책들은 책이 아니라 종이뭉치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한 권으로 끝낼 수 있는 건 가전제품의 매뉴얼 밖에 없지 않은가?

『사랑을 물어봐도 되나요?』도 같은 맥락에서 일단 제쳐둔 책이다. ‘십대가 알고 싶은 사랑과 성의 심리학’이라는 지극히 자극적이고 호기심 넘치면서도 중요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니 신중할 필요가 있는 책이다. 어떤 책일까? 목차를 훑어보자. 열 두 개의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사랑을 물어봐도 되나요?’부터 12장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방법은 없나요?’에 이르기까지 십대들이라면 얼른 읽고 싶을 수밖에 없는 제목들이다.

중학교 1학년 이규린이라는 여학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자신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풀어나가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저자는 두 딸의 아버지로 자신의 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써 나간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신뢰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한 장 두 장 읽다보면 가벼운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책은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는데 초점을 두고 분량과 형식에도 공을 들인 책이다. ‘사랑’이라고 하는 추상적인 감정을 철학자와 심리학자들의 분석에 토대를 두고 중학교 1학년 수준에 맞추어 풀어내는 일이 어디 만만한 일인가. 글을 쓰는 저자의 고민과 노고가 고스란히 표현과 문장에 녹아 있다. 책의 형식과 내용은 유기적으로 맞물리게 된다는 측면에서 이 책은 고루 신경을 쓴 흔적이 엿보인다.

다만 가장 말하기 쉽지만 가자 어려운 ‘쉽고 재미 있으면서 유익하게!’를 실천하려는 노력이 간혹 두 마리의 토끼를 다 놓치는 경우도 있다. 아주 재밌있고 유쾌한 책도 아니면서 깊이도 놓치는 경우가 그러하다. 말하자면 쉽고 재미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내용은 어렵고 딱딱할 경우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물론 독자의 취향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겠지만 이 책은 그 경계선에 서 있는 듯 위태로워 보인다.

우선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모든 청소년들에게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고 한 번도 배워보지 못한 구체적인 ‘사랑’을 이야기한다는 면에서 높이 평가 받을 만하다. 또 한 가지 이 책은 앞서 언급한대로 끝없이 질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규린이의 질문은 인터넷 가상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익명의 아이디로 답을 달아주는 사람들을 통해 생각을 키워가는 형식이다. 익숙한 방식으로 책을 읽을 읽는 청소년들에게 낯설음과 거부감을 줄일 수 있는 방식이다. 하지만 답변의 내용이 심리학과 철학자들의 개념적인 설명들이 그대로 노출되는 경우가 있어 독자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물론 어렵지 않게 다듬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실제 상황에서 ‘사랑’의 감정이나 태도를 결정할 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사랑’의 개념에서부터 구체적인 감정의 변화 그리고 키스에서 섹스에 이르는 육체적 사랑까지 다루고 있다. ‘한국청소년순결운동본부’라는 단체가 엄존하는 대한민국의 상황은 청소년들에게 ‘사랑’의 의미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인간의 가장 자연스런 감정과 욕망을 배울 기회가 없는 청소년들에게 이 책은 ‘사랑’에 대한 솔직한 질문과 답변들로 가득하다. 그들에게 가장 뜨거운 감자인 ‘사랑’. 제대로 알려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기성세대의 의무가 아닐까?

이 책은 딸을 키우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험한 세상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는 책도 아니고 봉건적인 순결을 강조하는 책도 아니다.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는 자연스런 과정에서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고 배울 기회가 없는 청소년들의 가장 큰 질문이자 고민인 ‘사랑’에 대해 답하는 책이다. 한 권으로 ‘사랑’을 끝낼 수는 없지만 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답변을 준비한 저자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사랑’을 묻는 아이들에게, 유행가 가사로만 어렴풋이 짐작하는 청소년들에게 이 책 한 권을 읽어보라고 권해도 좋을 만하다. 다만 이 책은 ‘사랑’의 완결판이 아니라 ‘사랑’의 출발이며 실천적 사랑의 멘토 쯤으로 생각해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어찌 ‘사랑’을 책으로만 배울 수 있겠는가!


101019-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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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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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서 정의를 외치고 싶을 때다 있다. 지금 우리는 얼마나 정의로운 세상에 살고 있을까. 주위를 둘러보자. 20대에 혁명을 꿈꾸지 않거나 40대에도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을. 우리는 사춘기를 거치고 세상을 알아가는 사회화 과정에서 수많은 혼란을 겪는다. 부모의 영향, 가족들의 태도, 가정환경, 교우관계를 통해 형성된 가치관은 사회를 보는 논리가 갖추어지면서 지독한 모순과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 개인의 도덕적 기준과 인생의 목표에 따라 삶의 태도가 달라지고 세상을 보는 눈도 변한다. 세상을 이분법적 흑백논리로 구별할 수는 없지만 기존의 체계와 가치를 내면화하고 그 안에서 행복과 자유를 꿈꾸는 보수적인 경향의 사람들이 있고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진보적 가치를 내세우는 사람들도 있다. 보수와 진보를 몇 가지 기준과 가치관의 차이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변화를 싫어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기 때문에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과 공평한 경쟁이 불가능하다. 그만큼 노력하고 움직이지 않으며 안 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나 조직이든 변화를 꿈꾸기 위해서는 고통과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경제적 정의는 도덕적 정의에 우선한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모든 것은 ‘돈’이 결정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물질적 가치는 모든 것에 우선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정의’에 대한 논의는 무성했다. 철학적 관점에서 윤리학의 접근이 개인이나 실생활의 규범적 가치에 관한 문제였다면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정의는 주로 분배와 자유의 문제로 귀결된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궁극적 목적이 행복이라면 행복의 원천이 되는 문제들을 살펴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샌델이 이야기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는 바로 여기에 초점을 두고 있다.

