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책중독자의 고백
톰 라비 지음, 김영선 옮김, 현태준 그림 / 돌베개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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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中毒).
; 독으로 지칭되는 유해 물질에 의한 신체 증상인 중독(intoxication, 약물 중독)과 알코올, 마약과 같은 약물 남용에 의한 정신적인 중독이 주로 문제되는 중독(addiction, 의존증)을 동시에 일컫는 말.

‘미친다’는 말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부정적인 뉘앙스로 정상에서 벗어난 말과 행동을 의미하기도 하고 때로는 열정과 몰입의 경지를 일컫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미쳐야[狂] 미친다[及]는 말이 있듯 나는 어디에 미친 사람들이 좋다. 나도 늘 어디엔가 미쳐 살고 싶다. 대부분 사람들은 중용을 지키고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침묵이라는 비겁한 방법과 양시론[兩是論]이라는 적절한 처세술로 살고 싶지 않다. 그러니 때때로 오호(惡好)가 분명하여 입는 손해가 훨씬 많다. 까칠하고 모난 성격으로 오해받기 쉽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미친 듯 몰입하고 열정을 갖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데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마음과 몸이 편한 대로 사는 일이 결코 지속가능한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그래서 나는 여전히 러시아 시인 알렉산드르 블로끄의 말처럼 ‘오, 나는 미친 듯 살고 싶다’.

책에 미친 사람이 어디 한 둘이랴. 톰 라비의 『어느 책중독자의 고백』은 수많은 책중독자들의 공감을 얻었으리라. 이 책 구석구석에 숨겨진 책에 대한 애정과 증오와 환상과 현실적 고통들이 오롯이 전해진다. 군데군데 밑줄을 치며 공감하고 킬킬대고 한숨 쉬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도대체 내게 책이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하며.

이 책의 저자 톰 라비는 사전적 의미에서 책에 ‘중독(addiction, 의존증)’된 사람이다. 책중독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으나 저자의 경우는 물질적 대상인 책 자체를 탐하는 사람이다. 읽지 않으면서도 책을 사고 산 책을 또 사고 그러면서도 헌책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고 쌓여가는 책 사이에서 일상의 균형을 잃어가면서도 행복하기만 하니 분명 중독이다.

물론 의학적인 측면에서 어떤 병명으로 불리거나 치료를 해야 하는 수준이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흔희 ‘mania’라고 불리기도 하는 사람들인데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될 가능성이 높지만 적절한(?) 균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저자 톰 라비는 책을 읽고 즐기는 것은 물론이겠지만 책을 수집하고 소유하는데 집착을 보이는 책중독자이다. e-book 시대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이해할 수 없는 지나간 시절의 추억거리로 생각할 수 있겠으나 내가 아는 한 책을 읽는 사람은 e-book을 읽지 않는다. 작은 메모리에 수천권의 책을 저장하고 주머니 속에 휴대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저자의 행동과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디 책을 좋아한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책은 삶의 도구이며 즐거움의 대상일 수 있지만 저자는 그것과 거리가 멀어보인다. 삶의 이유이며 의미이고 전부이다. 하지만 단순히 책에 대한 소유욕만 가진 사람은 아니다. 저자는 장서광과 애서가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분리한다. 저자는 물론 애서가라고 주장하는 것이겠지만.

순수한 마음과 영혼을 가진 이들은 책에 담긴 내용 때문에 책을 사랑한다. 장서광들이 무게와 크기와 외형적인 질로 책의 중요성을 결정하고 책을 대량으로 수집해 점점 더 높이 쌓아 올리는 반면, 애서가들은 살 책을 조심스럽게 선택한 다음 거기에 담긴 내적 아름다움과 지혜를 얻기 위해 책을 음미하면서 열심히 읽는다. - P. 89

‘사람들은 인생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책읽기가 더 좋다.(로건 스미스)’라는 대목을 읽으며 고개를 주억이고 있는 나 자신에게 깜짝 놀라다. 평생 조용한 구석방에 처박혀 책만 읽고 어줍잖은 글이나 끄적이며 살고 싶은 욕망은 그 어떤 다른 욕망보다도 음험한 것은 아닐까. 누구나 자신이 꿈꾸는 삶이 있다. 그것에 도달하려는 노력이 어떠한가에 따라 인생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과정과 결과도 사뭇 다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자.

