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받이 의자

 

   

등 위의 저

고요한 공간은 기다리고 있다

 

걸레처럼 바닥에

무릎을 꿇고 오체투지의 자세로 엎드려

뚫어져라, 출렁이는 저 너머를 응시하며

 

다가오는 시간을, 부드러운 물처럼

열고 들어설 당신, 아니 당신의 그림자를

 

볼 수는 없지만

지구의 반대편에서 소리도 없이

침묵의 발자국을 새기며 다가와

서서히 앉는 노을은 얼마나 따스한가

 

당신의 등에 내 등이 서서히 다가서는,

고요했던 틈이 사라지는 순간,

 

보진 못하지만 출렁이던 물이

다가오는 시간의 강으로 흐르다

넘치는

 

당신의 바다 밑으로

서서히 가라 앉는

 

 

 

---가장 낮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그리움의 수위로 차오르는 저 너머를 바라다 본 적이 있으신지요? 

  새들은 저 편 하늘 끝으로 날아가 점점이 박혀 먼 소실점으로 사라져 가고, 붉은 해는 제 몸을 부스러 뜨리며 서서히 내려 앉는 저물 무렵

 

  어둠이 깊어지는 밤이 오기 전에 노을은 그 얼마나 따스했던지요?

한 때 저는 그런 시간과 풍경 속에 덩그러니 놓인 등받이 의자를 꿈꾸었습니다.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오직 사랑으로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고요히 제 등으로 다가오기를

  외로워서 그리운 게 아니라

  오직 그리워서 처절하게 보고픈 그 누군가가 제 등 뒤로 서서히 다가오기를 

 

  오래도록 엎드려 기다린 제 등에 사랑하는 그 사람의 등이 다가와 포개지는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그런 순간을 얻기만 한다면

  저 심연의 바다 밑으로 제 영혼과 육신을 가라앉혀야 한대도 기꺼이 수락해야만 할 것같은 예감에 오래도록 휩싸였습니다. 

 

  여전히 저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로지 사랑만으로 사랑하는 그 사람이 저 지구의 반대편에서 서서히 엎드린 내 등을 향해 고요한 발걸음으로 뚜벅 뚜벅 다가와 제 몸 위에 자신의 영혼을 앉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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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가끔씩 생각한다 혹시

붉은 장미를 가슴에 달아 줄

아이들을 내다보며, 나는

이 교탁에 서 있는 것은 아닌가?

 

등급으로 찍혀 나오는 성적표로

아이들을 평가해선 안 된다고 늘

다짐했지만, 정작

 

아이들의 성적대로 아이들이

걸어갈 길을 바라봤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개망초 흐드러진

들길을 오랜만에 걸으며

 

지천에 이름도 없이 피어 있는

옥희 슬기 승욱 성민 자인 재욱

혜진 영재 명우 문기 인정 부영이 같은,

 

꾸미지 않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아이들의 가슴에 이름을 부르며

달아주기 위해 나는

 

이 교탁에 서 있어야 한다고...

 

 

 

--- 아직 시작도 안 한 예비 고3 어린 벗들과 오늘도 상담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곳이 농어촌 지역에 있는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라 아이들은... 오래 전 제가 다녔던 학교의 학생들이 그렇듯이 자신의 낮은 성적과 앞으로 어떻게든 진학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대학이란 미래의 공간의 간극 사이에서 불안과 두려움을 잔뜩 안고 있었습니다.

 

  무언가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은 어쩌면 사치일런지도 모릅니다만... 여튼 저는 첫 개별 면담의 이 소중한 시간에 어린 벗들의 성적을 보여주며 앞으로의 대학진학에 관련된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냥 무엇을 하고 무엇을 생각할 때 즐거운지 행복감을 느끼는지를 조용히 묻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네들의 부모님을 포함한 어른들의 현실적 기대나 욕망이 아닌 어린 벗들 자신의 내밀한 기대와 소망을 듣고 싶었습니다. 긴장한 얼굴로 내 옆자리에 앉아 성적 얘기가 당연히 나오겠지 라는 기대를 했던 어린 벗들은 그냥 소소한 일상과 생활만을 묻는 이 새 담임샘의 얘기가 편하게 느껴졌는지... 십 여 분을 지나면서 다소 긴장이 풀린 얼굴로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더군요. 기뻤습니다. 행복했습니다.

 

  그런 기쁨과 행복의 느낌이 안에서 서서히 번져갈 때 오래 전에 썼던 이 시가 생각났습니다.