정의와 관련한 오늘날의 주장은 거의 다 번영의 열매나 고난의 짐을 어떻게 분배하고, 시민의 기본권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그 논의를 지배하는 사고는 행복과 자유다. 그러나 경제적 분배의 옳고 그름을 주장하다 보면, 어떤 사람이 도덕적 자격을 갖추었고 왜 그러한가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문으로 돌아가게 된다. - P. 24

최근 ‘공정사회’라는 화두가 세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말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듣게 되는 이 용어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그 기준과 내용이 다르고 원칙과 방법이 제각각이다. 그것은 당연하게도 ‘공정함’에 대한 합의가 없었고 ‘공정함’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우리 사회의 지향점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제각각 공정한 사회를 꿈꾸고 자신은 최소한 그 피해자가 되지 않길 바라는 것이 아닐까. 우리 사회의 정의란 무엇인가.

미국과 하버드에 대한 콤플렉스가 아니라면 초유의 베스트셀러가 되기 힘든 책이 바로 『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이다. 대학생을 상대로 한 마이클 샌델 교수의 이야기는 쉽고 간명하다. 사례 중심으로 주의를 환기시키고 철학적 관점에서 정의를 정의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와 조금 다른 미국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하며 그들의 전통과 가치를 이해하지 않으면 일반적이고 원론적인 수준에 그칠 우려가 있는 내용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인의 정의감을 가장 심하게 건드린 것은 내 세금이 실패를 포상하는 데 쓰인다는 점이었다. - P. 30

한국 사회의 도덕적 해이는 정치와 재벌에 대한 불신과 냉소를 만들었고 그것을 권력과 자본을 소유하기 위한 무한 경쟁 사회로 이끌고 있다. 『삼성을 생각한다』는 대한민국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것이 아니라 확인하고 싶지 않은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확인했던 책이다. 마이클 샌델은 이 책에서 ‘미국인의 정의감’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한국인의 정의감’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을까. 과연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한국적 가치란 무엇일까.

이 책은 결국 우리 사회를 돌아보고 싶은 사람들이 베스트셀러로 만들었을 것이다. 도대체 한국 사회의 지향점은 어디이며 어디서부터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이 책은 미국 사회에 대한 관심이나 철학적 관점을 확인하는 데 그치고 만다. 전체 10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에서 공리주의, 자유지상주의, 시장과 도덕, 아마누엘 칸트, 존 롤스, 소수집단우대정책, 아리스토텔레스, 충직 딜레마, 정의 공동선에 대한 저자 특유의 비판적 해석이 돋보인다. 1강의 ‘옳은 일하기’는 이 책 전체의 프롤로그에 해당한다. 행복과 자유와 미덕이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를 탐구하고 있는데 강의 내용 곳곳에서 이 관점들이 가진 장점과 한계 그리고 반론들을 제기한다.

따라서 독자들은 어느 한쪽에 치우친 관점에서가 아니라 각각의 관점들이 가지는 효용성과 한계를 함께 고민할 수 있다. 저자는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미덕’에 방점을 찍는다. 정의는 극단적인 공리주와 자유지상주의 관점이 아니라 ‘미덕’이 주는 관점에서 정의를 설명한다. 주관적이고 정서적인 판단과 기준이 아니라 ‘정의’의 문제를 인간 사회에서 고민해 온 다양한 도덕적, 철학적 관점에 대한 저자의 통찰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사회의 ‘정의’란 무엇인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단순하게 합의를 통해 규정지을 수도 없고 이론적 기준과 잣대로 판단할 수도 없다. 우리 사회의 지향점과 미래 사회의 가치가 무엇인지 오늘도 한국사회는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과연 ‘공정사회’가 어떤 기준을 통해 어떤 방법으로 실현 가능한 것인지, 그것은 또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돌아보아야 할 시점이다. 이 책의 1강에서 저자가 던지는 질문에 각자 답해보자. 그것이 바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정의’에 대한 정의이다.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이것들을 올바르게 분배한다. 다시 말해, 각 개인에게 합당한 몫을 나누어 준다. 이때 누가, 왜 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묻다 보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 P.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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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논증법 -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4가지 실전 논리
최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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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 많은 논증과 오류의 이름을 외우는 대신에 마음가짐을 강조한다. 바로 자비로운 태도다. 그런 태도는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내 머리가 나쁜 것을 탓할 필요가 없다. 착한 마음, 자비로운 마음만 가지면 누구나 논리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논쟁에서도 이길 수 있다. - P. 13

“당신 계속 그렇게 말하면 이따 방송 끝나고 나하고 토론 좀 해야돼!”