책중독을 해부하고 중독 여부를 테스트하고 책의 역사를 말하는 앞부분은 애피타이저에 불과하다. 장서광과 애서가, 수집광과 돌연변이들, 책 도취증, 책 읽기, 정리와 보관, 빌려주기 등 각 장의 이야기들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흠뻑 빠져들게 한다. 20여 년 전에 나온 책이기 때문에 상황이 조금 달라졌지만 기본적인 책중독자들의 성향은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혹시 책중독 경계에 서 있는 듯싶다면 한 번 읽어보시라. 물론 마지막 장 ‘치유하기’는 의미가 없겠지만.

재치있는 글솜씨와 실제 사례, 재밌는 일화들을 들려주고 있어 지루하지 않은 책이다. 다만 중간 중간 가벼움을 넘어 역겨움을 담아낸 삽화는 옥의 티다. 내용 자체가 충분히 따분함을 덜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과장된 그림들이 오히려 책 내용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불쾌함을 준다. 개인적인 느낌일 수 있지만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책중독자들에게 무슨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겠는가. 결국 그들은 빵이 아니라 책을 사고 읽는 과정을 즐기는 사람들일 뿐. 그러니 오늘도 나는 열심히 사고 읽고 쓰고…….

책중독자들에게 먹는 것은 그저 씹어 삼키는 일일 뿐이다. 너무 많은 시간이 기본적인 감각을 충족시키는 데 쓰이고 있다. 우리는 빵만으로 살 수 없다. 우리는 또한 읽어야 한다. 이는 집에서 하는 식사에 해당하지만 상당 부분 외식에도 해당한다. - P. 202


110407-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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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인문학 - 머니 게임의 시대, 부富의 근원을 되묻는다
김찬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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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나는 얼마쯤의 현금을 ‘만지게’ 될까? 텅빈 지갑을 며칠씩 들고 다닐 때도 흔치 않다. 은행 갈 시간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가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지갑도 두꺼워 플라스틱 카드 한 장만 주머니에 넣고 외출한 적도 많다. 통장에 숫자가 찍혔다가 카드 명세에 나눠지고 그 숫자들은 곧 사라진다. 한 달을 단위로 정확하게 회전하는 숫자의 흐름은 재미있는 게임같이 느껴진다. 돈의 흐름은 마치 눈앞에 나타났다 금방 사라지는 비온 뒤의 무지개보다 허무하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숫자들의 향연이기 때문이다.

나처럼 수의 개념이 부족하고 숫자들과 친하지 않은 사람은 더욱 그렇다. 도대체 한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내가 어떤 일을 하고 그 일이 얼마만한 경제적 가치가 있는 것인지 계산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있다. 거의 모든 물건을 인터넷으로 구매하고 현금을 사용할 일이 점점 줄어들자 가끔 나는 바보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급여를 지급하는 주체도 모호하고 내가 사용한 내역에 따라 그것을 분배하는 과정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런데도 기막힌 타이밍과 시간을 맞춰 돈은 돌고 돈다. 그리고 나는 불편 없이 살아간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돈과 그리 관련이 없는 일만 하면서 살아가는 내 직업의 탓도 있겠지만 하나의 상징과 기호가 되어버린 현대사회의 화폐와 신용카드의 시스템 때문이기도 하다. 어린시절 아버지의 누런 월급봉투가 기억난다. 손으로 쓴 명세서가 봉투 겉면에 씌어있었고 그걸 안주머니에서 꺼내시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 시절이 낭만적이었을까?

누구나 그렇겠지만 ‘돈’과 무관한 사람은 없다. 아니 돈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가치를 폄훼할 생각도 없다. 다만 요즘 들어 유난히 돈과 관련된 책이 눈에 들어오고 자꾸 손이 가는 이유는 우리들의 ‘삶’이 궁금해서이다. 아이들은 돈 잘 버는 직업을 선호하고, 돈을 많이 버는 게 꿈이라고 서슴없이 말하기도 한다. 돈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사회의 자화상을 인문학적으로 들여다보는 김찬호의 『돈의 인문학』은 고미숙의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와 짝을 이룰 만하다.