들길을 걸으며 이 시를 썼던 그 때로부터 저는 이미 많이 멀어졌는지도 모른다는 씁쓸함이 들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쟁과 승리만이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가르치고 강요하는 이 세상에서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걸~ 그래서는 결코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는 걸

제가 만나는 어린 벗들에게 조용하게 나직나직이 알려줘야 겠다고 다시 한 번 마음을 곧추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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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수업 시간의 문학론

 

 

 

문학은

시험으로 완성되지 않는, 늘

길 위의 발자국 같은 거라고, 가다가다

뒤돌아 보는 젖은 눈동자 같은 거라고

 

3학년 보충수업 현대문학 시간, 목에

핏대까지 올리며 폼나게 얘기해 보지만

 

문제집에 코를 박은 아이들은

끙 끄응 거리다 송글송글 맺힌

땀을 훔치며

 

이육사의 '광야'가, 윤동주의

'길'과 '담 너머'의 '나'가, 신경림의 '갈대'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글자의 시력 간의 거리를 재며

암호해독을 하느라 분주하다, 정신없다, 분명한

 

의미가 떨어져야만 이 시를 이해했다고, 이것이 은유고

저것이 대유고, 저 저 저것은 창조적 상징이라고

저 사방팔방의 자잘한 해설풀이가, 이

시대의 문학 교육이

 

자꾸만 마침표를 강요하는 교실,문학은

늘 길 위의 여정이라고, 문학은 시험으로

등수를 매길 수 없는 마라톤이라고

 

일등부터 꼴찌까지 다

박수치고 박수 받는 그런

멋진 과목이라고

 

 

--- 그저께 저와 일 년간 함께 웃고 울고 떠들고 공부하며 일 년을 동고동락했던 고3 어린벗들을 떠나보냈습니다. 어떤 멋진 멘트도 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뜨거운 감정도 쉽사리 드러내 보이지 못했습니다. 그저 담담히 '열심히 살아라!', '험난하고 아픈 세상이지만 최선을 다하고 즐겁게 살려고 노력해라!' 정도의 지극히 모범적이고 뻔한 말만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곤, 아이들이 다 떠난 교실... 어린벗들이 공부했던 책상을 하나 하나 열어 보았습니다. 졸업식 등의 행사로 이미 청소를 다 끝낸 교실이었었지만, 한 어린벗의 책상 속에서 언어영역 문제집 한 권이 생뚱맞게 튀어나옫군요.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문학 부분에 열심히 빨간색 볼펜으로 맞고 틀림을 표시한 부분들을 보다가... 아주 오래 전 고3 담임을 할 때 썼던 이 시가 떠올랐습니다.

 

  문학이 결국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면... 문학은 애초에 마침표를 찍을 수 없는 길 위의 길입니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웃고 울고 기쁘고 슬프고 한없이 외로울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완벽한 의미 해석이라는 게 문학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문학의 영원한 화두인 삶에도... 사랑에도... 그렇겠지요.

 

  그래서 저는 학교란 공간에서 국어란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 이 현실이 기쁘기도 하고 서럽기도 합니다. 입시를 위해 기획된 교과서나 각종 문제집에는 이미 경쟁과 위계와 서열이 구조화된 이 불행한 사회의 질서가 자연스럽게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질서는 늘 정답을 요구하면서 끊임없이 정답과 오답의 이분볍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하기 마련이구요. 그래서 아이들은 문학을 공부하면서 점점 더 문학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문학선생으로서 단 한 가지 꿈이 있습니다. 어쩌면 결코 이루어지지 못할 지도 모르지만...

내 수업을 받은 아이들이... 아니 이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고등학교 문학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졸업 후에 그 삶의 길이 어떻게 되었든, 동네의 작은 책방이었든 시내의 큰 서점이 되었든 

 

  저물 무렵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붙잡고 가든 혼자 터벅터벅 걸어서 가든

서점 한 귀퉁이의 시집 한 권 한 권을 꺼내어 살포시 책장을 넘기고 한 구절 한 구절 읽으며 음미하기를... 그러다 마음 속으로 걸어 들어오는 구절이 있으면 가난한 지갑을 열고 그 시집 한 권을 사고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면서 한 편 한 편 읽으며 따스하게 채워지는 마음으로 풍족한 밤길을 통과해 집으로 돌아오기를...