이 멘트는 토론 프로그램에 나온 어느 정당의 국회위원이 한 말이다. 앞뒤 맥락을 잘라 잘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토론 프로에 나와 말문이 막히지 방송 끝나고 토론을 하자는 말을 하는 국회위원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인터넷에서 ‘어록’으로 떠돌던 토론 프로그램의 찌질이들이 여전히 국회위원 뺏지를 달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말을 웃어넘길 일만은 아니다.

우리도 일상생활을 하면서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의견이 대립되고 논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말싸움에 이겼다고 생각하는 것과 논쟁에서 이겼다는 의미는 조금 다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제압하는 게 논쟁은 아니기 때문이다. 수많은 오류와 억지로 상대를 몰아붙이는 것은 이미 논쟁에서 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다.

우리 사회가 참된 민주주의 사회라면 건전한 토론 문화와 이성적인 논쟁이 활발하게 벌어질 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내 생각도 수정될 수 있고 나의 주장도 철회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은 별을 따기보다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좋은 책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내용과 형식 그리고 난이도 등 책을 권할 때는 수많은 생각들이 오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씩 부담없이 누구에게나 이 책 한번 읽어보라고 권할 만한 책을 만난다. 최훈의 『변호사 논증법』이 그렇다. 좀더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싶은 통쾌하고 시원한 책을 만난 기쁨이 크다. 이 책은 누구에게나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그 이유는 앞서 말한 대로 모든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든 생각이 다른 사람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상대를 설득하고 내 주장을 펼치는 과정에서 보다 나은 문제 해결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닫힌 마음으로 자신의 의견을 끝까지 고집하고 절대 물러서지 않으며 항상 내가 옳다는 독선과 아집으로 가득 찬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과는 논쟁이 되지 않는다. 조롱과 풍자, 경멸과 욕설이 필요할 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토론과 논쟁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이 부족했거나 오류가 있었음을 인정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저자는 ‘자비로운 태도’ 즉, 착한 마음이라고 말한다. 기본적으로 역지사지의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설득할 수 없으며 자신은 절대 설득당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과 같다.

이 책은 제목처럼 변호사의 논쟁 방법을 빌려 오겠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논리학의 범위 안에서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충분히 생각할 수 있고 주의해야 하는 원칙들이기 때문에 어렵거나 난해한 방법이 아니다. 저자가 제시하는 변호사의 논증법 네 가지는 ‘자비로운 해석의 원칙 + 역지사지의 원칙’, ‘근거제시의 원칙 + 근거 확인의 원칙’, ‘입증 책임의 원칙 + 입증의 권리 원칙’, ‘논점 일탈 금지의 원칙’이다. 이 원칙들은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하기 때문에 모든 실전 논리와 방법들이 전제가 된다. 이 원칙들을 충분히 숙지하고 실제 생활에서 주의한다면 우리는 논쟁의 달인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이 책은 그런 목적을 가지고 쓰여졌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쉽고 재밌게 구성되어 있다.

입증의 책임이나 주장의 차이가 생기는 이유, 애매모호와 정의, 전문가의 견해, 논란이 되는 근거, 인신공격, 감정, 유비, 인과, 일반화 등 국어시간이나 철학, 논리 시간에 들어본 적이 있는 이야기들을 실제 사례 중심으로 설명한다. 이 책은 말하자면 실전 논쟁에서 이길 수 있는 비법들이 속속들이 소개된 책이다. 훈련과 실전의 적용은 물론 독자들의 몫이겠지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흔히 범하는 실수를 지적하고 왜 그것이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설명한다. 저자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논쟁의 달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논거를 통해 주장하고 오류를 줄여야 한다.

이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논리적인 사람이 되고 싶을 때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는 관련 분야의 지식을 많이 쌓는 것이고 둘째는 상대방의 말을 잘 들으라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마음가짐의 문제이고 태도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귀가 없는 사람과 논쟁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마찬가지로 귀를 막고 떠들어 봐야 당신은 어느새 말이 통하지 않는, 논쟁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저자의 목소리는 가장근본적인 마음 자세부터 바로 잡아야 함을 강조한다. 복잡한 논증이나 오류는 이러한 전제에서 출발해야 하는 기술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구나 매일 전쟁 같은 일상을 견뎌낸다. 가족과 친구는 물론이고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논쟁에서 이기는 법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말은 뱉고 나면 주어 담을 수가 없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상대를 이기는 논쟁의 비법이 아니라 보다 겸손해지고 다른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을 줄 아는 마음을 배웠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생긴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듣고 논리적 오류를 범하지 않는 정확한 어법으로 상대방에게 설득력 있게 말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또 하나의 개인적인 다짐이다. 자 이제, 잠시 침묵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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