전작 『사회를 보는 논리』와 『문화의 발견』 등으로 청소년들이 읽을 만한 책들을 써온 사회학자의 책은 눈여겨 볼만했다. 읽으면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주고 호기심을 갖게 하며 또 스스로를 성찰하게 하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생각에 동의한다면 이 책을 권한다. 삶의 방향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이야기가 인문학이라면 ‘돈’에 관한 인문학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돈의 가장 본질적인 기능에서 출발해야 한다. 화폐의 기원과 역사를 살펴보고 현대 사회에서 돈이 가지는 의미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내 삶에서 ‘돈’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성찰하게 된다.

인문학은 언어를 생산하는 학문이다. 언어는 생각을 빚어내고 삶을 가다듬는다. 언어와 생각과 삶이 어떻게 맞물리는가에 따라 세상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 P. 9

인문학적 상상력이 세상을 구원하지는 못하더라도 세계를 해석하고 변화시키는 실마리는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우리가 인문학을 삶의 토대로 삶아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저자는 ‘돈’을 이야기하면서 행간에 ‘삶’을 숨겨 놓았다. 독자들이 읽어야 할 것은 돈에 관한 지식과 가치 너머에 있는 것은 아닐까. 같은 말일 수도 있겠으나 세태를 비판하고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것은 돈을 ‘소유’가 아닌 ‘관계’로 바라보는 일이고 돈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는 방법이다.

혹자는 말할지도 모른다. 돈과 인문학, 돈과 책이라니! 하지만 둘 다 종이가 아닌가! 이 어이없는 비교는 물론 웃자고 한 말이다. 하지만 돈, 일, 삶이 모두 한 글자 안에 수많은 함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곧 우리의 자화상이다. 이 책에서 예로 들고 있는 통계자료와 실제 사례들은 우울한 대한민국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신자유주의 물결과 무한 경쟁시대의 치열함을 넘어 비극에 가깝다. 삶의 태도와 방법을 조금 바꾸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이 인생을 제로섬 게임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특히 돈에 관한 한!

돈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은 가깝게는 내 생각의 변화에서부터, 멀게는 자라는 아이들에 대한 교육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달라져야 한다. 그것은 생각의 변화와 태도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구조와 인식의 전환을 의미한다. 현실적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해 온 사람에게 해결할 수 없는 높은 대학 등록금, 부족한 사회보장제도, 고용 없는 성장, 인색한 사회 환원, 성장위주의 경제정책, 부족한 복지제도……. 넘어야 할 현실의 벽은 높고 ‘돈’은 돌고 돌지 않고 한 곳에 쌓인다.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고 계층 이동이 점점 어려워지는 사회는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가난한 사람은 책의 힘으로 부유해질 수 있고, 부자는 책의 힘으로 귀해질 수 있다.”(김찬호) - P. 271

돈과 책이라니! 저자의 마지막 말이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린다면, 냉소적인 미소를 띠었다면 일단 이 책을 읽으면서 당신의 돈과 일과 삶을 돌아보라. 그리고 거울을 들여다보자. 나는 누구이며 돈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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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시간에 생각 키우기 국어시간에 읽기
충북국어교사모임 엮음 / 나라말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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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는 도구교과다. 맛있는 밥과 반찬이 그득해도 숟가락과 젓가락이 없으면 곤란하다. 어떤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생각하고 듣고 말하고 쓰기 위해서 국어는 꼭 필요하다. 우리가 말하고 생각하는 도구는 언어다. 그래서 생각을 키우기 위해서는 언어능력을 길러야 하고 언어능력은 바로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능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말과 글을 잘 살려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2002년에 『생각을 키우는 이야기』를 엮어낸 충북국어교사모임의 선생님들이 이번에는 『국어시간에 생각 키우기』를 엮었다. 현직에 계신 국어선생님들이 만든 책의 특징은 살아 숨 쉬는 현장감이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매일 만나는 아이들의 생각과 느낌이 생생하게 전달되고 그들의 눈높이와 그들의 생각을 잘 담아낸 책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국국어교사모임이 만든 나라말 출판사의 책들이 많은 국어선생님들과 학생들에게 공감을 얻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주제별로 좋은 글들을 골라내고 그것을 학생들에게 직접 읽혀보고 그들의 생각과 느낌을 물어보고 이야기꽃을 피우며 깔깔대는 장면이 떠오른다. 선생님들은 얼마나 즐거웠을까. 또 아이들의 생각은 또 얼만큼 자랐을까.