 

  우리네 삶에도... 그 삶의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만남과 사랑에도... 결코

등급 따위는 매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제 온 몸과 온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살아내려는 지금 이 순간순간에

참 애쓴다고 고맙다고 참 사랑한다고 짝~ 짝~ 짝~!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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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

 

 

 

생선을 발라 먹다 마침내 드러나는 가시들을 보면

울컥! 나도 모르는 슬픔이

목울대를 잠시 적시고 간다

 

빈약한 육체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가시들

바싹 구워 노릇노릇한 껍질과

부풀어 오른 속살만을 파먹기 바빠

알지 못했던 살의 뼈대들

 

푸른 바다의 시절

나에게도 부푼 영혼이 있었다는 듯

은색 빛으로 반짝이는 가시들

잘못 삼킨 사람의 목젖에 박혀 힘들게도 하지만

결코 다시는 어디에 가 박히지 못할

이제는 더이상 부푼 영혼을 꽃피우지 못할

 

누군가 부푼 내 영혼을 젓가락질한다면

내 남은 가시의 뼈들이

흘러갈 곳은 어디일까?

 

 

 

--- 처음 마석이라는... 경기 동북부의 이 작은 읍에서 직장을 잡고, 도시가 아닌 시골학교에서 들꽃처럼 순박한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는 선생이 된 첫 해!  바바리 코트를 휘저으며 가끔씩 자전거를 타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출근하곤 했습니다. 홀로였으며 월세였지만, 큼직한 지상의 방 한 칸으로 돌아가는 귀가길이 그리 쓸쓸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이 곳은 전통 5일장이 서곤 했었는데, 장이 서는 날이면 저는 보충수업을 마치고, 저물 무렵 느릿느릿 이 장터를 지나 귀가하곤 했습니다.

 

  그런 날이면 등이 굽어 몸이 더 작아 보이는 할머니의 노점 생선좌판에서 저는 고등어나 이면수 등의 생선을 사곤 했습니다.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도마 위에서 너무 피맛을 본 큼지막한 식칼의 일획에 뎅겅 하고 잘려져 나가던 생선 대가리와 그 피비린내 나는 내장들... 여튼 잘 다듬어진 생선 토막을 검정 봉지에 담고서 해가 지는 굴다리 작은 터널을 지나 빈 방으로 들어오곤 했습니다. 그리곤 소주 한 병의 만찬에... 그날 기분이 끌리는 단 한 권의 시집과 이 생선들을 올려 놓고 정말 맛있게 속살을 파먹곤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울컥! 했던 순간들이 찾아오면 갑자기 눈물이 나기도 했던 나나들이었지요. 누구도 보는 사람이 없었기에... 남자의 눈물은 그리 속되지 않다고 지금도 가끔 되뇌이지만... 여튼 그 때는 참 대책없이 그랬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했을 때 혹은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으시다면... 당신은 어떠셨나요? 

사랑하는 그 사람의 부풀고 부드러운 속살만을 파 먹고 탐하진 않으셨나요?

 

  누군가를 진실로 사랑한다면... 그 부푼 영혼의 속살이 사실 알고 보면 그 사람의 마음 속 상처의 가시로부터 부풀어 올랐다는 진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진정 누군가를 뼈아프게 사랑함은... 어쩌면 사랑하는 이의 부푼 속살이 사라진 후

남은 그 가시의 뼈들을 아프지만 꼭 껴안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사랑이란 얼마나 깊고 어려운 일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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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에 대한 사색

 

 

   

살아오면서

살아가면서

 

결핍이란

늘 이 생을 따라다니는 그림자였지

 

부족함이란 어쩌면 영원한 환상幻想

멈추어 서서 뒤돌아 보며

정말 참회해야 할 일이란

 

나의

당신의

우리의 가슴 안에

사랑이 없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유일한 가난

 

 

 

--- 살아 온 나날들을 고요히 뒤돌아 보면 인간은 누구나 결핍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지요. 특히, 사랑이라는 인간의 행위에서는 더욱 그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나간 사랑이든 지금 사랑을 하고 있든... 행여 자신이 받았던 사랑의 기쁨으로 기뻐하는 게 아니라 받은 상처를 지속적으로 떠올리며 아파하고 슬퍼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굳이 저 유명한 철학자 에리히 프롬의 말을 되새기지 않는다 해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행위는 고통이 아니라 기쁨이며 빼앗기는 행위가 아니라 지극히 얻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부족한 것 때문에 남과 비교하고 괴로워 하지 마십시오.

사랑에 있어서든 삶에 있어서든

  부자는 결코 많이 갖고 있는 자가 아니니까요!

  진정한 부자는 자신이 갖고 있는 것들을 겸허히 인정하고 지순하게 제 가진 마음 한 자락 마저 내어주려 애쓰는 자일 겁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역설을 사랑하고 싶다면 믿으십시오.

  많이 주는 자가 결국 많이 받는 자이고, 결국 사랑의 부자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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