여섯 분의 국어 선생님들이 모여 1년 반 동안 열심히 글을 모으고 아이들에게 읽혀보고 고르는 과정을 통해 나, 우리, 인권, 환경, 역사와 문화 등 다섯 개의 주제로 나누어 먼저 읽을 만한 글들을 제시한 후 생각을 키울 수 있는 활동을 제시했다. 한비야의 글부터 홍세화, 서재호의 글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읽을 만한 글들을 엄선하고 그 글을 읽고 나서 조금 더 생각할 기회를 준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보고 적어보고 말해보고 써보는 동안 간접 경험을 해 볼 수도 있고 다양한 관점과 새롭게 생각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통해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이 책은 읽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과정을 질문의 형식을 통해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게 배려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하물며 아이들의 생각을 한가지로 몰아가거나 똑같은 답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글을 쓴 사람의 생각에 내 생각을 보태고 또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물론 글의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글쓴이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은 보다 깊이 들여다보고 나의 생각을 키우는 데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다. 다만 글을 읽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것이 하나의 출발이 되고 나를 돌아보고 이웃을 생각하며 주변과 상황을 이해하고 우리가 살아온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일이다.

진짜 국어 공부의 시작은 잘 듣고 분명히 말하고 정확히 읽고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는 데서 시작된다. 하루 종일 참고서를 외우고 한 가지 정답을 찍어내는 문제풀이 연습으로 국어실력은 늘지 않을뿐더러 생각도 키우기 어렵다. 그래서 이 책은 혼자 그리고 다 같이 읽고 생각하고 나눌 수 있는 아주 좋은 책이다.

110215-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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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정의인가? - 한국사회, <정의란 무엇인가>에 답하다
이택광 외 지음 / 마티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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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정의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제 자신의 할 일에 마음을 쓴다’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말하자면 마땅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되, 외람되게 남의 일을 대신해 주겠다는 망동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되, 외람되게 남의 일을 대신해 주겠다는 망동을 하지 않는 것이 정의라는 것이다. 이 말은 플라톤에 이르면 ‘책임’이라는 말로 변주되어 나타난다. 사회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정의라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샌델이 말하는 것처럼 서로 다른 의견을 인정하고, 도덕적 분쟁을 수용하는 것이 곧 정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과연 이런 생각은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 이택광, ‘정의없는 사회는 왜 정의를 욕망하는가?’, 31쪽

수많은 말들의 향연. 그만큼 2010년의 시대정신을 읽어낼 수 있는 책으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들수 있다. 인문서로 8년 만에 종합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단순한 한 권의 책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베스트셀러가 스테드셀러가 되고 스테디셀러가 고전이 되는 가장 영광스런 자리를 순서를 밟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책은 나름의 운명을 지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한권의 책에 관한 또 한 권의 책이 나왔다.

『무엇이 정의인가?』는 ‘한국사회, <정의란 무엇인가>에 답하다’는 부제를 달고 11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2008년 이후 급격한 ‘설마’가 현실이 되는 과정을 지켜본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정의’는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각 언론과 글쟁이들에 의해 이 현상을 파헤쳐왔고 그 이유를 분석했으며 미래를 전망했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정의’라는 담론을 나름의 방식으로 아전인수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이런 현상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해석을 한 권의 책으로 모아놓고 보니 교집합과 여집합이 보인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찾아내야 하는 퍼즐이 바로 그것이다.

우선 이 책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이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왜 도덕인가?』를 읽고 플라톤의 ‘국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존 롤스의 ‘정의론’과 비교 분석한 후 11명의 해석과 분석을 따라가며 비판적 관점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 제대로 읽는 방법은 길고 지루하게 보이지만 지금까지 인문학에 관심이 있거나 배경지식이 조금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은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먼저 필자들의 면면을 떠올려 보자. 이택광, 장정일, 이현우(로쟈), 이양수, 김도균, 최원, 박홍규, 노정태, 서동진, 박가분, 이권우.

낯선 이름도 있겠으나 글의 내용과 방향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필자도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공정사회’를 외치는 한국사회의 문화적 풍토를 살펴보는 글들에 이어 샌델의 정의론에 대한 불만을 성토하는 글들이 이어진 후 우리 사회의 정의를 고찰하는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주제를 정해놓고 쓴 글들이 아니라는 사실은 필자들의 글속에 중복되는 이론적 배경과 해석들 그리고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각기 다른 입장과 미세하게 차이나는 부분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이 책은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석과 분석을 통해 ‘한국사회’의 ‘정의’를 고민하자는 내용으로 읽힌다. 과거 그리스에서 기원한 ‘정의’와 ‘도덕’이 하버드의 마이클 샌델을 거쳐 한국사회에서 심각하게 논의되는 이유는 최근 몇 년간 벌어진 대한민국의 현실과 끈끈하게 맥이 닿아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박홍규는 직격탄을 날린다.

출판 대국이니, 전국민 대졸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느니, 대부분 대학에 철학과가 있다느니 하는데도 그 유명한 디오게네스를 알 수 있는 책 한 권 없다니 너무 디오게네스하다. 너무 개같다. 개판이다. - 박홍규, ‘정의가 돈이라고? :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과 한국사회’, 267쪽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철학의 계보학 자체를 부정하고 디오게네스 철학을 갈급해한다. 노정태는 ‘정의[正義, justice]’에 대한 정의[定義, definition] 자체를 문제 삼는다.

‘우리는 우리 공동체의 가치에 따를 때 정의롭다’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가치와 다른 공동체의 가치가 충돌할 때 어떻게 그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할 필요가 있다. - 노정태, ‘정의의 딜레마, 딜레마의 정의’, 285쪽

두 사람 이외에도 필자들은 각자의 생각을 정교하고 설득력 있게 풀어 놓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을 읽고 판단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겠다. 다만 어떤 책에 대한 주목할 만한 현상이 벌어지는 사회를 톺아볼 필요가 있다. 원인과 과정에 대한 해석에 따라 결과를 바라보는 눈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미래에 대한 전망과 실천으로 나아간다. 『정의란 무엇인가』 이후에 국방부 불온서적 『나쁜 사마리안인들』을 쓴 캠브리지대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우리는 ‘그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정의와 우리의 정의가 어떻게 다른가. 그들과 우리를 구별짓자는 말이 아니라 모두가 ‘정의’를 부르짖지만 그 의미와 실현 방법은 너무 다르지 않은가. 2011년은 우리 사회의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미세한 흔들림이 감지되는 것은 70만부가 팔린 책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이 책에 관심을 갖는 사회현상 때문이다. 이권우의 말대로 책 읽는 한국사회가 과연 현실까지도 바꿀 수 있을지 책보다 흥미로운 미래가 펼쳐지고 있다.

지금 우리는 책읽기의 사회학을 검증하는 현장에 서 있다. 문제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정의를 현실에 세울 수 있을는지에 있다. 책 읽는 한국사회가 과연 현실을 바꿀 수 있을지 지켜 볼 일이다. - 이권우, ‘‘정의’가 읽혔던 2010년 한국사회의 풍경’<무엇이 정의인가?>, 346쪽


110208-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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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8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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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달인을 보면 가히 경탄을 금할 수가 없다. 같은 일을 수없이 반복하는 동안 생긴 노하우와 속도가 평범한 사람들을 질리게 할 정도다. 마치 기계처럼 능숙하게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정확하고 민첩하게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오랜 시간에 걸쳐 한 우물을 판 결과일 뿐 특별한 비법 같은 건 없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도 비슷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파다보면 말콤 글래드웰의 말대로 1만 시간의 법칙이 작동되면 누구나 한 분야의 ‘아웃라이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그 일이 어떤 일이냐의 문제가 남겠지만.

그렇다면 ‘돈’은 어떤가. 우리는 누구나 ‘돈’의 달인이 되고 싶어한다. 바꾸어 말하면 ‘돈’을 잘 벌고 많이 벌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돈에 대한 욕망만큼 소비의 욕망도 크다. 버는 돈과 쓰는 돈이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면 문제가 생긴다. 많이 벌고 적게 써도 문제고 적게 벌고 많이 써도 문제다. 이때 돈을 ‘어디에’ 쓸 것인가의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와 향락을 위한 이기적인 욕망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하지만 단순히 돈이면 다 된다는 믿음이나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면 뭔가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부의 축적 자체가 행복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왜 일하는지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까?

세상 사람들에게 외치는 공허한 울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교훈과 감동을 세트로 안겨야 한다. 공감할 수 없다면 변하지 않고 변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에 불과한 것이 책이다. 지식은 내 삶을 바꾸고 인생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가꿀 줄 아는 데 필요한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조금씩 나아진다고 희망을 주는 책이 좋은 책이 아닌가.

고미숙의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는 돈에 대한 고전 평론가의 사유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고미숙은 근대성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현실을 조금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제공해 왔다. 그린비에서 펴낸 인생역전프로젝트 시리즈의 여덟 번째 책으로 ‘돈’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은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의 흐름을 잇고 있다. 공부와 사랑 그리고 마지막으로 돈을 살펴보자.

먼저 돈에 대한 환상과 집착을 깨뜨려야 돈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돈은 피보다 진하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끔찍한 사건, 사고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어버린 현실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천륜을 거스르는 사건의 중심에는 돈이 놓여있고, 돈 때문에 죽고, 돈 때문에 살기도 한다. 왜 돈을 벌어야 하며 그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결과 자신의 일과 직업을 결정하고 그 과정에서 제대로 벌고 잘 쓸 수 있는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세상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저자는 먼저 돈의 천태만상을 통해 현실의 모습을 비틀고 풍자한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의 핵심은 돈을 잘 벌고 잘 쓰는 방법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학교에 다니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한 마디로 들어본 적이 없다.

학교에서 하는 공부는 오직 타인을 지배하거나 누르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공부를 하면 그 지식을 돈으로 교환하지 않고서는 살아가기가 힘들다. 그 교환의 궤도를 벗어난 공부, 그것이 곧 삶의 지혜다. 공부가 지혜로 변주되는 곳에선 늘 밥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공부와 밥은 ‘하나’다! - P. 185

밥과 공부가 하나라는 말을 다르게 이해하는 사람들은 보다 높은 학벌과 돈 잘 버는 직업을 연계시킬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공동체’를 제안한다. <수유+너머>에서 밥과 공부와 친구를 해결하며 공동체 안에서 삶을 꾸려가는 저자에게는 당연한 주장이다. 돌고 돌아야 하는 것이 돈이 버는 것보다 쓰는 방법이 중요한 것이 돈이라는 주장은 명품에 찌들고 아파트 평수에 목숨거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하지만 그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문제에서 비껴날 수가 없다. 가족을 이루고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는 공감을 얻기 어려운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에 대한 개념을 바꾸고 삶을 가꾸는 방법을 새롭게 고민하기 위한 노력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저자는 시원하고 자신 있게 말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삶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해야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고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돈이 아니다! 소유로부터 벗어나건 소유의 현장으로 들어가건,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자유다! - 소유에서 자유로! 존재의 무게중심을 이렇게 옮겨 놓을 수 있다면, 그때서야 비로소 순수증여라는 ‘비밀지’에 도전할 수 있다. - P. 194

시혜적 관점의 기부가 아니라 나눔과 배려를 선물과 증여의 개념으로 치환하고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 보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부록으로 ‘44만원 세대 보고서’, ‘정규직 3년차의 20대를 위한 변명’, ‘청년 백수의 촤충우돌 보리기금 운영기’를 통해 현실에서 벗어난 젊음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재미도 크다. 모두가 똑같은 삶을 지향하는 사회는 얼마나 지루한가. 이러한 사회는 바람직하지도 않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 다른 관점에서 자신의 삶을 가꾸어가되 어울려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방법을 가르치고 싶다. 비노바 바베의 말은 그래서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 진정한 교사는 가르치지 않는다! 그의 곁에서 스스로 배우고 자라게 할 뿐!

비노바 바베의 입을 빌려 말하면, “진정한 교사는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 그의 곁에서 스스로 배울 뿐이다. 태양은 누구에게도 자기 빛을 주지 않는다. 다만 만물이 그의 빛을 받아 스스로 자라갈 뿐”(『버리고, 행복하라』, 31쪽)인 것처럼. 지식과 정보 역시 그래야 마땅하다. - P. 216


110107-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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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호모 쿵푸스 실사판] 공부는 셀프!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3-30 15:37 
    ─ 공부의 달인 고미숙에게 다른 십대 김해완이 배운 것 공부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 몸으로 하는 공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적절한 계기(혹은 압력?)를 주시곤 한다.공부가 취미이자 특기이고(말이 되나 싶죠잉?), ‘달인’을 호로 쓰시는(공부의 달인, 사랑과 연애의 달인♡, 돈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부해서 남 주자”고.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근대적 지식은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만을 앎의 영역으로 국한함으로써 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